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流刑)의 땅 -조정래
“이 늙고 천헌 목심 편하게 눈감을 수 있도록 선상님, 지발 굽어살펴주씨요. 요리크름 빌팅께요”
영감은 부처님 앞에 합장을 할 때보다 더 간절하고 애타는 심정으로 손을 모았고, 그것도 부족한 것 같아 그만 바닥에 무릎까지 꿇었다.
“영감님, 왜 이러십니까. 딱한 사정 충분히 알았으니 어서 의자로 올라앉으십시오”
원장은 당황한 몸짓으로 영감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선상님, 지발 딱부러지게 맡아주시겄다고 말씸해 주시씨요”
영감은 몸을 더욱 오그리며 애원하고 있었다.
“……알겠어요. 맡도록 하지요”
원장은 착잡한 표정으로 어렵게 대답했다.
“고맙구만이라, 선상님. 이 하늘같은 은혜 저 시상에 가서라두 잊어뿔지 안컸구만이라”
가슴께에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로 영감은 두 번 세 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영감의 눈에는 안갯빛의 눈물이 번지고 있었다.
“영감님, 어서 의자로 올라앉으세요”
이렇게 사정을 하지 않고 문 앞에 버리고 가버렸으면 어차피 맡아야 될 아이가 아닌가 하고 원장은 생각했다.
어려운 몸짓으로 의자에 다시 앉은 영감은 연상 콧물을 들여마시며 속주머니를 더듬어댔다.
“선상님. 요거 지가 가진 전 재산인디 받아주시씨요. 뻥아리 오줌 같은 것인디…… 지 맴 표시니께……”
영감의 투박한 손에는 접었던 자리가 선명한 1만원권 지폐 두 장이 들려 있었다.
“아닙니다. 영감님 약값에나 보태십시오, 애는 우리가 다 알아서 할겁니다”
“지발 받아주시씨요. 못난 애비의 마지막 맴이니께요. 요걸 안 받으시먼 지가 워찌 발길을 돌릴 수 있겄는가요. 선상님 받아주시씨요”
눈물이 그렁거리는 영감의 눈은 입보다 몇 곱절 더 애타게 말하고 있었다.
“정 그러시다면……”
원장은 떨리는 영감의 손에서 돈을 옮겨 받았다.
“요건 내복 한 벌씩 장만헌 것이구만이라”
영감은 손등으로 눈을 씩 문지르고는 조그만 보퉁이 하나를 내밀었다.
“예에……”
원장은 보퉁이를 받아들며 부정(父情)의 신음을 듣고 있었다.
“겉옷도 한 벌씩 장만혔어야 허는디, 속옷을 새로 사 입히고 봉께로 돈이 모지래서……”
영감은 입언저리에 울음을 가득 물고는 변명처럼 말했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라고 요것 잘 간수혀 주시씨요”
영감은 낡아빠진 종이쪽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원장은 종이쪽지에 그리다시피 쓴 <아부지 천만식>이란 여섯 글자를 한 눈에 읽었다.
“고것이 지 이름 석자구만이라. 지 할아부지가 상것으로 가난허게 산 것이 원이 되고 한이 되야, 니만은 꼭 만석군 부자가 되야 쓴다 허고 붙여준 이름인 모양인디 요 꼬라지가 되야뿌렀소”
영감은 절망의 덩어리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새끼 하나 수발 못허는 빙신 같은 애비지만 이름 석자만은 알게 혀야 되잖을까 혀서……”
“그러믄요. 아버지 없는 자식이 어디서 생겨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알아야 될 일이지요”
원장은 이렇게 말하며 다시 영감을 뜯어보았다. 삶에 지칠 대로 지친, 가랑잎처럼 그 목숨이 사그라들고 있는 한 사내의 운명이 비참하게 놓여 있었다.
영감은 복도에 나가 있는 아들을 불러들였다. 여섯 살이라고는 했지만 제대로 먹이지를 못해서 그런지 가뭄철의 개똥참외처럼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그런 아이놈의 몰골을 보자 새로운 서러움이 영감의 가슴을 찢었다.
죽으나 사나 끝까지 옆에 끼고 있을 걸 잘못한 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곳을 찾아오기 전까지 무수히 되풀이했던 애비로서의 죄책감이었다.
“아무리 살기가 어려웠다 해도 몸이 이렇게 되도록 내버려두면 어떡합니까. 앞으로 아주 조심하셔야 해요. 자칫 잘못하다간 큰일납니다”
의사의 이 말이 아들을 끝까지 데리고 있어야 되겠다는 물기 젖은 생각을 동강내고는 했다. 뼈만 얼기설기 드러나는 그 엑스레이라는 흉칙한 사진은 자신의 목숨이 기름 바닥난 등잔불 같다고 의사에게 가르쳐 준 모양이었다.
굳이 병원을 찾아가기 전에도 영감은 자신의 병이 얼마나 깊어지고 있나를 대체로 알고 있었다. 입에서 피가 넘어오기 전에 벌써 그 징조는 나타났던 것이다. 이상하다 싶게 몸이 술에 휘둘렸고, 하루가 다르게 기운 쓰기가 어려워졌던 것이다. 기운을 써서 세끼 밥을 먹고 살아가는 축들은 건강의 변화를 의사보다 더 빨리 눈치채는 재주들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노동판, 어느 길목에서 숨길이 끊길지 모를 일이었다. 그때 가서 고아로 버려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1년을 더 살게 될지, 2년을 더 살게 될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자신의 손으로 미리 고아원에 맡기는 것이 그나마 한 가닥 핏줄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철수야, 오늘부텀은 이 원장 선상님허고 여그서 사는 것잉께, 원장 선상님 말씸 잘 들어야 써, 알겄어?”
영감은 아들의 조그만 얼굴을 허리 굽혀 깊이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부지는?……”
아이는 늙은 아버지의 눈을 쳐다보며 짧게 물었다.
“어허, 또 그 소리. 느그 엄니 찾아 갖고 온다고 쌔빠지게 헌말 잊어 뿌렀냐?”
영감은 일부러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 와?”
아이는 시무룩해져서, 그러나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 채로 물었다.
“엄니 찾으면 금시 올 것잉께……”
“못 찾으면?”
아이는 아버지의 말을 자르며 다부지게 물었다.
영감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가슴 저 깊이로 서러움 한 줄기가 써늘하게 뻗쳐나갔다.
“올 것이여, 엄니 찾아 갖고 꼭 와”
영감은 자신 있게 말했다.
“아부지, 약속 걸어”
아이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영감은 손가락을 내밀 생각도 않고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불쌍한 내 새끼. 어쩌다 나 같은 인종한테 태어나 요런 꼴이 된단 말이냐. 건강허게 커야 써. 아푸지 말고, 밥 잘 묵고…… 불쌍한 내 새끼……
“빨리 약속 걸어”
“그려, 그려”
영감은 주체할 수 없이 솟구치는 울음의 덩이를 목이 찢어지도록 아프게 삼키며 손가락을 내밀었다.
작고 가느다란 손가락과 굴고 투박한 손가락이 허공에서 얽혀졌다.
“아부지, 엄니 찾아서 꼭 와야 해”
아이가 손가락에 힘을 주고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려, 그려”
“엄니 빨랑 찾아달라고 밤마다 기도할 거야”
“그려, 그려”
영감은 이제 울음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똑똑헌 내 새끼야. 니 혼자 앞에서 어떠크롬 살 것이냐. 요런 생이별을 알았으면 낳지를 말았어야 혔는디. 이 못난 애비가…… 불쌍한 내 새끼야……
“철수야, 원장 선상님 말씸 잘 들어야 혀. 여그서는 밥 굶는 일도 웂고, 가마니 깔고 자는 일도 웂어. 아부지허고 살 때보담 훨씩 좋으니께 원장 선상님 말씸 잘 들어야 혀. 알겄어?”
아이는 이별이 가까와진 것을 느끼는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자아, 철수야, 이리 오너라”
원장이 이별을 알렸다.
영감은 아이와 얽었던 손가락을 풀고 일어섰다. 그리고 아이의 등을 밀어 원장에게 보냈다. 아이의 여윈 등은 밀리지 않으려고 저항하고 있었고, 그 기운은 영감의 손바닥을 타고 들어 뜨겁게 전신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원장이 이별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저 잘, 잘……”
영감은 두 번 세 번 머리를 조아렸고, 끝내 말끝을 맺지 못했다. 영감은 다 헐어빠진 가방을 드는가 싶더니 급하게 돌아서서 사무실을 나섰다.
“아부지!”
영감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복도를 지나 운동장으로 나섰다. 영감은 후적후적 걸으며 비로소 눈물을 쏟고 있었다.
“아부지이이, 엄니 찾아서 꼭 와야 해에!”
운동장을 다 지나 정문께에 이르렀을 때 아들놈의 외침이 뒤에서 쟁쟁하게 들려왔다. 영감은 뒤돌아보지 않으려 했지만 도저히 되지 않는 일이었다.
돌아섰다. 아들은 원장에게 어깨를 잡힌 채 현관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꼭 와야 해에, 아부지이이!”
영감은 다시 솟구치는 울음을 울며 돌아섰다.
“오살을 헐 년, 저 불쌍한 새끼를 내뿔고 도망질을 치다니……”
영감은 부르르 몸서리를 치며 이빨을 앙다물었다.
여편네의 헤실헤실 웃는 얼굴이 눈물로 흐려진 눈 앞에 떠올랐다.
“나쁜 년 같으니라고!”
바로 눈 앞에 상대가 있기라도 한 듯 욕을 쏴대며 손등으로 눈을 씩 문질렀다. 여편네의 모습은 간 곳이 없었다.
영감의 가슴에서는 다시 불길 같은 증오가 타올랐다. 잡기만 하면 정말 두 연놈을 그대로 살려두지 않을 결심으로 네 살 짜리 어린 것을 들춰 업고 방방곡곡을 헤매며 2년을 보낸 것이다.
“내가 넋빠진 잡놈이었어”
영감은 절망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여편네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증오심과 똑같은 비중으로 후회의 자책감도 함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집도 절도 없는 막노동꾼 신세에 무슨 영화를 보자고 꽃을 볼 작정을 했었는지 몰랐다. 자신의 일이었으면서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만큼 그 일은 후회스러운 것이었고, 그때 일만 저지르지 않았더러마녀 이제 와서 핏줄을 남의 손에 맡기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영감을 못 견디게 하고 있었다.
“천씨는 이 나이가 되도록 왜 혼자 살아요? 외롭지 않아요?”
여자가 이런 식으로 꼬리를 치기 시작했을 때 모질게 잘랐어야 했다. 그런데 비린내 맡은 고양이처럼 회가 동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말허는 임자는 왜 혼자 산당가? 그라고, 외롭지 않다는 거싱가?”
이렇게 대꾸하며 색다르게 느껴지는 여자냄새에 코를 벌름거리지 않았던가.
“데려갈 사람이 없으니 이런 모진 고생 해가며 혼자 사는 거지요. 나 같은 박복한 신세, 외로와도 어쩔 수 있나요”
여자는 갑자기 기가 팍 꺾이며 말했고, 그는 불현듯 여자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 무슨 느자구웂는 짓거리여. 반평생을 하루같이 쫓기고 숨어 살아 온 체신에 무신 놈에 암내는 맡고 지랄이여.
그는 자신의 꿈틀거리고 흔들리려는 마음을 황급하게 다잡고는 했다. 끝까지 그렇게 했어야 했다. 그렇지 못할 것 같았으면 그 공사판을 일찌기 등졌어야 했다.
공사판은 기름기가 자를 돌고 있었다. 겨울철 같지 않게 일거리는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공단(工團)은 내년 봄에 가동하도독 되어 있었고 직원들이 입주할 아파트도 그때까지 짓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었다. 그래서 일거리는 남아도는 판이었고, 일당도 후한 데다가 지불도 시간을 어기는 일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30년이 다 차 가도록 오만가지 공사판을 찾아 떠돌아 다녔지만 이처럼 걸직한 판은 만난 적이 없었다. 그것도 겨울철에 말이다. 공사판이 이렇듯 기름진 것이 또 하나 탈이라면 탈이었다.
“사람 한평생 잠깐인데 천씨는 무슨 재미로 살아요?”
“거 무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랑가?”
“이렇게 밤마나 쏘주 마시는 재미?”
여자는 술을 따라 주며 빠꼼하게 쳐다보았다.
“재미로 술 마시는 사람도 있능가? 재미가 웂으니께 술이나 푸제”
“그럼 기막힌 재미를 만들면 되잖아요”
“무신 기맥힌 재미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신세에”
가당찮다는 듯 그는 술을 입에 털어 넣고는 깍두기를 으석으석 씹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신세라고 누가 색시재미, 자식재미 못 보게 막던가요? 사람 사는 게 뭔데 천씨는 이 나이가 되도록 마누라 하나, 자식 하나 없어요? 천 년 살 줄 알지만 이러다 더 나이 먹고, 덜컥 병이나 나봐요. 아니, 죽으면 송장은 누가 거둬 주고, 찬물 한 사발이라도 제사는 누가 지내 준답니까. 이 세상에서 공사판 찾아 떠돌이 인생 살았으니 저 세상에 가서도 떠돌이 귀신 돼야겠단 말인가요?”
