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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021신춘 문예 단편소설 , 수필, 시 등 당선작/현대수필3123

123. 구름카페 구름카페/ 윤재천 나에겐 오랜 꿈이 있다. 여행 중에 어느 서방(西方)의 골목길에서 본 적이 있거나, 추억어린 영화나 책 속에서 언뜻 스치고 지나간 것 같은 카페를 하나 갖는 일이다. 그곳에는 구름을 쫓는 몽상가들이 모여들어도 좋고, 구름을 따라 떠도는 역마살 낀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떠나도 좋다. 구름 낀 가슴으로 찾아들어 차 한 잔으로 마음을 씻고, 먹구름뿐인 현실에서 잠시 비켜 앉아 머리를 식혀도 좋다. 꿈에 부푼 사람은 옆자리의 모르는 이에게 희망을 넣어주기도 하고, 꿈을 잃어버린 사람은 그런 사람을 바라보며 꿈을 되찾을 수 있는 곳- ‘구름카페’는 상상 속에서 늘 나에게 따뜻한 풍경으로 다가오곤 한다. 넓은 창과 촛불, 길게 드리운 커튼, 고갱의 그림이 원시의 향수를 부르고 무딘 첼로의 음률이 .. 2022. 1. 31.
122. 골목길 골목길 고임순 세월은 강물 되어 흐르면서 기억들은 물에 씻긴 조약돌처럼 반들거리며 남는 것일까. 이 세상에 태어나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길을 걷고 또 걸었을까. 지금까지 걸어 다녔던 길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흙먼지 부옇게 일던 신작로, 돌부리에 넘어져 무릎을 깨고 울던 골목길, 납작한 초가지붕이 이어진 산동네 후미진 언덕 길 등. 호기심이 남달랐던 나는 구불거려서 끝이 보이지 않아 궁금했던 골목길에 더 흥미를 곧잘 해찰거리면서 다니기를 즐겼다. 길은 우리에게 가장 서정적인 공간이다. 떠남과 돌아옴의 길. 집을 떠나 주어진 일들을 부지런히 마치고 다시 보금자리 내 집으로 돌아오는 길. 걸을 때마다 그 길들이 마치 우리 몸속의 혈맥처럼 땅을 누비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길을 부름이라 했던가.. 2022. 1. 31.
121. 검댕이 검댕이 ​ 이은희 검댕이가 긴 여행을 떠났다. 먹보인 녀석이 좋아하는 젤리도 마다하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덩그러니 보금자리만 남았다. 그런데 나는 놀라지도, 슬프지도 않다. 가족들은 두 눈에 쌍불을 켜고 그를 찾느라고 야단이다. 그러나 베란다와 온 방을 구석구석 찾아보아도 녀석은 나타나질 않는다. 검댕이는 우리 집에서 키우는 사슴벌레의 애칭이다. 유난히 검고 두개의 집게가 커서 붙인 이름이다. 이 녀석이 우리 집에 오기까지엔 할머니의 영웅담이 한몫을 했다.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와 손자가 나를 따돌리고 뭔가 작전을 수행하려는 눈치였다. 아이가 난데없이 사슴벌레에 관해 연구를 하려는 것도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았다. 나 몰래 아빠에게 용돈도 얻어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날 벌어진 일을 흥분하신 할머.. 2022. 1. 31.
120. 개똥벌레의 꿈 개똥벌레의 꿈/ 박종철 나의 출생지는 무주의 청량리입니다. 대대로 살아온 공동부락에서 태어났습니다. 낮에는 숲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어둠이 내리고 동무들이 들놀이를 가자고 채근하면 등불을 켜고 집을 나서게 됩니다. 도랑을 건너고 숲 위를 날기도 하고 저녁상이 한창인 농가의 마당이나 하얀 박꽃이 피어 있는 지붕 위를 날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우리를 보고 “개똥벌레다!” 하며 뒤를 쫓아다닙니다. 우리도 장난 끼가 동하여 이이들 주변을 맴돌며 놀리기도 하고 숨바꼭질도 합니다. 너무 가까이 접근하다가 이이들에게 붙들려서 호박꽃 초롱에 갇히는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초롱불을 흔들며 좋아라고 뛰놀다가도 놀이에 지치면 슬그머니 풀어 주기도 합니다. 요즈음 우리가 제일 걱정하고 있는 것은 이웃이 해마다 줄어들고 .. 2022. 1.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