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필4137 71. 밀어내기와 끌어안기 밀어내기와 끌어안기/ 이향아 1.벌집 이야기 새로 이사한 아파트는 일층이다. 일층이라서 불편한 점이 없을까 걱정했지만, 살아보니 좋은 점이 더 많다. 무엇보다도 앞뒤 뜰의 수목들을 내 집 정원처럼 즐길 수 있는 게 좋다. 단풍나무, 모과나무, 백일홍나무, 산수유, 전나무, 은행나무, 덩굴장미, 사철나무... 이들을 앞뒤로 거느리는 내 마음은 평화롭고 윤택하였다. 그런데 한 가지 성가신 것은 벌 떼들이 자꾸만 꾀어드는 점이었다. 꽃들도 져버리고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데 특히 서재의 남쪽 문을 열었다 하면 벌떼들이 윙윙거리며 나를 겁에 질리게 하였다. 그들은 마치 출격 명령을 받은 병사처럼 와와 함성을 지르며 돌격했던 것이다. 바로 사흘 전 휴일이었다. 베란다에서 빨래를 걷고 있는데, 벌들이 프로펠러 소리를 .. 2022. 2. 26. 70. 목욕탕집 할머니 목욕탕집 할머니/ 지연희 길 하나만 건너면 대중목욕탕이 보인다. 어느 땐 내가 내 집 창밖으로 목욕을 하기 위해 왕래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어느 땐 목욕탕 주인이 조그마한 유리창 밖으로 우리 집 현관에 출입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중에 양쪽 집 사람들은 시시각각 상대성 관심사가 되어 진다. 가끔씩 외출을 하기 위해 현관을 나설 때에도 나는 목욕탕 집 출입구 쪽으로 시선을 보낸다. 은연중에 나의 외출을 알리려 하는 행위와도 같다. 그쪽에서 바라보는 이쪽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내가 목욕탕 쪽으로 관심을 보이는 대상은 어느 하루도 모습을 감추지 않는 그 댁의 주인 할머니의 출입이다. 조그마한 체구의 앙상히 뼈마디가 드러난 체형의 할머니는 매우 부지런한 분이었다. 몇 개월 전만.. 2022. 2. 26. 69. 마중물 마중물/ 정여송 여기 있었네그려. 이런 산골로 들어오니 만날 수 있구먼. 얼마만인가, 근 사십년만이 아니가 싶네. 그러고 보니 우린 죽마고우일세. 내가 초등학교라는 데를 막 들어갔을 때 말이야. 그 시절에 자네는 신식이란 바람을 몰고 왔어. 어린 눈으로 처음 봤을 때 괴물이라고 생각했었지. 사람 형상을 했으면서도 머리가 없었고, 반기듯 양팔은 벌렸지만 짝짝이 팔을 가졌고, 한 다리로 서 있는 것이 볼썽사나웠다네. 야트막한 판자 지붕 밑에 혼자 있는 모습은 왜 그리도 측은해 보이던지. 선생님이 자네를 가리키며 “펌프우물” 하던 생각이 생생하구먼. 차츰, 여느 동네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되었지. 자네는 젊은 아낙이었던 우리 어머니들의 물 긷는 고충을 덜어주었어. 퍽 좋아들 하셨다네. 마음은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2022. 2. 26. 68. 등을 밀고 가는 것은 등을 밀고 가는 것은/ 정태헌 빨간 신호등 앞에서 차를 멈추고 있습니다. 건널목을 건너는 무리 속에 노인네가 섞여 있습니다. 초로의 노인네는 손수레를 힘겹게 밀며 건넙니다. 수레에는 폐휴지가 가득 쌓여 있고요. 노인네의 등은 구부정하지만 다행히도 아직은 견딜만해 보입니다. 그동안 그 등을 달구고 식히며 담금질한 것은 지난한 세월이었을 테지요. 삶의 등을 밀고 가는 것은 무엇일까요. 수레를 밀고 가는 이는 노인네지만 그의 등을 밀고 가는 것은 또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등을 밀며 영혼을 다독이는 것은 안락과 기쁨일까요, 고통과 슬픔일까요. 노인네의 등을 바라보다가 그 초로의 부부가 떠올랐습니다. 얼마 전, 일이 있어 서울 가는 길이었습니다. 두어 시간 달리다가 고속도로 상행선 휴게소에서 버스는 잠시 멈췄.. 2022. 2. 26. 이전 1 ··· 15 16 17 18 19 20 21 ··· 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