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農村) 사람들 - 조명희
1
아침에도 큰 두레 방석만한 벌건 해가 붉은 놀을 띠고 들 건너 동녘 봉우리 위로 쑥 솟아올랐다. 그것은 마치 이 세상을 -불-의 세계로 바꾸는 마당에 어떤 무서운 계시의 첫 광경 같이-, 그리하여 가뜩이나 말라 시들어 가는 여름철 넓은 세계의 생물들은 한때에 눈을 그리로 쏘며 다시 한번 더 떨지 아니할 수 없다.
「큰일 났다! 영영 사람을 다 죽이고 만다!」
들녘 사람들은 입을 여나 안 여나 다 이와 같은 말을 하게 된다. 밝음의 공포 - 백색의 공포는 오늘도 또 닥쳐왔다. 그러던 해가 벌써 한나절이 기울었다. 논밭에 곡식은 더 말할 게 없고 길옆에 풀도 냇가에 잔디도 말랑이(산마루)의 풀도 모두 말라 시들다가 나중에는 배배 꼬여 틀어져간다. 어떤 데는 가을 풀-모양으로 누렇게 탄 데도 있다. 나뭇잎도 시들버들 하여진다.
십리(十里) 장야(長野) 한복판에 길게 내려 뚫고 누운 큰 내는 꾸불꾸불 말라 비틀어져 자빠진 무슨 큰 뱀의 배때기처럼 말라 뻗치어 있을 따름이다.
서쪽으로 동쪽 끝까지 이들 북녘을 둘러막은 북망산, 어찌 가다가 작은 나무 개나 세워놓고는 거진 다 벌거벗은 채로 있는 이 사태부덕이 살가죽을 벗겨놓은 사람의 등말성이 같이 보기에도 지긋지긋한 이 시뻘건 사태산. 이 산말랑이 남향 폭 안을 불볕이 내리쪼일 제 시뻘건 흙빛은 이글이글 익어 더욱더 붉어지는 것 같이 그러면 불볕은 더욱더 쏟아져서 하늘에서 쏟는 더위와 땅에서 뱉는 더위가 서로 엄불려 산과 들을 뒤덮을 제 이따금씩 바람에 불리는 나뭇잎까지 스름치며 떠는 것 같다.
가물음도 벌써 한 달 반이나 되었다. 졸아붙은 봇물이 나마 닿는 상들(上畓) 귀퉁이나 또는 생숫물을 파서 두레박질하여대는 구렁텅이 논뙈기를 제해놓고는 모두 논바닥이 보얗게 말랐다. 엉거름(논바닥이 말라서 갈라진다는 말)이 땅땅 갔다. 벼이삭이 모두 비비 꼬여간다. 어떤 때는 풋나무같이 말라서 불을 지르면 탈 듯싶다. 이 해 농사는 아주 절망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애착을 버리지 못하였는지 삿갓 쓰고 종가래 짚은 어떤 농군은 논둑에 우두커니 서서 논바닥을 들여다보고 있다. 검누르게 들뜬 얼굴, 쑥 들어간 두 눈, 말없는 가운데 아픈 표정, 멀리서 자세히 보이지는 아니하나 짐작할 두 있다. 어떤 늙수그레한 여자는 두 다리를 벋고 앉아서 논둑을 두드리며 통곡하는 이도 있다, 논에 물이 졸아 들어가기 시작할 때부터 졸이던 마음이 이날 이때까지 갈수록에 더 바싹바싹 타들어 가던 터이다. 죽어 가는 자식의 꼴을 들여다보고 있는 어버이의 마음씨와도 같이 말라 죽어 가는 벼 이삭의 운명을 들여다보고 있을 깨 울고도 싶고 미칠 듯도 싶다.
「비를 내리지 않거든. 차라리 불을 내리라!」
악이 치받친 사람들의 입에서는 이러한 소리도 나온다.
이 넓은 들 폭 안에 이 참혹한 광경을 홀로 우뚝 서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이 마을 앞에 서 있는 묵은 정자나무다. 이 정자나무는 그늘 좋기로 이름난 느티나무로서 잎과 가지가 뻗어나가서 폭 안도 굉장히 섧고 나무 밑 대궁도 여러 아름이나 되게 굵다. 마치 이 나무만이 이 마을에 묵은 역사를 다 말하는 듯이.
다른 때 같고 보면 평생 일도 할 줄 모르고 놀기만 하는 엇박이 친구들이나 이같이 바쁜 철에도 이 나무그늘 밑에 모여들어 앉아서 장기나 바둑으로 기나긴 해를 넘겨 보낼 터인데, 지금은 한다 하는 장정 일꾼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여 앉아서 근심기 띠인 얼굴을 하여 가지고 서로 바라보며 가물음 걱정을 하는 것이 이들의 가장 큰 말거리다. 걱정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올 무서운 흉년 난리를 미리 느끼며 침울한 가운데에도 가슴이 은근히 떨린다.
