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이청준
여인은 초저녁부터 목이 아픈 줄도 모르고 줄창 소리를 뽑아대고, 사 내는 그 여인의 소리로 하여 끊임없이 어떤 예감 같은 것을 견디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북장단을 잡고 있었다. 소리를 쉬지 않는 여인이나, 묵묵히 장단 가락만 잡고 있는 사내나 양쪽 다 이마에 힘든 땀방울이 솟고 있었다.
전라도 보성읍 밖의 한 한적한 길목 주막. 왼쪽으로는 멀리 읍내 마을들을 내려다보면서 오른쪽으로는 해묵은 묘지들이 길가까지 바싹바싹 다가앉은 가파른 공동 묘지-그 공동 묘지 사이를 뚫어 나가고 있는 한적한 고갯길목을 인근 사람들은 흔히 소릿재라 말하였다. 그리고 그 소릿재 공동 묘지 길의 초입께에 조개 껍질을 엎어놓은 듯 뿌연 먼지를 뒤집어쓰고 들앉아 있는 한 작은 초가 주막을 사람들은 또 너나없이 소릿재 주막이라 말하였다. 곡성과 상여 소리가 자주 지나는 묘지 길이니 소릿재라 부를 만했고, 소릿재 초입을 지키고 있으니 소릿재 주막이라 이를 만했다. 내력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 그쯤 짐작을 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이 소릿재와 소릿재 주막에는 또 다른 내력이 있었다. 귀가 밝은 읍내 사람들은 대개 다 그것을 알고 있었다. 보성 고을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쩌면 이 소릿재 주막에 발길이 닿아 하룻밤쯤 술손 노릇을 하고 나면 그것을 쉬 알 수 있었다.
주막집 여자의 소리 때문이었다.
남자도 없이 혼자 몸으로 주막을 지키고 살아가는 여자의 남도 소리 솜씨가 누가 들어도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날 저녁의 손님 역시 그것을 이미 깨닫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는 애초부터 그저 우연히 발길에 닿아 와서 이 주막을 찾아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실상 읍내의 한 여인숙 주인으로부터 소릿재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이미 분명한 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뒷얘기를 더 들을 것도 없이 그 길로 자신의 예감을 좇아 나선 것이었다.
주막집에는 과연 심상치 않은 여인의 소리가 있었다. 초저녁께부터 시작해서 밤이 깊도록 지칠 줄을 모르는 소리였다. 소릿재의 내력에는 그 서른이 채 될까 말까한 여인의 도도하고도 구성진 남도 소리가 뒤에 숨어 있었다.
하지만 사내는 여인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주막을 찾아올 때의 그 부푼 예감이 아직도 흡족하게 채워지질 못하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것은 오히려 더욱더 견딜 수 없는 어떤 예감으로 깊이깊이 사내를 휘몰아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방 안에 술상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그는 거의 술 쪽에는 관심도 두지 않고 소리에만 넋이 팔려 있었다. 여인이 춘향가 몇 대목을 뽑고 나자 사내는 아예 술상을 한 쪽으로 밀어 놓고 제편에서 먼저 북장단을 자청하고 나섰던 것이다.
“좋으네. 참으로 좋으네....... 자, 이 술로 목이나 좀 축이고 나서------."
여인이 소리를 한 대목씩 끝내고 날 때서야 그는 겨우 생각이 미치는
듯 목축임을 한 잔씩 나누고는 이내 또 여인에게 다음 소리를 재촉해대곤 하는 것이었다.
한데 여인이 이윽고 다시 수궁가 한 대목을 구성지게 뽑아 제끼고 났을 때였다. 사내는 마침내 참을 수가 없어진 듯 여인에게 다시 목축임 잔을 건네면서 물어 왔다.
한데...... 한데 말이네. 자넨 대체 언제부터 이런 곳에다 자네 소리를 묻고 살아오던가?,,
여인은 사내의 그 조심스런 물음의 뜻을 얼른 알아차릴 수가 없었던 지 한동안 말이 없이 사내 쪽을 가만히 건너다보고 있었다.
