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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단편 소설

99. 내 우상 쓰러지다

by 자한형 2022.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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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우상(偶像) 쓰러지다

유재용

 

노트 겉표지에 씌어진 제목은 -포로가 된 왕자-였다.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제목만은 내 기억에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국민학교 육 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여름철 내 공부방으로 쓰고 있는 마루방에 들어가 앉은뱅이책망 위에 책가방을 올려놓으며 책상 옆을 무심코 내려다보니 빈 사과궤짝 속에 어지럽게 쌓아놓은 헌책 나부랑이 위에 낯선 대학 노트 한 권이 얹혀 있었다. -포로가 된 왕자-. 겉표지에 큼직큼직한 잉크 글씨로 이렇게 씌어 있었다. 나는 노트를 집어들고 겉장을 들쳤다, 내 눈에 부담을 주지 않을 만큼 굵직하고 뚜렷한 잉크 글씨가 줄을 따라 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나는 읽기 시작했다. -푸르기만 나라의 차칸 왕자가 알찬 나라의 예러 공주를 만나려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알찬 나라에 가려면 큰 강 셋을 건너야하고, 큰 숲 셋을 헤쳐 나가야하고, 큰 산 셋을 넘어야 하고, 그러고 나서 다시 바다를 건너야 합니다. 차칸 왕자는 첫 번째 강을 건너 첫 번째 숲 속에 들어갔을 때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 첫 페이지가 다 끝나가도록 숲 속의 이런저런 모습이 지루하리만큼 묘사되고 있었다. 나는 읽기를 멈추고, 노트를 사과 궤짝 속 제 자리에 던져 넣듯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참고서를 찾느라 헌책 속을 뒤지다 보니 -포로가 된 왕자-는 노트 한 구멍만이 겨우 보이는 채 헌책들 아래 깔려 버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학교에서 돌아와 마루방 앉은뱅이 책상 위에 책가방을 놓으며 무심히 사과 궤짝 속으로 눈길을 보내는데 -포로가 된 왕자-가 헌책들 위에 다시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놓고 얹혀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집어들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길을 잃은 차칸 왕자는 첫 번째 숲 속에서 무슨 일을 만날 것인가. 하지만 나픈 첫 페이지를 읽어 넘기지 못한 채 노트를 사과 궤짝 속에 던져 넣었고 -포로가 된 왕자-도 그럭 저럭 다시 헌책 속에 묻혀 들어갔다. 며칠 뒤 -포로가 된 왕자-는 사과 궤짝 속 헌책들 위에 또 다시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 놓았는데, 그 무렵 나는 그 일을 이상스럽다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마루방 사과 궤짝 속 헌책들 위에 얹혀 있는 -포로가 된 왕자-를 대할 적마다 호기심이 솟아 쳐들어 올려 공책장을 들쳐보곤 했으면서도 헌책들 속에 묻혀 들어가 모습을 감췄던 노트가 어떤 경로를 밟아 며칠 뒤면 다시 위에 쌓여 있는 헌책들을 헤치고 나와 맨 꼭대기에 올라앉게 되는 것인지 별달리 의심을 품어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포로가 된 왕자의 이야기를 담은 노트는 사과궤짝 속에서 상당 기간 자맥질하듯 헌책들 속에 빠져 들어갔다가 표면에 솟아오르고, 또 잠겨들어 갔다가 솟아오르곤 했다.

두 달쯤 지난 어느 일요일에 형이 불쑥 물었다.

"규만아. 너 포로가 된 왕자 읽어 봤니?"

"마루방 사과궤짝 속에 있는 거?"

그게 형이 쓴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뒤늦은 깨달음처럼 번쩍하고 머리속에서 불을 펴면서 나는 되물었다.

"그래, 그게 동화다. 읽어 봤니?"

형이 기대하는 눈길로 나를 내려다보며 다시 물었다.

"읽어 봤어."

별다른 생각도 없이 순간적으로 나는 거짓말을 해 버렸다.

"그래 어떻데? 재미있데?"

"재미 하나두 없던데 뭐."

이번에는 거짓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너무 쉽사리 대꾸해 버렸다.

"재미가 하나두 없다구? 야단났는데. "

형은 얼굴을 천정을 향해 들어올리며 입을 크게 벌려 껄껄 웃어제꼈다. 무안과 실망을 얼버무리는 웃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두 무슨 얘긴지는 알겠데?"

형이 이렇게 한 마디만 더 물었더라도 무안과 실망의 늪 속에서 자신을 건져낼 수가 있었을 것이다. 팔십 괘이지나 되는 대학 노트에 꽉 들어찬 긴 이야기 중에서 나는 첫 페이지도 다 읽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포로가 된 왕자의 이야기를 담은 대학 노트는 마루방 사과 꿰짝 속에서 자취를 감췄고, 나도 -포로가 된 왕자-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한데 그로부터 삼십 년이 지난 지금, 이 세상에 없는 형을 생각할 때면, 여간해서 뚫리지 않는 체증처럼 -포로가 된 왕자-가 의식 속에 멍쿨하니 응어리져 걸려 있는 것을 느끼게 되곤 했다.

"규만아, 이건 내가 지은 동화다. 끝까지 한번 읽어 봐라,"

형은 왜 맞대놓고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그때만 해도 중학교 입학 시험 경쟁이 심해서 국민학교 육 학년이면 입시 준비에 시간을 다퉈야 할 형편이었지만, 나는 토요일이면 학교 도서실에서 동화책을 빌려다가 두 권쯤은 으례 읽어 제꼈던 것이다. 형은 동화책을 즐겨 읽는 아우에게 자신이 창작한 동화를 읽혀 보고, 그 반응을 통해서 창작 동화의 성공 여부를 가늠해 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한데 형은 왜 그런 방식을 사용하자고 생각했을까. 형의 작품이 라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아우가 읽어 주기를 바랐을까 아니면 자기가 동화를 샜다는 사실을 아우에게 알리는 것이 쑥스러웠을까. 그 때 형은 내 우상의 지위를 잃고 있었지만, 형보다 열 다섯 살이나 아래인 나는 형의 말이라면 그 정도는 들어주었을 것이다. 내가 잠든 밤중이나 새벽에 마루방으로 살금살금 들어가 앉은뱅이 책상 옆, 사과 꿰짝 속의 헌책들을 뒤져 가지고, 파묻혀 있는 -포로가 된 왕자-를 끄집어내어 맨 꼭대기에 틀려 놓곤 하는 형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형은 또 내가 -포로가 된 왕자-를 읽었는지 궁금해서 얼마나 내 동정을 살폈을 것인가. 자맥질하듯 헌책들 속에 잠겼다가 표면에 떠오를 때마다 -포로가 된 왕자-는 바다를 표류하는 조난자가 구원을 청하듯 나를 향해 애타게 외치며 손을 흔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이오 전쟁이 일어나고, 그 북새통에 -포로가 된 왕자-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그것은 죽은 형을 대신해서 이 세상에 남을 유일한 형적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내가 실수로 바다 속에 영영 가라앉혀 버린 듯한 회한이 형을 생각할 적마다 마음 저 밑바닥에서 서리서리 피어 오르곤 했다. 내가 그것을 읽지 않은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긴 분량 대문이었을까.

어느 날 나는 노트를 집어들고 장수를 세어 보았다. 마흔 장. 장편 동화의 분량이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이미 장편 동화를 독파할 끈기를 지니고 있었고, 또 몇 편의 장편 동화와 소년 소설을 읽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첫 페이지를 채 읽어 넘기지 못하고 사과궤짝 속에 던져 넣곤 하면서도, 노트가 다시 표면에 떠올라 내 눈에 띄는 자리에 놓을 때마다 손을 런어 집어 올려 새로 읽기를 시도해 보곤 한 것을 보면 포로가 된 왕자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을 지니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면서도 번번이 읽기를 포기한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책으로 엮어지지 않았다는 것. 활자로 인쇄되지 않았다는 것. 만년필이나 펜으로 노트에 씌어진 장편 동화를 읽어낼 만한 준비가 내 마음속에 마련되어 있지 않았으리라는 것, 이런 것이 까닭이라면 까닭이었을 것이다. 생각하면 내 나이 어린 소치였고, 어린 시절의 한 토막 추억담으로 가볍게 입에 올리고 말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가끔 반발해 보기도 했다. 사라진 것은 사라진 것일 뿐이다. 사라진 것에 대해 그토록 연연해할 필요가 무엇인가. 하지만 그 물음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망각의 바다로 빠져 들어가면서 안타깝게 손을 흔드는 형의 모습이 떠올라 보이곤 했다. 그러면 내 마음속에서는 푸르기만 나라의 차칸 왕자가 길을 잃고 숲 속을 헤매다니는 발자국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히 길을 잃고 방황하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알짠 나라의 예리 공주를 만나러 가려고 길을 떠난 차칸 왕자가 길을 떠나자마자 첫번째 들어선 숲 속에서 길을 잃고 영원히 헤매도록 만든 것은 바로 나라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가슴에 안게 되곤 했다.

 

나는 그 노트가 어딘가에 보존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형의 손으로 그 노트를 없애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이 어린 아우의 말 한 마디로 실망과 충격을 받은 끝에 애써 만들어 놓은 작품을 주저 없이 부숴 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재미가 하나두 없다구? 야단났는데."

이렇게 말하고는 형이 터뜨려 놓은 너털웃음은 충격이나 좌절감을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너는 아직 멀었어. 내 작품의 진가를 알아 볼라면 조금 더 커야겠다."

하는 뜻을 담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게 읽힐 생각을 단념한 형은 노트를 깊은 곳에 간직했거나 방향을 바꿔 형의 친구들에게 읽어보라고 맡겼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해 보고는 노트가 남아 있다면 그것을 간직하고 있을 법한 집과 사람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육이오 전쟁 중에 형이 세간살이가 책 같은 것을 맡겼을 법한 친척 또는 고향 사람들의 집과 형이 일본 유학 시절부터 사귀어 오던 몇몇 친구 분들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처음부터 벽이었고, 아니면 허탕이었다. 처음에는 그 당시 서울에 살고 있었던 친척 집부터 찾아다녔는데 형의 세간살이나 책을 맡았던 집에 가 닿기까지 한참이나 걸렸다.

"육이오 동란 때 혹시 르이 형의 짐을 집 알구 기세요?"

듣는 사람이 오해하고 불쾌해 할까봐 나는 이런 투로 얘기를 풀어나갔다.

"모르겠는데, 통 모르겠어."

그들은 대뜸 고개를 내저었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윽고 나는 그 때 형의 짐을 얼마간 맡아 두었었던 집을 찾아갔다. 아버지의 이종매가 되는 아주머니네 집이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내 할아버지. 그러니까 이모부 밑에서 자란 분으로 한 때는 나도 자주 다니러 가곤 하던 집이었다. 그렇다, 실상 나는 애초부터 이 아주머니와 내 고종매형을 겨냥했으면서도 다른 친척 집들을 찾아다녔던 것이다.

"느형 짐을 내가 맡았었지. 허지만 되놈덜이 쳐내려 온다구 두번째 피난길덜 떠나구 야단법석덜을 칠 때, 시굴 브이 외가집으로 실어 갔잖았남? 책나부랑이만 빼 놓구는 쓸 만한 건 다 실어 갔어. 아니 참. 그때 너두 같이 있었을 텐데?"

아주머니가 생각난다는 듯 물었다.

". 저두 그 짐 구루마 밀구 갔어요."

"그런데?"

"그때 구루마에 싣구 가지 못한 책 궤짝이 남았나 해서요."

나는 기대를 품어 보며 말했다.

"읎어. 느이가 짐을 싣구 떠나간 메칠 뒤 우리두 피난길 떠났는데 나중에 돌아와 보니깐 다 읎어졌더라. 느이 형 책이 사과 궤짝으루 대여섯 갠가 됐는데 부엌 뒷방에 들여놨던 게 몽땅 읎어졌더라니깐. 그뿐인감? 안 방에 두구 간 장롱까장 다 부썩 불 땐 모양이여. 뙤눔 병정덜이 와서 잠을 자군 했다니깐 책이구 뭐구 불 때 읎앴을 테지. 기둥뿌리 뽑아 불 때지 않은 것만 천행으루 여겼으니깐."

포로가 된 왕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대학 노트가 불꽃에 휘말려 옴을 비틀다가 꺼멓게 변색되며 재가 되어 사라져 가는 모습이 터을라 보였다. 나는 머리를 가로 저어 그 모습을 지워 버렸다. 아주머니 말대로 중공군 병정들이 방바닥을 데우기 위해서 형의 책을 아궁이에 처넣고 불 때 버린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노트도 그 속에 함께 들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고종 사촌 매헝 댁을 찾아갔다. 고등학교 교장 직에 있는 고종매형은 형보다도 나이가 위인데 학생 시절부터 형과는 친형제처럼 다정한 사이였다고 했다.

"삼십 년이나 지난 얘기잖아? 평화시라두 강산이 세 번 변할 세월이야, 더구나 큰 난리를 겪었는데 지금 그런 게 참아 있을 수가 있나?"

매형은 내가 엉뚱한 짓을 하고 있다는 듯 점잖게 나무랬다. 실상 그 노트가 불타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이 세상 어딘가에 남아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념하지 않고 사람들을 찾아 다녔다. 형이 일본 유학 시절에 사귄 친구 분들은 거의 대학 교수가 되어 있었다. 그분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물었다.

"포로가 된 왕자 이외에 형님이 창작한 동화에 관해서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금시초문인걸. 난 자네 형님 규철씨가 동화를 썼다는 얘기는 지금 자네한테서 처음 들었어."

"자네 형이 동화를 썼다니 그게 사실이야? 잘못 안 건 아닌가?"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었다. 이 이상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것은 헛수고일 눈이다, 하고 나는 스스로에게 타이르듯 생각해 보았다. 나는 무엇에 홀린 듯 멈추지 않고, 형을 알고 있을 만한 모든 사람들을 수소문해 찾아다녔다. 그들은 엉뚱한 물음에 어리둥절하거나, 놀라워하며 곧바로 돌이질을 치곤 했지만, 그 대신 그들이 알고 있는 형의 이야기를 이것저것 들려 주었다. -포로가 된 왕자-는 형처럼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다, 사람들을 찾아다닐수록 찾아다닐 사람들의 숫자가 다해 갈수록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며 굳어지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단념하지 않고 사람들을 찾아다닌 것은 그들이 들려주는 형의 이야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형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포로가 된 왕자-의 이야기를 내 기억 속에 담아 간직하지 못한 안타까움과 형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보상받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형의 생애는 내 생각과 마음속에서 제 모습을 갖출 수 있었지만, 형의 친구 분들이 의아해한 것처럼 내게도 풀어지지 않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형이 어떻게 해서 동화를 쓰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고향에서 지내던 내 어린 시절, 형은 내게 있어 영웅이요 우상이었다. 그것은 아이들이 나이 많은 형에 대해 흔히 갖게 되는 경애감이나 신뢰감의 일반적 수준을 훨씬 넘는 것이었다. 내 나이 네 살인가 다섯 살인가, 어쨌든 내가 말을 알아듣기 시작했을 때부터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친척들의 입을 통해 혈을 두고 하는 이야기들이 내 가슴과 머리 속에 쌓여 왔다. 개 육대조인가 오대조 할아버지 때에 현감 벼슬을 지낸 것을 끝으로 우리 가문에는 벼슬 자리에 오른 사람이 나서지를 않았다. 그 이후로 가문의 형세는 기울어들며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우리 가문에는 언제부턴가 예언 같은 것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큰 인물이 태어나 높은 벼슬 자리에 오르게 되고 기울어진 가문을 일으켜 세워 놓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것은 현감 할아버지가 임종하는 자리에서 유언으로 한 예언이라는 말도 있었고, 현감 할아버지 이전부터 가문에 은밀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무슨 책 슥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그 예언이 어디에서 유래된 것이든 상관할 것 없이 이제나 이루어질까 저제나 이루어질까 새 자손이 태어날 적마다 기대를 걸어 보다가 차츰 시들해지며 그 예언이 잊혀지려던 무렵이었다. 나라의 주권이 왜놈들에게 넘어갔겠다, 조선 사람이 높은 벼슬 자리에 오르는 길은 끊어진 거나 다름없었다.

예언의 효력은 끝장이 난 게 아닌가. 그럴 즈음 아버지가 돈을 벌기 시작했다. 고향을 떠나 객지로 돌아다니며 왜놈들이 세워 놓은 기관에서 월급쟁이 노릇을 하던 아버지가 그 월급쟁이 노릇을 집어치우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의 면 소재지에 누가 경영하다가 실패해서 인수할 사람을 기다리는 양주장이 있었다. 아버지는 십여 년간의 월급쟁이 생활에서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고 꼬박꼬박 모은 돈으로 양주장을 덜컥 사버렸다. 일가 사람들이 몰려 와서 왜 상의도 없이 큰일을 저질렀느냐고 아우성을 쳤다. 망해 버리다 시피한 양주장이라는 것이었다. 조선 사람이면 너나 할 것 없이 겨우 거지 신세나 면하고 있는 형편인데 누가 술을 사 먹을 것이냐, 영업이 안 되니까 내 놓은 게 아니냐, 그런 것을 아까운 돈 내던지고 덜컥 사 버린 것은 다 망해 가던 양주장 주린 숨통 터 주고 대신 아버지가 그 자리에 들어앉아 숨 막혀 죽으려는 짓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제 어쩌겠융니까? 흥하구 망하는 건 하늘에 맬기구 힘닿는 데까장 해 봐야지요니까."

아버지가 일가 어른들에게 대답한 말이었다. 한숨 소리, 혀 차는 소리. 헛기침 소리, 담뱃대 빠는 소리만이 방 안의 침묵을 깨뜨려 놓고 있었다.

