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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편소설3

3. 겨울의 출구

by 자한형 2022.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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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출구(出口) -전상국

 

얘들아. 아버지 들어오실 시간이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연탄불을 갈아넣으며 우리 방 쪽을 향해 말했다. 머리가 반백인 초로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집에 도착할 시간을 어림하고 있다가 그것을 집안 식구들에게 알리는 게 이제 버릇이 돼 있었다. 그것은 우리 나라 아낙네들의 지아비에 대한 한결같은 경외심의 한 표현이라고 봄이 좋을 것이다.

-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형이 가볍게 코방귀를 날렸다. 아버지를 향한 형의 감정의 미묘한 움직임은 이 코방귀 하나로 충분히 짐작이 됐다. 형은 아버지를 멸시했다. 아버지가 생각하고 행하는 여러 가지 생활 방식에 대해 깊은 적의를 가지고 맞섰다. 육친에 대한 미움의 감정이 복받쳐 올라 그것을 미처 주체 할 수 없을 때 형은 그 사실로 해서 숫제 괴로와했다.

형이 아버지를 그처럼 미워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아버지의 무능으로 해서 빚어지는 우리 집의 참담한 가난이었다. 형은 그 누구보다 우리 집 구석구석에 밴 가난의 땟국에 대한 혐오감으로 거의 미친 상태에 이르곤 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아버지의 근본을 단 한 뼘도 가늠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울화증이었다. 형은 아무 것도 만지지 못하고 있었다. 자기가 그처럼 멸시하는 아버지의 무능이 오히려 그의 달관한 듯한 과묵과 성실로써 교묘히 위장되고 있다고 형은 생각하고 있었다. 형이 캐내고 싶은 것은 그처럼 무능하고 판무식한 아버지가 어떻게 해서 그와 같은 의연한 삶의 태도를 꿋꿋하게 지켜나갈 수 있을까 하는 그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형은 번번이 실패만 했다, 아버지와 그리고 아버지의 한 분신인 어머니는 어떤 경우에도 그네들의 어제에 대해서 입을 떼지 않았던 것이다.

형은 열리지 않는 문 저쪽의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시달림을 받고 있는, 그런 피해 의식 속에 살고 있었다.

형 들어왔냐?

내가 언덕 아래까지 마중 나갔을 때 아버지는 그 큰 짐 자전거를 끌고 올라오는 중이었다. 뒤에는 우리 집보다 더 꼭대기에 사는 재구 청년이 따라오고 있었다.

시험 본다던 거 봤대?

봤대나봐요.

자신 있다던?

아버지는 형에 대해서 추근추근 물어왔다. 늘 그랬다. 형이 아무리 깊은 적의를 가슴에 품고 있어도 그런 것에 전연 아랑곳하지 않는 게 아버지의 한결같은 태도였다. 형은 그러한 아버지의 사랑을 매우 불쾌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번에 치른 채용 시험도 집안 식구들에게 알려질까 전전긍긍한 형이었다.

오빠가 이번에 아주 중요한 시험을 보나봐요.

형이 시험을 본다는 것을 알아낸 것은 누나였다. 역시 집안에서 형과 대화가 통할 수 있는 것은 누나뿐이었다.

형은 대학 졸업반이었다. 고러나 고는 자신이 지닌 지식과 덕망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 채 갈팡거리는 정서 불안정의 상태에 있었다. 자신의 뿌리를 내릴 땅을 찾지 못해 실의와 좌절 속에 심성이 배배꼬여갈 뿐인 그런 형의 광기를 바람 재우듯 조용히 가라앉히는 마술을 가진 것이 바로 누나였던 것이다. 공장의 한낱 여공에 불과한 지혜 누나는 이제 스물 둘, 한창 좋은 나이였다. 인물이 고우면 속을 못쓴다던데 저 처년 어쩌면 저렇게,,,,,, 동네 여자들이 누나를 두고 하는 얘기였다.

누난 여태 안 들어왔냐?

아버지 물음에 재구 청년이 받았다.

더 있어야 올걸요. 요즘 수출품이 늘어서 야간 작업을 한다던데요.

재구 청년의 여동생이 누나와 함께 그 공장에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네들은 남매가 남의 방 한 간을 세내어 살고 있었다. 미년 전 시내에서 그 어머니가 교통 사고로 죽은 뒤 천애 고아가 되어 우리 산동네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재구 청년은 사람이 신실해 뵈고 실상 부지런했다. 아버지처럼 도깨비 시장 장사꾼이었다.

자네 그럼 지금 가서 밥을 해먹어야겠군.

아니에요. 개가 아침에 다 해놓고 간 걸요.

먼저 올라가게.