"이 고갯길을 소릿재라 이름하고, 자네 주막을 두고는 소릿재 주막이 라 하던 것을 듣고 왔네. 그래 이 고을 사람들이 그런 이름을 지어 부르는 건 자네 소리에 내력을 두고 한 말이 아니던가"
사내가 한 번 더 물음을 되풀이했으나 여인은 이번에도 역시 대꾸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여인의 침묵은 사내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 서만은 아닌 것 같았다. 여인은 다시 한동안이나 사내 쪽을 이윽고 건너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뭔가 사내의 흉중을 헤아려 내고 싶어지기라도 한 듯 천천히 고개를 저어대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 소릿재 주막의 사연은 자네가 첫번 임자가 아니더란 말인가? 자네 먼저 여기에 소리를 하던 사람이 있었더란 말인가?“
자기 예감에 몰리듯 사내가 거푸 다급한 목소리로 물어대고 있었다.
"자네 소리에도 그러니까 앞서 이를 내력이 따로 있었더란 말이 아닌가?,,
여인이 비로소 고개를 바로 끄덕였다. 그리고는 뭔지 괴로운 상념을 짓씹고 있는 듯 얼굴빛이 서서히 흐려지면서 띄엄띄엄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답니다. 이 고개나 주막 이름은 제 소리 따위에 연유가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진짜 소리를 하시던 분이 계셨지요."
"그 사람이 누군가? 자네 먼저 소리를 하던 분이 어떤 사람이었던가 말이 네."
"무덤의 주인이었지요."
"무덤이라니?”
"요 언덕 위에 묻혀 있는 소리의 무덤 말씀이오. 소릿재를 알고 소릿재 주막을 알고 계신 양반이 소리 무덤 얘기는 아직 모르고 계시던 모양이구만요. 뒤쪽 언덕 위에 그 분의 무덤이 있답디다. 소리만 하다 돌아가셨길래 소리를 함께 묻어드린 그 분의 무덤이 말씀이오. 소릿재나 소릿재 주막은 그 분의 무덤을 두고 생긴 말이랍니다,,-,,,."
다그쳐대는 사내의 추궁을 피할 수가 없어진 듯 아득한 탄식기 같은 것이 서린 목소리로 털어놓은 여인의 이야기는 대략 이런 것이었다.
육이오 전화로 뒤숭숭해진 마을 인심이 조금씩 가라앉아 가고 있던 1956, 7년 무렵의 어느 해 가을 - 여인이 아직 잔심부름꾼 노릇으로 끼니를 벌고 있던 읍내 마을의 한 대가집 사랑채에 이상한 식객 두 사람이 들게 되었다. 환갑 진갑 다 지낸 그 댁 어른이 우연히 마을 나들이를 나갔다 데리고 들어온 소리꾼 부녀였다. 나이 이미 쉰 고개를 넘은 늙은 아비와 열다섯이 채 될까말까한 어린 딸아이 두 부녀가 똑같이 다 주인 어른을 반하게 할만큼 용한 소리꾼들이었다.
주인 어른은 두 부녀를 아예 사랑채 식객으로 들어 앉혀 놓고 그 가을 한철 동안 톡톡히 두 사람의 소리를 즐기고 지냈다.
아비나 딸아이나 진배없이 소리들을 잘했지만, 소리를 하는 것은 대 개 딸아이 쪽이었고 그녀의 아비 쪽은 북장단을 잡는 쪽이었다. 주인 어른은 실상 아비 쪽의 소리를 더 즐기는 눈치였지만, 그 아비는 이미 늙고 병이 들어 기력이 쇠해져 있는 데다, 나 어린 계집아이의 도도하고도 창연스런 목청에는 주인 어른도 못내 경탄해 마지않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녀는 그 가을 한철을 하염없이 소리만 하고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새 겨울이 닥쳐오고, 겨울철 찬바람에 병세가 더치기 시작했던지, 가을철부터 심심찮게 늘어가던 그 아비 쪽의 기침 소리가 갑자기 참을 수 없는 발작기로 변해 갔다.