한데 아버지에게 운이 왔다. 인근에 광산이 세워진 것이다. 그것도 네 군데나 되었다. 규모가 커서 사대 광산이라고 불리어졌다. 거기서 캐내는 중정석(重晶石)은 매장량과 질에 있어 세계적이라고 했다. 왜놈들이 무진장한 자본으로 달려 붙고, 수많은 조선 사람들이 모여들어 광부가 되어 들끓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양주장에서 광산촌 술집들로 술이 팔려 나가기 시작했다, 더 담그고 더 담그어도 찾는 술을 다 댈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넉가래로 돈을 긁어모으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놀라고 어리둥절해서 눈과 입을 딱딱 벌리곤 했다. 일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일가 사람들은 그들의 단견을 부끄러워할 겨를도 없었다. 아니, 이런 사태를 예견하지 못한 것은 단견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장본인인 아버지 자신도 감히 예측 못 했던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일가 사람들은 잊혀져 가던 가문의 예언을 되살려내어 아버지의 일에 갖다 맞추기 시작했다. 생각하면 아버지야말로 종가 집의 대를 이은 외아들 아닌가, 우리 가문에서 태어나리라던 큰 인물이 바로 아버지라는 말이 일가 사람들의 입에 거침없이 오르곤 했다. 저렇게 쏟아져 들어오는 돈으로 군수 자리 하나 얻어 앉기는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아니 도지사까지 바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왜정 치하면 어떤가. 평민으로 살아가건 벼슬아치로 살아가건 왜놈 밑에서 살기는 마찬가지인 바에야 이왕이면 벼슬아치가 되어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예언이나 이루어 놓는 것이 백 번 바람직한 일 아닌가. 일가 사람들은 아버지의 속마음도 바로 거기를 겨냥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아버지를 지켜보았다. 한데 아버지는 벼슬 자리 같은 것은 염두에도 떠올리지 않는 듯 쏟아져 들어오는 돈으로 땅만 사서 모으곤 했다. 군수 자리는 아니더라도 면장 자리는 왜놈들이 자청해 찾아와 맡아달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내둘렀다. 돈을 쓰며 운동하는 것도 아니고 거저 모셔가겠다는데 한사코 마다하는 것이다.

일가 어른들이 보다 듣다못해 찾아와 부추기고, 어르고, 윽박지르고 했지만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면장은커녕 군수 자리를 거저 준대도 싫다고 했다. 일가 사람들은 고개를 기우뚱거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예언을 이를 능력을 갖춘 큰 인물에는 틀림없는 것 같은데 고집 부리며 삐뚜름하게 나가는 것이 가문의 예언과는 꼭 들어맞지 않는 구석이 여기저기 드러나 보인다는 생각이었다.

자꾸만 고개를 기우뚱거리던 일가 어른들의 눈과 귀에 형의 모습이 보이고 형의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보이는 모습도 들려오는 소문도 똑똑하고 늠름하다는 것 일색이었다. 고향의 소학교를 졸업한 형은 서울 학생들도 들어가기 힘들다는 서울의 A고등 보통학교에 철썩 소리나게 들어 붙었다. 고향에 소학교가 생긴 이래 처음 있는 경사라고 했다. 일가 사람들의 눈길이 아버지에게서 형에게로 옮겨져 갔다. 그렇지, 그것을 미처 생각해내지 못했었구나. 일가 사람들은 무릎을 쳤다.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예언에 큰 인물이 나을 때면 그에 앞서 징조가 나타난다고 했다. 아버지는 큰 인물이 아니라 큰 인물이 일어서기 전에 나타나는 징조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아버지는 형이라는 큰 인물을 키우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앞서 온 예시적 인물이었던 것이다. 일가 사람들의 그러한 생각은 형이 A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명문 B고등학교에 입학하자 의심의 여지없는 기정 사실로 굳어졌다. B고등학교에 입학한다는 것은 동경 제국대학에 입학한 것과 진배없다고 했다. B고등학교는 동경 제국대학의 예과로 보아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말이 쉬워 동경 제국대학이지 조선 사람으로서 그것도 강원도 산골짜기 사람으로서 감히 바라볼 수나 있는 자린가. 하늘을 날으는 재주를 가졌더라도 가 닿기 힘든 데였다. 한데 별로 어려운 것 같지도 않게 형이 그 문 앞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길을 닦아 놓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고로 성인 군자, 영웅 호걸 발군 재사도 저 혼자 힘만으로 뜻을 이룩한 것이 아니라 띠리 와서 터를 닦아 준 사람이 있는 법이라고 했다. 이윽고 형이 B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경 제국대학 법학부 삼 학년 편입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가 사람들은 우리 가문에 판검사가 나기라도 한 듯, 야단법석을 떨었다. 형이 고등 문관 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시간 문제가 아닌가 말이다.

내 나이가 형보다 다섯 살만 아래였더라도 나는 형을 시샘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보다 열 다섯 살이나 아래였던 나는 사람들이 형을 칭찬하는 말을 들을 때면 내가 칭찬을 듣는 것처럼 기르고 어깨가 으쓱거려졌다. 나는 얼마나 자랑스러운 형을 두고 있는가.

"대학생은 말야, 일본 순사나 헌병두 맘대루 건드리지 못한대."

동네 아이들이 말했다. 일본 순사들은 가끔 조선 사람을 주재소로 끌어다가 때리곤 했다. 주재소에 사람이 잡혀 왔다는 소문이 돌면 무서워 어깨가 움츠러들면서도 아이들은 주재소 근처로 몰려가곤 했다. 나도 아이들과 함께 주재소 판자 울타리 밖에서 안을 기웃거려 보곤 했는데 매 맞는 사람이 질러대는 비명이 소름을 돋게 했다. 순사가 문을 열고 나오는가 싶으면 아이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치곤 했다. 칼을 차고 목 긴 구두를 신은 순사를 아이들은 덮어놓고 무서워했다. 길에서 놀다가도 저만치 순사의 모습이 보이면 놀던 것을 멈추고 길가 처마 밑으로 비켜서거나 집 안으로 슬금슬금 숨어 들어갔다. 순사는 아이들 놀이에도 소리 지르고 참견하기 일쑤였다. 좀 큰 아이들한테는

"너 이리 와, 담배 퍼우지?"

느닷없이 불러 세워 주머니를 뒤져보기도 하고 머리칼이 길다거나 단추가 리뚜로 달렸다고 머리통을 쥐어박기도 했다. 그것이 아니라도 지나가며 쏘아보고 훑어보는 매서운 눈길을 맞으면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래서 어린애가 심술을 부리고 울면

"저기 순사 온다. 뚝 그쳐, 안 그치믄 순사가 붙잡아 간다."

하고 어른들은 말했다. 그 무서운 순사도 대학생은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일본 순사가 조선 사람 대학생을 주재소루 데리구 가서 욕하구 때리구 했대. 그런데 일 년 뒤에 매 맞은 조선 사람 대학생이 때린 일본 순사의 상관이 돼 가지구턱 왔대지 뭐니? 일본 순사놈, 일년 전에 지가 때리구 욕하구 했던 조선 사람 대학생한테 코를 땅에 꿀어박구 빌었대, 고소해라. 얼마나 고소하니? 깨소금 맛이다."

아이들이 말했다. 대학생리이 다음에 어떤 사람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순사들도 겁이 나서 마음대로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형이 바로 그 대학생이었다. 그것도 졸업하고 나면 판사나 검사가 되는 일을 맡아 놓은 대학생이었다.

"우리 형은 말야,,,,,,"

아이들은 내가 말을 끝맺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형을 더 잘 알고 있었다.

"규만이 형 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순사들 쩔쩔매는 꼴 좀 보게 말야."

아이들은 손으로 턱을 받치고 앉아 정거장 쪽으로 통하는 길 끝으로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장말 형이 며칠 동안만이라도 다녀가 주었으면, 사각모를 척 쓰고 망토를 두르고, 번쩍 이는 구두를 신고 동네 아이들 보는 앞에서 동네 길을 의젓하게 걸어다니며 순사들의 콧대를 꺾어 주고 돌아간다 면 얼마나 자랑스럽고 속시원할 것인가.

"규만네 집은 규만이 형이 있기 때매 순사들이 얼씬을 못한대."

이렇게 까지 말하고 있는 동네 아이들 앞에 형의 늠름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면 멋진 일일 텐데, 어른들이 쉬쉬하며 작은 소리로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겨드랑이에 날개 달린 장수 얘기가 있었다. 금강산 바위 속에서 겨드랑이에 날개 돋은 장수가 날개가 다 자라 날아다니게 뒬 때를 기다리며 숨어 지내고 있는데, 그 장수들이 금강산 바위를 뚫고 세상에 나오는 날이면 왜놈들이 조선 땅에서 쫓겨나게 된다는 것이었다. 끄래서 왜놈들은 눈이 뻘개서 금강산 속을 돌아다니며 장수가 들어 있을 법한 바위마다 쇠말뚝을 두드려 박아 넣는다고 했다. 그 쇠말뚝에 날개가 채 자라지 못한 어린 장수들이 가슴을 찔려 숱하게 죽어 가고 있는데, 아무리 왜놈들이 발악을 해도 장수들을 남김없이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멀지않아 날개 달린 장수가 세상에 나와 왜놈들을 밀어낼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날개 달린 장수를 머리 속에 그려보곤 했는데 그 얼굴은 언제나 형의 얼굴이었다.

한데 형은 여간해서 오지를 않았다. 한 번쯤 다녀가도 될 법한데 웬일로 꼼짝을 안 했다. 편지는 가끔 오는 모양이었는데 편지가 온 날이면 아버지는

"그런데 얘가 편지할 적마다 돈을 보내라니 어떻게 된 노릇이야?"

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하숙비, 공납금, 기타 비용 이외에 용돈도 넉넉하게 보내 주었는데,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느니, 만년필이나 책을 밀어버렸다느니. 구두가 다 닳았다느니, 친구의 축음기를 망가뜨려 놓았다느니 하고 별별 핑계를 다 붙여 그것도 급하게 돈을 부치란다는 것이었다.

"보내 주시구려. 대학생인데 씀씀인들 적겠어요?"

어머니가 말했다.

", 대학생 세도 한번 대단하구만."

아버지는 코방귀를 뀌듯 대꾸했지만 음성은 어머니 말에 따라가고 있었다.

집안이 별안간 잔뜩 찌푸린 날씨처럼 어둠침침해진 것은 그 무렵이었다. 아버지 입에서 형에 대한 욕이 쏟아져 나왔고, 어머니는 옷고름 끝으로 눈물을 찍어내곤 했다. 사랑방에 찾아온 일가 어른들은 전에 아버지가 망해 가는 양주장을 덜컥 사들였을 때 저랬으리라 싶게 조용한 가운데 한숨 소리. 혀 차는 소리, 헛기침 소리, 쓴 입맛 다시는 소리, 담뱃대 빠는 소리만 방 안의 침묵을 깨뜨려 놓고 있었다.

"돈을 듬뿍 써서 빼내 가지구 핵교루 다시 돌려보낼 수 읎을라나?"

한 목소리가 불쑥 말했다.

"틀렸어요. 그눔 새끼 그 속에서 뒈지지 않으믄 내 손으루 모가지를 비틀어 죽일 테니깐요."

아버지가 말했다.

형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식구들은 물어도 가르쳐 주려 하지 않고 쉬쉬 숨기기만 했다. 내가 형한테 일어난 일을 들은 것은 동네 아이들에게서였다.

"느이 형 독립군에 들어갔다가 왜눔들한테 붙잡혔대믄서?"

"우리 형이 독립군이라구?"

"그것두 모르니 넌? 우리 아부지가 그러는데 느이 형 지금 왜눔 감옥소에 들어가 있대더라."

"우리 형은 대학생인데 어떻게 잡아갔다는 거니 ?"

"독립군에 들어갔대두. 그렇지만 독립군은 대학생보다두 더 쎈 사람이야. 너두 독립군 얘기 들었지? 독립군들이 느이 형 갇혀 있는 감옥소를 부숴 버리구 느이 형을 데리구 감쪽같이 읎어질 거야."

귀신처럼 나타났다가 없어져 버리곤 하면서 왜놈의 순사나 헌병을 죽이고 감옥소를 때려 부순다는 독립군, 왜놈들이 소리만 들어도 벌벌 떤다는 독립군, 형이 바로 그 독립군이 되었다니, 나는 아이들 앞에서 어깨가 한층 더 높게 으쓱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데 왜 아버지는 욕을 퍼부어 대고 어머니는 눈물을 짜고, 일가 어른들은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 것일까. 어쨌든 나는 대학생과는 다른 모습의 형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수염이 텁수룩하게 자라고, 일부러 더러운 옷을 입고, 그러나 품속에는 권총을 숨기고 있는 형,

"느이 형은 어느 날 밤중에 골래 담을 넘어 느이 집으로 들어올거야. 규만아, 두구 봐. 내 말이 맞을 테니."

아이들은 그렇게 귀띔을 해 주었다

"허지만 비밀을 지켜야 돼. 이 말이 순사들 귀에 들어가믄 안 되니까."

형은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장수일지도 모른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왜놈들이 형의 가슴에 쇠말뚝을 박아 형을 죽이려고 눈이 뻘개 가지고 덤비는 것일 테지만 형은 장수이면서도 독립군이면서도 대학생이니까 어림도 없을 것이다,

일 년 뒤에 형이 돌아왔다. 돌아온 형의 모습은 늠름한 대학생도 아니었고, 호랑이처럼 용맹한 독립군도 아니었고, 겨드랑이에 날개 달린 장수도 아니었다. 핼쓱한 얼굴, 지쳐 멍해진 눈초리, 축 처진 어깨. 납작해진 가슴, 구부정해 보이는 허니. 휘청대는 듯한 걸음걸이, 그런 것들에서 대학생이나 독립군이나 장수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역전말 당숙과 함께 집에 돌아온 형은 신발도 벗지 않고는

"주재소에 좀 다녀와야겠어요."

했다.

"주재소는 왜?"

어머니가 물으니까

"집에 닿는 대루 우선 주재소에 신고를 하기루 돼 있어요."

하며 형은 대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얘야, 시장할 텐데 우선 요기라두 하구 가려마, 오늘 안으루만 가서 알리믄 될 테지 뭘 그래?"

어머니의 말에 형은 주저주저하며 겨우 신을 벗었다. 형을 위해 일부러 만들어 놓은 순두부 한 사발을 형이 마악 비웠을 때 순사가 찾아왔다.

"고생 많이 했이다."

순사가 형한테 말했다. 조선 사람 순사였다. 형은 주재소에 다녀오겠다면서 순사를 따라 나섰다. 순사 뒤를 따라 동네 한복판을 비척비척 걸어가는 형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 동안 마음속에 고이 간직했던 형의 모습이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 것을 느꼈다. 내 어린 가슴에 휑하니 구멍이 뚫리는 듯하던 그 허망감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 것인가.

 

"그렇게 해서 자네 어린 시절의 우상과 영웅이 쓰러졌구만, "

A대학교의 강 교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강 교수는 형과 B고등학교를 같이 다녔고, 동경 제국대학에도 함께 들어갔던 사람이었다.

"허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존재했던 어떤 실체의 붕괴가 아니라 꿈의 붕괴였어."

"제가 형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를 창작해 놓고는 스스로 창작한 동화의 세계 속에 빠져 들어가 있었단 말씀인가요,"

"자네가 받은 충격과 허망감은 그 동화가 깨져 버린 데서 온 것이었을 테지. 그때 자네는 동화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구별해낼 만한 판단 능력을 지니지 못했을 나이였어."

"무슨 뜻으루 하신 말씀이신가요? 제 형의 본래의 모습은 나약한 것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나약한 것을 극복하려고 무던히 노력한 사람이었어."

"독립 운동을 했다는 것은 사실입니까? "

"자네 형은 이상주의자였어. 낭만주의자라구두 할 수 있구."

형이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어 일 년 동안의 징역을 하게 된 죄목은 첫째 재일 조선인 근로자의 직장 이탈을 선동하고, 도주를 방조하고. 도주한 자를 은닉하려 했다는 것이고, 둘째 불법화된 공산주의 운동에 가담했다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고 했다. 형이 회원으로 가입한 재일 조선인 학생 단체의 하나인 공생회가 공산당의 영향을 받는 단체라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형이 공생회에 가입하게 된 것은 공생회의 이념과 주의에 심취 동조해서라기보다는 어떤 여학생과의 관계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경상도 출신의 임성자라는 이름을 가진 여학생으로, 비지적인 데다가 뛰어난 미모를 겸비해 많은 남학생들로부터 흠모를 받는 처지였다. 어느 정도 깊게 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혓과 그 여자 사이에 연애 관계가 있었는데, 어쨌든 형은 애인을 따라 이것저것 따져 보지 않고 들어간 공생회에서 뜻밖에 정신이 번쩍 드는 일과 마주쳤다. 공생회에서는 조선에서 일본으로 끌려오고 있는 조선인 노무자들의 실태를 조사하고 있었다. 일본으로 끌려오는 조선인 노무자는 대략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었는데 -국민 총 동원법-이니 -근로 보국대-니 해서 강제로 징발되어 오는 경우와, 속임수에 의해 유인되어 오는 경우였다. 그들의 실태 조사는 공개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했고, 징용 기간을 무사히 보내고 운 좋게 둘려난 사람이나 도주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해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강제 징발되어 온 노무자들의 비참상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른바 자의로 오게 된 노무자들의 경우도 나을 것이 없었다.

김 장손씨의 경우.

