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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모에 새길 열다

by 자한형 2023.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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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모지에 새길 열다3/ 권해솜 객원기자

대한민국 시니어타운의 효시 유당마을

사회복지법인 빛과소금의 유당마을에 들어가는 입구. 사진 구혜정 기자

누군가 가지 않은 길을 간다고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말리고 본다. 첫 삽을 뜨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일은 두말할 것 없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척자들 덕에 세상은 좋은 모습으로 발전하고, 따라 배우는 이들 또한 늘어나지 않았던가! 우리나라 시니어타운의 첫 단추를 끼우고 올곧게 길을 닦아왔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을 말하라면? 단연 사회복지법인 빛과소금의 유당마을(이사장 양주현, 이하 유당마을)이 먼저 떠오른다. 복지에는 손쓸 새 없이 발전과 도약, 개발에 열을 올리던 시대에 탄생해 대한민국 시니어타운의 역사를 써내려간 유당마을을 찾아갔다.

자연환경과 잘 어울리는 '풍요로운 집'

경기 수원시 장안구 수일로 광교산 자락에 자리 잡은 유당(裕堂, 양 이사장 선친의 아호) 마을은 풍요로운 집이라는 뜻을 품고 있듯 탁 트인 자연환경과 함께 마을의 분위기와도 잘 어우러져 있다. 올해로 33년째, ‘복지라는 말도 생소하던 때인 1988년 문을 연 대한민국 1호 시니어타운이다. 너른 로비를 중심으로 왼쪽은 2014년에 준공한 신관, 오른쪽에는 유당마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본관이 자리하고 있다.

유당마을을 방문했던 5월 초, 양주현 이사장과 김영식 원장이 따뜻하게 취재진을 맞아주었다. 양 이사장은 1994년부터 초대 유당 양창갑 이사장의 뒤를 이어 유당마을을 일구고 발전시켜왔다. 취임 후 선진화된 시니어타운을 조성하기 위해 일본과 미국, 호주 등지를 찾아 직접 견학하고 연구하면서 환경 개선은 물론 운영 시스템 정착에 힘을 기울였다.

김영식 원장은 유당마을에 20여 년 전 일반 사원으로 입사해 실무 능력을 인정받아 원장 자리까지 오른 시니어 분야 전문가이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유당마을도 그다음 대한민국 곳곳에 생겨난 시니어타운도 없었을지 모를 일이다. 시니어 전문가로 성장해 의기투합하고 사랑으로 어르신들을 섬기고 있기에 유당마을이 긴 시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로 가족과의 면회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정문 입구 양편에 면회 부스를 설치했다. 사진 구혜정 기자.

미래세대가 아닌 지난세대 돌봄에 관심

유당마을을 건립하기 전 초대 양창갑 이사장은 사실 시니어 분야가 아닌 청소년을 위한 육영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많이 배우고 자라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초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던 일을 계기로 노인복지 분야로 관심을 돌리게 됐다. 병문안을 온 지인들로부터 앞으로는 실버산업에 눈을 떠야 한다는 조언을 새겨들은 결과물이 유당마을이 됐다.

실버타운이라는 시설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기점은 1990년대라고 입을 모은다. 유당마을은 그보다 더 이른 1985년에 사회복지법인 재성으로 설립인가를 받았고, 19887월에 개관했다. 이후 2008년에 법인 명칭을 지금의 ()빛과소금(S&S)으로 변경했다. 이익을 창출하는 경영이 아닌, 노인복지를 선도하고 산업역군이던 입주 어르신들에 대한 감사와 함께 우리 사회에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도 온정을 나누겠다는 의지를 명칭에 담았다. 20113월에는 시니어타운 중 국내 최초로 ISO 9001 품질경영시스템 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어르신을 모시는 데 단단한 경영을 해왔다는 의미기도 했다.

유당마을이 개관했을 때만 해도 2층으로 지어진 본관 건물에 50여 명의 시니어가 입주했다. 시니어들이 모여 있는 시설은 그저 양로원으로 대변됐다. 그때만 해도 나이든 부모를 시설에 모신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시기였다.

자식들이 부모를 부양할 수 없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거나, 자식이 부모를 모시기 싫어해서 가는 곳으로 인식됐다. 시니어 스스로가 선택한다기보다 지극히 수동적 상태에서 양로원을 택했다. 양 이사장은 유당마을 초기 입주자에 대해 금전적인 여유는 있는데 가족끼리 사이가 좋지 않은 어르신들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지금 시니어타운에 대한 인식은 그렇지 않다. 자식 입장에서 부모를 잘 모시고 싶어 시니어타운을 권하는 경우도 있다. 혹은 시니어 스스로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시니어타운 입주를 생각하기도 한다. 시니어타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데 유당마을이 한몫 했다.

