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단편소설3

4. 고려장

by 자한형 2022. 4. 14.
728x90

고려장(高麗葬) -전상국

 

현세가 그 정신 병원을 찾아간 것은 (막판에 가서 한번 해볼 수도 있는 방법)을 결행하기로 마음을 굳혀 버린 뒤, 아직도 마음 밑바닥을 송곳처럼 쿡쿡 쑤시고 올라오는 가책으로부터 자신을 건져 올리기 위해서였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것은 마치 욕조 속의 물이 얼마나 뜨거운가 확인하기 위해 손을 넣어 보듯 그 일을 좀더 완벽하게 해치우기 위한 사전 탐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신영원이란 선입감과는 달리 그곳은 정결하고 조용했다. 현세가 만나볼 수 있었던 그 의사 역시 병원의 나른한 분위기처럼 여유가 있어 뵈고 깨끗한 인상이었다. 그리고 친절했다. 상대편의 마음을 샅샅이 읽어내려는 유도적 화술이 몸에 밴 그런 친절이었다. 좀처럼 자기 의견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떠들어라, 나는 다 알고 있다 - 그런 느긋한 표정이었다.

환자가 칠십 고령의 노파라는 말에도 고개만 가볍게 끄덕거렸다. 발병한 지 3년에, 요즘 와서는 요강 속의 오줌을 간장 독에 쏟아 붓는다든가 밤을 꼬박 새워 아들 내외의 머리맡을 지치고 앉았지 않으면 잠든 아이들 목을 눌러 질식시키는 게 보통일 정도로 심한 증세라는 말에도 그는 별 표정을 보리지 않았다. 이따금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보이는 게 고작이었다.

초조해진 것은 현세였다.

"의사 선생님, 어떻습니까, 별 가망이 없지요?"

현세는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마음 밑바닥에 숨기고 온 음모의 한 귀퉁이를 드러내 보인 느낌이었다. 그러나 의사가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세는 더 허둥거렸다.

"나이도 많고--- 아무래도 힘들겠습죠? 역시 환자를 직접 보시는 게---"

의사가 힐끔 현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실례의 말씀이지만. 선생님께선 이미 자당님의 병에 대해서 절망적인 견해를 확고히 하고 계시는군요."

현세는 수치감으로 해서 아무런 말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의사가 현세 쪽으로 몸을 약간 돌리며 다시 말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문젭니다. 즉 우리 입장에서 볼 때, 환자의 중세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그 환자의 가족들의 사고방식도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

건방진 의사였다. 병에 대해서 상담하러 온 손님에게 지레 힐책까지 주고 있는 그 건방진 의사가 현세는 무서웠다.

"물론 괴롭겠죠. 하지만 가족들이 마음을 크게 다잡아먹고 끈기 있게 기다리지 않으면 좋은 결과는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을 겝니다."

횐 벽에 걸린 원형의 온도계는 22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현세는 땀이 밴 손바닥을 바지에 닦았다.

그때 그 한의원의 의사도 그런 뜻으로 말했다. 불교 신자이기도 한 그 한의사는 첩약과 함께 한문으로 두어 줄의 글귀를 적어 주면서

- 별수 없어요, 댁의 어머니 병은 댁의 정성에 달렸습네다. 뎡든 부모에 효자 없다곤 하지만, , 그 부모 없음 그 자식이 어떻게 생겼어.

몇 달간 있는 정성을 다해 한약을 달였다. 약을 달이는 그 정성도 문제지만 그 달인 약을 먹게 하는 일은 더욱 힘들고 또한 역겹기까지 했다. 몇 시간 공들여 달인 약을 방바닥에 쏟아 붓기가 예사였다.

"니 연놈들이 날 독약 멕여 죽일라구 그런다만,,,,,,"

어떻게 천신만고 약을 먹인 다음에는 현세 내외가 모친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한의사가 적어 준 주문을 왼다. 그것도 큰소리로 모친 귀에까지 들리게 해야 한다. 수천 수만 번 반복해야만 효험을 볼 수 있다는 거였다. 그렇게 몇 달이고 정성껏 그 글귀를 모친 귀에 대고 외었다. 그러다가 보면 환자가 그 글귀를 저절로 입에 올리게 되는데 바로 그때부터 약의 효험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지도총관 명도유신,,,,,, 이런 아리송한 글귀를 외고 앉았다 보면 날이 새곤 했다.

어떤 때는 그네가 벌떡 일어나

"니 연놈들이 이 에미 빨리 죽으라고 이 지랄들이재?"

하면서 잠깐 눈을 붙이기 위해 곁에 누운 아이들 엄마를 타고 앉아 목을 눌러댔다. 그리고 절간 출입도 엔간찮이 했다. 현세가 가지 못할 때는 아이들 엄마를 딸려 보내고 난 뒤 아이들하고 밥을 해 먹으며 밤을 새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중얼거렸다. 그러한 번뇌의 밤에 현세는 문득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라는 걸 생각하곤 했다. 원죄라는 그 인간 숙명의 뿌리가 선명하게 잡혀 왔다. 그러나 그것은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 타죄(墮罪)에 의한 은총 상실의 유전적 상태로서의 원죄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다가 어떤 한계점을 인식하는 순간 그 한계점 자체가 원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그 한계점 앞에서 인간이 행사할 수 있는 최소한도의 포용성마저 잃었을 때 빚어지는 갖가지 사태가 바로 인간 범죄의 시

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선생께선 자당님의 병환으로 해서 이미 그 방면에 우리 전문의 못지 않은 식견을 가지고 계실 것으로 압니다만......"

치적의 실내 온도 속에서 듣는 의사의 말소리는 음악처럼 감미롭기까지 했다. 의사는 회전의자에 더욱 안락하게 몸을 묻으며 말을 이었다

"원래 이 정신 질환 치통은 다른 어떤 병보다도 그 원인이나 양상이 복잡한 것입니다. 오늘날 띠 병이 의학의 대상이 된 역사 자체가 극히 짧다는 그 한 가지만 보더라도 이 병의 어려옴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더우기 정신병을 악마의 조화나 하늘의 형벌이니 또는 신의 계시라고까지 믿었던 중세기의 원시적이고도 종교적인 그 사고 방식은 과학 문명이 극에 이른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실정이니까요."

의사의 말을 통해 현세는 자기 자신이 그런 중세기적 사고 방식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했음을 새삼 깨달았다. 모친에게 악귀가 옮겨 붙었다는 무당들의 말이나 기도원 전도사들의 그 끈질긴 축귀 기도에 대해서 단 한번도 회의하거나 저항을 느껴보지 않은 것 같았다. 이런 맹목적 믿음의 상태야말로 자기 구원의 종교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처럼 간절히 구원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발병해서 거의 한 해 동안이나 모친의 병을 가로맡아 헌신해 온 두 누님들에게서 받은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었다.

오십이 넘은 제천 현세 큰 누님은 교육을 받지 못한 한국의 전형적인 시골 여자답게 으스스 귀기(鬼氣)까지 풍길 정도로 미신에 탐닉해 있었다.

그네는 칠십 고령의 실성한 노파를 끌고 치악산 용하다는 무당 앞에 들어가 달포씩이나 박혀 있다 나왔다, 자칭 무슨 도사라고 하는 그 무당은 어떻든 달포만에 현세 모친을 어느 정도 제 정신으로 돌려놓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과 며칠이었다. 큰 누님은 다시 부랴부랴 더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 나섰다. 그네 역시 칠순이 훨씬 넘은 시부모를 모신 어려운 처지였지만 (미쳐도 더럽게 미친) 친정어머니를 끌고 그네가 벌인 행각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큰 누님을 통해서 들은 무당들의 말은 한결같이 모친에게 원귀가 붙었다는 것이었다. 청춘에 죽은 원귀라 했다. 어떤 무당은 쪽집게로 집어내듯 이쪽 과거사를 들춰내더란 것이다, 그 원귀를 떼어버리고 돌아온 모친은 언제나 멍청한 얼굴로 집 안 식구들을 며칠 동안은 그럴듯하게 속여넘겼다. 큰 누님의 발길이 끊겼다. 무당이 다 된 그네 역시 식구들에 의해서 (미친 여편네)로 집에 갇혀 버렸던 것이다.