그러자 아비는 웬일인지 한사코 그만 어른의 집을 나가겠노라 이상스런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고, 고집을 말리다 못한 주인 어른이 마침내는 노인의 뜻을 알아차린 듯 찬바람 휘몰아치는 겨울 거리 밖으로 두 부녀를 내보내고 말았다.
이윽고 들려 온 소문이, 그 날 한나절 방황 끝에 두 부녀가 찾아든 곳이 그 공동 묘지 길 아래 버려진 헛간 같은 빈 집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병이 들어 거동이 어려워진 늙은 아비는 24)식음을 전폐한 채 밤만 되면 소리를 일삼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문을 전해들은 주인 어른이 그 때의 그 심부름꾼 계집이던 여인에게 다시 양식거리를 그 곳까지 이어 보내곤 했다. 여인이 심부름을 나가 보면 모든 게 소문대로였다. 고개 아랫마을 사람들은 밤만 되면 아비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었다. 고갯길 주변에 공동 묘지가 생긴 이래로 어느 때보다도 깊은 )통한과 -허망스러움이 깃들인 소리라 했다.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아무도 그것을 귀찮아하거나 짜증스러워하는 이가 없었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 부녀를 두고 까닭 없는 한숨 소리들을 삼키며 자신들의 세상살이까지를 덧없어할 뿐이었다.
그럭저럭 그 해 겨울도 다해 가던 음력 "세모께의 어느 날 밤이었다. 그 날은 마침 가는 해를 파묻어 보내듯 온 고을 가득하게 밤눈이 내리고 있었는데, 그 날 밤 새벽녘에 아비는 드디어 이승에서의 마지막소리를 하고 나서 그 길로 그만 피를 토하며 가쁜 숨을 거둬 가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저녁 무렵, 소식을 전해들은 주인 어른의 심부름을 받고 여 인이 다시 부녀의 오두막으로 갔을 때는, 재 아랫마을 사람들이 이미 공 동 묘지 길목 위의 한 구석에 소리꾼 아비의 육신을 파묻고 돌아보던 참이더라는 것이었다.
한데 또 하나 알 수 없는 것은 그렇게 해서 아비가 죽고 난 뒤의 계집아이의 고집이었다. 소리꾼 아비가 죽고 나자 여인네 집주인 어른은 의지할 데 없는 그 계집아이를 다시 그의 집으로 데려오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계집아이는 어찌된 속셈인지 한사코 그 흥흥한 오두막을 떠나지 않으려고 했다. 어른의 말을 따르기는커녕 나중에는 그 죽은 아비의 소리까지 그녀가 다시 대신하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주인 어른이 이번에는 또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어린 계집아이 혼자 지키고 앉아 있는 오두막으로 당신네 잔심부름꾼 계집아이를 할께 가 지내게 했고, 게다가 또 "술청지기 사내까지 한 사람을 덧붙여서 자그마한 술 주막을 내게 해 주더라 했다.
"무슨 소리를 들을 귀가 있을 턱은 없었지만, 저 역시도 그 여자나 여자의 소리에는 신기하게 마음이 끌리는 대목이 있었던 터라서, 어른의 말씀엔 두말 없이 주막으로 자리를 옮겨 앉은 것이 그 여자한테 소리를 익히게 된 인연이었지요. 그 여자도 이번에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던지 그로부터 몇 년간은 주막을 찾아든 사람들 앞에서 정성을 다해 소리를 했고, 손님이 없는 날 같은 때는 저한테까지 그 소리를 배워 주느라 밤이 깊은 줄을 모를 때가 많았어요. 그런 세월을 꼬박 삼 년이나 지냈다오."
여인은 이제 아득한 회상에서 정신이 깨어나고 있는 듯 서서히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여인은 아비의 기일이 찾아오면 음식을 장만하기'보다 - 정갈한 술 한 되를 따로 마련하고, 고인의 - 영좌 앞에 밤새도록 소리를 하는 것으로 제례를 대신했는데, 어느 해 겨울인가는 제주조차 따로 마련함이 없이 밤새도록 소리만 하고 있다가 다음 날 아침 날이 밝고 보니 그 날 새벽으로 여자는 혼자 집을 나간 채 그것으로 그만 다시는 영영 - 종적을 들을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아비의 삼년상이 끝나던 날 새벽의 일이었다 했다.
