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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편소설3

22.사형(私刑)

by 자한형 2022.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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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형 (私刑)-전상국

 

 

"아부지, 발랑 도망아래!"

박상사(朴上士)가 돌아왔다는 것이다.

형기(刑期) 3년을 마치기까지 내내 이를 갈며 지내더란 그 박상사가 지금 마을 완호네 가겟방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다는 소식을 가지고 올라온 큰놈은 숨이 턱에 차 헉헉거렸다.

"모두 그러는데 아부질 죽일 거래."

한창 대낮, 벼 농사엔 더없이 좋은 볕쬠이라지만 너무 심한 폭염(暴炎)이었다. 내려다보이는 아스팔트 국도 위에 칸보이 지프를 앞세운 군용 트럭 십여 대가 폭염에 녹은 듯 늘어서 있었고 그 운전병들이 냇물에 벌거벗고 서서 물을 끼얹는 게 보였다.

애막골 닷 마지기 천수답에서 피사리를 하고 있던 현세(玄世)는 큰놈의 질린 얼굴에 땀이 비오듯 흐르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만 맥락이 풀렸다.

박상사가 왔다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었다. 저토록 처연하게 가슴에 상처가 난 큰놈의 꼬락서니가 보기 싫었다. 어찌 큰놈뿐이냐. 아내는 아내대로 얼굴에 그늘을 깔고 징징거렸고, 모친은 모친대로 자식 얼굴 피해 가며 한숨 삭이던 그 지리한 나날, 더 어린 것들은 또 그것들대로 어른들 눈치 보아가며 빌빌 기죽어 지내던 그런 가슴 암울했던 세월이 한꺼번에 살아 올랐던 것이다.

 

박상사. 제대를 하면서 그대로 부대 앞 천변(川邊)에 뚝딱 집을 짓고 눌러앉아 버린 박상사는 말하자면 새로 생긴 마을의 개척자였다. 얼렁뚱땅 수완이 좋고 그 거구에 비해 몸이 잰 그는, 가게 보랴, 부대 뜨물 날라다 돼지 키우랴, 마을의 궂은일 도맡아 처리하랴, 그야말로 억세게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박상사가 터잡아 앉은 부대 앞 마을은 꽤 살 만했다. 구멍가게가 넷, 간판은 없지만 격식은 다 갖춘 세탁소, 미용소, 군장 판매소, 술 특약점까지 있어 그런 대로 흥청거렸던 터수였다. 이곳저곳에서 모여든 뜨내기들로 이루어진 이 마을 사람들의 생활은 말할 것도 없이 부대가 그 젖줄이었다. 영외 거부하는 장교들이 급한 대로 마을의 이모저모를 이용했고, () 홀랑 고향에 두고 온 사병들이 눈치껏 들러 팔아 주는 물건도 대단한 것이었다. 장병 면회 온 사람들까지 이 마을을 욕심껏 이용하는가 하면 휴가 갔다 돌아오는 사병들이 부대 시간 맞추어 들어가기 위해 숨었다가 빵 봉지를 한 아름 안고 들어간다든가-어떻든 마을은 그런 대로 살 만했는데, 실은 그 살 만하다는 마을 사람들의 말 이면에 달리 기대하는게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부대에서 무엇이든 빼내 오는 그런 국물에 재미가 단단히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모여 앉으면 1종계가 어떻구 2종계 녀석이 좀 빡빡하다느니, 3종계를 삶아야 할 차례 라느니…… 아닌게아니라 콩기름이니 동태궤짝이니 척척 잘도 빼냈다. 제일 수입이 좋아 입맛이 당기는 것은 급수반이나 수송부 선임 하사를 끼고 날이 어두워 으슥한 샛길에서 받아 내는 휘발유 장사였다. 이것은 주로 박상사가 도맡아 처리했는데, 고렇다고 그 이익을 자기 혼자 꿀떡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박상사의 수완이었다. 그런 박상사를 누구나 하느님처럼 생각할 지경이었다.

