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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편소설3

14. 매잡이

by 자한형 2022.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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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잡 이 -이청준

 

지난 봄 갑자기 세상을 등지고 만 민태준 형은, 그가 이승에 있었다는 흔적으로 단 한 가지 유물만을 남겨 놓고 갔었다. 아는 이는 다 알고 있는 일이지만 그것은 별로 값지지도 않은 몇 권의 대학 노트로 되어 있는 비망록이었다. 우리는 그가 원래 시골집에 논섬지기나 땅을 가지고 있었고, 처신에도 별로 궁기를 띠지 않았기 때문에 설마 옷가지 정리할 게 좀 남아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민 형의 임종 순간이 노트 몇 권밖에 남길 수 없을 만큼 비참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나이 서른넷이 되도록 결혼 살림도 내보지 못한 민 형은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주변을 말끔히 정리한 다음 스스로의 임종을

맞았으리라는, 어쩌면 그 임종은 민 형 자신에 의해 훨씬 오래 전부터 미리 계획되고 준비된 것인지 모른다는 주위의 추측이 유력했던 것이다. 하고 보면 그의 유품인 비망록은 그가 간 뒤에도 세상에 남겨 두고 싶은 유일한 소지물이었음이 틀림없었을 거라고들 했다.

한데 그가 죽은 뒤로 친구들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바로 그 초라한 유품 비망 노트였다. 이것도 웬만한 친구들 사이에는 잘 알려진 일이지만 민 형은 소설을 한 편도 쓰지 않은 소설가로 통하고 있었다. 소설을 쓰다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든가, 무슨 문예 잡지의 추천 같은 것을 받았다든가 하는 일도 없는데 이상하게 우리는 그를 소설가로 불러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도 우리가 그렇게 불러 주는 것을 전혀 불쾌해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한 것처럼 여겼었다. 이유가 있기는 했다. 민 형은 언제나 소설에 대해서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고 또 우리와 소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소설을 쓰려고 언제나 마음을 벼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소설을 벼르기만 했지 실제로 그것을 쓰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필경 소설을 써내고 정말 소설가가 되고 말 것처럼 그는 소설에 대해 열심이었다. 우선 자기를 소설가라고 불러 주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 온 것부터가 그런 증거였다. 이것은 민 형에게 썩 중요한 일면이기도 하지만, 그는 한번 어떤 식으로 자기를 규정하고 나면 그것을 아주 사실로 받아들여 놓고 다시는 의심조차 해 보지 않으려는 엉뚱한 구석이 있었다. 민 형이 자기를 소설가로 믿어 버린 것은 그의 그런 엉뚱한 성미 탓이 아닌가도 생각되었다.

하여튼 민 형은 그렇게 우리들의 기대를 받으면서 소설을 열심히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그리고 쓰려고 늘 때를 벼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도 물론 그를 정말 소설가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작품을 내놓지 않은 민 형에게 그런 말은 참을 수 없는 비웃음으로 들릴 수 있으리라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는 터였으니까 말이다. 한데 우리가 그를 그냥 소설가로 마음 편히 부를 수 있었던 가장 좋은 구실은 그가 일 년에 몇 번씩이고 어디론가 취재 여행을 하고 돌아온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작품을 쓰고 있는 우리들도 취재 여행은 그렇게 간단히 나다니질 못하고 있는 터에 민 형은 만사를 젖혀 두고 자주 그런 일

을 찾아다니곤 하였다. 별로 하는 일도 없이 하숙방에서만 지내던 민 형이 며칠 집을 비우고 없으면 그 때는 영락없이 취재 여행중이었다. 그러나 여행을 갔다 와서도 민 형은 그리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창원군 X마을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기에 가 봤더니 차비 손해 봤다는 생각은 안 들더구먼."

이 정도로 말꼬리를 감추고는 그저 비실비실 웃을 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행 때문에 사실은 민 형의 시골집 땅뙈기가 다 날아갔다는 소문이었다. 하지만 민 형은 그 숱한 취재 여행의 어느 것 다음에도 넝말 작품을 내놓지는 않았다. 소설을 쓰는 눈치가 없었다. 그러다 그는 죽어 버린 것이다. 그가 죽은 것도 병 때문이 아니었다.

그 무렵 민 형은 결핵으로 조금씩 각혈을 하고 있기는 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게 별로 낙망할 필요는 없다고 수없이 위로를 했고, 또 사실 각혈 정도의 결핵이라면 요즘의 의학이 충분한 구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한데도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 것이다. 아마 그 경우에도 자기는 이제 정말 -난치의 병에 붙들려 버린 것이며 머지않아 자신은 흉한 시체가 되리라고 단정하고, 그가 단정한 것이면 무엇이나 재빨리 그 상태가 되어 있고 싶어하는 그의 성미대로, 민 형은 곧장 목숨을 끊어 버린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니까 모든 죽음이 그렇듯이 그의 죽음에 대한 좀더 중요한 부분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는 셈이었다. 그런 가운데도 민 형이 죽은 뒤에 그가 남긴 조그마한 비망록이 친구들을 놀라게 했다는 것은 거기에다 그가 취재 여행에서 수집해 놓은 소재들이 참으로 진기하고 귀중한 것들뿐이기 때문이었다. 전에는 소문으로밖에 별로 내용에 관해서 알려진 바가 없었던 몇 권의 비망록은, 그런 수많은 소재들에 관한 현지 답사, 문헌 조사, 상상 그리고 의문점들로 가득 차 있어서 취재 메모라기보다는 차라리 연구 노트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대개는 산간 벽지에 파묻혀 있거나 이미 사라져 없어진 민속, 설화, 명인 거장 같은 것들에 관한 것이어서 지극히 얻기가 힘든 자료들일뿐 아니라, 그것을 취재하는 태도도 족히 그 방면에 일가를 이룬 전문가의 면모를 엿보이게 하는 데가 있는 것이었다.

서커스 줄광대라든가 남해 고도의 어떤 늙은 나전공(螺鈿工), 또는 전라 북도 어떤 정자(亭子)에 사는 여자 궁사들의 이야기 같은 것들은 자료를 읽어 나가는 것만으로도 금방 어떤 작품의 윤곽이 잡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민 형은 그 어느 하나도 작품으로 다듬어 내지를 못하고 만 것이다. 마치 그는 작가가 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내심의 깊은 절망을 달래기 위해 그의 일은 작품의 자료를 수집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던 것처럼 그 자료만 수집하고 다녔던 것이다. 적어도 민 형을 알고 있는 우리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민 형은 한 편의 소설도 쓰지 않은 소설가는 아니었다. 그에게는 꼭 한 편, 그것도 우수한(내 생각으로는) 작품이 있는 것이다.

