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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강연 강의 등

사름을 통해 피어나는 아름다운 창조 샌드 아트

by 자한형 2022.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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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름을 통해 피어나는 아름다운 창조 샌드 아트 & 주홍

동영상 한 편 보시고 시작하겠습니다. 보시죠

네 저는 이렇게 방금 보셨듯이 샌드 애니메이션 작가이자 치유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주홍입니다. 제 이름은 여러분 좀 독특하잖아요. 주홍입니다. 주홍이라서 초등학교 때 별명이 빨갱이였습니다. 방공 시대라서요. 색깔 이름 때문에 이유도 없이 왕따가 되곤 했습니다. 저는 매사에 좀 의심하는 편이었고요 질문하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모든 교과서에 낙서를 하면서 수업 시간을 보냈어요. 수학책 특히 분수나 나눗셈 문제가 있는 그런 페이지는 여백이 많잖아요. 그래서 그림 그리기에 딱 좋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께서 교과서 낙서 검사를 갑자기 하시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앞에서부터 낙서를 검사하면서 한 페이지에 손바닥 한 대씩을 때리겠다고 하시면서 검사를 하면서 제게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거의 모든 페이지에 낙서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 차례가 되자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냥 맞고 끝났습니다. 그 후로 그림은요 저에게 트라우마가 돼버렸습니다. 그래도 좀 사라지는 그림들 있잖아요. 지우기 쉬운 그림들 그런 그림 그리기와 고무줄 놀이는 저에게 몰입의 경험을 선물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어느 날이었어요. 골목길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는데 날이 어두워졌어요. 그러니까 친구들은 엄마들이 이렇게 밥 먹어라 하면서 불러서 다들 집으로 돌아갔고 저만 남아서 가로등 아래에서 고무줄 놀이를 혼자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조용한 느낌이 든 거예요. 밤이 깊었나 보죠. 그래서 집으로 들어갔더니 저 단칸방에 살고 있었는데 가족들이 모두 곤히 잠들어 있는 거예요. 제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잠들어 있는 가족들을 보고 있는데 너무 서러웠어요. 그래서 막 울었거든요. 그리고 이런 생각이 잠겼습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을 참 잘 돌아가겠구나. 만약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나는 존재하는 걸까 그럼 귀신인가 이런 심오한 질문을 품고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은요 문학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가슴 뛰는 것인가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해주셨어요. 진도가 막 나가는 그런 수업이 아니라 감동적인 시를 낭송해 주셨거든요. 저는 그 가을 교정의 낙엽을 모아 그려가지고 그려서 선생님께 선물해 드렸습니다. “홍아 넌 그림 그릴 때가 제일 멋있어이렇게 국어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그 목소리가 제 내면에서 메아리를 쳤거든요. 그 후 1914년 광주 비엔날레 재단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어떤 연락이 왔냐면 그 분이 바로 31년 만에 저에게 그림을 돌려주시려고 화가 주홍이라는 이름을 검색해서 찾고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그동안 소중하게 보관하셨던 그림을 다시 제게 돌려주셨어요. 선생님의 말 한마디는요 이렇게 큰 힘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버리는 힘이죠. 그 선생님을 만나고 저는 그 그림이요 트라우마가 아니라 인생 선물로 바뀌게 됐습니다. 미술대학에 들어갔고 그림을 그리면서 빨갱이 왕따였던 그 이름은요 주홍이라는 이름은 오히려 저에게 채도 높게 기억되는 좋은 이름으로 바뀌었어요. 그리고 어린 시절 왕따의 경험은요 상처받은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치유 예술가로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저는 1995년부터 스케치북을 들고 인도 네팔 등 오지를 여행했어요. 마더 테레사도 만났고 타고르 고향에 머물기도 했고요. 인도 바르나 신두 대학교에서 초빙 강사로 강의도 하면서 여행을 갔습니다. 어떤 승려가 광장에서 조용히 색깔있는 그림을 그리면서 기하학적인 사각 대칭 무늬를 바닥에 그리고 있었어요. 멍하게 완성되는 과정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빗자루로 쓸어서 버려버리는 겁니다. 그것은 만다라 작업이었어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이렇게 감탄했거든요. 저렇게 열심히 그린 그림을 쓸어서 버리는데 나는 왜 아름답다고 느끼는 걸까 사라져버리자 그 만다라가 더 아름답게 기억되는 거 알았어요. 그 승녀는요 만다라를 그린 후에 훌쩍 그냥 떠나버렸어요.