그렇게 말해놓고 아버지가 문득 뒤돌아 섰다. 나 또한 아버지의 짐 자전차를 멈춰 세우며 뒤돌아보았다. 산동네에서 내려다보는 시가지의 밤 풍경은 아름다왔다. 어둠이 모든 잡스러운 것을 덮어버린 뒤 그 어둠의 한 부분을 밝히기 위해 켜진 수만 개의 불빛이 점점이 현란해 보였다. 멀리 공장 지대의 높은 굴뚝 꼭대기 위에 설치된 야간 신호등이 마치 서로 장난하듯 이쪽저쪽 번갈아 깜박거렸다. 빨간빛과 파란빛이 거리감에 환각을 일으키면서 차가운 밤하늘에 명멸하고 있었다.

누나는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때 학교를 스스로 포기했다. 아버지가 자신이 쓰는 칼에 손가락을 잘려 얼마동안 장사를 못할 때였다. 그네는 굳이 공장에 들어가 일하는 길을 택했다. 4년 동안 한 공장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단 한번도 직장에 대한 나고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다만 그네의 표현대로 너무너무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너무 재미있게 사는 세계가 있을 뿐이었다. 누나가 보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온통 신기하고 그렇게 신기한 만큼 감동이 있고 보람이 오는 것이었다.

아버지, 이제 그만 들어가요.

나는 아버지의 눈이 아랫동네를 지나 아주 더 먼 데, 아버지만 아는 어떤 세계에 머물러 있음을 알아냈다. 아버지는 장사꾼답지 않게 가끔 이처럼 멍청한 구석을 보여주곤 했다. 형이 싫어하는, 그래서 집요하게 캐내려 하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이런 면이었다.

아저씨, 이거 정말 잘 먹겠어요.

어머니한테서 생선 두어 마리를 받아든 수경엄마가 아버지한테 인사를 했다. 수경네는 우리 집의 방 하나를 세내어 살았다. 우리가 여기 방 세 개뿐인 산동네 12평짜리 무허가 주택이나마 사고 이사오던 5년 전부터 죽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어지간히 운이 나쁜 집이었다. 수경아버지는 택시 운전사였다. 5년 동안 세 번의 큰 사고를 냈다. 운전대를 잡은 날보다 유치장이나 집에서 빈둥거리며 쉬는 날이 더 많았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수경이네가 내는 방세를 결코 옥 지 않았다. 이제 수경엄마는 방세 같은 것은 내지 않아도 되는 걸로 알고 있었다. 우리가 조금 더 큰 집을 사고 갈 때 함께 갑시다, 아버지가 말하곤 했다.

아저씨, 새 시장이 곧 문을 연다면서요?

, 이제 다 지었으니 곧 문을 열겠지요.

아버지는 쪽마루에 걸터앉아 발을 씻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 새 시장이 문을 열면 그럼 도깨비시장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요?

우리두 거기서 그냥 장사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당국에다 진정서를 냈으니까 무슨 수가 생기겠지요.

띄엄띄엄 대답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매우 무겁게 들렸다.

새 시장 사람들이 가만 있지 않을 거 아녜요?

그렇지요.

아버지는 걸레에 발을 닦은 다음 방으로 들어갔다. 요즘 새 시장 얘기만 나오면 우정 자리를 피하는 아버지였다.

도깨비 시장 사람들이 모두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도깨비 시장은 천민동 10만에 가까운 사람들의 젖줄과 같은 곳이었다. 천민동은 철거민촌 혹은 난민촌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거지촌 또는 우범지대라고도 했다. 그런 사람들이 엉겨 살았기 때문이다. 시내 곳곳에서 무허가 판자집을 헐렸거나 시골에서 논밭 팔아 상경한 사람들이 돈 다 털어먹고 이리저리 떠돌다가 마지막 정착한 데가 바로 천민동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십여 년 전 모여들어 산자락이나 사태난 하천부지에 천막을 치고 터를 잡아 앓은 뒤 그 천막 쳤던 자리를 나중에 점유권을 얻었다가 다시 불하를 받는 식으로 나눠 받아 게딱지 같은 집을 지어 이룩된 동네였다, 그래도 이런 집들은 버젓이 소유권이 인정된 것이다.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산비탈에 무허가 집을 짓고 살았다. 중구난방으로 무질서하게 들어선 집들은 매년 헐린다 헐린다 하면서도 4년마다 한 번씩 있는 국회의원 선거바람에 그 생명을 겨우 버텨오는, 말하자면 약간 특혜를 받고 있는 치외법권에 해당하는 지역이기도 했다. 10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다가 조금 형편만 피면 미련 한쪽 두지 않고 훌훌 빠져나갔다. 그러나 떠나는 사람보다 들어오는 사람이 더 많았기 때문에 인구는 엄청나게 불어갔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학교니 극장이니 제법 번듯한 건물도 들어서면서 사는 형편도 조금씩은 피는 셈이었다,

