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와 해설40

아내와 나 사이 안녕하세요 대단히 반갑습니다. 아내와 나 사이 -이생진-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 월간 《우리詩》(2008년 10월호) 【지은이 소개】 * 이생진 -1929년.. 2022. 11. 16.
오른손이 왼손에게 오른손이 왼손에게 / 정균석 여보게 오늘은 내 마음 먹고 자네랑 얘기 좀 해야겠네 이런저런 이유로 망설였지만 더 늦기 전에 할 말은 해야겠다 싶어 날을 잡았네 우리가 주인님 모신지 벌써 수십 년 누가 뭐래도 자네야말로 내 소중한 짝꿍이지 그런데도 난 자네를 존중하지 못하고 늘 내 보조 정도로만 생각하고 살았음을 고백하네 그런데 요즘 나이 먹고 힘 떨어지니까 지금까지 자네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고마운 마음도 들고 앞으로 자네가 없으면 어떻게 살까 걱정도 되네 우리 둘이서 호흡 맞춰 주인님 보필한 게 어디 한두 가지인가 일어나서 세수할 때는 왼빰 오른빰 한손처럼 씻어 주고 넥타이 맬 때는 자네는 받쳐 주고 나는 조이고 스킨을 바를 때도 자네가 병을 잡으면 나는 뚜껑을 열고 물론 밥 먹을 때나 양치질 할 .. 2022. 7. 31.
40. 선운사에서 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시집 ) 블로거 의견 1) 선운사禪雲寺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도솔산(兜率山)에 있는 절 2) 동백冬柏은 겨울을 불태우며 피어나서, 칼로 베인듯 목이 부러저 떨어진다. 그리고, 땅위에서 다시 피어나고, 보는 사람들 마음 속에서 허망虛妄하게 진다. 가을엔 그 꽃진 자리에 할머니 머리기름 짜는 동백열매가 맺는다. 2021. 12. 5.
39. 선운사 동구 선운사禪雲寺 동구洞口 서정주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冬柏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디다. 이 시의 숨은 이야기 이 시의 숨은 이야기 "1942년 부친상을 당해 고향에 내려갔다가 오는 길목인 선운사 입구 동백꽃을 보기 위해 일부러 선운사엘 들렸다가 헛걸음을 했다. 선운사 동백꽃은 남해안의 동백꽃이 다 지고 난 4월 하순경에야 개화하는데, 비감悲感에 잠겨 있다 보니 그걸 깜빡한 것이다. 말술로 소문난 스물여덟 살의 미당은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길가 주막엘 들렸다. 술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주모酒母는 이내 미당未堂과 마음이 통했다. 취기醉氣가 아련해지자 그녀는 특유의 쉰소리로 멋들어지게 육자배기.. 2021. 1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