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1신춘 문예 단편소설 , 수필, 시 등 당선작137 39. 꽃 춤 꽃 춤 권남희 “환갑잔치 날 받은 사람은 넘의 환갑잔치 안 간다는디.” 단골에게서 점을 치고 온 게 분명한 어머니의 말투는 강하기까지 하다. 이미 이모부 잔치에 가기로 마음을 굳힌 아버지는 ‘그게 뭐 대수냐’는 듯 대꾸도 없이 옷을 갈아입는다. 아버지는 들뜨고 흥분까지 한 얼굴빛으로 이모부 회갑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월평리로 자전거를 타고 마당을 떠난다. 휙 바람이 일었을까. 아버지가 심어 둔 백목련 꽃송이가 투둑 떨어진다. 두고 온 부모형제 보고 싶은 마음에 때마다 얼마나 섧겠냐는 해설까지 덧붙이곤 한다. 어머니와 함께 도착한 저녁나절의 월평리는 동구밖까지 잔치분위기가 넘실거리고 있다. 너른 마당에는 목련꽃 핀 나무 사이로 천막이 몇 개 쳐져 있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불빛과 함께 덩실거리고 있다. 백.. 2022. 1. 23. 38. 깨어 있지 않으리 깨어 있지 않으리/ 김종완 한 달여 동안 한 줄의 글도 쓰지 않고 보냈다. 지금까지 내가 그래도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가끔씩 벌이는 이런 식의 파업 때문일 것이다. 드디어 바닥이 나고 말았다는 기분, 더는 버틸 수 없다는 위기감이 찾아오고 말면 그땐 생각을 멈춘다. 생각 없이 몸으로만 살아가기. 나에게 휴식은 이것이다. 이런 게으름이 너무 좋다. 며칠 전엔 공원을 산책하다가 불현듯 이런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기까지 했다.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 스쳐 지나가는 어떤 설레는 낯섦. 당황했다. 과연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괜찮은가? 너무 긴 시간 동안 행복을 느끼지 못하며 살았었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쫓기듯 시달리며 살아왔다. 내가 원해서 이 땅에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공짜로 햇볕도 받았고, 살아 .. 2022. 1. 23. 37. 그 둠벙의 아홉째 날 그 둠벙의 아홉째 날/ 배정인 비가 그쳤다. 활짝 갠 여름 아침의 파란 하늘은 황진이의 볼처럼 싱그럽다. 묵은 더께가 말끔히 씻겨진 사바 세계를 내려다보는 해님도 말갰다. 모심기 때는 물 부족으로 이웃간에도 얼마나 아웅댔던가. 아랫배미의 둠벙엔 물이 그득히 배를 내밀고 있다. 둠벙 두렁을 누군가가 한 뼘쯤 터놨다. 그리로 물이 태평하게 흘러 나간다. 얼굴이 뿌연 햇물이다. 두렁 가 쑥․개쑥‧돌피‧바랭이‧풀잔디‧개열퀴, 그들도 쫑긋쫑긋 귀를 세우며 반신욕을 즐긴다. 개구리들이 놀이를 나왔다. 어디서 언제 모여 들었는지 큰놈 작은놈, 올챙이 꼬리를 갓 뗀 듯한 어린 것들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햇물에 몸을 담그고 노동에 찌들은 피로를 해갈하면서 흥감에 빠져 있었다. 네 다리를 헤벌레 풀어놓고 침을 흘리며 건.. 2022. 1. 23. 36. 구름카페 구름카페/ 윤재천 나에겐 오랜 꿈이 있다. 여행 중에 어느 서방(西方)의 골목길에서 본 적이 있거나, 추억어린 영화나 책 속에서 언뜻 스치고 지나간 것 같은 카페를 하나 갖는 일이다. 그곳에는 구름을 쫓는 몽상가들이 모여들어도 좋고, 구름을 따라 떠도는 역마살 낀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떠나도 좋다. 구름 낀 가슴으로 찾아들어 차 한 잔으로 마음을 씻고, 먹구름뿐인 현실에서 잠시 비켜 앉아 머리를 식혀도 좋다. 꿈에 부푼 사람은 옆자리의 모르는 이에게 희망을 넣어주기도 하고, 꿈을 잃어버린 사람은 그런 사람을 바라보며 꿈을 되찾을 수 있는 곳- ‘구름카페’는 상상 속에서 늘 나에게 따뜻한 풍경으로 다가오곤 한다. 넓은 창과 촛불, 길게 드리운 커튼, 고갱의 그림이 원시의 향수를 부르고 무딘 첼로의 음률이 .. 2022. 1. 23. 이전 1 ··· 19 20 21 22 23 24 25 ··· 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