이러한 천민동 한가운데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이 도깨비 시장이었다. 이 시장의 생리는 우선 시중보다 물건값이 헐하고 질보다는 양이 많아야 잘 팔렸다. 없는 게 없는데다가 갖가지 웃지 못할 일, 믿기 어려운 일이 곧잘 벌어지는 데가 바로 도깨비 시장이었다. 처음은 노점(露店)으로 시작된 것이 조금씩 돈 모은 사람들이 노점 곁 집들을 개조해 점포로 꾸미면서 그런대로 시장 규모를 갖추긴 했어도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구석이 없는 전근대적인 무허가 시장에 불과했다. 어떻든 시장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한결같이 사람이 들끓어 그런대로 흥청흥청 경기가 좋았다. 약삭빠른 사람은 제법 치부도 했고 밑천이 딸리는 영세상인들을 상대로 사채를 놓아 톡톡히 재미를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버지는 도깨비시장 입구 다릿목에서 생선장사를 했다. 시장이 형성될 무렵부터니까 이제는 도깨비시장의 터줏대감이나 다름없었다. 새벽 네 시쯤 짐 자전차를 끌고 집을 나와 먼 시중의 어물시장에 나가 생선 몇 궤짝을 받아다가 다릿목 땅바닥에 벌려놓고 팔았다. 아버지한테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줄까지 서 기다리기도 했다.

생선은 다릿목 그 장수한테 사야 싸고 물 좋은 걸 사요.

이 정도로 소문이 나 있어 생선은 날개 돋친 듯 팔렸고 생선이 다 떨어져 사지 못한 사람은 다음날 아버지한테 사기 위해 그날은 아예 빈 바구니로 돌아갈 정도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버지는 물 좋은 생선만 팔았다. 그리고 친절했다.

단 한 마리를 흥정해놓고 그것을 전을 떠달라고 해도 아버지는 군소리 없이 척척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밸을 따고 지느러미와 꼬리를 쳐낸 다음 손님이 원하는 대로 정성껏 처리해 싸주었다. 통나무로 된 생선 도마를 항상 깨끗한 물로 씻어 냈으며 도마질을 하는 아버지의 칼 솜씨 또한 날렵하기 일품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정직한 장사를 했다는 것이다. 욕심이 없는 장사꾼이었다. 생선 값이 항상 시중의 어디보다 헐했다. 그것은 손님을 끌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해 보이는 얕은 수작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시샘을 해 펄쩍 뛰던 같은 장사꾼들도 차츰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면서부터 별 투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김씨, 그 돈 벌어 다 어따가 쌓아놓았수?

김씨, 그러다간 국회의원 나가두 되겠네.

아버지 곁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농담 삼아 비양거렸다. 물론 아버지가 십 년 동안 그 다릿목에서 맨날 그 꼴로 돈을 모으지 못한 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를 겪어본 사람들은 누구나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거 참, 알 수가 없는 사람이군. 아버지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은 컸다.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만큼 자기들 생각대로 하면 엄청 돈을 벌 수 있는데도 아버지가 우정 돈을 피해 가는 듯한 생활 태도가 도저히 납득이 안 간다는 그런 얼굴들을 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하루 내내 생선장사만 하는 게 아니었다. 새벽에 생선을 받아다가 아침나절에 다 팔아버린 다음 다시 저녁에 아침 장사의 반도 안 되는 생선을 떼어다가 팔면 그만이었다. 아버지에겐 아침 저녁 장사를 하는 시간을 배면 하루 대여섯 시간의 공백이 있었다. 바로 그 시간이 아버지가 남을 위해서 사는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손님이 많아 절절매는 사람들을 잠깐씩 돌봐준 다음 시장 여기저기에 쌓이기 시작한 쓰레기를 모아 리어카에 실어 나르는 일을 했다.

아저씨, 우리 변소가 차서 넘치는데 좀 쳐주실래유?

김씨, 우리 지붕이 새는데 좀 들어가 봐.

아저씨, 우리 연탄 아궁이 좀 봐주고 나오세유.

이처럼 시장사람들은 아버지를 찾았다. 남들이 손이 모자라 어떻게 할 수 없는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게 아버지의 생활이었다. 시장사람들 집에 초상이 나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가 장의사사람들 손을 빌지 않고 아버지가 직접 염을 하는가 하면 그 장사가 다 끝나면 뒷 설겆이까지 해주었다. 그렇다고 앞에 나서서 난 체 떠벌이며 법석을 떠는 게 아니라 뒷전에서 남들이 잊고 있는 일을 차근차근 서두르지 않고 해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당장은 아무도 아버지가 그런 어려운 일을 도와주었다는 것를 알지도 못하고 지냈다가 어느 날 문득 그러한 궂은 일을 도맡아 해준 것이 바로 아버지였다는 걸 깨닫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생활 터전인 그 도깨비 시장에 어떤 커다란 변화가 올 조짐이 약 1년 전에 나타났다.

김씨, 여기다가 도장 하나 찍으시오.