사람이 어떤 공황(恐慌)에 눌릴 때에는 서로 모이고 싶은 마음이 다른 때보다 더 나는 것이다.
「인제는 더 말할 것 없이 아주 흉년이지?」
이것은 술타령만 잘하며 번들번들 놀기만 하고 농촌에 살면서도 농사 이치라고는 모르는 예전 아전 퇴물인 이불량의 말이다. 그는 아전 다닐 시절에 촌사람의 것이라면 속이고 어르고 해서 잘 떼어먹고 살던 터이므로 불량(不良)이라는 별호까지 얻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는 수없이 이 농군들 틈에 와서 끼여 지내가 한층 떨어져서 벗 같은 것도 주고받고 하며 그럭저럭 지내 가는 건달패다.
「흉년은 벌써 판단된 흉년이지. 그러나 지금이라도 비만 온다면 아주 건질 수 없게 된 말라죽은 것 외에는 다소간 깨어날 것도 있을 테니께. 그러한 것은 한 마지기에 단 벼 몇 말을 얻어먹더라도,,...,」
고추상투를 하여 가지고 줄 부채를 왼손에 들고 슬쩍슬쩍 부치며 앉았던 반나마 늙은이의 참하게 대답하는 말이다.
「설령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벼 말박을 건질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되며 건진다 하더라도 며칠이나 먹게 될 테야, 그게.」
여름에는 참외장수, 겨울에는 나무장수로 이름난 중년에 들어 보이는 눈끔적이의 말이다.
「그러고 저러고 간에 필경에는 다 죽네 죽어.」
눈끔적이와 같은 낫세에 들어 보이는 세 곱한 상투쟁이의 하는 말이다.
「네기를 할...., 그럴 줄 알았더라면 매고 뜯지나 말 것을------공연히 없는 양식, 없는 돈에 술 밥만 처들여가며------」
또한 눈끔적이의 입맛 다시며 하는 말이다.
「지금 앉아서 철늦게------」
부시를 쳐서 불을 붙인 부싯깃을 갖다가 대꼬라리(대롱)에 박고는 뻑뻑 빨며 말대꾸하는 반나마 늙은이의 말이 다.
「사람이 모두 굶어 죽어야 옳단 말가? 품이라도 팔아 먹을 것이 있어야지.」
이 말은 영남사투리를 써가며 말하는 곰보 총각의 말이다. 그가 영남서 이곳으로 올라와 남의 집 머슴살이 한 적도 한두 해에 지나지 않는다 한다.
이 여러 사람들은 말이 이 입에서 터져 나오고 저 입에서 터져 나오고 하여 어지럽게 또는 드문드문하게 지껄여댄다.
「일본이나 가세그려.」
「이 사람 말 말게, 갔다가 돌아오는 것들은 어쩌고. 돈벌이가 좋다더니만 까딱 잘못하면 사람을 무엇? 감옥 속 같은 데로 속여 끌고 들어가서 그 안에다 가. 두고 죽도록 일만 시키고, 돈도 먹을 것도 얼마큼씩 안 주고, 한번 갇히면 세상 밖에도 탈 못 나온다네.」
「다 그러헐 리야 있으랴마는, 자칫하면 그러는 수도 있다더구만.」
하고 이때껏 남의 말만 듣고 앉았던 떠꺼머리 총각의 받는 말이다. 그는 나이도 스물 너더댓이나 되어 보이고 기운도 차 보이고 사람도 좋아 보이나 이때껏 장가도 들지 못한 터이다. 머리를 굵게 따서는 머리 위에 칭칭 감고 그 위에다가 베 수건을 질끈 똥인 꼴이 떠꺼머리 총각이란 말과 같이 쇠어가는 밀대 모양으로 보기에도 좀 징글맞아 보인다. 그와 반대로 볏섬이나 쌓고 먹는다는 이 마을 높은 사랑 집의 북 상투 짠 열 서너살 먹은 새신랑의 꼴에다 서로 어루어 놓고 보면 그것도 이 열리지 못한 사회에서 예사롭지 않은 무슨 변으로 느껴진다.
「서 간도는 올 같은 해에 가뭄도 안 들고 조가 아주 잘 되었다고 재작년에 들어간 그 이쁜이 아버지 천보 말이여, 그한테서 일전에 건넛마을 자기 당숙 집에 편지가 왔더라네, ,,,, 거기나 갈까.」
「거기 가면 별수 있나. 청인 놈의 압제가 여간이 아니라네. 거기 가서 살던 사람들도 이리로 쫓겨가고 저리로 쫓겨간다네.」
「그러면, 네미,,,,,, 우리 조선사람은 살 곳도 없고 갈 곳도 없구나.」
이 소리는 뼈아프게 울려나왔다.
둘러앉은 여러 사람은 말없이 땅만 굽어보고 있을 뿐이다. 무슨 생각에 잠긴 그들의 눈 속에는 엷지 않은 근심과 아픔의 빛이 또한 잠겨 있다. 침묵은 한참동안이나 끌어 나갔다.
