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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4137

50. 줄의 운명 줄의 운명/ 오정순 창조주의 ‘말씀’으로 태어난 아담과 하와는 울지 않았지만 탯줄을 끊고 나오는 아이는 울며 태어난다. 인류의 어머니라 해서 하와라 불렀으며,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하와의 죄명은 ‘책임 전가’였다. ‘뱀에게 속아서 따먹었습니다.’ 라는 말 한마디로 잃어버린 낙원은 자궁의 형태로 남게 된다. 그 잃어버린 낙원을 찾고 싶은 본능이 예술로 승화되는 것일까. 오래 전, 덕수궁에서 열린 국제 미전 전시장은 누운 여자 나신상의 입체 조형물로 꾸며졌다. 자궁 안으로 줄지어 들어가는 관람객들은 낯 뜨거워 할 틈도 없이 흡수되었다. 줄지어 들어가는 그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고생스럽게 태어난 아기는 자궁으로부터 쫓겨났다고 생각하면 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낙원으로부터 추방당하여 탯줄이 끊기고, 세상에.. 2022. 2. 10.
49. 조선족과 고려인 조선족과 고려인/ 김학 ‘조선족과 고려인’은 다 같은 우리네 해외동포들이다. 그런데 중국에 보금자리를 튼 동포들은 자신들을 ‘조선족’이라 부르고 옛 소련 땅에 터를 잡은 동포들은 자신들을 ‘고려인’이라 한다. ‘조선족’이나 ‘고려인’은 대개 비슷한 연유로 해외동포들이다. 조선조 말이나 일제 때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혹은 일본의 핍박이 싫어서 떠난 동포들이다. 중국과 소련은 국경을 마주한 이웃 나라다. 그런데 중국으로 간 동포들은 자신들을 ‘조선족’이라 하고 소련 땅으로 간 동포들은 ‘고려인’이라 한다. 그렇다고 소련에 사는 우리 동포들이 고려시대에 이주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고려인’이라 했을까. 어떤 이는 ‘고려인’이라 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 국명의 외국 표기가 ‘KOREA’이기 때문에 ‘고려인’.. 2022. 2. 10.
48. 조계사 앞뜰 조계사 앞뜰/ 박재식 내가 일을 보는 사무실은 번화가에 있는 고층건물 6층이다. 그러므로 내가 앉은 자리에서 노상 바라보이는 것은 높고 낮은 빌딩의 숲이 끝없이 번져나간 도심의 살벌한 풍경이지만, 바로 창 아래에 조계사(曺溪寺)를 내려다볼 수 있는 아취 때문에 하루 낮을 보내는 마음이 한결 쇄락하다. 일을 하다가 문득 지친 눈을 창밖으로 돌리면, 우람한 대웅전의 푸른 기와지붕이 선뜻 시야에 와 닿으며 시원한 그늘을 지어준다. 항시 문이 닫힌 솟을대문에 수문장을 그려놓은 단청 빛깔도 그러하거니와, 절의 이쪽 경계를 막아 높다랗게 둘러친 고풍한 돌담이 제법 고궁(古宮)의 뒤안 같은 호젓한 옛 정취를 자아준다. 도회의 한가운데서 잠시나마 이런 멋스러운 분위기에 젖어본다는 것이 얼마나 희안하고 흐뭇한 일인지 모.. 2022. 2. 10.
47. 장미 타다 장미 타다/ 김정화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바깥세상이 문을 닫는다. 복도를 지날수록 배에 올랐을 때처럼 허공을 딛는 느낌이 차오른다. 형광 불빛에 비친 흰색 벽이 투명하리만큼 정갈한 이곳에서는 육신마저 고요해진다. 노인요양병원은 도심 속의 섬이다. 그곳에 살고 있는 환자들은 섬 위로 떠밀려온 낡은 배처럼 움직일 줄 모른다. 조는 듯 가물대는 신세가 어쩔 수 없어 차라리 닻을 내리고 송판 하나까지 모두 거두고 싶지만 생각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다. 그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사는 건 주어진 시간을 송두리째 태우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나는 가끔 미완의 생에 멈춘 그를 만나러 간다. 노인요양병원 204호실이 그가 머물고 있는 곳이다. 삼십 대에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된 후 이십 년째 병원을 옮겨가며 투병중.. 2022.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