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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편소설3

71. 육교 위에서

by 자한형 2022.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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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陸橋) 위에서 -조세희

 

신애는 시내 중심가를 걸으며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녀가 볼 수 있는 것은 사람, 건물, 자동차뿐이었다. 거리에서는 기름타는 냄새, 사람 냄새, 고무 타는 냄새가 났다. 잠시 서서 주위를 둘러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인도에 사람들이 넘치고, 차도에 자동차들이 넘쳤다. 몸둘 곳이 없었다. 단 몇 초 동안이라도 걸음을 멈추고 우울을 달랠 곳이 없었다.

병원에 가는 길이었다, 밑의 동생이 입원을 했다. 아직 마흔도 안 된 나이인데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했다 동생은 내과 의사들만 찾아다녔다. 위가 나빠져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의사들을 찾아다녀도 동생의 병은 좀처럼 낫지 않았다. 육십 삼 킬로그램이었던 몸무게가 오십 일 킬로그램으로 줄었다. 신애의 남편이 동생을 정신과 의사에게 데리고 갔다. 동생을 본 의사들이 입원할 것을 권했다. 다행히 의사 한 사람이 동생의 대학 동기였다. 동생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신애는 동생이 믿을 수 있는 의사를 만나 마음이 놓였다.

동생의 몸은 많이 좋아졌다.

신애는 가파른 육교의 층계를 올랐다. 그 육교를 지나다 말고 신애는 섰다. 사람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옆쪽으로 붙어 서며 난간을 꽈 잡았다. 동생의 친구가 나가는 직장의 건물이 보였다. 제일 친했던 친구이다. 신애는 동생과 동생 친구의 기질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의 기질은 너무나 같았다. 신애가 어렸을 때 떠받든 우상은 한 사람의 전제 에 대항한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이었다. 열 살의 차이가 있다 해도, 동생이 자랄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동생 또래들은 불행한 대학 생활을 땠다. 대학은 툭하면 문을 닫았다. 그러니 어둑어둑해지는 마지막 시간에. 이제는 고전이 되어 버렸지만, 프랑스 혁명을 유발시킨 이유로 세제를 들고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교수의 등을 대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 동생과 동생 친구는 골방에서 다른 아이들이 골치가 아프다고 안 읽는 책도 읽고, 담배를 빡빡 빨아대며 입씨름도 했다.

두 사람에게 이 사회는 괴물덩어리였다. 그것도 무서운 힘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괴물덩어리였다, 동생과 동생의 친구는 저희 스스로를 물위에 떠 있는 기름으로 보았다. 기름은 물에 섞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비유도 합당한 것은 못 된다. 정말 무서운 것은 두 사람이 인정하든 안 하든 하나의 큰 덩어리에 묻혀 굴러간다는 사실이었다.

동생은 그날 오후 이 순신 장군의 동상이 보이는 시민회관 앞 나무의자에 앓아 있었다. 동생은 네 번째 나무의자에 앓아 친구를 기다렸다. 나무의자들 앞에는 열 다섯 개의 공중전화 박스가 있었다. 알루미늄 틀에 폴리에틸린 문을 해 단 열 다섯 개의 박스는 703번에서 시작해 717번으로 끝났다. 동생은 712번 박스로 들어가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아직 멀었니?"

동생이 물었다.

친구는 몇 초 동안 말이 없었다.

"왜 그래?"

"나갈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 아직 퇴근을 할 수 없다면 천천히 나와도 돼. 바쁘다면 다음에 만나든지."

"거기 그대로 있어, 오늘 널 만나야겠어."

"그럼 기다릴께."

"기다려."

친구가 전화를 끊었다. 동생은 712번 박스에서 나왔다. 나오면서 동생은 어쩌다가 이 숨막히는 도시의 무거운 하늘을 떠받치고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보았을까. 동생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영악한 후세들이 장군을 배기 개스 속에 세워놓고 고문했다. 동생은 네 번째 나무 의자로 돌아가 기다렸다.