「네기를 할. 예전 의병 XX같은 000나 또 이 00000?」
하고 한사람이 침묵을 깨뜨린다.
「사람이 조금만 더 배가 고파봐, 악이 나서 무슨 짓을 못하나.」
「제발 벼락이나 치면, 경칠거!」
「흥, 저것 봐, 바싹바싹 타들어 가는구나!」
한 사람이 고개를 들어 벌판을 바라다보며 기막힌 듯이 말한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모두 고개를 들어 들녘을 내어다본다. 그들은 보기가 하도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상을 찌푸리고 바라다본다. 잠시동안 잊었던 공포가 다시 닥쳐왔다.
「하느님 맙시사!」
이것은 늙은이의 부르짖는 말이다.
「죽여라! 죽여 ! 어데 견디어보자. 경을 칠거,,,,,,」
이것은 젊은이의 부르짖는 말이다.
쓴 침묵은 또 끌어나간다.
「서간도------서간도--,-, 그래도 거기나 가봐,,,, 그런데 그 이쁜네하고 같이 간 음전네는 서간도에 안 있데여, 거기서 더 들어가 어딘지도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고 말았다네 그려.」
「그래 그 음전네는 소식도 없대유?」
이것은 한옆에서 고누판을 그리고 앉았던 총각의 말이다.
「모른다네 ,,,,,,」
떠나간 사람들의 자취가 덧없이 되었다는 것을 탄식하는 듯한 긴 말씨로 대답하던 사람은 또한 눈끔적이다,
「삼 년--- 벌써 삼 년이로구나!」
갑자기 서글픈 듯이 건너산 고갯길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말하는 총각의 한숨 비슷한 말이다, 거듭 잇대어,
「제- 기-」
하고 다시 땅을 굽어보는 그의 눈과 얼굴에는 슬픈 빛이 띠어 있다. 아마도 그의 가슴에는 휘휘 틀어져 감겨 나오는 지나간 날 로맨스의 꿈이 다시 떠오르는 것이나 아닐까? 그 음전이란 처녀를 생각하고 그러는 것은 아닐는지?
이때 그 마을 앞 신작로에는 짐차가 온다. 한 채 두 채 세 채나 된다. 무거운 수레를 끌고 가는 소는 숨과 발이 한가지로 터벅거린다. 사람도 마음속까지 가뭄이 들어서 놀기에도 괴로운 터인데,,,
「그거 뭐유? 버립니까?」
영남 악센트로 말하는 곰보 총각이 마차꾼보고 묻는 말이다.
「쌀이라네.」
마차꾼은 채찍으로 소 궁둥이를 툭 때리며 대답한다.
「뉘집 쌀이유?」
마차꾼은 대답도 하기 전에 곰방대를 새좨기(억새 , 갈대 따위의 껍질을 벗긴 가는 줄기)로 후비고 앓았던 세 곱 상투가 말을 채서,
「물어볼 거 무엇 있어. 김 참봉네 쌀이지.」
「김 참봉네가 언제 그렇게 부자가 됐나 -
이것은 이때껏 잔뜩 찌푸린 상으로만 아무 말참례 없이 앉아 있던 원보의 말이다. 그는 금점판이고 대처 바닥으로 돌아다녀 머리까지도 깎았다는 사람이다.
「흥, 부자 될 수밖에. 요전까지도 그 부자가 다 돈벌이하였지. 작년부터 돈놀이하고, 더구나 지금은 동척 회사 사음이고. 지독하게 긁어모으니 부자 될 수 밖에,,,,,, 게다가 세도가 좋지. 옛날의 닷둔 세 뭉치니 양반이니 하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군청이고 척식 회사고 헌병소고 다 무엇, 세도가 막 난당이지.」
원보의 친구가 하는 말이다.
「주릿대를 앵길 놈들. 그놈의 부자(父子)는 두 놈이 다 고약도 하더니------」
「고약하키께 돈 모은단다. 법에 숨어서 도적질하는 놈들이니께. 못난 우리 같은 것들이 공연히 섣불리 도적질하다가 법에 잡혀 들어가지.」
이것은 그네의 말마따나 돌아다니며 널리 박람(博覽)하여 귀가 열렸다는 원보의 말이다.
「참 그래-」
원보의 힘있게 내어 붙이는 말에 동감이라는 듯이 둘러앉은 청중에서 몇 사람은 잇대어 이와 같이 대답한다.
「보리 알 꽁댕이도 얻어먹지 못하여 부엉(부황)이 나서 사람의 얼굴이------」
「어떤 놈은 쌀을 몇 차씩 산단 말인가.」
눈알을 부리부리 굴리며 말하는 키가 작달막하고 뭉툭하게 생긴 원보의 한 친구의 말이다.
「무얼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따위 놈의 것을 뺏어먹을 수 있다면 뺏어먹는 것이지.」
이것은 원보의 말이다.