부대에서도 박상사라면 알아주었다. 옛날 그 부대에서 제대를 했대서가 아니라 사람됨이 원래 사교적이어서 아무에게나 호감을 샀던 것이다. 자연 부대에 끼치는 영향력도 커, 새로 부임한 고급 장교들도 그의 이름을 알아 그것이 꼭 인사차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박상사의 가겟방에 들러 주는 것으로 예를 삼을 지경이었다.

이것이 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그러니까 군대가 후생 사업까지 하던 자유당 말기의 얘기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516이 일어난 그 해 6월까지의 형편이 그러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좋은 시절이, 그 입맛 당기는 젖줄이 하룻저녁에 끊어져 버리는 벼락이 내렸다.

군 수사 기관이 들이닥쳤다. 부대가 발칵 뒤집히고, 바로 시간에 큰 것 (휘발유 한 드럼)을 뽑아 내던 박상사가 현장에서 제꺽 고랑을 찼다. 부대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마을 사람들만 해도 이런저런 여죄에 걸려 완호와 현세 등 대여섯이 잡혀 갔다.

그 중에서 현세가 제일 먼저 풀려 나오게 됐는데,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현세가 마을에 돌아와 보니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모두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당장 굶어 죽겠다는 거였다. 부대가 옛날의 그게 아니었다. 입을 싹 씻고 토라지듯 돌아앉은 부대에선 개미 한 마리 얼씬도 안 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모든 탓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우성을 치면서도 사람들은 박상사가 어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돌아오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믿고들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달쯤 뒤에 완호 등 박상사를 제외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돌아 왔다, 박상사가 모든 걸 뒤집어썼다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게 돼 있었기도 했다.

어떻든 현세보다 늦게 풀려 나온 사람들은 마을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이를 갈았다. 현세가 밀고자라는 것이었다. 당장 때려 죽여야 한다고 서슬이 시퍼렇게 날뛰었다.

"그때 현세네 집에 왔던 작자가 거기 있었단 말이야, 분명 그놈이더라구!"

"그러지 않고서야 저놈이 먼저 풀려 나올 까닭이 없잖아!"

"죽일놈!"

공교롭게도 모든 일이 그렇게 돼 버렸기 때문에 현세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하긴 몇 번 변명 같은걸 아주 안 해 본 것도 아니다. 그러나, 변명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마을 사람들의 심사를 건드리는 결과가 된다는 것을 안 현세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사실 현세로서도 내심 켕기는 바가 컸던 것이다.

그날 읍내에서 그 녀석을 만난 것이 빌미였다. 훈련소에서 한 내무반에 있었던 인연이 전방 부대에 가서까지 계속된, 말하자면 군대 친구였다. 남쪽이 고향인 친구로 머리가 썩 좋아, 제대 무렵엔 고향 가야 별볼일 없다며, 하사관 시험을 보아 합격이 되고…… 그렇게 해서 헤어진 녀석인데, 아직 군대밥을 먹고 있다는 얘기였다. 웬 사복을 입었느냐니까 그냥 웃기에 알 만해서 그냥 넘겨 버리고 술 한 잔을 나누며, 이런저런 사는 얘길 했던 것이다.

그것이 현세로선 이제까지 가슴에 뭉친 결정적 실수였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수라기보다는 사실 현세는 그 당시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의 생태에 대해서, 더는 자기 자신의 떳떳치 못한 생활에 대해서 얼마간 회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다 자유당 말기의 그 문란한 군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비판적인 소리를 술김에 했던 것이다. 그런 지 며칠 후 그 녀석이 마을에 찾아왔던 일과, 냇물고기가 먹고 싶다기에 고기를 잡아다가 어죽을 해 놓고 소주 두어 병을 마셨을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516후 세상이 달라져 부대 기강이 엄하게 잡힌 것까지 현세에게 그 책임을 얹었다. 순억지를 부려 현세를 괴롭혔다. 말하자면 옛날 흥청거리던 마을의 경기가 폭삭 가라앉은 데 대한 불만을 현세를 돌파구로 삼아 터뜨렸던 것이다.

현세더러 자결(自決)하라고 했다. 자고로 밀고자는 옛날의 역적과 진배없는 것이니 스스로 목숨을 끊어 회개하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쪽에서 묵묵부답이니까, 식칼을 들고 덤비는 아낙네도 있었다. 여기서는 이제 더 살 수가 없다며 보따리를 싸던 세탁소 집은 현세네 집에 불을 확 싸질러 놓고 가겠다며 휘발유통을 들고 날뛰었다. 어른들뿐이 아니고 아이들까지 현세네 집 쪽으로 침을 뱉었다.