경기도 가평의 작은 누님은 뿌르르 달려오기가 무섭게

"미욱한 것들, 미욱한 것들!"

이처럼 혀를 차며 두 손을 모아쥐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불쌍한 딸)에게 끼어든 악마와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외면하고 무당을 찾아 나선 제천 언니에 대한 원망과 용서, 그리고 아직 하나님 앞에 나서지 않은 현세 내외의 죄악에 대한 성토까지 벌였다. 현세는 작은 누님의 그 광신 속에 숨어 있는 그 무서운 의지 앞에 몸서리쳤다. 그러나 그네의 그 무서운 열성도 모친의 초인적인 힘 앞에는 속수무책이기가 보통이었다. 그네의 안수 기도가 절정에 이르렀다고 생각되는 순간 현세 모친은

"이년이 사람잡는다아!"

이처럼 벽력같이 소리치면서 작은딸을 벽에 밀어 던지는 것이었다. 무서운 힘이었다. 그 무서운 힘은 용문산 기도원에서 구원 기도를 해주던 전도사의 생 이빨을 세 대씩 이나 부러뜨렸다. 뺨을 맞아 코피를 쏟은 (믿는 식구)들은 부지기수였다.

작은 누님은 시골 국민학교 교감인 남편에게서 이혼 위협까지 받으면서도 악마와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그네도 기도원의 그 고행 속에서 심한 위병을 얻고 나서야 제풀에 물러서고 말았던 것이다. 어떻든 현세는 그 두 누님들이 모친을 향해 쏟은 그 정성에 철두철미 매달렸었다.

그 기대는 그네들이 믿고 행하는 그 방법 자체라기보다 그네들의 모친을 향한 그 원시적 인간 유대의 극치를 보인 사랑의 힘에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 어떤 힘이 그네들로 하여금 그 인고의 회생을 견뎌내게 한 요인이었을까, 그네들 삶의 줄기를 이루어 온 그 맹목적 신앙 때문인가, 아니면 자식으로서 어차피 한번쯤 베풀어야 할 그런 의무감이 그런 식으로 위장되어 나타난 것일까. 언젠가 한번 슬쩍 스쳐간 생각은, 모친의 그 광증 자체에 어떤 마력 같은 게 있어서 그제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처럼 끌려든 것이 아닐까 하는 거였다. 그리고 현세는 그네들이 확신하고 생각했던 그 방법 자체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반론을 혈 엄두를 못 냈다. 그것은 그네들이 인간의 어떤 한계점을 보다 절대적인 것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그 순수한 열망에 감동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그네들의 그 열망은 재가 되어 사그라졌다, 설마 그 잿속에서 또 다른 빛이 살아 오른다고 해도 그것은 절벽 끝에 선 현세에겐 무의미한 것이었다. 현세는 이미 자기의 몸을 감고 있는 암울한 원죄의 뿌리를 보았던 것이다.

"우선 이 정신병의 원인만 하더라도 매우 복잡해서......"

현세가 다다른 막다른 현실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의사는 더운 공기로 해서 벌겋게 달아오르는 현세의 얼굴을 천천히 뜯어보면서 말했다.

"쉽게 말해서, 이 병의 원인은 대체로 정신적인 데서 오는 것과 신체적인 것, 그리고 유전성과 환경 이렇게 네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만, 선생 자당님의 경우는 역시 연세가 많은 분이라 좀더 복합적인 유인을 생각해 봐야겠지요. 우선 신체의 노쇠 현상에 따른 뇌수의 퇴화라든가 그 나이의 노인들이 겪어야 했던 시대적 수난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내가 맡았던 한 노파는 6,25사변 때 외국 병정들한테 난행을 당한 뒤, 물론 그 사실을 본인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것이 삼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정신병으로 나타난 겁니다. 처음 이 노파는 자꾸 자기가 임신을 했다는 거였어요. 깜둥이 자식을 뱄으니 소파 수술을 해달라는 거였지요. 걸핏하면 아랫도리를 걷어올리면서 그런 소릴 했어요. 애를 뱄다면서 간장을 한 바가지씩 퍼먹지 않으면, 쭈글쭈글한 배를 주먹으로 심하게 두들겨댔지요. 약이란 약은 무조건 먹었어요. 그 바람에 약물 치료에 약간 효험을 볼 수 있었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그 노파가 과거에 그런 난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데만 무려 육 개월이 걸렸습니다. 남편 되는 할아버지가 협조를 안한 거지요. 그 사람은 부인의 그런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내색을 안해 온 거지요. 그 자체도 알게 모르계 노파를 괴롭혀 온 요인 중의 하나가 분명합니다. 어떻든 그 노파뿐이 아니고 요즘 환자들 중에는 사회적인 어떤 압력이나 피해에 의한 원인을 가진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사회의 책임도 없다 못할 것입니다."

말을 잠시 쉬면서 의사가 현세에게 담배를 내밀었다. 현세가 한 개비 뽑아 들자 그는 그 담뱃갑을 곧장 책상 서랍에 넣었다. 자신은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서 손님 접대용으로 준비해 둔 것 같았다. 그는 라이터까지 켜 대는 친절을 보였다, 그 작은 친절에 무척 감격하는 현세였다. 그것은 몇 달 전 나라에서 관리하는 정신병원에서 받은 딱딱하고 찜찜한 기분을 말끔히 씻어주는 그런 신뢰의 마음이 갖는 솔직한 감격이었다.

나라에서 관리하는 그 정신병원은 역시 서민의 것이었다. 월 오만 원 안팎의 입원비라면 다른 개인 병원에 비해 삼분의 일에 불과한 액수였다. 그러나 서민인 현세에겐 고 오만 원도 큰돈이었다. 현세의 가난은 과장이 아니라 모친을 입원시킨 뒤 정말 두 끼만 먹고 견뎌야 했다. 가난만큼 절실한 현실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모친은 별 효험이 없었다. 나라에서 관리하는 병원답게 그쪽에서 먼저 퇴원 수속을 밟으라는 전갈이 왔다. 고마워할 일이 아니었다. 가망이 없으니 데려가라는 거였다. 대개의 국영업체 종사자들이 그렇듯 모두 불만스런 그런 얼굴로 지극히 사무적이고 냉정했다. 입원하기 위해, 빈방이 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린 시간들, 그 수고스러운 눈치 작전 끝에 천신만고 얻어낸 기회였는데 이제 몇 달 되지 않아 퇴원하라는 거였다. 많은 사람들이 현세 모친이 퇴원하기만을 고대하면서 서성거렸다, 모두 현세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고러나 그들을 위해 모친을 퇴원시키기에는 현세의 현실이 너무 절박했다.

"할머니 데려오지 마!"

아이들이 벌벌 떨면서 애원을 했다. 아이들엄마의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숨을 헐떡거리며 현세를 쳐다보는 그네의 눈에 절망이 있었다, 원무과에 가 사정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보시오."

모친을 담당했던 의사의 눈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 환자 때문에 선생님이 저렇게 다치셨어요. 벌써 두 번째에요."

간호원이 말했다. 그래도 그것은 여자 간호원이었다, 퇴원하는 날 건장하게 생긴 남자 간호원이 현세 모친을 향해 말했다.

", , 깡패야 잘 가라!"

눈에 흰자위가 더 많아진 그 깡패의 몸뚱이를 살펴보던 아이들 엄마가 울음을 터뜨렸다. 현세는 차라리 고개를 돌렸다.

", 어비야, 그놈들이 날 막 때렸쪄!"

