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나무의 위의
나무의 위의 - 이양하(李敭河) 첫여름은 무엇보다 볕이 아름답다. 이웃집 뜰에 핀 장미가 곱고, 길 가다 문득 마주치는 담 너머 늘어진 들장미들이 소담하고 아름답다. 볕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겠고, 장미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첫여름은 무엇보다 나무의 계절이라 하겠다. 신록(新綠)이 이미 갔으나 싱싱한 가지 가지에 충실한 잎새를 갖추고 한여름의 영화를 누릴 모든 준비가 완전히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주는 기쁨과 위안이란 결코 낮춰 생각할 것이 아니다. 살구, 복숭아, 매화, 진달래, 개나리, 장미, 모란, 모두 아롱다롱 울긋불긋 곱고 다채로워 사람의 눈을 끌고 마음을 빼내는 데가 있으나, 초록 일색의 나무가 갖는 은근하고 흐뭇하고 건전한 풍취에 비하면 어딘지 얇고 엷고 야한 데가 있다...
2021.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