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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죽음을 가장 두려워 하나요

by 자한형 2023.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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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죽음을 가장 두려워 하나요?/닥터 권지영

가장 두려운 죽음에 대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했던 건 20대 후반쯤이었던 것 같다. 죽음에 이르는 방법은 인생의 수만큼 많고, 죽음을 맞이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죽음이기 때문에 그중에 조금 더 편안하게 죽음에 이르는 건 무얼까에 대해서, 가장 고통스럽게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건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했었다.

[잠수종과 나비]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두려움이 생겼다. 그 영화는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진 후 '감금증후군(Locked-in Syndrome)'을 진단받은 장 도미니크 보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보비는 의식은 돌아왔지만 전신마비 상태가 되어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왼쪽 눈을 깜박이는 일뿐이었다. 결국엔 15개월 동안 20여만 번 이상의 눈깜박임으로 글자를 표현하여 책을 출간했고 이후 그는 세상을 떠났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의 죽음 앞에 뇌졸중이 없기를 바랐다. 죽음보다 죽기까지의 숨 막히는 시간들이 끝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아버지의 임종 후, 나는 암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호스피스병동에서 암으로 진단되었던 환자들을 보면서도 그랬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옥시넘 주사로 하루하루를 겨우 견디어내며 마지막 며칠 동안은 소리 없이 눈을 감고 숨만 쉬던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먼 것만 같던 죽음이 또 가까이 와 있는 죽음으로 느껴져 힘들었다. 암세포의 횡포로 발생한 극심한 고통이 올지라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진 말 하지 않으며 세상을 떠나기를 바랐다. 아니, 내 생의 마지막에 부디 너무 길고 극심한 통증을 겪지 않기를 바랐다.

언젠가부터는 치매는 아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이전의 내가 아닌 모습으로 점점 변해가고, 그런 나를 나는 인지하지 못하고 나의 가까운 사람들이 오롯이 지켜보며 모든 고통과 짐을 짊어져야 하는 치매는 아니기를 바랐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런 방법으로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죽을 때까지 적어도 정신이 맑기를, 그리하여 마지막에 떠날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랐다. 과거의 즐거운 추억들을 나누고, 소소한 서운함이나 아쉬움들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죽음의 방법이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이 세 가지 선택권을 갖고 싶다. 의식은 있으나 온몸이 마비되지는 않기를, 극심한 장기간의 통증은 피할 수 있기를, 마지막까지 내 인지기능이 온전하기를 선택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선택권은 나에게 없다. 설사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마지막 시간들을 신께서 내게 허락하신다 해도 세상의 수많은 죽음 이전의 상태나 상황이 결코 만만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누군가 그랬다. 건강히 지내시던 분인데 방에서 주무시다가 조용히 돌아가셨다고. 큰 고통 없이 80세가 넘도록 사시다가 방에서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하셨으니 호상이라고. 잠자리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는 건 과연 최고의 죽음일까를 생각했다. 어쩌면 이는 준비 없는 죽음, 마지막을 정리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은 죽음이었던 건 아닐까.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응급실에 내원하여 심폐소생술을 받다가 생을 마감한 분들이나 사고사로 떠나신 분들은 그나마 수시간 혹은 수일간의 고통 후에 돌아가셨으니 그나마 나았던 죽음이라고 할 수 있냐고 물으면, 나는 그것만큼 가족들에게 괴로움과 허망함을 남기는 죽음은 없다고 말할 것 같다. 준비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죽음도 나는 원치 않는다.

아무도 좋은 죽음이 무엇인지는 대답해 줄 수 없다.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은 사람들은 우리에게 아무 말이 없다. 게다가 원하고 바란다고 내가 원하는 죽음이 내게 오진 않는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그들은 원하는 죽음에 이른 게 아니라, 마음의 괴로움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유일해 보이는 탈출구인 죽음에 내던져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두려워하는 죽음은 무엇인가?

죽음 앞에서 내가 가장 원하는 건 무엇일까?

죽음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생각한다. 언젠가는 노쇠할 것이고 질병에 걸릴 것이며 예기치 않은 순간에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이를 막아낼 능력이 나에겐 없다. 다만 내 마지막 시간들이 외롭지 않기를, 마지막 순간까지 속 깊은 사랑의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세상 떠날 때까지 내가 여전히 나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나의 죽음에 이렇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