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1신춘 문예 단편소설 , 수필, 시 등 당선작137 47. 동전 구멍으로 내다본 세상 동전 구멍으로 내다본 세상/ 유혜자 차르르 차르르, 숙모님이 지나갈 적마다 허리춤에서 이런 소리가 났다. 큰 집안의 며느리였던 숙모님이 할머니에게서 살림의 주도권을 인계받아 열쇠 꾸러미를 차게 된 것은 쉰이 넘어서였다. 곡식과 연장을 넣어두는 광 열쇠, 몇 가마니 들이의 뒤주, 그 밖에 장롱이며 벽장 등의 것까지 주렁주렁 달고 다니셨다. 어느 날 그 열쇠꾸러미에서 시커멓고 구멍이 뚫린 동그란 쇠붙이를 발견했다. 녹이 슬고 닳아서 글씨는 분명치 않았지만 가운데에 사각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것이 조선왕조 때 쓰던 돈인 상평통보(常平通寶)라는 것은 후에야 알았다. 첩첩산골에서 태어나 50리나 되는 장 구경 한 번도 못하고 새댁이 어려서부터 돈이라는 걸 꾸러미로 만들어 숨겨온 줄은 친정에서나 시댁에서나 아무.. 2022. 1. 24. 46. 동백의 씨 동백의 씨 / 고동주 가을이 오붓하게 익어가는 어느날 동백의 섬 고향마을을 찾았다. 밭 언덕마다 줄지어 늘어선 동백나무 들은 성장이 둔한 탓으로 어릴 적에 눈에 익은 그대로인 듯하여 더욱 정겹다. 멀리서 보면 녹색의 아름다운 관상 상록수 이고, 가까이 보면 윤기 흐르는 잎사귀마다 햇빛을 하나씩 나누어 간직한 초롱초롱한 눈빛들이다. 그 눈빛 이파리들 사이를 자세히 보면 작은 사과처럼 푸르고 불그레한 볼을 살짝 내민 야무진 동백 열매를 만날 수 있다. 그 열매 속에 간직된 검은 갈색의 씨는 가을이 짙어 지면 두꺼운 껍질을 스스로 깨고 땅에 떨어진다. 그 씨에서 짜낸 동백기름을 옛여인들은 아주 귀히 여겼다. 동백기름으로 머리를 곱게 단장하고 나서면 여인의 정갈한 품위에 윤기가 흘렀기 때문이다. 그러한 옛 멋은.. 2022. 1. 24. 45. 돌이 나를 보고 웃는다 돌이 나를 보고 웃는다 김규련 돌에도 정이 오가는 것일까. 한동안 버려뒀던 수석이란 이름의 돌들이 저마다 몸짓을 하며 가슴으로 다가온다. 하나하나 먼지를 털고 닦고 손질을 해 본다. 모두 한결같이 돋보인다. 십여 점 되는 돌들이 어쩌면 이렇게도 모두가 개성이 뚜렷할까. 수석인들은 나의 돌을 보고 이것은 산수경석 저것은 폭포석 또 저것은 물형석, 무늬석, 호수석, 괴석 등 온갖 이름을 붙이곤 한다. 허나 나는 아직 돌밭에서 수석을 캐내고 이름을 붙여 부를 만한 전문적인 식견은 없다. 그저 오가다 문득 마음에 들고 연이 닿아 한 점씩 모아왔을 뿐이다. 돌들을 벗삼아 곁에 두고 묵묵히 앉아 있다. 어느덧 한나절이 지났다. 나는 이미 돌들을 따라 심산유곡을 소요하고 있지 않은가. 숱한 바위 언덕과 벼랑을 넘고 .. 2022. 1. 24. 44. 댓바람 소리 댓바람 소리/ 박영덕 여러 날째 마른 바람이 불었다. 그 놈의 밤이 되면 더욱 기승을 부리며 들녘을 누비고 다니더니 간밤엔 뒤란 대숲을 헤집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혼자 있을 때는 오히려 무심히 스쳐버렸던 그 댓바람 소리가 아들 내외까지 내려와 있는 지난 밤에는 왜 자꾸만, 눌러도 눌러도 새어 나오는 한숨소리같이 들렸는지 모를 일이었다. 새벽이슬을 털고 아내의 묘를 다녀오니 아들 내외는 아직도 흥건한 잠에 빠져 있었다. 자정 무렵에야 도착한 그들이니 피곤함을 이기지 못한 탓이리라 작량은 하면서도 야속한 마음이 앞섰다. “그놈의 회사에선 지에미 제삿날에도 근무를 시키남! 월급도 쥐꼬리만큼 주는 주제에.” 마루 끝에 걸터앉아 궐련 한 개피를 뽑아 드니 새삼 아내가 생각났다. 식전에 담배를 피우면 해롭다고 말.. 2022. 1. 24. 이전 1 ··· 17 18 19 20 21 22 23 ··· 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