그는 경상남도 어느 시골에서 남의 땅을 소작하던 사람이었다. 뼈빠지게 일을 해 가지고 가을에 추수를 해 놓지만 총독부에 바칠 공출 벼와 지주에게 줄 도조 벼를 떼 놓고 나면 겨우 겨울 날 양식이 남곤 했다. 겨울을 겨우 났을까말까 찬 바람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봄인데 양식이 떨어졌다. 할 수 없이 지주네 집에서 장리 쌀을 얻어다가 춘궁기를 넘겼다. 가을이 되어 수확을 했을 때 공출 벼와 도조 벼 이외에 장리 변으로 벼를 더 떼어놓고 나니 이번에는 겨울 날 양식도 부족했다. 채 겨울을 나기도 전에 양식이 떨어져 지주네 집을 찾아가 지난 해보다 더 많은 장리 쌀을 얻어다 먹었다. 이렇게 몇 해를 지내고 나니 가을에 추수를 해도 공출 벼, 도조 벼, 장리 벼를 떼 놓고 자기 몫으로 남는 양식이 한 톨도 없었다. 김 장손씨는 식구들을 팽개쳐 둔 채 부산으로 나왔다. 일자리를 얻어 보기 위해서였다.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걸으려니까 어느 건물에 -북해도 광부 모집-이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광산에서 일하게 되면 숙박비로 하루 일 원 오십 전을 받고 품값은 하루 오 원을 주겠노라고 했다. 하루에 삼 원오십 전씩은 모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객지에서 고생은 되겠지만 눈 딱 감고 이 년 동안만 가 있다가 오자. 김 장손씨는 그렇게 해서 북해도 광산으로 오게 되었다. 한데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하루 숙박비 일 원 오십 전은 말대로 인데 오 원 주겠다던 품삯은 이 윌 오십 전 밖에 안되었다. 그나마 날마다 품삯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삼백 미터나 되는 땅 속, 화씨 백 도가 넘는 무더위와 습기와 악취, 석탄 가루가 자욱한 공기를 마시며 하루 열 서너 시간 일을 하다 나오면 이튿날은 쉬어야 했다. 쉬는 날은 돈벌이 없이 숙식비만 물어야 했다. 그뿐인가. 고된 작업에 작업화는 이틀을 못 넘겨 못 쓰게 되곤 했다. 삼 원씩 하는 작업화를 이삼일마다 내 돈주고 사 신어야 했다. 돈을 모으기는커녕 첫날부터 빛을 지기 시작했다. 식사는 콩 삶은 것에다 쌀알을 드문드문 섞은 것으로 건더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소금 국이었다. 그나마 분량이나 넉넉하면 살 것 같았다. 숙소는 -함바-라고 불리는 합숙소로 이, 벼룩, 빈대가 들끓었고, 죄인 수용소처럼 자유로운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김 장손씨가 들어 있던 -함바-에는 일백 십 명의 조선 사람 광부가 수용되어 있었는데 불과 몇 달도 안 되어 병들어 죽어나간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광부들은 도망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감시가 심했고 도망치다가 잡히면 맞아 죽기 예사였다. 하지만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에는 도망이나 치다가 죽어 보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탈주를 감행했고, 거의 모든 사람은 붙잡혀 돌아와 혹독한 고문을 못 이겨 죽고, 고문에서 살아난 사람도 더욱 가혹하게 혹사를 당하다가 병들어 죽어 갔다. 시체는 무더기로 불살라져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뼈들을 나눠 담아 가지고 고향의 가족들에게 보내 주곤 했다, 김 장손씨는 백에 하나 요행스럽게도 탈주에 성공한 사람이었다. 밤새 달려 어느 일본인 농가로 들어갔는데 늙은 농부가 인정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젊은 사람이 싸움터로 끌려나가 일꾼이 귀한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김 장손씨는 거기서 상한 몸을 보양한 후 농사일을 해 주다가 공생회와 줄을 대게 되었다.

길에서 할 말이 있다는 사람을 따라갔다가 강제로 끌려온 도시 젊은이도 있었고, 학교에서 돌아오다 책가방을 든 채 끌려갔다가 그 길로 일본 탄광으로 오게 된 나이 어린 중학생도 있었지만, 김 장손씨의 경우처럼 농촌에서 소작을 하다가 공술과 도조와 장리변 때문에 고향과 가족을 등지고 도시로 나왔다가 속임수나 협박 공갈로 끌려온 사람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고향에 남겨 두고 온 가족은 어떻게 되었나. 공생회에서는 조선 안의 연락망을 통하거나 직접 회원을 파견해 그 문제를 조사해 보기도 했다. 김 장손씨 가족의 경우, 부인은 밑으로 어린 자식 둘을 매달고 고향에서 이 집 저 집 전전하면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었고 나이 찬 큰 딸은 부산에 있는 피복공장에 다니다가 누구의 첩살이로 들어갔다는 것이고, 큰아들은 아버지처럼 일본 어느 광산으로 끌려갔는데 소식이 없는 상태였다.

형은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분노가 맹렬하게 치밀어 올랐다. 그때까지 공생회에 미온적이었던 형은 열성 회원으로 돌변해 공생회가 계획하고 실천하려는 일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공생회가 앞으로의 과업으로 삼은 것은 일본에 끌려온 조선인 노무자들 내부에 지하 조직을 구축하고, 그것을 통해 조건인 노무자의 조직적 항쟁을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소극적 방법으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태업을 비롯해, 도주나 탈출, 나아가 집단적 폭력 투쟁이라는 적극 방법에 이르는 모든 경우였다. 그것은 일석삼조(一石三鳥)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사업이기도 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수행하고 있는 전쟁 능력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것과, 조선의 독립 운동이 된다는 것과, 공생회의 근본적 과업인 노동 운동과 합치된다는 것이었다.

형이 이런저런 핑계와 거짓말로 아버지에게 돈을 보태달라고 뻔질나게 편지를 보낸 것은 그 무렵이었다. 그런 일쯤은 형의 마음속에서 얼마든지 정당화되었다. 아니 속임수를 써서 아버지에게 푼돈이나 뜯어내는 일로 자신을 정당화시길 수는 없었다. 공출과 도조와 장리변에 시달리다가 알거지가 되다시피 고향을 등지게 되어 결국은 일본에 끌려와 광산의 땅굴 속이나 공장이나 싸움터에서 지치고 병들고 도망치다가 죽어가거나 죽음을 기다리며 혹사당하고 있는 조선 사람 노무자들이 마치 아버지의 땅을 소작하던 사람들처럼 느껴지곤 했다. -아버지, 아버지 땅을 부치는 소작인들을 불쌍하게 생각해 주십시오.- 형은 이렇게 편지를 쓰다가 찢어 버렸다. 불쌍하게 생각하라니, 동냥푼을 던져 주라는 말처럼 들렸다. -아버지, 소작인들을 정당하게 대우해 주십시오.- 형은 다시 찢어 버렸다. 정당한 대우란 구체적으로 어떤 대우를 말하는가. 형은 아버지가 소작인들에게 수확의 몇 퍼센트를 소작으로 거둬들이는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정당한 대우란 소작료의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토지를 소작인에게 돌려주는 일이었다. -아버지, 아버지의 땅을 소작인들에게 돌려 주셔야 합니다.- 형은 이런 편지를 아버지에게 보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두려워서라기보다는 그것이 의미를 담지 못한 공허한 목소리로 끝나 버릴 것이 두려웠다. 그런 말이 머리 속에서 나와 편지에 씌어지자마자 공허한 문자로 퇴색해 버릴 것 같았다.

형은 공생회에서 착수한 최초의 행동에 적극적인 참가 의사를 표명했다. 보상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공생회의 행동 계획이란 회원 몇 명을 부산으로 보내 노무자로 위장시킨 뒤, 일본으로 끌려오는 노무자 무리 속에 잠입해 들여보내 일본 내 작업장과 작업 환경 실태를 폭로시켜 노무자들의 마음속에 도주 의욕을 복돋아 주고, 도주를 감행하도록 유도하며, 그 도주가 성공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었다, 도주는 일정한 때와 장소를 정할 게 아니고, 조선 땅에서부터 시작하면 더 좋고, 부산에서 현해탄을 건너 시모노세끼 항에 닿은 후 북해도 또는 기타의 목적지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기회 있을 적마다 줄기차게 감행하도록 한다고 했다. 형은 부산으로 가 노무자로 변장하는 팀에 끼워 달라고 자원했지만 얼굴이 희멀거니 귀공자처럼 생겨 의심받기 쉽다는 이유로 거절되고. 노무자들이 일본에 도착한 직후엔 행동할 역할을 맡게 되었다. 노무자들이 도주를 감행하는 것은 그들의 여정의 전과정에 걸쳐 이루어지도록 한다고는 했지만, 부산에서 시모노세끼 항에 도착해 배에서 내린 뒤 기차로 갈아타기까지의 중간에서 일차적으로 실행되도록 한다는 것이 공생회의 방침이었다. 도주도 한 색깔이 아니라 여러 색깔로 이루어져야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형의 역할은 여분의 학생복 한 벌을 마련해 가지고 시간 맞춰 기차역 변소 안에 들어가 있다가 용변하러 오는 노무자를 재빨리 학생복으로 갈아 입혀 감시망을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었다.

형은 맡은 바 소임대로 노무자 한 사람에게 재빨리 학생복을 갈아 입혀 감시망을 벗어나게 하는 데 거의 성공할 순간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한데 뜻밖의 사고가 일어났다. 노무자들이 무모하게 집단 탈주를 시도한 것이다. 고함 소리, 총 소리가 어지럽게 일어났다, 길을 모르는 노무자들이 총 소리 속에 갈팡질팡하며 쓰러져가고 있었다. 형은 어수선한 가운데 도주하지 않고 역 구내에 서 있던 노무자들 가운데 두 사람의 손을 잡아끌고 슬그머니 역 구내를 빠져나갔다. 하지만 안전한 곳으로 몸을 숨기기 전에 두 사람의 노무자와 함께 체포되고 말았다

"네놈 혼자서 일을 꾸몄다구는 세 살 짜리 어린애두 믿지 않을 거다. 순순히 말해라."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을 뿐입니다."

"무슨 일루 때 맞춰 그 자리에 우연히 있게 되었지?"

"여자를 만나두룩 돼 있었습니다.

형은 얼멸결에 꾸며댔다.

"도오꼬에서 시도노세끼루 여자를 만나러 왔었다구? 뭐하는 여자지?"

"연애 상댑니다."

"뭐하는 여자냐구 물었다."

"학생입니다."

형은 임 성자의 얼굴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어느 학교 학생?"

"."

"어느 학교 학생?"

"저 조선에 있는 학굡니다."

"무슨 학교? 전문학교라면 전공은 뭐구, 몇 학년, 학생 이름, 빨리 말해."

"---"

"빨리 말해 ! "

"이화여자 전문학교 문학부 이 학년, 야마코도 하나로."

"조선 여자겠지?"

"."

"조선 이름은?"

"최 화자라구 합니다."

실재하는 인물이었다. 형이 서울에서 하숙하고 있던 집의 딸이었다. 이화여전 문학부 이 학년이라는 것도 사실이었다. 최 화자는 최근에도 연정을 담은 편지를 보내오고 있었다.

"현해탄을 건너 애인을 만나러 온다? 그래 하나꼬가 왔나?"

"안 왔습니다."

"?"

"모르겠습니다. 부득이한 사정 이 있었겠지요."

"하나꼬가 연락원인가?"

?"

"조선 안에 있는 느이 패거리와 일본에 있는 느이 패거리 사이의 연락원이냐 말이야."

"아닙니다.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두 없습니다. 하나꼬 양은 저와 연애 관계에 있을 뿐입니다."

"좋아, 그 사실 여부는 내일이면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너는 조선 노무자를 탈출시키려구 했어."

"순간적인 충동에서 이루어진 반사적 행동이었습니다."

"가슴 속에 잔뜩 고여 있는 동포애가 자신두 모르는 사이에 뿜어져 나왔다, 이 말인가? 네놈들의 그 알량한 동포애가 네놈들의 동족을 몇 명이나 죽였는지 아나? 도주를 기도한 자 이십 이 명 가운데 십 칠 명이 총탄에 맞아 죽었다. 네놈들이 도주를 선동하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사람들이야. "

"그들은 어차피 죽어갈 사람들입니다.

형은 불쑥 말했다.

"어차피 늙어서 죽을 사람들이란 얘긴가? "

"비인간적으로 혹사당하다가 굶주리고, 지치고, 병들고, 매맞아 죽을 사람들이지요."

"조선놈들 아가리에서 가끔 발악하듯 튕겨져 나오는 소리다. 그래 굶주리구, 병들구, 지척 죽는 자가 상당수라구 치자. 그래두 이십 이 명 가운데 십 칠 명이라는 엄청난 비율루 죽지는 않아, 네놈들이 도주를 선동하지만 않았더라면 그 가운데 많은 숫자가 살아서 고향에 돌아갈 수 있었을 거다. 네놈들은 네놈들 손으루 동포를 죽인 데 대해 죄스러움을 느껴야 한다."

"우리 손으루 우리 동포를 죽인 일 없습니다."

"네놈들은 노무자를 도주시키는 것이 그들을 살리는 길이라구 생각한단 말이지? 노무자들을 도주시키는 일이 성공했다구 치자. 그 다음은 어떻게 하지? 이십 이 명이라는 인원을 감춰 두구 먹여 살릴 자신이 있나? 아니 이십 이 명뿐이어서는 안 되지. 조선인 노무자들은 계속 들어올 텐데 그때마다 그들을 도주시켜 숨겨 놓구 먹여 살려야 할 것 아닌가? 어디 자네 의견 좀 들어보자구 어떻게 하지?"

이 자가 유도 심문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형의 머리 속에 번쩍 떠 올랐다.

"저는 그런 일은 생각해 본 일두 없습니다. 허지만 노무자들이 도주를 꾀한 것이 반드시 외부 사람의 선동이나 사주에 의해서 일어났다구만 단정할 수는 없잖습니까? 노무자들이 도주를 기도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 것입니다."

"노무자들이 다 털어 왔다. 노무자들한테 학생복을 입혀 도주시키려던 수법까지두 탄로가 났어. 그래 노무자들을 도주시켜 거리를 방황하도록 만들겠다는 건가? 네놈들은 결국 네놈들의 힘없는 동족을 제물루 삼아 네놈들의 이른바 독립 운동의 명분을 세워 보려 한 것이야. 비열한 새끼들. 소위 지식인이라는 새끼들의 독립 운동이 그런 거냐? 위선자들 같으니라구 할 말 있으면 해 봐라."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노무자들을 이용한 것을 보면 좌익 지하 단체들의 행동 같아. 공산주의자들의 입김 냄새가 난단 말야. 신원 조회를 해 보니 자네는 상당한 토지를 소유한 지주의 아들이더구만. 자네 부친은 토지 이외에 상당한 규모의 양주장두 경영하구, 또 양반 계급이더군. 자네가 진짜캐기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다구 생각하나? 딴은 막스를 지껄이구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한 척하지 않으면 지식인 행세를 할 수 없다는 판이니 한 번쯤 공산주의자연 해보는 것두 무방할 테지. 허지만 자네 출신 성분으루는 아무리 생각해두 알짜 공산주의자는 될 수가 없어. 자네 부친이나 가족과 의절하구 원수처럼 미워할 수 없는 냉혈한이라면 몰라두 말야. 자네는 공산주의자연해 보는 대가루 공산주의자들한테 이용 당하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해. 짐작하구 하는 얘기가 아니야. 그자들은 사태가 불리한 것을 재빨리 판단하구는 죽어가는 노무자들을 버려둔 채 손을 떼구 빠져나가 버렸어. 자네 혼자만 어리석게두 노무자의 손을 잡구 있다가 잡힌 거야."

"제 출신 성분이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시면서 왜 저를 자꾸 공산주의자들과 관련시키십니까?"

"모르구 빠져들 수두 있으니까. 의리란 일방적으루 지키기만 할 필요는 없는 거야. 자네가 순순히 털어놓는다면 자네에 한해서 최대한으루 정상을 참작하겠네. "

"전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좋아, 그렇다면 네놈이 민족주의자건 공산주의자건 네놈 목구멍으루 피 토하면서 불두룩 해 주마."

고문이 시작되었다.

"왜놈들 고문이 어떤 것인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네. 자네 형이 그 고문에 굴복했다구 해서 실망할 것까지는 없어, 고문에 굴복하지 말았었으면 하는 것은 고문 받아 보지 않은 사람의 순진한 바람일 뿐이야. 초인이 몇이나 있겠나? 허기야 자네 형은 고문에 굴복한 것이라구두 할 수 없어."

역시 형과 일본 유학을 같이했던 A대학 김 교수의 말이었다. 굶기는 것, 잠 안 재우는 것을 비롯해서 열 가지도 넘는 끔찍끔찍한 체형이 매일 밤낮으로 가해졌다, 그 육체에 대한 극한적인 학대는 까무러쳐야 멈췄다, 깨어나면 다시 가해지고 또 까무러치고,,,,,, 하루에도 두세 번씩 까무러쳤다가 깨어나야 했다. 형은 용케도 견뎌 나갔다. 애인 임 성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고 참았다. 어느 날 까무러쳤다가 깨어나 보니 형은 딱딱한 시멘트 바닥이 아니라 푹신한 다다미방에 누워 있었다,

"이 사람아, 진작 털어 놓지 않구서 이게 무슨 고생인가?"

취조하던 고등계 형사가 부드러운 눈매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습관처럼 물을 청하니 선뜻 물을 가져다 주었고 물을 마시고 나니 음식이 들어왔다. 하루 종일 굶기고 난 뒤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보여주며 입을 열라고 닥달질하다가 도루 가져가곤 하던 일이 생각나 형사의 눈치를 보았다.

"아무런 조건두 없네. 맘 놓구 먹어."

형사가 선심 쓰듯 말했다. 형은 빼앗길까 겁을 내며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체하겠네. 천천히 먹어."

