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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단편소설2

38. 탈향

by 자한형 2022.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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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향 -이호철

 

하룻밤 신세를 진 화찻간은 이튿날 곧잘 어디론가 없어지곤 했다. 더러는 하루 저녁에도 몇 번씩 이 화차 저 화차 자리를 옮겨 잡아야 했다. 자리를 잡고 누우면 그런대로 흐뭇했다, 나이 어린 나와 하원이가 가운데, 두찬이와 광석이가 양 가장자리에 눕곤 했다.

이상한 기척이 나서 밤중에 눈을 떠 보면. 우리가 누운 화찻간은 또 화통에 매달려 달리곤 하였다.

"야야. 깨 깨, 빨릿,,,,,,."

자다가 말고 뛰어내려야 했다. 광석이는 번번이 실수를 했다. 화차 가는 쪽으로가 아니라 반대쪽으로 뛰곤 했다. 내리고 보면 초량 제4부두 앞이기도 했고 부산진역 앞이기도 했다. 이 화차 저 화차 기웃거리며 또 다른 빈 화차를 찾아 들어야 했다.

"야하, 이 노릇이라구야 이건 견디겐,'

“---."

"에이 망할 놈의."

광석이는 누구에라 없이 짜증을 부리곤 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넷은 가지런히 제3부두를 찾아 나갔다. 가지런히 밥장수 아주머니 앞에 앉아 조반을 사 먹었다.

"더 먹어라."

"."

"더 먹어."

"너 더 먹어."

꽁치 토막일망정 좋은 반찬은 서로 양보들을 했다,

어두운 화찻간 속에서 막걸리 사발이나 받아다 마시면. 넷이 법석대곤 했다.

우리들 중 가장 어린 하원이는 늘 무언가 풀어 해치듯.

"야하, 부산은 눈두 안 온다. . 어잉 야야. 벌써 자니 이 새끼, 벌써 자니. 진짜. . 광석이 아저씨네 움물 말이다. 눈 오문 말이다. 뒤에 상나무 있잖니? 하얀 양산처럼 되는. . 한번은 이른 새벽이댔는데 장자골집 형수, 물을 막 첫 바가지 푸는데 푸뜩 눈뭉치가 떨어졌다, 그 형수 뒷머리를 덮었다. 내가 막 웃으니까. 그 형수두 눈 떨 생각은 않구. 하하하 웃는단 말이다. 원래가 그 형수 잘 웃잖니?"

광석이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토백이 반원 새끼덜. 우릴 사촌끼리냐구 묻더구나. 그렇다니까, 그러냐아구. 어쩌구. 그 꼬락서니라구야. 이 새끼 벌써 취핸?

조금 사이를 두어.

"야하, 언제나 고향 가지?

두찬이는 혀 꼬부라진 소리로,

"이재 금방 가게 되잖으리."

"이것두 다아 좋은 경험이다."

", 그렇구말구."

"우리, 동네 갈 땐 꼭 같이 가야 된다, 알겐."

"아무렴, 여부 있니, 우리 넷이 여기서 떨어지다니, 그럴 수가. 벼락을 맞을 소리지 허허허, 기분 좋다. 우리 더 마실까. 한 사발씩만 더, 딱 한 사발씩."

광석이는 쨍한 소리로 노래를 불렀고, 두찬이는 화차 벽을 두드리며 둔하게 장단을 맞추었다. 하원이는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했다, 술을 한 병 더 받아 온다. 담배를 사 온다. 나는 곯아떨어져 잠이 들어 버리곤 했다.

 

어느 날 저녁 광석이는 작업반 반장을 끌고 왔다. 두찬이는 화찻간에 벌렁 누운 채 알은 체도 안 했다. 하원이는 귀빈이라도 온 듯이 꽤나 대견스러워했다. 광석이는 술 몇 사발 값이나 내었다. 하원이는 곧 술을 받으러 갔다. 겸해서 초 한 자루도 사 왔다. 그제서야 두찬이는 마지못해 일어나 앉았다.

"이러구 어째 사노?"

반장이 신산한 얼굴로 걱정을 하였다.