한데 희한스런 일은 그 아비의 주검이 묻히고 나서도 계속 주막에서 들려 나오고 있는 그 여인의 소리에 대한 아랫마을 사람들의 말투였다. 아비가 죽고 나선 그의 딸이 소리를 대신했고, 그 딸이 자취를 감추고 나선 여인이 다시 그것을 이어 가고 있었으나, 아랫마을 사람들은 언제나 그 소리를 옛날에 죽은 그 늙은 사내의 그것으로만 말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묘지에 묻힌 소리의 넋이 그의 딸과 여인에게 그것을 이어 가게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딸이 하거나 여인이 대신하거나 사람들은 언제나 그것을 죽은 사내의 소리로만 들으려 했고, 그렇게 말하기를 좋아해 왔다는 것이었다.
"그래 사람들은 그 어른의 무덤을 소리 무덤이라고들 한답니다. 소릿재니 소릿재 주막이니 하는 소리도 거기서 나온 말이고요. 전 말하자면 그 소리 무덤의 -묘지기나 다름이 없는 인간이지요. 하지만 전 그걸 원망하거나 이 곳을 떠나고 싶은 생각은 없답니다. 이래뵈도 지금은 제가 그 노인네의 소리를 받고 있는 턱이니께요. 언젠가는 한번쯤 당신의 핏줄이 이 곳을 다시 스쳐갈 날을 기다리면서 이렇게 당신의 소리덕으로 끼니를 빌어먹고 살아가는 것도 저한테는 이만저만한 은혜가 아니거든요."
여인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끝맺고 나서 다시 소리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홍보가 가운데서 흥보가 매 -품팔이를 떠나면서 늘어놓는 신세 타령의 한 대목이 시작되고 있었다.
여인이 성큼 소리를 시작하자 사내도 이내 다시 북통을 끌어안으며 뒤늦은 장단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 장단을 잡아나가는 사내의 솜씨가 아까번처럼은 금세 소리의 흥을 타지 못하고 있었다. 사내는 아직도 뭔가 자꾸 이야기의 뒤끝이 -미진한 얼굴이었다. 여인의 소리보다도 아직은 좀더 이야기를 캐고 싶은 표정이 역연했다. 하지만 사내의 기색 따윈 아랑곳도 하지 않은 채 여인의 소리가 점점 열기를 더해가기 시작하자, 사내 쪽도 마침내는 북채를 꼰아쥔 손바닥 안에 서서히 다시 땀이 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가슴이 끓어오르는 어떤 뜨거운 회상의 골짜기를 헤매어 들기 시작한 듯 두 눈길엔 이상스런 열기 같은 것이 담기기 시작했다.
사내는 그 때 과연 몸을 불태울 듯이 뜨거운 어떤 태양의 불볕을 견디고 있었다.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의 머리 위에서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뜨거운 여름 햇덩이가 하나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의 한 숙명의 태양이었다. 파도비늘 반짝이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해변가 언덕 밭의 한 모퉁이 -그 언덕 밭 한 모퉁이에는 누군가 주인을 알 수 없는 해묵은 무덤이 하나 누워 있었고 소년은 언제나 그 무덤가 잔디밭에 허리 고삐가 매여져 지내고 있었다. 동백나무 숲가로 뻗어 나온 그 길다란 언덕 밭은 소년의 죽은 아비가 그의 젊은 아낙에게 남기고 간 거의 유일한 유산이었다. 소년의 어미는 해마다 그 밭뙈기 농사를 거두는 일 한 가지로 여름 한철을 고스란히 넘겨 보내곤 했다.