“머시여? 무신 놈에 주둥아리를 고로크롬 싸가지 웂시 나불대?”
그는 섬찍함을 느끼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어머, 무서워라. 화내지 말고 생각해 봐요. 지금 천씨 나이에 홀몸인데 내 말이 틀렸나를요”
“듣기 싫여. 문덩이보고 문덩이라고 놀리니께 화가 나는 거시요”
“그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문덩이 신세를 면하면 될 거 아녜요”
“머시라고?……”
그는 바로 코 앞에서 헤시시 웃고 있는 여자의 발그레한 눈자위를 보면서 불두덩에 찌르르 전기가 통하는 것을 느꼈다.
순임이는 국밥 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대하곤 했다. 그저 흩어져 있는 소문으로는 시집을 갔다가 내쫓겼고, 국밥 집은 먼 친척이 된다는 정도였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느 공사판에 든 걸레처럼 널려 있는 작부는 아니었다.
만석은 순임의 말을 듣고 새삼스럽게 자신의 신세를 돌이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순임이는 자신의 아픈 데를 쪽집게처럼 찍어낸 것이었다. 순임이가 아니더라도 전에 언뜻언뜻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애써 잊어버리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왔었다. 그런 생각이 스친 날이면 다른 날과는 달리 곤죽이 되도록 술을 마셨다.
30년으로 기울기 시작한 세월에 이르는 동안 공사판을 찾아 정처 없이 떠돌면서 겪은 여자는 무수하게 많았다. 정이 있어 엮어진 사이가 아니라 돈을 주고받고 얽힌 사이였다. 막노동군이 인간 쓰레기라면 그 쓰레기들의 돈을 뜯어 목구멍을 채우겠다고 아랫도리를 내놓는 여자들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그런 여자들과 아무리 많이 몸을 섞는다 해도 그 누구 하나 순임이 같은 말을 할 리가 없었다.
실로 너무나 오랫만에 만석은 자신의 장례를 생각해 주는 정이 담긴 말을 들은 것이었다. 그것도 술집 작부나 창녀가 아닌 여자한테서 말이다. 만석은 무일푼이라는 것도 잊어버렸다. 마흔아홉이라는 나이도 잊어 버렸다. 그저 벅차고 두근거리는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채로 전과는 달리 일이 힘드는 줄을 몰랐다.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마음이……”
국밥집에 드나드는 공사판 사람들 중에 다른 젊은 것들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나이 많은 자기냐고 묻는 말에 순임은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말꼬리를 흐리고 말았다.
“내 나이 마흔아홉, 임자 나이 서른셋이면 몇 살 간격인지나 아는가?”
“진시황은 하룻밤을 자려고 만리성을 쌓았대요”
순임은 아주 유식하게 대답했다.
“허, 참……”
만석은 더 할 말이 없었다.
만석은 순임의 말을 듣고 욕심껏 계산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자기를 닮은 자식을 키워 보고 싶었다. 술을 바짝 줄이고 사먹는 밥값만 모으면 너끈히 살림을 꾸려갈 수 있을 것이었다. 허리끈 조이고 알뜰살뜰 살면 뿌리내리고 떠돌이 신세도 면하게 될 것이다. 사람답게 한 번 살아 보라고 하늘이 점지해 준 짝이라 싶었다.
막노동으로 시달린 마흔아홉 살의 육신이 갑자기 새 순 돋는 봄 나무처럼 싱싱해지는 것을 느꼈다. 항시 희뿌연 구름으로 덮여 있던 마음도 가을 하늘처럼 활짝 개어 있었다. 매일이다시피 마시던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굳이 마다했던 야간작업에도 나섰다. 그래도 노곤한 줄을 몰랐다. 점례를 색시로 맞아들이기 위해 뼈 휘는 줄 모르고 일을 했던 스무살적 근력이 되살아난 것 같았다.
석달을 그렇게 악다구니로 보내고 나니 수중에는 제법 목돈이 잡혔다.
“인자 삭월세방 하나 장만헐 액수는 모아졌는갑구만”
만석은 순임이 앞에서 고개도 제대로 못 들고 이렇게 말했다.
“어머, 벌써요? 내가 사람 한 번 틀림없이 봤군요. 젊은 것들로는 어림도 없는 일예요. 이런 날을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순임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반가와하고 기뻐했다.
혼례식이고 뭐고 필요한 게 아니었다. 방 하나를 얻어 살림을 차렸다.
“서른 계집 암내에 쉰 사내 기둥뿌리 빠질테니 조심해”
“암, 암, 스물 계집 고게 비지살 조개라면 서른 계집 고건 찰고무 조개야. 섣불리 꺼떡대다간 허벅지까지 내려앉는다구”
노동판 험한 입들은 만석의 느닷없는 색시맞이를 그대로 보고 넘기지 않았다.
“요런 버르장머리 웂는 삭신들아, 염려들 말어. 안즉 아들로만 열은 뽑을 기운이 남았응께”
만석은 주착 없다 싶게 벙글거리며 맞받아 넘겼다.
사실 만석은 더없는 행복감이 취해 있었다. 길고 긴 떠돌이 생활이 일단은 끝을 맺은 것이다. 그리고 암울하고 한심스럽던 앞날에 어렴풋이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맨 주먹으로 왔다가 맨 주먹으로 가는 것이 사람의 한평생이라고 체념하고 살았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답답했떤 때의 생각이었다. 한 번쯤은 사람답게 살아 보고 싶은 욕심은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신방 아닌 신방을 차렸던 날 밤, 만석의 가슴에는 지나간 세월의 기억들이 슬픔과 아픔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말씨로 고향이 전라도라는 건 아는데 장가는 첨 드는 건가요?”
신방 치례를 한 차례 치르고 나서 순임이가 물은 말이었다.
“첨이면 어떠코 열 번, 스무 번째면 워찔 것잉가?”
만석은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그러면서 딴 생각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어쩌긴요? 이제 부부가 됐으니 이런저런 것들이 궁금해서 그러지요”
“굼벵이를 삶아묵었능가, 궁금허게. 따로 챙개논 처자식 웂응께 임자는 쓰잘 데 웂는 생각 말고 앞으로 살 일이나 궁리허드라고”
“그래도 고향이 어딘지, 왜 떠돌며 살게 됐는지, 부모님 형제간은 어디 사는지, 알아야 될 게 있잖아요”
“아, 시끄러!”
만석은 눈을 부릅뜨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런 그의 눈은 섬뜩한 살기를 품고 있었다.
“니가 면서기여, 지서 순사여. 워디다 써묵자고 쓰잘데 웂는 과거지사를 꼬치꼬치 캐고 야단이여. 니나 나나 오다가나 눈맞고 배 맞어 어디 한번 살아 보자는 것뿐인디 뭣헌다고 과거지사는 캐고 지랄이요. 오지기 내놀 것 웂고, 보잘 것 웂으면 뜬구름 맹키로 떠돌이 신세가 됐을 것잉가. 나는 족보도 웂고 고향도 웂는 진짜배기 상것이니께 고린 것 따지고 살라먼 당장 짐 싸갖고 나가뿌러. 아, 싸게 나가랑께!”
만석은 곧 후려칠 것처럼 벌겋게 흥분되어 있었다.
“아녜요, 그게 아녜요. 난 관심을 써준다고 생각하고 한 말인데…… 잘못했어요. 당시는 안 물을께요”
한바탕 날벼락을 맞고 난 마누라 순임이는 돌아누워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만석은 그녀의 가난한 어깨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새로 맞은 남편에 대한 예의로 물었을 뿐인 말을 가지고 자신이 너무 지나치게 흥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과거라는 것 때문에 30년 가까이나 죄인으로 숨어 다니고 쫓기며 살아온 것이었다. 그 동안 살아 있었다고는 하지만 죽은 것이나 뭐가 달랐던가. 세월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지금까지도 고향엘 갈 수가 없는 것은 자신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는 증거였다. 최씨 문중이 그대로 자리잡고 있는 고향에 내려가면 그들은 당장 자신을 생매장하고 말 것이었다. 어제까지 한편이었던 인민군의 총질에 쫓겨 초저녁 어스름을 타고 고향을 도망쳐 나온 후로 그 누구에게도 입을 열지 않았던 과거였다.
“개잡년!”
만석은 부르르 치를 떨었다. 그 생각만 하면 전신이 싸늘하게 굳어지며 피가 머리로 뻗쳤다. 그리고 그때의 장면들이 세월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한 치도 틀리지 않고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원래 기억력이 좋은 편이 못 되었고, 마흔 고개를 넘기면서부터는 며칠전 일도 까맣게 잊어먹고 하는데, 그때의 기억만큼은 어쩌면 그리도 생생하게 박혀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사진도 30년 세월이면 누렇게 변색하기 마련인데 그 기억만은 전혀 변색할 줄을 몰랐다. 모습이 변색을 하지 않은 것만 아니라 장면 장면에 따라 그때의 냄새까지 역력하게 맡아지는 것은 또 어찌된 일인가.
“육시헐 년!”
만석은 눈을 질끈 감으며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점례 그년이 옷만 홀랑 벗고 있지 않았더라도 그년까지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랫도리만 벗겨져 있었더라면 그놈한테 당한 일이라고 덮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새끼까지 배고 있던 년이 옷을 홀랑 벗어 던지고 그놈과 엉클어져 있었던 것이다.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만석은 시(市)인민위원회에 보고사항을 가지고 이틀간 집을 비워야 했다. 부하 두 명을 대동한 행차는 만석의 기분을 더없이 들뜨게 만들었다.
“천동무, 동무의 혁명투쟁은 혁혁한 것이요. 동무의 위원장 임명은 시간문제요. 잘 다녀오도록 하오”
길을 떠나기 직전에 했던 인민군 대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했다. 위원장이 되면…… 만석은 옆에서 걷고 있는 두 부하가 모르게 주먹을 말아쥐었다. 부위원장이라는 자리만으로도 그 동안 휘둘러온 권한은 스스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25년 세월 동안 겪어왔던 배고픔을 앙갚음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위원장이 되면…… 두말할 것도 없이 감골․학내․죽촌 마을이 다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다.
사실 위원장을 맡고 있는 수길이는 못마땅한 데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곧잘 나가다가도 엉거주춤 겁을 먹거나 망설일 때가 있었다. 수길이가 위원장 자리에 앉혀진 것은 순전히 나이를 세 살 더 먹었다는 것뿐이었다.
최참봉네 큰손자를 처형할 때도 수길은 병신처럼 머뭇거렸다. 서울에서 법을 공부하던 그가 마을에 잠입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바로 최참봉네 식구들을 끌어다가 요절을 내버릴 수도 있었지만 일단 비밀 수색을 하기로 했다. 얼마 전에 읍장을 지내던 최참봉 아들이 처형되어 집안이 쑥밭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흘을 잠복한 끝에 최참봉네 손자는 당숙 집의 대밭 토굴에서 체포됐던 것이다.
그는 뒷등 소나무 아래로 끌려나갔고, 갈 길은 빤히 정해져 있었다. 그는 파리한 얼굴에 입을 꼭 다문 채로 이쪽을 뚫어지게 쏘아보고 있었다.
“엄니 초상에 돼지 한 마리를 내준 거시 바로 저 형규였어”
수길이 떨리는 목소리로 나직하게 한 말이었다.
“그려서, 살려주자 고런 말이당가요?”
만석은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대질렀다.
“머시냐, 꼭 그러잔 것이 아니라……”
“위원장동무, 혁명완수를 위해서는 과감허게……”
일부러 목청을 돋구어 인민군 대장의 말을 흉내내는데, 이상한 낌새를 챘는지 뒤에서 있던 인민군 대장이 다가서며 물었다.
“뭣들 하는 게요?”
순간 수길의 얼굴이 굳어지며 만석을 애원하듯 바라보았다.
“저 반동을 얼른 처단해뿔자고 헌 말이구만이라”
만석은 재빨리 대꾸했다. 그러면서, 살았다 싶게 어깨를 늘어뜨리는 수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좋소, 빨리 처단하시오!”
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만석은 대창을 들고 서 있는 부하들에게 눈짓했다. 세 명은 대창을 꼬나잡고 소나무에 묶여 있는 최참봉네 손자를 향하여 돌진했다. 그리고 온 산을 찢고, 하늘을 찢고, 땅까지 찢어발기는 것 같은 비명소리가 길게 길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때 수길은 눈을 꼭 감은 채 나무토막처럼 뻣뻣이 굳어져 서 있었다. 그런 수길을 비웃음으로 바라보고 서 있는 만석은, 네놈은 위원장 자격이 없어, 생각하고 있었다.