"이것두 다아 경험 입넨다."

광석이는 공손히 대답했다. 그러자 두찬이는 벌컥 성난 소리로,

"참례 마소."

"그러니 어떻게 해야잖나? 밤낮 이러구 있을라나."

"참례 말라는데, 밤떼할 거 머 있어? 남의 일에."

 

반장은 조금 뒤에 곧 자리를 떴다. 광석이는 배웅까지 하고 돌아왔다.

"두찬이 넌 그리 고집을 부리니?

"머이 고집이야,"

"에이 참 딱해서"

“---."

"타향에 나와선 첫째, 사교성이 좋고 주변머리가 있어야 하는 긴데."

광석이는 혼잣소리처럼 꿍얼댔다.

 

두찬이와 광석이는 스물네 살이었다. 그러나 두찬이 편이 네 살은 더 들어 보였다. 훤칠하게 큰 키에 알맞게 뚱뚱한 것이며. 검은 얼굴에 뒤룩뒤룩한 눈, 두꺼운 입술, 술 사발이나 들어가면 둔하게 왁자지껄하지만 여느 때는 통히 말이 없었다. 광석이는 키는 큰 편이나 조금 여위었고 까무잡잡한 바탕에 오똑 선 콧대, 작은 눈, 엷은 입술에 쉴새없이 날름거리는 혓바닥하며, 홀가분한 걸음걸이. 진득한 데라고는 두 눈을 씻고 보자 해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원이는 나보다 한 살 밑이어서 열여덟 살이었다. 어디서나 입을 헤 벌리고 있곤 했다.

중공군이 밀려 내려온다는 바람에 무턱대고 배 위에 올라타긴 했으나 도시 막막하던 판이라, 바다 위에서 우리 넷이 만났을 땐 사실 미칠 것처럼 반가웠다.

야하 너두 탔구나. 너두, 너두.

뱃간에서 하루인가 이틀 밤을 지나, 어느 날 이른 아침에는 부산 거리에 부리어졌다. 넷이 다 타향 땅은 처음이라, 서로 마주 건너다보며 어리둥절했다. 마을 안에 있을 땐 이십 촌 안팎으로나마 서로 아접, 조카 집안끼리였다는 것이 이 부산 하늘 밑에선 새삼스러웠던 것이다.

야하, 이제 우리 넷이 떨어지는 날은 죽는 날이다, 죽는 날이야."

광석이든 몇 번이고 거푸거푸 중얼거리곤 했다.

 

이럭저럭 한 달쯤 무사히 지났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갈 날은 갈수록 아득했다. 이 한 달 사이에 두찬이는 두찬이대로, 광석이도 광석이대로 남 모르게 제각기 다른 배포가 서게 된 것은(배포랄 것까지는 없지만) 그들을 탓할 수만 없는 일이었다. 쉽사리 고향으로 못 돌아갈 바에는. 늘 이러고만 있을 수는 없다. 달리 변통을 취해야겠다. 두찬이와 광석이는 나머지 셋 때문에 괜히 얽매여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자연 우리 사이는 차츰 데면데면해지고, 흘끔흘끔 서로의 눈치를 살피게끔 됐다.

광석이는 애당초가 조금 주책이 없다 할까. 주변이 있다 할까 엄벙덤벙 토박이 반원들과 얼려 막걸리 사살이나 얻어 마시곤 했고, 구변 좋게 보탬을 해서 북쪽 얘기를 해 쌓고, 이렇게 며칠이 지났을 땐 어느덧 반원들은, 나나 두찬이나 하원이와는 달리, 광석이만은 오래전부터 사귀어 온 친구나처럼 손을 맞잡고는,

"나왔나?"

"오냐, 느 형님 여전하시다."

"버르장머리 몬쓰겠다. 누구보꼬 형님이라 카노."

자네 언제부터. 말버르장머리하곤, 허 요새 세상이 이래 노니."

농담조로 수인사가 오락가락했으니. 나나 두찬이나 하원이는 광석이의 이런 꼴을 멀끔히 남 바라보듯 건너다봐야 했다. 광석이는 차츰 반원들과 얼려 왁자지껄하는 데 더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고, 날이 갈수록 자신만만해졌다.