그 깡패는 툭하면 어린애가 됐다.

"이불두 즉구, 춥대는데두 맨날 센풍기를 틀구---"

환풍기를 선풍기로 알고 있었다. 아이들 엄마가 더욱 출적거렸다.

"실성한 이가 떠드는 걸 가지고 뭘 그래."

그러나 밤에 눈을 붙이면 덩치가 커다란 괴물한테 목을 졸리는 꿈으로 시달렸다. 눈을 떠보면 실제로 모친이 아이들 엄마의 목을 누르고 있었다,

"노인들의 경우엔 대개 증상이 심한 망령이라고 하지요. 이 망령 현상은 종종 노인으로서의 소외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자수 자식들로부터 소외당한다는 느낌이 짙어지게 마련이고, 더우기 눈이 침침해진다든가 귀가 절벽일 전 그 느낌이 더욱 심하겠지요. 그럴수록 노인들은 자식에게 기대고 싶은 심약성을 보이는 법입니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서운한 구석이 보이면 무척 노여워하고, 이것이 반복되는 과정해서,,,"

시골에 혼자 남아 살던 모친에게 실성기가 보인다고 해서 내려가 보니 이웃 사람들이 힐난하는 그런 눈빛으로 현세를 맞았다.

"왜 이 고생을 사서 하우? 서울 아들한테 올라가 호강하며 살 일이지."

이웃에서 이처럼 공박을 할 때마다 그네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는 것이다.

"아직두 아드님이 단간 셋방살이를 한다면서요?"

남 헐뜯기 좋아하는 여편네들이 현세네 사는 형편을 들춰낼라치면, 그네는 풀죽은 목소리로

"그러엄, 그 불쌍한 게 어릴 적부터 내내 고생만 허구---"

그러면서 눈물까지 질금거렸다. 그러나 일단 정신이 삐딱해진 뒤로는 그게 아니었다.

"울 아들이 높은 사람이여, 아주 높은 사람이여. 고래등 같은 집에 쌀이 천 섬씩 쌓여 있어! 이 배라처먹을 년아. 너 이년, 왜 울아들한테 맘두구 가달머릴 벌리구 지랄이여?"

이렇게 되면 말을 걸던 여펜네가 질겁을 해 도망을 쳤다.

현세가 모친을 서울에 모시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4년 전, 현세가 지방의 말단 공무원에서 어쩌다 우연히 서울로 전출이 됐을 때, 그때까지 모시지 못한 죄를 속죄도 할 겸 꼭 모시고 상경하겠다고 나섰으나 그네는 막무가내였다. 겉 이유야 어찌 됐든, 그네의 꽁한 속셈은 이제까지 작은며느리 안 거느리고 살았는데 이제 새삼스레 며느리 눈치를 볼 게 뭐 있느냔 거였다. 아이들 엄마가 무릎을 꿇고 빌었다. 그러나 그네는 고개만 고집스레 저었다. 그때만 해도 다 믿는 데가 있어서였다.

스물 다섯에 남편 잃고 유복자 하나만을 키우며 살아오는 현세의 형수였다. 처음부터 시어머니는 자기편에서 모시는 걸로 작정하고 나섰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역시 젊은 과부로 늙어 온 시어머니는 두말없이 현세 형수 편을 택했다. 그네들은 서로 짝 잃은 비둘기 두 마리가 모여 살 듯 그렇게 아끼며 지냈다.

"왜 그 젊디젊은 걸 생으루 늙게 하우? 죄 받게 시리---"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시어머니 쪽은

", 내가 왜 시집을 안 가라나! 그래두 자꾸 지가 마다는 걸 낸들 어쩌누."

그러면서 흐뭇한 얼굴을 하던 그네였다.

"아무튼 할머니나 메누리나 다 기맥힌 열녀에 효부유!"

이웃들이 그렇게 입을모았다. 그러나 짓궂은 이웃 노파는,

"저놈에 할망구 맘 내가 모를 줄 알구?"

현세 모친이 아들을 따라 서울로 올라가지 않는 것은 순전히 집 뒷산에 묻힌 남편과 맏아들 때문이란 것이다. 사실 그네는 그 죽은 사람들하고 살아온 건지도 몰랐다. 현세가 가끔 그네를 서울에 모시고 올라왔지만 닷새도 못 참고 부랴부랴 내려가곤 했다. 귀신이 붙어도 단단히 붙었군, 현세는 늘 그렇게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정신병 증세의 원인에 대해서 명확한 단안을 내리는 것은 금물입니다. 어떤 정신적 충격, 즉 큰 놀램이나 주체하기 힘든 슬픔 혹은 급격하게 일어나는 분노나 공포-이런 것이 병의 직접적 원인과 관계가 깊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것은 하나의 충격일 뿐 요인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병이 겉에 드러나게 한 그 충격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격으로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쓸 때가 많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누구한테 돈을 사기 당했기 때문에 그 충격으로 머리가 돌았다, 하는 것은 그 좋은 예일 것입니다. 그보다는,,,,,,"

모친이 실성했다는 소식에 접하고 현세 내외가 머리 속에 떠올린 것은 형수였다. 이웃 사람들도 입을 모아 현세의 형수를 모친 병의 원흉처럼 말했다. 그네가 시어머니를 저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십 오륙 년을 하루같이 시어머니와 함께 살아온 그네가 경상도로 재가(在家)를 해 갔기 때문이다. 맑은 하늘에 벼락이었다. 유복자 하나 키우며 시어머니 모시고 알뜰살뜰 살아, 강원도 효부 났다고 칭찬이 자자했던 그네가 시침 뚝 떼고 재가를 했다. 수절해 온 그 이십 오륙 년이 너무 아깝다고, 모두 혀를 내둘렀다. 유복자인 현세 조카가 고등학교를 나오고 빌빌 놀다가 군대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 집을 나가 버렸다. 정말 모를 일이었다. 형수를 하늘처럼 알았던 현세는 한동안 멍청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며느리를 잃고 두문불출 몸져 누웠다는 모친의 심정이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그보다는 근원적인 유인(誘因), 즉 사소한 충격이 전부터 잠재되어 온 마음의 상태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를테면 욕구 불만이나 알게 모르게 마음을 죄어온 불안감, 또는 그런 일로 해서 마음에 심한 갈등이 일어난다든가 쉽게 풀리지 않는 증오과 적개심 - 이런 누적된 마음의 상태가 장기간 짙은 안개처럼 엉겨 있었던 걸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거지요."

간호원이 차트 한 장을 의사 앞에 놓고 나갔다. 다른 사람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시위일 것이다. 그러나 현세는 일어서지 않았다. 의사의 말을 통해서 모친이 겪어온 그 처절하고 치욕적인 생애가 번쩍 잡혀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두 개의 죽음이었다. 현세가 부친의 주검을 본 것은 여덟 살 때쯤이었고. 형의 죽음은 그보다 몇 년 후 열세 살 되던 해 여름에였었다. 그러나 현세의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코들 죽음의 의미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형이기 때문에 마음깊이 아픔으로 박혀 버린 것이 아니고 그저 그 나이 또래가 받을 수 있는 소름끼치게 처절한 충격 그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모친이 겪은 아픔 그것은 자기의 그것과는 전연 질이 다르다는 생각을 해 온 현세였다. 모친에게 있어 그 두 사람은 그네 생존의 의미였으며 삶 그 자체였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느 아버일 못 따라 죽은 그 죌 받는 게여!

현세 형의 주검을 어루만지며 그네가 한 말이었다.

"내가 살고 싶어 입때까지 산목숨인 줄 아냐?"

