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1신춘 문예 단편소설 , 수필, 시 등 당선작137 43. 나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 윤형두 불가(佛家)에서는 현세에서 옷깃을 한 번 스치는 것도 전생에 천겁(千劫)의 인연이 있었다고 하거늘 그렇다면 어머님과는 전생에 몇 억 겁의 연분이 있었는지 모른다. 곱게 빗질하여 쪽진 머리에 흰 눈과 같은 행주치마를 허리에 동여 맨 어머니를 어머니로서 의식한 것은 어느 때부터였을까? 운명에 순응하기보다는 닥쳐오는 운명에 부닥치면서 한 아들을 위하여 일생을 살아오신 어머님은 한일합방 직후 일제의 탄압이 악마의 손길처럼 전국으로 번져 갈 때, 한 어부의 큰딸로 태어나셨다. 여수항에서 남쪽으로 다도해를 끼고 방동선을 타고 두어 시간 가면 돌산이라는 섬의 군내리라는 한산한 어촌에 이르게 된다. 그곳에서 일찍 아버님을 여윈 3남매 중 위로 오빠 한 분과 아래로 한 여동생을 돌보며 낮에는 바닷가.. 2022. 1. 24. 42. 녹음의 생명력 녹음의 생명력/ 김영중 이제 세상은 온통 푸르름으로 물들어 그 싱그러움을 분수처럼 뿜어낸다. 여름의 상징인 녹음, 그 푸른 기상이 당당하기 이를 데 없다. 온 대지의 열기를 하늘로 뿜어 올려 푸른 불꽃을 이룬다. 젊고 씩씩해 거칠 것이 없이 내닫는 젊은이의 숨결을 녹음 속에서 느끼게 한다. 공해 속에 나타나 지평선 가득 채우는 저 푸른 생명, 아무리 보아도 물리지 않는다. 눈에 시원함을 줄 뿐만 아니라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시니 그 싱그러움이 내 몸속으로 스며들며 생기를 돌게 한다. 감사하는 마음 또한 솟아오른다. 어디에 숨어 있다가 저토록 푸른 푸르름으로 나타났는가, 신비스럽고 경탄스럽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세상의 어느 것도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저 푸르름 또한 무수히 많은 것을 인내한 열.. 2022. 1. 24. 41. 나도 찔레 나도 찔레/ 오창익 “저게 찔레 아니야?” “미쳤어, 저런 걸 다 심고!” 꽃도 아니고 나무도 아닌 걸 심었다고 비아냥댄다. 삼십 대 전후로 보이는 남녀 한 쌍이 조깅을 하며 바람처럼 던진 말이다. 그로 인해 모처럼의 신선한 아침, 산책길이 무거워졌다. 며칠 전의 일이다. 나는 아침마다 경의선 철길 옆으로 난 산책로를 걷는다. 일산 신도시가 들어설 때 외곽 순환로를 따라 국제규모로 조성된 숲길이다. 주목과 오엽송, 은행과 꽃단풍, 은사시와 플라타너스가 줄을 서고, 융단을 펼친 듯 파란 잔디도 깔려있어 한 시간 남짓 걷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그런데 그날은 ‘꽃도 아니고…’란 한 마디가 자꾸만 발길에 걸렸다. 하기야, 그 젊은 남녀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다. 큰맘 먹고, 큰 돈 들여 조성한.. 2022. 1. 24. 40. 꽃차를 우리며 꽃차를 우리며/ 반숙자 아침 햇살이 거실 깊숙이 들어온다. 햇살 덕분인지 게발선인장이 느린 몸짓으로 꽃봉오리를 부풀리고 있다. 이 화초는 여름내 게발게발 잎만 키우다가 겨울이 깊어서야 잎새 끝에 바늘구멍만한 상처를 내고 개화를 시작한다. 붉은 기미뿐인 잎만 바라보고 있으면 그 느린 행보 때문에 답답증이 생긴다. 그러기를 이십여 일, 상처는 봉오리가 되어 제법 봉싯하다. 기다림이 지루한 날 꽃차를 우린다. 말간 유리 다관에 마른 꽃잎 대여섯 송이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꽃잎은 뜨거운 물세례를 받고 한동안 혼절한다. 후줄근 하다못해 남루하다. 그 쇠락이 민망하여 장사익의 ‘찔레꽃’을 듣는다. 햇살은 주춤주춤 기어 나와 마지막 손길인 듯 봉오리 부푸는 게발선인장을 쓰다듬고 추녀 밑으로 올려 붙다가 뜰 앞.. 2022. 1. 24. 이전 1 ··· 18 19 20 21 22 23 24 ··· 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