형사가 말했다. 아버지가 손을 쓴 것일까. 형은 그렇게 생각하며 음식을 깨끗이 먹어치웠다.

"협조해 줘서 고맙네. 정상이 참작되도록 힘 닿는 데까지 노력해 보겠네."

형사가 말했다.

"?"

형은 의아해서 물었다.

"잠깐만 더 쉬구 있게."

형사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몇 시간 뒤 형사의 부축을 받으며 취조실로 들어가니 임 성자가 수갑을 차고 앉아 있었다. 형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며 안스러움이 마음을 싸잡았다. 임 성자의 싸늘한 눈길이 형의 시선을 되받아 넘기며 아래 위를 훑었다.

"배반자! 비열하구 용기 없는 사내!"

임 성자가 침이라도 뱉듯 말하고는 매정스럽게 얼굴을 돌려 버렸다. 어떻게 된 노릇인가. 형은 그날 고문을 당해 의식을 잃어 가며 임 성자의 이름을 신음처럼 뱉어낸 모양이었다.

형은 임 성자의 얼굴을 눈앞에 떠올리며 이를 악물고 참던 일만 기억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정신을 잃어 가며 목마른 육체가 물을 찾듯 외로운 영혼이 임 성자를 찾은 것인지도 모른다. 임 성자의 학교나 자취방을 대면서 임 성자를 데려다달라고 허위적거린 것은 아닐까. 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결국 공생회의 모의 사실은 경찰의 책략과 모진 고문 끝에 임 성자가 털어놓았다. 형이 다 불어 버린 사실을 왜 숨기려 하느냐면서 견딜 수 없는 고문을 가했을 것이다.

형은 재판에서 일 년 징역을 언도 받았다. 임 성자와 체포된 몇몇 공생회원들이 일 년 반에서 이 년 반을 선고받은 것에 비하면 형의 형량은 가벼운 편이었다. 형은 소외감을 맛보았다.

징역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면회 온 사람이 있다는 전갈을 받았다. 고향의 가족과 친척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며 면회실로 들어가니 철망 저쪽에 뜻밖에도 서울에서 공부할 때의 하숙집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아주머니가 웬일이십니까 ? "

형은 반갑고 고마운 생각에 물었다. 하숙집 아주머니가 형의 얼굴을 향해 침을 탁 뱉었다.

"이눔아. 내가 너를 찾아 현해탄을 건너올 때는 네놈을 꼭 죽이겠다구 생각했어."

"왜 이러십니까, 아주머니?"

"날도둑눔아, 네눔이 나하고 웬수 진 일이 뭐길래 나를 이 지경으루 만들어 놓는 게냐?"

?"

"이 물귀신 같은 눔아. 네눔이 죄 없는 우리 화자를 끌구 들어가는 까닭이 뭐냐? 네눔 때문떼 잡혀간 화자가 모진 매를 맞구 실성해서 미치괭이가 됐어. 이눔아, 어떻게 할래? 이눔아 우리 화자 어떻게 할 테야!"

"아주머니 화자가 어떻게 됐다구요?"

"이눔 귀먹은 척하는 꼴 보게. 이눔아, 내가 네눔을 죽이지 않구는 못 돌아간다. 이눔아, 낯짝을 철망에다 붙여! 네눔 눈깔을 후벼버릴 테니까. 이눔아, 철망 틈으로 손가락이라두 내밀처. 물어뜯어 놓게 말야. 이눔아, 철천지 원수놈아 .감옥 속에서 뒈져 썩어 버려라!

하숙집 아주머니는 실성한 듯 길길이 날뛰며 소리 질렀다. 형은 면회실 밖으로 떠밀려 나가며 발악하듯 몸부림치는 하숙집 아주머니를 바라보고 섰다가 간수를 따라 총총히 감방으로 돌아왔다. 허탈감이 온 몸을 나른하게 풀어놓았다.

고향에 돌아온 형은 발이 묶였다. 집에서 십리 밖을 나가려면 주재소 순사들한테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십리 밖을 나갈래도 순사들한테 허가를 받아야 하다니. 나는 도무지 동네 아이들 볼 낯이 없었다. 아이들은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벌써 그 일을 다 알고는

"순사들이 느 형을 십리 밖두 못 나가게 한대믄서 ?"

하고 물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너 왜그러는지 아니? 순사들이 왜 느형을 십리 밖에두 못 나가게 하는지 아냐 말야?"

"몰라."

나는 기가 죽어서 대답했다.

"순사들이 느 형을 무서워하기 때문야. 느 형을 십리 밖으루 내보냈다가는 독립군하구 연락을 할 테니까 그러는 거라구. 독립군과 연락이 되는 날이은 독립군이 쳐들어와서 주재소를 때려부수구 순사들은 모조리 죽여 버릴 거거던? 지금 십리 바깥에는 빙 둘러 순사들이 늘어서서 느형이 빠져나가지 못 하두룩 지키구 있대. 넌 이런 얘기 어디 가서 막 하지 말어. 비밀이야, 비밀 탄로나믄 나두 잡혀가구 너두 잡혀 가. 알았지?"

"."

나도 겨우 마음을 놓았다. 아이들은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사도 순사의 스파이도 없었다.

"그렇지만 순사들이 지키구 서 있어 봤자 아무 소용두 읎어. 독립군 결사대가 뚫구 들어와서 느 형을 데리구 갈 거야. 두구 봐. 어느 날 느 형이 뵈지 않게 될 테니. 느 형이 며칠 동안 뵈지 않거든 독립군 결사대가 데려간 줄 알아. 요즘두 독립군 스파이가 밤중이믄 몰래 와서 느 형하구 연락을 하구 가군 한단 말야."

소근소근 말을 끝낸 아이는 순사의 스파이가 엿들을까봐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만치 낯선 사람이 걸어오는 것이 눈에 띄자 아이들은 일부러 놀이를 하는 척하고 소리를 지르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다.

나는 죽었던 기가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어깨가 다시 으쓱거려졌다. 더구나 형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형과 한 걸음 가까워진 듯한 느낌을 안겨 주었다. 형은 독립군 결사대가 쳐들어와 형을 데려갈 것이라는 사실을 혼자서만 알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며 시침 뚝 따고 그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도 형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형한테 얘기해 줄까 그만둘까 망설이다가 어느 날 형의 방으로 들어가 형의 귀를 빌려 달래가지고 귓속말로 털어놓았다. 형과 나 단둘이 있는 데서 귓속말을 한 것은 순사의 스파이를 조심해서도 그랬지만, 그보다는 나도 철없는 어린애가 아니며 비밀을 지킬 줄 안다는 사실을 형한테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너 그게 무슨 소리니?"

형은 깜짝 놀란 듯 물었다.

"형은 내가 모르는 줄 알았지?"

나는 여전히 숨죽인 목소리로 속삭이며 형과 한통속이라는 듯 뜻있게 웃어 보였다.

"니가 알구 있다는 게 뭐니 ? 다시 한번 말해 봐."

형은 다그치듯 말했다.

"형은 독립군이구, 독립군이 쳐들어와서 주재소 순사들을 죽여 버리구 형을 십리밖에 있는 깊은 산 속으로 빼내 간다는 얘기 말야."

"얘들이 함부루 얘기를 만들어 내네. 아이들 하는 얘긴 다 거짓말이야. 그런 거짓말 듣구 댕기지 말아, ."

", 비밀이 탄로날까봐 그러지? 걱정마. 비밀 탄로내지 않기루 단단히 약속을 했으니깐. 독립군 스파이가 밤중에 형한테 연락을 하러 온다는 얘기두 알구 있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얘기 안 했어."

"어렵쇼? 얘들이 정말 큰일날 소리 지어내구 있네. 어떤 애가 그런 맹랑한 소리를 지껄이데? 그 애 데리구 와. 혼을 내 줄테니깐."

형은 정말 화가 난 듯 소리를 질렀다. 나는 머쓱해져서 앉아 있다가 형의 방을 나왔다.

"그런 엉터리 얘기 또 지껄이면 너두 혼내 줄 테야."

내 뒤통수에 대고 형이 말했다. 어떻게 된 노릇인가. 형의 말대로 아이들이 한 말은 거짓말인가. 하지만 나는 아이들의 얘기를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형이 거짓말을 시켰을 것이다.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한 것은 비밀이 탄로날까 봐 겁이 나서 그랬을 것이다. 형은 나를 비밀을 지킬 줄 모르는 어린애로 치부하는 거다. 나는 별로 섭섭하지 않았다. 형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보다는 아이들이 형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 일이 일어나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그 일이 일어나서 형이 대단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증명하고 다시는 무너지지 않는 영웅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형의 말을 따라 형의 일에 입을 봉하고 지켜보았다. 밤중이면 형을 만나러 온다는 독립군 스파이의 기척을 들을까 해서 잠을 자지 않으려고 애써 보기도 했지만, 그 일은 밤 열두 시에 제사 지내는 것을 보겠다고 벼르고 벼르다가 결국 잠이 들어 보시 못하고 마는 것처럼 어느 결에 잠이 들어버려 허사가 되곤 했다. 그래서 나는 독립군이 쳐들어와 형을 데려가기만을 기다렸다, 형은 형의 방에 틀어박혀 먹고는 자고 또 먹고는 자곤 했다.

그것말고는 누운 채 책을 읽거나 유성기를 틀어 놓고 듣기가 고작이었다. 그것도 잠시 후에 들여다보면 책으로 얼굴을 덮고 자거나 유성기를 틀어놓은 채 잠들어 있기 예사였다. 방 밖을 나오는 일이란 얼굴을 씻을 때와 변소 갈 때뿐 허구한 날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었다. 밖에 나가 돌아다니다가는 독립군이 데리러 올 때 쫓아가지 못할까봐 그러나 보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그렇게 두 달이 지나고 나자 형은 바깥 출입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를 데리고 동네 뒷산에 오르거나 가까운 들길로 산보를 나갔는데,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나를 떼 놓고 형 혼자 나다녔다. 그것도 뒷산이나 가까운 들길이 아니라 십리 길 밤골에를 다녀오곤 했다. 밤골에는 할아버지댁과 일가집들이 모여 살고 있었는데 거기까지는 순사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갈 수 있다고 했다.

"느 형 요즘 어딜 갔다 오군 하니?"

아이들이 물었다.

"밤골."

"순사들한테 허가 받구 가니?"

"거기까지는 그냥 가두 된대."

"아니야. 워낙은 허가를 받아야 돼. 밤골이 꼭 십리가 아니라 십리가 넘거든. 그렇지만 느 형이 순사들을 얕잡아보구 그냥 가는 거야. 순사들이 허가 받지 않았다구 느 형을 잡는 날이믄 독립군이 가만있지 않을 거거던."

아이들이 말했다. 형이 밤골 가는 척하고 독립군과 연락하러 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나보다도 동네 아이들이 더 형을 우러러보는 것 같았다, 그러니 어서 형이 뻑적지근한 일을 아이들한테 보여 줬으면.

형이 앞에 나서서 한바탕 해 주기를 애타게 기다린 것은 내 나이 또래보다 큰 조선 아이들과 일본 아이들 사이에 싸움이 있었을 때였다. 광산이 네 군데나 되는 우리 면에는 일본 사람들이 많이 와 살았다. 그래서 조선 아이들만 다니는 소학교와는 별도로 일본 아이들만 다니는 소학교가 있었다.

조선 아이들과 일본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오는 길에 엇갈려 지나가면서 서로 흘겨보곤 했다. 일본 아이들은 전부가 깨끗한 옷에 란도셀을 매고 다녔고, 조선 아이들은 너저분한 옷에 책보자기를 허리에 질끈 동여매고 다니는 아이들이 많았다.

"쪽발이 새끼들은 고추장을 못 먹기 때매 기운이 음대. 조선 사람 하나에 쪽발이 새끼들 둘이 뎀벼두 조선 사람이 이긴대더라. 조선 사람은 매운 고추장을 잘 먹거던."

아이들은 일본 아이들을 지내놓고는 말했다. 아이들은 너나할것 없이 한동안 고추장을 열심히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올 때였다. 일본 아이들과 엇갈려 지나칠 무렵 한 아이가

"쪽발이 새끼들아, 뎀빌 테면 뎀벼!"

하고 욕을 했다. 그 동안 열심히 먹은 고추장이 힘을 솟게 했는지도 모른다. 욕을 먹은 일본 아이들이 우뚝 멈춰서더니

"욕한 자식 이리 나와! "

그 중 큰 녀석이 호령하듯 일본말로 말했다. 포선 아이들 가운데서 그 중 큰 아이가 앞으로 섹 나섰다. 키와 몸집이 서로 비슷했다. 두 아이는 곧 차고 때리며 얼크러져 땅 위에 딩굴기 시작했다. 조선 아이가 일본 아이의 배를 타 누르고 앉아 있는가 하면 거꾸로 일본 아이가 조선 아이의 배를 타 누르고 앉아 있고, 그런가 하면 금새 뒤집어지고 또 뒤집어지고,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싸움은 누가 이긴다 할 수 없게 팽팽했다.

지켜보고 섰던 양쪽 아이들이 어느 쪽 먼저랄 것도 없이 우루루 달려들어 패싸움이 벌어졌는데, 어른들이 쫓아와 뜯어말리는 바람에 싸움은 승분 없이 끝났다. 조선 아이들은 싸움에 지지는 않았으면서도 기가 죽어 있었다. 조선 아이들은 너나없이 싸움에 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혼자서 일본 아이 두 명을 거뜬하게 이겼어야 할 텐데 겨우 하나를 가지고도 엎치락뒤치락하지 않았는가. 조선 아이들은 열심히 먹어 온 고추장의 효력이 별로 신통치 못하다는 사실 앞에 실망하고 맥이 풀려 버린 꼴이었다.

그런데 이튿날 학교에 가자 야단이 났다. 일본 아이들과 싸운 조선 아이들은 모조리 직원실로 불려 들어가 옷이 벗겨지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가 되어 꿇어앉혀졌다는 것이었다. 직원실 근처에 다른 아이들은 얼씬도 못하게 했지만 선생님 심부름으로 직원실에 다녀 온 반장이 그 사실을 알려 주었다. 일본 사람 남선생이 슬리퍼 끝으로 꿇어앉은 아이들의 자지를 툭툭 건드리며 욕을 하고 놀려대고 하니까 여선생들의 얼굴이 새빨개지더라는 얘기도 했다. 벌거벗겨져 직원실에 꿇어앉은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고 학생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도 풀려나지 않았다. 내 또래 동네 아이들은 이번만큼은 형이 무슨 일을 좀 해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학교 교문이 저만치 바라보이는 데서 몰려 서 있다가

", 규만아, 느 형한테 말해 봐라."

큰 수나 생각해낸 듯 말했다. 아이들은 나를 떠밀 듯하며 우리 집으로 몰려왔고 나는 아이들을 대문 밖에 세워 두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형은 방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벌어진 일을 대충 얘기하고 나서

", 어떻게 하지?"

물었다.

"애들 닭싸움이니까 벌 좀 서구 풀려 나을 테지 뭐."

형은 책에서 눈도 떼지 않고 대답했다,

"형이 학교에 가서 말 좀 해 주면 좋겠다구 그러던데."

나는 넌지시 청을 넣어 보았다

"누가 그러데?"

형은 여전히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동네 아이들이 그래, 형이 가서 말을 해 주믄 잡혀 있는 애들을 돌려보낼 거라구."

형은 책에 못박았던 눈길을 내게로 옮겨 놓고 한참이나 빤히 내 눈을 들여다보더니 책으로 다시 눈길을 가져가며 말했다.

"학교에 붙잡혀 있는 아이들의 아버지나 형이 가서 얘기를 해야지 나같이 아무 상관두 없는 사람이 찾아가 봤자 소용없는 노릇이라구 그래라, "

그리고는 형은 내가 옆에 앉아 있는 것도 잊어버린 듯 책만 읽더니 책으로 얼굴을 덮고 코를 골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하릴없이 밖으로 나왔다.

"어떻게 됐니?"

아이들이 나쁠 둘러싸며 물었다.

"우리 형 지금 자."

내가 말했다.

"대낮인데 잠을 자?"

"어젯밤에 어디 갔다가 늦게 왔거덩. 우리 형은 요즘 낮에는 자구 밤이 되은 어딜 갔다 오군 한다구."

나는 꾸며댔다.

"독립군 만나러 가는가 부다. 좀 흔들어서 깨울 수 읎니? 급한 일이 생겼다구 하구서 말야."

"우리 형은 한번 잠들은 아무리 깨워두 안 일어나."

"느형이 잠들기 전에 왔더라믄 좋았을 걸. 할 수 없지. 느 형 잠깰 때까장 기달리는 수밖에."

아이들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형이 잠 깨기 전에 직원실에 불려 들어갔던 아이들이 풀려 나왔다. 학교가 끝날 때까지 그렇게 꿇어앉아 있다가 학생들이 다 돌아가고 나니까 벌거벗은 채 스무 명이나 되는 선생님 한 사람 한 사람한테 일일이 절을 하고 용서를 빌게 했는데 여선생들 앞에서는 부끄러워서 혼이 났다고 했다.

시키는 대로 하고 나니까 겨우 옷을 입으라고 해서 옷을 입고 꿇어앉아 있으려니까 집에서 어른들이 불려와 선생들 앞에 굽실굽실 허리를 꺾어 절을 하며 도장을 찍은 뒤 풀려 나왔다고 했다. 이번에는 용서해 주지만 또 다시 일본 아이들한테 싸움을 걸었다가는 퇴학을 시킬 뿐 아니라 주재소 유치장에 가둬 버리겠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얼결에 아이들을 속여넘기기는 했지만, 그 대신 의문이 내 마음속에서 삐뚜름하니 고개를 들었다. 아이들의 말처럼 형은 정말 독립군일까. 독립군이라면 너무도 오랫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형의 말대로 형은 독립군도 아무 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내 마음 속에 되살아나던 형의 모습이, 형에 대한 꿈이 다시 부서져 버리는 것을 느꼈다.