「그것은 자네 말이 글렀네.」
이것이 마치 찌는 더위에 털끝 하나 꼼짝 못하고 숨만 헐떡거리고 앉았는 오뉴월에 알을 품은 암탉 모양으로, 더위를 이기지 못하여 웅숭거리고 앉아 눈만 까막까막하던 거진 육십 줄에 들어 보이는 늙은 영감의 한탄하는 말이다.
「글르기는 무엇이 글러요? 누구나 굶어 죽게 생기면 있는 놈의 것을 뺏어가 밥도 먹고 사는 것이 의당한 일이지, 공연히 꼬장꼬장한 체만 하다가 굶어 죽지.」
또한 원보의 하는 욕이다,
「그것은 이치가 틀린 말이야. 부자고 가난한 사람이고 다 제 팔자고 제 복이지.」
하고 저쪽 늙은이 편을 들어서 말하는 사람은 어물장사 하여 돈냥이나 모았다는 젊은 자의 말이다.
「무엇, 제 팔자?」
하고 말끝을 주춤하던 원보는 얼굴에 핏대를 올려가며 자기의 주장을 세워 말을 기다랗게 또는 힘있게 늘어놓았다. 저편에서도 자기네 주장에 지지 않으려고 연달아 대거리를 하였다. 그리하여 판이 떠들썩하게 한참동안이나 의론의 불꽃이 타올랐다, 또는 그 늙은이와 원보와는 의론 끝에 감정의 갈등이 나서 다툼까지 하였다.
「예끼 이 사람들! 말이 모두 억지고 맘씨가 몹쓸 맘씰세. 그러한 맘보를 먹고 있다가든 제 명대로 살지도 못하리.」
이 말에 원보는 들은 체 만 체하고 벌떡 일어나서 동네 안 골목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가 일어서 빠져간 뒤의 좌중은 다시 쓰디쓴 침묵 속으로 잠겨지고 말았다.
2
원보가 골목 안으로 들어간 지 한참 있다가 다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 집 속에서는 큰 목소리가 일어난다. 여자의 울음소리도 일어난다, 가까 그 나무그늘에 앉아서 이 야기하던 마을사람 말마따나,
「또 쌈이 났구나!」
「원보는 밤낮 그 불쌍한 늙은 어머니와 쌈질만 하겠다」
한다.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원보의 친구 한사람은 달려가기까지 한다.
좁은 봉당, 떨어진 멍석자리 위에는 예순이 가까워 보이는 원보의 어머니가 극성을 피우고 앓아 있다.
「이놈아! 이틀씩이나 굶은 네 어미를 잡아먹지를 못해서 이 야단이냐? ...... 밭뙈기까지 있던 것 죄다 갖다 까불어 올리고 나서 어미야 죽든지 마든지 내던져버리고 몇 해씩 돌아다니다가, 집이라고 돌아와서 뺀들뺀들 놀며 어미만 들들 볶어 먹고-----굶어가며 품 판 돈으로 돼지새끼 하나 사다가 길러 논 것을 팔아다가 술 받아먹고------어미가 굶어 죽게 되었으니 민 맘이라도 불쌍하게 생각을 하나, 어린 자식새끼가 병이 나서 죽게 됐으니 약 한 푼어치를 사다가 주나? ------참다 못하여 김 참봉네 집에 돈냥이나 꿀까 하고 간 것이 아니냐. 코만 잡아떼고 돌아와서 분한 생각에 설움이 복받쳐서 우는 어미를, 그래, 이래야 옳단 말이냐 ? ,,,,,,」
하며 울고 있을라면, 그 옆자리에는 마치 낡고 구긴 헌 명주옷같이 보드라운 살이 비비 꼬일 만큼 마르고 때 투성이를 한 예닐곱 살 가량 된 계집아이가 일어날 기운도 없는지 팔 다리를 축 늘어뜨리고 누워서 힘없는 목소리로 칵칵 하며 울고 있다.
그 꼴을 잔뜩 찌푸린 상으로 바라보고 있던 원보는 악이 난 말조로,
「예끼, 이 망할 새끼, 어서 뒤어지기나 해라!」
「이놈아, 그게 무슨 죄냐. 그 불쌍한 게 무슨 죄냐? ,,,,,,」
하고 또 발악을 할 때,
「아, 그 원수 놈의 김 참봉인지 주릿대를 할 놈의 집에 돈인지 무엇인지를 꾸러 가는 그런 소견머리가 어디 있단 말이어? 엣참, 네기를 할,,,,,, 엑,,,,」
하고 원보는 벌떡 일어나 걸어가는 길인 옆에 놓인 화로를 발길로 걷어차 화로는 깨어져 굴러 떨어진다.
「이놈아, 날 죽여라.」
하고 어머니는 아들의 발목을 붙들자, 아들은 발목을 차는 듯이 내뿌리며 어머니는 저쪽에 가 떨어져 대굴대굴 굴며 통곡한다. 그래도 원보는 본체만체하고 마침 문간에 들어서며 붙잡아내는 친구에게 끌려 마을 앞 주막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남의 말을 듣든지 지금 이 모양을 보든지 원보는 과연 불량한 사람이 되었다. 이같이 된 경로를 대강 그려보면 이와 같다.
