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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단편소설2122

2. 누님의 초상 누님의 초상(肖像) 유재용 누님이 요즘 세상에 태어났다면 누님의 생애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누님은 성악가나 무용가, 여의사나 대학 교수로도 흘륭히 성공할 수가 있었을 것이고, 좋은 남자와 결혼을 해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평탄한 생활을 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고인을 회상하는 자리래서가 아니라 누님은 그렇게 다방면으로 뛰어난 재주와 특출한 미모, 팔등신의 몸매 그리고 덕성(여기에 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지만)을 지니고 있었다. 누님이 여학교를 졸업한 것은 8.15해방을 한 해 앞두고서였다. 소학교 일 학년에서부터 여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줄곧 수석을 지켜온 누님은, 그해 봄 여학교를 졸업하자 조선 사람으로서는 좀체로 들어갈 수 없다는 일본의 무슨 고등 여자 사범학교 입학 시험에 어렵지 않게 합.. 2022. 3. 1.
1. 높새의 집 높새의 집 윤후명 1 병이 다 낫지는 않았지만 이제 나가 놀아도 괜찮다는 말을 들은 나는 기웃거리며 세화네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열병을 앓는 동안 세상은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대낮인데도 조용하다 못해 괴괴했다. 회복기에 들어서면서 어느 정도 낌새를 느끼고는 있었으나 그토록 괴괴한 정적이 마을을 온통 짓누르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할 수 없었었다. 게다가 그 정적은 평화로운 것이라기보다 무엇인가 은밀히 숨기고 있는 그런 정적이었다. 며칠 누워 있다가 나와서인지 다리가 허청거렸다. 현란한 날빛에 현기증이 났다. 나는 세화네 집으로 통하는 판장의 개구멍까지 가서 그 사이로 세화네 집을 바라보았다. 내가 열병을 앓기 전부터 항상 정적에 싸여 있던 그 집은 더 한층 짙은 정적에 싸여 있었다. 거뭇거뭇 .. 2022.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