이제 나는 여기서 사실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실상 앞에 말한 모든 이야기는 지금 내가 말하려는 고백을 전제하면서 지금까지 주변에서 생각되고 있었던 사실들을 그대로 적었을 뿐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 자신으로는 그런 것들에 좀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렇다는 것을 나는 바로 오늘 아침에 알게 된 것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매잡이'라는 이 이야기의 제목이 눈에 익은 것을 먼저 알 것이고, 좀더 주의 깊이 생각했다떤 나의 이름으로 발표된 소설 중에 이미 그런 제목이 또 하나 있었음을 기억해 냈을 것이다. 그리고 왜 같은 제목으로 또 이야기를 시작하는가 의심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매잡이' 라는 제목의 글은 이것으로 두 번째가 되는 것이다. 한데 한꺼번에 고백을 하자면 이 '매잡이'라는 제목의 글이 이번으로 세 번째가 된다는 덧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앞서 말한 대로 벌써 발표한 '매잡이'와 지금 이 글을 합한 두 편은 물론 나의 것이다. 거기에 또 한 편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모두 세 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른 하나는 누구의 것인가-그것이 바로 작고한 민태준 형의 것이다. 그것을 나는 오늘 아침에 비로소 나의 책상에서 찾아내게 된 것이다. 그것은 물론 아직 세상에 발표된 것은 아니다. 민 형이 소설을 한 편도 쓰지 않은 소설가가 아니라는 것을 안 것도 오늘 아침이었고 그 때문에 나는 다시 이 세 번째 '매잡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게 된 것이니까.

하지만 이 세 편의 소설은 사실 거의 같거나 비슷비슷한 것들이다.

이제 나는 민 형의 그 기이한 소설이 어떻게 나에게로 들어오세 되었는가 하는 경위를 밝혀야겠다. 민 형의 죽음이나, 어째서 두 편의 같은 소설이 생겨났고 거기다 또 내가 비슷한 소설을 하나 더 쓰려고 하는가는 거기에서 대강 이유가 밝혀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자면 먼저 제일 첫 번의 나의 '매잡이'가 씌어지게 된 경위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지난 봄, 어느 날 나는 잠깐 나를 모고 싶다는 엽서를 받고 민 형을 찾은 일이 있었다. 물론 그 전에도 나는 자주 민 형을 만났고, 그가 결핵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지나친 절망감을 덜어 주려고 애를 써 왔기 때문에 그 날의 엽서는 나에게 퍽 이상한 느낌이 들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를 맞는 그의 첫 마디에서 약간 안심을 할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이 전보다 훨씬 창백해진 듯했지만 그는 그런 것은 별로 의식하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퍽 차분하고 사무적이었다.

"잘 와 주었어. 좀 상의할 일이 있어서. 자네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일인데."

어둡거나 초조한 빛이 조금도 없는 태도였다.

"무슨 횡재라도 할 땡순가?

그가 단도 직입으로 용건부터 꺼냈으므로, 나는 여느 사람을 만난 것처럼 그 즈음 민 형의 건강을 묻지도 않고 바로 그 일이라는 것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자 그는 오히려 너무 중요한 일을 서둘러서 안 됐다 싶은 듯 다리를 꼬고 앉으며 차분한 소리를 했다,

", 내가 아마 여행 다닌 얘기를 제대로 들려 준 일이 없지?”

"?”

오히려 여유를 갖지 못한 것은 내 쪽이었다. 나는 별로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렇게 반문하고 있었다.

"왜라니?”

"그것은 터부였으니까. 자네가 여행 이야길 들려주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우리에겐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되어 있거든."

나는 엉겁결에 내뱉은 ''에 대해 변명하고 있었지만, 말해진 것은 또 그것대로 사실이기도 하였다. 민 형이 비로소 조금 허탈스럽게 웃었다. 그리고는 아까부터 베개 부근에 펼쳐져 있던 노트를 끌어당겨 내 앞으로 밀어 놓았다.

"아마 자넨 요즘 소설을 너무 많이 써 버려서 이야기 밑천이 동이 나고 말았을 테지."

나는 그의 말에 귀를 세우며 눈으로는 그 노트를 쫓고 있었다. 그것은 민 형이 아직 한 번도 보여 준 일이 없는 여행 비망록이었다. 메모지를 다시 정리하여 적은 듯한 노트는 마치 중학생 수학 공책처럼 가로 세로 깨알같은 글씨가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민 형이 자신의 한계에서 완성해 놓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 나는 비망 노트를 내려놓고 민 형을 건너다보았다. 갑자기 기분 나쁜 연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 친구는 도대체 어쩔 심산인가. 사실 나는 작품의 테마에 빈곤을 느낄 때 그것이 무진장히 쌓여 있을 민 형의 취재 노트를 그려 본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나는 영원히 한 편의 소설도 쓰지 못하고 말 민 형을 상상했다. 그런 생각에 젖다 보면 나는 마지막까지 잔인해지고마는 것이었다. 민 형으로부터 그 테마와 소재들을 얻어내고, 그리고 그렇게 하는 데 민 형이 즐거움을 가져 줄 수 있다면,,,,,, 그러나 물론 그런 망상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소재 중에서 꼭 하나 소개해 주고 싶은 게 있어."

나의 어렴풋한, 그리고 두려운 예감은 맞아 들어갔다. 민 형은 나에게 말하고 나서 나의 속셈을 환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덧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소개뿐이야. 내가 알아본 것을 다 얘기해 주면 소재를 파는 꼴이 되고 말 테니까."

그리고 그는 그 소재를 꼭 나에게 한 번 다루어 보게 하고 싶다면서 아마도 내가 거기에 대해 조금만 조사를 해 보면 가만히 둬도 쓰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하리라는 지레 장담을 덧붙여 보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그러면서 그는 나에게 그 비망록 중의 한 대목을 가리켰다.