 

형이 색시 감을 선보러 다니기 시작한 것은 형이 집으로 돌아온 지 반 년쯤 되고서부터였다. 형이 집에서 빈둥빈둥 놀며 세월을 보내니까 일가 어른들이 장가나 들이라고 말을 꺼내 놓았다. 이제 판검사가 되기도 틀렸오, 다른 벼슬 자리에 오르기도 틀려먹은 것 같으니 장가나 들여 종손이나 빨리 보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아버지도 형에게 가업에나 관심을 갖고 돌볼 생각을 하라고 말해 오던 터여서

"마땅한 혼처가 있으믄 장가들이는 것두 괜찮겠지요."

했다. 형도 이제는 장가들어 자식 낳고 가업이나 물려받을 채비 차리며 살아가자고 짜음 먹었는지 집안 어른들의 말에 솔깃해 하는 것 같았다. 집에서는 여기저기 청을 넣어 색시감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형이 어느 날 어머니에게 불쑥 말했다.

-그 동안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제겐 마음에 둔 여자가 있어요."

"그래 ? 그렇담 진작 말하지 않구서. 어디 사는 뉘집 규수냐?"

어머니가 다가앉듯 하며 물었다,

"전에 제가 서울에서 공부할 때 하숙 들었던 집 딸이에요."

"동차문 밖 숭인동에 있는 그 집 말이냐?"

어머니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 어머니두 몇 번 와보셨지요?"'

"하숙 치던 여자가 과부였지? 그래, 딸 하나 데리구 사는 과부였다. 그 딸 아이가 벌써 그렇게 컸나?"

"올해 이화여전 졸업했을 거예요."

"그 아이와 연애를 했니?"

"결혼하기루 약속을 했어요."

"연애할 매는 약속 같은 거 예사루 하기 마련 아니냐? 약속한 것 때문이라면 잊어버려두 된다. 하숙이나 치는 과부의 외딸이라는 게 마음 쓰이는구나."

괜찮은 집안이었대요. 남편을 뜻하지 않게 여의구 살아가자니 하숙을 친 거지요. 어쨌든그 여자 아니면 마음에 안 들것 같애요."

"정 그렇다면 내 한번 가서 보구 오마."

이튿날 아침 서울로 향하여 늦으면 하룻밤 자고 오겠다던 어머니가 그날 밤차로 돌아왔다.

"찾아갔더니 이사 가구 없더라."

어머니가 말했다.

"이사요? 어디루 떠나갔는지 모른대요?"

형은 충격이라도 받은 듯 물었다.

"과부의 외딸이 미쳤대더라. 딸의 병을 고쳐 주러 산으루 들어간다면서 집을 팔아가지구 떠나간 지 한참 됐대. 어디루 갔는지 이웃 사람들두 모르구 있더라만 알면 또 뭐 하겠니? 미친 사람한테 장가들 수야 없잖아?"

어머니의 얼굴빛은 바람잔 호수처럼 잔잔했다.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던 형이 몸을 일으켜 자기 방으로 건너갔다.

형이 장가 드는 일에 부쩍 열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가 서울에 다녀온 뒤부터였다. 누가 와서 어디에 괜찮은 색시 감이 있다는 말을 꺼내면 형이 앞에 색 나앉아서는 색시 감의 얼굴은 어떻게 생기고 키와 몸짓을 얼만하고, 학교는 어느 정도를 나왔으며, 성격은 어떠냐는 등 숨돌릴 사이 없이 물어대고는 당장 가 보자고 성화를 부리기 일쑤였다

", 우물에서 숭늉 찾으시는구만."

혼사 말을 하러 온 사람은 이렇게 대꾸하기도 했고

"하마터면 총각 병날 번했구만."

이렇게 얼어무리기도 했다

"난 개가 미친 여자를 찾아야 한다구 고집을 부릴까봐 한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다, "

어머니는 형 모르게 다른 식구들에게 말했다.

며칠 뒤 역전말 당숙이 색시 감을 물색해 왔는데 형이 또 앞으로 나서서 당장 가 보자고 성화를 하기 시작했다.

"혼사란 그런 게 아니여."

당숙이 타이르듯 말했다. 이러저러한 집안에 암만암만한 규수가 있는데 어떻겠느냐고 말을 넣으면 신랑 측에서 맘에 있을 때 신랑 사진을 보내면서 신부 감 사진을 보내라고 한다든지, 사진 선 보는 일 치워 버리고 신랑의 고모나 숙모가 신부 감 선을 먼저 보고 나서 어지간하면 신랑감을 내세워 신부 감과 맞선을 보게 하는 것이 순서인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신랑감이 불쑥 색시 집을 찾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맞선을 보는 것도 요즘이니까 말이지 당숙만 해도 신부 감 얼굴 구경도 못 하고 장가를 들었다. 이렇게 순리대로 얘기를 해도 형은 막무가내였다.

"찾아간대두 색시 집에서 대문 안에 들여 놓지두 않을 게여."

"글쎄 그 집이 어딘지만 말씀해 주십시오."

형은 떼를 쓰듯 했다.

"그럼 자네가 망신당해두 나 원망하면 안 되네."

당숙이 말했다.

"망신 당하더라두 당숙께 고맙다구 인사드릴 테니 걱정 마십시요."

형이 말했다. 그래서 오리 떨어진 동네에 있는 색시 집을 가르쳐 주었는데 몸 단장도 하지 않고 입은 그대로의 옷차림으로 아침나절 색시 집으로 간 형이 저녁나절이 기울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 색시감 뵈 주던가?"

형을 기다리며 내둥내 우리 집에 머물러 있던 아저씨가 물었다.

"안 뵈 주던데요."

형이 대답했다.

"그런 여태 뭘 했어?"

"색시 감 보여달라구 졸라대다 왔지요."

"대문간에서?"

"대문깐은요? 그래두 사랑방에 들어가 앉아서 점심 대접까지 받았는데요."

"그건 또 무슨 소리여 ?"

형이 색시 집을 찾아가 주인을 부르니까 사람이 나와서 어떻게 왔느냐고 묻더란다. 면에 있는 양주장 집 아들인데 이 댁에 나이 찬 규수가 있다는 말을 듣고 선을 보러 왔노라고 대뜸 찾아온 연유를 말했더니 색시 감의 어머니로 보이는 마나님이 깜짝 놀란 얼굴로 형의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놀란 빛을 슬며시 감추며 혼사란 함부로 덤벼서 되는 일이 아니니 정 의사가 있으면 중간에 사람을 넣어 예절을 갖춰 차근차근 펼쳐 나가야 할 것이며, 그 일을 떠나서 이왕 가깝지도 않은 길을 왔으니 사랑에 들어가 쉬어나 가라고 하더란다.

"그게 돌아가란 소리여."

재미있기도 하고 어처구니없기도 하다는 듯 듣고 있던 당숙이 끼어 들며 말했다. 어쨌든 청은 색시 어머니의 말을 따라 사랑방으로 들어갔더니 색시 아버지가 반기는 표정도 아니고, 그렇다고 썩 싫어하는 표정도 아니고, 덤덤한 표정 속에 거북스럽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하다는 기미를 감추려고 애쓰며

"뉘기신가?"

하고 새삼스럽게 물었다. 면에 있는 양주장집 큰 아들 아무개라고 말했더니, 무슨 일로 어떻게 왔느냐고는 묻지도 않고,

"어서 앉으시게."

해서 앉으니까 아버지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형은 용건을 말하려고 기회를 엿보았지만 색시 아버지가 쉬지 않고 얘기를 이어 나가는 바람에 그 대꾸만 하다가 점심상을 받고 말았다. 꽤 마음을 쓴 밥상이었다. 사양 않고 색시 아버지와 겸상을 해 점심을 먹으며 생각하니 색시 아버지는 신랑 아버지 칭찬을 되풀이 되풀이 늘어놓으면서 그 사이사이 신랑감에 관해 알고 싶은 것은 모조리 물어 대답을 들은 셈이라는 것이다. 점심상을 물리고 나서 이제 돌아가 주었으면 하는 기색을 보이는 것을 모른 척하고 색시 아버지 앞에 용건을 내 놓았다.

"색시 감을 보여달라구? . . . 색시 감 애비 에미 봤으면 됐지 뭘 그러시나?"

색시 아버지는 다시 한번 껄껄 웃고는 이리저리 말을 돌려 완곡하게 거절을 해 나갔다. 형이 아무리 졸라도 그저 좋게 피하며 빠져나갔다.

"색시 감이 신랑감 눈앞에 나설 때는 머리 곱게 빗구. 분단장 곱게 하구, 새 옷으루 맵시 내구두 부끄러운 법인데 이렇게 별안간 찾아오면 눈앞에 나설 수가 있는가?"

결국 의사가 있으면 중매장이를 넣어 정식으로 혼담을 벌이자는 얘기였다. 형은 할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모처럼 오셨는데 대접이 소홀해서 어쩌지유?"

돌아가겠다고 인사를 하자 색시 어머니가 바깥마당 끝까지 따라 나오며 말했다.

"부자집 아들이라 특별 대접을 받았구만. 다른 사람 같았으은 미친눔 끌어내라구 소리를 질렀을 게야. 색시 감이 곰보건 쩔뚝발이건 뵈주기만 하은 혼인을 하겠단대믄 모를까 누가 함부루 그런 자리에 딸자식을 내놓겠나, 이 사람아?"

당숙의 말을 따라 온 집안 사람이 허리를 잡으며 웃어댔고. 아버지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싱거운 눔"

했다.

이렇게 된 바에야 그 집 규수를 한번 보자는 어머니 말을 따라 사람을 보내 색시 집에 말을 넣은 결과 색시 집에서도 좋다고 해서 선볼 날짜를 잡았다. 헌데 색시 집에서 퍽 조심스러워해서 색시 집으로 선을 보러 가거나 어느 자리에 마주 앉거나 하지는 않기로 했다. 며칟날 몇 시쯤에 색시 이모가 색시를 데리고 장거리의 아무 포목점에 물건 흥정을 하러 나갈 테니 그 때 그 포목점으로 와서 색시를 보란다는 것이었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색시한테도 숨기고 하는 일이니 이쪽에서도 알아서 조심을 해달라더라고 했다.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어머니, 고모. 당숙모, 큰누나, 이렇게 여자 넷이서 색시감을 보러 나갔고. 형도 좀 뒤 처져서 따라나갔다, 한 시간쯤 있다가 돌아온 어머니 얼굴에는 퍽 흐뭇해하는 빛이 떠돌고 있었다.

"색시 감 괜찮더라."

어머니가 한 말이었다. 키도 훤칠하고. 몸짓도 듬직하고, 두툼한 귓밥에 탐스러운 볼하며, 어글어글한 문에 오똑하면서도 날 서지 않은 코며, 반듯한 이마에 음전한 턱하며. 눈에 쏙 들어 지나가는 것처럼 말을 걸어 보니 되발아지지 않고, 인사성 밝고, 목소리 얌전하고, 어머니가 고르고 싶던 며느리 감이더라는 것이다. 고모도 당숙모도 큰누나도 마음에 들어했다.

니 맘에 짚이는 게 있어서 그 집에 가서 허튼 수작하면서 장인 자리랑 겸상해 점심을 얻어 먹구 왔나부다. 집안두 그만하면 괜찮구 서울은 아니라두 여자 고등 보통학교두 나왔겠다. 더 볼 것 없이 청혼하자."

어머니가 단안을 내리듯 말하고는 그래도 형의 의중을 한 번 더 알아보려는 듯

"어때? 이 에미 말이 틀리지 않았지?"

형에게 물었다,

"괜찮군요."

형도 마음이 끌리는 듯 대답했다.

이튿날 어머니가 사람을 보내 색시 집의 의향을 알아봤더니 이쪽에서 청혼을 하면 받아들일 생각이더라고 했다.

"그럼 청혼을 하자."

어머니가 말했다. 한데 형이 별안간 싫다고 고개를 내둘렀다. 어째서 싫다는지 얘기도 하지 않고 덮어놓고 안 하겠다고만 했다. 그만한 규수 다시 만나기도 힘들테니 마음을 정하라고 타이르다 못해

"너 눈 한번 전봇대 꼭대기만 하구나."

고모가 말했고

"놓치긴 정말 아까운 색시 감이야."

당숙모가 말했고

"나두 고모랑 숙모 말에 동감이야."

큰누나도 말했다.

"내 생각두 그렇다만. 니 맘대루 하려무나. 평양 감사두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데."

어머니는 못마땅해하면서도 할 수 없는 노릇이라는 듯 말했다. 그 규수와의 혼사말을 처음 꺼낸 역전말 당숙도 형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끈질기게 애써 보다가

"도무지 난 알 수가 읎다니깐"?

입맛을 쩝쩝 다시며 물러앉고 말았다.

그 뒤로도 혼담은 끊이지 않고 들어왔는데, 혼담이 들어오면 형은 한시가 급한 듯 서두르며 열을 내다가도 선을 보고 나서 정혼하려고 하면 별다른 까닭도 없이 싫다며 혼담을 파해 버리곤 했다.

"선보는 재미 놓칠까봐 장가를 안 가나? 평생 장가들지 말구 선이나 보러 댕기래지."

이렇게 뒷구멍에서 코방귀 뀌는 사람이 있다는 말도 들려 왔다. 형이 열 번째로 혼담을 깨 버리자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던 어머니도

"너 장가들 생각이 정말 있는 거냐?"

하고 따지고 들었다. 장가들 생각도 없으면서 남의 집 딸 망신만 주고, 마음만 심란하게 만들어 놓는다는 원성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가 형과 같아서 형과는 친구처럼 어울리던 밤골 당숙은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무렵 어느 날 느 형이 나를 찾아와서 이런 말을 하더구나. 지난 일은 잊어버리구 뱃가죽 두둑하게 살아보자구 애써 마음을 먹어보지만 잘 되지를 않는다구 말야. 빨리 장가를 들어 버리자굴 서둘러 선볼 날짜를 잡구는 여자를 보러 나가면서 이번에는 어지간만 하면 눈 딱 감구 정혼을 하리라 마음먹어 보지만, 막상 정혼을 하려면 어떻게 해 볼 도리 없이 마음이 변해 버린다나. 이만하면 더 바랄 게 없다구 생각된 여자두 몇 있었지만. 저 여자가 내 아내가 된다는 생각을 하면, 저 여자를 데리구 살면서 까닭 없이 미워하구 괄시하게 뒬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떠오르면서 열이 식어 버린다는 게야. 몸은 급해서 서두는데 마음이 자꾸 옴츠러들면서 도망을 친다나. 그래서 형-그러니까 느 아부지는 당분간 느 형과 선 보러 댕기는 일을 못 하게 하구 그 대신 마름들을 찾아댕겨 보게 했어. 느 형 생각을 딴데루 돌려 볼 겸 장차 물려받을 아부지 땅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익혀 두두룩 하려는 생각이셨지."

아버지의 계책은 들어맞은 것 같았다. -군데 마름을 찾아보고 온 형은 열중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아냈다는 듯한 태도였다.

"어디 괜찮은 처녀 있거든 중태 좀 스세요."

친척이나 가까이 아는 사람을 만날 때면 농담 비슷하게 짝을 찾아달라고 보채던 형의 호소가 안개 개이듯 걷혀 버린 것이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마름 몇을 알려 주었는데, 형이 뜻밖에 큰 관심을 갖고 파고드는 바람에 장부책까지 꺼내 보이며 모든 마름의 이름과 위치와 마름들이 각자 맡아 돌보고 있는 땅의 크기까지 형에게 일러주었다. 형은 마름들의 이름과 사는 곳을 수첩에 꼼꼼히 적어 넣고는 이윽고 그들을 찾아보겠다고 나섰다, 형은 우선 가장 먼 곳부터 가겠다고 했다. 아버지가 주재소에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억지로 떠맡기는 바람에 소방대 대장 감투를 쓰고 있었다.

", 이거 소방대장님이 모처럼 청을 하셨습니다만 원칙적으로는 허가해드리기가 곤란한 입장입니다. 죄송스런 말씀입니다만 아드님의 현황 및 동태를 항시 파악하구 있으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구 있습니다."

왜놈 순사 부장이 이렇게 대답하더라고 했다.

"부장님한테 얘기한 것처럼 아들애가 맘 잡는 것 같으니 편의 좀 봐 주셔야겠습니다."

아버지가 다시 한번 청을 했다.

"좋습니다. 아드님 맘 잡는다니 허가해드려야지요. 헌데 조건이 있습니다."

"뭔가요?"

"소방 대장님께서 아드님을 책임지시겠다구 서약을 해 주십사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지요."

"그리구 아드님이 어디를 가든 도착 직후. 출발 직전에 현지 주재소에 보고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해야 될 노릇이면 해야지요."

그렇게 해서 형은 십리 밖을 멀리 벗어날 수 있었다. 어떤 일가집 아저씨 한 분은 형이 마름들을 찾아다니는 일에 열성을 보인 것은 졸졸 따라다니는 조선 사람 형사 놈 꼴 보기 싫어 따돌릴 핑계를 찾기 위해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 성으로는 (가네미쓰)이고 조선 성으로는 김가인 그 형사 놈은 늘 형의 뒤를 밟아 다닌다고 했다. 뒤를 밟다못해 형의 방안에까지 들어와 책장을 뒤지곤 하는 바람에 형의 책들을 아예 길거리에 면한 사랑방에 내놓아 두기까지 했다.

"상부의 지시가 있어서,,,,,,."