시장에서 돈깨나 모았다고 알려진 홍성 철물상 주인과 사채놀이로 치부를 한 우진 금고 사장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산동네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올라왔던 것이다. 그들은 아버지 앞에 무슨 서류를 내밀어 보이면서 말했다.

우리 천민동 일대가 재개발지구로 지정이 돼 이제부터 대대적으로 발전이 될거란 그 말씀이야. 진작 그랬어야 될 일이지. 그래서 이번엔 우리도 정부 지원을 받아 가지고 설라므네 최현대식 시장을 하나 근사하게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 말씀이야.

이미 당국의 허가까지 받아 놓았다구.

다른 사람이 거들고 나섰다.

이제 문제는 천민동 사람들이 일심 단결해서 좋은 시장을 하나 만드는 일만 남은 거지.

시장을 짓다니요?

그래요. 정식으로 인가를 맡은 새 시장을 만든다 이 말씀이야.

지금 있는 시장은 어쩝니까요?

, 그거야 언제고 어차피 헐릴 무허가 시장이 아니오. 잘은 모르지만 이번 재개발지구 일차 정비사업상 무사치는 못할걸.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 지금 있는 시장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다가 새 시장을 짓겠구먼요?

아버지 말에 그들은 서로 마주보며 어이없다는 듯 킥킥 웃었다.

그거야 나중 문제고 우선 여기다가 도장이나 찍으슈.

이게 뭡니까요?

우리 -현대시장추진위원회-에서 김씨를 특별히 같은 추진위원으로 모시기로 의논들을 했다 그 말씀이야.

도깨비 시장에서 노점을 하는 사람으론 김씨가 유일한 자격을 얻은 거요.

어이구. 저한테 무슨 그런 자격이 있다구,,,,,,

아버지가 손을 내저었다.

글쎄 여기다가 도장이나 꾹 눌러요. 그 감사하단 얘긴 이담에 듣기로 하고 말씀이야,,,,,,

그러나 그날 아버지는 끝내 도장 찍기를 사양했다. 찾아온 사람들이 별소릴 다 늘어놓아도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거 참, 김씨 고집 한번 대단허군 그래. 도대체 김씨 고향이 어디요?

강원돕네다.

강원도 어디? 나도 거기 사람이오.

뭐 여기저기 떠돌며 사느라,,,,,,

아버지가 우물우물 얼버무렸다. 항상 그랬다. 누가 아버지의 고향을 캐물을 때마다 여기저기 옮겨 사느라 고향이라고 못박아 말할 곳이 없노라 대답했다. 아버지의 정확한 고향을 모르기는 우리 남매들도 매한가지였다. 본적 이 서울로 옮겨져 있긴 했지만 원적지가 서울 아닌 다른 데인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나 하나만 서울 출생이고 누나와 형은 시골에서 낳았다. 누나와 형의 출생지도 각기 달랐다. 아버지가 갓마흔에 낳았다는 형 자신도 자신이 나서 자란 곳에 대해서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고향에 대해서 입 다물기는 어머니 역시 매한가지였다. 그 사실이 형의 분통을 터뜨리는 것 중의 하나였다. 형은 뿌리가 없는 아버지한테서 자신이 태어난 것을 몹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도대체 우린 친척도 하나 없단 말예요?

형은 가끔 으르렁거렸다.

난리 때 다 죽었다.

어머니의 대답은 고작 그것이었다.

김씨 정말 콱 맥힌 사람이군. 다 당신 위해서 하는 일인데 왜 마다하는 거요?

아버지가 끝까지 버티니까 홍성 철물상 주인과 우진 금고 사장은 나중에 엄포까지 놓았다.

당신 나중에 딴소리 했다간 읎어!

정 그렇다면 협조 안 해도 좋은데 오늘 이 얘기만은 아주 안 들은 거로 해줬음 좋겠다 이 말씀이야. 큰일을 하자면 별 우스운 게 다 걸리적거려 말썽을 부리는 수가 많거든. 아뭏든 김씨 입 딱 닫고 계셔.

아버지가 -현대시장추진위원회-에 껴들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들이 끼리끼리 흉계를 꾸며 일을 벌인 바람에 그것으로 해서 숱한 사람이 가슴을 치게 되었던 것이다. 시중에 돈 있는 사람을 끼고 천민동의 버려진 하천 부지를 불하 맡아 가지고 새 시장을 지을 꿍꿍이를 꾸몄던 것이다.

그 장소가 바로 도깨비 시장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 턱밑이었다. 한 동네에 시장 두 개가 생기게 되었다. -현대시장추진위원-들은 다 제 잇속을 따져 끼리끼리 모인 돈 있는 도깨비시장 출신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가게 터를 다른 사람에게 비싼 값으로 팔아버린 뒤 시치미 딱 떼고 그런 일들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아저씨. 이건 너무 원통해서 못 살겠어요.

