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필4137 33. 아름다운 강북 아름다운 강북/ 백임현 도봉산 근처에서 산 세월이 어언 40년이다. 정릉에서 처음 살림을 시작해 지금까지 열 번이 넘는 이사를 다녔지만 언제나 미아리, 창동, 중계동 등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이라고 도봉산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이곳은 이제 우리 집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남편은 평생 동안 직장생활을 이 부근에서 하였고 아이들도 이곳에서 태어나 어른이 되었으므로 곳곳에 유년이 깃들어 있다. 지금도 미아리 언덕길을 지나노라면 빨간 신발주머니를 들고 “엄마 오늘 한 번 잘해 볼게” 하면서 비탈길을 신나게 달려가던 아이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나는 외지에 나갔다가도 멀리 도봉산이 보이면 마음이 놓이고 편안해진다. 고향이 가깝고 산이 가까워 그럭저럭 정들여 살다보니 저절로 평생 연고지가 되었다. 이곳은.. 2022. 2. 9. 32. 신이 되던 날 신(神)이 되던 날 - 김시헌 지구의 껍질을 걷는다. 이리저리 나 있는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 나는 더위를 무릅쓰고 기어이 걷는다. 앞에서 신호등이 가로막는다. 수많은 차량이 두 눈을 부릅뜨고 속도껏 달린다. 벼룩처럼 몸이 가벼운 놈, 공작처럼 뒷몸이 길쭉한 놈, 곰처럼 둔하게 생긴 놈, 차는 동물의 모양을 닮았다. 전등은 두 눈을 닮았고, 지붕은 등을 닮았고, 내 바퀴는 다리와 발을 닮았다. 땅 위를 달리자면 땅 위를 기고 걷는 동물을 닮아야 잘 움직여질 수 있다. 파란 신호등이 내려지자 나는 걷기 시작한다. 차들이 좌우에 멈추어 서서 나를 지켜본다. 어서 건너가라고 독촉을 하는 표정이다. 어떤 사람은 너무 서둘러서 걷는다. 신호등이 깜박깜박 움직이고 있으니 마음이 바빠지는 모양이다. 그러나 서울시청.. 2022. 2. 6. 31. 신록의 노래 신록의 노래/ 서숙 천년을 기다려 꽃으로 피어났을 것입니다. 또다시 천년의 세월을 더하여 그 빛깔과 그 모습에 어울리는 향기를 지니게 되었을 것입니다. 한 방울의 물과 한 웅큼의 햇빛으로 빚어낸 기적, 날마다 기적입니다. 연하고 연한 순하고 순한 그대 꽃봉오리의 기적을 본받아 나도 나의 기적을 짓습니다. 나도 한 방울의 물과 한 줌의 햇빛으로 연하고 연한 순하고 순한 새 움을 터 신록으로 세상을 맞습니다. 오랜 세월의 원(願)을 새겨 얻은 귀한 모습이어서 일까요. 당신은 너무나 보드랍고 가냘파서 미풍에도 견디지 못할 것 같군요. 그대가 행여 다칠까봐 조심조심 감싸고 싶은데 가까이 가지 못하겠습니다. 그대 섬세한 살갗은 가볍게 스치기만 하여도 멍이 들고 살짝 닿기만 하여도 상처를 입을 테니까요. 그대를 지.. 2022. 2. 6. 30. 시간 속 인연 시간 속의 인연/ 박명순 하루가 시작되면 먼저 시간과의 만남이 열린다. 오늘이라는 새로운 시간이 다가와 함께 움직여 준다. 어제와 다름없는 같은 공간에서 시작되는 오늘이지만 지금은 분명 새 아침이 온 것이다. 창문을 열면 맑은 공기가 빠르게 곁으로 와서 상쾌함을 더해 준다. 하루가 시작되는 뉴스를 들으며 신문 기사를 읽는다. 밝은 햇살을 받으며,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 것에 감사한다. 거리로 나오면 바람이 몰고 오는 산뜻한 냄새와 반짝이는 잎들의 속삭임을 듣는다. 때로는 대기의 오염 속에 물든 뿌연 하늘이 나를 바라보지만, 그것은 이미 친숙해진 어제의 친구이며 내일의 손님이 되어 다시 찾아올 것이다.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서늘한 빗줄기가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창밖으로 보이는 빗속에서 우산.. 2022. 2. 6. 이전 1 ··· 24 25 26 27 28 29 30 ··· 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