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필119 15.꾀꼬리 꾀꼬리 김태길 천장이 뚫린 맥고모자를 깊숙이 눌러 쓴 사람이 새 두 마리를 앞에 놓고 길거리에 앉았다. 그것이 바로 꾀꼬리라는 말에, 그리고 사흘만 길을 들이면 집이 떠나가게 운다는 바람에, 그만 욕심에 불이 붙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삽니까?” 눈치를 보면서 물었더니, “그야 살다뿐입니까. 잘하면 새끼까지 치지요.” “무엇을 먹이면 되죠?” “콩이나 녹두를 맷돌에 타서 주면 그저 그만입니다.” 값을 물었더니, 남대문통 가면 한 쌍에 만 환 안 주곤 만져도 보지 못하는 것이지만, 자기는 제 손으로 잡은 것이요, 갈 길도 멀고 하니, 단돈 오천 환에 내버리겠다는 대답이었다. “한 마리만 삽시다.” 주머니 속에 오천 환까지 없다는 슬픔을 참작하고 이렇게 흥정을 걸었더니, “꾀꼬리만은 한 쌍이라야 합니다. .. 2021. 12. 13. 14.까치 까치 윤오영 까치 소리는 반갑다. 아름답게 굴린다거나 구슬프게 노래한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고 기교 없이 가볍고 솔직하게 짖는 단 두 음절 '깍 깍'. 첫 '깍'은 높고, 둘째 '깍'은 얕게 계속되는 단순하고 간단한 그 음정(音程)이 그저 반갑다. 나는 어려서부터 까치 소리를 좋아했다. 지금도 아침에 문을 나설 때 까치 소리를 들으면 그 날은 기분 좋다. 반포지은(反哺之恩)을 안다고 해서 효조(孝鳥)라 일러 왔지만 나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좋다. 사랑 앞마당 밤나무 위에 까치가 와서 집을 짓더니 그것이 길조(吉兆)라서 그 해에 안변 부사(安邊府使)로 영전(榮轉)이 되었다던가, 서재(書齋) 남창 앞 높은 나뭇가지에 까치가 와서 집을 짓더니 글 재주가 크게 늘어서 문명(文名)을 날렸다던가 하는 옛 이야기도 .. 2021. 12. 10. 13. 글을 쓴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 김태길 사람은 가끔 자기 스스로를 차분히 안으로 정리(整理)할 필요를 느낀다. 나는 어디까지 와 있으며, 어느 곳에 어떠한 자세(姿勢)로 서 있는가? 나는 유언 무언(有言無言)중에 나 자신 또는 남에게 약속(約束)한 바를 어느 정도까지 충실(充實)하게 실천(實踐)해 왔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함으로써 스스로를 안으로 정돈(整頓)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안으로 자기를 정리하는 방법(方法)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은 반성(反省)의 자세로 글을 쓰는 일일 것이다. 마음의 바닥을 흐르는 갖가지 상념(想念)을 어떤 형식으로 거짓 없이 종이 위에 옮겨 놓은 글은, 자기 자신(自己自身)을 비추어 주는 자화상(自畵像)이다. 이 자화상.. 2021. 12. 10. 12. 그믐달 그믐달 나도향 나는 그믐날을 몹시 사랑한다.(주제적 진술) 그믐날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버리는 초생달은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毒婦)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怨婦)와 같이 애절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의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女王)과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와 같은 달이다. 초생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마는,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한등(客窓寒燈)에 정.. 2021. 12. 10. 이전 1 ··· 22 23 24 25 26 27 28 ··· 3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