그 꼴사나움은 이루 말할 수 없어 더더구나 주변머리 없고 무뚝뚝하고 외양보다 실속만 자란 두찬이는 저대로 뒤틀리는 심사를 지닌 채 다른 궁리를 차리는 모양이었다. 사실 이 즈음부터 두찬이는 부두 안에서 얌생이를 해도 다만 밥 두 끼 값이라도 골고루 나누어주는 법이 없이. 일판만 나오면 혼자 부두 앞 틈 사이 샛길을 허청허청 돌아다녔다. 이런 두찬이는 으레 술이 듬뿍 취해 화찻간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하원이는 자주 울먹거렸다.

"야하. 부산은 눈두 안 온다, ,"

하고 애스럽게 지껄이곤 했다.

 

되잖은 청으로 타령 같은 것을 부르는 두찬이의 취한 목소리가 바람결에 가까워 오면 화찻간은 무엇인가 덮어씌운 듯 조용해졌다.

"문 열어라."

드르르 문을 열면, 싸느다란 부두 불빛이 푸르무레하게 화찻간에 찼다. 두찬이는 문간에 막아 서서, 비트적거리며 한참을 허허허 웃어댔다. 하원이는 한쪽 구석에서 또 울먹울먹거렸다. 화찻간으로 기어올라온 두찬이는 헉헉 숨차 하면서 광석이부터 찾았다.

", 광석아. 이 새끼야, 이 새끼 어디 갔니?

누운 차 광석이는 귀찮은 듯이 쨍한 목소리로,

"왜애. 왜 기래. ?

"나 술 마셨다. 나 오늘 얌생이했다. 사아지 두 벌, 근사하더라. 나 혼자 가지구 나 혼자 마셨다. . 못마땅허니? 못마땅할 것 없어. , 이 새끼야."

광석이는 발끈 일어나며.

"취했음 자빠져 잘 거지. 누구까 지랄이야. 어디 가서 혼자만 처 마시군 "

"말 자알 헌다. 그래 나 혼자만 마셨다. 넌 부산내기덜과 왁자고오멘서 마시구. 난 내 돈 내구 먹지만, 넌 술 사주는 사람두 많두나. 원래 사람이 잘났응이까, 인심이 좋아서. 난 못 났구 그렇지만 무서울 건 쬐외꼼두, 요만침두 없어. 두구 보렴. 두구 봐, 보잔 말야."

하원이가 일어나 앉아 소리내어 쿨쩍거리기 시작했다.

광석이는 갑자기 부러 악을 쓰듯 목대를 짜서,

"남쪽 나라 십자성은 어머님 얼굴,,,,,,."

두찬이도 광석이에 지지 않고 온 화찻간이 떠나갈 듯,

", 신라의 밤이여, , 신라의 밤이여, 타아향살이 십 년에,,,..,씨팔, 어떻게 되나 보자꾸나, 될 대루 돼라, 이 새끼야, 이 새끼야, 이 쥑일 새끼야."

발길로 화차 벽을 텅텅 내찼다.

하원이는 어느새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초저녁에는 화차 지붕에 성깃성깃 빗방울이 들었다. 밤이 깊었는데도 두찬이는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 화찻간에 누운 채 광석이는 또 하원이를 향해 좁쌀영감처럼 종알거렸다.

길을 다녀도 점잖게 다녀라. 뭘 그리 음식점 안을 끼웃끼웃하는 거냐. 고구마를 사 먹으면 고구마만 먹을 거지 손가락까지 빨아먹는 건 무슨 식이냐, 일판에선 좀 똑똑히 놀지 밤낮 토박이 반원들에게 놀림감만 되는 거냐, 외투 호주머니에 두 손은 노상 찌르고. 털모자도 뭘 그리 꽉 눌러 쓰고, 주둥아리에다가는 잔뜩 노끈까지 졸라매느냐, 부산서 그렇게 추워서야 이북에선 어떻게 견디느냐, 너 혼자라면 모르지만 괜히 너 때문에 우리 셋까지 망신하지 않

느냐, 그러잖아두 반원들은 우리 넷을 사촌끼리처럼이나 여기는 판이 아니냐.