하지만 나는 그 날 민 형의 집을 나오면서도 내가 끝내는 전라북도 어느 산골 촌락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리라는 사실 이외에는 모든 것이 아직 불확실한 상태였다. 그가 소개해 준 소재라는 것은 결국 그 지방 어느 마을에 살고 있다는 '매잡이' 에 관한 것이었는데, 사실 나는 그의 말과는 달리 썩 호감이 가는 데가 없었다. 거기다 민 형은 처음 다짐대로 자신의 조사에 대해서는 전연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더욱 막연할 뿐이었다. 나는 그가 건네 준 여행 차편과 취재 요령 따위가 적힌 메모지를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쑤셔 넣고 돌아오긴 했으나 아무래도 그것에 대해 소설을 쓰게 되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왜 구태여 그가 나를 택해 꼭 그 곳으로 가라고 하는지, 또 어떻게 민 형이 나에 관해 그토록 모든 것을 확신해 버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여튼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의 권유는 나에게 어쩔 수 없는 부채처림 나를 강제해 왔고, 더욱이 내가 이야기에 반신반의하는 얼굴을 보고 민 형이 미리 마련한 여행비용을 꺼내 놓았을 때는 더 시들한 대답만을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한사코 사양하고 싶은 그 여행비용마저 결국 얻어 담고 나오게 만든 민 형의 고집이었으니까.

"내겐 이젠 재물이 필요 없어. 아마 없게 될 거야."

그는 부득부득 돈을 떠맡기면서 아주 여유만만하게 웃었다. 나는 이제 거의 바닥이 났을 법한 그의 시골집 형편과 병세를 생각했으나 그는 정말 이제 돈이 필요 없는 사람 같은 얼굴을 했다.

결국 나는 다음 날로 곧 길을 나섰다. 민 형이 될 수 있으면 빨리 다녀오기를 원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다녀와야 할 형세이고 보면 하루라도 일찍 길을 나서는 편이 나을 듯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산골 마을에 무슨 기대를 가질 수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일이 있기는 했다.

민태준 - 이라는 인물. 도대체 이 친구가 흐느적거리며 돌아다닌 행적이 어떤 것인지. 이번 기회에 그것을 좀 알아보고 싶었다. 그가 찾아 간 마을에서, 그가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그가 무엇을 어떻게 조사하고 돌아다녔으며 그 사람들의 눈에 비친 민 형이 어떤 인물이었는가를 알아보고 싶었다. 그것은 썩 재미있는 일일 듯했다. 왜냐 하면 정말로 민 형의 취재 여행이 우리에게는 완전히 안개 속이었고, 어떤 것은 정말 금기에 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여행은 결국 민 형이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오히려 민 형 자신의 행적이 그 여행의 관심사가 되고 만 셈이었다.

그리고 그래 나는 결국 민 형이 소개하고 싶다던 '매잡이' 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생각하는 것이 없이 바로 이튿날로 그 전라도의 산골 마을을 터덜터덜 혼자 찾아들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마을로 들어간 바로 그 날부터 나는 갑자기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민 형이 어쩌면 모든 것을 미리 알고 나를 때맞춰 그 곳으로 보냈던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마을에는 '매잡이'의 사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매잡이 -

내가 '매잡이' 라는 제목으로 최초의 소설을 쓰게 된 경위는 그 동기가 대략 그런 식으로 발단한 일이었다.

(중략)

 

이제 다시 이야기를 본 줄거리로 돌리는 것이 좋겠다. 매잡이 곽 서방의 기이한 단식은 그렇게 시작이 된 것이었고, 그러니까 내가 갔을 때는 이제 마을 사람들조차 그 곽 서방의 일엔 싫증을 내고 있었을 때였다. 곽 서방이 누워 있는 헛간의 안채에서 서 영감은 정말 매 귀신이 들어 앉았다.'고 화를 냈지만 그러고 있는 곽 서방을 내다본 일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신기한 일은 소년이 가지고 있는 매에 관한 것이었다.

"그럼 네가 가지고 있는 곽 서방 매는 어떻게 다시 갖게 된 거지?”

한데 소년은, 곽 서방이 매를 아주 날려보냈으려니 하고 있었는데, 다음 날, 그러니까 곽 서방이 헛간으로 가서 누운 다음 날 번개쇠가 다시 마을로 (그것도 바로 버버리 소년의 집으로)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년은 처음 번개쇠를 다시 곽 서방에게로 가지고 갈까도 생각했으나 어쩐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단다. 그리고 지금은 번개쇠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조차도 곽 서방이 알면 화를 낼 것 같아서 곽 서방에게는 사실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년이 매를 다시 기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마저 몹시 핀잔을 주었지만 소년은 그 매를 다시 돌려보내지는 않겠다고 했다. 소년은 자기의 매를 갖고 싶으며 또 사냥도 하고 싶다고 했다. 소년의 아버지는 한 번도 고집을 꺾어 본 일이 없는 녀석의 성미를 잘 알기 때문에 할 수 없다 싶어 그대로 버려 둔 눈치였다.

하여튼 그 모든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나는 산을 이틀이나 더 타야 했다. 물론 사냥 수확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소년은 허탕만 치는 일로 나에게 미안해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는 허탕을 치고 돌아오면서 마치 나를 부린 값이라도 치르듯 곽 서방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였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부터 나는 더 이상 소년을 따라 나설 두가 없었다. 번개쇠가 불쌍하니 사냥은 그만하고 이제 먹을 것을 주자고 했더니 소년은 머리를 끄덕이고 그 날은 사냥을 나가지 않았다. 그리곤 어디서 구해 왔는지 참새 두 마리를 잡아다 매에게 먹였다.

"언제나 참새를 주나?”

하고 물었더니, 개구리철에는 개구리를 먹이고 어떤 때는 닭을 잡아 먹이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 가을이 되어 길이 다 든 매는 제 값을 받자면 쌀 몇 가마 값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그 날은 방안에서 소년과 해를 보냈다. 그 날 저녁이었다. 초저녁에 소년이 윗마을 영감네 헛간으로 간 뒤 나는 혼자 방에 남아 뒹굴다가 그냥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소년은 전날에도 그렇게 혼자 서 영감네 헛간으로 갔다가 아침에 일어나 보면 어느 결엔지 곁에서 잠이 들어 있곤 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그 사이 곽 서방을 몇 번 헛간으로 찾아가 봤지만 위인은 언제나 마찬가지 자세로 눈두덩만 더 앙상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

이었다. 도대체 사람이 온 "기척조차 느끼지 못하는 곽 서방을 이 밤은 찾아가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음식이 입에 닿지 않은데다 이 며칠 무리하게 산을 탄 바람에 이 날은 몸을 움직이기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자리를 고쳐 앉을 때 울리는 매의 방을 소리가 점점 희미하게 들려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버버리 녀석이 헐레벌떡 방으로 뛰어들어오며 냅다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나는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맡 성냥불을 더듬어 밝혔다.