친구는 토요일 오후의 인파에 싸여 밀려왔다. 친구는 동생 옆자리에 앉았다 언뜻 보기에 둘은 서로 모르는 사람이었다. 둘은 아직 대학에서 공부하던 때 이런 자세를 취했던 적이 있다. 그때도 동생과 동생의 친구는 교수회관 앞 나무의자에 모르는 사람처럼 앓아 있었다. 학생들의 의사를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데모가 잘 훈련된 조직과 새로운 진압 기계에 의해 억압받기 시작한 때였다. 편리한 머리들이 잊어버려서 그렇지 우리에게 그런 시기가 있었다. 그것을 넘겨 버렸다. 반대 의사를 가진 사람들의 입은 봉해졌다. 그때 동생과 동생의 친구는 생각이 같은 학생들과 만나 자주 이야기했다. 그들은 그들의 생각을 글로 써서 학교 신문에 싣기로 했었다. 동생과 동생의 친구가 글을 썼다.

그러나 밤을 새워 쓴 원고는 주간의 손에 의해 되돌려졌다. 그는 이따위 글을 신문에 싣는 것은 무서운 죄악이며 설사 실어 준다고 해도 이 원고를 쓴 사람은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수였다.

도대체 자네들이 원하는 게 뭔가?"

그가 대뜸 물었다.

"원하는 게 뭐야? 말을 해 봐."

"저희 글을 보셨잖습니까?"

동생이 말했다.

"시끄러워?"

주간이 책상을 쳤다.

"너희들이 다시 혼란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을 알고 있어, 질서가 잡힐 만하니까 또 시작이야."

"그 말씀은 틀렸습니다."

친구가 말했다.

"틀려?"

"틀렸습니다."

"어째서?"

"시작이 아닙니다. 끝이 나지 않았어요."

."

뜻밖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무슨 말을 또 꾸몄나?"

낮은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둘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낮은 목소리 앞에서 젊은이들은 약간 당황했다. 말이 없자 어른은 다시 소리쳤다,

"혼란야?"

아주 큰 목소리였다.

"너희들이 원하는 건 혼란일 뿐이야. 너희 자신이 대학 문을 걸어 잠그고 있어."

"그건 사실입니다."

동생이 말했다.

교수는 동생을 쳐다만 보았다.

"그들이 못 들어오게 우리가 문을 닫으려고 했습니다."

"그 얘기가 아냐."

"우리는 보초를 세울 수 없었습니다."

"나가!"

그가 소리쳤다.

"원고를 주십시오."

동생의 친구가 말했다.

"안 돼."

그가 말했다.

"이 따위 글을 쓰게 된 동기를 말하기 전엔 줄 수가 없어."

"저희들은 반대 의견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친구가 말하자,

"자넨?"

동생에게 물었다.

"같은 생각입니다."

동생이 말했다.

"아냐."

그가 원고를 가리켰다.

"불온한 글이야. 그런 줄 알고 썼지?"

"온순한 글은 어떤 글입니까?"

"알고 썼지?"

"저희들은 반대 의견을 말할 수 없는 나라는 재난의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누가 반대 의견을 말할 수 없다고 했나?"

"선생님께선 그걸 알고 계십니다."

그는 잠깐 동안 말하지 않았다.

그는 원고를 밀어놓으며 말했다.

"우리가 이야기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하나도 얼어.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건 우리가 아냐. 그런 사람들은 따로 있어. 이 원고는 원하니까 돌려주는데, 싣지 못하게 했다고 나를 원망하면 안 돼. 내가 자네들에게서 받아야 할 것은 원망이 아니라 감사의 말야. 이런 글을 실어서 이로울 것은 하나도 없어. . 가져가라구."

"가자."

친구가 말했다.