가네미쓰 형사 놈은 이런 말로 대문을 밀고 들어와 형의 방 툇마루에 앉아 형에게 무슨 말을 물어 보기도 했고, 사랑방에 들어가 책장에서 이 책 저 책 뽑아보다가 돌아가곤 했다. 그림자 같은 가네미쓰 형사 놈도 형이 면 경계를 벗어나면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밤골 당숙의 말로는 형이 면 경계를 벗어난다고 해서 자유로와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 쪽에 가면 그 쪽 형사가 형을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어쨌든 형은 빙 둘러 마름들을 다 찾아보고 와서는 새잽이로 마름들을 만나 보러 가곤 했다.

"지주라는 건 일 년에 한두 번쯤 마름을 찾아가는 게여. 한 달이 멀다 하구 마름을 찾아댕기믄 귀찮아하는 법이여."

아버지가 어느 날 형을 불러 앉혀놓고 타이르듯 말했다.

"마름을 찾아댕기는 게 아니구 소작인들을 찾아댕기는 거예요."

형이 대답했다.

"소작인은 왜?"

"땅의 토질이 어떤지, 소출이 얼마나 되는지. 살아가는 모양은 어떤지. 이것저것 보구 듣구 싶어서요."

"그런 건 마름한테 물어라. 마름은 지주가 다루구. 소작인은 마름이 다루는 게여."

형은 그만두지 않고 소작인들을 만나러 다녔다.

"우리 땅 좀 밟아 보러 가야지."

형은 아버지의 환심을 사려는 듯 이렇게 말하며 집을 나서곤 했다. 아버지는 그러는 형을 대견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한데 몇 달이 지나자 마름들이 찾아와 아버지 앞에 불평을 터뜨려 놓기 시작했다.

"아드님 이 소작인들을 찾아댕기며 들쑤성거려 놓아설라므네 소작인들이 제 말을 들어먹을려구 하지를 않습니다니까."

"이대루 나간다믄 마름일 볼 수가 음을 것 같습니다니까."

"우리 애가 어떻게 했다는 겐가? 자세히 말해 보게나."

"아드님께서,,,,,,."

형이 소작인들을 찾아다니면서, 농사 지을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서는 절대루 땅을 빼앗아 소작권을 다른 사람 손에 넘기는 일이 없을 테니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것이며, 마름이 무어라고 하거든 형을 찾아와 고해 바치라고, 소작인들을 부추켜 놓는 바람에 소작인들이 마름의 말을 뉘 집 강아지 짖는 소리쯤으로 듣고 코방귀를 핀다는 것이었다,

"소작인놈들이 속이려 들거나 잔꾀를 쓸 때는 땅을 뺏겠다구 꽝꽝 울려 대야 딴 짓을 못 하구 수그러듭죠니까."

"우리 아이는 내가 타이름세. 그러니 자네들은 돌아가 일이나 잘 보게."

아버지는 마름들을 돌려보내고 나서 형을 불러들였다.

"네가 소작인들을 들쑤성거려 마름 말을 듣지 말라구 했다는 게 정말이냐?"

"저두 아버지한테 말씀드리려던 참입니다. 돌아다녀 보니 소작인들 사는 꼴이 말이 아니어서 처음 생각에는 도조를 조금 덜 받자구 아버지께 말씀드리려구 했었습니다. 헌데 소작인들 말이 마름한테 뜯기지만 않아두 살 것 같다구 하기에 자세히 알아보게 된 겁니다. 마름 놈들이 어떤 짓을 하구 있는지 아십니까? 말 안 들으면 농토를 뺏아 가지구 다른 사람을 주겠노라구 은근히 공갈 협박을 해 가지구 정해진 도조 외에 벼를 더 받아 착복하구, 어떤 놈은 아주 드러내 놓구 제맘대루 소작료를 올려 가지구 배를 채우구 있기두 했습니다. 아버지가 정하신 소작료는 3할이잖습니까? 헌데 5할을 받아내 가지구 그 중 2할을 제 뱃속에 처넣는 놈두 있습니다. 공출하구, 도조 바치구, 마름 놈한테 떼이구, 그렇게 해서 양식 떨어진 소작인들 한테 마름 놈들은 장리 쌀을 꾸어 주면서 생명의 은인이나 된 듯 행동하구 있습니. 소작인의 딸을 뺏어 첩으로 삼은 마름 놈두 있었습니다. 소작인들은 굶어 죽게 돼 가지구 농토를 자꾸 떠나갑니다. 소작인들이 먹구 살 만 해야 농토를 지키며 농사를 짓게 되구 농사를 지어야 지주두 소작료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농토를 잃구 도회지루 나간 소작인과 그 식구들은 왜놈들한테 잡혀 공장이나 전쟁터루 끌려가 굶주리구 영들구 지척서 죽어가---"

말이 옆골목으로 새나가는 것을 깨닫고 형이 아차 하는데 아버지의 입에서 호통이 터져 나왔다.

"이놈아, 아가리 닥쳐! 징역 일년이 모자라서 또그 따위 아가리질이냐? 그래서? 그래서 징용꾼들 도망시켜 가지구 숨겨 줄 궁리하구 있는 게냐? 이 불효막심한 눔 같으니라구. 다시는 나댕길 생각 말구 방구석에나 틀어박혀 있어!"

형은 다시 십리 안쪽으로 발이 묶였다. 하지만 전번에 발이 묶여 있을 때보다도 한층 더 초라해 보였다, 마름을 만나러 간다며 면 경계를 후딱후딱 넘기다닐 때의 형은 모처럼 윤이 흐르고 힘이 넘쳤었다. 그때의 활기 되살아나던 모습 때문일까. 형의 모습은 더 그늘지고 맥 풀려 보였다. 그 모습이 딱하게 보였음인가, 어머니는 다시 형의 혼처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장거리 포목점에서 선을 보았던 첫 번째 규수를 못 잊어했다. 그 규수라면 형의 마음을 잡아 앉혀 기운을 되살려 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부탁을 받고 규수 집을 다녀온 역전말 당숙은 한 달 전에 규수가 시집을 갔다더라는 말을 전했다.

"양주장집 아들 아니면 우리 딸 시집 못 가는 줄 알았남?"

이런 혹까지 붙여 가지고 온 것이다.

"그런 욕 먹어 싸지."

어머니는 그 욕을 순순히 받아들이고는

"아제, 그런 규수 어디 또 읎을까요? 그런 규수만 나선다면 이젠 규철이가 뭐래던 내가 우겨서 장가를 보낼 테니깐요."

아까운 생각을 아무래도 잊어버릴 수가 없다는 듯 말했다.

집안 식구들이 깜짝 놀랄 소리를 형이 꺼내 놓은 것은 역전말 당숙이 형의 색시감 사진을 가지고 왔을 때였다. 어머니와 누나들이 사진을 돌려보며,

"꽤 복스럽게 생겼는데."

이렇게 의견을 모으고는 형을 불러들였는데, 어머니가 내밀어 주는 사진을 받아들 생각도 않고 보는 등 마는 등 힐끗 내려다보고 난 형이

"어머니한테 진작부터 말씀드릴려구 했었는데요. "

하고 입을 열었다. 형이 멋적어 하기도 하고 더듬거리기도 하면서 빙글빙글 돌려 한 얘기는 결국 색시 감을 형이 골라 놓았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미심쩍은 얼굴빛을 하고 잠시 형을 바라보다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구나. 그래 뉘집 규수냐?"

하고 물었다.

"오목골 사는 색시예요. "

형은 처음 말을 꺼낼 때와는 달리 킴착하게 대답했다.

"오목골이라니?"

"야우산 천둥고개 밑에 있는 오목골 말인가?"

당숙이 어머니 말 끝에 잇대어 물었다.

"."

"아니, 그 촌구석에 사둔 맺을 만한 집안이 읍을 텔데."

"사둔 맺을 집안이 따루 있습니까? "

"그래 그 동네 어떤 집 규순가?"

"이 칠성씨 딸이에요."

"이 칠성이가 누군가?"

차근차근 따지고 들어가니 형이 골라 놓았다는 색시 감은 우리 집 땅을 부치는 이 칠성이라는 소작인의 딸이었다,

"뭐라구?"

어머니와 누나들이 동시에 외쳤다. 그래도 어머니가 그 중 먼저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칠성이라는 사람 딸이 네 맘에 쏙 들었다는 게냐? 그래 그 색시가 학교는 어딜,,,,,,"

"어머니, 그 색시와는 이미."

"어머나!"

누나들 얼굴이 새빨개졌다

어머니는 부랴부랴 역전말 당숙을 오목골로 보냈다. 다녀온 당숙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하나에서 열까지 그럴싸한 구석이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이었다. 똥구멍이 째지게 가난한 것은 가 보기 전부터 짐작한 일이지만, 색시 감을 비롯해서 온 집안 식구들이 소학교 문턱도 못 넘어 본 알무식쟁이들이어서 예의 범절 모르는 것은 고사하고 도무지 말이 통하지를 않더라고 했다.

"걔가 골라 놨다는 물건은 미친 것 아니면 거지 같은 것들뿐이니 어떻게 된 심판이야? 아제, 이 일을 어떻게 하지요?"

어머니가 화가 난다는 듯 툴툴거리며 당숙한테 물었다.

"형님께 말씀 올려서 땅 마지기나 떼 주구 끊어 버리지요 뭐."

당숙이 말했다.

"논 한 마지기에 얼마나 하지요?"

"쌀 댓 가마니 하겠지요 뭐."

"그렇다면 즈 아부지한테 알릴 것 읍이 나래두 두어 마지기 사 줄 수 있을 것 같구만서두 그쪽에서 선선히 말을 들을라나요? "

"듣다마다요. 예전부터 살림 어려워지은 딸 팔아먹는 게 촌 농사꾼들인데요. 고맙다구 절하면서 말을 들을 겝니다."

"그럼 아제가 애를 써 주세요."

당숙이 양주장에서 술 한 병 담아들고 오목골로 갔다. 오목골에서 돌아온 당숙의 얼굴에는 벙글벙글 웃음이 피어있었다. 지린내, 흙내, 군내 나는 좁은 방에서 쪽 떨어진 소반을 사이에 놓고, 김치를 안주 삼아, 송구스럽다고 쩔쩔매는 이 칠성이한테 술을 권하면서

"당신 딸과 우리 조카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었다는 말을 듣구 왔는데."

슬쩍 말을 꺼냈더니

"올라가지 못할 낭구 쳐다보지두 말라구, 딸년한테 야단을 쳤습지요니까."

이 칠성이가 먼저 숙이고 나오더라는 것이다. 보아하니 쌀 한 가마 앵겨주고 물러앉으라고 해도 별탈 없을 듯 싶었지만, 좋은 것이 좋다는 생각에 논 한 마지기 사 주겠노라면서 앞으로는 딸자식 간수 잘 하라고 말했더니 방바닥에 이마가 닿도록 절을 하면서

"고맙습니다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를 수없이 되풀이하더라고 했다.

"형수님, 이젠 됐습니다. 맘 턱 놓으시구 좋은 자리에 규철이 장가들일 생각이나 하십시오."

당숙이 의기 양양해서 말했다.

한데 말썽은 형이었다. 이 칠성의 딸을 단념하라는 말에 형이 펄쩍 뛰었다. 타이르고 달래고 해도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렸다. 이 칠성의 딸이 형의 애를 뱄을지도 모르는데 단념한다는 것은 말이 되느냐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떠들었고, 이 칠성의 딸을 비롯해서 온 식구들이 소학교 문턱도 못 넘어 본 책임이 우리 집에 있다고 어거지를 쓰며 대들기도 했다. 아버지에게는 쉬쉬하던 그 일을 아버지가 알게 된 것은 형이 직접 아버지를 대면하고 그 얘기를 털어놓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식구들은 아버지 입에서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가슴을 죄었다. 불호령과 함께 아버지가 선불 맞은 호랑이처럼 길길이 뛰어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며 숨을 죽였다. 형은 호랑이 앞에서 하룻강아지처럼 깽깽 짖어대고 있었다. 그 여자는 제 아내나 마찬가집니다. 제 아이를 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칠성씨의 가족과 우리 가족 사이에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가난하고 무식하고 예의 범절을 모르고, 짐승처럼 살아가게 된 것은 우리 집에 책임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형은 제 정신이 아니로구나, 제 정신이라면 아버지 앞에서 감히 저런 소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다른 식구들은 이렇게 생각하며 몸을 떨었다.

"니 생각이 정 그렇다면 니 맘대루 이 칠성이 딸애와 부부의 연을 맺으려므나."

아버지의 입에서 이런 말이 조용하게 흘러나오자 식구들은 불호령이 떨어졌을 때보다 더 깜짝 놀랐다. 형 자신도 어리벙벙한 얼굴로 한동안 아버지를 쳐다보고 앉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고맙습니다, 아버지."

하고 앉은 채 절을 꿉벅했다.(아니 저 어른이 정신이 있는 겐가 없는 겐가?) 그때 어머니는 아버지를 두고 이렇게 입안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고마울 것 읍다, 너는 너구 나는 나니깐. 니가 너하구 싶은 대루 무슨 짓을 하던 상관 안 할 테니깐 그 대신 어디 가서 너 혼자 살두룩 해. 장사를 하던 농사를 짓던 또 빌어먹던 너 먹을 건 니가 벌어 먹구 살어, 부자의 연두 끊구 가문과두 의절해라."

형은 다시 멍청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다가 생각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그토록 이해가 없으신 분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벌떡 일어나 형의 방으로 건너가 버렸다. 형의 방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쿵쾅하고 들려 왔다,

"미친 눔!"

아버지가 뱉아내듯 말했다.

"그만하면 저두 알아들었을 테니, 모른 척 내버려두세요. 철이 널 들어서 그러는 거니깐."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말했다.

"미친 눔!"

아버지는 다시 한번 뱉아내듯 말하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형은 자기 방 속에 틀어박혀 며칠 동안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담배 연기만 문 틈으로 쏟아져 나왔다. 엎치락뒤치락하며 무슨 일을 꾸미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 시간에 어머니는 역전말 당숙하고 쑤군쑤군 초의를 했다

"쟤가 불뚝하는 성질에 이칠성이 딸애를 찾아갈지두 몰라요. 이왕 논 두마지기 사 주기루 했던 거니깐 한 마지기 더 사주구선 이 칠성이 딸애를 다른 데루 보내 버릴 수는 읎을까요? 그만그만한 제짝을 찾아 주어 급히 시집을 보낸다던가, 도회지 공장 같은 데 취직을 시켜 준대던가,,,,,,"

"알겠습니다. 그까짓 놀음 어려울 것 읎지요 뭐."

어머니 손에서 당숙 손으로 돈이 옮겨갔다. 그러고서 며칠 동안 당숙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형이 외출을 한 것은 방구석에 틀어박힌 지 열흘 만이었다. 아침나절 이러쿵저러쿵 말도 없이 집을 나간 형이 저녁 나절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형의 얼굴은 퉁퉁 부풀어 있었다.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짐작이라도 했던 듯 어머니는 형이 나가자 바로 사람을 보내 밤골 당숙을 불러다가 형의 방에 앉혀 놓고 있었는데,

"어딜 갔다오지?"

당숙이 물었지만 형은 못 들은 척 대꾸도 안하고 누구를 뒤쫓기라도 하듯 뿌하니 내달아 안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그 여자 어디루 빼돌리셨지요?"

형은 떡 버티고 서서 따지듯 물었다.

"여자를 빼돌리다니?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

"모르세요? 오목골 이 칠성씨 딸 말이에요. 어디루 빼돌리셨지요?"

"듣자듣자하니 너 못 할 소리가 읎구나. 내가 그런 촌 계집아이 빼돌릴 궁리나 하두룩 한가한 줄 아니?"

", 시침떼지 마세요. 누굴 시키셨지요? "

"오빠?

큰누나가 끼어들었다.

"그 여자를 그 정도루 생각하는 거라면 데꺽 가서 붙잡아 두지 않구 무엇 때문에 열흘 동안이나 꾸물거리구 있었수? 우물쭈물하다가 놓치구서 왜 어머니한테 화풀이유?"

"너두 공모자냐?"

형이 큰누나를 쏘아보며 물었다.

정말이지 오빠 왜 그러우? 오빠가 소학교 문턱두 못 넘어 봤다는 여자와 결혼하겠다구 우기는 근본 의도가 뭐유 ? 솔직한 대답 좀 들어봅시다,"

"건방진 소리 지껄이지 말아. 그 여자가 너보다 못한 것이 하나두 없어."

"그 여자가 오빠와 결혼한다구 해서 행복해질 것 같수? "

"그 여자와 결혼하려는 것은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야."

"그럼 불행해지기 위해서유?"

"투쟁을 위해서다. 부당한 삶과의 투쟁을 위해서야."

"오빠가 하려는 투쟁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오빠의 투쟁을 위해서 불쌍한 한 여자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지는 말아요."

"그 여자는 더 불행해질 수가 없어. 그 여자는 불행의 밑바닥에서 살아왔어. 나와 결혼한다면 한 발자국이라두 불행 속에서 빠져 나오면 나왔지 더 불행해지지는 않을 거다."

"오빠는 세상을 너무 자기 위주로 단룬하게 생각하는 것 같애. 그 여자는 오라와 결혼하구 단 일 주일이 못 가서 오목골 오막살이집을 못 견디게 그리워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우, . 그 여자에게는 잃을 것이 없다구 단정해 버리는 오라의 사고 방식은 커다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구 봐요. 어떤 형편에 놓여 있는 사람두 잃어버리면 아까울 것들을 가지구 있기 마련이우. 잃어버릴 것이 없는 사람이라구 취급받는 것처럼 모욕은 없을 거예요. 오빠가 그 여자를 잃어버릴 것이 없는 사람이라구 보는 건 큰 모순이우. 오라가 그 여자를 철저하게 멸시하구 있다는 얘기니까 말이우."

