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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119

일곱 살 여름 일기 일곱 살 여름 일기 - 박동조 여름날 하오, 시골 마을은 태양의 열기로 절절 끓었다.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던 개들도 햇볕을 피해 그늘로 숨어들었다. 숨 쉬는 생물은 모두 불볕더위에 납작 기가 죽은 그날, 점심 식사를 끝낸 어른들은 왕왕거리는 매미 소리를 자장가 삼아 낮잠에 빠졌다. 일곱 살인 나도 마루에서 잠이 들었다. 오들오들 몸이 떨리는 한기에 눈을 떴다. 마당에는 하얀 눈이 소복했다. 짧은 순간 이가 딱딱 마주치는 오한으로 하얗게 쏟아지는 햇살을 눈이라고 착각했다. 한여름, 한낮에, 한숨 낮잠을 자고 일어난 내게 하루거리라는 병이 찾아왔다. "야가 갑자기 와 이라노?" 하는 어머니 말에 나는 햇볕 때문에 아픈 거라고 대답했다. 어째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하루거리가 학질의 다른 이름이며,.. 2022. 6. 1.
124. 이야기 이야기 피천득 '태초(太初)에 말씀이 계시니라.' 사람은 말을 하고 산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생각까지도 말을 빌어 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꿈 속에서도 말을 하는 것이다. 물건 매매도 교육도 그 좋아들하는 정치도 다 말로 한다. 학교는 말을 가르치는 곳이요, 국회는 시저 때부터 지금까지 말을 하는 곳이다. 수많은 다방도 다 말을 하기 위한 곳이다. 런던에서 맨 먼저 개점한 월리라는 커피 하우스는 에디슨과 스틸이 만나서 말하던 장소이었다. 가정 부인들은 구공탄, 빨랫비누, 그 어휘는 몇 마디 안 되지만 하루 온종일 말을 하고 있다. 이삼 일이면 끝낼 김장을 한달 전부터 김장이란 말을 자꾸자꾸 되풀이하고, 그 김장을 다 먹을 때까지 날마다 날마다 '김치'라는 말을 한다. '나는 말주변이 .. 2021. 12. 29.
123.고향을 이루는 생각들 고향 이루는 생각들 유경환 내 나이 대여섯 살 적에 나는 동리 사람들이 '금융 조합 이사 집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집의 대명사가 '금융 조합 집'인 것도 귀담아듣게 되었다. 때문에 송천, 사리원, 겸이포, 장연 등지로 번질나게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때문에 송천, 사리원, 겸이포, 장연 등지로 번질나게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이사(理事)네 집이기 때문에 이사만 다닌다고, 나는 그때 혼자서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도라지꽃, 하늘 색깔 닮아 고웁던 그 구월산 줄기 남쪽엘 거의 안 다닌 곳 없이 다닌 것이었다. 요즈음도 그 몽금포 타령, 라디오에서 흐르는 그 가락은, 가끔 날 눈감게 하여 주고, 그러고는 나의 고향을 그 가락에 매어 끌어다 준다.마치 수평선 저쪽에서 다가오는 .. 2021. 12. 29.
122. 황포탄의 추석 황포탄의 추석 피천득 월병(月餠)과노주(老酒), 호금(胡琴)을 배에 싣고 황포강(黃浦江) 달놀이를 떠난 그룹도 있고, 파크 호텔이나 일품향(一品香)에서 중추절(仲秋節) 파티를 연 학생들도 있었다. 도무장(跳舞場)으로몰려간 패도 있었다. 텅 빈 식당에서 저녁을먹고 방에 돌아와 책을 읽으려 하였으나, 마음이가라앉지 않았다. 어디를 가겠다는 계획도없이 버스를 탄 것은 밤 아홉 시가 지나서였다. 가든 브리지 앞에서 내려서는 영화 구경이라도갈까 하다가 황포탄 공원(黃浦灘公園)으로발을 옮겼다. *황포탄공원에 가게 된 경위 빈벤치가 별로 없었으나 공원은 고요하였다. 명절이라서 그런지 중국 사람들은 눈에 뜨이지않았다. 이 밤뿐 아니라 이 공원에 많이 오는사람들은 유태인, 백계(白系) 노서아 사람, 서반아 사람, 인도인.. 2021.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