"왜 그래, 무슨 일야?”

무턱대고 팔을 끌어대던 소년이 그제야 사연을 일러주었다. 곽 서방이 나를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곽 서방이 말을 했단 말야?”

나는 번쩍 기묘한 예감이 지나갔다. 어슴푸레하게나마 소년이 서두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 소년과는 정반대 이유로 나도 역시 그를 따라 서둘러 대었다. 곽 서방이 정말 말을 했다고 소년은 밭둑길을 뛰어가다시피 하며 설명했다. 그리고 웬일로 그가 이 밤중에 나를 불러 달라 부탁하더라는 것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곽 서방은 어떻게 말을 시작했을까. 그리고 왜 그가 나를 만나자고 했을까. 그러나 그보다도 더욱 이상한 것은 그 때 나는 그런 것을 실제로는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가 말을 시작한 것도, 하필 나를 찾는 것도 모두가 그저 다 당연한 것처럼, 그리고 나는 여태까지 바로 그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서둘러 곽 서방에게로 뛰어간 것이었다,,,,,,

곽 서방은 정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전과 다름없이 꼬직히 헛간 지푸라기에 싸여 누워 있었으나, 깊이 가라앉아 가기만 하던 눈망을이 처음으로 나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얼굴 근육까지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으로 곽 서방이 나를 아는 체하는 줄을 알 수 있었다.

---민 선생을---가서---------지요----?”

이윽고 그가 꺼져 가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곽 서방은 너무 여러 번씩 입술을 움직인 끝에 겨우 소리를 만들어 냈기 때문에 그 조금씩밖에 벌리지 않은 입술 사이에서는 소리가 미처 되어 나오질 못하거나 아니면 너무 오래 말을 하지 않고 있어서 잊어버린 말이 다시 생각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렇게 띄엄띄엄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흐린 눈동자와는 달리 일단 의사가 확실했다.

제 친굽니다. 가서 만납니다.”

나는 그의 귀가 이미 영혼 속에서만 열려 있어서 그 곳까지 소리가 들리게 하기는 퍽 어려울 것만 같이 생각되어 터무니없이 큰 소리로 말했다. 곽 서방이 조금 머리를 끄덕였다. 반가움을 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내 이야기를 전해 주시겠소?”

곽 서방은 다시 나에게 말하면서 눈을 치떠 나를 쳐다보았다.

물론이지요, 한데 뭐라고 전해야 할지. 이러고 계시는 까닭이 뭡니까?”

그 말에 곽 서방은 다시 한 번 염려스럽게 나를 쳐다보았다.

좋은 사람입니다. 내 평생 가장 긴 이야기를 했던 사람이 민 선생이었소.”

얼핏 딴 소리 같은 말만 하더니,

아마 민 선생은 짐작할 지 모르지요. 마음이 워낙 깊은 분이니까.”

하고 다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민 선생에게 짐작될 일이라면 제게 말씀해 주셔도 무방하실 텐데요.”

그러나 곽 서방은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다. 히니까 나는 바로 그 때 두고두고 후회할 실수를 저지르고 만 셈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난 그 때 곽 서방이 민 형과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를 그에게 물었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민 형이 곽서방에게 했던 말을 알아 놨어야 하였다. 그랬더라면 이번 일의 사연도 짐작을 할 수가 있었을는지 모른다. 하나 나는 너무 사건에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그런 여유마저도 가질 수가 없었다.

 

하여튼 그 날 밤의 곽 서방의 이야기는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소년의 집으론 돌아오지 못했다. 어떤 예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날 밤 날이 샐 때까지 모든 일을 빠짐없이 보아두었다가 그것을 민 형에게 전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사실 민 형에 대한 그런 부채감보다도 나 스스로 그 곳을 떠날 수 없는 어떤 강한 힘에 붙잡혀 있었던 것이다. 버버리 소년도 물론 나와 같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예감은 틀리지가 않았었다. 우리는 조금 뒤에 곽 서방 곁에 쪼그리고 앉아 잠시 눈을 붙인 것 같았는데, 우리가 정신이 들었을 때는 벌써 날이 희끄무레 밝아오고 있었다. 한데 그 때 곽 서방은 이미 숨을 거두고

있었던 것이다.

곽 서방은 그 날 아침으로 대발에 말려 어떤 조그만 산모퉁이에 묻혔다. 그리고 장례가 끝나자마자 나는 서울로 떠날 차비를 했다. 한데 웬일인지 그 때부터 소년이 내게 영 말대답을 해 오지 않았다. 녀석은 원래 벙어리니까 소리를 내어 말을 하진 않았다. 그러니 소리를 내지 못하는 대신 어떤 경우에는 소리를 가진 사람보다 더 수선스런 행동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던 녀석이 그 때부터 갑자기 내게 말대꾸를 해 오지 않았다. 하염없이 매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제 사냥철도 지나갔는데 그 매 산으로 보내 주지 않을래?”

그런 물음에도 소년은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숫제 듣지조차 못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건 원래 곽 서방 거였다는데, 이제 주인도 죽고 없는데---."

“------”

그러나 나는 끝내 소년의 가장 깊은 정곡을 찾아내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이번엔 네가 또 매잡이가 되고 싶은 게로구나."

그 소리에 소년은 짐작했던 대로 번쩍 머리를 쳐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 표정이 참으로 심상치가 않았다. 소년이 처음 머리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을 때 그 눈에는 뜻밖에도 어떤 무서운 증오 같은 것이 서려있었다. 그리고 무서운 반발이 숨어 있었다. 나는 소년의 그런 눈길을 받고 나서 흠칫 한 걸음 몸을 뒤로 물러서기까지 했다. 괴팍하고 사나운 벙어리의 본능이 덩어리져 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눈 때문에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다. 소년이 무엇 때문에, 그런 눈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의 말이 생각났을 때도 나는 소년이 무엇을 그토록 증오하고 반발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소년의 눈이 나에게서 좀처럼 떠날 줄을 몰랐다. 그래서 그렇게 보였던 것일까. 이윽고 그 소년의 눈에는 애초의 증오 대신 서서히 어떤 슬픔기 같은 것이 차 오르고 있었다. 뿐더러 그것은 그 간밤의 곽 서방의 눈길을 연상시키기까지 했다.