구질스런 한국의 전형적인 여인네들의 입버릇처럼 그네도 가끔 그 말로 다른 사람의 기를 꺾었다. 남은 삼 남매에게 쏟은 그네의 그 맹목적이랄 수 있는 사랑이 그 말을 입증했다. 현세는 어렸을 적부터 그네의 그 끈적끈적한 사랑을 느낄 때마다 몸서릴 쳤다. 그것은 그 끈적끈적한 사랑의 출처와 목적지가 바로 그 두 개의 죽음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현세의 기억으로는 부친이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한테 몰매를 맞아 봇도랑에 처박혀 죽은 것은 해방이 뒨 그해 가을이었다. 부친이 읍내 일본 순사들 끄나불 노릇을 했다는 거였다. 일본 사람이 마을에서 강계로 공출해 간 곡식이나 놋쇠 그릇을 나르는 것은 언제나 현세 부친이었던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소달구지를 끌고 일본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한 죄였다.

그 즈음 마을 부자 축에 드는 허씨 집에 서울 나그네가 한 사람 기거하게 뒨 게 그 빌미였다. 그 서울 손님은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사는 낌새였다. 소문에 그는 서울서 항일 운동을 크게 벌이다가 지명 수배가 돼 퍼해 내려왔다는 거였다. 현세 또래의 아이들은 얼굴이 허여멀건 그 서울 손님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보려고 허씨네 집 주위를 배돌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허씨네 집에 일본 순사들이 새까맣게 물러왔다, 그 얼굴 허여얼건 서울 손님이 끌려 나왔다. 그가 잡혀가자 마을 사람들은 현세 부친을 손가락질했다. 몇 해 전 허씨네한테 소작을 떼인 그 원한으로 일본 순사 밀정 노릇을 했다는 거였다. 마을 장정이 둘이나 징용으로 끌려간 일까지 현세 부친에게 얹었다. 현세 부친이 지나가면 아이들이 그 길에다 침을 뱉으며

"왜놈 꼬스까이!"

라고 수군거렸다. 그날 잡혀 간 서울 손님이 서울에 올라가 재판을 받기도 전에 죽었다는 소문이었다. 심한 고문으로 죽었다는 얘기도 있었는가 하면, 그 스스로 혀를 물고 죽었다는 얘기도 들려 왔다. 어쨌든 그 소문이 자자할 무렵 해방이 됐고, 그해 가을 그 죽은 독립 투사의 친척이란 사람들이 여러 마을에 나타났다. 그가 지니고 다니던 유품과 행적을 챙기러 왔다는 거였다. 신문 기자라는 사람도 따라와 여기 저기 사진을 많이 찍어댔다. 논에서 볏단을 나르고 있던 현세 부친을 찾아와 이것저것 물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것으로 해서 시비가 붙었다. 힘이 장사였던 현세 부친이 처음에는 우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세가 모친과 함께 허겁지겁 달려갔을 때는 논바닥에 서울 사람들의 구두 자국만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봇도랑에 거꾸로 처박힌 채 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죽은 남편을 발견한 것은 현세 모친이었다. 그네는 엄청난 사실 앞에 눈물 한 방을 홀리지 않았다. 남편이 끌고 온 소달구지에 그 건장한 주검을 실었다. 놀란 소가 길길이 뛰면서 내달았다. 고삐를 쥔 그네가 질질 끌려가면서 드디어는 소를 진정시켰다. 마을 사람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호히려 허씨네 눈치만 살폈다. 이듬해 심한 가뭄이 들자 현세네 집 뒷산 그 무덤을 파헤치러 했다. 현세 모친과 형이 부친을 파묻은 그 산 자리가 덧나 가뭄이 든다는 거였다. 허씨네 산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세 모친은 배에 칼을 대고 무덤에서 버텼다. 그리고 그때부터 억울하게 몰매 맞아 죽은 남편의 한을 풀어준다며 소장(訴狀)을 품에 안고 읍내로 서울로 뛰어다녔다. 그러나 달걀로 바위 치기였다. 해방으로 떠들썩한 판국에 그런 소장이 먹혀 들어갈 리가 얼었다. 어쩌다 관에서 마을에 얼굴을 한번 내밀었다. 그것마저 마을 사람들이 허씨네 눈치를 보며 시치미를 떼는 바람에 말짱 헛일이었나. 그때서야 대성통곡을 하며 뒹굴던 현세 모친이었다. 현세 형이 이를 갈며 집을 뛰쳐니간 것도 그때였다.

현세로다 십여 살 위였던 그는 집을 뛰쳐나간 뒤 종무소식이더니 6. 25가 터지기 한 해 전인가 불쑥 집에 나타났다. 순경이 돼 있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경찰에 들어갔다는 거였다. 허씨네 사람들은 물론이고 마을 사담들이 현세 형을 슬슬 피했다. 그러나 별일은 없었다.

모친이 권하는 대로 장가도 들었다. 공교롭게도 허씨네 집 먼 일가붙이였다, 마을 사람들은 한숨들을 놓았다. 그런데 공비토벌에 나갔던 현세 형이 실성한 사람이 돼 돌아왔다. 부상을 당해 머리에 약간 상처가 있었다. 그는 눈을 히뚝거리며 마을을 돌아다녔다. 아무에게나 손찌검이었다. 누더기가 되다시피 한 경찰복을 결코 벗는 일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실성하기 전보다 그를 더 무서워했다. 무슨 일이고 저지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6. 25사변이었다. 마을에 들이닥친 빨갱이들이 제일 먼저 해낸 일은 경찰복을 입은 현세 형을 처치한 것이다. 빨갱이들은 이상하게 순경이라면 이를 갈았다. 그들은 마을 공회당 마당에서 인민 재판이란 이상한 놀이를 했다. 맥도 모르는 현세 형이 길길이 뛰면서 애국가를 불렀다. 이승만 대통령 만세도 불렀다. 현세 모친이 빨갱이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울면서 손을 모아 빌었다. 배가 남산만한 현세 형수는 기색을 해 넘어져 있었다. 애원을 하다 안되니까 현세 모친은 입에 게거품을 물고 덤볐다. 빨갱이들이 그네를 밀어 던졌다. 산 속으로 끌려가던 현세 형이 손이 묶인 채 뛰었다. 현세 모친이 같이 뛰었다. 총을 빗맞은 그가 모친을 향해 엉기엉기 기었다. 현세 모친은 흙을 움켜 빨갱이들에게 뿌렸다. 현세 형을 뒷산에 묻는 일은 마을 사람들이 했다. 이들을 뒷산 남편 무덤 옆에 묻고 돌아온 그네는 현세와 두 딸을 끌어안고 아주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 남헌테 웬수지지 말어! 웬술 갚을 생각두 말구!

 

"원인이야 어떻든 지금 단계로서는 우선 영양 공급을 충분히 해드리는 게 좋습니다. 그 연세로 봐서 몸이 쇠약해질수록 악화될 우려성이 높다고 봐야 하니까요. 비타민, 특히 지아민 , 니코틴산 등의 비타민 B를 충분히 섭취토록 하는 게 좋을 겝니다, 또한 가벼운 운동, 즉 피로를 느끼지 않을 정도의 작업을 주어 환자 나름의 보람을 찾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정원을 쓸고 가꾸게 한다든가---"

의사는 간호원이 놓고 간 차트를 책상 위에 세워 쥐고 장난하듯 토닥거리며 말하고 있었다. 충분한 영양 공급, 가벼운 운동, 정원 산책... 이 의사야말로 국민소득 천 불을 실감나게 하고 있구나, 하고 현세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여유를 보이면서 물었다.

"아무래도 장기간 입원을 해야 하겠지요?"

"어떻든 한번 모시고 와 보십시오."

의사는 현세가 너무 쉽게 결론을 물어옴으로 해서 오히려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표정을 감추면서 다시 말했다.

"모시고 오든 안 오든 그것은 선생의 자유입니다만, 선생 자당님의 경우 같이 심한 경우는 될수록 서두르는 게 좋습니다. 환자 본인을 위해서도 그렇고 가족들에게 끼치는 여러 가지 영향을 고려해서라도------."

