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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이야기12

동서고금 당구에 얽힌 이야기들 9 동서고금 당구에 얽힌 이야기들(9. 끝) : 우리나라 당구의 출발/주말농부 우리나라에는 당구가 일본을 통해 들어왔는데, 일본에 당구가 들어온지 한참 뒤인 1880년대에 들어 당구가 처음 들어왔다고 한다. 어느 책에 보니까 우리나라에는 선교사가 당구를 처음 들여왔다고 쓰여져 있던데, 실제로 그랬는지는 좀 의심이 간다. 잘 아시다시피 당구를 치려면 당구대와 당구 큐 등 여러 가지 도구가 필요한데, 당구대란 것이 비싸기도 하지만 운반에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 당시 당구대의 가격도 비쌌겠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 조선에까지 당구대를 운반하려면 그야말로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테고, 또 돈도 보통 드는 것이 아니었을 터다. 그런데, 그 당시 선교사가 얼마나 부자였는지 모르겠지만, 비싼 경비를 들여 당구대를 들여왔.. 2023. 8. 17.
동서고금 당구에 얽힌 이야기들 8 동서고금 당구에 얽힌 이야기들(8) : 일본으로 건너온 당구/주말농부 서양에서 성행하게 된 당구는 동양으로 건너왔다. 1850년 미국 뉴욕에 당구장이 개장된 그해 일본 나가사키(長崎)의 데지마(出島)에 네덜란드 상인이 당구대를 가져와 당구를 쳤다. 공식적으로는 일본에 처음으로 당구가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원록시대(元禄時代: 17세기 말-18세기 초)에 그려진 민속화에는 나가사키(長崎)의 데지마(出島)에 있는 네덜란드인들 저택에서 네덜란드 사람들이 빌리야드를 즐기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렇게 본다면 공식적으로 알려진 1850년 보다 훨씬 이전에 일본에 당구가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많다. 현재와 같은 포켓 빌리어드는 1900년 경에 미국으로부터 들어왔다고 한다. 일본 민속화에 나타난 당.. 2023. 8. 17.
동서고금 당구에 얽힌 이야기들 7 동서고금 당구에 얽힌 이야기들(7) : 당구의 회전을 왜 영국인(english)이라 하나?/주말농부 우리는 당구를 치면서 회전을 잉글리쉬, 즉 영국인이라고 한다. 나는 1970년대에 당구를 치다가 중단한 후 최근에 와서야 다시 당구를 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당구를 치다보면 친구들이 “노 잉글리쉬”로 치라고 하기도 하고, 당구 책을 봐도 “노 잉글리쉬”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궁금해서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노 잉글리쉬란 무회전이란 뜻이라는 대답이 왔다. 그럼 노 잉글리쉬가 무회전이니까 잉글리쉬는 회전이란 말이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렇다고 한다. 그럼 왜 좌 잉글리쉬를 줘라, 우 잉글리쉬를 줘라 하지 않고, 좌회전을 줘라, 우회전을 줘라 라고 말하느냐 했더니, 그건 모르겠다고.. 2023. 8. 17.
동서고금 당구에 얽힌 이야기들 6 동서고금 당구에 얽힌 이야기들(6) : 미국으로 간 당구_ 기술의 발전과 게임의 변화/주말농부 1859년 미국의 디트로이트와 뉴욕에서 포켓이 없는 4구 시합이 최초로 개최되었다. 즉, 본격적인 캐롬 당구 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이 때 경기 규칙은 4구 게임으로서, 수구로 흰 공 붉은 공 관계없이 맞추기만 하면 되는 게임이었다. 우리나라 30점대 초보자들이 치는 소위 “요시다마”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공을 맞추게 되면 1점을 획득하게 되는데, 500점을 먼저 치면 이기는 게임이었다. 이 시합 결승전은 미국의 마이클 펠런과 “프랑스의 악마”라 불리는 유럽 선수가 맞붙게 되었다. 두 선수는 장장 7시간에 걸쳐 경기를 했는데, 결국 펠런이 승리하였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펠런에 의해 기록된 하이런은 9점.. 2023. 8.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