나는 어쩌면 녀석이 또 매잡이 노릇을 계속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날로 소년과 마을을 하직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울로 가는 차를 타게 되면서부터는 비로소 민 형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나는 그 때 서울을 떠날 때와는 또 다른 수수께끼를 품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수수께끼를 민 형과 함께 풀어 보리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곽 서방의 죽음은 무슨 뜻을 지닌 것인가. 곽 서방은 왜 그런 해괴한 죽음의 방법을 생각한 것인가. 곽 서방의 소식을 듣고 민 형은 그 모든 수수께끼의 대답을 어떻게 풀어 낼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서울에는 또 하나의 수수께끼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뜻밖에도 민 형이 그 사이에 자살을 하고 만 것이었다, 내가 시골로 떠난 다음 날이었다고 했다. 내가 서울로 돌아왔을 땐 민 형은 이미 자신의 유언에 따라 한줌 재가 되어 강물로 뿌려진 다음이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의 간단한 유서 한 장과 유서에서 밝힌 두 가지 비장품뿐이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 밖에 그에게선 다른 아무 것도 남겨진 것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것으로 이를테면 그가 가지고 있던 마지막 재산으로 여행을 하고 온 셈이 된 것이었다.

 

여행 이야기가 꼭 좋은 소설이 되기 바라네. 그리고 여기 나의 취재 노트를 자네에게 넘기고 가네. 혹 소설로 만들 만한 것이 있을는진 모르겠네만. 또 하나 밀봉한 봉투는 이삼 개월 날짜가 지나서 적당한 시기에 꺼내 보라고 특히 부탁하네,,,,,,.

 

그가 내게 남기고 간 유서의 내용이었다.

마치 한 일 년 어디로 여행을 떠나면서 부탁을 남기고 있는 투였다. 그 유서에는. 자세히 읽어보니 세 가지 다짐이 들어 있었다. 첫 번째로 내가 여행에서 돌아오면 꼭 소설을 한 편 써 발표하라는 것, 두 번째로는 가능한 대로 자기의 취재물을 소설로 완성시켜 보라는 것, 그리고 세 번째 부탁은 무엇인지 모를 그 봉투의 물건을 일정한 기간 후에 꺼내 보라는 것이었다. 어세가 그렇게 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죽음을 이마에 대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은 산 사람이 몇십 번을 되풀이 강조한 것보다도 더 엄숙하고 확실한 것이었다.

나는 그의 첫번째 부탁을 금방 이행했다. 아니 그것은 그의 부탁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서울로 돌아올 때부터 벌써 작품을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민 형의 예언은 적중한 셈이었다, 매잡이 사내의 기이한 죽음이 순간 순간 나를 긴장시켰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필경 나는 소설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으리라는 것을 마을에서부터 벌써 알고 있었다. 나는 민 형에게 그 매잡이 사내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으리라 했었다. 한데 서울로 돌아와 보니 민 형은 이미 저 세상 사람이었다. 그것은 한층 더 나를 긴장시켰다. 그 우연은 마치 민 형이 매잡이의 죽음을 미리 알고 있었던 듯한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리고 매잡이의 죽음과 민 형의 죽음에는 자꾸만 어떤 관련이 있는 것처럼 나의 머릿속으로 함께 얽혀들었다, 나는 매잡이 사내의 죽음을, 민 형의 죽음을 중심으로 한 소설 계획에 관련시키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나의 욕심뿐이었다, 두 죽음을 연결시킬 근거가 나에게선 아무래도 분명해지질 않았다. 모든 것이 그저 느낌뿐이었다. 소설이 무척 애매하고 어려워졌다. 나는 할 수 없이 이야기에서 민 형을 다시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매잡이 사내의 이야기만으로 나의 능력껏 한 편의 소설을 썼다. 그것이 나의 최초의 '매잡이'였다. 그것으로 일단 나는 민 형의 첫번째 부탁을 이행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내가 매잡이 사내와 민 형 사이의 그 이상한 관련감을 포기해 버린 것은 물론 아니었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나의 느낌이 틀림없으리라는 확신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확신을 증명하려고 했다. 한데 좀체 방법이 없었다. 민 형이 남긴 흔적이라고는 거의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그 일을 더욱 어렵게 했다. 밀봉한 봉투는 그 적당한 시기라는 것이 언제가 될지 몰라 당분간은 거의 잊어버 린 상태로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 두고 있었다. 민 형에 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물건은 민 형이 나에게 소설로 만들어 주기를 바라면서 남겨 준 비망 노트 한 가지뿐이었다. 그러나 그 노트도 민 형의 죽음과 매잡이 사내와의 관계를 추리하는 데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앞서도 얘기한 일이 있지만, 그 취재 노트는 정말 경탄할 만한 것이었다, 아까운 일이었다. 물론 지금도 나는 그 중의 대부분을 언젠가는 소설로 만들 욕심이고 또 실제로 몇몇은 머지않아 곧 작품이 이루어지게 되리라고 단언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내가 그 하나 하나의 소재를 취재할 때의 민 형의 뜻을 충분히 살려 낼 수 있을 것인가. 망인(亡人)에게 죄스럽기는 하지만 천상 소재 해석은 나의 방법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그 많은 민 형의 노력의 결과는 한낱 사전 지식 구실 밖에 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마땅히 민 형 자신의 소설 구상을 통해서 작품으로 이루어져야 했을 것이다. 가령 그런 점을 떠나 민 형에 대한 인간적 관심으로 볼 때도 그것은 역시 안타까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긴 형의 그러한 생은 마치 자기는 소설가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너무나 일찍 체념으로 받아들이고. 자료 수집 그것으로나마 문학의 어떤 몫에 참여하고 있다는 최소한의 인간적 요구를 만족시키고 있었던 것같이 생각되는 것이었다, 정말로 민 형은 소재 수집 자체를 생의 과업으로 자족했던 것일까. 그것도 한편으로는 머리가 숙여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역시 그와 가까운 친분으로서는 민 형의 그러한 생 전체가 오히려 하나의 큰 좌절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가 안타깝고 아쉬웠던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민 형의 자상하고 철저한 취재 노트에는 하필 전에 그가 나를 내려보내면서 얼핏 보여 줬던 매잡이에 관한 기록이 뜯어 없어져 버린 사실이었다. 노트 석 장이 떨어져 없어지고 그 뜯어진 다음 장에 매잡이에 관한 아주 평범한 사전 지식이 조금 계속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뒤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뜯어 없앤 것은 분명 매잡이에 관한 기록이 틀림없었다.