도깨비 시장이 철거된다는 소문이 확 퍼지자 재구 청년이 아버지를 찾아왔다. 그는 3년 전 홀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고 그 위자료를 받아내어 그것으로 도깨비 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벌였다. 차띠기를 해 돈을 좀 늘였다. 공장에 다니는 그 여동생도 월급을 타 꼬박꼬박 보탰다. 남매가 남처럼 입지 못하고 먹지 못하면서 모은 돈이었다. 그 돈도 부족하여 남의 돈까지 얻어 점포 하나를 샀다. 그리고 그 점포에 물건을 들여놓을 힘이 안돼 우선 급한 대로 남에게 세를 놓았다.

그렇게 어렵게 장만한 점포인데 그것이 헐린다는 얘기였다. 그제야 속아 산 것을 알고 되팔려고 내놓았지만 산 값은 고사하고 대여하고 받아 쓴 전세값도 빼주기 어렵게 돼 있었다. 숫제 그 점포를 살 사람이 나서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된 재구 청년은 눈이 뒤집혔다.

그게 어떤 돈이라구, 이 개놈의 새끼 같으니라구.

점포를 판 사람을 찾아가 으르렁거렸지만 그쪽에서도 전연 몰랐던 일이라고 시치미 떼는 데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저씨. 그 새끼들 원술 어떻게 갚아야 이 속이 확 풀리죠?

참아야 하네. 원통하다고 분수없이 날뛰다간 되려 일생을 망치는 게야. 뒤에 후회해봤자 그땐 이미 늦네. 그러나 돈은 또 벌면 되는 게야.

이젠 돈두 다 싫고 속은 게 분해서 이가 갈릴 뿐입니다. 그 새끼도 새 시장을 짓는 데 한몫 끼었대요.

어떻든 더 두고보세. 새 시장을 짓는 사람들도 다 그만한 생각들이 있어서 시작한 게고. 그러니까 당국에서 허가도 내준 거 아니겠나. 다 대책이 있을 걸세. 두고봄 알겠지만서두 그렇게 무경우하게 도깨비시장을 철거하진 못할 걸세.

그러나 바로 턱밑에 현대시장이 세워지기 시작하면서 도깨비시장 사람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여기서 장사를 해봤자 고작 몇 개월이라는 생각에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짓고 있는 새 시장 사무실을 찾아가 미리 점포 임대를 계약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었다. 대부분 갔다가 고개를 내저으며 되돌아오곤 했다. 이미 좋은 자리는 추진위원들이 다 나누어 맡았는가 하면 구석에 남아 있는 것도 임대 조건이 무척 까다롭고 거기다가 엄청난 프레미엄까지 붙어 있었던 것이다.

도깨비시장 사람들은 점포를 가진 사람이든 노점을 벌인 사람이든 모두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무슨 대책위원회를 만들자고 쑹쑹거렸다, 저녁이면 그들이 아버지를 찾아와 아버지 의견을 묻곤 했다. 그때 홍성 철물상 주인과 우진 금고 사장이 아버지를 찾아와 도장을 찍으라고 하던 그 속셈이 헤아려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도깨비 시장 사람들이 찾아와 어떻게 하는 게 좋으냐고 다그쳐 물어도 별 신통한 답을 주지 못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말 한마디가 그들을 불붙이는 빌미가 될까봐 그것을 겁내고 있는 것처럼 조심성을 보였다.

가서 머릴 싸매고 싸우는 거야. 시장을 짓지 못하게 막고 농성을 치다가 보면 당국에서도 우리 사정을 알게 될 것이고,,,,,,

맞아, 그거야. 진작 그렇게 나갔어야 하는 건데,, ,..,

젊은 사람들이 주먹을 부르쥐고 으르렁거였다.

그건 순서가 틀려요.

아버지가 중간에 껴들었다.

그렇게 해선 안 됩니다요. 그런 방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그럼 김씨 아저씬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얘깁니까?

우선 당국에다가 진정서를 내서 우리 도깨비시장 사람들 입장을 알려야 해요. 새로 짓는 시장에 우리 도깨비 시장 사람들이 몇이나 들어가고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하는 영세상인들. 특히 노점을 보아 그날그날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가를 자세히 조사해서 알릴 필요가 있어요. 이러저러한 실정이니까 우리 도깨비시장을 단 몇 년간이라도 그대로 존속시켜달라. 그렇지 못 할 땐 다른 어떤 대책을 강구해 주십사 하는 기런 진정서 말이지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게 좋겠구먼요. 그럼 김씨 아저씨가 그런 내용으로 좀 써보세요. 도장은 우리가 받을 테니까,

아니지요. 난 그런 걸 못 써요. 일자무식의 까막눈이 그런 걸 어떻게 씁니까. 그건 사법대서소 같은 데 가서 써야 합니다. 격식을 갖춰야 하니까요.

아버지 얘기가 맞았다. 아버진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늘 부끄러워하는 아버지였다. 이 세상에서 젤 무서운 게 사람 무식한 게여. 그랬기 때문에 아버지는 법을 존중했고 그 법을 따르는 격식을 지키려고 애를 썼다.

