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단편소설3

88. 젖은 것들은 모두 따뜻하다.

by 자한형 2022. 5. 29.
728x90

젖은 것들은 모두 따뜻하다 -김 봉 순

고스란히 모여 있는 햇볕이 아까워 순간 웃옷을 훌렁 벗는다. 옷을 벗는 것만으로 성이 차지 않아 치마도 내린다. 지난 생일에 딸년이 사준 내복까지 벗고 팬티만 걸치곤 햇볕 더미에 들어가 등을 내민다. 개미가 기어오르듯 등짝이 자글자글 간질거린다. 너무 간지러워 어깨를 들썩이며 그만 까르르웃음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온다.

잘 여문 볍씨 같은 햇볕이 거실 바닥에서 애벌레처럼 곰지락거린다. 나는 두 손을 쭉 뻗어 햇볕 속으로 밀어 넣는다. 손등이 간지러워 맞대고 천천히 비벼본다. 김치전을 부치듯 손바닥을 햇볕 속에서 번갈아 뒤집어 본다. 엉덩이를 들썩거려 햇볕 안으로 옴팡 들어가 앉는다. 얼굴이며 가슴이 따뜻하다. 창문을 통해 거실 바닥으로 햇볕이 마구 쏟아져 들어와 내 곁에 앉는다.

손을 뻗어 등을 긁는다. 따뜻함을 너머 뜨거움이 등짝을 거쳐 목과 엉덩이까지 고루 퍼진다. 나는 한 톨도 놓치기 싫어 손바닥으로 햇볕을 거실 바닥에 자꾸 쓸어 모은다. 온몸이 붕어빵처럼 노릇노릇 익어가는 것 같아 스르르 눈이 감긴다.

햇볕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따스한 햇볕이 사라지기 전, 발이라도 한번 들이 밀어보라고 며느리를 부르려다 잠깐 멈칫한다. 주방근처 식탁의자에 앉은 며느리는 아까부터 내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나 보다. 며느리가 긴 한숨을 쉬며 안방으로 사라진다.

소한을 앞두고 바깥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멀리서 한 무리의 아이들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린다. 방학은 이미 했을 것이고 학원이나 다녀오는 모양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자기만한 햇볕 크기가 손수건만큼 시나브로 작아진다. 나는 햇볕이 움직이는 쪽으로 다시 자리를 옮긴다. 베란다 창틈으로 뻗어 나오는 햇빛 때문에 거실 먼지들이 살아 한꺼번에 바삐 움직인다. 그 먼지를 움켜잡으려 자꾸만 헛손질을 한다. 그런 다음 손바닥을 펴고 천천히 들여다본다. 손바닥엔 아무것도 없고 한 때 선명했던 손금이 실핏줄처럼 꼬불꼬불 지나간다.

동지가 지나면서 낮의 길이가 길어졌다는 게 확연히 느껴진다. 난로 불을 쬐듯 그 햇볕 속에 손바닥을 다시 펼친다. 손바닥이 조금 따뜻하게 느껴진다. 데워진 그 손으로 마른세수를 한다. 도마에 뭔가를 썰다말고 며느리가 내 행동을 또 주시하는지, 앙칼진 부엌칼 소리가 불규칙하게 들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한참동안 마른세수를 한다. 아무리 늙었기로서니 요즘 내 피부가 말이 아니다. 어젯밤에도 에센스마스크 팩을 붙이고 잠자리에 들었다. 중간에 아들놈이 방문을 열어보며 뭐라고 혼자 중얼댔으나 나는 자는 척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었다.

멀리 고층빌딩이 올라간다. 손바닥으로 채양을 만들어 이마에 붙이고 밖을 내다본다. 공사가 진행됨에 따라 산허리가 조금씩 빌딩 숲으로 사라진다. 건물들이 산을 송두리째 집어 삼키며 위로만 뻗어간다.

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다. 따뜻한 봄날 그이 손잡고 앞산으로 나란히 데이트 가려 한다. 들에 나가 달래랑 쑥이랑 캐며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그런 봄노래도 불러 주려 혼자 흥얼거리며 간간히 연습중이다. 베란다로 나가 바깥 창문에 이마를 붙이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저 밑에 누군가 바삐 걸어오는 남자가 보인다. 아들놈 걸음걸이다. 그 애 걸음걸이는 멀리서 봐도 쉽게 눈에 띤다. 내 아들이라서 나는 금방 알 수 있다.

연일 동장군이 맹위를 떨친다. 어렸을 적 학교에서 배우기를, 대체로 우리나라 겨울철 날씨는 삼한사온이라고 했다. 그런데 요사이 젊은 사람들은 계속되는 한파를 빗대어 삼한사한이라고 떠든다. 요즘 사람들 얘기하는 것이 기발한 것 같아 웃음이 나온다. 이상기온이 이젠 재앙수준이다.