처음과는 달리 의사는 매우 사무적인 억양으로 바뀌어 갔다.

"우리 병원을 믿고 한번 맡겨 보십시오."

믿고 맡기라고, 바로 그럴 참으로 내가 여길 온 거요. - 현세는 속으로 쓰게 웃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더 대담한 마음이 됐다. 시치미를 떼면서 물었다.

"입원비가 한 달에 십 오만 원 이상은 들어야 하겠습죠?"

자신의 한 달 봉급에 삼사만 원을 더 보태야 하는 그런 액수의 돈이었다.

"글쎄요, 그 문제는 나중에 원무과에 가서 알아보심 될 겝니다,"

의사의 얼굴은 자존심을 상했을 때의 그런 딱딱한 표정이었다. 그 딱딱한 표정을 보면서 현세는 또 한번 능청을 떨었다.

", 또 한 가지 여쭤 보겠는데요, 만약 입원을 했을 경우, 그 치료는 노인네니까 아무래도 전기 충격 같은 요법보다는 약물 요법을 쓰겠지요? 전기 충격이나, 거 뭐라드라, , 인슐린 혼수 요법인가 뭔가하는 건 아무래도 위험율이 높다 들었습니다만,,,,,,"

먼저 모친이 입원해 있던 그 병원을 출입하여 주워들은 용어였지만, 막상 입밖에 내고 보니 천하에 없는 우문(愚問) 같았다. 그러나 알고 싶은 건 바로 그 문제였던 것이다. 그 병원 대기실에서 (막판에 가서 한번 해볼 수도 있는 방법)을 귀띔해 주던 그 사람 역시 치료 방법 문제를 몹시 궁금해 했던 것이다. 그것은 정신병 환자를 가진 심약한 가족들의 공동 관심사이기도 했다.

의사는 비로소 딱딱한 표정을 풀면서 문외한 앞에 보이는 전문가로서의 그런 연민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소롭다는 그런 뜻의 웃음일 것이다.

"그런 걱정은 안 하시는 게 좋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선생께서 알고 있는 그런 치료법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과 또 그러한 치료법이 아무 데나 무턱대고 쓰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병원을 믿으셔야 합니다. , 그럼,,,"

의사는 고 안락한 의자에서 몸을 천천히 일으키며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섭씨 22도의 최적한 실내 온도였다.

복도 대기 의자에는 여인네 둘이 눈빛이 이상한 노동자 풍의 장년의 손을 양쪽에서 잡은 채 앉아 있었다.

현세는 병원 복도를 걸으면서 사방을 샅샅이 살폈다. 결코 예사로이 보아 넘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크릴 속에 새겨진 그 방들의 명칭을 입 속에 중얼거리기도 했다. - 막판에 가서 한번 해볼 수도 있는 방법-이 계획대로 된다면 이처럼 시설이 훌륭한 개인 병원의 저 방들이 모두 모친에게 있어 절대로 유용한 그런 방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락부락하게 생겨먹은, 남자 간호원이라고 짐작되는 그런 사람들을 볼 수 없었던 것도 현세에겐 다행이었다.

환자들이 입원하고 있을 듯싶은 병동 쪽을 살펴봤다. 창문마다 굵은 철사망이 쳐 있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철사망이 주는 단절감마저 현세에겐 평화롭고 감미로운 것으로 느껴졌다. 그 철사망이 쳐진 창문 속에 영양 공급이 충분한 부얼부얼한 얼굴이 떠올랐다. 병동 안쪽 철사망이 쳐진 그 가운데 작은 정원이 보였다. 고향의 마른 잔디 깔린 뒷동산 같은 고 정원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조용하고 아늑한 풍경이었다. 최적한 실내 온도 속에서 내다보이는 그 커다란 개인 병원의 단면은 눈에 잡히는 곳마다 모두 신뢰를 주는 그런 정당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병원 문을 나서기가 무섭게 오싹 한기가 끼쳤다. 아직도 눈발이 프슴프슴 흩날리고 있었다. 병원까지 올라왔던 승용차들이 눈 덮인 언덕길을 브레이크를 밟은 채 아슬아슬 미끄러져 내리고 있었다.

현세는 그 병원의 언덕길을 다 내려오기까지 결코 뒤를 돌아다보지 않았다. 최적의 실내 은도 속에서 마음에 끼쳤던 그 병원의 좋은 인상을 흐릴 것 맡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명당을 잡아놓고 하산하는 상주(喪主)의 심정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쓴웃음 섞여 지나갔다.

현세 앞에서 줄타기하듯 조심조심 걷던 여자 하나가 엉덩방아를 쪘고 넘어졌다. 그러나 현세는 프슴프슴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되는 대로 발을 내디뎠다. 내던진 그런 심정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걸음을 함부로 할수록 몸의 중심은 꼿꼿이 잡혀 가는 것이었다.

- 겁쟁이 겁쟁이 해두, 애비 어렸을 적처럼 겁이 많아서야......

현세 모친은 가끔 현세의 어렸을 적 얘기 끝에는 꼭 이 말을 덧붙였다. 다섯 살까지 저 혼자 일어나 걷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성장은 다른 애들과 다를 게 없는데 도무지 걸으려 하지를 않았다는 얘기였다. 차차 걷게 되면서부터도 앞에 돌 같은 장애물이 있으면 아예 주저앉아 엉금엉금 기어 그 돌을 피해 놓고서야 다시 걸었다. 매사 그런 식으로 세상을 겁냈다. 남의 눈을 속인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상대가 시비를 걸어올 기세면 지레 도망을 쳤다. 성인이 돼서도 그런 겁은 소심한 성격으로 나타났다. 처신부터 그랬다. 조심조심 앞뒤 재 보며 좀 어둡고 미심쩍은 길은 아예 나서지를 않았다.

그런 현세를 두고, 법 없어도 살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현세를 보고, (앞뒤가 콱 막힌 사람)이라고 했다. 아이들을 넷씩이나, 그것도 큰애가 고등학생이 된 그 나이에 이르도록 단간 셋방살이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도저히 납득이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는 거였다. 그런데 이러한 현세의 소심증이 말단 관리인 그에게 있어서는 어떻게 보면 -성실-이란 말로 미화될 수 있었다. 현세 자신이 그 -성실-이란 단어를 신조처럼 삼았던 것이다. 그래서 현세는 청렴 결백이라는 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성실한 사람-, -부정이 안 통하는 사람-쯤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었다. 지방에서 그 어렵다는 서울 전출이 본인도 모르게 된 것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와 아이들을 셋씩이나 학교에 넣고 남의 집 방 한 칸을 빌어 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현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적어도 서울이란 기형적인 도시는 그가 놀 수 있는 물이 아니었다. 생존 경쟁의 치열한 싸움터였다. 불가사의한 일 투성이였다. 뭔가 제대로 되는 일도 없고, 또 안 되는 일도 없는 그런 역설적인 조화를 지닌 세계였다. 당장 입에 풀칠한다는 일이, 아이들 교육비가, 아이들의 허기진 그 눈요기를 덮어 줄 부모로서의 의무감이 그를 괴롭혔다. 현세에게 있어 서울은 너무 절실한 현장이었다. -쥐꼬리만한 봉급-이란 말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여름은 남보다 더욱 더웠고 겨울은 더더욱 출고 쓸쓸했다. 더 무서운 것은 자기깐에 마음속으로 자부해 온 그 성실이란 단어가 빛을 잃고 허물어져 내린다는 느낌이었다. 어깨가 추욱 처졌다. 오기로라도 그 처진 어깨를 펴볼라치면 매사가 눈에 거슬렸다. 바른 것과 바르지 못한 것이 헛갈려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는 모든 게 적이었다.