격식 좋아하네,

아버지와 함께 도깨비 시장 사람들이 밖으로 나간 뒤 방안에서 연해 코방귀만 날리고 있던 형이 비양거렸다.

오빠, 제발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말아요.

누나와 형은 도깨비 시장의 해결 방법을 놓고 서로 티격태격했다.

, 이제 와서 진정설 쓴다고? 증말 웃기구 있네.

그럼 오빤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거야?

방법은 둘이다. 한꺼번에 왕창 일어나 시장 짓는 데로 몰려가 즈덜 배때기만 생각하는 새끼들을 짓밟아놓고 오던가------

이처럼 형은 다혈질이었다. 자기 힘으로 대학을 다니는 그런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편견과 객기에서 오는 배배꼬인 심사가 바로 그의 다혈질로 나타났다.

또 하난?

누나가 턱을 괸 채 형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짓밟아줄 용기가 없으면 아예 강한 쪽에 무릎을 꿇고 살려 달라고 싹싹 비는 거야.

형이 바로 자기 자신을 얘기하고 있었다. 형은 내면이 부글부글 뭔가에 의해 끓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밖으로 터져 드러내기를 겁내고 있었다. 이를테면 아버지에 대한 그 적대감을 제 속에서 삭이느라 괴로워 할 뿐 단 한번도 아버지에게 맞대놓고 대든 적이 없었다. 형은 그처럼 단순하고 소심했다. 그가 대학에서 주는 장학금에 그처럼 연연해하고 교수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안달하는 것은 자신이 현실에 적응해서 거기서 삶의 어떤 뿌리를 찾고자 하는 소박한 소망 때문이었다.

형의 꿈은 많은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능력을 정정당당하게 평가받는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의 어떤 커다란 것에 보탬이 되고 있다고 확신하는 긍지였다. 우선 그는 그의 전공인 전자 공학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분야의 인재를 구하고 있는 국영 기업 채용 시험에 응했던 것이다. 방위 산업체인 그 기업에만 들어가면 군 복무 3년까지 면제받는 특혜가 있었다. 형은 그 3년을 중요시했다. 그 동안 자신의 능력이 인정받을 수 있다고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오빠, 오빠처럼 그렇게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한다는 것은 일종의 기회주의자야.

, 지혜야, 그럼 넌 그 두 방법 중에서 어느 걸 택할 거냐?

누나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난 오빠가 말한 그 두 가지 방법이 다 좋지 않다고 봐.

그럼 넌 어떻게 할 거냐?

난 말이야. 오빠. 새 시장 사람들하고 도깨비 시장 사람들하고 서로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 만나 가지고 서로 얘기를 나누는 거야. 서로의 입장을 얘기하고 듣고------

, 웃기지 마. 그건 이상론이야. 현실은 달라.

오빠, 이 세상이 발전해 가는 것은 그러한 이상의 힘이야.

그러나 이번 도깨비 시장의 경운 달라. 기름과 물이야.

오빠. 기름과 물은 다 액체야. 오래 있으면 다 녹아서 섞이게 돼. 그처럼 대화를 오래 나누다보면 이해의 범위가 넓어져.

한쪽은 어떻게든지 더 많이 뺏으려고 머릴 짜내고 다른 한쪽은 되도록 안 뺏기려고 버둥거리고. 그건 결국 대화가 아니라 싸움이야. 싸움에선 결국 정복과 굴복이 있을 분이야.

대화를 갖는다는 갓은 오히려 그 반대예요, 오라. 서로 얘기를 나누다보면 뺏는 쪽은 조금 양보해서 덜 뺏게 될 것이고 또 뺏기는 쪽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뺏기는 게 아니라 줄 것을 주는 것이라고 양보해서 생각하게 된단 말예요. 결과는 양쪽에 다 유리한 거예요.

누나의 얼굴이 발그레 상기돼 있었다. 그처럼 누나의 표정은 진지했던 것이다.

 

오늘 신원조회 안 왔어요?

형은 며칠째 밖에서 들어오는 길로 그 소식부터 물었다.

아무도 안 왔었는데,,,,,,

파출소에서도 연락이 없었구요?

파출소? 거긴 왜?

어머니의 얼굴빛이 달라지며 허둥거렸다.

신원조횔 거기서두 하거든요.

안 왔었어.

그럴 때마다 형은 맥빠진 얼굴을 했다. 그만큼 초조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형은 그 국영 기업체 채용 시험 1차에 합격했던 것이다. 2차 시험은 신체 검사와 면접이었다. 신체 검사와 면접까지 끝낸 형은 그것도 자신이 있다고 했다.

