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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021신춘 문예 단편소설 , 수필, 시 등 당선작137

35. 골목길 골목길 고임순 세월은 강물 되어 흐르면서 기억들은 물에 씻긴 조약돌처럼 반들거리며 남는 것일까. 이 세상에 태어나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길을 걷고 또 걸었을까. 지금까지 걸어 다녔던 길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흙먼지 부옇게 일던 신작로, 돌부리에 넘어져 무릎을 깨고 울던 골목길, 납작한 초가지붕이 이어진 산동네 후미진 언덕 길 등. 호기심이 남달랐던 나는 구불거려서 끝이 보이지 않아 궁금했던 골목길에 더 흥미를 곧잘 해찰거리면서 다니기를 즐겼다. 길은 우리에게 가장 서정적인 공간이다. 떠남과 돌아옴의 길. 집을 떠나 주어진 일들을 부지런히 마치고 다시 보금자리 내 집으로 돌아오는 길. 걸을 때마다 그 길들이 마치 우리 몸속의 혈맥처럼 땅을 누비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길을 부름이라 했던가.. 2022. 1. 23.
34. 검댕이 검댕이 ​ 이은희 검댕이가 긴 여행을 떠났다. 먹보인 녀석이 좋아하는 젤리도 마다하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덩그러니 보금자리만 남았다. 그런데 나는 놀라지도, 슬프지도 않다. 가족들은 두 눈에 쌍불을 켜고 그를 찾느라고 야단이다. 그러나 베란다와 온 방을 구석구석 찾아보아도 녀석은 나타나질 않는다. 검댕이는 우리 집에서 키우는 사슴벌레의 애칭이다. 유난히 검고 두개의 집게가 커서 붙인 이름이다. 이 녀석이 우리 집에 오기까지엔 할머니의 영웅담이 한몫을 했다.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와 손자가 나를 따돌리고 뭔가 작전을 수행하려는 눈치였다. 아이가 난데없이 사슴벌레에 관해 연구를 하려는 것도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았다. 나 몰래 아빠에게 용돈도 얻어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날 벌어진 일을 흥분하신 할머.. 2022. 1. 23.
33. 개똥벌레의 꿈 개똥벌레의 꿈/ 박종철 나의 출생지는 무주의 청량리입니다. 대대로 살아온 공동부락에서 태어났습니다. 낮에는 숲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어둠이 내리고 동무들이 들놀이를 가자고 채근하면 등불을 켜고 집을 나서게 됩니다. 도랑을 건너고 숲 위를 날기도 하고 저녁상이 한창인 농가의 마당이나 하얀 박꽃이 피어 있는 지붕 위를 날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우리를 보고 “개똥벌레다!” 하며 뒤를 쫓아다닙니다. 우리도 장난 끼가 동하여 이이들 주변을 맴돌며 놀리기도 하고 숨바꼭질도 합니다. 너무 가까이 접근하다가 이이들에게 붙들려서 호박꽃 초롱에 갇히는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초롱불을 흔들며 좋아라고 뛰놀다가도 놀이에 지치면 슬그머니 풀어 주기도 합니다. 요즈음 우리가 제일 걱정하고 있는 것은 이웃이 해마다 줄어들고 .. 2022. 1. 23.
32. 가침박달 가침박달/ 김홍은 젊은 여승의 얼굴에 살며시 짓던 미소를 다시 보고 싶어 오늘도 화장사로 향한다. 손끝만 닿아도 금세 터질 것만 같은 청순하고 깨끗한 얼굴. 색깔로 비유한다면 조금치도 때 묻지 않은 순백색이다. 색은 광선에 의해 빛이 물체에 닿을 때 반사 흡수의 작용으로 우리 눈에 지각되어 남은 색이 결정된다고 한다. 색깔은 자연에서는 백색에서 시작되어 흑색으로 진행되다가 시들고 만다. 색의 시초가 백색이듯 여승의 미소는 꼭 그러했다. 꽃봉오리가 방울방울 피어내려는 모습만큼이나 평화롭고도 자연스럽다. 어쩌면 부처님이 짓고 있는 미소를 가만히 훔쳐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인간은 수많은 세월을 보낸 후에야 웃어 보일 수 있는 그 아름다운 미소이리라. 세파에 물들지 않은 천진난만한 어린이가 방긋.. 2022.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