지금으로부터 여러 해 전이다. 그때에는 원보라면 누구나 다 일 잘하고 부지런하고 영악스럽다고 할만큼 규모 있고 말썽 없고 맘씨까지 바르다고 일컫던 터이다. 나무장수로 돈냥을 모으고 그 돈으로 송아지 필이나 사고, 그것이 또 늘어서 밭뙈기를 사게 되고, 또는 남의 땅일망정 논농사도 착실히 지으며 나 젊고 돌밉게 생긴 아내와 늙은 어머니와 안팎이 다 한가지로 부지런하여 재미가 오붓하게 살아나가므로 그의 친구들도 부러워할 만큼 되었었다.
그러다가 삼 년 전 여름 - 그때도 이 해 같지는 아니하였으나 가물음이 좀 대단한 시절 - 에 사람 사람이 자기 논에 물댈 양으로 눈들이 뒤집혀 가지고 야단들 할 즈음에 원보도 밤을 새워가며 논에 물을 대게 되었다. 물이 차고 겨우 대줄기만한 물줄기를 흘려 넣으며 자기 논 수멍머리에 풀이 모지라지도록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서 지키고 있었다.
그때에 김 참봉 집에서 들판 여러 농사꾼을 무시하고 물을 도수하여 가지고 자기 논에만 댈 양으로, 그 시절에는 한참 어깨 바람이 나도록 세도를 부리는 헌병 보조원인 김 참봉의 아들이 어리석은 촌백성을 위협이나 하는 듯이 한 손에 몽둥이를 들고 억탈로 경계도 없이 이 논 수멍머리에 닥치자마자 덮어놓고 수멍을 막아대고 만다.
이것을 본 원보는 눈에서 불이 돋을 만큼 분이 났었다. 부리나케 달려들어 막은 수멍을 잡아 흩어놓았다. 이것을 본 김 참봉의 아들은 다짜고짜로 달려들며 몽둥이로 원보를 훔쳐 때렸다. 맞고 난 원로는, 당시에 그러한 직함을 가진 사람에게야말로 말 한마디라도 거역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줄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마는, 이 당장에는 자기의 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물보다도 더 중하게 여기는 논물을 뺏기고, 더구나 얻어맞기까지 하고 난 판에 벼락이 내린대도 무섭지 않을 만큼 된 터이다. 그만 달려들어 그를 물에다 잡아 집어넣어 버렸다. 두 사람은 서로 얼러 엎치락재치락하고 때리고 차고 하며 싸워댔다. 필경에는 여러 사람이 뜯어말리게 되었었는데 집에 돌아와 있은 지 얼마 있다가 읍내 헌병대로부터 보조원 두 사람이 나와서 원보를 붙들고 뺨을 치고 구둣발길로 차고 하며 개 패듯 하더니 포승으로 칭칭 얽어 묶어 가지고는 잡아 가지고 갔었다.
원보가 유치장에 여러 날 갇히어 있다가 도청 있는 ㅇㅇ군 검사국으로 넘어가서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 일 년이라는 세월을 징역하고 나오게 되었다.
그 가운데 기가 막힌 일 하나는 원보가 감옥에 있을 때에 믿고 있던 저의 아내에게 이혼소송을 만난 것이다. 그것은 그 아내란 사람이 그의 위풍과 세도를 흠모함인지 원보와 척이 진 김참봉 아들과 배가 맞아서 그렇게 된 것이다. 이것을 그 뒤에 저의 어머니가 면회하러 와서 알게 된 일이지마는, 어쨌든 그때에 그 일을 당한 원보는 마음에 도리어 아니꼬운 생각이 나서 그리하였던지 재판정에 불려가서 그 아내의 이혼 청구를 쾌히 승낙하여 주었었다.
감옥에서 나온 뒤에 집이라고 와서 보니 아내가 내어버리고 간 어린 딸을 데리고 늙은 어머니가 지악스런게 해서 간신간신히 부지는 하여가나 전날의 탁탁 하던 꼴을 다시 볼 수 없고, 더구나 아내조차 없어 집안이란 것이 마치 삵이 채간 닭의 홰장 모양으로 횅-한 것이 쓸쓸하기가 가이 없다, 그는 마음 붙일 곳이라고는 아무 데도 없다. 그리하여 그는 술 먹기 시작하고 놀음하기 시작하여 난봉나기 시작하였다. 그럴수록에 그의 어머니는 바가지 긁기를 시작하였다. 모자간에 싸움도 잦아진다. 동네사람들도 원보가 고약해져 간다고 말들을 한다. 그럴수록에 원보는 점점 더 술만 먹고 남하고 말썽부리기 좋아하며 싸움하기 좋아하여 간다. 부치던 남의 땅마지기도 떨어진다. 남아 있는 소필이고 밭뙈기고 모조리 다 팔아먹게 되고 집에만 들어오면 모자 사이에 싸움하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집에도 있지 않고 그만 나가서 일년 동안이나 떠돌아다니다가 마음이 어떻게 내켰던지 마침내 집으로 다시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이번에 집에 돌아온 뒤에는 전과 같이는 아니하나 또한 가끔가끔 그 굶주리는 어머니와 싸움질을 하는 터이다.