엎친 데 덮친다는 격으로 모친이 그 모양으로 미쳐 단간 셋방에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 현세는 정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워낙 가진 게 없는 데다가 이래저래 든 돈이 대단했다. 오막살이라도 내 집을 하나 마련하자던 꿈은 아예 마음 안 먹었던 걸로 친다고 하더라도 여기저기서 빌어 츤 돈이 무섭게 새끼를 치고 있어, 현세는 늘 좌불안석이었다.

- 이봐, 생각해 봤나?

좀 높은 자리의 사람이 실무자인 현세에게 미끼를 던져 놓고 있었다.

- , 사람, 세상 참 어렵게 사는군.

이렇게 어르고 나서기도 했다.

- 당신, 이 생활 얼마 못 하겠어. 여보시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는 줄 알아?

이처럼 협박을 하고 나서는 사람도 많았다. 현세에게 있어서 그것은 또 다른 괴로움이었다. 견딜 수 없는 유혹이었다. 대민 관계의 그 자리가 그랬다. 더 높은 안목 있는 사람이 믿고 맡긴 그런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봉투를 슬쩍 찔러 넣어 주며 브로우커들이 말했다.

- 당신 목 잘리면 여기보다 열 배 나은 자리 내 책임지겠시다.

끝내 봉투를 거절해 버렸을 때, 그들은 코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 , 배불렀군, 그래 얼말 원하는 거요? 이거 자꾸 단가만 높아지구, 제에기랄 드러워서,,,,,,

현세는 가끔 눈 딱 감고 그 봉투를 집어넣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모친의 광증이 부쩍 심해진 요즘 그 느낌은 더 강했다. 그러나 현세는 그 유혹으로부터 아슬아슬하게 자신을 건져 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부정을 겁내는 죄의식 그 이전에 현세 자신을 지탱시키고 있는 어떤 양심의 문제였다. 그것을 사회 정의의 문제라고 현세는 생각해 왔다. 자기가 다섯쯤 받아 넣고 눈감아 줬다고 했을 때 그 상대는 다섯의 백 배쯤 되는 이를 보려고 할 것이고, 그가 백 배쯤의 이를 부당하게 취했을 때 생기게 되는 수만 명의 선량한 피해자- 부정이 불러일으키는 어쩔 수 없는 생리를 현세는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강하고 질긴 무엇이 현세를 지켜 주고 있었다. 그가 유혹의 늪에 빠져 허위적거릴 때마다 그 손길이 닿았다. 어려서 본 부친의 주검과 비릿한 냄새를 풍기던 그 여름날의 형의 주검이었다. 적당한 시간에 번쩍 그 주검이 나타났다.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그것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이상하게도 그 두 개의 주검은 현세의 가슴에 독가스처럼 피어오르는 오기와 유혹을 가라앉혀 주었다. 그러나 그 두 개의 주검은 처절했던 당시의 그 소름끼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한 것이었다. 따스하고 평화로운, 거기에다 어떤 위안의 힘까지 깃든 그런 빛깔로 나타났다. 모친이 고향을 뜨지 않고 그 굴욕에 찬 삶을 끝까지 버터 온 것이 바로 자기에게 보이는 그런 구원의 힘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현세는 해보았다.

그러나 요즘에 이르러 그 두 개의 주검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이 주는 따스하고 평화로운, 그런 안식을 주는 구원의 힘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설사 어떻게 그 두 내의 주검이 떠올랐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어릴 때 본 무섭고 소름끼치는 그 충격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현세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눈을 뜨면 절벽이 앞을 막았다. 눈을 감았을 때는 온통 쫓기는 꿈이었다. 돈이 든 봉투가 눈앞에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좀 높은 사람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고 자신도 따라 빙긋 웃고 있었다.

현세는 자신이 어떤 위기에 서 있음을 너무나 잘 알았다. 무너지기 전에, 형편없이 허물어지기 전에 어떤 결단이 필요했다. 이 결단이야말로 원죄의 뿌리를 자르고 작게는 자기 자신을, 더 크게는 보다 근본적인 것을 건져 올리는 길임을 현세는 확신하고 싶었다. 그것은 (막판에 가서 한번 해볼 수도 있는 방법)을 결심하고 난 뒤 그 께끄름하고 찜찜한 마음을 씻어 버리기 위한 자위였는지도 모른다.

 

아이들 셋이 대문을 열어 주면서 현세를 둘러쌌다. 모두 질린 얼굴이었다.

"형은 아직 안 들어왔냐?"

이 시간에 집에 들어와 본 적이 없는 큰놈이었다. 독서실인가 하는 데서 시간을 보내다가 통금이 가까워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아예 거기서 자는 날이 많았다.

현세는 아이들 셋을 거느리고 주인집 방문 앞을 살금살금 가로질러 자기네 방 앞에 섰다. 밖에서 떨고 서 있었을 게 뻔한 아이들 얼굴을 통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방문을 열려니 손이 떨렸다.

그네가 아이들 엄마의 머리채를 두 손으로 무섭게 감아쥔 채 식식거리고 있었다. 아이들 엄마는 머리채를 내맡긴 채 날 잡아 잡수시오, 그런 꼴로 너부죽이 엎드려 있었다. 그것이 미친 노파의 광기를 삭이는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애비가 왔구나! 에미야, 어서 밥 채려라."

현세 모친이 아이들 엄마의 머리채를 놓으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저 멀쩡한 얼굴 - 현세는 울화통이 치밀었다.

그네가 보이는 광증의 두드러진 특징 하나는 입이 험하다는 것이었다. 시골에 살면서 남들이 뭘 물어 오기 전에는 좀 해서 입을 열지 않는 그네를 두고 사람들은 (현세 어머닌 벙어리유?) 그럴 정도로 과묵한 편이었다, 그러나 실성하고 나서부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게거품 울어 가며 쏟아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 배라처먹을 년, 너 요년, 니 시애비하고 붙어 처먹은 고--

-이 개 X똥구멍으로 기어나온 년아 !

-요년아차, 너 고 XX 좀 보자.

주로 성행위와 관계 있는 그런 욕설로 사설을 엮었다. 상대는 언제나 아이들 엄마였다.

"이녀언!"

이처럼 느닷없이 그네가 소릴 치면 현세는 요즘 이불부터 꺼내들었다.

"이녀언! 너 옛날에 느 시애비하고 붙어 먹구두 성이 안 차, 이젠 아범 친구하구 요 지랄이냐?"

능청이지만 듣는 쪽에서는 소름이 확 끼칠 정도로 실감이 탄다. 이쯤 되면 안집 사람들은 물론 이웃 여자들이 모여든다. 그네들 귀를 계산에 넣기라도 한 듯 현세 모친의 능갈 맞은 욕설은 점입가경이다. 현세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부르르 털면서 그네에게 이불을 덮어씌운다. 그 이불 속에서 그네가 칠십 고령으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힘을 뻗쳐 댄다. 현세가 방바닥에 나가 떨어쳤다. 한쪽 구석에 쫓겨가 있던 아이들까지 합세했다. 현세는 죽을 힘을 다해 이불을 눌렀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손끝으로 뻗치는 그 거센 혐오가 있을 뿐이었다.

"여봐유, 어머이 죽어유!"

아이들 엄마가 현세를 붙잡고 늘어졌다.

더 참을 수 얼이 괴로운 것은 그네가 도무지 밤잠을 자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을 끄지 못하게 했다. 불을 환하게 켜놓은 채 새벽 서너 시까지 식구들 머리맡에 앉아 뒤숭숭을 떨었다. 아이들이 벗어놓은 옷을 꿍치꿍치 모아 요강 속에 집어넣은 다음 그 위에 올라앉아 소변을 보지 않으면 아이들 교과서를 발기발기 찢어발기며 염불을 외기도 했다. 아이들 엄마의 속옷을 모조리 꺼내 가위로 송당송당 썰어대기도 했다.

