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필4137 67. 대금산조 대금 산조/ 정목일 1. 한밤중 은하(銀河)가 흘러간다. 이 땅에 흘러내리는 실개천아. 하얀 모래밭과 푸른 물기 도는 대밭을 곁에 두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아. 흘러가라. 끝도 한도 없이 흘러가라. 흐를수록 맑고 바다도 모를 깊이로 시공(時空)을 적셔가거라. 그냥 대나무로 만든 악기가 아니다. 영혼의 뼈마디 한 부분을 뚝 떼어내 만든 그리움의 악기…. 가슴속에 숨겨둔 그리움 덩이가 한(恨)이 되어 엉켜 있다가 눈 녹듯 녹아서 실개천처럼 흐르고 있다. 눈물로 한을 씻어내는 소리, 이제 어디든 막힘 없이 다가가 한마음이 되는 해후의 소리…. 한 번만이라도 마음껏 불러보고 싶은 사람아. 마음에 맺혀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아. 고요로 흘러가거라. 그곳이 영원의 길목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깊고 아득한 소리, 영혼의.. 2022. 2. 16. 66. 당신의 의자 당신의 의자/ 이정림 우리 집에는 의자가 많다. 혼자 앉는 의자, 둘이 앉는 벤치, 셋이 앉는 소파…. 언제부터 우리 집에 그렇게 의자가 많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다. 분명 소용이 있어서 사들였을 텐데, 정작 우리 집에는 한 개만 있으면 족하지 않던가. 사람들이 몰려오는 날이면 그것도 모자라 바닥에 내려앉아야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을 때는 그 비어 있는 의자들이 하품을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 모습이 안돼 보여, 심심한 촌로 뒷짐 지고 마을 가듯, 이 의자 저 의자에 가서 그냥 등 기대고 앉아 본다. 의자의 사명은 누구를 앉히는 것이다. 아무도 앉지 않은 의자는 그냥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비어 있는 의자에 앉힐 사람들을 돌려가며 초대를 해 보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그리워.. 2022. 2. 14. 65. 담쟁이의 덩굴손 담쟁이의 덩굴손/ 홍미숙 담쟁이가 덩굴손을 앙증맞게 한 뼘 한 뼘 뻗어가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담쟁이는 여름에 가장 많은 그림을 그린다. 담쟁이만한 화가도 드물다. 한 화폭에 수십 년 이상 그리기도 한다. 끈기가 대단한 화가다. 그림을 화폭에 가득 그리고 나면, 그 위에 덧칠기법을 살려 그럴듯하게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담쟁이가 좋아하는 화폭은 담이다. 벽이 으뜸이다. 담쟁이는 평생 동안 묵묵히 그림만 그려나간다. 다른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일편단심 그림 그리는 것에만 열중이다. 봄부터 여름까지는 초록 물감만 풀어 칠을 해 나간다. 그러다가 가을이 오면 형형색색의 물감을 풀어 놓는다. 가을이 담쟁이가 그림 솜씨를 최고로 발휘할 수 있는 계절이다. 겨울이 다가와 잎이 다 떨어지면 민그림을 볼 수 .. 2022. 2. 14. 63. 국향 국향/ 정주환 홀로 앉아 송엽차(松葉茶)를 마시며 굽어보는 상국이 청아롭다. 활짝 열어 놓은 서창(書窓)으로 바람결 따라 흘러드는 향기가 벅차서 들었던 찻잔을 자주 내려놓곤 한다. 여유 있는 삶을 충분히 누리기 위하여 세평 남짓한 뜨락에 국화(菊花)를 가득 채운 지 오래요, 그 아름다운 숙기(淑氣)에 끌려 허물없는 가우(佳友)로 사귄 지 수삼 년이다. 지금 하많은 하루의 번뇌 속에서 그래도 세속에 초월하면서 안주(安住) 할 수 있는 시간이요, 때 묻은 마음을 손질하면서 내일을 바라볼 수 있는 옹글찬 순간이다. 버려진 자갈땅 척박한 황토벌이라도 국화는 햇볕만 있으면 무륵이 자라서 문득 서리 찬 하루아침에 탐스러운 꽃송이를 암팡지게 피어낸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 2022. 2. 14.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 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