하원이는 통 말대답이라고는 없고. 어느새 나는 잠이 들었다.

“---,야야, , , 화차가,,, ,, 빨릿."

화차 문을 드르르 열었을 땐, 낮은 바라크 지붕 너머로 환히 널려져 있는 부두 불빛이 모로 움직였다. 벌써 제4부두 앞이었다. 차 가는 쪽으로 훌쩍 내리뛰었다. 차가운 축축한 자갈돌이 손에 닿았다. 엉거주춤하게 일어났을 땐 저만큼 앞에 누가 뛰어내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몸을 바로잡았을 때는, 어기정어기정 앞사람이 일어나고 그보다 더 앞에 누가 고 뛰어내렸다. 어느새 차는 삐그덕거리며 커브를 돌고 있었다. 그러자 분명히 저만큼 훌쩍 뛰어내리는 소리가 또 났다. 무엇엔가 휙 부딪히는 소리 같았다. 오싹 잔등에 찬 기운이 지나가자.

"아야야야 아야야 아아악."

광석이 소리다. 앞으로 끌려가는 소리다 - 쉭 쉭 치끄덕 치끄덕-

시뻘건 불빛이 까만 하늘에 기관차 머리끝을 선명히 내솟구었다가 다시 어둠 속에 묻혀 버렸다.

"아야야 아아아아."

칠흑의 어둠 속에서 누가 내 허리를 움켜잡았다. 두찬이었다. 어두무레한 저쪽에서 펑덩한 외투가 너펄거리며, 비트적비트적 하원이가 달려왔다. 곁에 와서는 여전히 포켓 속에 두 손을 찌른 채 멍청히 서 있다.

나는 후닥닥 그쪽으로 내닫기 시작했다.

"?"

흠칫 돌아섰을 겸, 두찬이는 외투 포켔에 두 손을 찌른 채 외면을 하며,

"어디 가?"

“---."

"어디 가냐 말야, 가문 뭐 하니?"

"머이 어째?"

내버려 두구 우린 우리대루 가 거기 가문 뭐 한? 어떻게두 할 수 없잖니?"

다시 힐끗 내 편을 건너다보며,

맘대루 해, 올람 오구 말람 말구."

두찬이는 그냥 반대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그냥 서 있었다. 와그작와그작 자갈돌을 밟고 가는 두찬이 발짝 소리를 한 발짝 한 발짝 와작와작 씹듯이 들었다.

하원이는 흑흑 목을 놓고 흐느꼈다. 내 곁으로 와서 내 팔소매를 비틀어 움켜잡으며 광석이 쪽으로 끌었다.

"아이구야아 아이구야아."

화차는 이미 멀리 부산진 쪽으로 사라졌고. 광석이의 가라앉은 비명뿐이었다.

어느새 밤하늘은 활딱 개어 있었다.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화차 바깥은 모진 바람이었다. 하원이는 한구석에서 또 쿨쩍거렸다,

애당초 나는 두찬이처럼 심통 사납다거나, 광석이처럼 구변이 좋다거나. 하원이처럼 겁이 많다거나 그 어느 편도 아니었다, 나는 이젠 우리 넷 사이가 어떻게 돼도 좋았다. 아직 나대로의 뚜렷한 배포가 서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고향 사람이라는 소박한 공동체 의식이 점차 와해되고. 이해 관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인간 관계를 맺고자 하는 심리가 드러나 있다.

그저 때로 하원이의 애원하는 듯한 애스런 표정을 대할 때마다 섬뜩하게 뒷잔등이 차갑곤 하였다. 그러나 나는 번번이 외면을 하곤 했다. 나로서도 모를 일이었다. 하원이에 대하여 자꾸 미안을을. 막연히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됐고, 그럴수록 우락부락 웬 짜증만이 끓어올랐다.

광석이나 두찬이도 이 점 비슷한 것 같았으나, 나에게만은 그다지 큰 부담을 갖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 사이가 처음 화차살이를 시작했을 때보다 꽤나 어석버석해진 것만은 틀림없었다. 이미 두 달이 지났으니까 그럴 만도 했다.