어느 나라에서는 폭설로 온 도시가 마비되었고 또 어떤 지역에서는 홍수로 인해 많은 이재민이 생겼다는 뉴스가 텔레비전으로 방영된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많은 눈과 물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우리 집 거실로 한꺼번에 쏟아질 것 같아 급히 채널을 돌린다. 지구촌 곳곳이 변덕스런 일기로 몸살을 앓는다. 지구도 내 몸처럼 늙어 이젠 폐기처분해야 하지 않을까. 아직 내 피는 식지 않았는데, 어느 시인은 마흔이 되면서 피가 식었다고 고백했는데 그건 말짱 헛소리 같다.

띠띠띠도어록 소리가 들린다. 아들이 들어오나 보다. 뭘 하는지 며느리는 아직도 주방에서 달그락거린다. 저녁 먹을 때가 되었다고 내 배꼽시계가 요동한다. 그렇다고 주방에 들어가 서성대면 노인네 먹는 것만 밝힌다 할까봐 초조한 마음으로 조신하게 참고 있다. 늙으면 여러모로 조심해야 하는 게 많은 법이다.

아들은 나를 한번 쓱 쳐다보고는 곧 바로 안방으로 직행한다. 나는 벽을 짚고 일어서 허리를 열 댓 번 돌리는 것으로 저녁운동을 시작한다. 그런 다음 에그쉐이크를 쥐고 번갈아 손 운동을 한다. 지난 가을 병원 갔을 때 의사는 열심히 손 운동을 하라고 에그쉐이크를 권했다. 양 손에 하나씩 쥐고 흔들다가 볼에 대고 문지르다가 가끔 입으로 가져가 이에 대고 톡톡, 쳐 본다. 마치 날계란을 깨뜨리듯.

그동안 먹지 않고 숨겨놓은 약봉지를 들고 베란다 창문을 조심스럽게 밀어본다. 전에는 쓰레기통에 약봉지를 몰래 버렸다가 며느리에게 지청구를 들었다.

낮잠을 자는 게 아닌데,

영 잠이 오지 않는다. 초저녁잠을 놓치면 그만 새벽까지 뜬눈으로 지샌다. 한밤중 한손으로 침대 난간을 짚고서 몸을 천천히 일으킨다. 말린 고사리를 펴듯 조심스럽게 허리를 펴본다. 이 나이에 허리라도 삐끗하면 끝장이다. 몇 시나 되었을까. 문갑 위 아날로그시계가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어둠 속, 창문 틈으로 가로등 불빛이 직선으로 뻗어 방을 가른다. 인기척이 없다. 난감하다. 초저녁잠을 놓친 기분이 흡사 연인을 떠나보낸 것처럼 헛헛하다. 연인이라, 그래 내게도 애인이 있었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과거시제니까 현재시제로 있다, 라고 말해야 옳다. 그래 있다. 내게도 사랑이, 사랑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당신뿐이라오.

함중아가 불렀던가.

내 몸에 이상 징후가 보인 건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남편을 멀리 떠나보내고도 멀쩡했다. 그런데 재작년 겨울, 빙판위에서 꽈당 넘어진 다음 기억력도 같이 넘어져 어디론지 사라진 것처럼 머릿속이 띵하다. 배고픈 짐승처럼 뱃속을 채우려 노력하면 할수록 더 갈급했으며 여전히 허전했다.

휴대폰을 세탁기에 같이 넣고 돌리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그러는 모양이니까. 업은 아기 삼년 찾는다더니, 손에 들고도 못 찾는 물건으로 인해 머리를 벽에 찍으며 한동안 괴로워했다. 가스 불에 국 냄비 올려놓고 어디론가 외출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심지어 바로 옆 지하도를 못 찾아 팔차선 차도로 뛰어 들어가 무단횡단하기까지, 아니 이러고도 인간으로서 그 최소한의 권위와 존재감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자신이 비루하게 보일 때, 나는 보았다.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신기루를!

베란다 너머로 펼쳐진 붉은 양탄자. 유명한 영화제를 볼 때마다 배우라면 누구나 한번쯤 밟고 싶어 하는 그 빨강의 유혹. 그 양탄자가 나를 보고 튀어오라며 윙크를 보냈다. 나는 펄쩍 그곳으로 점프하고 싶었다. 뛰어 내려면 붉은 양탄자가 나를 얼른 감싸 안고 멋진 신세계로 데려다 줄 것 같은 환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만화영화 주인공이 양탄자를 타고 온 세계를 날아다니며 구경하는 게 갑자기 생각났다. 그래 당장 떠나는 거야! 순간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베란다 난간을 꽉 잡고 조심스럽게 한 발을 밖으로 내디뎠던가. 눈을 감은 채 발가락의 감각만으로 난간 이곳저곳을 더듬었다.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요가 할 때 들었던 소리와 닮았던 그 멜로디가 오감을 자극했다. 음악에 취한 나는 나머지 발까지 베란다 난간에 막 올리려던 차, 먼 태고 적 아프리카 정글에서나 들려옴직한 요란스런 북소리가 내 심장을 마구 두드렸다.