문젠 신원 조회야. 거기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는 건 바로 그것 때문이야. 그만큼 중요한 연구를 하는 데거든, ,,,,

신원 조회 문제에 있어 형은 거의 노이로제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3때 사관 학교 시험 1차에 합격하고 2차 최종 합격자 명단에 빠지고 부터 형의 그 증세는 악화됐다. 자기가 최종 합격자 명단에서 빠진 것은 원적지까지 내려가는 그 신원 조회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적의를 품게 된 근본 유인도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때도 형은 폭발 직전의 상태에 있었다. 집안 공기는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웠었다.

오빠, - 해봐.

그때 고 1인 누나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형을 일으켜 앉힌 다음 웃으면서 말했다.

오빠, 충치가 세 개가 있구나.

내가 뭔 충치가 있다구,,,

형이 마지못해 투덜거렸다.

아니야, 오빠, 이쪽 어금니 두 개하고 또 이쪽에 하나,,,,,,

누나는 형의 볼을 토닥여주면서 다시 말했다.

오빠. 그거라구. 범인은 바로 충치였다니까.

그래, 이 충치도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거다.

형이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누나가 그 이불을 곱게 펴주며 나한테 싱긋 웃어 보였다. 누나가 학교를 그만둔 것도 그때였다. 형의 사관 학교 불합격 소식과 함께 그날 아버지가 그 날렵한 칼 솜씨에도 불구하고 왼손가락 두개를 칼로 친 실수를 했던 것이다. 그날 아버지의 생선은 온통 피로 물들었다.

 

도깨비 시장 영세민들이 작성해 올린 진정서는 흐지부지 어떤 뚜렷한 반응을 가져오지 못한 채 새 시장의 개장을 앞두고 있었다. 시장 진입로를 확장하는가 하면 시장 옆 개천에 제방이 튼튼하게 쌓이는 등 그런대로 의연한 본새의 현대식 시장이 세워졌다. 시장 옥상에는 고성능 방송 스피커가 설치되어 하루 종일 유행가를 뽑아대는 틈틈이 새 시장을 안내하는 방송이 도깨비 시장까지 정정 울려 왔다. 물론 도깨비 시장의 손님들을 겨냥하고 하는 수작이었다.

그 동안 도깨비 시장의 큰 점포들은 문을 닫고 새 시장으로 옮겨갔다. 처음 건물을 지을 때보다 임대료가 배나 올라 있어 이제 다른 사람들은 엄두도 못 낼 형편이었다. 어쨌든 점포 주인은 있되 그것을 임대 내어 장사를 할 사람이 적어 시장이 반쯤 채워진 채 개장을 했다. 시장 안의 너른 노점대는 텅텅 빈 채였다. 도깨비 시장의 노점들이 그리로 흡수되어야 할 것인데 누구 하나 그리고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 들어갈 돈이 있으면 우리 식구가 몇 달은 놀고 먹겠다.

정말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라 큰 밑천을 넣어 장래를 내다볼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대로 현대 시장에는 사람들이 몰렸다. 개장 기념으로 시장 옆 공터에서 노래 자랑 대회까지 열었다. 물건을 사는 사람에게 경품권과 기념품이 주어졌다. 조금 생활이 핀 사람들은 좋은 물건을 사려면 현대 시장으로 가야 한다며 도깨비 시장을 지내놓고 그리로 갔다.

이거 야단났구먼!

도깨비 시장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현대시장이 개장되면서 손님이 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매상은 종전의 반도 안되었다, 큰 물건을 팔아주는 단골들이 현대시장으로 몰린 때문이다. 시장이 헐린다 안 헐린다가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오늘 입에 풀칠할 길이 막막했다.

이거 어떻게 한다죠?

아버지가 시장을 배회하고 있었고 노점상들은 아버지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좀 기다려봅시다. 며칠만 그런대로 견뎌봐요.

아버지 말이 맞았다, 정말 단 며칠이었다. 도깨비 시장에 몰리는 사람들이 전이나 다름없게 된 것이다. 현대 시장으로 몰린 것은 꼬기심이었던 것이다. 천민동 사람들은 아직 정연하게 진열된 상점대에서 물건을 고르는 일에 익숙하지 못했다. 공연히 바가지를 쓸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섰다. 역시 마음놓고 물건 뒤적이며 값 깎아 내리기 좋은 도깨비 시장 생각이 난 것이다. 그 도깨비 시장의 햇빛에 그을은 노점상 아낙네들한테서 귀부인으로 떠받들여지던 그런 우쭐한 기분을 잊을 수가 없었다. 거짓말같이 그들은 돌아왔다. 비로소 도깨비 시장 사람들 얼굴에서 그늘이 걷혔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구먼. 그러면서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아버지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구름이 껴 있었다. 우리 식구들은 그 구름의 의미를 알았다. 아니나다를까 구름이 비를 내렸다. 엄청난 돈을 끌어들여 신설한 현대 시장 측에서 가만히 앉아 파리만 날릴 턱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직접 나서서 어떻게 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 현명한 사람들이 계획한 일에 차질이 생길 까닭이 없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구.

