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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4137

46. 작은 상자, 큰 상자 작은 상자, 큰 상자/ 염정임 강변으로 길을 달리다 보면 길가에 열을 지어 서있는 높은 아파트들을 볼 수 있다. 집집마다 작은 창을 허물고 큰창으로 만들어서 예쁜 커튼들을 걸어 놓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강변 풍경을 즐기려고 창을 넓힌 모양이다. 아마 까마득한 옛날에 우리의 조상들은 이 강변에 움집들을 짓고 살았을 것이다. 나무로 불을 피우고 흙으로 그릇을 구우며 평화롭게 살았으리라. 아마도 그들은 이 강변에 자동차들이 다니고, 높은 아파트들이 서 있는 세상이 오리라는 것을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아파트들은 마치 시멘트 상자를 차곡차곡 포갠 것 같아 보인다. 이 허공에 떠 있는 상자가 우리들의 보금자리인 것이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흙과 가까이 하고 싶어서 화분에 꽃을 심어 가꾼다. 어떤 집은 조그만.. 2022. 2. 10.
45. 자라지 않는 아이들 자라지 않는 아이들/ 우희정 밤새 들길을 바삐 걸었다. 끊임없이 발길을 재촉했지만 갈 길이 좁혀지지 않아 조급했다. 걸어도 걸어도 길은 멀었다. 등에 업은 아이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걸린 아이의 잡은 손을 놓칠까봐 조바심이 쳐졌다. 온몸에 땀이 배었다. 애를 쓰다 깨어 보면 꿈이었다. 이루지 못한 꿈이 많은 탓일까? 나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꿈을 꾼다. 대부분의 경우 토막꿈을 꾸지만 어떤 날은 선명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어 꿈을 깨고 나서도 현실감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예민한 신경 때문일 것이다. 쉽게 잠들지 못하고 그나마 살풋 잠이 들면 금세 파노라마처럼 꿈이 펼쳐지는 것은, 그중 가장 빈번한 장면이 업고 걸린 두 아이의 허둥대는 내 모습이다. 딸과 아들이 다 장성했건만 꿈속에서는 아직도 자.. 2022. 2. 10.
43. 자고 가래이 자고 가래이/박양근 그날은 당일로 돌아올 기차표를 끊지 않았다. 큰집에 갈 때면 늘 당일치기로 돌아오곤 했고 제삿날에는 늦은 밤차를 타고 내려왔다. 다음 날의 출근이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특별한 일이 늘 가로막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고 와야겠다고 내심 작정했다. 부산으로 내려온 지 어언 스무 해가 넘는다. 그동안 가족 사정도 많이 바뀌었다. 형제들은 하나 둘 분가를 하였고, 무엇보다 집안 대주가 수를 다하면서 집안이 휑하니 빈 듯해져 버렸다. 당연히 어머니 혼자 집을 지키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직은 나다닐 정도여서 자식들에게 의탁하지 않아 마음 편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가족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명절의 소동을 묵묵히 지켜보고 계신다. 어릴 때의 일이다. 당시 .. 2022. 2. 10.
42.음음음음 음음음 음음음음 음음음 ​ 오차숙 내가 노래하는 무대에는 조명등이 희미해 생명의 싹이 움트지 않소 꽹과리를 두드리고 장구를 내리쳐도 푸른 감흥이 일어나질 않소 영혼의 날개마저 거세당한 탓인지 관객의 깊은 환호성과 무대의 퀭한 종소리도 오래도록 들리지 않소 버선발로 뛰쳐나가 뱅그르르르 뒹굴어 볼까 하얀 적삼 걸치고 나가 관객석을 배회해 볼까 음음음음 음음음 음음음음 음음음 생生은 한 판 춤사위로세 뭐여라 그으래 어디선가 맑은 종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오 생은 한 판 그래픽 소설이라고 생은 한 판 춤사위라고 한 판의 춤사위는 천 개의 단어를 조립한 말장난보다 느낌을 줄 때가 때로는 있다오 남사당패들의 외줄타기 외로움처럼 아슬아슬하게 마음의 행로를 걸어가더라도 호오 탕한 춤사위는 삶을 지탱시켜 주는 이유가 되거든 음음음.. 2022.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