깊은 내면의 평화가 온몸을 적시듯 사위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제 나는 내 몸에 붙어있는 문어 빨대 같은 손과 발을 동시에 떼며 점프를 하는 거다. , 이제 하나 두울 세,

그런데!

하필 그날, 출장 다녀오던 아들이 지어미네 잠깐 들러본다고 다가오고 있었다.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 무심코 올려다본, 지어미가 기거하는 9층 베란다에 웬 빨래가 나부끼나? 처음엔 저게 뭔가 하여 유심히 올려다봤단다. 결국 그런 내 모습에 기겁하여 아들은 괴성도 지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서 발만 동동거렸고, 순간 웅성거림에 놀란 나는 베란다 안쪽으로도 바깥으로도 가지 못한 채 엉거주춤 그 자리에 매미처럼 붙어있었다.

이어 경비원이 쫓아오고, 확성기의 고함소리에 온 아파트 사람들이 베란다 창문을 열고 무슨 일인가 기린처럼 목을 빼고 나를 바라봤다. 확성기에선 진정하라는 멘트가 흘러 나왔던가. 아무튼 놀란 나는 난간에 매달린 채 그대로 눈을 꼭 감아버렸다.

그때 내 팔을 누가 억세게 잡아 이끌었나? 베란다 난간에 팔과 허벅지가 긁히든 말든, 인정사정없이 나를 잡아 이끈 놈이 아들놈인지 경비인지. 강제로 끌려 가다시피한 병원에서 나는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며, 여기저기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온 몸에 시퍼런 멍이 들었음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늙은이 몸속에 아직도 터질 실핏줄이 이렇게 많이 남아있었나.

나쁜 소문으로 우리 아파트 시세 떨어뜨릴 일 있냐며 수군대는 젊은 여자부터, 자식들이 얼마나 무심했으면 그런 생각까지 했느냐며 혀를 차는 노인네들, 자식 생매장시킬 일 있냐며 내 어깻죽지를 잡고 흔들며 하소연하는 아들놈까지. 그 다음부턴 내 의지껏 살도록 날 내버려 두지 않았다. 우리 아파트 단지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9층 할머니, 누구 앞길 막을 일 있슈? 그렇잖아도 좀 있으면 인사철인데 아들놈은 눈을 부라리며 또 다시 흥분했다. 한때 친한 여고 동창생인, 지 올케와 사이가 틀어져 오가지도 않던 딸년은 울며불며 지 오빠부부의 무심함을 원망했다. 나는 일언지하에 딸의 입을 막아버렸다.

- 시끄럿 년아!

젠장, 네년이나 니 시부모한테 잘해, 라는 말은 속으로 삭혔다.

마누라 없는 늙은 남자는 고독이 몸부림치기에 수명이 단축된다고 하지만, 늙은 여자에겐 남편 없는 게 오히려 편한 거라고 친구들은 나를 위로했다. 말이야 그럴싸하지만 난 그딴 거 별로 믿지 않는다.

믿진 않지만 어쨌든 이 나이에 남편 없는 게 솔직히 편하긴 하다. 시원찮은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판에 늙은 남편 수발까지는 더 힘들 것 같다. 어찌되었든 처음 만난 의사는 나를 천천히 살피며 혹시 모를 치매에 대해 몇 가지 검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렸다. 기억력과 언어능력, 집중력과 수행능력그리고 또 뭐라던가. 아무튼 이름도 생소한 여러 신경심리 검사가 필수적이라고 의사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검사 중간 중간 의사는 머리를 갸웃했다.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또 새날이 밝아온다.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고 얼굴을 쑥 내민다. 생기발랄한 아침 공기가 코끝에 매달린다. 아침 햇살은 언제나 물결처럼 아래로 내려가면서 밤의 그림자들을 천천히 벗겨가는 대신, 선명한 색깔의 나무나 건물 그리고 오가는 사람들을 지상으로 끌어 올린다. 나는 그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오랫동안 심호흡을 해본다. 바깥공기의 찬 기운이 나를 긴장시킨다.