소년은 날마다 그 무덤가 잔디에서 고삐가 매인 짐승 꼴로 긴긴 여름날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그 - 언덕바지 무덤가에서 소년은 더러 물비늘 반짝이며 섬 기슭을 돌아나가는 돛단배를 내려다보기도 했고, 더러는 또 얼굴을 쪄오는 듯한 여름 태양볕 아래 배고픈 낮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제나저제나 밭고랑 사이로 들어간 어미가 일을 끝내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여름마다 콩이 아니면 콩과 수수를 함께 섞어 심은 밭고랑 사이를 타고 들어간 어미는 소년의 그런 기다림 따위는 아랑곳을 하지 않았다. 물결 위를 떠도는 부표처럼 가물가물 콩밭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하루 종일 그 노랫소리도 같고 울음소리도 같은 이상스런 콧소리 같은 것을 웅웅거리고 있었다. 어미의 웅웅거리는 노랫가락 소리만이 진종일 소년의 곁을 서서히 멀어져 갔다간 다시 가까워져 오고, 가까워졌다간 어느 틈엔가 다시 까마득하게 멀어져 가곤 할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뙈기밭 가로 해서 뒷산을 넘어가는 고갯길 근처에서 이상스런 노랫가락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밭두렁 길을 지나 뒷산으로 들어가는 푸나무꾼 같은 사람들에게서 자주 듣던 소리였다. 하지만 그 날의 노랫가락은 동네 나무꾼들의 그것이 아니었다. 산으로 들어간 나무꾼도 없었고 소리를 하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도 없었다. 산을 휩싸고 있는 녹음 속 어디선가 하루 종일 노랫소리만 들려 왔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었지만 그것은 이 날 처음으로 그 산 고개를 넘어 마을로 들어오던 어떤 낯선 노래꾼의 소리였다. 어쨌거나 그 날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노랫소리는 진종일 해가 지나도록 숲 속을 흘러 나왔고, 그러자 한 가지 이상스런 일이 일어났다. 밭고랑만 들어서면 우우우 노랫소리도 같고 울음소리도 같던 어미의 그 이상스런 웅얼거림이 이 날 따라 그 산 소리에 화답이라도 보내듯 더욱더 분명하고 극성스럽게 떠돌아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어미는 뜨거운 햇볕 아래 하루 종일 가물가물 밭이랑 사이를 가고 또 오갔다. 그리고 마침내 산봉우리 너머로 뉘엿뉘엿 햇덩이가 떨어지고, 거뭇한 저녁 어스름이 서서히 산기슭을 덮어 내려오기 시작하자, 진종일 녹음 속에만 숨어 있던 노랫소리가 비로소 뱀처럼 은밀스럽게 산 어스름을 타고 내려와선, 그 뱀이 먹이를 덮치듯이 아직도 가물가물 밭고랑 사이를 떠돌던 소년의 어미를 후닥닥 덮쳐 버린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 그 날의 소리는 아주 소년의 마을로 들어와 집 문간방에 둥지를 틀고 살게 되었으며, 동네 안에 등지를 틀고 들어앉게 된 소리의 남자는 날만 밝으면 언제나 그 언덕밭 뒷산의 녹음 속으로 숨어 들어가 진종일 지겹도록 산울림만 지어 내리곤 하였다.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녹음이 소리를 숨기고 사는 양한 소리였다. 밭고랑 사이를 오가는 여인의 그 괴상스런 노랫가락 소리도 날이 갈수록 극성스러워지고 있었다. 소년은 여전히 그 무덤가 잔디에서 진종일 계속되는 노랫가락 소리를 들어야 했고, 소리를 들으면서 허기에 지친 잠을 자거나 소리를 들으면서 그 잠을 다시 깨어야 했다. 잠을 자거나 잠을 깨거나 소년의 귓가에선 노랫소리가 떠돌고 있었고 소년의 머리 위에는 언제나 그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뜨거운 햇덩이가 걸려 있었다.