아까 그 어머니와 싸운 일만 보아도 그렇다. 원보의 마음은 과연 이같이 상구나워(사나워)졌다. 그같이 상구납게 된 까닭이 어디 있다는 것을 자기도 짐작은 하는 터이다. 그것은 자기가 이같이 된 것이 첫째는 아내를 잃어버린 까닭으로 마음 붙일 곳이 없어서 그리 되었다는 것, 그 아내를 잃어버리게 된 것은 그 김 참봉의 아들이 그리하여 놓았다는 것, 그 김 참봉의 아들이 그런 짓을 하게 되고 또한 그런 짓을 하게 되어도 세상에서는 아무도 그를 손대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데로부터 이런 저주로운 세상과 사람을 모조리 미워하게 되며, 굶주리고 게으르고 인정 없고 잔인한 짓도 예사로 하게 되어 생활과 마음이 어지간치 않게 변하였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더 자기 목숨을 살리기 위하여서는 어떠한 칠악한 짓이라도 가리지 않고 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자기 목숨만은 살려나가려는 마음이 더 강하여가는 것이다. 또 다시 말하면 그는 묵은 인습적 도덕과 양심이란 것을 잊어버리는 동시에 원시적 생활력의 굳센 힘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다.
3
이날 밤에 밤이 이슥하여서 원보는 자기 집으로 돌아왔었다. 지친 싸리문을 슬그머니 열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어느 때고 여름철만 되고 보면 방안에서는 빈대 벼룩에 쫓기어 봉당에서 자다가, 인제 봉당에서도 물 것에게 쫓기어 나중에는 마당으로 나와 한지(한데) 잠을 자게 되는 것이 전례다.
마당 멍석 자리 위에 그의 어머니가 손녀딸을 데리고 누워서 자는 모양이 눈에 먼저 뜨인다. 그는 봉당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서 누워 자는 자기 어머니의 꼴을 바라다보았다.
이날이야말로 스무날께 늦게 돋는 달이 벌써 하늘의 반쯤은 솟아서 올라 있다. 달빛이 바로 봉당 마당 반쪽을 들이비치게 되었다. 달빛을 받은 그의 어머니의 얼굴은 말라서 쭉 바졌던 살이 굶어서 부황이 났는지 부석부석하게 부어오른 것이 지금 보아도 넉넉히 알 수 있다. 다 죽어가게 되었다는 어린 딸은 잠결에도 다만 하나인 그의 할머니만은 잊히지 못한다는 듯이 손으로 팔목을 붙든 채 잠들어 있다. 원보는 그 꼴을 보기가 애석하고 싫증도 나서 눈을 딴 데로 돌렸다. 그의 어머니의 누운 머리맡에는 낮에 깨어진 화로를 무엇으로 얽어 동여 가지고 그 안에는 풋나무로 모깃불을 놓아서 지금도 가는 연기가 실마리 같이 달을 향하고
피어오른다. 이 화로를 바라다본 원보는 예전 생각이 번개같이 지나쳐간다.
이 화로야말로 옛날에 들일하러 다닐 때에는 으레 이 화로에다가 왕겨 같은 것을 피워 담뱃불을 담아 가지고 다니던 터이다. 그는 지금 당하여 부질없는 옛 생각은 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하여 마음속에 번뜩거리는 생각의 그림자를 쫓아 버릴 양으로 눈을 딴 데로 또 돌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옛날에 물꼬 보러 다닐 제 들고 다니던 괭이가, 더구나 그 김 참봉 아들하고 물 쌈할 때에 가지고 갔던 괭이 가 눈에 뜨이게 됨에 그는 새삼스러이 분노가 떠오르지 아니할 수 없게 되었다.
땅만 굽어보고 있는 그의 눈은 어둔 밤이 되어서 잘 보이지는 아니하나 대낮만 같고 보면 분명히 그 불량스러운 눈자위가 끄먹끄먹함을 볼 수 있으리라.
