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필4137 17. 말린 것에 대한 찬사 말린 것에 대한 찬사 권현옥 모든 말린 것에 대한 찬사가 인다. 수분과 향 다 빼고 주검처럼 있다가 다시금 물속에서 전설처럼 살아나는 몸, 뒤척이는 다시마를 보며 생각한다. 살아나는 것은 말라있던 것인가. 말린 씨앗과 말린 해초와 말린 나물, 말린 생선과 말린…. 그리고 말린 생각들. 냄비에 다시마 대여섯 개를 넣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다시마는 몸뚱이를 크게 뒤척였다. 말라서 가벼워질 대로 가벼워진 다시마는 찬 통 속에서 몸끼리 부딪힐까 빳빳이 찌르며 밀어내더니 냄비 안에서는 끓어대는 물 등을 타느라 중심을 못 잡고 난리다. 요란스럽게 몸을 풀어 부드러워지고 있다. 굳은 몸을 펴가며 갈증을 다 해소한 다시마는 마침내 정신을 차렸는지 무게 있는 유영을 한다. 충분히 황홀했나 보다. 몸은 원래 모습을 찾.. 2022. 2. 1. 16. 만목의 가을 만목의 가을 맹난자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면서 마음에 따라와 번지는 가을, 깊숙이 그 속에 들어앉고 싶다. 거리를 거닐면서도 은행나무 잎을 살피게 되는 버릇, 야위어 가는 푸른빛의 퇴색을 심장深長하게 바라보게 된다. 미망迷妄에 갇힌 어느 젊음이 완성으로 이르는 길목 같아서다. 해질 무렵, 시월 넷째 주 올림픽공원을 찾았다. 눈에 가득 들어차는 가을, 단품이 곱다. 원두를 잘 끓여낸 커피색의 갈참나무, 왕벚나무의 선홍빛 단풍도 곱지만 내가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것은 은행나무의 노란 단풍이다. 칙칙하던 녹음 속에서 깨어나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 내명內明한 어느 현자賢者를 만난 듯싶어 괜히 가슴이 설렌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연례행사처럼 은행나무 아래를 서성이곤 한다. 무엇인가 가슴에 차오르.. 2022. 2. 1. 15. 마지막 수업 마지막 수업 구양근 나의 28연간의 교수생활을 마감해야 할 날이 갑자기 다가왔다. 정년을 한 학기 남겨놓고 홀연히 국가의 부름을 받은 탓에 약간 앞당겨 교수생활을 마감해야 할까 생각했다. 학교가 가까워오자 가슴이 뛴다. 부랴부랴 할 말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옳지, 그 말을 해야지.” 나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 큰 뜻을 품지 않음을 항상 불만으로 여겨왔다. 나의 그 당부의 말을 오늘 학생들에게 확실하게 심어주기로 했다. 강의실을 들어선 나는 오늘이 나의 마지막 수업임을 선포했다. 학생들이 갑자기 웅성대기 시작한다. “학생 여러분! 오늘은 기나긴 내 교수생활의 여정을 마무리 짓는 날입니다. 저는 오늘 이 예기치 못한 고별강의에서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꿈을 가지라! 는 한 마디의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2022. 2. 1. 14.들판의 소나무 들판의 소나무 강돈묵 어느 산에 가든 소나무가 있다. 산밑 숲정이에 모인 활엽수와 같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내는 소나무도 있고, 산허리에 덜렁 주저앉아 산새들과 산바람의 대화를 엿듣는 소나무도 있고, 벼랑 돌 틈에 뿌리를 내리고 자신의 기품을 뽐내는 소나무도 있다. 소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뒤엉키어 살기도 하고, 저희들끼리 무리지어 살기도 한다. 소나무는 사계를 두고 변하는 다른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호사를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푸른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늘 정성을 다 하고 있다. 밤나무, 오리나무들과 뒤엉키어 사는 소나무는 키가 크지 않다. 주위의 친구들과 키를 맞추어 도란거리며 산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월등히 키가 크지 않은 대신 가지를 길게 뻗어 어깨동무하며 산다. 옆에 있는 다른 .. 2022. 2. 1. 이전 1 ··· 28 29 30 31 32 33 34 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