왁자지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또 어디론지 종종걸음으로 사라진다. 두더지 같은 그들의 목에서 추위를 실감한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사람소리가 반가워 귀를 쫑긋 세운다. 거실로 나온 며느리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양손을 서로 엇갈려 가슴을 감싼다. 그러더니 내 허락도 없이 베란다 창문을 꽝 닫아버린다. 나는 내 몸을 샅샅이 만진다. 여기 지금 분명히 내가 서 있는데 유독 며느리 눈에만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인가? 온몸에 받은 아침 햇살의 기운을, 거실로 들어와 몽땅 토해내고 싶은 걸 간신히 억누른다. 늙으면 이렇듯 참아야 하는 일이 많은 법이다,

지난번 검진했던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나는 정성들여 화장은 한다. 의사는 나를 만날 때 꼭 한 가지 꼭꼭 짚어 칭찬한다. 주황색 루주를 발랐다가 한 겨울에 그 색이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다른 색으로 칠한다. 의사는 나를 보자마자 붉은 장밋빛깔의 루주가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나는 부끄러워서 한참동안 고개도 못 든다. 의사는 컴퓨터와 나를 번갈아 보며 몇 번이나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나는 행복해서 속으로 웃는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의사의 손이 깨끗하고 단아해서 마치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베르니니의 조각품 같다. 한참 후에 입을 뗀 의사는 치매 초기단계인, 경도인지장애 쪽에 가깝다고 조심스럽게 알려준다. 이어 지켜야 할 규칙들을 차근차근 얘기한다. 지금부터라도 잘 관리하면 별 문제 없습니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균형 잡힌 식사는 기본이고,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긍정적인 생각은 물론이구요. 나는 고개를 외로 꼬며 미소 짓는다. 그것은 평소 내 라이프 스타일인데, 이 양반 진짜 의사 맞아?

제기랄, 그 말은 나도 하겠다. 의사들이 가장 만만하게 하는 말, 긍정적으로 살라 혹은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것, 세상에 그런 곳이 어디 있나? 있다면 저 무덤 속이겠지. 하긴 나는 스트레스도 별로 받지 않는다.

낮잠을 잔 게 아닌데 잠이, 또 오지 않는다.

어찌되었든 반강제로 거처를 아들네로 옮겨오고 부턴 잠이 줄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내 자유가 방해받기 시작하면서, 생체리듬에 균열이 생긴 것 같다. 여태껏 나는 누구의 간섭 없이 내 집에서는 여왕처럼 지냈다. 졸리면 잤고 배고프면 먹었다. 찰밥이 먹고 싶을 땐 팥을 삶았고 수제비가 생각나면 반죽을 치댔다.

만나면 좋은 친구, 엠비시 문화방송 뿐만 아니라 많은 채널을 가진 텔레비전 리모컨은 항상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런데 아들네선 완전 군대식이다. 아침엔 천하없어도 집안 식구들과 다 함께 식사를 해야 하고 텔레비전도 아이들이 공부하거나 깊은 밤엔 시청금지다. 거실 소파에 무거운 머리라도 기댈라치면 며느리가 쫑알댄다. 주무시려면 방으로불쑥 누구라도 들이 닥치면, 대장은 며느리 나는 졸병이다.

방문을 열고 고양이처럼 살살 기어서 거실로 나온다. 이렇듯 밤에 불쑥 문 열고 거실로 나오지 말라고 아들놈한테 벌써 여러 번 주의를 받았지만 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판에, 아니 이 나이에 내가 지금 누구 눈치보고 살란 말인가.

희한하게 나는 환한 낮보다 어두컴컴한 밤이 더 좋다. 여러 색을 고이품고 있는 밤이면 모든 게 안정되어 보인다. 장롱도 침대도 식탁까지도 낮보다 밤에 더 포근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따금 깊은 밤, 잠이 깨면 장롱문도 열어보고 냉장고도 열어보고 주방 쪽 식탁의자에도 살짝 앉아본다. 늙은이 한밤중에 청승이라고 언젠가 며느리 구시렁댔지만 나는 끝내 모르쇠로 일관한다.

어두운 거실 창가에 서서 멀리 베란다 너머를 본다. 바로 저 앞 동, 불 켜진 저 집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나. 바로 그 옆집은 또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 갑자기 목울대가 덜거덕거림을 느낀다. 젊은 날 밤낮이 바뀐 아들 녀석을 안고 어르며 날밤을 하얗게 새우던 기억이 스멀거리며 올라온다.

불 켜진 창문 안에 어떤 아이가 잠자고 있을까. 혹 그 녀석도 우리 새끼처럼 예쁠까. 나 같은 엄마, 아마 그녀도 밤낮이 뒤바뀐 아이 재우느라 혼자 깨어 끙끙거리고 있는 걸까. 잘 자라 우리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별도 다들 자 · · · , 아니면 아직 들어오지 않은 남편을 기다리나, 밤의 상상은 의외의 희열을 가져다준다. 나는 그 재미를 오랫동안 만끽하며 거실 구석구석을 눈으로 더듬는다.