한참이나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그는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화로에 가서 불을 댕겨 피워 물고는 다시 앉았던 자리에 와서 앓았다. 그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부엌 쪽을 바라다보았다. 시커멓게 끄른 섬거적 같은 것이 부엌문 어귀에 놓여 있고, 그 옆에는 목이 부러진 지게가 하나 놓여 있다. 여지없이 가난한 살림에 어찌하여 이같이 쓰지 못하게 된 헌 지게를 패어서 때지를 아니하였나 하는 의심도 나게 된다. 아마 이러한 것을 패어 때면 무슨 사위에 거리는 까닭인 듯도 싶다. 지금 눈에 뜨이는 이 지게야말로 이것 하나로 말미암아 원보의 과거 십 년 전 오늘날까지, 줄잡으면 삼 년 전 일까지 내려온 일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원보가 떠꺼머리 총각으로 있을 때 - 원보가 겨우 열 살인가 열한 살인가 들던 해에 그의 아버지가 죽었다. 그리하여 중년 과부 된 그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만 마음을 붙이고 온갖 고생살이를 하며 이 외아들을 키워왔던 것이다. 그 때에 원보의 어머니는 품팔이하고, 원보는 나무장사 하여 모자가 지악스럽게 굴어 돈냥이나 모은 탓으로 남에게 착실히 보여 장가까지도 잘 들게 되었었다.
장가 든 뒤에는 더욱더 부지런하게 하여 눈이 쌓인 겨울 아침이라도 매일 아침 밝기 전에 일어나서 가을에 해서 쌓아두었었던 나뭇더미에서 무거운 나무 짝 하나를 떼어 지고는 거진 십 리나 되는 읍내로 들어가서 팔고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에는 넉넉지 못한 돈냥에서도 자그마치 떼어내어 북어 마리나 소고기 냥 어치나 사서 들고 돌아온다. 어떤 때는 귀여운 아내의 소용감으로 왜 밀이나 분이나 바늘이나 실이나 또는 어떤 때에는 마음을 크게 먹고 자줏빛 관사나 제병(비단의 한가지) 같은 비단 댕깃감을 떠가지고는 빈 지게 지고 혼자 돌아오며 추위도 잊어버리고 이 생각 저 생각에 골똘하여진다.
-이 왜밀을 갖다주면, 이 분을 갖다주면 여북 좋아할까.-
이렇게 생각하여 보며 그 아내의 방긋이 웃는 모양이 눈에 떠오를 때에는 팔짱 끼고 고개 숙이고 터덜거리며 오던 이 나무장수는 멋없이 혼자 뻥긋 웃는다. 또는 댕깃감을 떠가지고 올 때에는,
「이것을 갖다가 주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렷다!」
하며 그 함치레하고 새까만 머리를 비비 틀어진 한가운데에 이 새뜻하고 빛나고 고운 댕기를 휘휘 감아 물린 모양을 속으로 그려보고는 바로 그것이 눈앞에 보이는 듯도 싶어 그 어여쁜 꼴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가 없다는 듯이 손을 내밀어 어루만져보는 흉내도 내어보았다.
그러다가 자기 집에 이르러 봉당가에 언 발을 탕탕 구르며 눈을 털고 들어설 때에 기다리고 있다가 때맞추어 방문을 열고 마중 나오는 아내에게 사온 것을 어머니 모르게 슬그머니 손에다 쥐어줄 것 같으면 아니나다를까 ! 과연 아내는 이 세상에는 둘도 없이 가장 어여쁜 입을 방긋이 열어 생끗 웃으며 좋아라고
「아이고 왜 인자 와?」
하면. 그 어머니는 뒤따라,
「얘야, 여북 시장하고 추웠겠니, 어서 조반 차려줘라」
한다.
아침을 먹고 난 원보는 눈 쌓인 겨울날에도 남과 같이 마실도 아니 가고 자기 집 방안에 들어 엎드려 신을 삼으며 어머니와 아내를 번갈아 쳐다 보아가며 웃고 이야기하는 것이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었다. 그럴 때에 또 어머니가 바깥을 나가 단 둘이 있게 될 때에는 그 틈을 타서 서로 농을 하여가며 깔깔대고 웃는 것도 세상에는 흔치 않은 재미였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겨울날의 아랫목 이불 속같이 따뜻하고 푸근한 지나간 날의 꿈이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 하염없는 일이다. 그의 아내는 지금 없다. 있는 곳조차 알 수 없었다.
「주리를 틀 년!」
하고 동이 뜨게 있다가 다시,
「그 오라를 질 년이 지금은 어디 가 있나? ,,,,,,」
하고 그는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이때 어린 딸이 잠을 깨어 저의 할머니 옆으로 달려들며,
「할머니! 할머니!」
한다.
이 소리를 들은 원보는 별안간에 가슴속이 짜르르 하였다. 그러자 또 그 어머니는 잠을 깨어 팔로 어린아이를 거더듬어 끼어 안으며,
「아가. 아가, 아프냐? 또 아파?-------어린것이 물 한 모금도 못 얻어먹고 앓기만 하느라고,,,,,,」
이 소리는 가늘게 떨려나오는 목소리다. 이 말끝에는 또한,
「으흥-」
하며 길게 내어 뽑는 한숨소리다. 원보의 가슴은 뭉클하였다.
「어머니, 저녁도 못 끓여 잡수셨수?」
이 목소리는 분명히 떨렸다.