제 기억에만 찬란하게 남아있죠

한국에 돌아와서 신안 섬에서 미술 교사를 찾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요. 바로 제가 가겠다고 다 손을 들었습니다. 청소년기에 미술 선생님이 꿈이었는데 그것도 섬마을의 미술 선생님의 꿈이었습니다. 소화 김환기 선생의 생가 마을 안좌도에서요. 저는 1년간 미술 교사로 근무하면서 오래된 테니스 코트장 벽에 학생들과 소화 김환기의 그림으로 디자인한 벽화도 그렸고요 그리고 밀가루로 운동장에 그림도 그리면서 보냈거든요. 특수학교가 없는 섬이잖아요. 그래서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는 지적장애 학생들을 제가 미술실에서 보살피게 됐습니다. 미술 놀이로 구구단도 가르쳤고요 한글도 가르치면서 다양한 미술 표현이라는 게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세계라는 것을 더 깊게 알게 되었고요 예술 치료학으로 박사 과정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미술 치료 도구 중에는 모래 치료가 있어요. 모래 놀이로 치료하는 건데요. 모래는 손에 묻지 않잖아요. 그리고 촉각적으로 되게 부드러워서 안전한 느낌을 주는 재료입니다. 그 모래의 캐릭터 인형이나 물건들을 놓으면서 상처 때문에 혹은 어떤 이유로 말로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죠. 2008년 우연히 유럽 할아버지가 빛과 머리를 그리는 샌드 애니메이션을 보게 됐는데요. 그 사라진 그림이 마치 만다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고운 모래의 청각 빛과 이미지의 시각 음악이나 소리의 청각 이런 여러 가지 공동 감각들 이런 감각들이 통합된 분야였고요 게다가 이야기도 전개할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손으로 모래 그림을 그리고 지우듯이 샌드 아트를 하면서 지나간 일들을 아름답게 정리할 수 있는 마음에 힘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자폐 아동들을 모아서 그 세션을 함께 했고 또 우울증에 빠져 있는 소년들 그런 소녀들과 치유 세션들을 함께 했습니다. 2009년 겨울이었어요. 가수 김원중 씨가 북한 어린이들에게 빵 재료를 보내는 공연을 함께하자고 제안을 해왔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분단된 나라에서 제가 살고 있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고 살고 있었는데요. 김원중 씨는 노래로 그림으로 춤으로 철조망을 걷어내고 평화의 길을 낼 수 있다고 강력하게 믿고 있었어요. 제가 샌드 애니메이션으로 빵 만드는 달거리 공연 무대에 올라서 공연을 하면요. 빵 재료를 북한 어린이들에게 선물하게 되는 그런 공연이었습니다. 이 공연은 자원봉사 무대였어요. 그렇지만 매달 새로운 주제로 저에게 창작의 기회가 주어진 겁니다. 그 무대는 어둡고 전쟁으로 가로막힌 현실을 뚫고요 열망의 불꽃으로 걸어가는 그런 무대였습니다. 사른다는 것은요 어둠을 배경으로 더 그 찬란함이 드러나죠. 저는 그래서 이 무대를 사랑합니다. 깜깜한 동굴에서 타는 초는요 사람들을 밝은 곳으로 안내하지만 밝은 장소에 켜져 있으면 스스로를 사르고고 있다고 느끼기 어렵잖아요. 우리는 늘 자신이 선택해서 이 자리에 있습니다. 삶의 무대죠 샌드 애니메이션은 고운 모래 그림자가 빛과 만나서 이미지가 나타나고 정성껏 그린 장면이 한순간에 내 손짓으로 확 사라지는 쾌감이 있습니다. 기쁨에 찬 장면도 그렇고요 손짓 한 번에 그냥 샥 사라집니다. 그래서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드라마입니다. 인생처럼이요. 저는 장소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티스트입니다. 초가 사를 때 태양 아래보다 어두운 동굴에서 더 빛이 나잖아요. 그렇듯이 광주는 아픈 역사가 있는 도시입니다. 19805월 어린이의 눈으로 봤습니다. 군인들이 시민을 학살했던 그 현장 근처에 제가 살았거든요. 5.18 민주광장이 있고 광주에는요 광주 시민들을 끌고 가서 가두고 고문했던 국가 폭력의 장소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제 주변에는요 5.18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분들이 아직도 많아요. 얼마 전에도 자살하셨고 그 아픈 장소들은 제 작업의 현장입니다. 