만석은 수길이와는 반대로 그 길게 퍼져나가는 비명소리를 들으며 전신 마디마디가 짜릿짜릿해지는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쾌감은 곧 복수심이었다. 대대로 종놈으로 살아왔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스물다섯 해 동안 겪어온 모든 서러움과 고통과 억울함이 그 짜릿짜릿한 쾌감 속에서 천천히 씻겨나가고 있었다. 만석은 그 쾌감이 마누라 점례 위에서 느끼는 쾌감보다 더 뜨겁고 진하고 아찔아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마누라 배 위에서 느끼는 쾌감도 환장할 만한 것이긴 했지만 그건 너무나 짧았고, 그리고 금방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 같은 허망함이 찬 기운으로 몰려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비명소리에서 느끼는 쾌감은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줄지어 떠오르다 사라지는 시간만큼 길었고, 아쉬움은 있을망정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 같은 허망함은 없었다.
머잖아 위원장이 되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시위원회에 도착했고, 거기서 내리는 급한 지시사항을 가지고 당일로 오십 리 길을 되돌아와야 했다.
위원회 사무실에 당도했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했다. 긴 여름 하루종일 백 리 길을 걷느라고 만석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선 두 부하를 돌려보냈다. 지시 사항을 전달하기 위해서 자신은 대장을 만나야 했다.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한동안 앉아 있던 만석은 언뜻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무실이 이렇게 텅 비어 있을 리가 없었다. 무슨 큰일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대로 앉아만 있을 게 아니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무실을 나온 만석은 뒤로 붙어 있는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 누가 있나 싶어서였다.
숙소로 가까이 다가가던 만석은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이상한 느낌의 인기척이 새어나왔던 것이다. 다시 귀를 기울였다. 그건 분명 밤일을 할 때나 내는 남녀의 소리였다. 순간 만석은 속이 꿈틀 꼬이는 것 같은 야릇한 기분으로 긴장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좌우를 빠르게 살폈다. 어떤 황소 뱃가죽 가진 놈이 벌건 대낮에 위원회 숙소에서…… 이런 생각과 함께 몸은 벌써 창가로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어, 어……”
만석은 그만 소리를 지를 뻔했다. 엎어져 있는 사내놈의 얼굴은 저 쪽으로 돌려져 파묻혀 있었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지만, 눈을 꼬옥 같은 채 입을 반 쯤 벌리고 끙끙대고 누워 있는 건 바로 자신의 마누라 점례였던 것이다.
만석은 머리가 핑그르 돌며 캄캄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전신에 불이 붙는 것 같은 뜨거움이 뱃속에서 터져 올랐다.
눈에 보이는 대로 커다란 돌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문을 박차고 들어가며 소리질렀다.
“요런 개잡녀러 것들아!”
엎어져 있던 사내가 딱 굳어지는 것 같더니 벌떡 일어섰다. 그 순간 커다란 돌덩이가 사내의 뒤통수에 퍽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벌거벗은 사내의 몸뚱어리는 괴상하게 짧은 비명을 토하며 그대로 방바닥에 딩굴어졌다. 거의 동시에 알몸의 여자는 발딱 일어나 두 팔로 가슴을 가린 채 파랗게 질려 앉은걸음으로 방구석을 향해 쫓기고 있었다. 눈에 불을 켜고 이빨을 앙 다물은 만석이가 다가서고 수 없게 되었고, 발가벗은 몸은 방구석에서 와들와들 떨며 점점 조그맣게 오그라들도 있었다. 만석은 짐승처럼 다가서고 있었다. 한 발짝 앞까지 만석이 다가섰을 때였다.
“살려주씨요오”
소리를 지르며 여자가 몸을 튕겨 앞으로 내달았다. 그때 만석의 발길이 여자의 배를 걷어찼다. 여자는 뒤통수를 맞은 사내처럼 짧은 비명을 토하며 방바닥에 나뒹굴었다.
만석은 이빨을 뿌드득 갈아 붙이며 사내 쪽으로 돌아섰다. 사내는 머리에서 피를 철철 쏟으며 꿈지럭거리고 있었다. 허공에 뻗쳐진 사내의 팔은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한사코 무언가를 잡으려는 몸짓이었다. 만석은 엎어진 사내의 얼굴을 발로 차서 돌렸다.
“아니! 니놈이……”
만석은 섬찟 물러섰다. 그 사내는 인민군 대장이었다. 인민군인 것은 알았지만 설마 대장이리라곤 상상조차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늘처럼 믿었던 대장이…… 속았다는 분노가 창 밖에서 마누라의 얼굴을 확인했을 때보다 더 뜨겁게 전신을 터져 나왔다.
거의 흰 창뿐인 눈을 흡뜬 대장은 여전히 허공으로 팔을 뻗힌 채 몸을 꿈틀대고 있었다. 그 방향에 따발총이 놓여 있었다. 만석은 따발총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사내의 하복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따따따따……
만석은 마누라 쪽으로 돌아섰다. 마누라는 그 사이 몸을 가누어 일어나선 문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만석의 눈 앞에 커다란 마누라의 둔부가 확대되어 왔다. 두 엉덩이 사이에 그대로 노출된 그것은 돼지의 그것처럼 더럽고 추악했다. 만석은 그곳을 향해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따따따따……
탄환이 더 나가지 않게 되었을 때 만석은 총을 내던졌다. 방 안은 피바다가 되었고, 그 속에 내장이 터져 나온 두 시체는 나자빠져 있었다.
만석은 도망가야 된다고 생각하며 황급히 숙소를 뛰쳐나왔다. 그리고 산길 쪽으로 향해 내닫기 시작했다.
“시상은 순리로 살아야 허는 거시여. 니놈이 먼디, 니놈이 머가 잘났다고 사람을 개잡듯 허는 거여. 안돼야, 안돼야. 천벌을 받을 거싱께, 천벌을”
아버지의 음성이 줄곧 따라오고 있었다. 어머니의 찌들은 얼굴이 어른거렸다. 세 살 먹은 아들이 방싯거리며 “아부지, 아부지” 부르고 있었다.
새 마누라 순임이는 다시는 지난 이야기를 묻는 일없이 그런대로 살림을 꾸려나갔다. 만석은 사는 재미가 이런 것인가, 새삼스럽게 느끼며 아직도 젊은 마누라를 품고 전과는 다른 온기 서린 잠을 깊이 잘 수 있었다.
공사판 저쪽 멀리로 아지랭이가 간지럼을 타듯 아롱거리고, 아파트도 예정대로 다 되어 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몸이 영 이상해요”
마누라가 눈을 내리깔고 한 말이었다.
“멋을 잘못 묵었간디?”
만석은, 물약이나 한 병 사다 묵어, 하는 식으로 말하고 말았다.
“그게 아니구요, 꽃이 두 달째나 안 비쳐요”
“꽃?……”
되물어 놓고는 만석은 머릿속에 전등불이 환하게 켜지는 걸 느꼈다.
“워메, 소식이 있단 말이당가?”
만석은 들뜬 목소리로 물었고,
“그렇당께요”
마누라는 만석의 말을 흉내내며 부끄러운 듯 눈을 흘겼다.
“아들 하나만 쑥 빼내뿔소. 내가 갑절로 일을 혀서 호강시킬팅께”
만석은 마누라의 손을 덥썩 잡으며 말했고,
“징그러워요. 낳지 어떻게 빼내요”
마누라는 수줍게 웃었다.
“평생을 있는 놈덜 발 밑에 밟히고 사는 쌍놈 신센 줄 알았으면 자식 새끼는 애시당초 낳지를 말았어야제라. 요런 세상 불거지지 않았으먼 머 땀새 요런 드러운 꼴 당했을랍디여”
“지멋대로 뚫어진 구멍이라고 저놈 말허는 것 잠 보소. 니놈이 그 나이에 멀 알 것이냐. 이담에 나이들먼 다 지절로 알게 될팅께”
아버지는 열여덟 살의 만석이를 더는 탓하지 않았었다.
스물 한 살에 장가를 든 것도 꼭 마음이 내켰던 것은 아니었다. 부모들의 성화에는 아예 관심도 없었고, 장난 삼아 색시감을 얼핏 보았는데 그 인물이 아주 잘 생겼던 것이다. 상것 취급을 받기엔 너무 아깝게 잘 생긴 얼굴이었다. 그래서 마지못한 것처럼 장가를 들었고, 잠자리를 함께하다 보니 애아버지가 된 것이었다. 그때도 아버지의 말뜻이 무엇이었는지 깨닫지를 못했다. 아니, 아버지의 말은 아예 생각키지도 않았다.
그런데 쉰의 나이에 마누라의 임신 소식을 들으며 32년 전의 아버지 말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버지의 말대로 나이가 들어서 저절로 알게 된 것인가. 이 세상에서 한평생을 살다 가며 제 핏줄을 남긴다는 것은 말로 다 헤아릴 수 없는 어떤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은 만석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마누라의 배가 차츰 불러오기 시작하면서 공사판의 일도 다 끝나 가고 있었다. 마누라는 공사판을 찾아 떠돌아야 한다는 사실을 무서워했다. 그래서 취직자리를 알아보겠다고 나섰다.
“아, 시장시런 소리 하덜 말어. 배워묵은 것이라곤 농새짓는 것하고 노동판 품팔이뿐인디 취직은 무신 놈에 취직이여”
만석은 처음부터 만류했지만 마누라는 듣지 않았다. 마누라가 며칠만에 알아온 것이 공단의 경비직이었다. 밤에만 일을 해야 하는 그 자리마저도 만석의 처음 예상대로 자격미달이었다. 중졸 이상으로 제한한 학벌이 그랬고, 서른 다섯 이하로 못박은 나이가 그랬고, 재정 보증인, 신원조회, 자격미달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마누라는 두어 군데 더 알아 보고 나서는 포기했다.
“내가 다시 국밥 집에 나가 일을 했으면 했지 떠돌이 신세로는 못 살아요”
“머시 워쩌고 워째? 나허고 배맞춤시롱 여기서 죽을 때꺼정 살라고 작정혔더란 거시여?”
다시 국밥 집에 나간다는 말에 만석은 그만 화가 머리꼭대기로 치솟았다.
“귀때기 활짝 열고 내 말 똑똑허니 들어. 다리몽댕이 분질러 뿔기 전에 방구석에 달싹 말고 처백혀 있어. 멕이든 굶기든 내 알아서 헐팅께”
만석은 문을 박차고 나왔다.
생각해 보면 마누라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뱃속에 애까지 넣고 일거리를 찾아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정처 없이 떠돌아야 한다는 것이 무서운 일일 것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자신은 한글도 완전히 깨치지 못한 무학(無學)에, 나이는 쉰이나 먹은 영감인 것이다. 나이를 생각하면 앞날이 캄캄해지기도 했다. 노동도 하루 이틀이지 언제까지 계속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벌써 공사판의 일당도 젊은 축들과는 차이가 나게 매겨졌다.
찾아가 볼 사람이 한 사람 있긴 했다. 아파트공사 현장책임자인 박 기사였다. 젊은 사람이 많이 배우고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전혀 뻐기거나 도도하지 않았다. 기술자도 아닌 막일꾼에게까지 인정스럽게 대했다. 만석은 그 박 기사와 유독 가깝게 지낸 사이였다.
만석은 몇 번을 망설인 끝에 박 기사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에게 숨김없이 사정을 다 털어놓았다.
“딱한 사정이군요. 제가 알아볼테니 내일 다시 만나십시다”
박 기사는 언제나처럼 정겨웁게 말했다.
다음날, 박 기사는 취직자리를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뭐 취직이랄 게 없군요. 아파트 관리실 소속으로 허드렛일을 해야거든요. 월급도 너무 적고,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군요”
“고맙구만이라, 박 기사님. 지까징 거시 맘에 들고 안 들고가 워디 있간디요. 고맙구만이라”
만석은 먹구름이 가득 끼었던 가슴에 햇볕이 환히 비치는 기분으로 수없이 머리를 조아렸다.
만석은 잡역부였다. 월급은 겨우 먹고 살 정도였다. 이것만으로도 만석은 하늘의 별을 딴 기분이었다. 공사판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라서 만석은 그저 부지런히 몸을 놀렸다.
마누라는 아들을 낳았다. 왜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저놈이 장가를 들려면, 생각하다가 만석은 얼굴이 굳어졌다. 스무 살에 장가를 들인다 해도 자기의 나이가 칠십이었던 것이다. 그때까지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을 써늘하게 만들었다.
아이 하나가 더 생기자 돈이 어른 한 몫이 넘게 들어갔다. 마누라는 월급이 적다고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애가 자라나는 것에 정을 쏟으며 마누라의 투정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해가 바뀌어도 월급은 오르지 않았다. 마누라의 불평은 더 심해 갔다. 그렇다고 월급이 오를 리는 없었다. 잡역부는 임시직이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어쩌면 시나브로 세월이라는 것을 한 술씩 떠 마시며 죽어 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세월을 마디마디 묶어 표시해 놓은 나이라는 것은 참 무서운 것이었다. 마흔여덟이 다르고, 마흔아홉이 다르고, 더군다나 쉰은 더 다른 얼굴이었다. 서리 내린 다음의 나뭇잎이 하루 사이로 달라지듯 늙음으로 치닫는 나이도 마찬가지였다. 한 해가 다르게 몸에서 진기가 말라 가는 것이었다.
