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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4

미늘

by 자한형 2022.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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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늘 / 유진선

별이불이 총총하게 깔렸다. 오늘따라 늑장을 부리는가, 달은 아직 보이지 않고 서늘한 어둠만 가득하다. 늦더위가 유난하던 며칠 전과는 달리 어느새 가을이 덥석 안기는 것만 같다.

오랜만에 근처 사는 오빠 내외와 낚시를 갔다. 반짝이는 물비늘이 눈부시다. 낚싯대를 펼치고 평평한 곳을 찾아 앉았다. 치장하지 않은 주위 풍경은 흑백사진마냥 정겹고, 새우 미끼의 비린내와 깻묵 냄새가 순식간에 수십 년을 거슬러 간다. 어릴 적 기억과 몇 년 전 일들이 뒤섞여 일상인 듯 익숙하다.

어릴 때처럼 오빠 옆에 바싹 붙어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뭔가 조금씩 대화가 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와 조카를 헷갈려하고 앞뒤 없는 이야기를 불쑥 내뱉는가 하면 화장실을 간다면서 주저 없이 물로 걸어 들어가기도 했다. 전에 없던 행동에 십여 년 전 뇌출혈로 죽을 고비를 넘긴 후유증인가 싶으면서도 슬며시 불안감이 밀려든다.

작은올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오빠가 치매라는 말끝에 물기가 맺혔다. 더듬대며 전해주는 말이 농담 같다. 아직은 심하지 않지만 결국 자신의 역사를 모두 지워버리고 말 것이라는 잔인한 선고다. 이성은 지워지고 본능만 남는 모태로 회귀한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 걸핏하면 화를 내고 엉뚱한 말을 하던 것이 몹쓸 병의 신호였던가 싶다.

어릴 적, 오빠와 갔던 낚시터에서 뾰족한 바늘이 아가미 옆쪽을 뚫고 나온 물고기를 본 적이 있다. 퍼덕거리며 버둥대는 통에 결국 등 쪽 비늘과 살이 뜯겨나가고야 말았다. 싱싱한 살점이 묻어있던 바늘 끝은 햇살을 받아 반짝였지만, 그것에 찔릴 것 같아 몸서리쳤던 기억이 어제 일 같다.

낚시 바늘이나 작살의 끝에 붙은 화살촉처럼 생긴 갈고리 모양을 미늘이라고 부른다. 물고기가 걸렸을 때 빠지지 않도록 끝 부분을 뾰족 튀어나오도록 만든 것이다. 그 모양새를 살피니 한번 걸리면 놓치지 않겠다는 결연함이 보이기도 하고, 생각 없이 물었다가는 빠져나오기 힘든 중독에 대한 경고 같기도 하다. 바늘에 걸린 물고기를 바구니에 담을 때면 물음표처럼 생긴 그것을 빼느라 힘들었다. 몸부림칠수록 더 깊이 박히는 갈고리 때문에 생살과 비늘까지 뭉텅 뜯기기 일쑤였다.

오빠 내외는 돈이라는 바늘을 단단히 물고 있었던 듯하다. 가난했던 살림에 포원이 졌는지 지독스럽게 돈을 움켜쥐고 살았다. 가족들도 허리띠를 졸라매게 했고 외식 한 번도 마다하면서 통장을 불려 나갔다.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보일 때도 있었지만, 아파도 병원조차 멀리하는 걸 보면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오빠는 젊어서 폐를 앓으며 지겹게 드나든 병원이 싫어서인지 건강검진 한 번 받지 않고 살았다. 자신들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심지어 자식에게도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평생 애면글면 모으느라 쓰지 못한 돈은 결국 병원비가 되고 말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허무한 마음이 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쓰고 살 걸 그랬다는 올케의 말이 공허하다. 자식들도 똑같은 모습을 보면서, 지나친 알뜰함이 자신을 아프게 할 날카로운 미늘이었다는 것을 알았을까. 천년만년 함께할 줄 알았던 재물은 이제 녹슨 미늘이 되어 제풀에 사그라질지도 모르겠다. 부모님께도 용돈 한 번 넉넉히 드리지 못했던 세월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줄도 미처 몰랐을 것이다.