유당마을은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로 현재는 중단됐지만 난타와 라인댄스, 서예 등을 할 수 있고, 도자기를 굽는 가마에서 도예를 배우는 입주자들도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대한민국 시니어타운의 역사를 써가다

유당마을이 문을 열었던 초기에 문제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입주자 50여 명에 직원만 30명인 상황. 물리치료를 해드리고, 영양 가득한 식사도 제공하는 등 어르신들을 잘 모셔야 하니 직원 최소 인력만 그 정도였다. 수익이 있어야 시설에 투자할 수 있는데 직원과 입주자의 수가 비슷하다 보니 아무리 이용요금을 받는다고 해도 적게라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실버타운에 대한 인식도 전무한 시대여서 그저 사명감 하나로 유당마을을 일궈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현재 신관 건물이 세워진 부지는 2010년 이전만 해도 자연녹지로 건축 자체가 금지됐던 지역이다. 새로운 건물을 짓고 싶어도 할 수 없었고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본관 건물을 이용해 최대한 늘려나갈 수밖에 나갔다. 수원시의 행정적 지원과 개선 없이는 해결할 방도는 없었다. 좀 더 안정된 운영을 위해 2000년에 들어서 지상, 지하 한 층씩 증축하여 입소 정원을 늘려보기도 했다. 그러던 20101, 수원도시 관리계획에 의해 자연녹지지역에서 제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고시되면서 신관 건립이 추진됐다.

양 이사장은 이때 일화를 언급하며 기독교 신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었다고 표현했다. 형질 변경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의 기도뿐 아니라 수원시가 국내 제1호 유료양로시설로서 유당마을이 모범적으로 운영해 온 것과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20147400평 규모의 신관 건물을 지었고, 현재 유당마을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유당마을은 대한민국 시니어타운의 첫발이다 보니 대부분 시니어타운에서 이뤄지고 있는 각종 서비스와 프로그램들이 이곳에서 먼저 시도되고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니어들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의원과 한의원, 물리치료실, 미용실, 사우나, 영화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감상실, 노래방에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는 교회 등 대부분의 시설이 건물 안에 있다.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아주대병원 응급실까지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기도 하다.

유당마을 숙소 내부. 곳곳에 비상벨이 있고 거동에 불편함이 없도록 문턱을 최소화했다. 사진 구혜정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현재는 긴 휴식상태지만 난타, 라인댄스, 서예 등 다양한 동호회 활동과 프로그램이 있다. 특히 유당마을에는 도자기를 구울 수 있는 가마가 있어 도예를 즐기고자 하는 입주자에게 큰 인기다. 지금까지 만든 작품은 휴게 공간 벽면 가득 상설 전시돼 있다. 건물 주위에는 각종 나무와 꽃들이 심어진 정원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소소하게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텃밭도 있어 다 같이 일구고 나누어 먹기도 한다.

평형대는 15평부터 42평까지 다양하고 신관과 본관, 케어홈의 입주보증금은 3000만 원부터 2억 원대까지이다. 월 생활비 또한 숙소의 평수와 개인, 부부 입주자마다 각각 다르다.

집안 내부에는 혹시나 걸려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문턱을 최소화했다. 비상벨은 방과 거실, 화장실 등 곳곳에 있어 언제 생길지 모르는 불상사에 대비해 놓았다. 집안에서의 활동 등도 중앙에서 관리한다. 자동 센서가 세대마다 있어 집안에 있는데도 입주자가 장시간 활동하지 않으면 이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입주자를 만나러 온 가족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 재난 상황이 아니라면 가족들도 숙소에 머물며 유당마을 내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코로나19가 성행하면서 가족의 게스트하우스 이용이라든가 만남이 어려워 유당마을 정문 양 옆으로 가족들과 만날 수 있는 부스도 설치했다.

본관엔 층과 층을 연결하는 다리가 있다. 유당마을 개관 당시 엘리베이터가 아닌 이런 식의 길을 내놓았다. 입주자들은 이곳을 운동삼아 걷기도 한다. 사진 구혜정 기자

본관엔 층과 층을 연결하는 다리가 있다. 유당마을 개관 당시 엘리베이터가 아닌 이런 식의 길을 내놓았다. 입주자들은 이곳을 운동삼아 걷기도 한다. 사진 구혜정 기자

노후 생활 집중 돌봄도 받을 수 있게

생활을 하다가 집중적인 치료와 돌봄이 필요한 시점이 되면 케어홈으로 이전해 살게 된다. 시니어타운에 들어올 때는 건강한 모습이지만 세월이 흐르면 점점 거동에 문제가 생기고 몸도 쇠약해지기 마련이다. 입원하듯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장시간 살던 곳에서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때는 장기요양등급과는 무관하게 유당마을 입주자로서 장기간 돌봄이 필요하다면 옮길 수 있다. 케어홈으로 삶의 장소를 옮기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가서 멀리 떨어져 생활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소외나 외로움은 적다. 부부 중 한 명이 케어홈에 들어갈 경우 왕래하며 생활할 수 있고 오랫동안 유당마을에서 생활했다면 친구들과도 계속해서 어울릴 수 있다. 미국의 CCRC 모델을 유당마을에도 녹여낸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CCRC란 은퇴주거복합단지(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의 약자로, 지속적 돌봄을 제공하는 노년층 주거 단지를 말한다. 지난해 2월 한국형 CCRC 모델 도입과 관련한 논의가 시작됐는데, 유당마을은 훨씬 이전부터 이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소외되지 않는 노후를 고민하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는 상황에서도 유당마을은 노인 복지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꾸준하게 성장하고 다듬어졌다는 의미다.

유당마을 모형 앞에 선 양주현 이사장. 양 이사장은 비즈니스가 아닌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유당마을을 경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구혜정 기자.

양주현 이사장은 시니어사업에 대해 “‘비즈니스가 아닌 미션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도 계속 시설 리모델링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양 이사장은 유당마을이 대한민국 최초라는 타이들보다는 최고의 품격을 지향하는 시니어타운으로 만들어 간다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다시니어가 가장 편하게 살 수 있고, 몸도 마음도 환경도 풍요로운, 말 그대로 유당마을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