소리는 얼굴이 없었으되, 소년의 기억 속엔 그 머리 위에 이글거리던 햇덩이보다도 분명한 소리의 얼굴이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언제나 뜨겁게만 불타고 있던 햇덩이야말로 그 날의 소년이 숙명처럼 아직 그것을 찾아 헤매다니고 있는 그 자신의 운명의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소년이 그 소리의 진짜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된 것은 그의 어미가 어느 날 밤 뜻하지 않은 소동 끝에 홀연 저승길로 떠나가 버리던 다음 날 아침의 일이었다. 소리가 마을로 들어서던 그 한 여름이 지나가고 해가 훌쩍 뒤바뀌고 난 이듬해 이른 여름의 어느 날 밤, 소년의 어미는 땅덩이가 꺼져 내려앉는 듯한 길고도 무서운 복통 끝에 흡사 핏속에서 쏟아내듯 작은 계집아이 형상을 하나 낳아 놓고는 그 날 새벽으로 영영 그만 눈을 감아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은 다음 날 아침에야 비로소 소리의 사내가 그 18)후줄근한 모습을 드러내며 소년의 집 사립문을 들어서던 것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아직도 그 때의 그 사내의 얼굴이 소리의 진짜 얼굴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년에겐 여전히 그 뜨거운 햇덩이가 소리의 진짜 얼굴로 남아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도 마찬가지였다. 사정이 달라져버린 소리의 사내가 핏덩이 같은 갓난애와 소년을 데리고 이 고을 저 고을로 소리를 하며 밥구걸을 다니고 있었을 때도, 소리의 진짜 얼굴은 언제나 그 뜨겁게 이글거리는 햇덩이 쪽이었다.
괴롭고 고통스런 얼굴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심판인지 사내는 그 고통스런 소리의 얼굴을 버리고는 살 수가 없었다. 머리 위에 햇덩이가 뜨겁게 불타고 있지 않으면 그의 육신과 영혼이 속절없이 맥을 놓고 늘어졌다. 그는 그의 햇덩이를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소리를 찾아다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 식으로 이날 이때까지 반생을 지녀온 숙명의 태양이요 소리의 얼굴이었다.
사내는 여인의 소리에서 또다시 그 자기의 햇덩이를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무서운 인내 속에서 그 뜨겁고 고통스런 숙명의 태양 볕을 끈질기게 견뎌 내고 있었다.
그러자 이윽고 여인의 소리가 끝이 났다. 흥부가 한 대목이 다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여인이 소리를 끝내고 나서도 아직까지 그 끓는 태양 볕을 머리 위에 견디고 있는 듯 한참이나 더 얼굴을 고통스럽게 찡그리고 있었다. 이마와 콧잔등에는 실제로 태양 볕의 열기를 견디고 있던 사람처럼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래 그 여잔 한번 여길 떠나고 나선 그걸로 그만 소식이 아주 끊기고 말았더란 말인가?”
이윽고 깊은 상념에서 깨어난 사내가 곁에 놓인 술잔으로 천천히 목을 한 차례 축이고 나선 조심스럽게 여인을 다시 채근대기 시작했다. 아깟번 이야기에서 미진했던 것이 다시 머리에 떠오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소식이 아주 끊겼다면 자넨 그래 짐작조차 가는 곳이 없었던가? 그때 그 여자가 여길 떠나면 어느 쪽으로 갔음직하다고 짐작조차 떠오르는 데가 없었던가 말이네."
그러나 여인은 이제 그만 사내의 추궁에는 흥미가 없어진 모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이미 사내의 흉중을 환히 꿰뚫고 나서 일부러 섣부른 말대답을 삼가고 있는지도 또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꼬리를 물고 있는 사내의 추궁에도 그녀는 이제 좀처럼 시원한 대답을 보내 오지 않고 있었다.
"아까도 말씀드렸소만, 어디 그런 짐작이 닿을 만한 곳이나 있었겠어요."
몰라서도 그럴 수는 있었겠지만, 말을 자꾸 피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가는 곳을 짐작할 수 없었다면, 그 사람들 부녀가 어디서부터 이 고을로 흘러들었는지, 전부터 지내 오던 곳을 얘기들은 일은 있었을 게 아닌가?"
"소리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한 곳에 정해 놓고 몸을 담는 일이 있었겠소. 그저 남도 일대를 쉴새없이 두루 떠돌아 다녔다더구만요 ."
"소리를 하던 부녀간 외에 따로 친척 같은 것도 없고? 그 여자한테 무슨 동기간 비슷한 것이라도 말이네,,,,,,."
"그야 태생지가 어딘 줄도 모르는 사람들인데, 집안 내력인들 곧이 곧대로 속을 털어 보이려 했겠소,,,,,,."