밖으로 나온 동생과 동생의 친구는 만신창이가 된 원고, 색연필로 죽죽 뭉개진 자신들의 생각을 다시 읽어보며 슬퍼했다. 신애도 그 글을 읽어보았다. 대단한 글은 못 되었다. 신애는 그 글을 읽으며 몇 번 속으로 웃었다. 동생과 동생의 친구는 원고지 스무 장 안팎의 글 속에 그들이 알고 있는 것 전부를 털어놓으려고 했다.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나타나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주간은 색연필로 죽죽 줄들을 쳤다,

-보이지 않는 힘이 평화로군 변화를 방해하고 있다-는 부분은 얼마나 세게 그었는지, 몇 장의 원고지가 눌려 찢어지기까지 했다. 살기가 그의 손끝까지 내려와 있었던 게 분명했다. 동생과 동생의 친구는 무서운 분노를 눌러 가며 여학생 회관으로 달려갔다.

둘은 여학생회의 등사판을 빌어 가지고 신애네 집에 와 밤을 새웠다. 무슨 비밀 일을 하듯 마루 밑 지하실에서 일했다. 연탄이 쌓여 있는 한 쪽 구석, 백열 전등 아래서 등사 로울러를 밀었다. 다음날 아침, 둘은 밥도 안 먹고 나갔다. 한 뭉텅이씩의 등사판 신문을 그들은 가지고 나갔다. 그것을 학생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학생들은 몸을 움추리며 종종 걸음을 쳤다.

."

둘이 모르게 주간이 옆쪽에 와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나는 그 원고를 자네들 손으로 없애 버리길 바랐어. 그런데 이제 와 서 나의 뒤를 치는구만. 다른 말은 않겠어. 하지만, 아이들 생각이 달라졌다는 걸 알아야지. 자네들의 이 딱딱하고 재미없는 등사판 글을 읽어 줄 학생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지난 데모 때처럼 자네들을 따라 줄 것 같아? , 이 등사판 글을 읽겠다고 오는 학생들이 없잖아. 집어치우고 강의실로 돌아가라구. 사태를 좀 정확히 판단해. 내일부터 저번 데모로 연기했던 시험을 친다구. 싸움에는 적이 있어야 돼. 도대체 자네들의 적은 누구인가? 햇빛 줄기인가? 별빛 줄기인가? 아니면 그림잔가?

"아닙니다."

친구가 말했다.

"아니겠지."

그가 말했다,

"우리 자신입니다."

동생이 말했다.

그는 웃었다.

"이쯤 해."

그가 말했다.

"이쯤 하고 이웃집을 넘겨다보라구."

이것은 확실히 위선적인 인간의 말이었다. 그러나 그가 정확히 본 것이 있었다. 같은 생각을 갖고 자주 만나 이야기한 학생들도 그때는 이미 둘의 편이 아니었다. 이때의 둘을 생각하면 신애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큰 소리로 구호를 외쳐대던 아이들이 군에 들어간 뒤였다. 몇 개의 법도 새로 만들어졌다. 아이들은 캠퍼스 안에서 포우커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카아드 놀이의 재미를 뒤늦게 알았다. 동생과 동생의 친구는 엉뚱한 때 엉뚱한 곳에 서 있었다. 둘만 남은 것 같았다. 동생과 동생의 친구는 어떤 희망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주간의 관찰은 정확했다. 그러나 그 정확이 옳은 것은 아니었다. 동생과 동생의 친구는 그 날 아침 그의 위선적인 말을 들은 뒤 밤새워 민 등사판 신문을 옆구리에 낀 채 교수회관 앞 나무의자에 말없이 앓아 있었다. 신애가 보기에 둘은 이미 그때 어떤 상처를 입었다.

둘은 나무의자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동생과 동생의 친구는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에 대한 단정을 빨리, 아주 빨리 내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둘은 배도 고팠고, 또 졸립기도 했다. 그래도 동생과 동생의 친구는 저희들의 시대, 사회, 그리고 그 안에서의 저희들의 역할에 대해 생각했다. 동생과 동생의 친구는 그때 참 진지했었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이윽고 친구가 말했다.

"모두 한편이 돼 가고 있다."

"?"

동생이 물었다.

"그 까닭을 알아야 돼, 한편이 돼 가면서 마비 현상을 일으키고 있어."

"그거야, 마비."