뱉어내지 못한 미늘로 고통받은 큰언니의 삶을 떠올린다. 언니는 순간의 달콤함을 사랑이라 착각하고 덥석 물었던 대가를, 평생 그림자로 살면서 아프게 치렀다. 아내가 있던 남자의 화려한 거짓말에 속아 발을 담근 세월이 너무 길었다. 아이 셋을 낳고서야 정신이 들었지만, 불륜이란 낙인을 피해 몸부림치면 칠수록 갈고리는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눌어붙은 습관은 목에 걸린 바늘을 그냥 물고 살게 했던 것 같다. 언니의 짧은 삶은 뱉어버리지 못한 미늘 탓에 가족들 마음에도 선연한 핏빛의 아픈 자국만 남기고 말았다.

중독의 뿌리는 유혹이고 가장 독한 습관이 성격으로 굳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습관이 쌓여 성격이 되고, 그것이 운명까지도 움직인다는 말은 사실인 듯하다. 그렇다면 산다는 것은 어쩌면 미늘과의 타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혹에 홀리지 않게, 유난한 것에 집착하지 않게, 욕심에 빠져 미늘에 걸리지 않게.

엄마가 돌아가시고 서너 해가 지난 즈음 큰오빠의 사업이 내리막을 걸었다. 갑자기 형편이 어려워지자 몇십 년을 함께 살았던 큰올케가 더는 못 하겠다며 아버지 모시기를 거부했다. 몇 날 며칠 큰소리가 담장을 넘었지만 결국 아버지는 요양원으로 가셨다.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은 하나같이 급한 사정이 생겼다. 작은오빠는 불똥이 튈까 봐 전화조차 받지 않았고 딸들은 강 건너 불 보듯 애써 외면했다. 면회도 잘 가지 않으면서 형편이 편편찮다는 말은 아버지를 뒷전으로 미루는 데 써먹었다. 겉으로는 그럴싸한 핑계였지만 사실은 그냥 나쁜 딸일 뿐이었다. 그렇게 미루는 사이에 아버지는 내 곁을 떠났다. 그때야 이기심으로 가득한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어떤 미늘에 걸린 걸까. 무엇을 놓지 못하는 것일까. 매번 미루기만 했던 게으름이 결국 가슴을 파는 후회로 남는 것을 왜 진즉 몰랐을까. 이제 와서 생각하니 오늘을 살아낸 것처럼 내일도 보장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누가 알려준 우매한 자신감인지 알 수 없다. 게다가 무슨 근거로 부모님은 늘 내 곁에 있을 거라는 위험한 확신을 가졌던 걸까 싶다.

이순을 훌쩍 넘고 보니 이제야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효도하지 못했다는 회한이 때때로 뻐근한 목의 통증으로 찾아온다. 그 깊고 예리한 아픔의 원인이 평생 뱉지 못한 나의 미늘이었음을 비로소 깨친다.

당신들이 가신지 십 수년이 되었어도 목에 걸린 미늘은 그대로이다. 언니 오빠들과의 피할 수 없는 이별도 아픈 미늘로 남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늦둥이 동생으로 살면서 받았던 사랑이 차례차례 그리움으로 쌓일 것도 짐작하고 있다.

큰오빠가 팔순을 넘긴 지 한참이다. 당신도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후회 투성이라고 한다. 누구나 깊이 박혀 있는 미늘 하나쯤은 뱉지 못한 채 사는가. 나 역시 이곳저곳에 박힌 미늘의 상처는 굳지도 않는지 가끔씩 가슴 한 쪽이 따끔거린다.

손바닥만 한 마당에 가을이 스미고 있다. 검은 하늘을 흐르는 은하수에서는 누가 낚싯대를 드리우는지 반짝이는 길을 내며 소리 없이 별똥별 하나 떨어진다. 소란하지 않게 찾아드는 자연의 섭리가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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