"난 죽어두 이사는 못 가, 저놈의 집 홀딱 망해 자빠지는 꼴을 보거나 박상사가 나와 저놈의 배때길 칼루 쑤셔 놓는 걸 보기 전엔."

대개 이런 저주 담긴 악담을 자기들의 일이 잘 안 풀릴 땐 서슴없이 쏟아 놓았다

이런 현세의 입장을 내 건너 감두리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고수름하게 여겼다. 한 마을에 살다가 불쑥 가겟방을 차리고 부대 앞마을로 내려앉은 현세가 고들로서는 도무지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터수였던 때문이다. 땅 파던 놈이 땅이나 팔 것이지 어쭙잖게 탐심이 크더라니, 자승자박이요, 사필귀정이라 했다.

그러나 현세는 누가 무슨 소릴 해도 눈 딱 감고 날 잡아 잡수시오, 하는 심정으로 모른 척했다. 누가 칼을 배에 대고 찔러 죽이겠다고 했어도 아마 참아 냈을 것이다.

그런데, 현세로선 더 이상 견딜 수 없이 괴로운 일이 발생했다. 박상사의 하나뿐인 다섯 살박이 아들이 물에 싸져 죽은 것이다. 박상사가 언도를 받고 교도소에 넘어간지 꼭 한 달되던 날이었다. 마을 아이들을 따라 목욕을 나갔던 놈이 끝내 들어오지 않았음을 그것도 해 파 저물어 읍내에서 돌아온 박상사 처가 애 이름을 부르며 마을을 헤매서야 알게 되었다. 그즈음 박상사 처는 남편 재판 때문에 정신없이 읍이나 시()로 헤매던 때였다.

박상사가 제대하면서 결혼이고 뭐고 혈혈 단신 외로운 몸끼리 만났다며 자기보다 나이가 십여 년 어린 여자 하나를 데리고 살림을 시작한 그 여자는 항상 남편을 휘어잡아야 속이 시원해 하는 그런 여자였다. 거기다 바람기까지 있어 박상사와 툭하면 싸움을 벌였다. 누님, 누님, 하고 부대 사병들이 줄을 이어 기웃거리기가 예사였다.

박상사 처는 물에서 건져 낸 죽은 애를 안고 현세네 집으로 들이닥쳤다. 내 남편 저 꼴로 만들어 놓더니 이젠 내 새끼까지 죽었으니 속이 시원하겠다며 방바닥을 긁으며 대성 통곡을 했다. 입에 물 한 모금 안 넣고 이틀을 그렇게 현세네 안방을 차지했다. 그 통에 혼이 빠진 현세 처와 애들은 당장 이사를 가자고 징징거렸다. 철없는 아이들은 마을 사람들이 갖는 그런 저주를 현세에게 나타내 보였다. 큰놈이 중학교를 그만두어 버린 것도 그런 심사에 서 였음이 분명했다.

박상사를 면회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그 활달하고 마음좋은 사람이 그렇게 무섭게 변할 수가 있느냔 거였다. 눈이 이글이글 무섭게 타오르더라고, 입을 열면 현세를 죽여야 한다는 말이 쏟아지더란 얘기였다.

현세도 딱 한 번 면회를 갔었다. 그러나 재소자(在所者)가 만나지 않겠다고 해서 그냥 허허하게 되돌아섰다.

 

설상가상으로, 박상사가 교도소에 들어간지 일 년 남짓해서 박상사 처가 어떤 제대해 나가는 사람과 배가 맞아 달아나 버렸던 것이다. 박상사 처의 그 요염한 얼굴이며 거동으로 미루어 성치는 않으리란 마을 사람들의 짐작이었지만 그렇게 덜컥 도망을 가 버리리라곤 정말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다.

"독한 것이 계집이여!"

