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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화가, 미술, 회화 , 미학 등

서양미술의 역사3

by 자한형 2023.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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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의 역사 3 : 19세기 낭만주의에서 20세기 미술/by rooun 2022. 5. 31.

 

미술계에서 프랑스혁명은 의식의 커다란 변화를 주었다. 과거의 전통에서 과감하게 탈피하고 새로운 표현과 방법을 추구하였다. 프랑스는 18세기 이후 르네상스를 꽃피운 이탈리아를 앞지르기 시작하여 독보적인 유럽 미술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여전히 고전주의의 아카데미즘이 화단의 주류를 이루어 그림이나 조각을 아카데믹한 방법으로 제작해야만 성공과 명예가 보장되었다. 그러나 일부 미술가들은 미술이 아카데믹이란 명분 하에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장르라고 생각하며 더 고전적인 접근의 완벽함으로 작품이 평가되는 방법에 반기를 들었다. 이제까지 미술의 기본 전제가 되었던 가치와 기준이 하나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화가들의 영감의 근원이었던 인본주의보다는 본능과 자연에서 영감을 받고 상상력을 더 중요시하게 되었다. 이국적인 과거 역사와 전설을 동경하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새롭고 극적인 것들을 찬미하였다. 대표적인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인 들라크르와(Ferdinand Victor Eugène Delacroix)는 규범을 기피하고 작가의 창조는 신비스러운 내면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그는 색채 표면과 현란한 터치를 강조함으로써 이성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작품을 제작한 낭만주의의 대표 작가이다.

낭만주의 화가들과 문인들은 자연에 관심을 가지면서 풍경화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는 고전주의 전통이 강한 프랑스보다는 영국이 먼저 발달하게 되었다. 19C 낭만주의 풍경화가로는 우선 영국의 존 콘스타블(John Constable)과 조세프 윌리암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그리고 독일의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가 대표적인 낭만주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콘스타블의 경우 평범한 주변의 자연 풍경을 사랑하고 관찰하였다. 그는 자연의 변화무쌍한 순간과 더불어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의 웅장함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어 자연의 풍요로움에 대한 낭만적인 반응을 보여준 화가였다. 콘스타블이 낮은 평원과 시냇물, 검푸른 나무가 우거진 영국 특유의 풍경을 그렸다면, 터너는 자연의 대기와 물, 불과 같은 비물질적 요소를 거의 추상적 요소로 변형시켜 컨스타블 자연과는 대조를 이룬다. 터너는 시각적 관찰보다는 대담하고 강렬한 인상적인 색채를 사용하여 자연이 뿜어내는 에너지와 상상을 초월한 광대한 공간과 우주적 힘을 [난파선]과 같은 주제를 통하여 표현하였다. 프리드리히의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8)]는 이제까지 좀처럼 볼 수 없던 사람의 뒷모습으로 대자연 속에 압도되며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뒷모습만으로도 충분하게 전달하고 있다.

존 콘스타블, [The white horse],1819

조세프 윌리암 터너, [slavers throwing overboard the dead and dying], 1840

조세프 윌리암 터너, [난파선], 1805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The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8,  [출처 : WIKIART]

19C 중반 사람들의 생활에 가장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다준 것은 유럽의 산업혁명이었다. 18C 말에 영국에서부터 시작된 산업 혁명은 곧 프랑스, 독일, 벨기에, 미국으로 전파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회적 변화를 수반하였다. 새로운 기기들이 발명되었고, 기계를 소유한 사람들은 이 기계를 다루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노동자 계급이 생기고 농촌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도시는 급속도로 커졌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로 미술가들은 더 이상 신화나, 종교, 문학에서 주제를 구하지 않았다. 프랑스 귀스타브 쿠르베(Jean-Désiré Gustave Courbet), 오노레 도미에와 같은 사실주의 화가들은 그림의 가치는 교훈적인 과거의 주제보다 우리들 주변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쿠르베는 평범한 고행 사람들이나 거친 노동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 이러한 그림은 그때까지만 해도 이상화된 누드나 영웅적인 인간들의 모습에만 익숙해져 있던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사실적인 미술은 충격적이었고 일종의 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보이기도 했다.