한데 그 때였다. 여인의 말 가운데 부지중 뜻밖의 사실이 한 가지 흘러 나왔다.
"행여 또 그런 핏줄 같은 것이 한 사람쯤 있었다 해도 앞을 못 보는 그 여자 처지에 떳떳이 얼굴을 내밀고 찾아 나설 형편도 못 되었고요."
여인의 눈이 장님이었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 여자가 그럼 앞을 못 보는 장님이었단 말인가? 그리 된 내력이 도대체 어떤 것이었다던가? 그 여자 아마 태생부터가 장님으로 난 여잔 아니었을 거 아닌가 말이네."
사내의 표정이 갑자기 사납게 흔들리고 있었다. 여인은 무의식중에 깜박 그런 말을 하고 나서도, 사내의 반응에는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천연스럽게 말꼬리를 다시 능치려 하고 있었다.
"그 여자가 장님이었다는 걸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하기야 그 여잔 눈 먼 사람답지 않게 거동이 워낙 가지런해서 함께 지내고 있을 때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잊고 있을 때가 많았으니께요. 하지만 손님 말씀대로 그 여자도 태생부터가 장님은 아니었던가 봅디다."
"그래, 어떻게 되어서 눈을 잃게 되었다던가? 사연을 들은 것이 있었으면 들은 대로 얘기를 좀 털어놔 보게."
사내의 목소리는 억제할 수 없는 예감에 떨고 있었다. 그러자 여인은 처음 얼마간 겁을 먹은 듯한 표정으로 말끝을 자꾸 흐리려 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사내의 기세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상세한 내력까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요......."
딸아이에게 눈을 잃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아비 바로 그 사람이었을 거라 말한 것이 여자가 사내에게 털어놓은 놀라운 비밀의 핵심이었다.
소리꾼의 계집 딸이 나이 아직 열 살도 채 못 되었을 때-어느 날 밤 그녀는 갑자기 견딜 수 없는 통증으로 그의 아비 곁에서 잠을 깨어 일어나게 되었고, 잠을 깨고 일어나 보니 그녀의 얼굴은 웬일로 숯불이라 도 들어부은 듯 두 눈알이 모진 아픔으로 활활 타 들어오는 것 같았고, 그것으로 그녀는 영영 앞을 못 보는 장님 신세가 되어 어리고 만 것이 라 했다. 여자의 아비가 잠든 계집 자식 눈 속에다 청강수를 몰래 찍 어 넣은 것이라 했다. 그런 얘기는 여인이 일찍이 읍내 대가댁 심부름꾼 시절서부터 이미 어른들에게 들어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데, 그렇게 하면 눈으로 뻗칠 사람의 영기가 귀와 목청 쪽으로 옮겨가서 눈빛 대신 사람의 목청 소리를 비상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적의 여인은 결코 그런 끔찍스런 얘기들을 믿으려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어느 날 밤 사실 이 못내 궁금해진 여인이 그 눈이 먼 여자 앞에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고 물었을 때 가엾은 그 계집 장님은 길고 긴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하여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믿어도 좋은 듯이 응대를 하고 말더라는 것이었다.
"한데 손님은 어째서 자꾸 그런 쓸데없는 얘기에까지 흥미가 그리 많으시오? 가만히 보니 아까부터 손님은 제 소리보다도 "외려 그 여자 이야기 쪽에 정신이 더 팔리고 계신 듯해 보이시던데 손님한테도 무슨 그럴 만한 사연이 계신 게 아니시오?”
이야기를 대충 끝내고 난 여인이 짐짓 심을 부려 보고 싶은 어조로 묻고 있었다.
그러자 사내는 이제 그의 오랜 예감이 비로소 어떤 분명한 사실에 다 다르고 있는 듯 얼굴빛이나 몸짓들이 부쩍 더 사나워지고 있었다. 사나워진 그의 얼굴 한 구석엔 내력을 알 수 없는 어떤 기분 나쁜 살기의 빛깔마저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인의 심통스런 추궁에도 그는 거의 발작이라도 일으킬 듯이 고갯짓을 거칠게 가로 저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여인은 미처 그런 눈치까지는 알아차리질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담 손님은 제 얘길 너무 곧이곧대로 믿고 계신가 보구만요. 전 아직도 그걸 통 믿을 수가 없는데 말씀이오. 눈을 그렇게 상해 놓으면 목소리가 대신 좋아진다는 게, 아닌게아니라 그럴 수도 있는 일이겠소?"