「아, 너냐?,,,,,,놀랐구나,,,,,,저녁이 마디서 나서 끓여 먹어 ! ------넨들 좀 시장할라구」
「아니 ,,,,,,」
하며 말끝을 흐리고 앞만 굽어다 보고 한참이나 무슨 생각에 잠겨 있던 원보의 얼굴에는 어떤 무서운 빛이 돌며 무슨 결심이나 한 듯이 입을 딱 아물이고 일어선다.
「아. 너 이 밤에 어디를 또 가니?」
「에 어디를 좀,,,,,,」
하고 원보는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그 이튿날 이 마을에는 가물음보다 더 무서운 새 공포가 닥쳤다. 그것은 헌병과 보조원이 수없이 쏟아져 나와 마을 사람들 붙잡아다 놓고 묻고 따지고 하며 원보의 집과 그의 친구의 집을 들들 뒤지며 의심스럽다는 사람은 모조리 붙들어 가는 판이다. 동네 개도 짖지 못할 만큼 무서움에 싸여 있다. 한참 동안은 길에 사람조차 뜸하다가 저녁 나절이 되어서 정자나무 그늘에 몇 사람이 모여 황당한 얼굴로 서로 대하고 앉아 수선수선하며 지껄이고 있다. 그들의 말을 들을 것 같으면 간밤에 건넛마을 김 참봉 집에 도적이 들어서 돈을 뺏으려다가 돈도 못 뺏고 사람만 상하고. 그 도적은 헌병에게 붙잡혀가기만 하였다고 한다. 또는 헌병과 보조원이 와서 원보의 집을 뒤지고 간 것을 본다든지, 원보와 그 친구 한사람이 간밤에 나간 뒤에 다시 들어오지 아니한 것을 보면 - 그밖에도 몇 사람이 붙들려갔지마는-그 도적 이 분명히 원보와 그의 친구 한사람이라고도 한다.
그럴 즈음에 아침나절에 혐의자로 붙들려갔던 머슴꾼의 떠꺼머리 총가 하나가 읍내로 통한 신작로로 헐레벌떡거리고 쫓아 올라오더니 여러 사람 옆을 지나치며 외치는 말로,
「원보가 죽었어 ! ,,,,,」
「어 어, 죽다니---」
「유치장에서 목매어 죽었어,,,,,」
그는 바쁘게 대답하며 골목으로 달려들어간다.
조금 있다가 골목 안으로부터 비척비척하고 쓰러질 듯이 달려나오는 늙은 여편네는 원보의 어머니다. 갈팡질팡하고 정자나무 옆을 지나치며 미친 사람같이,
「이놈 봐라! ------이놈 봐라 ! ,,,,,,죽다니 ? 네가 죽다니,,,,,,원보야 ! ......이 놈! 이 몹쓸 놈아! 네가 죽다니 !,,,,,,」
하고 숨이 콱콱 막힌 말씨로 울부짖으며 읍내로 가는 안모퉁이 길, 해지는 편을 바라다보고 걸어나간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간다.
「원보야!」
하고 쓰러졌다. 다시 일어났다. 또,
「원보야!」
멀리서 들리는 소리다. 해는 아주 떨어졌다. 그의 그림자도 산모퉁이 그늘 속으로 감추어지고 말았다.
이 해에도 늦은 가을이다.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이 마을에서도 가물가물하게 멀리 보이는 들 건너 북망산 고갯길에는 이 마을에서 떠나가는 한 떼의 무리가 있었다. 봇짐 지고 어린아이 업고 바가지 찬 젊은이, 늙은이, 사내, 여편네. 적지 않은 떼가 몰려간다, 그들은 서간도로 가는 이사꾼이다. 이 고개 마루턱을 다 넘을 때까지 그들은 서로서로 번갈아 가며 두 걸음에 한번씩 아득히 보이는 자기네 살던 마을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다보모는 걷고 한다, 울어서 눈갓이 부숙부숙한 여자도 있다. 그 가운데에는 원보의 어머니와 그의 어린 딸이 섞여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조명희(趙明熙, 1894 - 1942)
충북 진천에서 가난한 양반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0년 서울의 중앙 고보에 입학하였으나 1914년 봄 북경 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가출했다가 돌아오기도 함.3.1운동 참가 건으로 투옥 1919년 겨울 동경 토오요(東洋) 대학 철학과에 유학하여 시 창작과 연극활동에 관심을 보였다. 1920년 김우진과 함께 극예술연구회를 조직하여 활발한 활동 펼침. 1921년 희곡 <김영일의 사> 창작. 1924년 6월 <적로>란 필명으로 《봄 잔디밭 위에》발간. 1925년 카프에 가담하면서 자전적 소설 <땅 속으로><마음을 갈아먹는 사람들>발표.1927년에 발표된 <낙동강>은 장편적 구조를 단편의 형식에 담아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으나 일제 시대 지식인들의 고뇌와 농민 노동자들의 삶이 잘 나타나 있다. 1928년 소련으로 망명 소련 작가 동맹 원동 지부에서 활동 산문시 <짓밟힌 고려> <붉은 깃발 아래서><만주 빨치산> 등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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