사실 나는 광석이 곁으로 갔을 때, 자조도 느꼈다. 또 어떤 자랑스러움도 느꼈다. 다만 이렇게 광석이 곁으로 온 바엔 광석이가 죽고 안 죽고는 내가 알 바 아니다, 광석이가 죽을 때까지 광석이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이 다음에 고향에 가더라도(갈 수만 있다면) 조금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떳떳할 수 있으리라.

하원이는 또 외투 포켓에 두 손을 찌른 채 쿨쩍쿨쪄 울었다. 나는 왼팔 중동이 무 잘라지듯 동강이 난 광석이를 등에 업었다. 하원이는 울음을 꿀컥꿀컥 삼키면서 광석이 엉덩이를 받들고 뒤따라 섰다,

그렇게 이 화차로 일단 들어왔다.

한참 만에 광석이는 조금 정신이 드는 모양으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차악 가라앉은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 어디야? 두찬인 어디 갔니?

나는 서슴지 않고 받았다.

"병원에 갔어."

"병원에? 아이구, 어떡하니. 팔 하나 갖구 먹구살등 거. 두찬이 빨리 안 오니?"

광석이는 벌떡 일어날 듯이 몸을 움직거리면서 다시 가쁘게 헉헉 거리었다.

"우리 진짜 꼭 같이 가자, 고향 갈 땐. 두찬인 날 오해했는갑드라, 오해. 두찬이에게 할 말이 있는데, 어잉야, 너휜 날 어드케 생각핸. 내가 머 어쨌단 말야. 야하, 너들 날 벌어 먹이간? 진짜 벌어 먹이간?

이튿날 아침 광석이는 이미 죽어 있었다.

작업모가 삐뚤어져 있고, 왼쪽 볼이 화찻간 바닥에 찰싹 붙어 있었다. 입술이 새하앴다. 그러잖아도 여윈 얼굴이 더 해쓱해졌다. 눈기슭엔 눈물이 아직 채 마르지 않고 있었다. 피가 여기저기 말라붙었다. 하원이는 손수건을 꺼내 조심히 턱을 문질러 줬다. 둘이서 그냥 일판으로 나갔다.

 

두찬이는 쭈그리고 앉아 조반을 사 먹고 있었다. 조반을 먹고 나서 한 손으로 입술을 썩썩 문지르고,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두 눈을 잔뜩 으그러뜨리고 한쪽 볼을 치켜 올리고 악착스럽게 뻐끔뻐끔 빨았다. 깊숙하게 뒤룩뒤룩한 눈알이 먼 곳을 바라보듯 가끔 하늘 한복판에 가 있었다.

일판으로 들어서자, 늙수그레한 토박이 반원 하나가 불쑥 두찬이에게 물었다.

"와 하나 없노. 그 잘 떠든 사람 하나 없네. 어디 갔나?"

"좋은 데 갔소다."

"좋은 데? 취직했나?"

“---."

"어디? 미군 부대나?"

"잘됐구먼. 닌 안 가나?"

“---."

두찬이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내 눈과 마주치자 후딱 외면을 하고는 바다 쪽 먼 등대를 멀거니 건너다보았다. 묻던 사람은 대통을 뻑뻑 빨며 또,

"어딘고, 적기(赤旗) 병기창 앙이가?"

“---."

두찬이는 역시 대답이 없었다. 묻던 사람은 두찬이를 올려다보다가 대통을 시멘트 바닥에 탁탁 털고 일어섰다.

저녁에 일을 마치고 부두 앞에 나왔을 땐, 두찬이는 또 온 데 간 데 없었다. 하원이가 곁에 오더니 내 허벅다리를 쿡 찔렀다, 흠칫 놀라 돌아다보았을 뻔 거기 저녁놀이 싸느랗게 비낀 좁은 틈바구니 샛길로 두찬이의 뒷모습이 허청허청 걸어가고 있었다. 나와 하원이는 마주 바라보았다, 하원이는 또 울먹거렸다. 나는 외면을 했다.