 

매과 매속의 맹조의 총칭. 수리에 비하여 몸이 소형인데 부리가 짧으며 윗부리의 가장자치 중앙에 이빨 모양의 돌출부가 있다. 발가락이 가늘고 날개와 꽁지가 비교적 폭이 좁다. 다리의 발꿈치에 있는 비늘은 앞뒤가 모두 그물 모양이며 머리 위와 눈 주위 주둥이 근처가 흑색이고 등은 회색, 허리와 꼬리는 연한 색이고 검은 가로 무늬가 있다, 주둥이는 창각색 (蒼角色) - 엽막(躐膜)과 다리는 황색. 민속하게 날개를 놀리어 수리보다 빠르게 난다.

-날개 길이 30rm, 부리 27cm.

-보라매, 새매, 송골매, 해동청 - (한국산. 특히 중국에서 진가가 인정되고 있음).

-, , , ,아시아, 북아프리카, 동유럽 등지에 서식.

-1년 깃들인 것--갈지개. 2-초진이 = 초지니. 3- 삼진이.-산진이 = 산지니.

-한국 북쪽 지방(중국 대륙에서 들어옴, 몽고 풍속 - 유럽 일부에도 있음).

-매두피, 매를 잡는 기구, 명주 그물, 매 사냥, 매찌, 매의 똥, 매치, 매를 놓아 잡는 꿩, 짐승, 매팔자 = 개팔자.

-매잡이, 매를 잡는 사내--사전 -현지에서는 '매를 부리는 사내를 매잡이'라고 함 - 손잡이.

-매치는 절대로 팔지 않았음. 마을 잔치에 부조를 하고 부조 받는 사람은 떡시루나 술말로 보답. 요즘은 시장으로 나가는 일이 있고 약이나 총으로 잡은 것보다 값이 있다고 함.

 

이것이 뜯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매나 매잡이에 관한 기록의 전부였다. 그것은 다만 사전 지식에 불과했고, 그의 의견이 엿보이는 곳이라고는 '매잡이'를 사전 해석에 따르지 않고 취재 지역에 따르려고 했다는 것 정도였다. 나로서도 그것이 옳은 듯했다. 매잡이의 '잡이'는 잡는 이라는 뜻이기보다 민 형이 참고로 -표로 보인 것처럼 잡는 것. '손잡이''잡이'에 가까운 것 같았다, 매잡이 사내는 언제나 매를 팔뚝에 올려 앉히고 다녔다. 사내의 팔뚝은 매의 앉을 잡이였다. 그래서 아마 그 쪽 사람들은 매 부리는 사내를 매잡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 매잡이라는 말은 물론 나 역시 지금까지도 그런 뜻으로 써 오고 있는 터였다.

그러니 그 정도는 나에게도 기록이 남아 있으나마나였다. 그것을 뜯어 없앤 것은 물론 민 형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뜻을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어떤 이유에선가 매잡이 기록을 뜯어 내면서 뒷부분을 그대로 조금 남겨 둔 것은 민 형 자신도 그건 있으나마나 한 거라고 대수롭잖게 생각했기 때문일 터였다. 따라서 그것은 내가 민 형과 그 곽 서방의 죽음 사이의 비밀을 캐내 보려는 노력에는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었다.

왜 민 형은 그것을 뜯어 없애 버린 것일까. 상식적으로 이해하자면 민 형은 나에게 취재 여행을 권유한 터였으므로 그 기록을 남겨서 내가 쓸 작품 의도에 간섭을 주지 않으려고 그랬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뒤 사정이나 그의 죽음 같은 것이 그렇게 간단할 것 같지는 않았다. 어째서 그는 나에게 하필 그 산골로 여행을 권한 것일까. 그리고 자기가 얻어 낸 모든 자료를 끝내 감추고 죽어 버린 것일까. 더욱이 왜 나에게 굳이 매잡이에 관한 소설을 쓰게 한 것일까. 아무 것도 해명되지 않았다. 나의 생활은 자꾸만 그 사실의 거죽 위에서 겉돌고만 있는 느낌이었다. 사실 그 모든 것은 단순한 몇 가지 우연의 연속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는 그만 그런 생각에서 떠나려고 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어느 틈에 다시 그 의문 속에서 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관심도 어느 땐가는 시간과 더불어 차츰 퇴색이 되게 마련이었다. 영영 해답은 얻어 낼 길은 없고, 해답을 위해 조사를 해 볼 자료도 없고. 거기다 또 나대로의 작품 의욕에 휘말리기도 하다 보니 그것은 결국 나의 심층 속으로 깊이 잦아들어 버리는 듯했다. 더욱이 그것을 아주 의식의 밑바닥까지 밀어 넣어 버리기로 마음먹은 것은 내가 또 한 번 그 시골 산골을 다녀오고 난 다음이었다. 답답하다 못해 나는 다시 그 산골 마을을 찾아갔었다, 물론 거기서 신통한 해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를 갖지는 않았다. 만약 그러리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벌써 열 번이라도 그 곳을 찾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곳을 다시 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거기서 얻은 나의 가없는 의문들을 다시 그 곳에다 씻어 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의 그런 기대는 거의 그대로 적중하고 있었다. 마을에는 어느 구석에서도 민 형의 흔적을 찾을 길이 없었다. 곽 서방은 이미 저 세상 사람, 마을 사람들은 이제 그의 매 사냥에 대해서, 아니 곽 서방이 마을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마저도 까맣게들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에 관해선 아무도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일로 마을을 드나들었던 나를 이젠 옛날에 곽 서방을 보듯이 했다. 벙어리 소년마저 마을을 나가고 없었다. 그는 내가 서울로 올라간 뒤부터는 밥도 잘 먹지 않고 상심해 있다가 어느 날인가 마침내 번개쇠를 가지고 어디론가 마을을 나가 버렸다는 것이었다.

