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시민사회운동 새로운 미래는 (2023기획특집 월간중앙)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미래는 있는가1- 2

by 자한형 2023. 8. 31.
728x90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미래는 있는가 1-2/ 임현진 공석기.

둘째, 시민사회운동의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인정해야 한다. 시민사회운동 조직, NGO, NPO는 공존하면서 서로 견제하고, 갈등하고, 협력하고, 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부 수탁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기존 단체 산하에 별개의 법인을 만들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단체는 내부적으로 정체성 혼선을 초래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조직을 법인으로 새롭게 전환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이 타당한 대응이다. 다만 법인으로 전환했다고 해서 정부정책사업 수행만을 고려해 운동성을 약화시키는 전략적 변화를 추구한다면 바로 이 부분을 자성해야 한다. 이처럼 정부 정책 수행자로의 쏠림현상이 시민사회운동 영역에도 일어난 것이다. 불평등, 정의, 공정, 돌봄, 기후위기, 에너지 전환, 소수자 권리 등의 문제를 과연 사회운동이 아닌 공익활동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가 정책적 공간 안에서 제대로 수용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가 존재한다. 운동성의 회복이 필요한 상황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시민사회운동은 제도화의 길에 너무나 빠르게 들어섰다. 운동성 측면에서 시민사회운동은 분명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시민사회운동의 건강성과 역동성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운동성이다. 시민사회운동의 성과로서 협치 공간을 마련한 것은 분명한 성과다. 그러나 협치 공간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을 정도로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정치기회구조가 매우 취약하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의 리더십 변화에 따라 시민사회운동은 정치 기회구조의 급격한 축소에 직면했다. 10년 가까이 추진해온 풀뿌리 주도의 사회혁신 사업, 즉 마을, 청년, 도시재생, 에너지 전환 관련 사업이 하루아침에 지속가능성을 상실하게 됐다.

셋째, 운동성의 상실은 지식인의 결합과 이탈이라는 측면과도 관련 있다. 지식인의 결합이 급격히 저하된 것은 2000년대부터다. 학자나 전문가들이 운동성을 견지하는 시민사회운동과 일정 거리를 두면서 정부와 기업에 정책적 자문협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식인이 견지한 과거의 운동성은 급격히 상실됐다. 과거 지식인이 시민사회운동의 든든한 후원자요, 지식공동체로 사회이슈에 대한 비판적 해석과 프레임을 제공하던 역할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지식인 스스로 운동성을 견지하는 데 치열하게 고민하기보다 협치, 정책 자문의 중립적 역할로 자신의 정체성 갈등을 해결한 것이다. 과거 시민사회단체에 참여했던 교수들도 이제는 시민사회 단체보다는 정부나 기업에 학생들을 인턴으로 보내고 있다. 시민사회운동 단체는 청소년, 대학생 그리고 청년과의 접촉면이 약화되고 있다. 시민사회운동은 이러한 지식인의 이탈에 실망하고 그들과의 연대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지 않고 있다.

협치와 시너지로 전문화 극복해야

지역 사회 청년들이 조깅하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을 하고 있다. 최근 기후위기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진 청소년들이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온·오프라인 운동에 참여하는 일이 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넷째, 운동성이 약화된 또 다른 원인은 시민사회운동의 다양화 및 전문화 과정에서 분절, 분리 및 분화로 이어진 데서 찾을 수 있다. 시민사회운동, 소비자, 사회적 경제, 도시재생, 마을공동체, 자원봉사 영역이 빈번하게 만나서 협력의 틀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이미 스스로 안정적인 지원 생태계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원 구조는 성과를 요구하기에 성과를 내려면 경계 안에 어쩔 수 없이 머물게 된다. 그러면 더는 경계를 넘어서는 창조적 파괴와 연대를 시도하지 않게 된다.

시민사회운동의 창조와 혁신은 바로 운동성에 기초한 도전과 갈등을 통한 변화에서 비롯된다. 자원봉사 영역은 새로운 참여자로 젊은 세대에게 적극적으로 호소하고자 그들의 감성과 취향에 맞춘 사업과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구조적 문제와 본질에 도전하고 저항하는 운동성을 견지하기 어렵다. 시민사회운동의 건강성과 역동성을 제공하는 자양분은 젊은 세대의 헌신적 참여를 통한 가치관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곳에서 찾아야 한다. 다양화되고 전문화되면서 동시에 운동성이 강화되기보다 약화되고 있다면, 운동의 분화가 동시에 운동의 수렴으로 순환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알고리즘 지배에 대한 저항 절실

현재 한국 시민사회운동이 저항성과 운동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단언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저항성을 어떻게 시너지를 발휘하며 시민사회 연대의 힘으로 연결할 수 있는가이다. 협치와 운동을 사안별로 언제든지 전략적으로 구사할 수 있고, 동시에 연대운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사회적 경제 영역이 매우 활성화돼 있는 이탈리아 경험을 참고하자. 개별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시장에서의 경쟁우위를 확보하고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시에 사회적 가치에 반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모두가 협력체를 만들어 연대운동으로 저항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사회적 경제 영역, 자원봉사 영역, 마을공동체 영역은 이미 협치의 틀 안에서 안주하고 있지 않은가? 정부나 기업이 시민사회의 가치와 충돌하는 사업과 정책을 추진할 때 강한 연대의 목소리를 모아내고 있는가? ‘협치를 선택하는 순간 운동성은 사라진다는 착각에서 하루속히 벗어나야 한다.

지난 30년의 한국 시민사회운동이 걸어온 제도화의 길, 즉 협치 과정을 좀 냉철하게 성찰할 때다. 시민사회운동은 정부나 국회 모두 파트너십 차원에서 볼 때 홀대받고 있다. 기업과 노동현장도 마찬가지다. 연대의 방식으로 운동성이 강화되지 못한 결과다. 동시에 디지털 혁명, 그리고 인터넷 발전으로 모든 경제활동이 이제는 플랫폼 경제로 수렴되고 있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자는 물론 소비자도 보이지 않는 통제와 종속의 과정을 겪고 있다. 이른바 인공지능에 기반을 둔 알고리즘 지배(algocracy)에 대한 저항, 운동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분절화되고 파편화된 시민사회운동은 운동성을 잃고 저항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그러나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 지배는 시민사회운동의 독립성, 주체성, 자율성, 감시 활동을 무용지물로 전락시킬 정도로 위협적이다.

시민사회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구조적인 문제 해결과 의식의 변화, 즉 시민성을 갖춘 능동적 시민이 지속적으로 형성되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최근의 기후위기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진 청소년들이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온·오프라인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 기억이 대학 시절에 지속적인 사회운동 참여로 이어지지 못하고 한때의 추억으로 머물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점증하는 기후위기를 마주한 청소년이 찾는 곳이 줍기 캠페인에 자족하는 환경 동아리가 아니라 운동성을 견지한 시민사회운동 단체가 돼야 한다.

 임현진 - 서울대 명예교수이며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다.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저서로 [전환기 한국의 정치와 사회: 지식, 권력, 운동], [비교시각에서 본 박정희 발전모델: 라틴아메리카의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칠레와 아시아의 한국] 등이 있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창립소장이며 경실련 공동대표를 지냈다.

 공석기 -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관심 분야는 정치사회학, 사회운동론, 시민사회론, 사회적 경제 등이다. 주요 연구 저서로 [글로벌 NGOs: 세계정치의 와일드 카드], [뒤틀린 세계화: 한국의 대안 찾기]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경희대 공공대학원 겸임교수, 환경운동연합 국제협력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