현대수필119 23. 넥타이 넥타이 윤오영 체경 앞에서 넥타이를 매려니까 가락이 헝클어져서 잘 매지지를 않는다. 다시 매도 또 헝클어진다. 몇 번을 고쳐 매도 영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허구한 날 매던 넥타이를 오늘 따라 맬 줄을 모르다니 딱한 노릇이다. 할 수 없이 아이놈을 불러 좀 매달라고 했다. 내가 젊어서 처음 양복을 사 입고 넥타이 매는 법을 배우느라고 체경 앞에서 연습해 본 적도 있지만 넥타이를 못 매서 쩔쩔 매기는 처음이다. 글씨를 쓰다가 밤낮 쓰던 글자, 그나마 제대로 써 놓고도 눈이 서툴 때도 있고 밤낮 다니던 길을 차에서 내려 어느 쪽인지 어리둥절한 때도 있고, 이웃의 영양(윗사람의 딸을 높여 이르는 말)이 옷만 갈아 입어도 누구시냐고 딴전을 하기 일쑤인 내라, 원래 똑똑한 편은 못 되지만 오늘은 좀 심한 것 같다.. 2021. 12. 13. 22. 낭비가 낭비가 김소운 지폐 한 장에 몇 천만(千萬)인가, 몇 억(億)인가 하는 세균(細菌)이 우굴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실증해 보인 분이 있었다. 연전(年前)에 일본 후생성(厚生省)이 밝힌 바로는 동경(東京)의 음식점에서 내는 소독저(消毒箸) 한 벌에서 자그만치 5, 6백만의 미균이 검출되었다는 얘기다. 종이로 하나하나씩 싼 소독저도 그렇거던, 하물며 서울 거리의 버스간에서 거슬러주는 쓰레기 지폐리요. 미균이 모두 유독(有毒)이라고 단정할 것은 아니지만, 점잔을 빼무는 노신사(老紳士)에서 아이새도우, 매니큐어로 몸단장을 한 아가씨까지, 돈지갑 속에 몇 억, 몇 십 억의 미균 무더기를 간직하고 다닌다는 것은 유머러스한 만화(漫畵) 자료가 아닐까 보냐. 그렇다고는 하나 그 쓰레기 지폐를 행여 소홀히는 대접.. 2021. 12. 13. 21. 낭객의 신년만필 낭객의 신년만필 신채호 문예 운동(文藝 運動)의 폐해(弊害) 낭만주의, 자연주의, 신낭만주의 등의 구별도 잘 못하는 현대에 가장 유행하는 굉굉한서방 문예가들 유명한 소설이나 극본 등을 거의 눈에 대해 보지 못한 문예의 문외한이, 게다가 십여 년 해외에 앉아 분단이 소식이 격절하야, 무슨 작품이 있는지, 낫는지 어떤 것이 환영을 받는지 알지 못하니 조선 현재 문예에 대하야 가부를 말하랴. 다만 3·1운동 이래 가장 현저히 발달된 자는 문예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경제 압박이 아모리 심하다 하나 아귀의 금강산 구경같은 문예 작품의 독자는 없지 안하여, 경성의 신문지에 끼여 오는 책사광고를 보면 서적은 거의 십오 년 전 그 때의 한 꼴이나, 시인과 소설 선생의 작물은 비교적 다수인 듯하다. 그래서 이 난필이 .. 2021. 12. 13. 20. 낙엽을 태우면서 낙엽을 태우면서 이효석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같이 뜰의 낙엽을 긁어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건만, 낙엽은 어느덧 날고 떨어져서 또다시 쌓이는 것이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의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 보다. 30여 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건만, 날마다의 시중이 조련치 않다. 벚나무, 능금나무 ― 제일 귀찮은 것이 벽의 담쟁이다. 담쟁이란 여름 한철 벽을 온통 둘러싸고 지붕과 굴뚝의 붉은 빛만 남기고 집안을 통째로 초록의 세상으로 변해 줄 때가 아름다운 것이지, 잎을 다 떨어뜨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벽에 메마른 줄기를 그물같이 둘러칠 때쯤에는 벌써 다시 거들떠볼 값조차 없는 것이다. 귀찮은 것이 그 낙엽이다. 가령 벚나무 잎같이 신선하게 단풍이 드는 것도 아니요, 처음부터 칙칙한.. 2021. 12. 13. 이전 1 ··· 20 21 22 23 24 25 26 ··· 3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