나는 곽 서방에 대해서, 더욱이 민 형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새로운 사실을 얻어 내지 못한 채 마을을 떠나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때 나는 어쩌면 가장 귀중한 것을 얻고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왜냐 하면 나는 그 여행만으로 이제 모든 것을 결말낸 것처럼 마음이 한결 편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로 마을로 들어와서 얻은 의구를 거기에다 다시 씻어 버린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도 나는 그렇게 그럭저럭 마음을 잡아 앉히고 있었다. 하니까 민 형과 곽 서방의 죽음에 대한 애초의 비밀은 마음의 밑바닥에서 한동안 그렇게 잠을 자고 있었던 셈이다.

한데 오늘 아침, 바로 오늘 아침 나는 크나큰 놀라움과 함께 그 대부분의 비밀에 새로운 해답을 얻어 낸 것이었다. 아침에 우연히 책상 서랍을 뒤지다가 나는 그때 민 형이 적당한 시기가 경과한 후에 개봉하라고 남겨 준 봉투를 찾아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 적당한 시기라는 말에 충분할 만한 기간이 흘렀으리라는, 오히려 너무 긴 기간 동안 나는 그것을 잊고 있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허겁지겁 뒤늦게 봉투를 뜯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전부터도 그 봉투에 대해서 퍽 많은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하나 포장이 너무 견고하여 바깥 촉감으로는 내용을 짐작하기도 힘들었고, 그렇다고 슬그머니 미리 열어 보는 것도 고인에 대한 예가 아닐 듯해서, 그냥 그대로 서랍 속에 집어넣어 둔 것이었다. 아침에 그것을 본 순간 나의 그런 궁금증이 순식간에 다시 불붙어 올랐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한데 봉투를 뜯고 나서 나는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이백여 매 남짓한 원고지 뭉치였고, 그 원고지에는 천만뜻밖에도 눈에 익은 민 형의 자필 소설 한 권이 나의 개봉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매잡이' - 그 원고의 겉장에 쓰인 제목이 그것이었다. 나는 책상 서랍을 닫을 생각도 않고 그 자리에서 원고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설을 읽어 내려가다가 나는 거듭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매잡이라는 제목의 소설. 그것은 너무나 내가 썼던 것과 비슷한 이야기가 되 고 있는 게 아닌가. 다른 것이 있다면 민 형의 소설은 나라는 화자(話者)가 하나 더 등장하고 곽 서방은 그 화자의 눈을 통해서 그려지는 데 반하여, 나의 것은 곽 서방이 ''라는 화자 없이 삼인칭으로 직접 묘사되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리고는 거의 아무 것도 다른 것이 없었다. 곽 서방이 단식을 시작한 구체적인 동기가 조금 다를 뿐 줄거리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아니 내가 놀라고 있다는 것은 민 형이 그런 소설을 써 놓았고 그것이 소설로서 거의 완벽한 느낌을 갖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벌써 아니었다. 생각해 보라. 그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곽 서방의 죽음까지 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얼마나 괴이한 일인가. 물론 민 형이 그 소설을 썼을 무렵에는 곽 서방의 죽음이 아직은 미래에 속하는 일이었을 것이기에 말이다. 말하자면 민 형의 이야기는 곽 서방의 운명에 대한 일종의 예언이었다. 그런데 그 예언이 너무나 정확한 것이다. 민 형은 마치 나와 함께 곽 서방의 최후를 보고 와서 역시 나와 함께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처럼 나의 그것과 거의 틀림이 없는 결말을 맺고 있었다. 그렇다면 민 형은 분명 나를 앞지르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무엇이 민 형으로 하여금 곽 서방의 운명에 대한 그런 정확한 예언을 하게 한 것일까. 작품에서의 예언은 작가 자신의 어떤 필연성의 요구다. 곽 서방의 운명의 종말로서 왜 그와 같은 형태의 죽음을 민 형은 요구한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하여 곽 서방은 민 형에 의해 요구된 자기 운명의 필연성을 의식하고 그것을 좇았을까. 그런 여러 가지 의문에 대해서 민 형의 소설 가운데는 단 한 가지의 해답만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소설 중의 화자인 ''로 변장한 민 형과 곽 서방과의 대화에서였다.

 

당신은 매를 아끼는 것입니까?”

아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매의 운명에 대해서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

“-------”

이상하군요. 학대와 굶주림과 사역이 당신이 매를 생각하는 방법의 전부라는 것은.”

알 수 없습니다. 나는 매를 부리는 사람일뿐입니다. 하지만 그건 매잡이를 부리는 쪽도 마찬가집니다.”

어떻게 마찬가질 수 있습니까?”

선생은 매가 하늘을 빙빙 돌거나 땅으로 내려 박힐 때 그 곱고 시원스런 동작을 보신 일이 있겠지요. 그건 아름답습니다. 아마 선생도 그렇게 생각하셨겠지요. 하지만 난 알고 있습니다.”

나는 눈으로 다음 말을 재촉했다.

그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한데 선생은 이 일에 관해서,,,,,,”

하다가 사내는 다시 말을 끊고 한참 동안 ''를 쏘아보았다. 그 눈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이상하게도 성난 매의 눈을 연상시켰다, 사내는 그 자기 눈 속의 불길을 의식하고 있는 듯 한참 더 기다리다 말을 이었다.

가시오. 당신은 나를 못 견디게 하오. 몇 번이고 당신을 죽이려고 생각했소. 가지 않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당신을 죽이려 들지 모르오.”

 

그리고 나서 얼마 후에 곽 서방은 내가 실제로 본 것과 같이 혼자 말없이 굶어 죽어 가고 있었다.

이야기의 결말은 이를테면 우리 생존의 처절스런 실상과 풍속의 미학과의 표리 관계 같은 것이 비극적인 시선 속에 옷을 벗고 있는 식이었다. 거기서 곽 서방은 자신의 운명을 매의 그것과 한가지로 받아들이고 있는 식이었고, 혹은 그래서 그 스스로 다시 인간의 운명으로 돌아와 그가 지금까지 얻은 진실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한번 더 그러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싸움을 치러 내고 있는 식의 이야기가 되고 있었다. 이 근처 어디쯤에 그의 작의가 숨어 있을 게 분명한 것이었다. 하지만 섣불리 그의 작의를 단정하는 것은 삼가자.