 

화차 문을 열었으나 들어가기가 싫었다. 하원이다 먼저 들어갔다.

"잠들은가 부다야."

어두무레한 화차 속, 외투 포켓에 두 손을 찌른 하원의 몸집이 휑하게 커 보였다. 하원이는 아직 광석이가 죽은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

비로소 눈물이 두 볼을 흘렀다. 당황해서 눈물을 닦으려 하자 하원이는 멀뚱히 나를 건너다보았다. 그제야 하원이도 울음이 터졌다. 나보다 더.

"너 왜 우니. 너 안,,,,,,안 울문 나두 안 울지...... 흐흐흐......."

하원이는 울면서 이렇게 지껄였다.

"흐흐흐------,,,,,,울지 말자,,,,,, ,,,,,,,,,,,,."

하원이는 또 이렇게 겨우겨우 울음을 참아 넘기려고 애썼다. 나는 화찻간 바닥에 주저앉았다. 서러웠다, 죽은 광석이보다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는 나 자신이. 또 저런 하원이 꼴이.

밤에는 보오얀 겨울 안개가 끼었다. 인근 판잣집에서 겨우겨우 삽과 괭이를 빌렸다. 거적때기에 광석이를 둘둘 말았다. 하원이는 엉엉 울었다.

밤이 깊어. 우리는 광석이를 맞들고 떠났다. 화차가 듬성하게 서있는 틈을 빠져나가는 나와 하원이는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날씨 괜 뜨뜻하다야, ."

"그래."

"15번 하치(일터) 냉장배 나갔재?

"어제 나갔잖니. 그 이치고(딸기) 맛 참 좋더라, ."

"그래 참말."

한참 만에 또 하원이는,

"놀멘 가자야."

"힘드니?"

"아아니,"

"근데 왜?

"야하, 이렇게 땀이 난다."

돌아오는 길에 불쑥 하원이는 또 말했다.

"두찬이 형 맘 좋은 줄 알았더니 나쁘더라, 그런 법이 어딨니?"

하원이는 어둠 속에서 다시 힐끔 건너다보고는 컬럭컬럭 헛기침을 했다.

 

이튿날. 이젠 제법 길어진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다.

두찬이는 불현듯이 우리 화찻간으로 돌아왔다.

“---."

“---."

나는 반가웠다. 없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더 있는 게 아무래도 마음이 든든했다. 그러나 하원이는 내 허벅다리를 쿡쿡 찔렀다. 처음에는 웬 영문인지 몰랐다. 좀 만에야 두찬이를 떼어놓고. 둘만이 어디 다른 데로 가자는 눈치인 것을 알았다. 나는 모르는 체했다. 하원이는 그냥그냥 내 허벅다리를 쿡쿡 찔렀다. 밤이 깊어도 두찬이는 누울 줄 몰랐다. 화차 벽에 기대어 앉아 연방 담배만 거푸 피웠다. 담뱃불을 들이빨 때마다 두찬이 얼굴이 별나게 큼직

하게 드러났다. 뒤룩뒤룩한 눈알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이따금 긴 한숨을 내뿜곤 했다. 왈칵 가래를 돋우어 드르르 화차 문을 열고는 내뱉기도 했다. 잠이 올 리 없었다. 숨쉬기조차 어쩐지 힘이 들었다.

얼마만큼 지나서 두찬이는 불쑥 거칠게,

"야 자니?"

“---."

나는 잠이 든 체했다. 구석에서 하원이는 울음을 삼키느라고 흑흑거렸다.

화차 벽에 부딪쳐 오는 바닷바람만이 얘룽거렸다,

 

다시 세 사람의 생활이 시작됐다. 광석이가 있을 땐 그래도 더러 웃을 때가 있었으나 요샌 피차에 통히 웃을 일이라고는 없었다. 나는 가끔 혼자서 노래 같은 컷을 불렀다.

"흘러가는 구름 저편,,,,,,."

