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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수필가작품3

문을 밀까, 두드릴까. 임병식 글을 쓰는 사람치고 작품을 퇴고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리고 '퇴고推敲'라는 말 또한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승퇴월하문僧推月下門'이라는 종장을 지어 놓고 밀 '퇴推'로 할 것인가 두드릴 '고敲'로 할 것인가 고민하던 중에 지나가던 경윤 한유가 '고敲'로 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생겨난 어휘라는 것을 모르는 문인도 없을 줄 안다. 대부분의 문인은 자신이 쓴 작품을 습관적으로 손본다. 글을 쓸 때는 이모저모 생각하다가 자칫 문맥을 놓치거나 어느 부분은 과장하고 어느 부분은 빠뜨리는 경우도 생겨서 퇴고하지 않으면 완성된 작품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퇴고를 하다 보면 무슨 어휘가 걸리든지 하다못해 오탈자 하나라도 발견되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글을 쓴 다음에는 반드시 퇴고의 수순.. 2021. 10. 12.
잃어버린 조각 박경대 L형의 목소리에는 취기와 슬픔이 묻어 있었다. 전화로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한참동안 내뱉던 그는 숫제 울고 있었다. 횡설수설한 구절과 단어들을 조합하여 추측해 보니 치매가 온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놓고 오는 길인 듯하였다. 아흔이나 되신 노인을 떼어놓고 오는 심정이니 오죽할까. 환갑이 넘도록 독신으로 살아 온 그는 어머니와 둘이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연세가 많은 어머니는 차츰 정신이 흐려져 갔고 두 달 전부터는 심한 치매까지 왔다는 것이다. 아내가 없는 자신의 형편으로는 돌보는 일이 힘들었으리라. L형이 괴로워하는 마음에는 결혼을 하지 않아 불효했다는 심정도 있었을 것이다. 자책하며 내뱉는 독백을 들으면서도 딱히 해줄 위로의 말이 생각나지 않아 안타까웠다. 의료수준이 높아지면.. 2021. 10. 12.
국화옆에서 강돈묵 앙증맞다. 두 뼘이나 됨직한 화분에 국화가 수형樹型을 이루고 꽃을 피웠다. 노란색 소국이다. 배달되어 온 화분을 책상머리에 놓고 한참을 완상하다가 코를 가까이 들이민다. 향이 은은하게 내 몸으로 흘러든다. 매년 이맘때면 국화분이 하나씩 배달된다. 몇 해 전 지역 농업기술센터에서 가을 축제명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며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온 적이 있다. 여러 의견을 존중하고, 내 생각을 조금 가미하여 ‘거제섬꽃축제’로 정해 주었다. 여태껏 사용하던 덜 다듬어진 긴 명칭은 버렸다. 이름을 바꾼 후로 이곳의 대표 축제로 성장하여 매년 가을을 수놓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나에게 전달되는 국화분이 더 멋스럽고 품격이 고고하다. 이번에도 직간으로 키운 화분이 왔다. 화분의 중앙에서 조금 빗겨난 꽃대는 반대.. 2021. 9.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