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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남의 나라 장수 동상이 있는 나라는

by 자한형 2022.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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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나라 장수 동상이 있는 나라는 김남주

 

 

윗것들은

밑으로부터 위협을 받으면

위협을 받아 재산의 뿌리 권력의 기둥이 흔들리면

민중들을 역적으로 몰아붙이고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그들을 학살했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때 양반과 부호들이 그랬고

1950년 앞뒤에 이승만과 그 추종자들이 그랬다

이런 것쯤은 알고 있다 먹물인 나는

시인인 나는 이렇게 노래할 줄도 안다

동전과 권력의 이면에는 조국이 없다고

그러나 나는 몰랐다 인천엔가 어디에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서 있더라는 소리를 듣고

그런 것은 미국의 식민지에는 으레 있는 것만으로만 알았지

그런 것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줄은 차마 몰랐다

그래서 나는 신경림 시인이 민요기행에다 담은

어느 농부의 노여움을 읽고 그만 화끈 얼굴이 달아올라

얼른 책을 덮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남의 나라 군대 끌어다 제 나라 형제 쳤는데

뭣이 신난다고 외국 장수 이름을 절에 갖다 붙이겠소

(蘇定方의 이름을 딴 부여의 定方寺, 來蘇寺를 가리킴-한홍구)

하기야 인천 가니까 맥아더 동상이 서 있더라만

남의 나라 장수 동상이 서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더만

 

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저항시인.

개설

김남주(金南柱)[1946~1994]는 사회변혁운동의 이념과 정신을 온몸으로 밀고나간 전사이자 혁명적 목소리로 한국 문단을 일깨운 민족시인이다.

활동 사항

김남주는1946년 10월 16일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서 아버지 김봉수와 어머니 문일님 사이의 3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삼화국민학교와 해남중학교를 거쳐 1964년 당시 명문으로 손꼽히던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하였다. 1969년 검정고시를 거쳐 전남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시절에는 3선 개헌 반대투쟁, 교련 반대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김남주가 우리 사회의 현실에 본격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문학과 사회과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당시 김남주에게 특히 영향을 주었던 시들은 영문으로 읽었던 푸시킨, 레르몬토프, 네크라소프 같은 러시아 시인들의 저항시들과 파블로 네루다의 시였다.

1972년 10월 유신 체제를 위한 계엄령이 선포되고 유신헌법이 확립되자, 김남주는 친구 이강과 함께 전국 최초의 반유신 지하신문 『함성』을 제작하여 광주 시내 대학교와 고등학교에 배포하였다. 1973년에는 전국적인 반유신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지하신문 『고발』을 제작하여 배포하다가 구속되어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으로 8개월간의 옥고를 치렀으며, 이 사건으로 전남대학교에서 제적당하였다.

김남주는 출옥 후 1974년 해남으로 낙향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농촌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그해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감옥 체험과 농촌 현실을 노래한 「진혼가」 등 8편의 시를 발표하여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1976년에는 『장길산』을 집필하기 위해 해남에 내려와 있던 소설가 황석영과 교우하면서 1977년 해남농민회를 결성하였고, 광주로 나와 민중문화연구소를 개설하는 등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1978년 가장 강력한 반유신투쟁 지하조직 남조선민족해방전선의 전사로 활동하다가 이듬해 10월 4일, 80명의 동지와 함께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 끝에 투옥되었다. 1980년 12월 징역 15년형이 확정되어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으며, 옥중에서 교도관 몰래 수많은 옥중시를 써서 극비리에 유출하였다.

김남주의 옥중시는 1980년대 우리 사회 변혁운동에 일대 도화선이 되었으며, 1980년대 한국 시의 지평을 확대하고 한 차원 끌어올린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김남주가 감옥에서 쓴 시들은 당시 대학생들의 의식화 교재가 되었고, 노래패는 김남주의 시를 노래로 만들었다. 김남주의 시는 가장 선동적인 격문이었고 가장 투쟁적인 노래였다. 김남주가 남긴 510여 편의 시 가운데 360여 편이 옥중에서 쓴 시이다.

김남주는 1988년 12월 21일 9년 3개월의 옥고 끝에 석방되었지만 이후 옥중투쟁에서 얻은 췌장암으로 투병하다가 부인 박광숙과 아들 김토일을 남겨 둔 채 1994년 2월 13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김남주의 시집으로는 『진혼가』(1984), 『나의 칼 나의 피』(1987), 『조국은 하나다』(1988), 『솔직히 말하자』(1989), 『사상의 거처』(1991), 『이 좋은 세상에』(1992),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1995) 등이 있다. 시전집으로는 『사랑의 무기』(1989), 『학살』(1990),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1991), 『저 창살에 햇살이』(1992), 『옛마을 지나며』(1999), 『꽃 속에 피가 흐른다』(2004) 등과 『김남주 시전집』(2014)이 있다. 산문집으로는 『시와 혁명』(1991), 『김남주 산문전집』(2015)과 번역서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1978),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1988), 『아타 트롤』(1991), 『은박지에 새긴 사랑』(1995),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1995) 등이 있다.

묘소

김남주의 묘소는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산35]의 국립5·18민주묘지 내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김남주는 1991년 제9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으며, 1991년 제6회 단재상 문학 부문과 1993년 제3회 윤상원문화상, 1994년 제4회 민족예술상, 2004년 제2회 영랑시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해남군에서는 매년 10월 김남주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김남주문학제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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