화찻간이 쩌렁하게 울렸다. 그것으로 나는 조금 기분이 풀렸다,

그러나 두찬이는 싫은가 보았다. 상을 잔뜩 찌그러뜨리고 나를 건너다보곤 했다. 그러면 나는 노래를 뚝 그쳤다. 일 나갈 때가 되면 두찬이는 누운 채 화차 천장을 올려다보고 담배 한 대를 피웠다. 그러고는 나와 하원이를 깨웠다.

"일어 나라, 일어 나라구."

셋이 가지런히 일판으로 나갔다. 하원이는 노상 울먹거렸다. 내 허벅다리를 쿡쿡 찔렀다, 둘만이 어서 다른 데로 가자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번번이 모르는 체했다.

일판에선 여전히 우리를 사촌끼리처럼이나 여겼다.

"사촌끼링교? 비슷하네."

처음 우리 넷이 부두 앞에 나타났을 때 가지런히 훑어보며 지껄였듯 지금도 저희들끼리 키들거리며 지껄이곤 했다. 그러고는 북쪽 얘기를 하라고 자꾸 졸랐다, 두찬이는 해사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모로 젓기만 했다, 얘기할 줄 모른다는 뜻이리라. 풀이 죽은 낯색이었다. 일이 끝나면 셋이 가지런히 돌아왔다. 어두운 화찻간, 내가 가운데 눕고 두찬이와 하원이가 양 가장자리에 누웠다. 하원이더러 가운데 누우라니까 두찬이 모르게 아얏 소리를 지를 만큼 내 허벅다리를 꼬집어 뜯었다.

 

어느새 봄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초량 뒷산 마루에는 제법 아른아른한 기운이 어리었다.

밤이 어지간히 늦었는데도 두찬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원이는 기쁜 듯이 지껄였다. 여느 때의 하원이 같지 않게 활발스럽기까지 했다.

"두찬이 형 아주 간가 부다, 잉잉"

“---."

"야하?"

“---."

"넌 왜 늘 아무 말도 안헌?"

“---"

"벌써 여긴 봄이다 야, 이북은 아직도 굉장히 추울끼다."

“---."

“---."

되잖은 청으로 타령 같은 것을 부르는 두찬이의 취한 목소리가 또 가까워 왔다. 하원이는 흠칫 놀라 또 내 허벅다리를 조심스럽게 찔렀다.

"문 열어라."

드르르 문을 열었을 땐. 싸느다란 부두 불빛이 푸르무레하게 또 화찻간에 찼다. 막걸리 병이 들려 있었다. 문간에 막아서서 비트적거리며 한참을 허허허 웃어댔다.

"술 마셔, . 탁배기다, 조오치! 안주? 여깄어. 있구말구, 안주 없이야 술이 있나, 암 있구말구, 허허, 이 새끼덜, 개구리들처럼 오그리구 누웠구나."

나는 서슴지 않고 술병을 받아 들었다. 나팔을 불었다. 괜히 다급하게 서둘렀다.

"---,,,하원아,,,,,, , 넌 안 마시니?"

"난 마실 줄 몰라요."

"마실 줄 모르다니, 아직 술두 못 마셔? , 빨리."

내 손에서 술병을 빼앗아 하원이 쪽으로 갔다.

"난 마실 줄 모른단데, 힝힝"

하원이는 또 울먹거렸다.

"놔요, . 놓으란데. 내 손 쥐문 안돼 내 손 쥐문 안돼,"

나는 당황해서 큰소리로.

"하원아, 마셔, 마시라는데, 어서."

"흐흐,,,,,,, 마실게, 흐흐흐...... "

한참 동안 조용했다. 별안간 두찬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두찬이 우는 김에 하원이의 쿨쩍거림이 뚝 그쳤다.

"."

두찬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화차 문은 열어 젖힌 채였다. 어수선한 바람이 몰아 들었다. 두찬이는 머리칼을 앞으로 흩뜨린 채 내 곁으로 다가왔다. 구석에서 하원이가 다시 소리내어 흑흑 흐느꼈다.

", 너 오늘 죽여 버린다. 어잉 이 새끼야, 넌 왜 그때 혼자만 간 왜 날 붙들지 않안. 부르지도 않안. 그리고 이제 와선 괄세야, 이 새끼야. 그땐 암말두 안허군 이제 와서. 너 잘핸 것 같니, 잘핸 것 같애? 하늘이 내려다본다, 이 뻔뻔헌 새끼야."

