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대수필 631

백내장 백내장/ 날 다람쥐 정기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동공에 흐릿한 물체가 보인다며 안과에서 정밀검사를 받으라는 결과와 마주했다. 30~40대와 다르게 재검의 횟수와 종합소견의 글자수가 점점 늘어난다. 요즘 눈이 많이 건조하고 피곤하다는 걸 새삼 기억되었다. 긍정반 걱정반의 마음을 가지고 안과 전문병원을 방문하였다. 진료 접수를 하고 시력과 안압과 동공사진 등 몇 가지의 검사를 하고 기다렸다. 전문병원이라 시설도 100평이 넘어 보이는 대규모이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수도 20명 이상이고 이방저방에는 최신 검사장비들이 가득하다. 수술을 하셨는지 한쪽 눈을 붕대로 감은 분도 진료를 기다리고 계시고, 상담이나 간단한 치료를 하러 오신 분도 있어 보인다. 병원이 기업이라고 하더니 정말 중소기업체처럼 보인다. 간호사가 .. 2024. 4. 5.
서창 서창書窓 / 윤미영 굵은 나무들 사이로 드러난 단층 건물이 나직하다. 1938년에 첫 기적을 울린 후 역사驛舍는 지금껏 변함없이 부동으로 서 있다. 역 이름은 80여 년 세월을 이겨낸 ‘화본花本’이다. 마치 이야기 꽃나무 같다. 역명답게 갖가지 화초를 사철동안 피워내면서 여행자를 푸근하게 맞아준다. 바람처럼 스치는 여행자에게 화본花本은 왜 ‘꽃의 근본, 꽃의 중심’이란 의미를 생각하게 할까. 화본역은 군위군에서 여객열차가 유일하게 정차한다. 하루 평균 이용객이 20~30여 명 남짓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2011년에 새롭게 단장하면서 여행자들이 부쩍 찾아온다. 큰길 쪽으로는 마을 사람들의 옛 모습, 신화와 전설, 삼국유사를 주제로 한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철길 옆 폐기.. 2024. 4. 5.
색깔있는 그림자 색깔있는 그림자 / 유혜자 30여 년 전 해외여행 때, 한밤중에 잠이 깨어 있어났다가 내 그림자에 놀란 일이 있었다. 흐릿한 수면등 뒤에서 시커먼 그림자는 방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생각했다. 마음속에 숨겨둔 어두운 비밀이라도 있는 것일까. 나는 태연한 척하면서도 마음의 그림자를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인간의 성숙이 완성되는 것과 해가 가장 높이 뜨는 정오에 같은 의미를 둘 수가 있을까. 행복으로 말하자면 좋아하는 대상에 도취될 때 너와 내가 하나가 될 때 행복할 것이다. 그때 그림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은 가슴속에 간직하게 되기 때문에 그 그림자가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하고 그가 불행하면 나도 서글프다. 그가 가는 곳에 나도 동행하게 .. 2024. 3. 15.
나는 왜 수필을 쓰는가 나는 왜 수필을 쓰는가 / 임춘희 오늘도 한 줄의 글을 쓴다. 언제부턴가 난 약을 먹게 되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약 한 봉지를 뜯었다. 물 한 컵을 오른손에 들었다. 색깔별로 들어 있는 알약을 왼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몇 초 후면 이 약의 성분으로 내 정신은 혼미해질 것이다. 빨강, 노랑, 파랑, 무지개 색깔로는 부족하지만 분명 화려한 빛깔이다. 내 현실도 약처럼 밝은색이라면 좋으련만 현실은 늘 흑백인 걸 어찌하면 좋을까. 도화지 위에 인생을 색칠해 보아도 검은색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난 서른 즈음 우울증이 왔다. 생활의 무게에 짓눌려서 그랬을까. 신혼 재미가 한창일 시기, 햇살처럼 맑은 내 아가의 몸짓 발짓을 보고 행복에 젖어 있어야 하는데 머릿속은 늘 회색이다. 칠 남매의 맏며.. 2024. 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