그런데, 어라?

거실 구석에서 뭔가의 움직임이 내 눈에 포착된다. 마치 먹을 것을 노려보는 파충류처럼 내 촉각이 예민해진다. 낮 동안 햇볕과 등을 마주한 거실 벽이다. 나는 그 자리에 엉거주춤 서서 물체를 주시한다. 물체 역시 나를 발견했는지 약간의 몸짓을 한다. 첫눈에 그라는 게 감지된다.

나는 선 채로 그대로 꼼짝하지 않는다. 그러다 천천히 한 발 한 발 옮겨 본다.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그가 내 얼굴을 외면하며 고개를 돌린다. 나는 그의 얼굴을 부드럽게 손으로 어루만진다. 그가 나를 또 다시 쳐다보다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외로 꼰다. 나는 속삭이듯 오빠, 라고 부른다. 누워있던 그가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려 한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싱긋 웃는다. 그가 한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일어나 앉는다. 나는 그가 쉽게 일어나도록 한쪽 어깨를 붙잡아 준다. 그가 다시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는 밤마다 거실에서 잠을 잔다.

며느리가 처음 내게 말했을 땐 건성으로 듣는 것처럼 굴었으나, 내 온몸의 촉수가 며느리 입을 향해 백 퍼센트 열려있음을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무래도 아빠를 저희 집으로 모셔 와야 할 것 같아. 엊그제도그 여자랑또 싸웠속상해 미치겠어, 어머님도 계신데, 어쩌죠? 어머님과 아빠, 사돈 간에 서로 불편하실,

중간에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는 며느리의 말, 똑똑한 우리며느리는 결국 할 말은,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다한다. 꼭 내 허락을 받는다기보다 그리 알라는 일방적인 통보다. 시어미인 내게 무슨 권한 있나, 매사 지 맘대로 하면서.

- 나야, 니 집인데 그래, 니 마음대로 하렴! 니가 고생이다.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며느리는 친정 새 엄마를 처음부터 그 여자로 표현했다. 애들도 듣는데 말렸으나 요지부동이다. 며느리의 친정아버지, 그러니까 사돈 영감이 며느리네 아니 아들네로 온 게 지난여름, 처서가 막 지날 무렵이다. 두 노인네가 있다지만 반찬을 특별히 신경 쓰는 것 같진 않았다.

언제나처럼 제 새끼들 위주로 햄 같은 인스턴트식품이 식탁 위에 자주 올라온다. 생선이라고 해봤자 누구 코에 붙이기도 거시기해서 나는 아예 그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 먹는 게 부실해서, 나는 괜히 그이한테 미안하기도 하다.

퇴원해서 내 집으로 가려했으나 나 역시 곧바로 가지 못한 이유야 간단하다. 수시로 병원 드나드는 일, 그건 별거 아니다. 다만 혼자 있을 때 지난번처럼 베란다 너머로 붉은색 양탄자가 펼쳐있다고 우기며 난간에 다리를 걸치고 점프하려는 것, 이 일이 또 다시 일어나지 말란 법 없다며, 아들네서 우선 몸이 회복될 때 까지만 있자고 한 게 벌써 여러 달이다. 그랬는데, 톨스토이 작품에 나오는 내용이었나?

불행은 연이어 등장한다는 말!

며느리 친정아버지 그러니까 내게는 바깥사돈이 되는, 그이가 사위인 내 아들네로 급작스레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일이 묘하게 얽혔다. 아니다, 따지기로 한다면 훨씬 전 어떤 예감이, 한 땐 인텔리였던 그였지만 노후가 좀 기구했다면 억지일까.

아들놈 혼사를 앞두고 두 집안이 처음 갖은 상견례 자리다. 그이를 처음 본 게. 화창한 봄날이었다. 밖에 아지랑이가 올라왔던가, 어디선가 귀에 익은 클래식음악이 간헐적으로 들리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소리가 그날따라 호텔 대리석 로비를 경쾌하게 울렸다.

뭔지 모를 상승곡선이 끝없이 그어지고 있던 날,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그 인상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어디서 봤더라? 순간, 한줄기 편린이 섬광처럼 내 머리를 지나쳤다. 그래, 여학교 때 짝사랑했던 그 선배!

시대가 시대인 만큼 서로 말은 아꼈지만 우린 알았다, 둘의 마음을. 아니 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먼발치에서만 서로 못 본 척 스쳤던 그가 대학마지막 여름방학에 친구들과 물놀이 갔던 후로 만나지 못했다. 익사했다는 소문이 무성했으나 나중에 들은 얘기론 같이 갔던 친구 중 한 명이 사고를 당했다는 얘기도 들렸고, 그로 인한 내 젊은 날의 절망은 고스란히 트라우마로 남았다. 조심스럽게 아들에게 물었으나 그저 평범한 회사원라고만 대답했다.