다시 하원이 울음소리가 뚝 그쳤다. 두찬이는 내 무릎을 움켜 잡았다. 그러나 다시 그냥 벌렁 뒤로 나자빠졌다,

"어잉, 이 쥑일 새끼. 개새끼, 취핸 줄 아니? 취할 탁이 있니? 이 개새끼야, 요렇게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말똥말똥해. 왜 넌 암말두 안헌. 뛰디래 잡든지 칼침을 주든지 하잖구. 어허허허, . 이제 무신 낯짝으로 동네 가간, 어허허허,,,,,, 광석아아,,,,,, 광석아하아."

두찬이는 벌렁 자빠져서 화차 안이 쩌렁쩌렁하도록 그냥 어이 어이 울어댔다,

이튿날 아침 두찬이는 보이지 않았다. 부두 일판에 나가도 없었다.

사흘쯤 지난 뒤, 머두운 화찻간 속에서 하원이는 지쩔였다.

"야하, 우리 이젠 꼽대가리(밤낮을 거푸 일하는 것) 자꾸 해서 돈 좀 쥐자. 그러구 저기 염주동 산꼭대기에다 집 하나 짓자. 거기 집 제두 일없닝기더라야. 잉야 조카야, 흐흐흐 우습다. 진짜 우스워. 난 너두 두찬이 형처럼 그렇게 될까 봐 얼마나 떨언 줄 안. 광석이 아제비두 맘은 좋은 폭은 못 됐시야, . 우린 동네 갈 젠 꼭 같이 가자, 돈벌어서, 돈벌문 말야, 시계부터 사자, 어부러서. 그까즌 거, 꼽대가리 대구 하지 머. 광석이 아저씨까 두찬이 형은 못 봤다구 글자마, 알 거이 머야, 너까 나만 암말두 안헌 담에야. 그저 대구 못 봤다구만 글자마, 낼부터 나 진짜 꼽대가리 할란다 잉.

조카야 우습다. ? 이케(이렇게) 잠이 안 온다 야. 우리 오늘 밤, 그냥 밤새자. 술 마시까. ?

나는 그저 중얼거리고 있었다.

"바람도 없이 내리는 눈송이여, , 눈송이여."

무엇인가 못 견디게 그리운 것처럼 애탔다. 그러나 누가 알랴! 지금 내 마음 밑 속에서 일어나는 돌개바람 같은 것을,,,,,, , 어머니! 이미 내 마음은 하원이를 버리고 있는 것이다. 순간 나는 입술을 악물었다. 와락 하원이를 끌어안았다. 눈물이 두 볼에 흘러 내렸다. 하원이는 흐흐흐 웃었다. 지껄였다.

"이 새끼 술도 안 먹구 취핸. 참 부산은 눈두 안 온다 잉, 눈두. 이북 말이다. 눈 오문 말이다. 눈 오문 말이다. 광석이 아제비네 움물 말이다. 야하. 굉장헌데. 새벽엔 까치가 울구. 그 상나무 있잖니. 장자골집 형수 원래 잘 웃잖니, 하하하 하구 그 형수 왜나 부지런했다. 가마이 보문, 천제나 새벽에 젤 먼저 물 푸러 오군 하는 게 그 형수더라, . 야하, 눈 보구 싶다, 눈이."

(문학예술. 1955. 7)

 

 

 

 

 

이호철(李浩哲: 1932- )

 

함남 원산 출생. 원산고 졸업. <탈향(脫鄕)>(1955), <나상(裸像)>(1956)<문학예술>지의 추천을 받아 등단. 전후(戰後)문학의 중심 작가 중의 한 사람인 그는 분단에 고착된 아픔을 그렸고 시대적 상황에 철저하게 대응하면서 세계의 끊임없는 변화를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실천적 작가로 알려져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판문점>, <닳아지는 살들>, <소시민>, <물은 흘러서 강>, <남풍 동풍>, <역려(逆旅)>, <카레이우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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