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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021신춘 문예 단편소설 , 수필, 시 등 당선작137

59. 꽃피는 해안선 꽃피는 해안선 김훈 여수의 남쪽, 돌산도 해안선에 동백이 피었다. 산수유도 피고 매화도 피었다. 자전거는 길 위에서 겨울을 났다. 겨울에는 봄의 길들을 떠올릴 수 없었고, 봄에는 겨울의 길들이 믿어지지 않는다. 다 지나오고 나도, 지나온 길들이 아직도 거기에 그렇게 뻗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모든 길은 처음부터 다시 가야 할 새로운 길이다. 겨우내 끌고 다니던 월동 장구를 모두 다 버렸다. 방한복, 장갑, 털양말도 다 벗어버렸다. 몸이 가벼워지면 길은 더 멀어 보인다. 티셔츠 차림으로 꽃 피는 남쪽 바다 해안선을 따라 달릴 때, 온몸의 숨구멍이 바람 속에서 열렸다. 돌산도 향일암 앞바다의 동백숲은 바닷바람에 수런거린다. 동백꽃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의 현란한 힘을 이루지 않는다... 2022. 1. 25.
58. 꽃 떨어져도 봄은 그대로 꽃 떨어져도 봄은 그대로 / 김태길 좋은 글은 읽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글재주와 짜임새에 있어서 나무랄 곳이 없더라도,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좋은 글이 아니다. 글이 감동을 주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 경우가 있다. 표현의 절묘함이 감동을 주기도 하고, 작품 속을 흐르는 정서가 감동을 일으키기도 하며, 세상을 보는 작가의 안목이 감동을 부르기도 한다. 한당(閑堂)의 수필 는 특별히 문장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그 가운데 깊은 정서가 흐르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감명 깊게 읽히는 것은, 그 가운데 심오한 삶의 지혜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한당은 이 작품에서 청(淸)대 말기의 중국 학자 유월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유월이 과거에 응시했을 때 ‘꽃은 떨어져도 봄은 그대로 있다(花落春리在.. 2022. 1. 25.
57. 기도 기도 김초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종교를 가졌건 안 가졌건 한평생 몇 차례씩의 진정하고 순수한 기도를 해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인생살이는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는 불가항력적인 어려운 처지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 인간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잡고 하늘을 우러르거나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그때 마음속에 절실하게 갈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순수한 기도일 것입니다. 자식의 절망스러운 병 앞에서 어머니가 손을 모아 잡는 모습, 부모의 절망적 비극 앞에서 자식이 손을 모아 잡는 모습, 이 두 가지가 기도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면서 지고한 순수를 지닌 것이라.. 2022. 1. 25.
56. 고독 박이문 화려한 네온 빛에 왁작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거리에서, 아는 이도 없 고 갈 곳도 없이 떨고 있는 고아는 고독하다. 아내를 잃은 다음, 가족도 친구 도 없이, 무거운 다리를 끌고 혼자 시장에 가서 저녁거리를 사고 돌아와야 하는 노인의 지팡이가 고독하다. 자정이 넘어도 외로이 불이 밝혀져 있는 노 처녀의 아파트가 고독하다. 모든 사람들의 규탄을 받으면서, 사형대를 향하 여 발걸음을 옮기는 죄수의 축 늘어진 목이 고독하다. 이스라엘인들의 폭격 과 탱크의 공격을 받고, 마치 쥐구멍에 몰리듯, 베이루트의 한 구석에 밀리 면서, 세계를 향하여, 같은 아랍인들을 향하여, 반응없는 마지막 원조를 호 소하면서, 혼자서 쓰러지고 죽으면서, 밀려나가야 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 인류의 도덕적 양심을 애절하게 외치면.. 2022. 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