모두 혀를 찼다. 남편이 그 지경이 되고, 아들 잃고……. 무슨 경황에 그렇게 됐겠느냔 얘기였다, 더 놀라운 것은 도망갈 때 모든 것을 씻은 듯이 정리해 갔던 것이다. 가겟방 물건을 죄 넘겨 팔았는가 하면 돼지새끼는 물론 사소한 가재 도구까지 읍내 사람들이 트럭을 가져와 실어 갔다. 집만 덩그러니 남았다. 참 솜씨있게도 챙겨 갔다.

마을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은, 애막골 현세네 논에 붙어 있는 여섯 마지기 논을 어떻게 처분했을까 하는 거였다. 비록 천수답이지만 그 논을 사 놓고 박상사는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고향이 북쪽이라 혈혈 단신인 그는 평생 소원이 내 땅을 가져 보는 것이라고 하더니, 그예 늘려 오던 퇴직금으로 그가 교도소에 가기 일 년 전인가 제 논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 논 등기를 그 여자가 가지고 갔으나 이제는 누가 주인이라고 나설 것인지 그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근 마을 사람이야 안 샀을 게고……."

"제엔장, 읍내 어떤 놈이 헐값에 맡았겠지.

"천벌을 받을 것이!"

그 일로 해서 현세는 마음에 좀더 깊은 낭패의 구렁이 파이게 되었다. 적진에서 적의 행방을 놓쳤늘 순간 그 두려움에 비유가 된다고 할 수 있을.

 

"할머이 지금두 가슴 아프시다구 하디?"

내려갈 생각을 않고 버티고 선 큰놈에게 아침부터 가슴이 치민다던 모친의 속앓이를 물어 본 것이다. 조금 언짢은 일만 생겨도, 심지어는 간밤 꿈자리만 좋지 않아도 속앓이가 이는 모친이었다, 소위 홧병이라는 거였다.

"어머이가 질금물 해 드렸는데두 자꾸 아프다구 하던 데유."

"이놈아! 고러니까 발리 내려가 할머니 배 좀 밀어 드려!"

그렇게 큰놈을 내려 쫓고, 현세는 잠시 일손을 놓고 땀을 씻으며 아래켠을 내려다보았다. 큰놈이 뭔가 못미더운 듯 힐끔힐끔 뒤를 돌아다보며 찔레 덩굴 덮인 골짜기를 내려가고 있었다. 그 아래 개울 건너 아스팔트 깔린 국도엔 폭염에 늘어 붙었던 군용 트럭이 칸보이를 선두로 서서히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아스팔트가 눅진눅진 녹아나고 있을 것이다.

웬 아낙 하나가 국도를 벗어나 개울을 건너 이쪽 애막골로 허위허위 오르고 있었다. 몹시 바쁜 걸음이군-그렇게 생각하다가 현세는 그것이 자기 처라는 것을 알고 저으기 놀랐다. 찔레 덩굴이 시작하는 데서 큰놈과 만나 무엇인가 얘기를 주고받는 것 같더니 다시 허위허위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현세 처는 검은 비닐 가방까지 들고 와 논두렁에 집어 던지곤 자기도 털썩 주저앉았다. 큰놈처럼 숨이 턱에 차 헉헉거렸다.

"어머이 속앓이가 심해?"

"어머이야 어찌 됐든, 동수 아버이! 왜 이래유 글쎄?"

그녀는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그런 얼굴을 했다. 현세는 그녀가 논두렁에 집어 던진 검은 비닐 가방에 눈을 주었다.

"동수 아버이 옷이야유. 복골 이모댁에 가서 메칠만 있어 봐유. 어머님이 그렇게 하래유."

"왜들 법석이야? 뭐가 어떻다구. , 이 피 다 뽑구 내려갈 거니, 어서 내려가 어머니 약이나 해 드려. 왜 그때 양귀비 곤 거 좀 남았을 텐데……."

속병엔 아편이 잘 들었다, 난리 때 그 끔찍한 일을 당하고부터 속병을 얻었다는 모친은 정 못견디겠으면 양귀비부터 찾았다.

"어디루 내려가유?"

"어디긴? 집이지 어디야."

"글쎄 동수 아버이, 그 오기 줌 꺾어유.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유?"

현세는 더 대꾸도 않은 채 피사리를 계속해 나갔다.

