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대수필2

사이버 오디세이

by 자한형 2022. 3. 16.
728x90

 

사이버 오디세이 -신범순

정보의 새로운 환상 세계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우리는 정보의 수집과 처리 그리고 그것의 저장과 전달이라는 차원에서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겪었다. 이제 수십 권의 책들을 몇 년에 걸쳐서 베끼고, 거기 쓰인 어떤 문구들에 매달려 감동하고 신음하며 질투하고 경쟁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소중하게 자신만이 독점하고 있던 문서와 책들, 비밀스러운 쪽지들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들이 개인의 서재와 한 가문(家門)의 문서 보관소 그리고 절과 학교, 국가의 은밀한 도서관들 주위에서 사라져 버렸다. 한마디로 말해서 정보의 눈부신 속도는 빛처럼 그 모든 어두운 창고들을 비추고, 마치 태양 아래서 모든 것을 드러내는 풍경처럼 숨겨진 것들을 드러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빛처럼 빠른 정보의 속도에만 전가하는 것은 진실의 일면만을 보는 것이리라. 아마도 우리 모두에게 닥친 이 시대의 노출적 욕망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러한 현상의 껍데기만을 보고 있을 뿐인 것이다. 안에 있던 것들을 몽땅 밖으로 드러내려는 이 시대의 보편적인 욕망은 패션뿐 아니라 주위의 집기들, 도구들, 사무실과 카페, 그리고 저질스러운 텔레비전, 잡지의 사생활 폭로 프로와 음란물 사이에서 전염병처럼 번졌다. 숨겨져 있던 것들을 보고 싶어하는 욕망의 거대한 폭발이 오늘날 이루어졌다. 그러한 욕망은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비밀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데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심오하고 신비스러운 깊이는 점차 사라져 갔다. 신성한 분위기로 감쌀 만한 내면이라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보의 눈부신 발달은 신문, 잡지 ,텔레비전을 거쳐 인터넷에 이르면서 새로운 차원을 획득한다. 근대적 형태의 정보, 예를 들어 신문이나 잡지 같은 것에 나타나는 정보들은 '이야기'에서 단절되었다. 그것은 단편적인 정보들을 그것이 이루어진 삶의 총체적인 문맥으로부터 거칠게 떼어 냈던 것이다. 삶의 역동적인 힘이자 설계도이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창조력이기도 한 상상력과 삶의 총체성과 관련되는 집단적인 놀이나 축제 그리고 제의적인 상징들이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사이버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정보의 무한히 빠른 교환들 속에서 이러한 근대적인 실증주의는 어이없게도 그 자신의 세계 속에서 녹아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 정보들은 순식간에 한곳에 모이고 전 세계의 파편들을 순식간에 이어 놓는다. 그 세계를 항해하는 사이버 오디세이는 자신을 부르며 홀리는 사이렌들의 표정과 소리를 즐기면서 이익과 쾌락 그리고 깨우침의 여러 경계선을 넘나든다. 여기서 그는 매혹 속에 숨어 있는 권력의 이해 관계들 그리고 그러한 것들 사이에 벌어지는 엄청난 투쟁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미 사이버 매체의 환상 공간이 차지하는 그 깊이와 넓이를 우리 시대의 문학은 거절할 수 없게 되었다. 진지한 문인들이 탐색하고 논의하며 이야기하고 싶었던 세계의 일반적인 주제들이나 모티프들이 좀 더 현대적으로 변모된 모습을 하고 이 사이버 매체 속에서 자신들의 영토를 늘려가고 있다. 문학이라는 범주도 이 속에서 자신의 영토를 확보하고 있으며, 사이버 문인들은 동호인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환상 장르라는 독자적인 장르마저 탄생하였다. 사이버 공간 속에서 소설은 중세적인 신화와 미래적인 가상 그리고 컴퓨터 시뮬레이션 전략게임들을 뒤섞으면서 기묘한 환상 소설로 나아갔다. 시는 비록 여기서 발걸음이 늦기는 했지만 최근의 시도처럼 백 명 이상의 시인들이 참여해서 만들어 가는 하이퍼텍스트 시를 선보였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쌍방향의 시', '국민시' 라는 명칭도 새롭게 만들어졌다. 이러한 현상들은 아마도 근대 문학이 탄생된 이후 문학이 겪게되는 가장 혁명적인 변화의 하나가 될 것이다. 다소간은 비전문적인 문학 집단처럼 보이는 이 사이버 문학은 그 미래의 가능성을 점쳐 볼 때 결코 무시될만한 것이 아니다. 문학 자신이 이미 정보 매체의 발달과 운명을 함께 해 왔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제 우리 문인들은 이러한 현상을 기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새로운 문학의 지평이 열리고 있으며 그 현상은 알 수 없는 지대를 향해 엄청난 잠재력을 열어제치면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해야 할 것이다.

