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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021신춘 문예 단편소설 , 수필, 시 등 당선작/현대수필3

120. 개똥벌레의 꿈

by 자한형 2022.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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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벌레의 꿈/ 박종철

나의 출생지는 무주의 청량리입니다.

대대로 살아온 공동부락에서 태어났습니다.

낮에는 숲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어둠이 내리고 동무들이 들놀이를 가자고 채근하면 등불을 켜고 집을 나서게 됩니다. 도랑을 건너고 숲 위를 날기도 하고 저녁상이 한창인 농가의 마당이나 하얀 박꽃이 피어 있는 지붕 위를 날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우리를 보고 개똥벌레다!” 하며 뒤를 쫓아다닙니다.

우리도 장난 끼가 동하여 이이들 주변을 맴돌며 놀리기도 하고 숨바꼭질도 합니다. 너무 가까이 접근하다가 이이들에게 붙들려서 호박꽃 초롱에 갇히는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초롱불을 흔들며 좋아라고 뛰놀다가도 놀이에 지치면 슬그머니 풀어 주기도 합니다.

요즈음 우리가 제일 걱정하고 있는 것은 이웃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환경파괴와 농약사용 등으로 주거지와 먹이가 줄어들어 어디론가 모두 떠나버리고 가까운 이웃만 남게 되었답니다. 할아버지 때만 하더라도 아무 곳에서나 우리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답니다. 흔하다 보니까 개똥같이 천하다는 생각이 들어 개똥벌레라고 마구 불렀지만 농경사회의 정서에 썩 어울리는 이름이었지요.

요즈음은 희귀해서인지 옛 이름을 벗겨 버리고 반딧불이란 세련된 이름을 붙여 주었지만 낯설기만 합니다. 또 천연기념물(322)이라는 대문짝만한 간판도 달아 주어 반갑기도 하지만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아남아야 자연이 건강하다는 징표가 됩니다.

사람들은 반딧불이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생태에 대하여서는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 간단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비슷한 이웃사촌이 있습니다. 애반딧불이, 늦반딧불이, 파파리반딧불이지요. 애반딧불은 암수가, 늦반딧불과 파파리반듯불은 수컷만 날 수 있답니다. 애반딧물과 파파리반딧불은 6월 중순부터 7월 사이에, 늦반딧불은 8월 하순부터 9월 초순까지 날아다닌답니다.

우리들 생애를 살펴보면 1년여 기간 동안 알, 유충(애벌레), 번데기, 성충 순으로 신비스런 우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알에서 깨어난 유충은 냇물로 들어가 낮 동안에는 돌 틈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기어 나와 다슬기를 먹이로 삼습니다. 유충시절에는 냄새가 고약하여 멀리서도 냄새를 맡고 동족들이 모여들어 큰 무리를 이루고 살게 됩니다.

오랫동안 유충생활을 하면서 여섯 번의 탈피를 거듭하게 되고, 땅 속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 번데기로 지내다가 성충이 되어 바깥세상을 구경하게 됩니다.

성충은 암컷이 수컷보다 크고 배의 다섯, 여섯째 마디에 있는 발광체로 빛을 냅니다. 짧은 생애를 바삐 살고 있는 우리는 세상에 나온 지 2~3일 수면 짝짓기를 하고 4~5일 수에는 400여 개의 알을 낳습니다. 우리들은 박복하여 알을 낳은 지 2주 정도가 지나면 일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때로는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자연의 섭리를 누군들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나도 이웃 아가씨와 짝짓기를 끝냈습니다. 남은 여생을 이슬로 연명하다가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되겠지요. 대충 우리의 생애에 대한 얘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동네에는 제10회 수필문학 하계세미나가 무주리조트에서 열린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솔깃한 것은 생태보존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장래가 걸린 심포지움이라 꼭 참석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짝을 설득하여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막상 떠나려고 마음을 작정했으나 낮 길에 익숙하지 않아 걱정이 많았습니다. 먼 거리라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원당천을 따라 거슬러 가기로 하였지요. 도중에 몇 번이나 숲에서 쉬었습니다. 길을 재촉하여 티롤호텔에 도착했을 때에는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호텔 지하로 잠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마침 C교수란 분이 21세기는 환경파괴와의 전쟁이라고 선언하더군요.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폭발적인 인구증가와 고학기술의 발달로 공해와 환경파괴가 급증하였다고 하면서 심한 공해가 자연을 오염시키고 인성마저 파괴시킨다고 역설하였습니다.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얘기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습니다.

그렇습니다. 농약의 과다한 살포, 생활폐수, 쓰레기, 무분별한 개발 등으로 자연은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반딧불로 옛 선비들이 글공부를 하였다는 전설이 그립기만 합니다.

사람들은 반딧불을 다시 살린다며 반딧불이 축제니 뭐니 하면서 산골 정서를 마구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더구나 요즈음 인공부화에 성공하였다고 떠들썩하지만 우리의 주거 환경이 파괴되고 있는데 무슨 수로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다 부질없는 일이지요. 우리들을 자연 상태로 내버려 둘 수는 없을까요. 사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서식지마저 야금야금 해충처럼 갉아먹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합니다.

앞으로 살길이 막막합니다.

힘없고 저항력이 약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우리들의 동네를 청정지역이라고 하면서 전원주택지로 눈독을 들이고 있으니 더욱 불안하기만 합니다.

개똥벌레의 불이 꺼지지 않아야 사람들도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우리들의 절규에 마음을 열어 주십시오. 우리들을 자연 그대로 내버려두십시오.

답답한 세미나장을 빠져 나와 숲에서 쉬면서 밤을 기다렸습니다.

어둠이 내리자 우리는 등불을 켜고 날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 반딧불이다!”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반가움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했으면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사람들로부터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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