견디다 못한 현세가 슬며시 나가 두꺼비집 뚜껑을 열어놓고 들어오면 그네는 얼마 동안 쥐 죽은 듯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네는 어둠이 눈에 익게 되면서부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안 식구의 얼굴을 하나하나 더듬어 확인해 보는 일부터 한다. 주름지고 차가운 그네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얼굴을 더듬을 매마다 현세는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 앉았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다.

"애비야, 왜 잠이 안 오냐?"

미친 이가 천연덕스럽게 묻는다. 옛날의 그 끈적끈적한 사랑이었다. 현세는 다시 자는 척 누워 모친의 거동을 살핀다. 그 섬뜩한 손가락이 다시 다가와 현세의 몸을 더듬는다. 그것은 애무였다. 어떤 때는 그 미친 이의 손이 아이들이나 아이들 엄마의 목을 조여 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아이들이 꼭 죽을 것처럼 울어대고 그네는 흐흐흐흐 기성을 질렀다. 안집에서 방 벽을 꽝꽝 두드렸다. 시끄럽다는 것이다. 미친 이는 아주 내놓고 현세 내외의 접근을 실어했다. 그냥 싫어할 정도가 아니었다. 현세의 팔이나 다리가 어쩌다 아이들 엄마의 몸에 얹히는 수가 있었다. 그런 때마다 아이들 엄마의 머리채를 나꿔채며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그네는 아예 현세 내외의 사이에 눕기가 보통이었다.

현세는 자신의 몸 어느 한구석에 아직도 살아 있는 그 성적 욕구를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성적 욕구를 저주했다. 밖에서 술이라도 몇 잔 마셔 마음이 거나해졌을 때 아이들 엄마를 원했다. 십 칠팔 년 함께 몸 섞어 살아온 아이들 엄마가 그런 기밀 눈치 못 챌 리가 없다. 그러나 그네는 시치미를 뗀다. 그네야말로 성인이 다 됐다고 현세는 가끔 생각했다. 그네의 인고(忍苦)의 정신은 가히 초인적이었다. 현세는 이미 그네에게 고마움이나 미안함을 드러내 보일 만큼 마음이 넉넉지 못했다.

성적 욕구에 있어서 더욱 그랬다. 자신이 한 마리 짐승처럼 생각되었다. 여름날, 슬며시 방을 빠져 나와 밤하늘을 쳐다보며 담배를 피우고 섰노라면 아이들 엄마가 담요를 들고 나왔다. 부엌 뒤에서 현세는 정말 짐승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그네는 결코 몸을 뜨겁게 열지는 않는다. 이미 그네 몸의 불은 꺼져 있었던 것이다. 모친이 잠드는 시간은 언제나 새벽 다섯 시쯤이다. 그 시간이면 아이들이 잠을 깰 시간이었다. 새벽밥을 하는 아이들 엄마를 쫓아나가 부엌에서 그네를 원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네는 눈물을 보였다.

"니 연놈들이 날 죽이려구 뱅애(방자)를 하는 거지? 괘씸한 것들!"

미친 이의 의심은 무서웠다. 내복에 붙은 상표나 무늬가 있는 옷은 아예 입지를 않았다. 자기에게 저주가 내리기를 바라는 것들이 그런 걸 해 붙였다는 것이다. 멀쩡하게 밥을 먹다가도 느닷없이 밥상을 둘러엎는 수도 잦았다, 식성은 누구 못지 않게 좋은 이가 한번 마음이 틀리면 며칠씩 밥알을 입에 넣지 않는 고집을 부렸다. 남들이 찾아와 왜 밥을 먹지 않느냐고 물으면, 며느리가 밥에 독약을 섞어 먹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 알약을 내보이기도 했다. 먹게 할 수도 없었지만 하도 딱할 때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수면제나 최면제였다.

단식으로 버티는 노파를 옆에 놓고 밥을 먹을 수 없어 모두 부엌에 나가 몰래 식사를 했다. 그럴 때면 그네는 고래고래 소리를 치면서 방안의 세간 살이를 부숴 댔다. 에미를 굶겨 죽이는 천하에 없는 불효라고 멀쩡한 목소리로 악을 쌨다.

"어머이, 도대체 왜 그래유? 미쳐두 좀 곱게 미칠 것이지."

참다 못한 현세가 이처럼 혐오감 짙은 표정을 해 보이면 그네는 또 금세 천연덕스러워졌다.

"애비야, 내가 잘못해쩌어. 다신 안 그럴께 때리지 마아, ?"

꼭 어린애였다.

"내가 복이 없는 여자라서 어머이가 저래유."

아이들 엄마가 울음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말했다

살아야 얼말 더 사시겠다구!"

현세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이것뿐이었다,

"옳아유. 그런 걸 생각하면 생전에 잘해드려야 할 텐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 엄마한테 현세는 할 말이 없었다. 미친 이보다 아이들 엄마가 먼저 죽을는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소한 일에도 가슴이 후당후당 숨이 벅차다는 그네는 요즘 시어머니의 끔쩍한 욕설만 들어도 코피를 쏟아대기 보통이었다.

 

그네를 유기(遺棄)하기로 마음을 굳혀버린 뒤 사전 탐색의 심정으로 종합 병원 규모의 그 정신 병원을 다녀온 현세였다. 그리고 병원을 다녀온 즉시 셋방을 다른 곳으로 옳길 것을 결심했다. 그것은 만약을 대비해서였다.

아이들 엄마한테만은 자기 생각을 털어놓기로 했다. 제천과 가평의 두 누님들은 나중에 적당히 이해시킬 수도 있을 것이었다,

"당신마저 미치는 거예유?"

모친이 입원한 적이 있는 그 정신 병원 휴게실에서 귀띔해 들은 (막판의 방법)을 얘기하자 아이들 엄마는 펄쩍 뛰었다. 무슨 죄받을 소리냐는 것이었다. 죄도 죄지만 세상이 그렇게 어수룩할 줄 아느냐고, 그네는 겁먹은 얼굴로 사방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죽으나 사나 함께 모시는 게 차라리 속이 편하다며, 그네는 두 누님들이 모친을 끌고 다닐 때의 그 불안스럽고 죄스럽던 기억을 상기시켰다.

"다른 소리 말아요. 그렇게 하는 게 어머니나 우리한테 다 좋은 거니까."

이 말 밖에 현세는 자기의 가슴을 털어 보일 재간이 없었다. 미친 이를 그런 방법으로 유기하는 것이 그 불효보다 더한 죄를 마음속에 매일매일 쌓아 가고 있는 자신의 마음에 비해 덜 죄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 방법이야말로 절벽 끝에 매달려 허위적거리는 자신을 건져 올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게 된 자신의 심중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현세는 말하고 싶었다.

-내가 만약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명분에서 어머니를 끝내 버리지 않고 보호한다고 합시다. 또 그렇게 했다고 합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내 마음속에 저질러 온 그 무서운 죄악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오. 결국 나는 그 죄악의 무게로 하여 더 큰 죄악을 범하게 될 것이 틀림없소. 지금 우리 아이들이 받고 있는 저 심적 충격만 해도 나로서는 견 딜 수 없는 그러한 죄악인데, 죄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는 또 다른 죄악을 자주 범하게 될 것이란 말이오. 그 때문에 파멸하고 말 나 자신과 내 가정, 더 나아가서는 많은 사람들이 나로 인해 받아야 할 그 피해는 또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오. 차라리 어머니가 식물 인간같이 누워만 있다고 한다면, 끝없는 파괴만을 일삼는 지금의 상태보다는 또 달리 생각될 수도 있을는지 모르오. 그러나 어머니는 얄밉도록 너무나 싱싱한 힘으로 나를 막다른 골목까지 철저하게 밀어붙인 거요. 이 벽 앞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오. 벽을 등에 지고 돌아서서 칼을 빼드는 그런 해결을 나는 원치 않기 때문이오. 문제는 이 막다른 골목에서 모자의 관계를 잠시, 정말'잠시 동안 유예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것뿐이오.