그 현장에서 드로잉 퍼포먼스로 혹은 몸짓으로 치유하는 작업을 하는 민주주의는요 완성된 것이 아니라 늘 진행형이기 때문에 제 퍼포먼스는 더 자유로운 세상을 향한 일종의 몸짓인 거죠. 플라스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바다에서도 퍼포먼스를 하고요. 후쿠시마 원전 폐수 방류를 반대하는 퍼포먼스도 했습니다. 쓰레기가 많이 버려지는 거리에서 나는 쓰레기다 라는 퍼포먼스도 했습니다. 그건 지구 입장에서 그러다 보니까 2021년 유네스코 인권도시 포럼에서 아티스트로 발제를 하게 됐습니다. 2021년 활동 영상 잠깐 보시죠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작은 예술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난민과 함께 춤을 추고 있었고요 노래로 가난을 극복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만났습니다. 아름답다라는 말에는요 사르다 다르다 빛난다 변한다 새롭다 사라진다. 즉 사르다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었어요. 인생은 동사형이죠. 한순간도 시간은 고정된 적이 없이 찬란하게 반짝이고 있는 순간들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어떤 행동으로 아름답게 살고 있을까요. 누구나 타고난 어떤 것이 있습니다. 저는 그림이라는 재능이 있죠. 교과에서 낙서했던 그 그림이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타고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라고 저한테 말하곤 합니다. 그러면 걷기나 숨쉬기를 잘하면 됩니다. 예수님은요 걷기를 잘해서 제자들과 사랑을 전파했고요 부처님은 숨쉬기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그런 분이잖아요. 춤이든 그림이든 걷기든 숨쉬기든 남이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서 하는 일은 몰입으로 이끌며 지속 가능하게 합니다. 예술은 바로 내적 동기로 하는 것이고요 이 내적 동기는 영혼을 사르게 합니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요 그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순간으로 저의 제 곁에 있는 겁니다. 나를 사르면서 발견되는 삶의 아름다움이죠. 고운 모래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요 호흡을 조절하면서 그려가는 정성을 다하는 과정입니다. 향이 몸을 사르듯 초가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히며 사라지 듯 그런 사라짐이

샌데이메이션의 작업 과정입니다. 그럼 그렇게 나는 무엇을 표현할까 라는 질문에 사르다 간 사람들을 그리게 된 겁니다. 안중근도 그런 인물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육체적 관점 즉 물질적 덩어리의 관점에서만 보면요. 실은 죽어가는 겁니다. 시공간이라는 3차원의 세계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던져지듯이 와서 욕망의 존재로 그냥 끌려다니다가 살다 죽으면 너무 허무하잖아요. 그렇게 살다가 죽느니 단 하루를 살아도 자기 자신의 시간을 사르다는 것이 저는 아름다움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은 사르다라는 동사형이죠. 움직임입니다. 나의 시간은 바로 그리고 공간입니다. 그 공간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삶의 무대입니다. 그 무대에서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작은 일이라도 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 시간을 사르는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샌드아트는 어둠 속에서만 보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어둠을 배경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선연한 향을 위한 불꽃이죠. 영광이 대기 상태고요 찬란한 죽음을 위한 방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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