아이놈 철수는 가난한 집 자식으로 태어난 것을 알고 미리 제복을 타고났는지 무병하게 자랐다. 커서 부디 훌륭하게 되라고 이름도 국민학교 책에 나오는 것으로 철수라고 지었다. 날이 갈수록 생활은 쪼들려 가고 그럴수록 마누라의 찡찡거리는 소리는 심해 갔다. 그러나 만석은 아이놈에게 쏟는 정으로 이런저런 괴로움을 잊으려 했다.
아이놈이 네 살을 서너 달 앞두고였다. 관리비 절감 계획에 따라 만석은 잡역부 임시직마저 그만두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건 밤길에서 만난 절벽이었다. 그렇게 앞길이 캄캄한 절망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그건 처자를 거느린 남자로서 겪어야 하는 절박한 고통이었다. 당장 다음달부터의 생계가 문제였다. 만석은 마음을 가다듬고 공사판 소식을 수소문하러 나섰다. 그래도 믿을 건 막일밖에 없었다. 며칠을 헤맨 끝에 2백 리 밖에서 벌이가 될만한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냈다.
“산 입에 거무줄 치란 법 웂다. 집 비우는 동안 철수 수발이나 잘 허고 있드라고. 돈은 메칠씩 묶어 부칠팅께”
만석은 지체하지 않고 공사판으로 떠났다.
열흘치씩 일당을 모아 집으로 부쳤다. 쉰세 살의 몸에 남은 기운은 스스로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바닥이 나 있었지만 만석은 이를 갈아 붙였다. 그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자식을 굶길 수는 없다는 마음에서였다. 막일꾼에게 밥만큼 요긴한 게 술이었다. 그러나 만석은 한 홉 이상은 절대 입에 대지 않았다. 안주는 김치 깍두기로 족했다. 일당을 모아 부치는 것을 유일한 보람이요 즐거움으로 삼고 하루하루의 고달픔을 견뎌내다 보니 두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만석은 편지를 받았다. 편지를 읽다 말고 만석은 벌떡 일어나며 뭐라고 소리쳤고, 비척비척하며 다시 주저앉았다.
그 길로 집에 돌아와 보니 편지에 적힌 대로 방은 썰렁하게 비어 있었고,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놈은 국밥 집에 맡겨져 있었다. 마누라가 젊은 놈과 도망을 가버린 것이었다.
“개잡년, 워디 두고보자.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까지는 니년을 찾아 땅끝까정 갈 것잉께. 잽히기만 혀봐, 년놈 가쟁이럴 열두 갈래로 찢어놓고 말 것잉께”
만석은 아이놈을 안아올리며 뿌드득 이빨을 갈아 붙였다. 그런 그의 눈 앞에는 피바다가 된 방바닥에 내장을 드러내고 나자빠진 벌거벗은 두 남녀의 시체가 역력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애시당초 글러묵은 기집복이 두 번째라고 있을 턱이 웂제. 잡아쥑이는 일만 남았응께, 워디 을매나 멀리 내빼는가 보자, 개잡년 같으니라고”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는 만석의 입가에는 서늘한 웃음이 번지고 있었고, 눈에는 파란 살기가 서려 있었다.
삭월세방의 얼마 안 되는 보증금까지 알뜰하게 챙겨 달아난 사실을 뒤늦게 알고 만석은 더욱 분노에 떨었다. 세간살이를 정리해서 몇 푼의 돈을 마련한 만석은 아이놈을 들쳐업고 정처 없는 길을 떠났다.
누구는 서울로 갔을 거라고 했고, 어느 사람은 부산일 거라고도 했다. 다 추측에 지나지 않았다. 우선 가까운 부산부터 뒤지자고 작정하고 길을 잡았다.
때로는 굶기도 하고, 다급해지면 거렁뱅이짓도 헤가며 도시에서 도시로 발길을 옮겼다. 젊은 나이에 일판을 따라 떠돌 때와는 달리 세상은 너무나 넓었고 또 적막했다. 비라도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거나, 눈이라도 한정 없이 쏟아지는 날 같은 때는 아이놈을 품에 싸안고 만석은 소리 없는 울음을 끝없이 울었다.
한평생 산다는 것이 무언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왜 이 낯선 땅에서 이러고 있는가. 사람이라는 것이 한 번 잘못 태어나면 이렇게 되고 마는 것인가. 누구는 양반으로 태어나고 누구는 상것으로 태어나는가. 왜 이 세상에는 양반이고 상놈이고 하는 법이 생겨난 것일까. 다 똑같은 사람인데, 생김도 같고, 생각도 같고…… 그런데 어디서부터 그런 차등이 생긴 것일까. 내가 잘못한 것이었을까. 상놈의 피를 타고났으면 상놈답게 살아야 하는 게 순리였을까. 내 핏속에는 정말 남다른 열이 섞여 있어서 그랬을까. 서너 달 사이에 그 많은 사람을 개 잡듯 한 죄로 이 꼴이 된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아니, 이렇게 목숨이 붙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처럼 그렇게, 상것으로 취급받으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이 욕심이었을까. 상것의 턱없는 욕심이었을까. 이렇게 떠돌다가 오래지 않아 죽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 내 새끼는 어찌 되는 것인가. 이 어린것의 일생은 어찌 되는 것인가. 이 세상 한평생을 살고 남은 건 이 새끼 하나뿐이다. 이거나마 끼고 있으니 그래도 살아갈 맘이 생기는 것인가. 내일은 또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만석은 괴로움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떠돌다 보니 고향 가까이까지 이르렀다. 만석은 예나 마찬가지로 가슴이 방망이질하고 자꾸만 오금이 조여왔다. 야음을 타고라도 한 번 들러갈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건 순간이었다. 도저히 그럴만한 용기가 나지 않았다.
늙은 탓일까. 전에 없이 마음이 끌리고 안타까왔다. 그 동안 굳이 피했으면서도 두 번을 고향 언저리까지 접근했었다. 그때마다 밤을 이용해서였다. 그러나 서둘러 몸을 피하곤 했다. 자신의 죄는 퍼렇게 살아 있었던 것이다.
떠돌기를 1년 반을 했을 즈음 만석은 피를 토했다. 몸이 파삭파삭 마른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머지 않았다는 걸 느끼면서도 어린 자식이 마음에 걸려 행여 하는 생각과 함께 병원을 찾아갔다. 엑스레이라는 사진은 그만 살라고 말하는 모양이었다. 마누라를 찾아내는 마지막 길이라 작정하고 발길을 들여놓은 서울이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사는 마지막 일로 생각하고 마누라와 고아원을 함께 찾으며 6개월 동안 서울을 해맸다. 그리고 더는 몸을 지탱할 수가 없어 아들을 고아원에 맡기기로 한 것이었다. 차츰 자주 피를 토하게 된 것이다. 아이를 더 끼고 있다가는 같은 병으로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컸었다.
“내 새끼덜언 요러타께 한번 키워볼라 헜는디…… 깽가리 소리맨치로 씨원하게 한바탕 삼시로 내 새끼덜인 쌍놈 안 맨들라고 혔는디……”
고아원을 등지고 비척비척 걸으며 영감은 중얼거리고 있었다. 꼭 실성한 것 같은 영감의 움푹 패인 볼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영감의 흐린 시야에는 두 아들의 얼굴이 겹쳐서 어른거리고 있었다. 하나는 세 살 때 인민군 손에 죽은 첫 아들 칠봉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금 고아원에 떼놓고 가는 두번째 아들 철수였다.
영감은 예정했던 대로 고향으로 갈 작정이었다. 이번으로 세 번째 발길이 되는 것이다.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에는 고향 땅을 밟을 결심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들 칠봉이가 인민군 손에 몰살을 당한 사실을 안 것은 전쟁이 끝나서였다.
“요게 누구당가. 자네 만석이 아니라고?”
난리가 끝나고 3년만에 야음을 틈타 나루터의 주막에 나타났을 때 황 서방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랐다.
“자네, 워쩔라고 요러크롬 왔능가? 지끔이 워쩐 세상인디?”
황서방은 어둠으로 앞을 분간할 수 없는데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다급하게 말했다.
만석은 등을 떠밀려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면서, 역시 못 올 곳을 왔다는 생각에 전신이 싸늘하게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말도 마소. 자네가 내빼뿐 바로 그날밤으로 그 징헌 놈덜이 자네집 세식구를 몰살시켜뿌렀단 마시. 누가 고 세 살묵은 어린것꺼정 해꼬지헐줄 알았드랑가?……”
“……”
만석은 말을 잃어버렸다. 3년 동안 한시도 마음놓치 못했던 염려의 결과가 그대로 실현되고 만 것이었다.
“기완 온 걸음잉께 여그서 하룻밤 보내고 낼아침 밝기 전에 뜨소”
만약 잡히는 날에는 생매장 당할 것이라고 황서방은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
“나도 내가 진 죄가 을매나 큰 것인지 알았기 땀새 그 죄 씻을라고 여그서 내뺀 그 질로 군대에 자원허지 않았읍디여. 3년 꼬박 전쟁터를 갈고 댕김서 죽을 고비도 수십 번씩 냉김스로 보돗이 살아난 거신디……”
만석은 변명이라도 하듯 안타까운 표정을 말하고 있었다.
“고거 참말이여?”
황서방은 너무 의외라는 듯 만석의 눈을 쏘아보았다.
“황샌 앞에서 무신 상 받자고 고런 거짓말을 허겄소?”
“그랬음사 참말로 큰일 헜구만 그랴. 허나…… 고것으로 최씨 문중 사람덜 원한을 풀 수 있는 거슨 아니란 말이시. 그 사람덜 원한은 시퍼렇게 남았응께. 영영 풀리기는 틀린 것일 꺼구만. 가소. 먼 디로 가서 살도록 허소”
“그래야제라. 내가 진 죄가 있는디……”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만석은 새롭게 솟는 후회와 서러움으로 마음을 추스릴 수가 없었다. 어둠에 몸을 숨기며 고향에 발을 들여놓으면서도 여기서 살게 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었다. 식구들의 안부를 알아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막상 멀리 떠나라는 말을 직접 듣고 보니 묘한 서러움이 응어리졌다.
“지끔 시상이 꼭 자네들이 미쳐 돌아가던 그때허고 진배웂네. 달라졌다면 쥔이 바뀐 것이제. 참말로 험한 시상이 엎치락 뒤치락이네”
“다 지가 미친 지랄 헌 것이제라. 죄웂는 엄미 아부지꺼정 잡아묵고……”
“따지고 보면 다 자네 죄만은 아니네. 나맹키로 무식헌 것이 멀 알까마는 시국이 죄여, 시국이. 자네헌티 죄가 있다면 성깔이 꼬치맹키로 맵고, 거그다가 젊었다는 거시제”
“우리 시상이 온다는 바람에…… 개돼지맹키로 산 거시 분허고 원통혀서……, 다 미친 지랄이었지라”
만석은 산골짜기를 휘돌아 빠지는 거센 바람처럼 느껴지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난 지끔꺼정 잊어뿔지도 않네. 자네 열두 살 적이었등가? 최 참봉네 재종손을 강물에 처박아분 것이 말이네. 그때부텀 자네 성깔은 탱자나무 까시였응께. 그 일로 자네 아부지가 을매나 고초를 당혔등가마시”
황 서방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연신 혀를 찼다.
“아부지가 나 대신 끌려가 쌔가 빠지게 당허고, 동네서 내쫓기기꺼정 혔지라우. 그때부텀 내 가슴에는 독사 대가리맹키로 원한이 맺히기 시작헌 거지요”
만석의 한숨섞인 목소리가 잠겨들었다. 자신의 생일날을 잊어버리는 일은 있어도 그때의 일만큼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되짚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기도 했다.
강변의 갈대 숲에서 서늘한 바람기가 스치는 9월이었다. 이때쯤이면 으례 짙푸르던 갈잎들이 옷갈이를 시작하는 낌세를 보이고, 털복숭이 참게는 탄탄하게 속살이 찌기 시작했다.
만석은 최 참봉네 재종손 둘과 참게를 잡고 있었다. 참게는 갈밭 바위 틈 같은 데 굴을 파고 살았다. 그놈들은 미련하게도 갈대 꽃줄기를 살금살금 굴 속에 디밀며 놀려대면 서너 번 멈칫거리다가 그 무작스럽게 큰 집게발로 덥썩 무는 것이다. 그러면 참게는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놈은 어찌나 미련한지 한 번 집게발로 문 것은 절대로 놓는 일이 없었다. 그 집게발은 몸에서 떨어져서도 한 번 문 것은 그대로 물고 있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아이들 사이에서는, 손가락을 물리면 그대로 댕겅 잘린다는 소문이 나 있었다. 참게를 불에 구워 간장에 찍어 먹으면 그렇게 맛이 고소한데도 아이들이 선뜻 참게를 잡으러 들지 않는 것은 손가락을 잘리게 될 무서움 때문이었다.
만석은 아이들 사이에서 참게를 잘 잡기로 이름나 있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참게 굴을 눈빠르게 잘 찾아냈고, 참게를 신기하게도 잘 얼렀으며, 갈대꽃줄기를 물고 늘어진 털 투성이 참게를 용케도 잘 다루는 것이었다. 만석의 이런 솜씨를 보며 아이들은 그저 감탄했다.