"이젠 정말 지긋지긋해유. "

현세 처는 울고 있었다,

-이놈()은 항상 벼보다 성장이 빠르단 말이야. 가뭄을 타길 하나, 병충해에도 끄덕 없거든.

"난유, 동수 아버이 맞아 죽는 게 겁시 나서 그러는게 아니야유. 죄 없는 애새끼들이 불쌍해서 그러는 거예유."

-추운 지방에선 피 농사를 지어 식량으로 쓴다고 하더라만……. 제에길 나두 이놈의 피 농사나 한 번 지어 볼까.

"아이구, 내 팔자야."

드디어 현세 처는 왜감을 놓아 울면서 뿌르르 일어나더니, 마을을 향해 비칠비칠 내려가기 시작했다.

 

현세는 자꾸 자기네 닷 마지기 맨 끝에 붙어 있는 박상사의 논에 신경이 쓰였다. 처음 이 애막골로 피사리를 올라올 때 그 논까지 피사리를 하리라 작정하고 왔던 것이다. 주인 없는 논이지만 모는 내고 보자고 해서 모를 내 놓긴 했어도 누구 하나 신경을 쓰는 사람이 없었다. 틈틈이 논물을 댄다든가 애벌 논매기까지 현세의 공이 든 그런 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저 논에 선뜻 들어설 수가 없었다.

논 임자가 왔는데, 그것이 논 임자가 될 수 없다는, 엉뚱한 논 임자가 나타날 것이란 그런 생각에 이르자 현세는 그만 가슴이 답답해졌다.

당장 마을을 떠나 훌훌 다른 곳에 가 살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은 더 치밀었다. 더욱 잦아진 모친의 속앓이, 삽추싹뿌리 달인 걸 먹어야 소화가 되는 자기의 병든 위장, 아내의 징징거림, 애들의 성화…… 어떻든 이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현세는 그것을 행동으로 옳길 수가 없었다. 마을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 그 밑바닥엔 오히려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란 다짐이 서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국민 학교 다닐 때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책보를 펴다가 명지손가락만한 크기의 아주 예쁜 주머니칼을 발견했다. 옆자리 애의 것으로 서울서 온 친척이 주고 갔다는, 시골 학교에서는 처음 보는 귀한 것이었다. 모두가 한 번이라도 만져 보고 싶어했다. 그런데 어쩐 일로 그것이 자기 책보 속에 싸여 온 것이다. 그것을 손에 꼬옥 쥐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웬일인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집에 숨겨 두고 아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리리라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다음날 그것을 학교에 가지고 나갔다. 주인에게 사실을 얘기하고 돌려 주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교실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덤벼들었다. 주머니칼을 찾아 낸 놈들은 의기 양양한 기세로 몰매를 내렸다. 한 마디 입을 뗄 겨를도 없었다. 끝내 변명 한 마디 못하고 반 아이들로부터 갖은 곤욕을 당했다. 놀이에 끼어 주지 않았다. 이쪽에서 접근하면 모두 외면을 했고 돌아서면 손가락질이었다. 도둑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자 하고 그들 뒤를 따라다녔다. 그러지 않고는 너무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현세는 박상사가 정말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자식 잃고, 처 잃고, 악을 써 모은 가산까지 날린 마당에 박상사가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죽이기까지는 안 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못지 않는 위해(危害)를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현세는 지금 마음이 가벼웠다. 큰놈이 올라와 낙상사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부터 현세의 가슴에 서렸던 암운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마을을 뜨지 않고 견뎌 낸 것이 백 번 잘했다는 생각이 자랑처럼 피어올랐다.

", 아범 !"

현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집에서 속병을 앓고 있을 모친이 논두렁에 주저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육순도 안된 나이에 비해 폭삭 늙어 버린 그녀의 조그마한 몸뚱이가 땀에 젖은 채 괴로와하고 있었다. 명치께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헉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니, 아픈 이가 예까지 뭘 하러 왔수?"

모친이 속병으로 설설 길 때마다 현세는 형언할 수 없는 증오에 몸을 떨곤 했다. 연민이 증오로 탈을 바꾸는 것이다.

"너 왜 이러냐, 이러길?"

