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1신춘 문예 단편소설 , 수필, 시 등 당선작137 55. 모기 사냥 모기 사냥/ 신길우 세수를 하고 나오니 동생이 거실에서 파리채를 들고 천장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다. “웬 파리채냐? 파리가 어딨다고.” 동생은 여전히 두리번거리면서 대꾸한다. “파리는요? 모기 때문이지.” 안방으로 들어가니 거기서는 매제가 신문지를 말아 쥔 채 역시 모기를 쫓고 있다. 그러고 보니, 아침신문 위에는 죽은 모기 여러 마리가 놓여 있다. 두어 마리는 배가 터져 붉은 핏기를 보이고 있지만 대부분의 것은 배가 홀쭉하다. 아마 추석명절의 차가운 초가을 날씨 때문에 힘을 쓰지 못하여 피를 빨아먹지도 못한 채 잡히고 만 것 같다. “집안에 모기를 기르나봐. 모기 때문에 한숨도 못 잤어요.” 매제의 실없는 소리에 응원이나 하듯 여동생이 안방으로 들어오며 한 마디 던진다. 그리고는 모기에 물려서 분 팔.. 2022. 1. 25. 54. 면사포 면사포/ 김우종 90넘은 누님이 80여 년 전의 부끄러운 내 얘기를 했다. “너는 온종일 내 등에 업혀서 오줌만 쌌단다. 그래서 내 저고리 등판이 오줌에 절고 다 썩었었어.” 그게 사실이었다면 참 죄송하게 된 일인데 나는 어렸을 때 누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까불었다. “그 순간의 내 기분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네요. 포근하고 따뜻한 누나 등, 사타구니를 타고 내리는 따뜻한 온천물, 방광 문이 시원스럽게 열리는 짜릿한 배설감….” 나는 어린 누님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렇게 나를 업고 나가 놀았다는 성진(城津) 바닷가가 그립다. 바람 소리 파도 소리도 들려오는 것 같다. 그곳에 꼭 한번 누님을 모시고 가서 이번에는 내가 누님을 없고 조개도 주우며 그때 업힌 빚을 갚아 드리고 싶다. 그렇지만 서독처럼.. 2022. 1. 24. 53. 말린 것에 대한 찬사 말린 것에 대한 찬사 권현옥 모든 말린 것에 대한 찬사가 인다. 수분과 향 다 빼고 주검처럼 있다가 다시금 물속에서 전설처럼 살아나는 몸, 뒤척이는 다시마를 보며 생각한다. 살아나는 것은 말라있던 것인가. 말린 씨앗과 말린 해초와 말린 나물, 말린 생선과 말린…. 그리고 말린 생각들. 냄비에 다시마 대여섯 개를 넣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다시마는 몸뚱이를 크게 뒤척였다. 말라서 가벼워질 대로 가벼워진 다시마는 찬 통 속에서 몸끼리 부딪힐까 빳빳이 찌르며 밀어내더니 냄비 안에서는 끓어대는 물 등을 타느라 중심을 못 잡고 난리다. 요란스럽게 몸을 풀어 부드러워지고 있다. 굳은 몸을 펴가며 갈증을 다 해소한 다시마는 마침내 정신을 차렸는지 무게 있는 유영을 한다. 충분히 황홀했나 보다. 몸은 원래 모습을 찾.. 2022. 1. 24. 52. 만목의 가을 만목의 가을 맹난자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면서 마음에 따라와 번지는 가을, 깊숙이 그 속에 들어앉고 싶다. 거리를 거닐면서도 은행나무 잎을 살피게 되는 버릇, 야위어 가는 푸른빛의 퇴색을 심장深長하게 바라보게 된다. 미망迷妄에 갇힌 어느 젊음이 완성으로 이르는 길목 같아서다. 해질 무렵, 시월 넷째 주 올림픽공원을 찾았다. 눈에 가득 들어차는 가을, 단품이 곱다. 원두를 잘 끓여낸 커피색의 갈참나무, 왕벚나무의 선홍빛 단풍도 곱지만 내가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것은 은행나무의 노란 단풍이다. 칙칙하던 녹음 속에서 깨어나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 내명內明한 어느 현자賢者를 만난 듯싶어 괜히 가슴이 설렌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연례행사처럼 은행나무 아래를 서성이곤 한다. 무엇인가 가슴에 차오르.. 2022. 1. 24. 이전 1 ··· 15 16 17 18 19 20 21 ··· 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