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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4137

미스 에세이 미스 에세이 - 김정화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연락이 닿지 않아 답답하다는 말씀도 있었지요. 이곳이 그대의 영토와 달라 즉각 답신이 어려운 점도 이해 바랍니다. 살다 보면 함께해야 하는 일도 많지만 만나지 않아도 힘이 되는 경우가 있지요. 당신은 절 만난 이후 매일 글을 썼노라고 고백했습니다. 백지를 마주하면 첫 줄부터 어렵다 하더군요. 언젠가 제가 단정한 첫 문장이 나를 안심시킨다고 한 말에 더욱 글문으로 들어가기 두렵다고 투정했습니다. 그러기에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 문학이겠지요. 글판이 낱말만을 쏟아놓는 곳이 아닌 까닭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것을 쓰지 않으면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 역시 글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국가대표 축구 .. 2022. 6. 30.
도시의 빈자 도시의 빈자(貧者) - 민명자 ​녀석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파트 화단, 후박나무가 그늘진 작은 둔덕 위에 엎드려 있던 녀석과 눈길이 딱 마주쳤다. 목 줄기를 따라 가슴에 하얀 털이 섞여 있고 몸통이 온통 새까만 길고양이다. 몸을 동그랗게 웅크린 채 꼼짝도 하지 않고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그 눈빛엔 기묘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어렸을 때 나는 고양이를 무척 무서워했다. 동네 어른들은 ‘고양이가 관을 넘어가면 송장이 일어난다.’는 말을 자주했다. 그래서 동네에 초상이라도 나면 밤중에 고양이가 얼씬거릴까 봐 무서워 밖엘 나가지 못했다. 어른들은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라든가, ‘고양이한테 생선 맡긴 격’이라는 말도 자주 했다. 이런 속담을 들으면서 고양이는 겉과 속이 다르거나 믿지.. 2022. 6. 24.
시간이 신이었을까 시간이 신이었을까? / 박완서 ​감기에 걸려 외출을 삼가고 있던 중 교외로 바람이나 쐬러 가자는 K교수의 유혹에 솔깃해진 건 아마도 감기가 어느 정도 물러갔다는 징조일 것이다. 나는 K교수가 손수 운전하는 차가 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목적지를 묻지 않았다. 열두 시를 바라보는 시간에 집을 떠났으니 바람을 쐬러 가자는 말속에는 점심도 같이하자는 뜻도 포함돼 있음직했다. 집에서 한강을 끼고 양수리 쪽으로 가는 길은 경치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괜찮은 음식점 찾기도 어렵지 않았다. K교수는 처음부터 목적한 데가 있는 듯 나한테 어디로 갈까 의논하지 않고 곧장 달렸다. 차가 능내에서 마재 마을로 꺾일 때 비로소 나는 가슴이 좀 울렁거렸다. 그 마을에는 정약용 생가랑 기념관 등 의미 있는 볼거리도 많고 경치도 좋아.. 2022. 6. 24.
영상 매체 시대의 책 영상 매체 시대의 책 박 이 문(朴異文) 20세기 전후(前後)문명의 가장 확실한 특징의 하나는 정보 매체의 혁신으로 기록될 것이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보 매체는 주로 책으로 대표되는 인쇄물이었고,정보는 표현 수단인 문자의 해독이라는 양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그러나 오늘날에는 책으로 대표되는 인쇄 매체를 텔레비전,인터넷 등과 같은 전자 매체가 대신해 가고,정보 교환은 문자적 기호의 개념적 의미 해석이 아니라 영상적 이미지의 감각적 접촉이라는 양식을 차츰 더 띠게 되었다.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틀림없이 가속화될 것이다. 현재 텔레비전,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영상 매체와 컴퓨터 통신 매체의 급속한 발달 및 보급과 병행하여 고전적 정보 매체인 책의 발간도 양적으로 엄청난 증가를 보이고 있지만,전자에 비해 후자의 역.. 2022.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