상황은 별 군소리 없이 그렇게만 묘사되어 있고, 더욱이 민 형은 작품을 해명하거나 하는 따위의 별지를 일절 첨부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역시 그 대화가 중요한 시사를 담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이, 그 후로 곽 서방은 가끔 낭패한 얼굴로 깊은 사념에 빠지는 때가 생겼고, 그러다가는 드디어 매를 날려보내고 스스로는 그 죽음을 향한 참담스런 단식을 시작하고 있는 때문인 것이다.

 

민 형은 어쨌든 마지막으로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을 쓰고 간 셈이었다. 그것은 내가 전에 직접 보고 들은 자료로 모든 정력을 기울여 써냈던 같은 이름의 소설에 비하여, 결말부에 가서는 순전한 민 형의 상상력만으로 되어진 작품이었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이 똑같다. 경탄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훌륭한 작품이라고, 그리고 민 형은 훌륭한 소설가였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욕심대로 한다면 그가 수집한 모든 자료를 그의 구상과 상상력에 일치하는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면 하는 아쉬움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제 민 형이 '한 편의 소설도 쓰지 않은 소설가'라는 누명 아닌 누명에서 벗어난 것은 민 형 자신을 위해서나 주위 친구들을 위해서나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더욱이 그것이 민 형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행스런 일일 것이다,,,,,,.

하고 보면 이젠 그 '매잡이'라는 이름의 소설이 세 편이나 나오게 된 이유가 모두 밝혀진 셈이 된다. 그리고 이젠 그 민 형을 위한 나의 증언을 끝내도 좋을 것 같다. 왜 민 형이 그 소설을 처음부터 내게 내보이지 않고 나로 하여금 같은 제목으로 소설을 발표하게 했는가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그가 자살로써 생을 종말 지은 일이나 마찬가지로 그가 자신의 능력을 공정하게 시험받고 증명되고 싶었을지 모른다는 가장 인간적인 동기에서였으리라고 이해해도 무방할 듯싶으니 말이다.

이야기를 끝내려고 하면서 곁다리로 생각나는 것은, 사물의 본질을 투시할 수 있는 눈을 가진 훌릉한 작가다면(그 점에서 나는 벌써 민형을 훌륭한 작가였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어느 정도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민 형에 의해서 예견된 어떤 필연성이 곽 서방에게 받아들여지느냐 않느냐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고, 하여튼 그런 작가의 눈(양심이라고 해도 좋겠다.)이라는 것은 내가 민 형을 증언하거나 '매잡이' 라는 세 편의 소설에 관한 해명 못지 않게 관심이 가는 일이다.

중복감이 있기는 하지만, 머지않아 나는 민 형의 '매잡이'도 곧 소개할 예정이므로 이 소설에서는 긴 변명 대신 이런 관심도 함께 가져 볼 수 있었다는 점만을 고백해 둔다. 다만 한 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그 버버리 소년이 앞으로도 정말 매잡이 노릇을 계속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을 수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나 자신도 별로 화신을 가지고 대답할 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의 기분대로 말한다면 소년의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자세한 사실을 알아 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어느 땐가 인연이 닿으면 다시 소년의 소식을 듣게 될 때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소년이 다시 매잡이가 되어 있다고 한들 이제 와선 그게 내게 무슨 뜻을 지닐 수가 있단 말인가.

풍속이 사라진 시대 - 사라져 간 풍속의 유민으로서의 소년은 내게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민 형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그야 민 형은 자신의 소설에서 매잡이 곽 서방을 그의 풍속으로 돌아가게 해 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곽 서방에게 자신의 풍속으로 돌아가 그의 풍속의 유물이 되게 해 주고 있었다. 곽 서방에게 그것은 그의 참담스런 생존의 실상으로부터의 소중한 승리이자 구원일 수 있었다. 하나의 풍속이란 그것 밖의 사람들의 외연적 기명(記名)일 뿐 그것을 직접 살아 내는 사람들에겐 그의 삶의 보편적 질서인 것이라면. 적어도 그것을 뒤에서 바라보며 풍속을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곽 서방에게나 가능할 일이었다. 그것은 매잡이 곽서방의 풍속일 뿐 민 형 자신의 풍속은 아니었다. 민 형을 포함한 우리들 자신의 풍속은 절대로 될 수가 없었다. 아니 그것이 우리들의 풍속이 될 수 없는 것은 고사하고 우리에겐 애초 우리들 자신의 어떤 풍속도 가능성이 용납되질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풍속의 의상이 없는 시대에서 그 삭막하고 참담스런 삶의 현실들을 맨몸으로 직접 살아 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보다도 그 참담스런 삶의 현실이 또 다른 풍속으로 부화되는 것을 거부하며, 자기 삶의 새로운 풍속화(風俗畵)에 대항하여 그것을 거꾸

로 인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민 형도 어쩌면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것이었다. 자신의 이름으로는 소설마저도 단 한 편밖에 쓸 수가 없었던 민 형 - 그래서 그는 오히려 곽 서방에게 그토록 매달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끝내는 절망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민 형의 종말 - 그것은 그 곽 서방의 풍속에 자신을 귀의시킬 수 없었던 비극의 종말이 아니라, 그의 삶의 새로운 풍속화에 대한 마지막 저항과 결단의 몸짓은 아니었을까. 감히 말하자면 그것이 아마도 민 형의 죽음의 진실이어야 할 것이었다.

소년이 다시 매잡이가 되어 있든 아니든 그것은 이제 별다른 뜻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 매잡이의 시대가 지나가 버린 세상에서의 소년에게도 그렇고, 민 형이나 나에게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더욱이 이번에 다시 이야기를 쓰게 된 나의 관심이 매잡이의 풍속 자체보다도 민 형과 민 형의 죽음, 그리고 그의 소설에 관한 것들 쪽이었고 보면, 그것은 어차피 나의 개인적인 과외의 관심거리에나 속해야 마땅한 것이다.

나는 그나마 민 형의 경우처럼 자신의 삶에 대한 어떤 치열한 인내와 결단성, 심지어는 그 풍속의 미학에 대한 나름대로의 꿈마저도 깊이 지녀 보질 못해 온 터이니 말이다.

(신동아,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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