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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4137

54.칡 멜빵 칡 멜빵/ 신재기 부모가 더러 자식한테 호되게 야단을 치거나 매를 들 때가 있다. 그러고 난 다음 대부분 자신의 언행에 대해 후회한다. 남매를 둔 나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아이들을 야단칠 때마다 성격이 급해서 그런지 늘 감정이 앞선다. 그러고서는 아이에게 왜 그런 말을 함부로 했을까, 그만 참을 걸, 아이가 마음에 상처를 받지는 않았을까,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가 있다. 초등학교 육학년 때다. 그때 내 고집이 나 자신도 놀라울 정도였다. 나는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부모님은 인내심을 발휘하여 며칠 전부터 열네 살짜리 막내아들을 설득했다. 나는 당시 고향에서 백 리나 떨어진 지방도시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원서를 내어놓고 있었다.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 2022. 2. 14.
53. 청산에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김진식 내 앞에 손님이 한 분 나타났다. 속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깨끗하면서도 기품이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익은 얼굴이었지만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귀한 분이 찾아 왔구나’ 하고 서재로 안내했다. 그는 내게 가벼운 묵념을 하고 자기 소개를 했다. 청산 백운동에서 띠집을 짓고 사는 모생(茅生)이라면서 연분이 있어 거사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청산 백운동이 어디 있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 그는 학 같은 몸짓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에는 푸른 산이 솟아 있고, 흰 구름이 산허리를 갑고 있었다. 이럴 수가 있나 하고 그의 손을 잡으려 했을 때 정신이 들었다. 그것은 꿈이었다. 강원도 정선군 사북면 정암사 가는 길에 일박한 허름한 여인숙에서였다. 무엇인가 예지하는 꿈인 것 같아.. 2022. 2. 14.
52. 지귀를 위한 독백 지귀를 위한 독백/ 이귀복 대릉원의 겨울은 적막했다. 바람이 불자 늙은 소나무는 마른 솔방울 두 개를 떨어뜨렸다. 나는 걸음을 멈춘 채 그 솔방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심하게 떨어지는 솔방울이라도 신라의 것이라면 의미가 다르게 느껴진다. 하필이면 왜 지금인가. 천년의 시간을 견디어 겨우 솔방울로 맺어진 사랑 하나가 그렇게 나를 기다렸던 것일까. 그냥 돌아서기엔 마음이 아려 솔방울 두 개를 천천히 주워들었다. 거칠지만 따뜻한 솔방울의 감촉. 긴 세월동안 품어온 사랑을 더는 어쩔 수 없었던지 솔방울의 마른 비늘 사이로 슬픔이 배어난다. 솔방울 두 개를 주머니에 넣고 대릉원 안뜰로 들어서니 옛무덤들은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평화로웠다. 불현듯 나도 아무 무덤이나 한 자락 베고 세상사 모두 잊고 낮잠이나 들.. 2022. 2. 14.
51. 아름다운 불륜 2022.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