"궤변을 늘어 놓구 있구나. "

"각자 자기의 귀중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구 간직하면서 결합되는 결혼이라야 행복해질 수 있터요. 그런데 그 여자와 오라의 결혼은 각기 자기의 귀중한 것을 잃어버림으로써만 가능한 결합이예요. 결합이라구두 할 수 없지"

"아이들이 태어난다. 두 세계를 멸시하거나 증오하지 않구 똑같이 애정의 눈으루 바라볼 수 있는 아이들이 태어나게 된단 말이다."

"그런 아이들을 태어나게 하기 위해 부모는 괴로워하며 한평생을 살아가야 된다는 얘기유?"

"뜻이 담긴 괴로움이니깐, 미래를 잉태한 괴로움이니깐."

"오빠는 환상 속에서 살아가구 있는 사람 같아. 커다란 사명을 두 어깨에 지구 있다는 환상 같은 거 말이우. 그 사명이란 다름아니라 끊임없이 괴로워하는 것이라구 생각하는 것 같기두 하구 흑시 괴로워함으로써 보상받을 일이라두 있수? 오빠의 괴로움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회생시키거나 곤혹 속에 빠뜨린다면 그건 박애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야. 괴로워하는 일을 도락으루 삼는 건 아닐 테지, 오빠?"

"주둥아리 닫쳐?"

형은 누이의 뺨을 철썩 때렸다.

"얘들이 왜 싸우구 야단이냐?"

어머니가 말했다.

어쨌든 오빠의 명분을 위해 그 여자를 데려다가 감옥살이시키는 일은 절대 반대유. 우리 가족의 입장두 그래. 불쌍한 그 여자를 옆에 두구 미워해야 하구 멸시해야 하는 곤욕을 치루두룩 하지 말아요."

"이 기집애야. 니까짓 게 뭘 안다구! 너같이 욕심대루 뱃속에 처넣구 소화제나 찾는 바보는 모르는 일이야."

당숙이 형을 끌어 내갔다.

"당숙, 술 좀 사 주시우."

형이 끌려나가면서 말했다.

"양주장 집 아들두 술을 사 먹나?"

당숙이 웃음의 소리를 하고 있었다.

밤골 당숙이 그 당시를 회상하며 하는 말을 들으면 그날 형은 잘 마실 줄도 모르는 술을 퍼마시듯 하면서 이 칠성씨의 딸을 어떻게 해서든지 찾아내고야 말겠다고 되뇌이곤 했다는 것이다.

왜놈들이 -국민 징용령-이라는 것을 만들어내지만 않았더라면 형은 정말 이 칠성씨의 딸을 찾아나섰을 지도 모른다. 감옥살이를 한 경험이 있다고 해서 그 동안 일본 병정으로 끌려가지 않아도 되었던 형도 새로 만들어진 -국민 징용령-에 따라서 징용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다리 한 짝이 짧아 징병이고 징용이고 면제받고 있는 밤골 당숙은 찾아와서 우리 식구들과 함께 형의 일을 걱정했다. 당숙의 말을 들으면 그때 형은 자기가 -국민 징용령-의 대상 속에 들어가게 된 것을 겁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징용 영장이 나오면 끌려가지요 뭐. 어차피 한 번은 죽을 목숨."

형은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 같았다고 했다.

광산에 취직을 한 사람은 징병과 징용이 면제된다고 해서 광산이 터지도록 사람들이 밀려든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사무직은 일본 사람들이 모조리 차지해 버리고, 조선 사람은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가릴 것 없이 광부나 되어야 하는데 그것도 자리가 거의 바닥나 일본 사람 사무원한테 돈을 많이 쥐어 주어야 겨우 얻어 가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소문도 잠깐이었다. 이젠 광부 자리도 터져 나갈 듯 사람이 꽉 차서 한 사람도 더 받아들이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우리 양주장의 젊은픈 인부 한 사람이 나이든 자기 형을 대신 양주장에서 일하도록 할 테니 자기는 광부 자리를 얻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아버지를 조르다가 징용 영장을 받고 끌려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형을 불러

"광산에 광부 자리 하나 마련해 놨으니 내일부터라두 나가두룩 해라. 넉넉잡구 한 달 동안만 댕겨. 한 달 안에 서기 자리 하나 마련해서 사무실에 앉혀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니깐."

"누구한테 그런 약속을 다 받으셨습니까?"

형은 꼭 알고 싶어 묻는 것이 아니라는 듯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거짓말일까 봐 걱정이 되니? 광산 소장한테서 받았다."

"아버지, 고만한 힘을 지니구 계셨으면 며칠 전 징용 나간 양주장 인부두 광산에 들여보내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내 청이바구 해서 아무나 다 받아 주는 줄 아니? 내 아이들이니까 마지못해 받아 주는 게야."

"징용 나간 양주장 인부가 들어갈 자리를 제가 뺏어 가지구 차지해 버린 것 같은 기분입니다."

"바보 같은 소리 말어."

아버지가 말했다.

며칠 뒤부터 형은 광산에 나가기 시작했다. 헐렁한 작업복을 입고, -지까다비 (작업화)>를 신고, 수건을 뒤꽁무니에 꿰어 카고 <벤또(도시락)>를 달랑거리며 어깨가 축 처져서 터덜터덜 걸어가는 형의 모습이라니. 나는 동네 아이들이 보고 물어 올까봐 부끄러웠다.

"우리 형 말야. 일본 놈들한테 끌려가지 않을라구 일부러 광산에 댕기는 거야. 한 달 안에 서기루 끌어올려 준다구 광산 소장이 우리 아부지한테 약속했대."

나는 말막음으로 미리 아이들한테 말배 버렸다.

한데 한 달이 지나도 형은 여전히 헐렁한 작업복 꽁무니에 수건을 매달고, -지까다비-를 신고 -벤또-를 달랑거리며 축 처진 어깨를 하고 터덜터덜 걸어다니고 있었다. 서기라는 것도 별다른 게 아니었던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데, 어느 날 광산에서 돌아온 형을 앉혀 놓고 아버지가 말했다.

'거 서기 자리 싫다구 했다믄서?"

", 이리저리 옮겨 댕기기두 싫구, 또 광부 노릇두 할 만해서요."

"아무리 그래두 그렇지, 광부 노릇이 서기 노릇만 하겠니? 서기 자리루 옮겨 앉거라."

"생각해 보겠습니다."

"생각해 볼 게 뭐 있니? 그 천야만야한 땅굴 속 생각만 해두 소름이 끼친다. 낼 당장 사무실루 옮겨가거라."

어머니가 펄쩍 뛸듯 말했다.

"생각해 보겠어요."

"글쎄 생각해 보긴 뭘 생각해 본다는 게야? 이상야룻한 애 다 보겠네."

형의 차림새는 변하지 않았다. 변했다면 퀭해진 눈과 훌쭉해진 볼과 낀지 않아 자라난 수염이었다. 형은 머리와 얼굴과 옷에 휜 돌가루를 뒤집어쓴 그대로 광산에서 돌아오곤 했다.

"무슨 고집이야? 고집두 부릴 때가 따루 있지."

말이 없어진 형을 향해 어머니가 안타까운 듯 소리쳤다.

"할 수 없지. 지 고집대루 하라구 내버려 두는 수밖에."

아버지가 입맛을 다셨다.

"오빠 투쟁 하나봐요."

형이 안 듣는 데서 큰 누나가 비꼬는 듯 말했다

"투쟁을 하다니?"

어머니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오빠는 투쟁을 좋아한다니깐."

큰누나는 말하고 킥킥 웃었다.

나는 동네 아이들한테 거짓말을 한 것이 되었다. 한 달은커녕 몇 달이 지나도 형은 서기가 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미국 폭격기 B29에 정신이 팔려 형의 일에는 별로 마음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아이들도 이제 형을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형은 아직까지 아이들이 바라는 일을 한 가지도 해내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B29얘기가 아이들 입에 오르내리고 부터는 독립군 얘기도 하지 않게 되었다. 독립군 얘기보다는 B29에 타고 있었다는 코 큰 미국 비행사 얘기가 판을 쳤다. 이웃 도회지에 나갔다가 미국 비행기의 폭격을 만나고 돌아온 사람이 비행기에 타고 있던 미국 비행사를 보았는데 싱글싱글 웃으며 기관총을 쏘더라고 했다. 아이들은 B29가 우리 동네 하늘에도 날아와 주었으면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광산이 네 군데가 있으니까 미국 비행기가 언제 날아올지 모른다며 학교에서는 부지런히 방공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병정이 조선 땅에 쳐들어오게 되면 독 주사를 놓아서 조선 사람을 모조리 죽일 것이다, 미국 병정들은 어린애를 잡아먹기도 한다. 학교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해 주었지만 아이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일본 전투기가 B29를 쫓아가려고 애를 바락바락 썼지만 쫓아가지 못하고 되돌아온 얘기며, B29가 일본 사람들한테는 폭탄을 던지고, 조선 사람들한테는 과자를 던진다는 얘기가 귓속말로 아이들 사이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B29를 날마다 기다렸다. 하지만 B29는 한번도 우리 동네 하늘에 날아오지 않은 채 해방이 되고 말았다.

 

해방되던 날 밤은 집집마다 촉수 높은 전등을 문 밖으로 내걸어 큰 거리는 물론이고 골목골목까지 대낮처럼 밝았다. 바람이 시원한 그 여름 밤, 집밖으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앉아 밤 깊어 가는 줄 모르고 얘기의 꽃을 피웠다. 아이, 어른,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밤거리에 하얗게 살려 있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소리 지르며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오랜 날들을 밤이면 어둠 속에 묻혀 있던 거리였다. 촉수 낮은 전등을 겹겹으로 가리고 또 가려 불빛이 새어나오지 못하던 거리, 사람들은 일찌감치 집안으로 숨어 버리고 괴괴하리만큼 조용한 골목 속에서 어쩌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을 향해 방공 대원들이 외치는 소리만이 간간이 울리던 밤이었다. 그 어둡고 우울한 밤들 속에 갇혀 지내던 아이들은 이 휘황찬란한 밤에 취해 신들린 듯 뛰고 또 뛰었다. 그런 밤을 내 생애에

또 한번 맞을 수가 있을 것인가.

그해 가을에는 전에 없듯 큰 풍년이 들었다. 그 귀하다던 쌀이 쌀가게마다 산처럼 쌓여 있었다. 쓸쓸하던 장거리도 장날이면 물건들이 나와 쌓이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북적거렸다. 칼 찬 순사들이 사라진 거리, 왜놈들이 도망쳐 떠나가 버린 거리를 겁낼 것이 없어진 조선 사람들이 활개치며 걸어 다녔다. 학교에서는 일본 말, 일본 노래 대신 조선 말, 조선 노래를

배웠다. 전에는 어렵게 여겨지던 일본말이 생각지도 않게 불쑥불쑥 튀어나와 입장을 거북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방공 연습이 없어서 좋았다, 마음 가볍고 즐거운 나날이었다. 그 거칠 것이 없던 한 달 동안, 아니면 한 달 반 동안의 더 없이 평화롭던 가을 하늘이 내 평생에 또 찾아와 줄는지.

나는 형이 헐렁한 작업복 꽁무니에 세수 수건을 꿰어차고 -지까다비-를 신고, -벤또-를 달랑거리며 어깨가 축 처져서 터덜터덜 광산을 가고 오는 모습을 보지 않게 된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아니 형은 해방이 되자 청년들이 만든 치안대의 대장 자리에 턱 하니 앉은 것이다. 일본 순사들이 들락거리던 주재소에 가 보면 형이 순사부장이 앉았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가 어른들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다시 형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규철이는 역시 큰 인물이여. 나라가 스면 큼직한 벼슬 한번 하구 말 개여."

그러면서 가문의 예언이 형을 통해 이루어지리라는 기대를 되살려 가슴에 간직하는 모습들이었다. 동네 아이들도 다시 형을 입에 올리곤 했다.

"이승만 박사하구 김구 선생님이 나라를 세우믄 느 형두 서울루 불려 갈거야."

"만주에 있는 독립군들이 서울루 가는 길에 여기 들려서 느 형을 데리구 갈지두 모르지."

머리를 멋지게 기르고, 수염을 말쑥하게 깎고, 깨끗한 양복에, 코가 번쩍거리는 가죽 구두를 신고 저벅저벅 걷는 형의 모습을 보며 나도 또 한 번 형을 자랑스러워하고 우러러보는 마음을 되살려 가졌다.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아 갈 무렵 소련 병정들이 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다른 지방에 나갔다가 온 사람들 가운데는 이미 소련 병정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키가 구 척 같구, 코가 주먹만하구 눈은 뇌랗구, 서양 사람이더구만."

B29에 탄 미국 비행사를 보지 못해 서운해하던 사람들은 미국사람과 닮았다는 소련 병정을 보고 싶어했다. 언제쯤이나 소련 병정들이 우리 동네에 들어 올 것인가.

이윽고 소련 병정들이 삼팔선으로 가는 길에 우리 동네를 지나간다는 소식이 전해쪘다. 며칠 전부터 집집마다 태극기와 소련 국기를 그리라는 지시가 내렸다.

"소련 군대 지나갈 때 조선 독립군두 같이 지나갈지두 몰라. 소련 국기는 소련 군대한테 흔들라구 맨들구, 태극기는 조선 독립군한테 흔들라고 맨드는 걸 거야."

아이들이 말했다.

소련 군대가 지나가기 하루 전이 되니까 커다란 소련 국기와 태극기가 거리에 내걸리고, 면사무소와 치안대가 있는 근처에는 소나무 문이 높다랗게 세워지고, 소나무 문과 큰길 옆 집 벽과 기둥에는 큼직큼직한 글씨를 쓴 천과 종이가 무수히 나붙었다. <조선 민족 해방의 은인 소련 군대 만세! 위대한 붉은 군대 만세 !> <인민의 영웅! 인민의 붉은 태양! 스탈린 대 원수 만세!> (우라, 소비에트! 우라, 스탈린!)

"그런데 왜 독립군 만세는 안 써 붙였지?"

어떤 아이가 말했다.

"소련 군대는 손님이구 독립군은 쥔이니까 그러나부지."

다른 아이가 대꾸했다.

"아니야. 그래두 소련 군대하구 같이 지나가는 독립군이 섭섭해 할걸?"

그래서 아이들은 소련 국기를 그리고 남은 붉은 물감으로 서투른게 <위대한 독립군 만세 !>를 몇 장 써다가 <소련 군대 만세> 옆에다 붙였다. 글씨가 엉망이어서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좋았다.

이튿날 소련 군대가 지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길 양쪽에 늘어서서 소련 국기와 태극기를 흔들어댔다.

"우라, 소비에트! 우라, 스탈린!"

사람들은 목청이 터져라 소리질렀다. 찝차가 지나가고, 트럭이 대포를 매달고 지나가고 탱크도 지나갔다. 차와 탱크 위에 소련 병정들이 타고 지나가면서 기를 흔들며 소리지르는 사람들할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크고 움푹 패인 노란 눈, 주먹만큼 큰 코가 신기하기도 했지만, 끝없이 지나가는 차와 대포와 탱크가 입을 딱 벌어지게 했다.

"독립군두 차에 대포를 매달구, 글크푸 타구 지나갈 거야."

아이들이 끝없이 이어져 달려오는 행렬 끝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련 국기만 흔들구 태극기는 흔들지 말자. 찢어지은 안 되니까 애껴뒀다가 독립군 지나갈 때 흔들자."

"그런데 왜 이렇게 안 오지?"

독립군은 기다려도 기다려도 지나가지 않았다. 점심때쯤 해서부터 지나가기 시작한 소련 군대가 어둑어둑해져서야 다 지나갔는데 독립군은 끝내 나타나지를 않았다.

"다른 길루 먼저 갔을까7"

아니야. 이 길이 원산에서 서울로 통하는 계일 큰 길이라는데."

"아마 소련 군대와는 따루 지나갈지두 몰라."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어둠이 내리는 거리를 헤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튿날도 또 이튿날도 독립군은 지나가지 않았다.

며칠 뒤 소련 군대 일개 중대가 일본 아이들이 다니던 소학교에 와서 묵기 시작했다. 따발총을 거꾸로 매고는 거리를 어정거리는 소련 병정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자 해괴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계포에 소련 병정 몇 명이 들어와서 손목 시계 구경을 하재서 꺼내 보여 줬더니 손목에 차고는 그냥 가 버렸다는 것이다. 시계포 주인이 좇아갔더니 소련 병정들이 따발총을 들이대는 바람에 시계를 뺏긴 채 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시계포는 문을 닫아 버렸고, 길 가는 사람의 손목 시계도 뵈는 대로 소련 병정들이 뺏는대서 어른들은 밖에 나다닐 때는 시계를 집에 벗어 놓곤 했다. 시계 빼앗겼다는 소문이 뜸해지는가 하자 이번에는 장거리에서 생선을 팔던 여자가 생선 그릇 옆 땅바닥에 쓰러뜨려져 소련 병정 두 놈에게 욕을 당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아니 그 장면을 직접 본 사람이 많았다. 다음 번에는 밤중에 내외 자는 방에 구두를 신은 채 들이닥쳐 가지고 남편이 보는 앞에서 그 아내를 욕보였다는 소문이 들렸다, 여자들은 열 다섯 살만 됐어도 문을 걸어 잠그고 집 안에 들어앉아 혹시나 소련 병정들이 문을 부수고 들이닥칠까봐 겁먹은 얼굴로 밖에다 귀를 모으곤 했다.

"이거 날도둑놈에 불한당에 불쌍놈들 아니여?"

동네 사람들이 큰일났다고 웅성거렸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 힘으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 치안대는 뭐하는 게야? 불한당눔덜이 활개치구 댕겨두 말리지두 못해?"