 

매트릭스 세계

 

인터넷은 외부 세계를 가상 공간 속에 펼쳐 놓으면서 외부 현실을 무력화시키는 힘을 진전시켜 왔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은 복잡하게 우편을 통해 주문하고 배달하던 것들을 단숨에 그 안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하여 외부의 서점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인터넷 백화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인터넷 자동차 판매 사이트에 벌써 거리에 있는 기존의 자동차 판매망들이 위험을 느껴 시비를 걸고 있다. 거대한 빌딩과 복잡한 사무실 그리고 수많은 인력들을 한꺼번에 무력화시키는 이 가상 공간의 세계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멋진 상상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거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 이러한 가상 공간이 가지고 있는 악마적 마력에 인간들이 모두 사로잡혀 스스로 몰락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정보의 교환과 구축 시스템은 나중에는 인간의 손에서 독립하여 오히려 자신을 만들어 놓은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서양에서는 이제 고전전적인 주제가 된 이 테마를 새롭게 만든 것 이상으로 주목할 만한 면모가 있다. 그것은 이 사이버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사이버 존재들의 삶이 바로 현실적인 존재들의 삶과 더 이상 구분되지 않도록 긴밀하게 접합시킨 데 있다. 주인공들은 사이버 프로그램들 속에서 여러 가상적인 존재가 되고 가상적인 현실을 살아가지만 그것들은 그저 가상으로 그치지 않는다. 마치 전략 게임처럼 게이머가 조작하는 가상 공간의 한 인물은, 그것이 실제 인간을 닮을 정도로 정교해질수록 그것을 조작하는 실제 인물과 거의 동일하게 느껴지게 된다. 이 영화는 이 느낌을 더욱 증폭하여 마치 가상 현실을 생생한 현실과 거의 구별할 수 없게끔 만들어 놓았다. 가상 공간에서의 전쟁과 공포 그리고 광기와 사랑은 모두 생생하게 현실적인 것이 된다.

 

이 영화에서 또 한 가지 느낄 수 있는 것은 이렇게 현실과 가상이 복합되어 있는 세계에서 과연 한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영화 '토탈리콜'에서 더욱 선명하게 전면에 나섰던 주제이기도 하다.

 

사이버 세계의 확장은 현실의 삶 속에 파고들어 인간의 존재와 사유를 변모시키고 있음이 이러한 영화에서 실감나게 표현되고 잇다. 오래된 케케묵은 냄새가 나는 문자들은 컴퓨터의 키보드 판에서, 이 사이버 세계를 들락거리는 입구에서만 인간의 오랜 친구이자 영원한 동반자처럼 남아있다.

 

문학은 물론 문자 자체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문자는 우리의 상상력이나 사유, 그리고 경험의 기록들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고정시킬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러한 것들을 자신의 영토 속에서 새롭게 조합할 수 있도록 해 줄 때만이 문학에서 문자의 역할은 의미가 있는 것이 된다. 사이버 시대에 문학은 단지 문자를 추월해 가는 영상 매체라거나 정보 매체와의 대결 의식이라는 자기 편향적인 시각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미 환상 소설은 옛날의 문자들이 오늘날 사이버적인 세계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모습으로 의미와 기능과 환상을 만들어 내는 지 보여준다. 서양 중세의 기이한 환상들이 미래적인 가상 세계와 맞물리면서 시공을 초월하는 이야기들을 창조하고 있다. 이러한 문학의 새로운 징후들 속에서 우리는 '위대한 개인'의 자리, 한 사회의 문화에서 전위를 차지하면서 영웅적으로 웅변을 토하던 그러한 개인이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완벽하게 자신의 웅장한 체험들을 깊이 있는 성찰 속에서 쏟아내며 세상에 대한 거울 세계를 만들어 가던 예술가들이 이제는 여기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이버 공간은 그 한 측면에서는 대중들의 놀이 공간이다. 이곳은 쾌락적이고 매혹적인 정보들이 흘러 들어와 출렁대는 바다가 된다. 이곳에서 모든 것은 재빠르게 스쳐가면서도 순식간에 그곳에 빨려들어 오도록 만들어야 하는 마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문학은 이 공간 속에서 이 마력의 법칙 속에 자신을 맡길 필요는 없다. 오히려 문학은 이 공간의 그러한 법칙에 대해 사유하고 성찰하는 것으로서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사이버 공간 속에서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묻는 비판적인 사유자로서 자신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문학은 여전히 책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러한 사이버 세계의 외부에 남아 있으면서 그 사이버 공간에 대해 감독하고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이버 세계의 밖에서 그 속에 뛰어들기 이전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들은 사이버 프로그램 속에 뛰어들기 전에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고통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한 굳건한 자각이야말로 그 환상 공간 속에서의 결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문학이 처해 있는 상황도 이러한 것과 그리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현대수필2'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6. 아우를 위하여  (0) 2022.04.08
200. 미국의 문화를 생각한다.  (0) 2022.01.21
199. 돼지의 대덕  (0) 2022.01.21
198. 도편수의 긍지  (0) 2022.01.21
197. 나의 길, 나의 삶  (0) 2022.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