도깨비 시장 사람들은 닥친 일에 차라리 체념한 얼굴로 멍청해졌다. 시장 지역이 재개발지구로 지정돼 겨울 안으로 정비사업을 벌인다는 내용과 함께 해당 지역의 무허 건물은 일제히 자진 철거하라는 철거 계고장이었다. 기한 안에 자진 철거를 할 경우 소정의 철거 보상비가 지급된다는 내용이 첨가된 계고장이 시장 점포마다 배달되었다. 아무 때고 한 번은 치를 홍역이었지만 이렇게 느닷없이 닥쳐 오리라곤 생각 못했던 것이다. 막상 철거 계고장을 받아든 도깨비 시장 사람들은 하늘을 쳐다보고 한숨을 뿌렸다. 그 한숨이 시장 한가운데 노점상들에게 전염이 돼, 이제야말로 생활 근거지를 잃게 된 노점상들은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동작이 빠른 사람들은 미리 현대시장 진입로로 내려가 보따리를 풀었다가 그 시장 경비원들에게 쫓겨 되돌아오기도 했다.

어떻든 도깨비 시장 사람들은 자진 철거하라는 기한이 다가오고 있어도 누구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과거 자진 철거도 해보았고 강제 철거도 당해본 그런 사람들인지라 두둑한 배짱을 가지고 버티는 데서 얻는 잇속 같은 것도 계산에 넣고 있는 듯싶었다. 더구나 겨울에 접어든 지금 자진 철거를 해봤자 그 보상비 가지고는 다른 데 점포를 얻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

그런데 사태는 사뭇 다급해졌다. 어느 날 새벽에 노점상들이 보따리를 들고 나와보니 시장 한가운데가 파헤쳐지고 있었다. 불도저가 밤중에 작업을 시작한 것이었다. 계획대로 8미터 새 도로가 뚫리고 있었던 것이다. 파헤쳐진 양옆 점포들은 드나들기도 힘들게 돼 있었다. 흙먼지가 몰아쳐 가게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멋모르고 시장엘 나왔던 아낙네들이 그 흙먼지에 놀라 현대시장 쪽으로 달음질쳤다. 그뿐인가, 시장으로 들어가는 골목이 하수도 공사를 한다고 모두 파헤쳐져 사람들은 아예 도깨비 시장 쪽으로 근접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 막힌 골목마다 도깨비 시장의 노점상들이 리어카나 노점대를 들고 멍청히 서서 불도저의 작업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 아제 도깨비시장은 끝장이었다. 거기다가 날씨마저 갑자기 드르르 추워져 혹한이 예상되는 겨울의 문턱이었다.

 

아저씨, 현대 시장 옆에 난장이 섰다면서요?

옆방 수경이 엄마가 다른 날보다 늦게 나가는 아버지를 향해 묻고 있었다.

그렇게 됐지요.

현대 시장 사람들이 가만히 안 있을 텐데요?

거 뭐,,,,,,

아버지는 입안의 소리로 말미를 죽이며 자전거를 끌어내는 기척이었다.

그날 오후 나는 누나와 함께 도깨비 시장 노점상들이 난장을 벌였다는 현대 시장 옆 빈터를 나가보았다. 지난번 시장 개장 기념으로 노래 자랑을 벌이던 곳이었다. 거기 난장이 서고 있었다. 꼭 시골 장터 같았다. 여기저기 천막이 켜 있고 한 옆으로 리어카, 그 한쪽에는 김장 시장이 이뤄져 있었다. 먼저 도깨비 시장 규모보다야 훨씬 못했지만 그런대로 사람들이 버글거렸다.

재숙이 오빠두 저기 있구나.

재구 청년을 찾아낸 것은 누나였다. 천막을 하나 치고 그 밑에서 옷가지를 늘어놓고 팔았다. 김장철에 하던 채소장사를 집어치우고 이젠 옷 장사로 바뀌어 있었다. 속아 산 점포에 세 들었던 사람이 장사를 못하게 됐기 때문에 그 전세값을 빼주느라 또 빛을 졌다고 재숙이가 누나한테 말하더란 것이다. 그 옷가게 앞에 아낙네 서넛이 앉아 옷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 점방을 자진 철거했다면서?

내가 물었다.

그랬대. 그 철거 보상비라도 타자고 재숙이가 떼를 썼대.

지난번엔 이를 갈면서 금방 누굴 죽일 것처럼 으르렁거리더니, 역시 심약한 사람이군.

내가 비꼬아 주었다.

잘한 일이지 뭐. 착하게 사는 게 이기는 거야.

그런데 우리 아버진 착한 일을 많이 하는데 왜 돈을 못 번다냐?

누나가 웃었다.

얘는! 너무 착한 일만 하시니까 돈을 못 버신 거지. 그게 이기는 거라니까 그러네.

누구한테 뭘 이긴다는 거야?

아버지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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