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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언론사 연재물 등59

박인환 ‘목마와 숙녀’의 시인, 한국전쟁 터지자 종군기자로도 ‘맹활약’/김희연사회부 기자 박인환‘목마와 숙녀’로 유명한 요절 시인, 명동의 ‘댄디보이’ 박인환(1926~1956)은 당시 문인들이 대개 신문사 문화부에서 활동했던 것과 달리 1949년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로 입사했다. 그해 김경린, 김수영 시인 등과 함께 동인 ‘신시론’의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출간했다. 그는 5편의 시를 수록하며 모더니즘 시인으로 각광 받았다. 박인환은 동인 ‘후반기’ 등을 조직해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 1950년대 모더니티를 대표한 시인이다.박인환(오른쪽)은 1955년 3월 서울 명동 술집에서 즉흥적으로 시 ‘세월이 가면’을 지었고 여기에 이진섭(오른쪽에서 두번째)이 곡을 붙여 노래가 됐다. 오른쪽 세번째는 .. 2024. 9. 24.
유호 원고지 채우며 아침 맞는 기자·1호 방송작가 ‘대중문화의 산역사’/유정미 | 영화제작자·유호 문화부장 유호“이상형이 어떻게 되나?”“할아버지나 아버지 같은 사람!”“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 눈이 너무 높은 거야.”“…”‘김내성문학상’ 제정 인사말 1957년 경향신문 문화부장으로 재직하던 유호 선생이 경향신문사가 제정한 ‘김내성문학상’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내성문학상은 탐정소설가·대중소설가로 잘 알려진 김내성을 기념하기 위해 1957년 경향신문사에서 제정한 소설부문 문학상이다. 제1회 수상작은 1958년 정한숙의 암흑의 계절>, 제2회는 1959년 박경리의 표류도>였다. 1960년에 사실상 폐지되었다. 유정미씨 제공60년 가까이 나이차가 나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대화다. 그리고 이 대화에서 ‘눈이 높다’.. 2024. 9. 24.
김동리 문화부장 김동리 - 해방 정국 좌·우 넘나들어…언론계 떠난 뒤 ‘문단의 거목’으로/김여란초대 경향신문 편집국장으로 염상섭이 추대된 데는 소설가 김동리(1913~1995)의 공이 컸다. 경향신문이 창간된 1946년 김동리(당시 33세)와 염상섭(당시 49세)은 서울 돈암동 한동네에 살면서 어느 봄날 우연히 첫인사를 나눴다. 한 달쯤 지나 김동리는 “일제강점기부터 형같이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던 정지용(당시 46세)을 만났다. 정지용은 ‘교회에서 신문을 내게 돼 내가 일을 봐줘야 하게 생겼다. 편집국장을 물색해보자’고 김동리에게 의논했다. 김동리는 염상섭을 추천했고, 정지용은 구미가 당기는 표정으로 “당장 염상섭의 집으로 가자”고 제안했다고 김동리는 자전 수필에서 회고했다. 그 해 가을 염상섭 편집국장, 정.. 2024. 9. 24.
구상 박정희가 친분 이용해 경향신문 경영 맡기려 했지만 휘둘리지 않다/김희연논설위원 구상프랑스가 뽑은 ‘세계 200대 문인’“그 신문사 일 어떻게 되었어요?”“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시 줄을 쓰는 것밖엔 없나 봅니다.”“보고를 받아 다 알고 있어요. 교회라는 거룩한 탈을 쓰고 그 짓들인데 그 사람들 법으로 혼들을 내주시죠. 그렇듯 당하고만 가만히 계실 거예요?”“그럼 어쩝니까? 예수가 오른쪽 뺨을 치면 왼뺨을 내 대라고 가르치셨는데야!”“그래서야 어디 세상을 바로잡을 수가 있습니까?”“그게 천주학의 어려운 점이지요!”“천주학이라!”육명심 사진작가가 1970년 초 구상 시인을 직접 찾아가 촬영한 사진. 육 작가가 2007년 낸 문인사진첩 문인의 초상>에 실려 있다.50여년 전 박정희 대통령과 구상 시인 .. 2024. 9.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