그러나 현세는 말할 수 업었다. 입을 열면 지금까지의 자신의 생각이 현실 도피에 대한 한낱 구질구질한 변명이 되어 양심에 깊이 찔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만약에 어머니가 거기 가서 당신 이름을 대면 으트케 해유?"

현세는 웃었다. 아내가 쉽게 공범자아 되어 범행을 의논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네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현세는 생각했다. 다행이랄까, 현세 모친은 아들의 직장 이름도 모르고 있을 뿐 아니라 현세의 이름을 아명(兒名)으로밖에 부르지 않았던 것이다. 설사 그네가 아들의 직장이나 이름을 계대로 알아 아들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절실하게 애원했다손치더라도 그것을 곧이들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들은 그네가 한 시간 동안 쏟아놓은 욕설과 과대망상적인 흰수작, 그리고 힘이 펄펄 넘쳐나는 그 발광 앞에 질려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어떡하든지 우리 집을 마련합시다. 그때 어머닐 모셔 오면 되지."

"어머일 찾아오게 되면 그 동안 든 입원비랑 치료비를 다 물어야 한다면서유?"

"그럼! 그땐 이미 무의탁자가 아니니까 다 물어야지!"

"몇 천만 원 될 텐데유?"

"몇 억이라두 물어야지!"

산동네에 이사갈 집을 정하고 내려오면서 현세 내외는 두런두런 말을 나누었다. 그러나 현세는 마음이 허망했다. 진심을 말하고 있는데, 그것이 도무지 진심일 수가 없다는 허망감이었다.

내 집, 정말 내 집에서라면 미친 이의 -어떠한 발광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인집 간장 항아리에 요강을 쏟아 부었을 때의 그 난감하고 비참한 정황은 적어도 내 집에서라면 상관이 없을 것 아닌가. 그리고 내 집에서라면 미친 이를 향한 그 손끝으로 런치는 저주와 혐오의 마음쯤은 쉽게 삭여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애비야 어딜 자꾸 가냐?"

눈이 건성드뭇이 얼어붙은 밤거리는 외투깃을 올린 채 종종걸음치는 사람이 몇 씩 옆을 지나칠뿐 퍽 한산한편이었다, 세찬 바람이 음산한 골목을 쓸고 나와 급하게 달리는 자동차 바퀴에 치여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흩어져 굴렀다.

", 아범 ! 나 내려줘어."

그래도 그네는 현세 앞에서만은 늘 제 정신인 것처럼 보였다. 현세 등에 업힌 이 날따라 더욱 그랬다.

", 애비야. 나 오줌이 매려워. 아이구, 오줌 매려. 아이구 오줌매려 죽겠네."

현세는 그네의 거뿐한 몸을 다시 추슬러 업으며 말없이 걸어나갔다. 그네에게 속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그네의 체온이 겨드랑이로 전해 오자 짐짓 몸을 떨기까지 했다.

", 애비야. 눈이 많이 왔구나."

멀쩡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현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네가 춥다는 소리를 안 하는 것만 해도 얼마큼 마음이 가벼웠다. 집을 나오기 전 헌옷가지를 잔뜩 껴 입히기를 잘했다는 생각이었다.

현세는 낮에 와서 봐 둔 장소까지 와 모친을 내려놓았다. 그네는 눈이 건성드뭇한 땅바닥에 내려지자 현세의 허리춤을 쥐고 벌벌 떨었다. 사방을 휘휘 둘러보면서 겁먹은 얼굴을 했다.

"애비야, 나 오줌 안 매려!"

그네는 어린애처럼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역시 그네는 미즌 노파였다.

", 애비야, 얼른 집에 가야 해. 요 배라처먹을 년이 또 어떤 놈하고 붙었을 게여. 고년의 고 구멍을,,,,,,"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현세는 미친 이 곁을 떠날 수 있었다. 길가 상점들이 문을 내리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상점 셔터가 삐기삐기 기묘한 오리를 내면서 내려지고 있었다.

", 애비야, 얼루 갔니? 나 추워 죽겠다!"

현세가 문득 돌아본 그네는, 처음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꼼짝하지 않은 채 징징거리고 있었다. 세찬 바람이 골목을 쓸고 나와 아스팔트 위에 굴렀다.

그때부터 현세는 결코 뒤를 돌아다보지 않았다. 얼어붙은 눈길이 무척 미끄러웠지만 발을 되는 대로 내디뎠다.

지하도 입구까지 와 발을 멈췄다. 그러나 미친 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다만 머리 속에 미친 이의 흰 머리칼이 바람에 희끔희끔 날리는 게 잠깐 스쳤을 뿐이다.

현세는 지하도의 그 완만한 경사를 이룬 계단을 밟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하도 속의 그 상가들은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그 문 닫힌 상가 한 가운데 공중 전화가 있었다. 박스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준비해 온 십 원 짜리 동전 너더댓 개를 손에 모아 쥐며 그 공중 전화 박스에 들어섰다.

 

"그럼, 그런 무의탁 환자의 입원비는 누가 물어유?"

그날 그 산동네를 내려오면서 아이들 엄마가 물었다. 그네는 아직 현세의 공범자는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병원에서 나라에다 신청을 하겠지!"

"나라에서 왜 그런 돈을 물어 줘유?"

순간 현세의 머리 속에, (어머니의 입원비를 물어야 할 사람은 국가)라는 생각이 번쩍 잡혔다. 그 생각과 거의 동시에 소달구지에 얹혀 가던 부친의 주검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것은 그 여름날 총을 빗맞은 채 모친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오다가 쓰러진 형의 주검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아이가 고 주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것은 한 아이 개인의 체험이 아니었다. 수천 수만의 아이들이 같은 모습을 하고 그 주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세가 그 지하 상가의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 다이얼을 돌리고 있을 때였다. 그때 그 아이들이 본 두 개의 주검이 따스하고 아늑한 그런 위안의 힘으로 나타나 떨고 있는 현세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었다. 현세는 거듭거듭 다이얼을 돌렸다,

신고가 끝나고 공중 전화 박스를 나서는 현세의 마음은 가벼웠다.

보호자가 없는 노파, 버려진 미친 노파, 갈 곳을 모르고 고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미친 여자 - 보호자가 없다는 것은 그 누구도 보호자가 될 수 있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현세는 먼저 내려온 지하도 계단의 반대편 계단을 천천히 오르면서, 아직도 바람 몰아치는 그 거리에 꼼짝없이 주저앉아 있을 그 미친 노파를 향해 수천 수만의 보호자가 손을 내미는 환각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친절하고도 철저한 음성으로 신고를 받던 경찰서 상황실의 그 얼굴도 모르는 한 순경에 대한 깊은 신뢰감에서 비롯된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세는 통금시간이 다 된 그 시간까지 며칠 전 들러 본 그 정신병원으로 오르는 골목 입구에 붙어 서 있었다, 바로 몇 분 전 백차에 실려 언덕을 오르던 그 미친 노파의 겁먹은 얼굴이 아직도 그 차가운 언덕길 위에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네의 눈길이 자기와 마주쳤다고 생각했다.

"애비야, 내가 잘못해쩌어, 내가 증말 잘못해쩌어!"

그네, 미친 노파의 횐 머리카락이 풀풀 흩날려 보였다.

현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그가 난생 처음 기도하기 시작했을 때 호루루기 소리가 들려왔다. 통행금지였다.

그는 서둘렀다. 우선 집까지 무사히 돌아가고 싶은 한 시민의 통금 위반을 겁낸 필사의 뜀박질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단편소설3'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꺼삐딴 리  (0) 2022.04.14
5. 까마귀  (0) 2022.04.14
3. 겨울의 출구  (0) 2022.04.14
2. 강원도 달비장수  (0) 2022.04.14
1. 가해자의 얼굴  (0) 2022.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