동생이 말했다. 동생은 친구의 생각에 동의했다. 목소리는 작아졌고 눈빛은 흐려졌다.

"박쥐가 온다."

친구가 말했다,

친구는 주간을 박쥐라고 불렀다. 그의 할아버지는 일본의 한국 지배를 위해 일했다. 그의 아버지가 한 일도 비슷한 것이었다. 도서관에 가면 지금도 그의 아버지가 쓴 -인간 이기붕-이라는 글을 지난 신문에서 읽을 두 있다. 그는 한 학생과 이야기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벌써 전에 둘에게 등을 돌린 학생이었다. 동생과 동생의 친구는 뒤늦게 둘만 남았다는 것을 알았다. 목소리가 유난히 컸던 친구들은 모두 군에 갔다. 동생과 동생의 친구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언뜻 보기에 서로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 순신 장군의 동상이 보이는 거리의 나무의자에 앓아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얼마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토요일 오후의 인파가 동생과 동생 친구 옆으로 흘러넘쳤다. 나무의자들 앞쪽, 공중전화 박스도 전부 사람들로 메워졌다. 둘의 기분은 아주 우울했다. 즐거울 일이 없었다.

둘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어떤 치명적인 질병에 걸려 헤어나지 못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날 친구는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나는 혐 박과 유혹을 받고 있다."

그의 표정은 굳어져 있었다. 얼굴을 들 때는 지나치게 심각해 보였다.

"왜 그래?"

동생 이 물었다. 친구는 바짝 다가앉으며 말했다.

"박쥐 때문야,"

"박쥐라니?"

"벌써 잊었니?"

동생은 소스라치듯 물었다.

"그는 대학에 있잖아?"

"그가 나를 협박하고 있어."

"어더서?"

"신문을 봐야 알지, 그가 우두머리가 돼 왔어."

"빌어먹을!"

동생이 소리쳤다.

전화 차례를 기다리던 몇 사람이 둘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이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돌렸다

"사실, 놀랄 일은 아닌데."

동생도 친구의 얼굴을 닳아 가며 말했다.

"그다운 결정 아냐?"

"물론 그래."

"그런데 네가 그에게서 받는 협박은 어떤 거야?"

"나를 자기와 가까운 자리에 앉히겠다는 거야."

침울한 목소리였다. 동생은 할말을 잃었다. 친구가 이야기를 했다.

"그가 나를 불렀을 때 나는 참을 수가 없었어. 과장이 오히려 놀라와하며 급히 가보라고 해 나는 그의 방으로 갔었지. 다들 부러워하는 눈치였어. 그런데도 나는 붉은 카아핏이 갈려 있는 그의 방, 바로 그 앞에서 다음 문은 더욱 굳게 닫히고, 하늘처럼 높아야 할 제일 우두머리는 위선적인 인간, 기회주의자, 그리고 우리를 짓밟은 끄나불이라는 생각밖에는 할 수가 없었어. 그는 웃고 있었어. 나의 손을 잡아 흔들면서 말야. -지난 얘기지만 나는 대학에 있을 때부터 자네가 훌륭한 젊은이라는 점을 인정했었지. 물론 자네의 약점이 어떤 건지도 잘 알고 있었지만. 지난 이야기는 그만하구, 다음 주부터 이 옆방으로 와 일해 주게- 알겠니? 그러면 자기가 나를 끌어 주겠다는 거야."

이때의 친구는 아주 짧은 동안 동생이 처음 보는 표정을 지었다.

"간단히 말해 한편이 되자는 거야."

하고 동생의 친구는 말했다.

"그는 너의 이용 가치를 생각한 거다."

이번에는 동생이 말했다.

"학교에서 우리를 괴롭힌 인간이 밖에서 달라져야 될 까닭은 없잖아?"

"없지."

"그는 너에게서 윌 원하는 걸까?"

그야 충성이지. 자기가 못 갖고 있는 것을 내가 갖고 있다고 믿었을지도 모를 테구."

"하지만, 난 이해할 수가 없다."

동생은 말했다.