쿠르베, [돌 깨는 사람], 1849

오노레 도미에, [삼등열차],1862

19C 과학과 기술의 향상은 사람들에게 물질 생활의 향상을 실현해 줬고 이것은 일상 환경을 바꾸어 놓았을 뿐 아니라 가치 기준과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하였다. 도시가 점점 커짐에 따라 환경이 개선되고 도시민을 위한 공원과 광장이 곳곳에 마련되었으며 부와 권력을 소유하게 된 중산계급은 문화를 만끽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당시 새롭게 등장한 화가들이 인상주의 화가들이었다. 대부분 중산층 출신의 작가들로 햇빛의 가득한 공원이나 강변, 또는 하루의 달라지는 도시를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게 그렸다. 모네(Oscar-Claude Monet), 르느와르(Auguste Renoir), 피사로(Camille Pissarro), 시슬리(Alfred Sisley)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은 순간순간 끊임없이 달라지는 햇빛을 기록했으며 르네상스 이후부터 지켜오던 아카데믹 미술의 법칙에 반했다. 그림의 표현이 한 방법만 존재한다는 아카데믹한 표현 방법과는 다르게 이제 색채는 팔레트에서 미리 정확하게 계획대로 혼합하여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느끼고 보이는 햇빛의 자유롭고 순수한 색채로 표현하였다. 인상파 그림의 자유로운 표면처리와 색채는 생생함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모네, [수련], 1906

르느와르, [물랭 드 라 갈레트], 1876

피사로, [몽마르트 대로, 겨울풍경], 1898

시슬리, [여름날 모레의 다리와 물레방아]

점차 인상파 화가들이 서서히 인정받게 되고 일부 화랑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면서 파리 화단은 다시 새로운 화가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들을 후기 인상주의라고 하는데 이전 인상주의가 지나치게 순간적인 시각 세계에만 사로잡혀 있다고 믿었다면 좀 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에 근거한 미술을 추구하게 된다. 쇠라(Georges Seurat)와 세잔(Paul Cézanne)은 아직도 눈에 비치는 현실의 시각을 표현하였으나 변화무상한 자연의 외형보다는 영원하고 불면하는 자연의 구조를 찾으려 하였다. 사물의 구조적 단순화의 시작인 것이었다.

한편 고갱(Paul Gauguin)이나 반 고흐(Vicent Van Gogh)는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 자연에서 느껴지는 내면적인 감정의 표현이 더 우월하다고 믿었다. 이들의 작품에서 색채는 묘사라는 기능만이 아닌 구상과 조형을 통하여 감정을 표현했다. 이와 같은 형태와 색채에서의 자유로운 표현 방식은 점차 조각에서도 나타나게 되는데, 이제 미술은 재현의 산물이 아닌 무엇을 그리는 것과 2차적 표면의 색채와 형태, 선의 조형적 가치가 더 중요시되는 현대 미술의 기본 전제가 되는 개념으로 1900년대 전후로 여러 화가들에게 의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쇠라,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1884-86

세잔, [생트빅투와르 산], 1904

고갱, [타히티의 산들], 1893

고갱,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고흐,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20C 접어들면서 미술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작품의 소재로 인간의 형태를 사용하는 경향이 감소되기 시작하고 추상회화나 조각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또 인체를 주제로 한 작품의 경우에도 이전과 같이 인간의 고귀함에 대한 반응보다는 인간을 이상화시키지 않고 왜곡시키거나 과장시켜 인간의 고통과 내면을 표현하는 경향이 더 많아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인간의 선함과 고귀함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한 종교를 통해 얻으려 했던 인간에 대한 탐구와 우리의 사회, 생에 대한 의문은 이제 자연, 사회 과학과 기술 과학에 의해 추구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추상미술에서 인간의 형태가 사라졌다고 해서 미술가들이 인간에 대한 관심을 잃은 것은 아니다. 다만 현대 사회와 인간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새로운 재료와 방법을 탐구하면서 무한한 창조적 가능성을 찾고 있을 따름이다.

몬드리안,[빨강, 파랑과 노랑의 구성 II], 1930

칸딘스키, [노랑, 빨강, 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