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대수필4137

김주영 소설가의 수집품 "저울추" 김주영 소설가의 수집품"저울추"- 한국문학관협회 김주영 소설가는 지독한 애연가였다. 서울신문에 처음 객주를 연재할 때 하루에 한 갑을 피웠었는데 4년 9개월 뒤 1,465회를 끝으로 연재를 끝내고 나니 두 갑 반으로 늘어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담배는 글을 쓰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을까. 앉은뱅이책상 앞에 엎드려 사흘 밤을 꼬박 새운 적도 있다니 소설가에게 있어 담배는 원고지를 메우게 하는 힘이었는지 모른다. 그때 생긴 폐기종으로 인해 지금도 기침을 참지 못한다고 한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숨이 가쁘고 어쩌다 오르게 되면 정신이 아득해지기도 한단다. 의사로부터 폐암 바로 전단계란 말을 듣고서도 6개월을 더 피울 만큼 김주영 소설가의 담배 사랑은 끔찍했다. 오늘내일하는 목숨 줄을 붙들고도 담배를 뿌리치지 않았.. 2022. 7. 31.
필법 필법 -김이랑 한살이를 마친 담쟁이를 바라본다. 여름이면 햇살바람에 이파리를 반짝이다가, 가을이면 마지막 정열로 붉게 흐르다가 겨울이면 빛바랜 벽화로 남는다. 바람이라도 불면 바스락 부서지는 모습이 얼핏 덧없어 보이지만, 가만히 음미하면 생의 필법 하나가 있다. 빠끔 얼굴을 내민 싹이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며 배밀이를 시작한다. 일어서 본다. 털썩, 다시 몸을 일으켜본다. 어? 이게 아닌데, 비로소 담쟁이는 자신은 곧추설 수 없다는 걸 안다. 화려한 자태 속에 가시를 품거나, 달콤한 향기 뒤에 회초리를 품지도, 칡넝쿨처럼 여린 체 엄살 부리며 남의 목을 죄지도 못하는, 말 그대로 ‘쟁이’다. 발톱이 있다만 그건 벽을 붙잡는 고리다. 하지만 좌절에 빠지기엔 생이 너무 짧다. 옆을 보니 억새가 있다. 가느.. 2022. 7. 31.
아픈 것도 직무유기 아픈 것도 직무유기 - 정성화 대학병원 안과는 늘 환자로 붐빈다. 예약시간이 아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대기 시간이 길다. 내 옆에 앉아있는 어르신이 아들로 보이는 젊은이에게 말했다. “야야, 내 차례가 아직 멀었는가 간호사한테 좀 물어봐라.” 아까부터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그가 답했다. “ 가만 있어. 가만 있으라니까!” 그 순간 병원 복도 공기가 더 탁해지는 듯했다. 어르신은 더 말이 없었다. ‘아이그, 못된 놈! 그거 알아봐드리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이 병원에 주기적으로 다닌 지 2년이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냉장고를 열려는데 냉장고 문의 손잡이가 구부러져 있었다. 누가 이랬을까. 놀랍게도 오븐과 전자렌지도 찌그러져 있었다. 그런데 냉장고 문의 손잡이를 잡아보니 매끈했다. 내 눈에 이상이.. 2022. 7. 31.
의훈 醫訓 (의훈)-김 석 주 (金錫胄) -선 종 순 옮김 몇 개월 동안 병을 앓고 난 후 김 씨는 몸이 퍽 수척해졌다. 집안 식구들에게 물으니 나무 심하게 말랐다 하고, 친구에게 물으니 “저런, 자네 왜 이렇게 말랐는가?” 하였으며, 하인들에게 물어보아도 역시 마찬가지 대답이었다. 이에 김 씨는 걱정이 되어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의원에게 진찰을 받아 보려던 차에 의술이 신통하기로 온 나라에 유명한 의원이 이웃 마을에 산다기에 마침내 모셔와 진찰을 받게 되었다. 의원은 자리에 앉아 먼저 유심히 살펴보고 귀 기울여 들어 보더니 앞으로 다가와 맥을 짚어 보고 물러나 앉으며 말하기를 “당신의 소리를 들어보고 안색을 살펴본 바로는 병이 든 것이 아니고, 맥을 짚어보니 그 전의 병도 이미 다 나았는데 대체 무슨 병.. 2022.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