만석이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아이들이 모르는 고통을 혼자 겪어냈던 것이다. 만석이 강변을 따라 질펀하게 펼쳐진 갈대숲을 뒤지기 시작한 것은 여섯 살 때부터였다. 갈 숲에는 남 모르게 배를 채울 것이 심심찮게 있었던 것이다. 봄에는 물새알, 여름에는 물새 새기, 가을에는 참게, 만석은 그런 것들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꽁보리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속은 언제나 헛헛하고 쓰렸다.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참게의 집게발 따위는 그렇게 무서울 게 없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안 물린 손가락이 없었다. 일단 손가락을 물리면 재빨리 참게를 땅바닥에 패대기를 쳐야 한다. 그러면 집게발이 몸에서 떨어지고, 그 다음 아픔을 참아내며 살을 파고드는 집게발을 떼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참게 몸뚱어리를 집게발에서 떼내지 않은 채 손가락을 빼내려고 덤비면 또 하나 남아 있던 집게 발에 다른 손을 물리기 십상이었다. 두 집게발에 양쪽 손의 손가락을 하나씩 물리는 신세가 되면 어찌될 것인가.
거의 안 물린 손가락이 없을 정도로 혼자 고통을 당하는 사이에 만석은 능숙한 솜씨로 참게를 다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참게한테 물릴 때의 아픔은 대단한 것이었다. 눈에 불꽃이 번쩍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지 끝이 맵게 쏘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는 손가락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아파지는 것이다. 그러나 손가락이 잘려나가지는 않았다. 눈 앞이 노래지며 무릎이 자꾸 꺾이는 배고픔을 없앨 수 있다면 그까짓 아픔쯤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만석은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애들은 그 아픔이 무서워 참게를 잡을 염두를 못 냈고, 특히 최씨네 문중 아이들은 참게가 털 투성이의 다리 열 개를 마구 내두르는 모습만 보고도 뒷걸음질을 쳤다. 만석은 그런 그들을 마음속으로 비웃고 무시했다.
“느그덜이 양반 부자집 자식들이라 내가 지는 거시여. 고런것 싹 웂애뿔고 혀본다면 다 한주먹밥잉께”
이런 속말을 하고 있었다.
그날 최참봉네 재종손이 고구마 세 개를 내밀며 참게 다섯 마리를 잡아 달라고 했던 것이다. 별로 밑지는 장사는 아니어서 만석은 그러기로 했다. 잘 삶아진 밤고구마를 우물거리며 만석은 참게 잡기에 열중했다. 네 마리 째를 잡느라고 갈대 꽃줄기를 까딱까딱 놀리고 있는데 느닷없는 비명소리가 울렸다. 만석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참게를 담은 조그만 항아리 옆에 쪼그리고 앉았던 최 참봉네 재종손 둘 중에 동생이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홉 살 먹은 그놈은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며 팔딱팔딱 뛰고 있었는데, 허공을 내젓고 있는 팔, 그 손가락에는 참게가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만석이와 동갑인 그의 형은
“엄니, 엄니”
외치며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보나마나 항아리를 기어오르려고 버둥대는 참게를 보며 장난질을 치다가 손가락을 덥썩 물린 것이었다.
만석은 재빨리 달려가서 날뛰고 있는 녀석의 팔을 붙들고는 아래로 힘껏 뿌렸다. 그래도 참게는 손가락에 매달려 있었다. 손바닥을 땅에 대개 했다. 그리고 뒤꿈치로 참게를 짓밟았다. 몸통이 으깨지며 집게발이 떨어졌다. 언제나 마찬가지로 집게발은 그대로 손가락을 물고 있었다. 녀석은 계속 숨넘어가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만석은 빠른 솜씨로 집게발을 벌려 손가락에 떼냈다. 그때였다.
“요런 개자석!”
이런 욕과 함께 만석의 눈에서 불이 번쩍 했다. 참게에 물린 녀석의 형이 주먹으로 만석의 볼을 갈긴 것이었다.
“워째 이러?”
너무 느닷없는 일이라서 만석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몰라서 물어?”
다시 주먹이 날아왔다. 피할 겨를도 없이 맞으며 만석은 자기가 잘못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만석은 기막힌 기분이 되면서 서너 발짝 뒤로 물러섰다.
“니 심뽀 내가 다 앙께로 더 지랄허지 말어”
만석은 맞서 싸울 태세를 갖추며 소리쳤다. 그런 만석의 입은 양 다물어졌고, 눈빛은 험악하게 변해 있었다. 그런 기세에 놀랐는지 큰녀석이 주춤했다.
“우리 동상이 물린 거슨 니 땀새 그런 거싱께, 존 말로 헐찌게 니 두 손 다 저그다 쑤셔박어!”
큰녀석이 참게가 든 항아리를 가리켰고, 작은녀석은 손가락을 들여다보며 서럽게 울고 있었다.
“머시여?”
만석은 속이 뒤집히는 걸 느꼈다. 또 상것이기 때문에 당해야 하는 억울함에 부딪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억울함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억지였기 때문에 언제나 말이 필요 없었다. 말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시키는 대로 하는 것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참게가 든 항아리 속에 손을 넣을 수는 없었다. 잘못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저 놈은 어른도 아니고 자기와 동갑인 것이다. 그런 놈이 시키는 대로 할 수는 없었다. 그러느니 차라리 칵 죽어 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었다.
“아, 얼렁 못 넣겄어!”
큰 녀석이 소리쳤고,
“죽었으면 죽었제 고러케는 못허겄구만!”
만석은 입가에 비웃음을 물며 맞섰다.
“워쩌? 니까징 거시 대들어? 참마로 죽어야 니가 맛을 알것다 그거시제. 야, 동진아, 저놈 새끼럴 오늘 절반쯤 쥑여뿔자!”
큰 녀석이 동생에게 말했고, 둘이는 주먹을 말아쥐고 다가들었다.
“이눔아, 존일 헌다고 말썽 피우지 마라. 사람은 지 태생을 알아야 쓰는 법이여. 그저 죽어지내느 기 상수여”
크고 작은 말썽이 일어날 때마다 순하디 순한 아버지는 이렇게 되풀이하곤 했다. 두 녀석이 합세해서 달려들고 있는 다급함 속에서도 아버지의 그 말이 번뜩 떠올랐다. 그러나 이대로 몰매를 맞을 수는 없었다.
만석은 획 날아드는 주먹을 피했다. 아무리 못 먹고 살긴 했지만 연살이 못 되어 나뭇짐을 지기 시작했고, 열 살이 넘으면서부터는 지게질을 한 몸이었다. 싸움하는 기술만큼은 기름지게 먹고 큰 최씨네 문중의 아이들 둘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만석은 한방으로 싸움에 이기는 법을 알고 있었다. 헛손질을 한 큰 녀석이 숨을 씩씩대며 다시 달겨들고 있었다. 만석은 녀석의 사타구니를 겨냥해서 그대로 발을 날렸다. 달겨들던 녀석은 소리도 제대로 못 지르며 나가떨어져 버르적거렸다. 불알을 채인 것이었다.
“성, 성, 일어나. 일어나랑께!”
작은 녀석이 파랗게 질려 딩굴고 있는 제 형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니놈도 내 주먹맛 잠 봐야 써!”
만석은 작은 녀석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만석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성질이 칼칼하고 불같은 그는 한 번 흥분하면 걷잡지를 못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지리산 호랭이가 칵 씹어갈성깔머리” 라고 욕하곤 했다.
만석은, 이놈들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버려야 되겠다는 무서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더 두들겨패서 강물에 처박아 버리자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서 두 녀석을 정신을 잃을 때까지 팼고, 하나씩 질질 끌어 강가로 옮기다가 동네 어른들에게 들킨 것이었다.
아버지는 최씨 문중에 끌려가 반죽음이 되도록 얻어맞고 업혀왔고, 겨우 기동을 하게 되었을 때 내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아버지는 한 번만 살려달라고 땅에 엎드려 울며 빌었고, 최씨문중 사람들은 달구지에 세간살이를 실어내서 강가에다 부려 버렸다. 아버지는 강 건너 산비탈에다 움막을 지어야 했고, 최씨 문중의 소작을 잃어버린 생활은 굶는 것이 곧 먹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만석을 때리거나 나무라지 않았다.
“니는 천상 느그 할아부지릴 빼박은 거시여. 쌍놈으로 살기는 피가 너무 뜨건 거시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앓아누운 아버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주르룩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아버지가 최씨 문중의 용서를 받고 다시 옛 집으로 이사를 한 것은 4년이 지나서였다.
“행여 아부지 엄니 산소는 워처케……”
만석은 망설이고 망설였던 말을 힘겨웁게 하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자네 볼 면목이 웂네. 살기등등헌 그 등살에 누가 묘 쓰겄다고 나섰겄는가. 무담시 화 당헐가벼 나부텀 꽁지를 사린 인심 아니었등가”
황 서방이 솔직하게 말했고 만석은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반응도 없었다.
만석이 이 말을 입에 올렸던 것은 혹시라도 부모님 묘가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가져서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거두는 땅인데,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반동치고 그보다 더한 반동이 있었을까.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세 살 짜리 자식은 그 누구보다 험하게 죽음을 당했을 것이다. 그 누가 감히 시체를 거둬주려 나섰을 것인가. 어느 구덩이에 한꺼번에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황샌, 고맙구만이라. 인자 가봐야 쓰겄소”
만석은 일어섰다.
“아니, 무신 소리여. 눈 한숨 붙이고 닭 울기 전에 떠나랑께”
“아니어라우. 고연시리 새복에 움직거리다가 넘덜 눈에 띄면 황샌 입장만 바늘방석잉께요. 지끔이 숨어가기는 질 좋겄구만이라”
“요리케 가뿔 줄 알았으면 주먹밥이라도 얼렁 한댕이 만들었을 것인디”
“황샌, 그때 나 살려준 은혜 평생 잊지 않을 것이구만이라”
“아니여, 아니여, 자네나 나나 다 피 잘못 받고 태어난 죄밖에 웂는 목심들이여. 자네 속 내 다 알어. 실로 따지고 보면 나같은 남자가 보잘 것 웂는 쫌팽이여. 한목심 편차고 이래도 웃고, 저래도 웃고 사는 나 같은 거슨 속창아리도 웂는 빙신잉께. 나 같은 것에 비길라치먼 자네는 을매나 남자다운가. 정작 남자는 자넨 거시여. 그렁께 나헌테 은혜 입었다는 소리는 날 욕허는 소리여. 자네 숨은 디를 안 갤차준 거슨 자네맹키로 힘지게 못 산 나 같은 짜잔헌 사내가 마땅히 혀야 헐 일이었응께”
황 서방의 눈에는 물기가 어리고 있었다.
“황샌, 오래오래 사시씨요”
만석은 목이 메어 깊이 고개를 숙였다.
“다 잊어뿔고, 다 잊어뿔고, 크게 한바탕 살아보소. 그거시 이기는 질잉께”
만석은 어둠 속에서 황 서방과 헤어졌다.
어둠 속에서 눈이 차츰 익자 강줄기가 희뿌연하게 드러났다. 그 강줄기를 바라보며 만석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나룻배로 강을 건너면 고향마을이었다.
등 뒤에서 총소리가 콩볶듯 하기 시작한 것은 만석이가 서낭당을 지났을 무렵이었다. 총소리 사이사이로 왁자한 사람들의 외침이 들리기도 했다. 불이 붙도록 다급한 마음과는 달리 만석은 빨리 뛸 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왕복 백 리 길을 걸은 다음이라 지칠만큼 지쳐 있었던 것이다. 총소리는 차츰 가깝게 들리고 있었다. 만석이 강변 나루터에 도착했을 때 황 서방은 배를 대놓고 있던 참이었다.
“화, 황샌, 나 잠 살려주씨요”
“자네, 워쩐 일여?”
“인민군 대장을 쥑여뿌렀소. 얼렁 배를 잠 띄우씨요”
“자네 미쳤능가? 배 띄웠다가는 둘 다 강 복판에서 죽게 돼야. 싸게 갈밭으로 내빼, 갈밭으로. 지끔 안개가 피기 시작혔고, 금방 어두워질거싱께. 아, 싸게 내빼란마시”
황 서방은 발을 굴렀다. 만석은 갈대밭으로 뛰어들었다.
소쩍새 울음빛 같은 노을이 강물을 태우고 있었고 강변으로는 서서히 저녁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갈대밭에는 애기울음 같은 소리를 내며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고, 갈 숲은 바람 타는 물결처럼 솨아솨아 흔들리고 있었다. 만석은 안심하고 있는 힘을 다해 갈밭을 기고 있었다. 이 정도로 갈 숲이 바람을 타면 사람 하나쯤이 흔들어내는 것은 표도 안 나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갈대밭에 드나들어 체득한 사실이었다.
강변에서 서너 발의 총성의 울린 것은 만석이 질펀한 갈대밭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였다. 만석은 어둠이 짙어지기를 기다렸다가 강물로 뛰어들었다. 큰 길을 피해서 산을 탔다.