평범한 회사원이라!

벌써 십여 년 전 아니던가. 부인을 대동하고 나타난 사돈내외가 퍽 다정하게 느껴졌다. 남편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초면의 어색한 분위기를, 그의 유머 몇 마디가 녹였다. 유니크한 그의 자회색 양복과 폴카 닷 무늬의 깔끔한 타이가 유난히 어울렸던 기억이 난다.

자식들 혼례를 앞두고 오간 이야기야 대개 비슷하다. 그 집이나 우리나 첫 혼사라는 점에서 경험도 없고 어설프기는 마찬가지였다. 뭐든 허심탄회하게 얘길 나누면서 내가 하는 말이건 안사돈인, 그의 아내가 하는 얘기이건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 위인이 어떠한가는 먹는 음식이나 말씨를 보면 짐작한다고 친정어머니는 늘 말했다.

그의 인생사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겸손하고 절제된 이미지를 끝내 지울 수 없었다. 그때도 안사돈의 건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선가 레스토랑에 들어올 때나 나갈 때 늘 자기 아내를 부축했다. 날짜를 합의하고, 혼례 일까지 한두 달 남짓한 그 즈음, 나는 생뚱맞게 그가 등장하는 꿈을 자주 꾸었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깜짝 놀라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면서 나는 사춘기시절에나 있음직한 몽환적인 공상을 자주하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결혼식장이었다. 양가 서로 인사하며 잠깐의 안부를 묻는 사이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온몸과 얼굴이 달아올라 손님을 제대로 맞을 수 없게 된 나는, 오줌소태가 난 사람처럼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얼굴을 식혔다. 그때 친구가 다가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 , 느네 바깥사돈 말야 어디선가 본낯이.

의사와의 면담은 언제나 신이 난다.

그는 좋은 의사다. 내 의견을 늘 존중해 주니까. 그래서 그를 존경하기로 했다. 내 막내아들 뻘 되는 의사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자세로 임한다. 내가 작은 소리로 말하면 귀를 내 입 근처에 내주고 심각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러다 의사는 내 말소리와 함께 나오는 콧김에 귀가 간지럽다며 웃는다. 웃을 때마다 살짝 보이는 덧니가 매력 있다. 그런데 아들놈 표정은 의사와 다르다. 병원 다녀 올 때 마다 기분 묘하다며 잔소리한다.

- 어머니는 그 의사가 좋슈? 왠지 나만 왕따시키는 기분이 들어.

나는 외출복을 벗어 행거에 걸며 아들을 향해 눈을 흘긴다. 진료실에 아들과 함께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각각 따로 나온다. 아들이 먼저 나가고 한참 있다가 내가 나온다.

내가 혹여 젊은 의사와 연애라도 할까봐 아들의 눈이 예민하게 반짝이나? 진료실에 들어온 아들이 내 상황에 대해 좀 더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면 의사는 손을 들어 됐다고 말한다. 본인을 통해 직접 듣고 싶다나. 아들이 한 마디라도 거든다싶으면 진료실을 나가 밖에서 기다려 달라고 의사는 정중히 아들에게 부탁한다.

- 환자와 체크할 일이 많으니 협조해 주시겠습니까?

아들은 아마 그 협조, 라는 말에 그만 기가 죽어 찍소리 못하고 젊은 의사의 순한 양이 되는지 모르겠다.

- 그 의사새끼, 맘에 안 들어. 어딘지 응큼해 이참에 병원을 옮겨보는 건 어때요?

라고 아들이 말하자 나는 펄쩍 뛰며 야단친다.

- 니 의사니? 내 의사지. 그렇게 친절한 의산 대한민국에 없을 껄. 쓰잘때기 없는 소리 말고. 그럴 거면 따라오지 마라.

아들놈은, 의사 그 놈을 이젠 두둔까지 한다며 내게 짜증을 낸다. 아들은, 나와 의사와의 대화가 몹시 궁금한 모양이다.

- 도대체 어머니는 의사랑 무슨 얘길 그렇게 오래 나누세요?

어느 날인가 문틈에 귀를 대고 엿 듣다가 지나가는 간호사한테 들켰다며 너털웃음이다. 병원에 갈 때마다 애인 만나러 가는 것처럼 치장이 대단하다고 은근히 나를 떠본다.

- 젊은 의사한테 늙은이 냄새풍기면 실례잖아, 이눔아.

- 그 향순 어머니가 엄청 아끼는 거잖우? 그걸 마구 뿌려 대다니.