", 치안 대장 규철이 말여. 일본에서두 일등 가는 대핵교를 댕겼대믄서 소련말 좀 할 줄 모르나? 얘기라두 좀 해야 할 것 아니여?"

사람들은 치안대 사무실로 몰려갔다. 몰려든 사람들 앞에서 치안대원들은 치안 대장인 형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고. 형은 한숨을 푹푹 쉬고 앉았다가

"그러니까 나라의 힘을 빨리 길러야 합니다,"

이런 하나마나한 소리나 되풀이하고 앉았더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아무도 치안 대원을 우러러보지 않았다.

"느 형이 독립군이라는 얘기는 거짓뿌렁인가부다."

아이들이 말했다.

"독립군이 지금이라두 오은 소련 병정들이 멋대루 지랄치지는 못할 텐데."

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숙였다. 그래, 우리 형은 독립군이 아니라두 좋으니 독릭군이 와 주었으면.

하지만 독립군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소련 군대가 일본 아이들이 다니던 소학교에서 어디론지 떠나가고서야 동네 사람들은 겨우 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치안대가 흐지부지 없어져 버리고 낯선 사람들이 주재소를 차지했다. 조금씩 조금씩 하늘이 흐려들어가는 듯한 공기가 떠돌고 있었다.

해나 바뀌었다. 겨우내 방구석에 뒹굴기만 하던 형이 봄이 되면서 연설가가 되어 다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학교 운동장에서 날마다 열리다시피 하는 무슨 대회에 형이 연설하는 사람으로 뽑혀 다니게 된 것이다. 재주가 많으니까 늘 불려나가 한 자리씩은 차지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집에서는 대견스럽게 여기기까지 했다. 한데 일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지주에게서 토지를 몰수해서 소작인들에게 나눠줘야 합니다. 땅은 땀 흘리며 내 손으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공장도 마찬가집니다. 공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형이 이런 연설을 하고 운동장에 모여 선 사람들에게 박수갈채를 받더라는 것이다.

"지주의 아들이구 양주장 주인의 아들이 그런 연설을 할 수가 있나?"

일가 어른들이 말했다,

"그게 사실인가요?"

아버지가 물었다.

"사실이다마다. 그래 규철이가 그런 소리를 지껄일 수가 있느냐 말야? 그게 어떻게 해서 생긴 양주장이구 어떻게 해서 모은 땅인데? 그리구 규철이는 그 재산을 발판으루 해서 가문을 일으켜 세워야 할 처지에 있잖은가?"

"들어오는 대루 캐물어서 야단을 치겠습니다."

아버지가 형 대신 용서라도 빌 듯 말했다. 형은 늦게야 돌아왔다.

이튿날 아침 아버지가 형을 불러 앉혔다.

"너 요즘 이상한 연설하구 돌아댕긴다는 게 사실이냐? "

"이상한 연설이라니요?"

형은 되물었지만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우물쭈물했다.

"니가 나와 무슨 억하심정이 있길래 그런 짓을 하니, ? 이눔아, 니가 그만큼 공부를 한 것두, 징역살이를 그래두 즈금은 헐하게 한 것두, 징용에 끌려가지 않은 것두, 콩깨묵두 음어서 못 먹는 판국에 네눔 아가리루 하루 세끼 이밥이 들어간 것두 땅 때문이구 양주장 덕이야. 네눔이 앞장서서 그 땅, 그 양주장을 뺏어버려야 한다구 떠들어대는 까닭이 뭐냐? 어디 말 좀 들어보자."

"아버지, 저는 아버지 개인의 땅과 양주장을 꼭 찍어서 얘기한 게 아닙니다. 모든 지주들의 모든 토지에 대해서, 모든 자본가들의 모든 자본에 대해서 통틀어 얘기한 겁니다. 어렵게 얻은 해방입니다. 이제는 정신을 차려 우리 백성이 너나할 것 없이 다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또 남의 나라 종노릇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 뺏자는 게 아닙니다. 나눠 갖자는 겁니다, 아버지두 소작인들에게 아버지 땅을 나눠준다고 생각하십시오. 땅을 소작인들한테 돌려주는 것이라구 생각하십시오."

"돌려주다니? 내가 소작인들한테 땅을 빌려 가지구 있었다는 게냐? 억지루 뺏어가지구 있었다는 게냐? 난 그렇게 못 해."

"아버지 이건 삼팔 이북에 세워진 공산당 정권의 정책입니다, 아버지가 삼팔 이북에 사시는 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셔야 할 명령입니다."

"이눔아, 공산당이 뺏어가는 거는 뺏어가는 거구, 네눔이 앞장서서 무당굿하듯 돌아가는 꼴은 참구 있을 수가 읍어. 그런 연설하구 돌아댕길래거든 이 집에서 나가!"

"아버지,,,,,,"

"듣기 싫어!"

결국 아버지는 모든 땅을 몰수당했다. 아버지뿐만 아니었다, 모든 지주들이 그들의 토지를 몰수당했다. 너무 억울해서 피를 토하고 죽는 사람도 있다는 소문도 들려 왔다.

(제 아버지의 모든 토지가 몰수되어 토지의 진정한 주인인 농민들에게 돌아간 것을 저는 두 손을 들어 환영합니다,> 형이 무슨 대회에서 이런 연설을 했다는 얘기가 들려 왔다. 아버지가 노발대발했다. 형은 그 밤으로 집에서 쫓겨났다. 이튿날부터 형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청년단 사무실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일가 어른들이 찾아와서 한숨을 푹푹 쉬었다.

"우리 가문이 일어서나부다 했더니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인가?"

형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나는 학교 운동장에서 날마다 열리는 궐기대회에서 연설하는 형을 보곤 했다.

"이번에 말씀해 주실 한규철 동무는 지주인 아버지의 집을 박차고 나와 혁명 대열의 앞장에 서서 뛰고 있는 분입니다. 좋은 말씀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사회자는 형을 이렇게 소개했다. 형이 교단 위에 올라가 목에 핏줄을 세우며 연설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형을 다시 우러러보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지 어떨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형이 연설을 하며 책상을 두드릴 적마다 박수가 터져 나오고, (옳소!)하는 외침이 터져 나오곤 했지만 나는 별로 신이 나지 않았다. 운동장에 서서 형의 연설을 들으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사람들의 손에 들린 플래카드와 어깨에 두른 띠에 <밟아 죽여라! 짓부셔라! 쫓아내라!> 이런 무시무시한 글자들이 씌어 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형을 빨갱이라고 불렀는데 형을 우러러보는 말투 같지는 않았다,

여름이 나자 형이 어떤 여자와 함께 산다는 소문이 들려 왔다. 광부의 딸인데 여성 동맹 회원으로 있는 여자라고 했다.

"부모 자식 형제간의 인연을 끊을 수야 있수? 이왕 그렇게 됐으니 규철이 내외 집에 들어와 살라구 합시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찍고 또 찍어서 모르겠으니 맘대로 하라는 투로 승락을 받아냈다. 어머니가 모처럼 흡족한 마음으로 사람을 형한테 보냈다. 하지만 다녀온 사람은 형이 들어오지 않겠다고 하더라는 말을 전한다.

"오빠 진짜 빨갱이 됐나봐. 진짜 빨갱이는 부모 헝제두 모른다는데."

큰 누나가 말했다.

"규철이가 생각이 깊은 아이야. 부모 형제를 그렇게 함부루 잊어버릴 애가 아니야. 무슨 생각이 있어 그러겠지. 두 내외만 살아 보구 싶어 그러는지두 모르구. 내버려 둬라. 애나 낳구 하면 들어오구 싶어지겠지."

어머니는 섭섭한 빛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형을 두둔했다.

밤골 당숙이 그때를 회고하는 말을 들으면 형이 공산주의자들과 어울려 다니며 활동하고 있던 기간에는 당숙도 형을 잘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형이 냉정해지지는 않았으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당숙을 피했는데 바쁘기도 했겠지만, 당숙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 형의 속마음이 드러나 보일까 겁을 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당숙은 추측했다. 그 당시 형의 태도를 두고 사람들은 두 가지로 추측을 했다는 것이다. 형이 부모 형제와 인연을 끊다시피 하고 날뛰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부모 형제를 도우려는 속셈일 것이라는 게 첫 번째 추측이었다. 이런 짐작을 하는 사람들은 그 증거로 아버지가 토지는 전부 몰수당했으면서도 양주장과 사는 집은 그냥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두 번째 추측은 형이 공산당 정권 아래서 한번 출세를 해 보겠다고 마음 먹었을 것이라는 거였다. 형이 부모 형제 친척들을 멀리하고, 부모와 의논도 없이 그 세상에서 추켜세우는 광부의 딸과 살림을 차린 것만 보아도 속셈이 드러나 보인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일가 사람들이 말하던 대루 오빠가 정말 아버지 재산을 발판으루 해서 출세를 하게 되는 걸까? 계속 아버지 땅을 팔구 다닌다는데, 아버지 재산을 다 팔구 났을 때, 아버지 재산만으루는 안 되게 될 때, 과연 오빠가 아버지 목숨이라두 발판으로 디디구 올라서겠다는 용기를 낼 수 있을래나?"

큰 누나도 이렇게 형의 속셈을 짚어 봤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열리곤 하던 궐기 대회에서 연설하는 형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은 가을이 깊었을 때였다. 계 강이 된 토지에서 추수를 한 농민들의 입에서 왜정 때보다 더 많은 공출을 받아간다는 불평이 터져 나오고. 아버지가 조사를 받으러 내무서를 드나들 무렵이기도 했다.

한동안 모습을 볼 수 없던 형이 어느 날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책상을 두드리며 웅변을 토할 때의 패기 있는 모습은 간 곳이 없었다.

"니 댁네는 왜 안 왔니?"

어머니가 반갑고 고마와서 형의 얼굴이라도 어루만질 듯 물었다.

"헤어졌어요. "

형이 힘없이 대답했다.

"무슨 소리냐, 그게 ? "

어머니가 물었지만 형은 대답을 안 했다. 나중에 형이 밤골 당숙에게 말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공산당이 형을 밀어내면서 이렇게 낙인을 찍더라는 것이다.

"한규철 동무는 역시 지주 자본가 계급이라는 근본적 출신 성분의 테두리를 못 벗어나. 부모의 집에서 뛰쳐나온 것두, 광부의 딸이며 여맹원을 유혹해 동거 생활을 한 것두, 절기 대회 때마다 자기 아버지와 자기 출신 계급을 비방하며 열변을 토한 것두, 지주 자본가 계급이라는 치명적 출신 성분을 덮어 버리려는 악랄한 출세주의자의 교활한 연극이었을 뿐이야. 일본 제국주의자에게서 받은 교육이 교활성으로 나타난 거야, 한규철 동무는 개조를 해두 근본적으루 해야겠어. 인간개조가 한규철 동무의 경우 가능하기나 할지 모르지."

같이 살던 여자가 그 말이 옳다고 증언했고, 어떻게 조사를 했는지 오목골 이 칠성씨의 딸 얘기까지 끌어내 소작인의 딸을 향락의 도구로 삼아 겁탈했다고 공격을 하더라고 했다.

형은 가을이 끝나갈 무렵 삼팔선 이남으로 가겠다며 떠나갔다.

"아버지 이남에 넘어가면 학교 같은 데 취직이나 해서 학생들이나 가르치며 평범하게 살아갈 생각입니다. 저 먼저 넘어가서 그렇게 자리잡구 있을 테니 아버지 어머니두 기회 봐서 뒤따라 오십시오. 여기서는 견디지 못 하실 겁니다."

형이 남쪽으로 넘어가면서 한 말이었다.

형은 삼팔선을 넘어 남쪽 땅으로 오면서 동화 쓸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니라면 인천에서 김 형사를 만나고 난 다음이었을까. 삼팔선을 넘어온 형은 동경 유학 시절의 친구의 소개로 인천 A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었다, 그런데 한 달쯤 된 어느 날 거리에서 김 형사를 만났다. 일제 말기 징역살이를 끝내고 고향에 돌아와 있을 때 악착같이 형을 따라다니던 가네미쓰 형사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대한민국의 경찰이 되어 있었다.

", 규철씨 아니오?"

딱 마주치자 김 형사가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경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 , 김 형사님. 여기서 뵙겠군요."

형은 별안간 적당한 인사말이 생각나지 않아 이렇게 말했다.

"그래 언제 넘어오셨소? 인천에 자리잡으셨소?"

"A중학교에서 교편 잡구 있습니다."

"A중학 7A중학이라면 몸조심하쇼. 좌익 세력이 강한 학교니까."

"?"

"또 봅시다. 바빠서---- "

그렇게 헤어졌는데 잊어버릴 만할 때 경찰서 정보과에서 호출장이 왔다, 문득 김 형사를 생각하며 찾아가 보니 전혀 낯선 사람이 형을 맞았다.

"일본 유학 시절에 공생회라는 좌익 단체에 가입했었지요?"

이렇게 시작해서 북쪽에서 생활하던 얘기를 왜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

"남쪽에는 어떻게 오게 됐지요? "

낯선 형사는 여기까지 잇대어 물었다

그리고는 자리를 고쳐 앉더니

“A중학교에서 가깝게 지내는 선생 이름은요?"

하고 -본론에 들어가서 -하는 투로 물었다.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특별히 친한 사람이 없는데요."

"좋습니다. 앞으루 종종 만나뵈야겠군요."

형사는 형을 돌려보내 주었다. 안 형사라고 했다. 형의 머리 속에 생각들이 뒤숭숭하게 얽히고 있었다. 신문에는 암살 사건. 좌익 게릴라의 준동. 폭동, 이런 기사들이 어수선하게 실리곤 했다. 좌익 지하 단체와의 관련 혐의로 A중학 동료 교사가 연행되어 가기도 했다. 형은 미행 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 속에 빠져 들어가곤 했다.

김 형사는 나타나지 않고 안 형사가 한 달에 한두 번씩 형에게 호출장을 보내곤 했다. 가도 별다른 얘기는 없고 첫날 물었던 것을 되풀이해 묻고는 돌려보내 주었다. 그래도 호출장은 계속 배달되어 왔다. 똑같은 물음이 밧줄로 변해 형의 몸을 램처럼 칭칭 감는 듯한 느낌이었다, 형은 전근 운동을 시작했다. 우리 식구가 형을 뒤따라 삼팔선을 넘어온 것은 그 무렵이었다. 우리가 넘어온 지 석 달만에 형은 서울 B중학으로 전근되어 인천을 떠났다. 형은 결혼을 하지 않은 채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다.

"포로가 된 왕자"가 마루방 앉은뱅이책상 옆 사과궤짝 속 헌책 위에 얹혀 있기 시작한 것은 형이 서울로 옮긴 이듬해였다.

형은 어떻게 해서 동화를 쓰게 되었을까? 동화는 온갖 번잡한 세상사에서 형이 돌아와 앉은 자리일까? 형의 친구 한 분은 형이 인천에 있을 때. 형에게 여자가 한 사람 있었다는 말을 했다. 삼팔선을 넘어온 형을 환영해 주려고 바다가 바라보이는 맥주 집으로 형을 안내했는데. 그 집에서 술 심부름을 하는 아가씨를 보더니 형이 매료된 듯 한동안 그 아가씨에게서 눈을 떼지 않더라고 했다. 술에 취한 형은 그 아가씨가 누구와 닮았다는 얘기를 중얼거렸는데 그 누구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더라고 했다. 어쨌든 그 아가씨와 형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누구에게 미행 당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올 때면 그 아가씨를 찾아갔었다는 것이다. 그 여자가 누구일까? 그 여자인들 지금 찾을 길이 없고 찾을 두 있더라도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지는 않으리라.

"자네 형은 말야, 늘 구멍 뚫린 가슴을 채워 줄 여자를 찾구 있었지. 그것이 공주였는지, 천사였는지, 그저 평범한 여자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자네 형은 늘 구원의 여인을 찾지 못해 애쓰구 있었어. 이런 말이 자네에게 도움이 될래나?"

 

육이오 사변이 일어나고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미처 피하지 못하고 학교 사택에 남아 있던 형은 바위로 된 봉우리처럼 쉽사리 침략자들의 눈앞에 노출되었다. 조국을 배반한 자. 조국을 버리고 도망친 자의 은신처가 겨우 여기냐? 그러나 한번은 뉘우침의 기회를 주리라. 의용군에 자원해라. 형은 의용군이 되어 어디론지 떠나가 버렸다.

형이 돌아온 것은 시 월말 경이었다. 패주하는 인민군에게 끌려 북으로 가다가 낙동강을 건너기 직전 도망쳐 왔다는 것이다. 형은 학교로 갔다.

의용군 지원자는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복직을 보류시키라는 상부의 지십니다."

형은 아버지의 이종매가 되는 아주머니네 구석방 속에서 밥을 얻어먹으며 빡빡 깎여진 머리칼이 자라기를 기다렸다. 머리칼이 자라기까지는 별도 지시가 내려 복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겨울이 왔다. 중공군이 다시 쳐내려오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복직하라는 별도 지시는 없었다. 형은 몇 가지 짐을 시골 외가집으로 실어 보내고 국민병 대열에 끼어 눈 덮인 길을 남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남쪽 끝에 닿자 사관 학교에 지원 입학을 했다. 육 개월 후 소위로 임관, 일선으로 떠났다.

사관 학교에서는 형의 학력을 알아내고는 교관으로 후방에 남으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형은 사양하고 일선으로 향했다, 외가집에 들렀다가 일선으로 떠나던 군복 입은 형의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일선으로 떠난 지 두 달 만에 형의 전사 통지서가 날아왔다. 형의 나이 서른 세 살이었다.

 

-포로가 된 왕자-의 행방은 끝내 알아 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읽지 못한 포로가 된 왕자와 못 다 살고 간 형의 생애와는 무슨 연관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응어리져 내 의식 속에 체중처럼 묵직하게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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