-당신은 맹목적으로 인생을 살았단 말이오. 당신의 인생은 전부 헛것이었단 말입니다.

"이것아, 얼른 피해라, 제발 빌자꾸나. 박상사 금방 이리루 올라올 거여."

-어머이, 나는 당신을 이때까지 사랑하지 않았어요. 사랑은커녕 저주해 왔단 말이오. 당신이 일방적으로 쏟은 자식에 대한 그 맹목적 사랑이 난 싫었단 말이오.

"너 이놈, 불효 막심한 놈 ! "

현세는 일손을 멈추고 모친 쪽으로 눈을 돌렸다. 무서운 기세로 몸을 일으켜 세운 모친의 작은 몽뚱이가 춤추듯 움직였다.

"이놈, 차라리 니가 날 죽여라. 내가 이놈의 세상, 살고 싶어 산 줄 아느냐? 니놈 죽어 자빠지는 꼴 보고 싶어 입때까지 내가 살아 온 줄 아느냐?"

현세 모친은 논을 가로질러 현세 있는 데까지 와 있었다. 현세는 이때까지 이렇게 큰소리치는 모친을 본 적이 없었다. 자식 앞에서까지 항상 기죽어 빌빌 눈치를 보며 살아 온 모친이었던 것이다. 현세는 모친의 작은 몸뚱이를 껴들어 안고 논둑으로 나와 조심스럽게 내려 놓았다. 모친의 얼굴은 속앓이에서 오는 고통인지 몹시 일그러져 있었다.

"어머이, 같이 집에 내려갑시다."

그렇게 말하면서 현세는 지게를 벗어 놓은 논두렁 한 켠에 우뚝 선 엄나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가슴을 움켜 쥐고 쓰러져 있던 현세 모친이 뿌르르 몸을 일으키더니,

"집엘 가? , 이놈이 증말 에미 앞에 기막힌 꼴 보이구 싶어 환장을 했구나. 오냐. 그래, 내가 먼저 죽으마.“

그녀는 분연히 몸을 돌려 마을을 향해 허둥허둥 내려가기 시작했다.

현세는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남방 주머니에서 담배 꽁초를 찾아 물었다.

현세만은 모친의 그 치욕 속에 보낸 그 역겨운 세월을 안다. 그 질욕(叱辱) 속에 묻혀 산 추하고 끈질긴 목숨.

 

전날까지 멀쩡하게 논에 갈을 넣던 남편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죽어 있었다. 굿을 하니까 여자에게 살이 끼어 있다는 거였다. 아주 못된 악귀가 붙었다는 것이었다. 현세가 세 살, 젊은 과부가 된 그녀는 시부모의 갖은 구박과 이웃의 손가락질을 받아 가며 용케도 견뎌 냈다. 그리고 현세가 열 세 살 되던 해 사변이 터졌는데, 마을에 들이닥친 외국 병정 셋에게 그녀는 난행을 당했다. 현세는 마굿간에 숨어서 안채에서 들려 오는 그 처참한 비명을 들었다. 외국 병정이 물러가고 현세가 방문을 열어젖혔을 때 그녀는 사지를 흩뜨려 죽어 있었다. 마을 친척집에 가 있던 시부모가 달려왔을 때까지도 그녀는 죽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살아났다. 시모(媤母)가 인두를 달구어 며느리의 팔목과 장딴지를 지져 댄 게 두 번이나 되었다. 머리채를 끌어 내어 사립문 밖에 내쫓는 것은 부지기수였다. 글쎄, 그 세 놈하고 잠자릴 하면서 신방 차린 것처럼 조용하더래. 말 좋아하는 이웃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했다. 엉금엉금 기어 들어와 현세를 끌어안고 소리 없이 우는 며느리 앞에 시부모는 양잿물 그릇을 내놓기도 했다. 현세는 모친이 그것을 먹고 죽어 주기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요지부동이었다. 시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까지도 그녀는 말을 잃고 한 마리 짐승처럼 일만 했다. 현세를 고등 학교까지 공부시킨 것은 전연 그녀의 그 근면이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나날의 그 속앓이와.

-어머이, 당신은 죽지 않아요.