아들은 계속 깐죽거린다. 젊어서부터 사용했던 버버리 터치 포 우먼 오드퍼퓸을 나는 가장 아낀다. 그러거나 말거나 병원 갈 때면 흥분된다.

며느리의 생모 그러니까 사돈 영감의 부인이 죽은 건 며느리가 둘째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브레이크가 걸린 건 아내가 위중해지면서다. 직장생활의 꽃인 본부장 승진을 눈앞에 두고 그는 아픈 아내를 위해 모든 걸 내려놓았다. 어느 핸가 한적한 고향마을로 돌아갔다고, 아들이 전했다.

질풍노도와 같은 시대를 치열하게 견뎌온 그지만 정작 부인이 죽고 나자 마치 산송장처럼 빠르게 변해갔다. 초로에 접어든 그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져 가슴이 한동안 먹먹했다.

다른 여자가 그의 집에 들어오기까지 몇 년이 조용히 흘렀다. 가끔 딸네 오지만 기껏해야 이틀 밤도 보내지 않고 그냥 가 버리는 일로 며느리는 섭섭해 했다. 아들 내외가 부지런히 처가를 오갔던 건 그의 새 아내가 들어오기 전 까지다.

사돈의 새 아내, 즉 며느리의 친정 새 어머니가 들어왔다는 말을 처음 들은 건 상처 후 삼년이 조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저녁을 먹다가 그 소식을 전해들은 나는, 하마터면 숟가락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 했다. 손자보다 더 놀랜 내가 주책없이 며느리에게 물었다.

- 그 여자 이쁘든?

내 우려와는 다르게 그 부부는 잘 지냈던 것 같다. 문제는 막내아들의 사업이 여의치 않으면서 터져 나온 재산분배가 화근이었다. 먼저 떠난 부인과 함께 장만한, 사거리 빌딩이 팔리면서 사돈부부 사이에 냉기류가 형성되었던 것 같다. 아무튼 살림살이가 이런 저런 이유로 축나기 시작하자 막내아들과 새 어머니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던가. 며느린 무엄하게도 그걸 즐기는 눈치였다.

또 병원 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하려고 욕실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샤워커튼을 잡아당겨 욕조를 가린 후 물을 받는다. 욕조 속에 몸을 구겨 넣고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을 두 손으로 받아 사타구니며 젖가슴을 적신다. 몸 구석구석을 문지르며 오늘 일정을 되새겨 본다. 몸을 거울에 비춰보다 축 쳐진 유방을 두 손으로 힘껏 밀어 올린다.

목덜미 주름살이 몇 개 더 늘었지만 곱게 늙어가는 것도 내 삶의 여정이니 상관없다. 수증기 때문에 거울이 잘 보이지 않아 샤워기로 말끔히 닦아낸다. 닦고 또 닦아도 거울에 수증기가 계속 붙는다. 얼굴을 이리저리 거울에 비춰보며 콧노래를 부른다.

누군가 밖에서 조용히 하라는 투의 노크를 한다. 아들놈이거나 필시 그 놈의 마누라 일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한번 시작한 노래를 끝까지 다 부른다. 아침부터 아들놈이 더 분주해 보인다. 평소 잘 입지도 않은 가디건을 드레스셔츠 위에 입어야 하나 거울 앞에 서서 망설이는 게 보인다. 오늘 의사는 내게 무슨 말을 할까?

지난 번 방문 때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의사는 나를 빤히 쳐다보곤 야, 어머니 그 스카프 완전 제 스타일인데요. 의사치곤 눈치가 구단이다. 그 의사는 칭찬할 때 꼭 뭔가 한 가지를 집어 분명하게 해 준다. 그래서 헷갈리지 않아 기분 좋다. 오늘은 또 무슨 말을 할라나? 아들놈과 같이 가는데 아들에겐 또 뭐라고 나를 설명할까. 나는 음흉한 미소를 애써 지우며 화장대 앞에 앉는다.

안사돈이 떠난 후 새로 들어온 여자와, 적어도 재산이 없어지기 전까지 한동안 잘 지냈던 것 같다. 며느리가 친정 다녀올 때마다 내쉬던 한숨의 의미를 나는 진작부터 감지했다. 며느리가 서럽게 울던 그 날을 나는 기억한다. 다시는 친정에 발걸음을 하지 않을 거라며 흐느꼈다.

그런데 작년 봄인가, 사는 집까지 누구 손에 넘어갔다는 소문이 들렸다. 제발 루머이기를 바랐으나 소문은 코로나19만큼이나 빠르게 퍼져갔다. 진심이건대, 영혼까지 저리는 뭉클함이 내 안에서 솟구치는 걸 느끼며 애먼 며느리 어깨만 어루만졌다.

