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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119

49. 물 물 이태준 나는 물을 보고 있다. 물은 아름답게 흘러간다. 흙 속에서 스며나와 흙 위에 흐르는 물, 그러나 흙물이 아니요 정한 유리그릇에 담긴 듯 진공 같은 물, 그런 물이 풀잎을 스치며 조각돌에 잔물결을 일으키며 푸른 하늘 아래에 즐겁게 노래하며 흘러가고 있다. 물은 아름답다. 흐르는 모양 흐르는 소리도 아름답거니와 생각하면 이의 맑은 덕, 남의 더러움을 씻어줄지언정 , 남을 더럽힐 줄 모르는 어진 덕이 이에게 있는 것이다. 이를 대할 때 얼마나 마음을 맑힐 수 있고 이를 사귈 때 얼마나 몸을 깨끗이 할 수 있는 것인가! 물은 보면 즐겁기도 하다. 이에겐 언제든지 커다란 즐거움이 있다. 여울을 만나 노래할 수 있는 것만 즐거움은 아니다. 산과 산으로 가로막되 덤비는 일 없이 고요한 그대로 고이어 고이어.. 2021. 12. 15.
48. 문학과 인생 문학과 인생 최재서 인생오십 고개에 올라서, 그 사이 한 말이 많은 것 같지만, 돌아다보면 실오라기만한외길이 보일 둥 말 둥, 줄거리 잡아 이렇다 할 아무 일도 없다. 나는인생의 허무(虛無)와 무가치(無價値)를 느낀다. 나는 좀더 충실하고, 좀더 가치 있는 생(生)을 체험(體驗)하고 싶다. 그럴 때에 나는 베토벤의교향악(交響樂)을 듣고, 혹은 밀턴의 시(詩)를 읽고, 혹은 셰익스피어의희곡(戱曲)을 읽는다. 이글을 읽어 줄 독자는 대개 20 전의 청년들임을 나는 알고 있다. 여러분은아직 인생을 회고(回顧)할 필요는 없다. 다만 앞을 내다보며 기쁨과슬픔을 다같이 희망의 품안에 포옹(抱擁)하면서 전진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앞으로 간혹 문학 작품을 읽어, 인생에 대해서 그 무엇을반성하게 될 때에, 이 .. 2021. 12. 15.
46. 무궁화 무궁화 이양하 우리 고향은 각박한 곳이 되어 전체 화초가 적지만 무궁화가 없다. 어려서부터 말은 들었지만 실지로 무궁화를 본 것은 십여 년 전, 처음 서울에 살기 시작한 때다. 서울 어디서 첫 무궁화를 보았는가는― 역시 연전 교정(延專校庭)이 아니었던가 한다.―기억에 어렴풋하나, 그때 느낀 환멸감은 아직도 소상하다. 보라에 가까운 빨강, 게다가 대낮의 햇살을 이기지 못하여 시들어 오므라지고 보니 빛은 한결 생채를 잃어 문득 창기(娼妓)의 입술을 연상하게 하였다. 그러면 잎새에 아름다움이 있나 하고 들여다보고 들여다봐야, 거세고 검푸른 것이 꽃 잎새라느니보다 나무 잎새였다. 요염한 영국의 장미, 고아하고 청초한 프랑스의 백합, 소담한 독일의 보리(菩提), 선연(鮮姸)한 소격란의 엉겅퀴, 또는 가련한 그리스.. 2021. 12. 15.
45. 목계신선 목계신선 윤현식 늘 가는 곳이지만 목계의 돌밭을 거닐고 있으면 먼 산이 푸르게 보이듯이, 깊은 물 속이라거나 땅 속에는 수없는 명석(名石)이 묻혀 있을 것만 같아서 흐르는 물소리보다도 가슴이 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게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탐석(수석을 찾는 일)을 가면 으레 물속에 조금이라도 발을 들여 놓아야만 탐석에 대한 미련이 남지 않는다. 탐석의 성과는 전적으로 우연과 안목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지만 남들이 가지 않은 곳이 사실상 가장 기대가 되는 장소이니 늘 변하는 물 속의 돌밭은 나를 유혹하는 일종의 신상품 공간이다. 가랑비가 내리는 초봄의 목계는 날씨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탓에 탐석이 쉽지 않다. 그래서 가게 탐석이나 할 겸 충주 목계에 있는 한 수석 가게에 들렀다. 버릇이지만 나는 수반이나 .. 2021.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