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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시

인생

by 자한형 2022.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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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_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인생을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

하루하루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가라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 그 뿐.

 

내눈을 감기세요_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내 눈을 감기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꺾으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잡을 것입니다.

손으로 잡듯이 심장으로 잡을 겁니다.

심장을 멎게 하세요.

그러면 뇌가 고동칠 겁니다.

마침내 당신이 나의 뇌에 불을 지르면,

그때는 내 피가 흘러 당신을 실어나르렵니다.

 

가을날_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열매들이 탐스럽게 무르익도록 명해주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나날을 베푸시어

열매들이 무르익기를 재촉하시고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감미로움이 깃들게 해주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지금 홀로인 사람 오래 그러할 것입니다.

깨어서 책을 읽고, 기나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 사이를

불안스레 헤매일 것입니다.

나는 넓어지는 원 안에서 살아가네(Ich Lebe Mein Leben in wachsenden Ringen)

나는 점점 넓어지는 원 안에서 살아가네

그 원은 온 땅 온 하늘로 퍼져나가서

내가 마지막 원을 완성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일에 내 온 존재를 바친다네

 

나는 ()’ 주위를, ‘태고(太古)의 탑둘레를 빙빙 도네

지금까지 수 없는 시간 동안 돌았네;

내가 한 마리 매인지, 폭풍우인지, 아니면 대단한 노래인지 난 아직 알지 못하네.

 

위 시는 유시화 시인이 넓어지는 원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한 적이 있다.

넓어지는 원

넓은 원을 그리며 나는 살아가네

그 원은 세상 속에서 점점 넓어져 가네

나는 아마도 마지막 원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지만

그 일에 내 온 존재를 바친다네

(유시화)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모두 2()으로 이루어진 시의 첫째 연만 번역해 놓았다.

내 생각에 이 시의 핵심은 두번 째 연에 들어 있는 것 같다. ‘()’ 그리고 태고(太古)의 탑이 의미하는 것은 동일한 존재, ()’이다. 그런데 릴케에게 있어 ()’은 기독교의 종교적 신과는 다른 존재이다. “카프리섬의 겨울에 관한 즉흥시(1906-07)”에서 릴케는 신()이란 내가 홀로 오르내리는, 그러고는 길을 잃고 마는 산()”이라고 썼다. 또 다른 초기의 미수록 시()(1909)에서는 신을 내가 지금 어디에서도 붙잡을 수 없는 당신이라고 부른다. 릴케의 신 찾기는 실제로는 자아(自我) 찾기였다. 시인(詩人)은 자기 자신을 찾는 과정에서 동시에 그가 신이라 부르는 존재를 찾기를 희망했다.

우리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란 질문의 답을 찾아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가 원 중앙에 우뚝 서 있는 태고의 탑 주위를 돈다고 가정하면 원의 지름이 커짐에 따라(우리 인생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탑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종국에는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될지도 모른다. 릴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 찾기는 계속되어야 하고, 혹 그것의 해답을 얻지 못한다고 해도 자기의 고유한 개별성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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