그때 자신의 목숨은 황 서방의 손가락 끝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7월 초순에서부터 9월 초순까지, 만석이 자신의 누린 그 꿈만 같은 세월은 고작해야 두 달이었다. 그 동안 만석은 정말이지 세상이 다 자기 것인 줄 알았었다.
노동자 농민을 해방시킨다고 했다. 부자나 지주들을 쳐 없애고 상것들이 모든 행세를 하는 것이라 했다. 만석은 생각하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었다. 만석은 물 만난 고기였다. 낫을 숫돌에 새로 갈아 꼬나 잡았고, 눈에서는 푸른 살기가 뻗쳤다.
만석이 제일 먼저 해치운 일이 최씨 문중의 사당을 불지른 것이었다. 불길에 휩싸이는 사당을 바라보며 만석은 소리치고 있었다.
“지끔부텀 최씨 놈덜 씨를 말려뿔 거시여. 좇 달린 거시라먼 한 마리도 안 냉기고 싹 쓸어뿔 것이라고”
시퍼런 낫을 휘두르며 소리치는 만석의 앞에 그 누구도 얼씬거리지 못했다. 만약 누가 대들었다면 휘둘러대는 낫에 댕경 목이 달아나고 말았을 것이다.
발이 빠른 사람들은 더러 피신을 하기도 했지만 그렇지 못한 최씨 문중 남자들은 다 잡혀서 끌려갔다. 그리고 반죽음이 되도록 두들겨 맞고는 날마다 한 사람씩 뒷등 소나무에 묶여서 죽어 갔다.
최씨 문중은 줄초상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상여는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시체를 찾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씨네 사람들은 어느 집이나 밥을 굶었다. 곡식이란 곡식을 모조리 빼앗겼기 때문에 죽도 끓일 것이 없었다.
“안돼야, 안돼야. 짐생도 고러크롬 야박허게 다루는 거시 아닌디, 워째 사람을 그랄 수가 있드라냐. 어린 새끼덜이 있는디 죽이라도 쑤게는 허야 혀. 만석아, 이눔아, 맴 둘려서냥은 죽이라도 쑤게 맹길어. 애비 쥑인 웬수라도 고러케 허는 뱁이 아닌거시여”
아버지는 만석에게 매달리며 애원했다.
“고런 반동적 발언 치우씨요. 아부지는 평생 당허고만 산 일이 치가 떨리지도 안혀서 그런다요?”
만석은 아버지를 뿌리치며 눈을 치떴다.
“고런 못된 소갈머리 버려야 써. 미우나 고우나 그 사람덜이 우리럴 먹여살린 거시여”
“아부지, 참말로 고런 말만 골라서 하실라요? 아부지, 고런 맘 얼렁 안 고쳐 묵으면 워치께 되는지 아시겄소? 최가 놈덜허고 똑같은 꼴 당헌단 말이요”
만석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고,
“하먼이라. 아부님 말씸은 쪼깨 과헌 성싶구만이라. 원제 그 사람덜이 우리 먹여살렸읍니여. 우리가 쌔빠지게 일혀서 고것들 팅팅 살찌게혔고, 우리사 쭉징이만 묵고 포돗이포돗이 살았제라”
며느리가 눈을 희게 뜨며 남편을 거들고 나섰다.
천씨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며느리까지 생판 딴 사람으로 변한지가 오래였다. 사람이 맘이 변하면 죽는 일을 당한다고 했다. 아들도 며느리도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아들놈은 사람백정 노릇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해내고 있고, 며느리는 그 얌전하던 옛 모습을 하루아침에 벗어버리고 꼭 화냥년처럼 변했다. 아들놈하고 똑같이 며느리도 여맹부위원장이 되어 날쳐대고 있는 것이다. 그 예쁜 얼굴에 눈 한 번 제대로 뜨지 않던 며느리가 그렇게 변한 것이 못내 서운했다. 아니, 사람을 그렇게 돌변시켜 버리는 그 공산당이란 것이 생각할수록 겁나고 무서워졌다.
만석은 날개를 있는 대로 편 독수리가 되어 제멋대로 날아다니느라고 제 발 밑에서 불이 붙고 있는 것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마누라가 말한 마디로 모든 것을 척척 해내는 권총 찬 인민군 대장에게 정신이 팔려 있다는 사실을 낌새도 채지 못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잠자리의 요구를 물리치곤 했을 때도 의심은커녕 혁명과업을 완수하느라고 낮에 고생한 아내를 괴롭히는 것 같아 오히려 미안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만석은 인민의용군에 붙들려가지 않으려고 벽촌으로만 피해 다녔다. 그러면서 밤마다 그 험악한 꿈에 시달렸다. 두 연놈이 알몸뚱이로 덩굴고 있었고, 피바다가 된 방바닥에 배창자가 터져나온 두 연놈이 나자빠져 있는 광경이었다.
밥을 먹다가 언뜻 그 생각이 떠오르면 구역질이 치밀어 더는 먹을 수가 없었다. 한 달 가까이 피해 다니다가 인민군이 싸움에 져서 거의가 산 속으로 도망을 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 사고가 없이 그대로 고향에 있었더라면 자신은 어떻게 됐을까를 만석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세상은 다시 뒤바뀐 것이다. 틀림없이 몸을 피한 최씨 문중 사람들이 들이닥칠 것이었다. 인민군을 따라 도망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 같았다.
이제 전쟁은 다 끝났다. 그러나 뒷정리까지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타작을 끝내고 나면 청소를 할 뒷일이 남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산으로 도망갔던 공비가 밤이면 여기저기 출물했고, 전에 부역했던 사람들이 색출되고 있는 참이었다.
“보나마나 뻔헌 일 아니겄능가. 더러 산사람이 되기도 혔고, 눈치 못 채고 뒤처진 축들은 잽혀서 또 그 징헌 꼴 안 당했드랑가”
황 서방은 더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만석은 강줄기처럼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어둠 속을 걸었다. 황 서방의 말대로 멀리 떠나서 사는 길밖에 없었다. 이제 얻은 것도, 남은 것도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허망하기도 했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그렇게 학교라는 것이 다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나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상것은 상것대로 할 일이 따로 있다고 했다. 그것이 나무하는 일이었고, 지게질이었고, 소 꼴 뜯기는 일이었다. 최씨네 아이들이 나무그늘에서 수박이나 참외를 배터지게 먹으며 히히덕거리고 있을 때 자기는 땡볕 속의 논길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새를 쫓느라 목이 터지게 소리를 질러야 했다. 겨울이면 으례 아이들의 책보를 모아들고 학교까지 가야 했다. 그 아이들은 자기보다 몇 배 두꺼운 솜옷에 장갑까지 끼고는 손이 시려서 책보를 못 들고 간다는 것이었다.
인절미 두 개를 얻어먹기 위해 아픈 것을 참고 자지를 까보였다. 감 한 개를 얻어 먹으려고 말타기놀이의 말 노릇을 한나절 했다. 끝없는 배고픔 속에서 배를 채울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려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열서너 살까지였다. 열다섯이 넘으면서부터는 잇뿌리가 아플 지경으로 이빨을 앙다물기 시작한 것이다.
“만석이, 만석이. 나 잠 살려주소. 내 논밭 다 줄팅께 나 잠 살려주소”
누군가는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비비대며 숨이 넘어갔다.
“만석이, 아녀, 아녀, 부위원장님, 나허고 춘부장 어르신네허고는 삼십년 친구였지라우. 나 잠 살려주씨요, 나 잠……”
누군가는 펑펑 눈물을 쏟으며 마룻바닥을 뺑뺑이를 돌았다.
“부위원장 동무, 부위원장 동무, 부위원장 동무……”
누군가는 입술을 푸들푸들 떨며 더는 말을 못했다.
누군가는 생똥을 쌌고, 누군가는 질퍽하게 오줌을 쌌고, 누군가는 팔다리가 떨리다 못해 뻣뻣이 굳어져 버렸다.
그 누구 하나 며칠 전까지 가졌던 그 당당함, 그 거만한, 그 거드름, 그 위세를 그대로 지니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요 개만도 못헌 쌍놈아, 니 놈이 감히 누구헌테 요런 못된 짓을 혀” 이렇게 호령을 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그 사람은 차라리 살려쥤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망령이 막아서라도 다시는 올 수 없는 땅이 된 것이라고 생각하며 만석은 강을 등지고 어둠 속을 빨리 걷기 시작했다.
만석영감은 연상 눈물을 훔치며 변두리 고아원에서부터 번화가까지 걸어나오느라고 서너 시간이 걸렸다. 수중에 동전 한 닢 남아 있지 않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눈여겨 보아두었던 육교를 찾아냈다. 난간을 붙들고 힘겨웁게 육교를 오른 영감은 검정 고무신 한 짝을 벗었다. 그리고 양쪽 계단이 갈라지는 육교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검정 고무신 한 짝은 그 앞에 놓여졌다.
당장 하루 한 끼는 입에 풀칠을 해야 했고, 고향으로 갈 차비는 마련해야 했다.
이제 노동은 할 수가 없었다. 어느 노동판에서고 일거리를 주지 않았다. 주름 투성이가 된 파삭 쭈그러진 얼굴도 얼굴이었지만, 이미 어깨가 축 늘어져 한 눈에 노동판꾼의 몸이 아닌 게 표가 났다. 혹시 인정이 많거나 아니면 풋내기 현장감독이 일거리르 떼준다 해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전신이 풀려 버릴 데다가 억지로 힘을 쓰고 나면 으례 피가 넘어오는 것이었다.
영감은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 영감의 몰골은 영락없이 거지였다.
고무신에 동전이 얼마나 모아지는가에 대해서는 영감은 아예 관심이 없었다. 영감의 마음은 어느덧 고향으로 가 있었다. 영감은, 죽을 날이 가까워지는 그러는 것이려니 했다. 언제부턴가 부쩍 그곳으로 마음이 쏠리는 것이었다.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 땅이었다. 반겨 줄 얼굴 하나 없는 땅이었다. 있다면 험악한 과거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한사코 마음이 쏠리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자기의 속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공사판을 따라 2년인가 떠돌았다. 새로 벌어진 간척지 공사장을 찾아가다 보니 고향 땅이 백 리 조금 넘은 거리에 있었다. 처음엔 혹시 아는 얼굴이라도 만나게 될까봐 다른 일터를 찾아나설까도 했다. 그러나 공사장 여건이 선뜻 딴 데로 발길을 돌리지 못하게 했다. 간척지 공사는 우선 그 기간이 길어서 좋고, 대개 관에서 일이라 일당이 제때 제때 나오는 잇점이 있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2개월이 지나고 3개월이 지나도 아는 얼굴은 하나도 만나지지 않았다. 그렇게 되니 마음이 슬그머니 동하는 것이었다. 황 서방이라도 한 번 만나 보고 싶은 생각이 일어난 것이다. 그 생각이 한 번 머리를 들게 되자 마음은 자꾸만 설레발을 치기 시작했다.
노동판에도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몸뚱이를 부려 하루 세 끼 목구멍을 채우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에겐 잘 구워진 고구마맛 같거나, 눈오는 날 구들장의 온기 같은 정이 없었다. 한 노동판, 같은 조(組)로 일을 할 동안은 그런데로 허물이 없는 듯하다가도 공사가 끝나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 그 길로 까맣게 잊어버리게 마련이었다. 떠돌이 인생들이란 으례 그런 모양이었다.
여자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여자들은 오히려 남자들보다 더 허망한 그림자였다. 몇 푼의 돈으로 몸을 파는 그 여자들은 그 일이 끝나 버림과 동시에 아무 쓸모도 없는 살덩이로 변하고 말았다. 그 여자들과의 일은 아무리 되풀이해 보아도 발목밖에 안 차는 미지근한 목욕물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목까지 푹 잠기는 뜨끈뜨끈한 목욕물이 몹시 그리웠다. 언뜻 마누라의 몸이 생각났다. 전신이 흠뻑 땀으로 젖으며 온몸의 진기가 다 빠져나간 것 같은 아련하고도 아슴하던 그 기분이 그리웠다. 그러나 그 그리움을 지체없이 박살내고 달겨드는 기억이 있었다. 벌건 대낮에 숙소에서 뒹굴던……
황 서방을 만나 보고 싶은 것은 그런 마음의 정처 없음 때문인지도 몰랐다.
공사판은 일주일에 하루씩을 쉬었다. 그날은 너무 지루하고 답답했다. 술타령도, 투전판도 별로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정종이라도 한 병 사들고 황 서방을 찾아가고 싶은 생각만이 마음에 가득했다.
만석은 꾹꾹 참다가 결국 점심 때가 지나서 버스를 타고 말았다.
고향마을을 삼십 리 앞둔 ㅂ읍에서 버스를 내렸다. 해가 지려면 얼마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만석은 가게에서 정종 두 병을 샀다. 그리고 밥집을 찾아들었다. 국밥 곱배기에다 소주를 시켰다. 밤길 삼십 리를 걷자면 듣든하게 먹어둬야 했다.
“묘 쓰는 일이 안직도 안 끝났단 말이당가?”
