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필4137 41. 육필원고 육필원고(肉筆原稿) 김선화 모 대학 도서관측으로부터 육필원고 청탁을 받았다. 육필원고가 줄어드는 시대니 만큼 학교도서관에 소장하고 자료로 삼겠다는 내용이다. 그렇긴 한데 나이도 아직 새파랗고, 문단에서도 신출내기나 다름없는 내게 가당치도 않은 것 같아 선뜻 응하지 못하고 있다. ‘육필원고’ 하면 그 첫인상부터가 제법 묵직하다. 육필이란 말 자체에서 이미, 범상치 못할 어떤 힘이 느껴지는 것이다. 문예적으로 보나 인품으로 보나, 남이 본받을 만한 어른들에게나 품위 있게 육필원고를 대하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뛴다. 원고지 칸칸을 매운 필적에서 필자의 체취를 느끼기도 하고, 평소 존경하는 분들의 서가를 엿보는 듯한 재미도 맛본다. 하지만 친근감에 빠져드는 것도 잠시이고, 한 자 한 자 이어나간 필체를 통해 글.. 2022. 2. 10. 40. 연어 연어 문혜영 연어였다. 금방이라도 펄떡 살아 움직일 것만 같은데, 내 종아리보다도 길고 튼실해 보이는 몸을 다 펴지도 못하고 작은 아이스박스 속에 J자로 누워 있다. 항복의 몸짓으로 은색의 배를 내보이고 있지만, 투지로 퍼렇게 굳은 등허리에선 언제라도 구부려진 꼬리로 바닥을 탁~ 치고 튀어 오를 것 같은 저항이 느껴진다. 평소 난 아주 작은 것들의 숨결에서 종종 감명을 받곤 했다. 산속을 거닐다 풀숲의 작은 꽃을 보거나, 포르릉 날아가는 작은 새의 날갯짓 등을 보면, 보일 듯 말 듯 한 생명들로 이 세상이 경이로움에 가득 한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큰 숨결로 살아가는 것들이 주는 생명의 기운은 작은 숨결에서 받는 경이로움과는 다르게 나를 압도한다. 어림잡아도 60센티는 훨~씬 넘을 듯했다. 이미 숨결.. 2022. 2. 10. 39. 연꽃 필 때 들리는 소리 연꽃 필 때 들리는 소리/구 활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의 위에 있다’는 말은 맞는 말인가. 불가에서 흔히 말하는 이 말은 참말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선문답이나 화두 같기도 한 ‘보임’과 ‘안보임’의 문제는 오랜 수행을 거치지 않으면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 현상을 중시 한다면 보이는 것이 우선이지만 정신을 소중히 생각한다면 보이지 않는 것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은 어느 것이 우위에 있을까. 사람의 몸이 일천 냥이라면 눈이 팔백 냥쯤 된다고 한다. 보이는 것이 단연 으뜸일 수 있다. 그렇다고 눈이 소리를 감지하는 귀를 깔보면 안 된다. 태초에도 소리가 빛을 불러와 낮과 밤을 구분했다고 창세기 서두에 소상하게 씌어져 있다. 눈은 안.. 2022. 2. 9. 38. 여체 여체(女體)/ 도창회 조물주가 인간의 몸을 지을 때 아무렇게나 짓지 않았다는 지배적인 견해인 같다. 나도 같은 생각이지만 아무려나 그 쓰임새에 따라 매우 조화롭게 지었는가 싶기도 하다. 일찍이 어떤 시인은 인간의 육체를 소우주에 비겼다. 어떤 생각에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옛 그리스의 천문인 푸톨레미는 우주는 분명 질서가 있고, 우주 안에 있는 만물들은 모름지기 모두 질서 있게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런 소릴 내가 믿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단순한 몸뚱어리를 소우주라고 보고서 찬찬히 각 부위를 뜯어보면 신기하기가 이를 데 없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그 특색이 있겠지만, 그러나 대체로 여자의 육체는 남자보다는 더 아름답게 지어졌다는 게 통설이다. 그림 속의 나부(裸婦)를 가만히 지켜보면 나는 어느새.. 2022. 2. 9. 이전 1 ··· 22 23 24 25 26 27 28 ··· 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