"그의 말이 이제 와서 왜 유혹으로 느껴질까? 협박이라는 말도 우습지만 유혹이라는 말은 더욱 이상하지 않아? 그런 게 유혹으로 느껴진다면 지금까지의 너는 뭐였니 ? 지난 얘기지만 앞에 나서서 소리칠 필요도 없었고, 숨어 다닐 필요도 없었고. 밤새워 등사판을 밀 필요도 없었잖아, 너는 앞 대의 사람들은 그들의 부정과 부의 심한 편중을 가리기 위해 맑은 정신을 흐리게 하는 허황되고 또 위선적인 희망을 내세우지는 않았다고 썼었어. 너는 아무리 살기 좋은 사회가 이뤄진다고 해도 다음 대를 위해 비판과 저항은 끌지 말아야 된다고 썼었지, 너는 정작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가난이 아니라고 말해 왔어. 그런데. 알 수 없는 일 아냐? 도대체 네가 말하는 유혹은 어떤 거냐?"

그러나 이미 늦었었다. 토요일 오후의 인파는 점점 불었다, 앓아 있는 자리에서 동생은 숨이 막혔다. 동생은 졸랐다. 동생은 친구를 믿었다.

"이상한 일야."

무거운 목소리로 친구가 말했다.

"나는 내 생각들을 바로 펴 보지도 못하고 시들어 가는 것 같아."

"안 되겠다."

동생이 벌떡 일어섰다.

"이런 데 앓아서 이야기를 시작한 때문야. 자리를 옮기자."

"내가 마비 현상 운운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니?"

"그래. 너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런 설마 하는 사람들이 있겄어. "

"누구에게나 잘 듣는 생화학제가 필요해, 그걸 우리가 만들어야 돼 "

하지만, 불안한 일 뿐야. 견딜 수가 없어. 나는 이미 박쥐가 오기 전부터 직장 동료들로부터 협박을 받아 왔어. 앞으로의 처신 문제가 나를 불안하게 해. 이것이 내가 개인으로 갖는 가장 큰 불안이야."

신애에게 이때의 둘은 아직도 아이들이었다. 둘은 그날 인파에 묻텨 지하도로 내려섰다. 그곳을 빠져 나와 무교동으로 들어섰다. 거기서 술을 마셨다. 아주 많이 마셨다. 사람들이 많았다. 동생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둘이 싫어하는 사람들은 술집만은 점령하지 않았다. 둘에게는 마지 막 숨통이었다.

"나는 용서할 수가 없다!"

친구는 말했다..

"모두, 한치 앞도 못 보고 끌려가는 이 마비 속에서 뻗어 버려라!"

신애가 보기에 동생과 동생의 친구는 너무나 닮은 선천적인 기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육교의 난간을 잡은 채 신애는 생각했다. 누가 동생의 친구를 죽였을까?

동생의 친구는 변해 버렸다. 처음에는 기진해 쓰러진 것이라고 동생은 말했었다. 그러나 동생은 오랫동안 친구를 만날 수 없었다. 만나야 이제는 할 이야기도 별로 없다. 동생의 친구는 둘에게 첫 번째의 상처를 입혔던 그 사람 옆방으로 가 일하고 있다. 친구는 애써 잃어버린 희망을 찾지 않기로 했을 것이다. 그 친구는 냉난방 시설을 갖춘 큰집에 없는 게 없이 해 놓고 산다. 몇 개의 낙원 중의 하나를 보는 것 같다.

친구의 낙원은 언제나 따뜻하다. 비싼 그림도 사다 걸었다. 곧 아내와 아이들을 위한 승용차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신애는 행복이라는 말을 빼어 놓는다. 아이들은 너무 빨리 늙어 죽는다. 마비 속에서, 신애는 육교의 층계를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동생의 친구는 정말 그가 술집에서 말했던 대로 용서하지 않았다.

동생은 병실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간호원이 나가면서 손을 입에 대었다. 동생 머리맡에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아내가 갖다 놓은 것이다. 동생의 아이들이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사람을 제일 약하게 하는 것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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