“아, 그렇다니께”
“참말로 요상허네이. 난리 끝나뿐 것이 원젠디, 이 년씩이나 묘를 쓴단 말이당가?”
“요사람, 영 태평헌 소리만 혀쌓는구만이. 아, 죽은 사람 숫자가 싹 말라 없어질분 혔응께”
입으로 술잔을 가져가던 만석은 그대로 동작을 뚝 멈추었다. 몸이 뻣뻣이 굳어지는 것같은 충격이 뒷머리를 때렸다. 만석은 눈만을 빠르게 굴려 두 남자의 얼굴을 살폈다. 전혀 안면이 없는 얼굴이었다. 만석은 자신도 모르게 파장이 심한 한숨을 내뿜었다.
“그러게 말이서. 국군이 그맘 때만 혀서 싸움에 이긴 거슨 최씨네헌테 큰 부조 헌 거여”
“하먼, 하먼. 그란디 묘는 지대로 써지고 있는 거싱가?”
“워디가. 그 많은 사람덜이 굴비 엮듯 혀서 이 구뎅이 저 구뎅이 묻혀뿐 것잉게 누구 뼈다구가 누구 뼈다군지 워찌 알 것잉가”
“참말로 환장헐 일이구만 그랴. 누구 뼈다군지도 모름시로 즈그던 부모 것이라고 생각허고 이장을 허는 자손들 속이 워쩔 것잉가”
“금매 말이시. 그 효심들이 상 받을만 허다니께”
“근디, 최씨 문중은 그렇게라도 혼을 건진다 허고, 부역혔던 사람덜이 나 그 일가 뿌시레기덜 망령은 워쩐디야?”
연거푸 술잔을 비우고 있는 만석의 마음은 싸늘하게 긴장하고 있었다. 그만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몸은 점점 더 무거운 무게로 아래로 내려앉고 있었다.
“내 말은 고런 말이 아니란 마시. 워쩌케 되았거나간에 한 품은 망령이 떠돌아댕겨서는 그 동네가 안되어 묵는다 고런 말이네”
“그렇다고 최씨 문중에서 그 웬수녀러 상것들의 묘를 써줄 것잉가?”
“가당찮은 일이제. 무신 감투를 쓴 것도 아닌 그 멍청한 점바구를 생매장헌 걸 보면 최씨네도 보통은 넘는 사람들이여”
……점바구, 왼쪽 이마에 동전만한 점이 박혀 있던, 약간쯤 모자라는 것 같은 사내. 그는 제 세상이 왔다고 덩실거리며 대창을 꼬나 잡고는 시키는 일이면 무엇이나 헤치웠다. 대창으로 가슴팍을 푹 찔러 놓고는 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헤벌죽 웃는 것이었는데, 그런 그의 얼굴은 웃는 것이 아니라 성난 개가 으르렁거리는 얼굴 모양과 너무나 흡사했다. 그 섬뜩한 느낌의 표정을 사람들은 <개웃음>이라고 불렀다. 그 점바구가 생매장을 당했다는 것이다. 약간쯤 모자라는 탓으로 사태가 불리해진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을 게 뻔했다. 점바구는 생매장을 당하면서도 개웃음을 웃었을까…… 술잔을 들어올리고 있는 만석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워쨌거나 인자 공비가 안 내려옹께 살겄구만. 작년꺼정만 혀도 어디 발뻗고 편헌 잠잘 수 있었더라고”
“인자 에지간히 잽힌 모냥이여. 위원장 지냈던 수길이가 죽어뿐 작년 시월 후로는 그 동네에도 이적지 한번도 안 내렸왔드랑만”
“그라먼 그때 수길이허고 함께 죽은 그 얼굴이 몰라보게 잉끄레져뿐거시 소문대로 부위원장 지낸 만석이가 영락웂는 것 아니었쓰까?”
“모르먼 몰라도 그럴껴. 그때 삭 죽어뿌러서 발이 끊긴 것 아니겄어. 그때 수길이만 죽고 만석이가 살아 달아났드라면 최씨 문중이 무신 험헌 꼴 또 당혔을지 아능가? 고 만석이란 물건이 예사 물건은 아니였등갑는디. 독허기가 독사대가리 열 합친 것만 하다드란 그랴”
“글씨 말이시, 열살 안짝에 비얌을 꾸어묵은 징헌 자석이람시로?”
“그러타느만”
“근디 마시, 만석이 그 사람이 인민군 대장허고 즈그 마누래 쥑여뿔고 내빼뿐 것허고 인민군이 봇짐을 싼 것허곤 보름이나 더 차이가 지는 디…… 그라고 인민군 헌티는 만석이가 총살감 죄인이 아니겄드라고? 그란디 워치케 또 한패가 되았으까?”
“요 사람 참말로 답답허네잉. 속사정이 워째튼, 넘 마누라 붙어묵은 놈이 잘못인가, 그런 놈 쥑인 남편이 잘못인가. 즈그덜도 속이 있응께 옛일 덮어뿔고 다시 합친 것 아니겄어? 그라고 심이 달려 쫓기는 판에 한 사람 더 보태는 거서 워딘디. 만석이 같은 독헌 인종 하나 보태는 거슨 예삿사람 열 보태는 폭이었을 것 아니라고?”
“그러컸구만, 그러컸어”
만석은 창백한 얼굴로 식당을 다급하게 나왔다. 그리고 황 서방 집과는 반대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공사판 쪽으로 가는 차가 있어야 할텐데 생각하면서.
공사판으로 돌아온 만석은 황 서방에게 주려고 샀던 정종 두 병을 다 마셔 버렸다. 그리고 나흘 동안 꼼짝을 못하고 앓아누웠다.
열 살 안쪽 나이에 뱀을 잡아 구워먹은 일은 없었다. 구워 먹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많이 했었다. 소․돼지․개․닭은 다 먹는다. 메뚜기나 개구리도 먹는다. 그러면 뱀이라고 못 먹을 게 뭐 있을까 싶었다. 여름이 되면 뱀은 강변 갈밭이라고 논이고 야산 풀섶에 흔했다. 아이들은 뱀을 보면 질겁을 하고 뺑소니를 졌다. 그러다가도 누군가가 한 마리 잡기만 하면 너도나도 돌멩이를 들고 대드는 것이었다. 으례 뱀은 온몸에 상처투성이가 되어 죽어야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뱀을 토막쳐 죽이지 않으면 밤이슬을 먹고 되살아나 새벽에 꼭 복수를 하러 온다는 것이었다. 되살아난 뱀은 자기를 죽이려 했던 아이들 집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꼭 자지를 물어 죽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사생결단 돌을 던져 다 죽어 버린 뱀을 토막토막 끊어야 직성이 풀려 했다. 어떤 아이는 한 손으로 사투구니를 거머잡고 기를 쓰며 돌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만석은 돌을 던지지 않았다. 배가 고파 기운이 없는데 뱀을 죽이는 일에 기운을 쓸 필요가 없었고, 저것을 어떻게 하면 구워 먹을 수 있을까를 열심히 궁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에서 잡히는 뱀장어라는 것의 맛은 기막혔다. 기름이 지글지글 끓는 뱀장어 한쪽을 입에 넣었을 때의 그 고스하고 달큰한 맛, 이름이 비슷하니까 하는 생각에 몰두해 있곤 했었다.
수길이는 빨치산이 되어 동네를 습격했다가 죽은 모양이었다. 그놈도 억세게 불쌍한 놈이었다. 홀어머니 밑에서 어쩌면 만석이 자신보다 더 배를 곯으며 살았을지 모른다.
“니기미, 요런 팔짜로 한평생 살아보면 멀 헐껴, 엄니 땀새 사는 거시지, 엄니만 죽어뿔먼 나도 요런 염병헐 시상 고만 살란다”
기운 쓰기에는 안 어울리는 뼈대를 갖춘 수길은 곧잘 이런 말을 하곤 했었다.
그는 인민위원장이 되면서 그래도 생기가 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꽤는 괴로와했었다. 그런 그가 결국 고향 땅에서 죽어간 것이다.
고향사람들, 특히 최씨 문중 사람들에게는 자신은 이미 죽은 것으로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자신의 생존을 알고 있는 것은 황 서방 내외뿐이다. 입 무거운 황 서방이 자신의 생존을 입밖에 낼 리가 없다.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인 것이다. 이제 고향에 남은 자신의 흔적은 아무 것도 없다.
만석은 나흘 동안 앓아 누워서 자신의 신세를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참 허망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달라진 것이라곤 소작농사꾼에서 떠돌이 막노동꾼으로 바뀐 것이었다.
만석은 다시는 고향 땅 가까이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 결심은 30년이 가깝도록 지켜져 왔던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일판이 벌어져도 고향 쪽이면 아예 외면을 해버렸다.
강변에는 저녁안개가 어떤 슬픔의 흔적처럼 자욱하게 번져나가고 있었다. 무거운 듯 어깨를 늘어뜨리고 선 영감은 오래 전부터 갈대 숲으로 번지는 안개의 꿈틀거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도 저 갈 숲에는 참게가 그리도 많을까. 어렸을 적에는 구워먹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술안주로 그만이었지. 소주 한 잔을 꺾고 진간장에 담근 그 털북숭이 참게 다리를 씹는 맛이란……
영감은 군침을 삼키며 손바닥으로 입을 훔쳤다. 손바닥의 꺼칠한 느낌만 입 언저리에 무슨 흉터처럼 선명하게 새겨지는 기분이었다. 영감은 허전한 기분으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못이 박히다못해 자디잔 금을 그으며 터진 손바닥. 굳어진 군살이라서 그런지 어지간한 것에 찔려서는 아픔을 느낄 수가 없었다.
영감은 가늘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손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눈에 안개빛을 닮은 우수가 서렸다.
긴 세월이야. 빠르게 달아난 세울이야. 허망한 세월이고……
영감은 입꼬리가 처지도록 입을 꾹 다물며 눈길을 다시 강변으로 옮겼다. 안개는 흡사 살아 있는 것처럼 질펀한 갈대밭과 넓은 강폭을 먹어가고 있었다.
저 갈대밭이 없었더라면……
영감은 몸을 으스스 떨었다. 막상 강을 앞에 하고 서니 그 일은 꼭 어제 일어난 것처럼 그 동안의 세월의 간격을 허물어뜨리고 다가섰다.
안개는 그냥 퍼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엷은 어둠을 한 자락 한 자락 깔아나가고 있었다. 영감은 등줄기가 서늘한 한기를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산등성이의 윤곽이 흐려 보일 만큼 어두워져 있었다. 영감은 눕고 싶은 무거운 피곤과 함께 시장기를 느꼈다. 이제 그만 주막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옛 자리에 그대로 있는, 지붕만 슬레이트로 변한 왼쪽편의 주막을 향해 영감은 더디게 걸음을 옮겼다. 이 꼴이 되어 버렸는데 어쩌랴 싶으면서도 어느 만큼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어쩌할 수 없이 뼛속 깊이까지 스며 있는 죄의식이었다.
황서방은 살아 있을까. 살아 있다면 칠십이 넘었을 것이다. 마누라한테 주막 일을 맡기고 자기는 나룻배를 저었었다. 추우나 더우나, 한밤이나 새벽이나를 가리지 않고 한 사람을 위해서도 나룻배를 띄우던 황 서방이었다. 항시 웃는 얼굴인 그는 이 세상에 싫은 사람도, 미운 사람도 없는 것 같았고, 그래서 감골 학내 죽촌 마을의 그 어떤 사람이든 황 서방 내외를 아끼고 감쌌다. 그런 황 서방이 처음으로 자신에게 눈을 치뜨며 소리를 높였었다.
“자네 워째 이러능가. 자네 미쳤능가? 시상이 워찌 변혔거나, 시국이 워치케 달라졌거나간에 사람이 변허먼 못쓰는 법이여!”
“황샌, 말조심 허씨요! 황샌도 앞장서야 헐 사람임스롱 무신 말을 고렇게 허씨요!”
“어이, 내 말 잠 들어보소. 일정(日政)때 앞잽이놀이허던 사람덜 꼴 못 봐서 그러능가?”
“머시 워쩌고 워째라? 아, 지끔이 일정 때허고 똑같은 줄 아시요? 나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허니께 귀때기 활짝 열고 똑똑하게 들어두씨요 잉. 지끔 헌 말 황샌이니께 안 들은 거스로 허겄소. 한번만 더 고런 소리 허먼 싹 보고 허고 말팅께 그리 아씨요”
황 서방은 입을 헤벌린 채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었다.
황 서방이나 아버지는 그때 이미 세상살이가 어떤 것인지를, 한 목숨 살아가는 뜻이 어디 있는지를 환히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둘이 다 순리로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 순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이제는 황 서방도 어느 길목에서 마주친다 해도 서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것이다. 긴 물굽이를 이루며 흘러간 세월이었다.