뜨거운 햇볕 속 찔레 덩굴 사이로 비칠비칠 덫에 치인 짐승처럼 내려가고 있는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현세는 담배를 깊이 빨아들였다.

 

박상사가 애막골에 그 모습을 나타낸 것은 현세 모친이 내려가고 좋이 한 시간이 지나서였다. 짧게 깎은 머리로 해서 박상사는 오히려 더 비대해 보였다. 그 거구에 혈색도 좋아 보였는데 마을에서 마신 술이 얼굴을 그렇게 보이게 했는지도 모른다.

마을 아이들이 아스팔트 국도변에 혹은 찔레 덩굴 있는 데까지 올라와 이 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호기심이 더 강한 놈은 꽤 가까운 논둑까지 기어 올라와 몸을 숨기고 가끔 머리를 내미는 게 보였다. 아이들은 언제나 떳떳하니까 장한 증인이 되기를 좋아했다,

박상사는 체크 무의 있는 남방을 한 손에 벗어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현세가 들어서 있는 논까지 와선,

"어이, 현세!"

손까지 흔들며 커다랗게 외쳤다.

더 머뭇거릴 수는 없었다. 현세는 박상사가 서 있는 논둑으로 절벙절벙 걸어 나갔다.

박상사가 내민 커다란 손을 잡았다. 손 크기에 비해 손아귀의 느낌은 너무 빈약한 느낌을 주었다.

"저게 우리 논이지?"

현세네 닷 마지기 옆으로 조닥조닥 배미진 여섯 마지기 논이 흘러 내리듯 층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 논, 그는 분명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현세는 몹시 당혹하기 시작한 자신을 발견했다. 이런 경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박상사는 그 논에 이르러 벼를 쓸어 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나두 농사 지을 수 있을까7"

-박상사, 너는 너무 잔인하군.

모처럼 개이던 현세의 가슴에 다시 암운이 끼이기 시작했다

……해 볼 거야. 교도소에서 내내 그 생각만 했지."

박상사는 정말 취해 있었다. 그러나 하나도 취한 사람 같지가 않았다

"일 년 전에 재호 엄마가 면회를 왔었는데 말이야(그게 마지막 면회였지만), 논문서(등기)를 가지고 왔더군. 처음엔 팔아 먹을려고 했는데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구 하면서 말이야. 출소할 때 찾아 가지고 왔지."

쑤아아, 매미가 숲에서 여름을 식히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기 같은 건 제발 잊어 달라는 거야, 사실은 재호두 내 자식이 아니었다면서. 짐작은 했지만 막상 듣고 보니 기분 안 좋데, 현세두 아는지 모르지만 내가 원래 사내 구실을 못했거든, ㅎㅎㅎㅎ……"

거짓말이다. 현세는 몸 둘 바를 몰라하면서 지금 박상사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박상사 처가 거짓말을 했거나.

"저놈들 많이두 컸더군!"

박상사는 꽤 멀리 떨어진 논둑에 숨어 기웃거리고 있는 마을 아이들을 가리켰다. 국도변과 찔레 덩굴 근처에 있던 아이들도 모조리 논둑까지 올라와 있었다.

"계집이란 좌우간 요물이라니깐. 글쎄, 그때 찔러 넣은 게 바로 자기였다나. 하긴 하루도 몇 번씩 도망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니까 그럴 수도 있었을 게야. 그런 걸 괜히 자넬 미워한 적도 있지."

논둑에 숨었던 아이들이 일제히 몸을 드러냈다. 이쪽을 보는 게 아니라 모두 산그늘에 잠기기 시작한 국도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큰놈이 이쪽 애막골을 향해 아부지이, 아부지, 소리치며 뛰어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현세, 자네 같음 어떻게 하겠나? 그년 말이야…… "

-어머이, 당신은 절대……

"그년을 찾아 내서 배때기를 푸욱 쑤셔 놓아야 속이 시원할 건지……

아이들이 웅성웅성 다가왔다.

"아니 저놈, 자네 큰놈이 아닌가?"

마을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큰놈이 현세를 향해 울음 섞어 질러 댔다.

"할머이가…… "

명주실 세 꾸리가 풀린다는 예기소(銳氣沼)에 몸을 던졌다는 것이다. 할머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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