병원 가는 날이다.

오늘은 아들과 함께 꼭 병원에 가야 한다. 의사는, 다음번에는 보호자와 같이 오세요, 라고 했다. 정성들여 화장을 한다. 갈수록 쳐지는 목주름이 거슬려 손가락에 크림을 잔뜩 묻혀 밑에서부터 위로 마사지한 후 스카프로 목을 가린다. 아들은 외출 준비를 미리 끝내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본다. 일기예보를 보며 날씨가 차니 단단히 싸매라고 내 방을 향해 소리친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의사가 나와 아들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미소 짓는다. 그 때 마침 아들의 스마트폰이 울린다. 아들이 폰을 귀에 댄 채 진료실 밖으로 급히 나간다. 나는 의사에게 작은 소리로 말한다.

- 우리 아들한테 다 설명 하실거죠? 보세요 저, 멀쩡해요.

치매 그 짓거리 아니, 그 연극 오래 하기 힘들어요. 서로 못할 노릇이예요. 선생님 귀를 쫌사실은, 그이가 사랑한대요. 오래전부터, 저를, 그랬다네요. 제 예감이 맞았어요. 이젠 집으로 가려구요. 내 집에서 편하게 그이와 지낼 거예요.

통화를 끝낸 듯 아들이 헛기침을 하며 진료실로 들어온다.

의사는 내게 손짓하며 말한다. 어머니 잠깐 밖에 나가 계실래요? 이번에는 보호자와 얘기 좀 해야 하니까. 나는 짐짓 어눌한 표정을 지으며 진료실 문을 연다.

집에 가는 자동차 안에서 아들놈이 중얼거린다.

- 그 의사 새끼 진짜 웃기는 놈이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바깥풍경만 주시한다. 나뭇잎이 바람에 포물선을 그리며 어디론지 날아간다. 아들은 룸미러를 통해 끊임없이 나를 관찰한다. 뭔가 내게 말을 걸고 싶은지 간간이 운전대를 톡톡 치다가 까닭없이 클랙슨 소리를 울리기도 한다. 나는 끝내 아들 눈을 피하며 눈을 꼭 감아버린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자동차 속에서 튀어 나와 멀리 도망 가버리고 싶다. 아들이 창문을 열고 가래를 뱉는다. 이어 헛기침도 한다.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 있는 병원이 집에서 이토록 멀었던가 싶다. 아들은 계속 참, 내 참 하며 구시렁거린다.

며느리의 새엄마는 언제부턴가 발정 난 암괭이처럼 영감을 구박한다고 들었다. 그 여자 히스테리가 절정이었을 때 사돈은 집을 나가 잠시 피신해 있었던 듯싶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빌미가 되었지만. 누구 말이 맞는지 내 알바 아니지만, 어쨌든! 그가 아들네로 옮겨오면서 나까지 열병에 휘말리게 된 건 사실이니까.

지난여름 친정에 다녀온 며느리가, 이제 아빠에게 남은 건 병든 몸 하나라고 자책했다. 며느리의 들썩이는 어깨를 붙잡고 토닥이며 내가 조용히 말했다.

- 혼자 외롭게 지내시게 하지 말고 니가 모시는 게 어떠냐. 나는 비어있는 내 집으로 들어가면 그만이니까. ?

엎드려 울던 며느리가 얼굴을 들어 나를 빤히 쳐다본다.

- 가까우니 내 자주 놀러 오마. 혹 느이 아버지 심심하시면 우리 집에도 놀러 오시라고 하고, 어떠냐?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좋은 친구로 지내는 것도 뭐 나쁘지 않잖니?

나는 또박또박 힘주어 얘기한다.

추위를 뚫고 오랜만에 외출은 한다. 한동안 비워 놓은 내 집을 새로 단장할 벽지와 장판 그리고 예쁜 레이스가 붙어있는 커튼도 고를 것이다. 따뜻한 봄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며 며느리는 한사코 말린다.

자연이 봄을 낳을 때쯤이면 마치 산모가 이불을 쥐어뜯듯 온 세상을 발기발기 찢어놓을 것이다. 그 찢어진 틈사이로 연두색 여린 잎이 방긋 나올 텐데 그때까지 가만히 앉아 마냥 기다릴 수 없다. 그래서 이것만은 내 마음대로 할 거라고 말하며 힘차게 집을 나선다. (*)

 

'한국단편소설3' 카테고리의 다른 글

90. 우리들의 조부님  (0) 2022.05.29
89. 유치장에서 만난 사나이  (0) 2022.05.29
87. 착하거나 욕먹거나  (0) 2022.05.29
60. 송아지  (0) 2022.05.26
20. 뫼비우스의 띠  (0) 2022.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