영감은 징검다리라도 건너는 것처럼 약간 더듬거리는 듯한 걸음을 땅거미 속으로 내딛기 시작했다. 구부정한 어깨에 다 헐어빠진 가방이 매달려 있었다. 주막을 몇 발짝 남겨놓고 영감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한 손은 입을 가렸고, 다른 한 손은 가슴께의 옷을 움켜잡고 있었다. 기침소리는 전혀 생기가 없어 목구멍에서 맴도는 밭은 것이었다. 기침은 끊길 줄을 몰랐고, 영감의 몸은 점점 작게 오그라들고 있었다.
영감의 몸이 거의 주저앉다시피 하였을 때 기침이 멎었다. 영감은 숨을 헉헉대고 있었다. 이렇게 한바탕 기침이 휘몰아치고 지나가면 가슴은 다 찢어진 창호지 문처럼 더덜거리는 느낌으로 견디기 어려운 열에 들끓었다. 전신에 땀이 죽 흐르고, 오한이 일어나는 것은 그 다음 증상이었다.
틀린 거야. 다 끝났어.
영감은 고개를 저으며 또 같은 생각을 했다. 기침이 한바탕 가슴을 들쑤시고 지나가면 영감은 또 한 걸음 다가선 죽음을 느끼는 것이다.
영감은 다리가 후들거려 무릎을 손바닥으로 짚고 더디게 일어섰다. 비릿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 현기증이 강변에 퍼지는 안개처럼 아득하게 일어났다.
영감은 주막 문 앞에서 일단 멈춰 섰다. 뭐라고 인기척을 할까를 생각했다. 그러나 할 말은 떠오르지 않고, 젊은 황 서방의 순하디 순한 얼굴만 어른거렸다.
“기시요? 누구 있소?”
영감은 있는 힘껏 소리쳤다. 그러나 그 소리는 자신이 들어도 너무 힘이 없이 떨리고 있었다.
“누가 왔능가?”
한 남자가 헛간에서 나오며 두리번거렸다.
“……”
영감은 눈에 힘을 모았다. 저녁 어스름이 끼고 있긴 했지만 저쪽의 남자가 늙은이가 아니라는 건 직감할 수 있었다.
황 서방 아들일까?
영감은 불현듯 생각했다. 그 뚝심이 세던 녀석, 제 애비 대신해서 서툴게나마 노질을 하기도 했었다.
“큰 부조 헌기여. 저 눔이 삼 년만 일찍 시상에 나왔어 보드라고. 이쪽으로든 저쪽으로든 끌려가고 말았을 것잉께. 그랬으면 내 애간장이 워찌 됐을 것잉가 말이시”
황 서방의 말이 생생하게 들리고 있었다.
“뉘시요?”
사십대의 건장한 남자가 나직한 목소리로 묻고 있었다.
“저어…… 요새도 주막을 허능가요?”
영감은 뒤엉킨 여러 가지 물음을 밀쳐놓고 이 말부터 물었다.
“워디요. 다리가 생기고 나룻배가 소양 웂어지고 자연 주막도 시들해졌구만이라”
남자는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영감의 몰골을 달갑잖은 눈길로 훑어보았다.
“요 강 우로 다리가 놓였어라우?”
영감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그거야 원제 일인디요. 이 고장을 떠난 지 영 오래 되야뿐 모양이지라우?”
남자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영감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영감은 반사적으로 방어태세가 되었다. 그날 이후 30여년 동안 겪어온 감정의 어두운 굴절이었다. 그러나 영감은 그런 감정의 응고를 습관대로 겉으로는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입을 열었다.
“농샛일이 싫어 젊은 나이에 봇짐을 싸분 거시요”
“그려요? 헌디, 돈은 잠 벌었능가요?”
남자는 비웃는 투로 물었다. 영감의 몰골은 돈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혹시 지끔도 황 서방이 이 집에 사십디여?”
영감은 마음의 동요를 누르며 넌지시 물었다.
“황 서방이 누군디라?”
남자는 고개까지 흔들며 전혀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순간 영감은 암담한 기분이 되었다. 이 남자는 집주인이 분명한데 황 서방을 모른다. 황 서방은 세상을 떠난 것일까, 아니면 어디로 이사를 간 것일까.
“머시냐, 황 순돌이라고…… 나룻배를 짓던……”
“아아, 전 주인 말이구만이라. 십 년도 전에 시상을 버렸구만요. 아들은 이 집을 우리헌테 넹기고 도회지로 떠나가뿔고요”
영감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향 땅을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황 서방을 만나러 온 것이었다. 정처 없이 떠돌면서도 마음이 고향 땅으로 쏠렸던 것은, 부모님 원혼이 떠돌고 있다는 가슴아픔 말고도 황 서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렁배이짓을 해서 근근히 모은 돈이긴 했지만, 정종 한 병을 가방 속에 사 넣었던 것도 황 서방을 위해서였다.
“영감님은 워디로 가시는디요?”
집주인의 말에 영감은 정신을 차렸다.
“행여, 죽어뿐 황샌 묏등이 워딘지 모르시겄소?”
영감은 물기가 번진 눈을 아슴하게 뜨며 물었다.
“글씨요, 잘 모르겄는디요”
남자는 무뚝뚝하게 대답했고, 영감은 연상 고개만 잘게 끄덕이고 있었다.
“그라먼 살펴가시씨요”
집주인이 돌아섰다.
“나 시장혀서 그란디, 밥 잠 묵을 수 있겄소?”
영감은 집주인의 등 뒤에다 대고 힘없이 물었다.
“글씨요……”
“공짜 밥 묵자는 건 아니니께 염려는 놓으씨요”
“머 그거시 아니라, 찬이 벨로 웂어서…… 우선 듭시다”
집주인이 되돌아섰다.
사방은 어둠이 완연해져 있었다. 영감은 강변을 내려다보았다. 흡사 살아 있는 것처럼 뭉클뭉클 피던 안개의 자취는 암회색 어둠 속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황 서방만 있었더라면…… 영감의 가슴에는 허전한 슬픔이 강변을 덮던 안개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머 허시요, 영감니임. 얼렁 들오씨요”
집주인이 불렀고,
“소피가 급혀서……”
영감은 얼버무리며 사립을 들어섰다.
마침 밥 때여서 그런지 밥상은 금방 들어왔다.
“쇠주 한 잔 헐 수 있겄소?”
영감은 숟가락을 들 생각도 안하고 술부터 찾았다. 그러면서 가방에 고이 간직해 온 정종을 생각햇다. 황 서방과 마주앉아 마시려고 했었다. 지칠 만큼 지치고 시들 만큼 시들어 버린 감정과 육신을 달래며 한 잔씩 하려고 산 술이었다. 자신의 평생을 통해서 정종이란 값비싼 술을 산 것은 이번으로 세 병째였다. 처음 두 병도 황 서방에게 권하지 못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가 된 것이었다.
영감은 소주를 잔에 넘치도록 부어 단숨에 마셨다. 싸아 하고 짜릿한 소주기운이 목줄기를 타고 내리는 느낌에 영감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바람을 떠밀려 정처 없이 떠돌고, 구름을 이고 덧없이 보낸 세월 속에서 그래도 변함없이 곁을 지켜준 건 이 소주 맛뿐이었다.
“자아, 한잔 받으씨요”
주인에게 잔을 내밀었다.
“워디요, 묵고 싶음서 내가 따로 묵게 워째 손님 술을 받아묵겄소”
주인은 팔을 내저으며 사양했다.
“보씨요, 술 한잔 주고받는 인정꺼정 고러코름 야박허게 토막치지 마씨요. 내 꼴 보면 다 알겄지만 술 두잔 낼 돈도 웂는 신세요. 얼렁 받으씨요”
영감은 쓸쓸한 표정으로, 그러나 힘찬 어조로 말했다.
“그라먼……”
주인은 잔을 받았다.
술을 따르는 영감의 손이 잘게 떨렸다. 그러나 술이 잔에 다 찼을 때 손은 정확하게 술병을 거둬올렸다.
“영감님, 나룻배럴 찾는 걸 보니께 죽골께로 가는 참이었능가요?”
주인이 잔을 내밀며 물었다.
“……”
영감은 많은 생각은 모으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만 끄덕였다.
“어그 와 알았는디, 죽골서부텀은 왼통 최씨문중 판입디다요”
“……”
영감은 여전히 고개만 끄덕였다.
“다리도 최씨 문중서 나서서 맨들었고, 얼매 안 있으면 중핵교 고등핵교도 맨든다고 허드만이라”
“……”
영감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빼들었다.
“허기사 국회의원이 나오는 판이니께 무신 일인들 못헐랍디요. 다른 성씨도 있긴 헌디 다 최씨네 그늘 덕에 사는 쪽박신세들이지라우”
“헌디……”
영감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말고 술잔을 입에 털어넣듯이 했다.
“무신 말씀인디요?”
주인이 영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헌디…… 최씨 문중 체(중심)를 잡아가는 사람덜은 누굽디여?”
“그야 배웠다는 내 나이또래 사람덜이지라우. 노인네덜이 웂는건 아니지만 다 뒷전에 나앉은 모양입디다. 그란디, 소문으로 들응께 그 노인네덜이 벨로 대접을 못 받는다는 말이 있드만이라”
“워째서?”
“덜 똑똑혀서 그런다는디, 진짜배기 똑똑한 사람덜언 난리통에 다 죽어뿌렀답디다”
“……”
영감은 굳어진 표정으로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최씨네가 난리통에 죽긴 억수로 죽은 모양이드만요. 추석, 설 빼놓고 최씨문중에서 젤 큰 행사가 7월 하순에 드는 합동제산디, 그 구경거리가 참말로 볼만허드랑께요”
“……”
영감은 눈을 꼭 감은 채 담배만 깊이깊이 빨아들이고 있었다.
“세도깨나 부리던 최씨네가 난리가 나는 바람에 하루 아침에 상것들 손에 잽혀 파리목숨이 되얐으니, 그 한이 풀릴 리가 웂잖겄소? 그 난리통에 상것들 안 날친 디가 웂었는 모양이제만. 여그 최씨 문중 동네에서는 유별났드람서요? 영감님은 그때 그 징헌 굿을 보셨습디여?”
“아니, 아니여……”
영감은 담배를 부벼끄며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그때 워디서 살았읍디여?”
주인이 영감의 얼굴을 지그시 들여다 보듯 하며 물었다.
“난리 전에 일찌감치 여그럴 떠나부렀소. 그렁께 난리통에 일어난 일은 암것도 모르겄소”
영감은 잘라 말했다.
“참 볼만헌 굿이었능갑든디. 영감님은 존 귀경거리 놓쳤구만이라”
주인은 그때의 이야기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고 은근히 기대를 했던 모양이고, 그 기대가 깨져서 그러는지 실망하는 눈치였다.
“존 귀경거리는 무신 존 귀경거리였겄소. 사람 쥑이고 죽는 꼴 잘못 봤다 허면 평생 병 되는 법인디”
“그러도 그러시 워디 예사 귀경거리간디요? 상것덜 날치는 꼬라지가 을매나 가관이었겄소. 참 볼만혔을 것이요”
영감은 더 이상 대꾸를 하고 싶지 않았다. 말끝마다 상것들, 상것들하는 말이 몹시 신경에 거슬렸지만 탓하지 말자고 했다. 이 사람이 무엇으로 알랴 싶었던 것이다. 마흔으로 잡아도 열살 적 일이고, 서른다섯으로 잡으면 다섯 살 적 일인 것이다. 이 사람은 그때의 죽이고 죽던 참혹한 일을 멀고 먼 옛날 이야기를 재미있어 하고 있을 뿐이었다. 30년의 세월은 그런 것이었다.
“잘 묵었소. 나 이만 가봐야 쓰겄소”
영감은 힘겨웁게 일어섰다.
“날이 까빡 어두어져뿌렀는디 괜찮을께라?”
“다 아는 길잉께로……”
영감은 술기운 탓인지, 기운이 없어서 그런지 휘청거리며 마당을 가로질러 갔다.
“어둔디 조심허씨요이”
다 헐어빠진 가방을 옆구리에 꼭 낀 채 휘청휘청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영감을 향해 주인은 소리쳤다.
영감의 시체가 다리 아래쯤에서 발견된 것은 다음날 오전이었다. 다 헐어빠진 가방을 앞가슴에 꼭 껴안은 채로 굳어진 영감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찰이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소지품을 다 뒤졌다. 그러나 가방에서 나온 것은 몇 푼의 돈과 정종 병 하나였다. 그 정종 병에는 술이 반쯤 남아 있었다.
그대로 시체를 처리할 수 없게 된 경찰에서는 꼬박 하룻동안 시체를 길가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보게 했다. 그러나 영감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강에 사람이 빠져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속에 주막집 주인도 끼어 있었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다음 순간 침착해졌다. 괜히 아는 체했다가 경찰서로 불려다니는 귀찮은 일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어젯밤에 투신했다고 가정한다면 아마 저 위쪽의 옛날 나루터쯤이 투신장소가 될 거야. 그래서 밤 사이에 여기까지 떠내롱 거고. 그렇게 사건조서를 꾸며서 처리하도록”
사복한 남자가 지시했고,
“알겠습니다, 반장님”
정복을 입은 경찰이 거수경례를 붙였다. 그리고 둘둘 말려 있던 거적을 쫙 펴더니 시체 머리에서부터 아래로 덮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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