무심결에 묻고 나서야 그녀는 그만 제풀에 문득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번에도 계속 고개만 가로 저어대고 있는 손님의 눈빛에서 그녀도 비로소 그 내력을 알 수 없는 살기 같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인은 아직도 무엇 때문에 갑자기 사내가 그런 눈이 되고 있으며, 무엇이 아니라고 그토록 고갯짓을 되풀이하고 있는지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눈을 멀게 해도 소리가 고와질 수는 없다는 것인지, 아니 면 좋은 목청을 길러 주기 위해 그 아비가 딸년의 눈을 멀게 했었다는 소리꾼 부녀의 이야기 전부를 부인하고 싶은 것인지, 그녀로서는 도대체 손님의 고갯짓을 옳게 새겨 읽어 낼 재간이 없었다. 더더구나 그 여인으로서는 딸년의 소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더 분명하고 비정스런 소리꾼 아비의 동기를 점치고 있는 사내의 깊은 속마음은 상상조차도 못 했을 일이었다.
"어이 가리 어이 가리, 황성 먼 길 어이 가리
오늘은 가다 어디서 자고, 내일은 가다 어디서 잘거나..,...."
한동안 무거운 침묵의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다.
여인이 이윽고 사내를 유인하듯 천천히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공연히 거북해진 방 안 분위기를 소리로나 눅여 보고 싶은 여인의 심사인 듯했다.
심청가 중에 심 봉사가 황성길을 찾아가는 정경으로, 여인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유장하고 창연스런 진양조 가락을 뽑아 넘기고 있었다. 지그시 눈을 내리 감은 사내의 장단 가락이 졸리운 듯 이따금씩 여인을 급하게 뒤쫓곤 했다.
사내는 이미 여인의 소리를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또다시 그 어릴 적의 이글거리는 태양 볕을 머리 위에 뜨겁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비 아닌 아비가 되어 버린 옛날 사내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어미를 잃고 난 소년이 사내의 그 소리 구걸길을 따라 나선 지도 어언 십여 년을 흐르고 있었다.
사내는 채 철도 들지 않은 계집아이와 소년을 앞세우고 고을 고을 소리를 팔며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내는 항상 그의 그 어린것에게도 소리를 시키는 게 소원이었다.
하지만 어린 녀석은 그저 마지못해 소리를 흉내내는 시늉을 해 보일뿐, 정작으로 그것을 익히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사내는 마침내 녀석을 단념하고 이번에는 그보다도 더 나이가 어린 계집아이 쪽에 소리를 배워 주기 시작했다. 계집아이에겐 소리를 시키고 사내 녀석에겐 북장단을 치게 했다. 재간이 좀 뻗친 탓이었을까? 계집아이 쪽은 신통하게도 소리를 잘 흉내 내었고, 목청도 제법 들을 만했다. 사람들이 모인 데서 아비 대신 오누이가 소리를 놀아 보여서 치하를 듣는 일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사내는 끝내 나어린 오뉘 소리꾼을 만들기가 소원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어린 사내 녀석은 끝내 아비의 뜻을 따를 수가 없었다. 그는 오히려 사내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품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는 자기의 손으로 그 나이 먹은 사내와 사내의 소리를 죽이고 말 은밀한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어미를 죽인 것이 바로 사내의 소리였다. 언젠가는 또 사내가 자기를 죽이게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항상 녀석을 떨리게 했다. 소리를 하고 있을 때밖엔 좀처럼 입을 여는 일이 드문 버릇이나 사내의 그 말없는 눈길이 더욱더 녀석을 두렵게 했다. 어미의 원한을 풀어주고 싶었다. 사내가 자기를 해치려 들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사내를 없애 버려야만 했다. 사내를 두려워하면서도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마음 속에 그런 음모가 꾸며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내가 두렵기 때문에 그가 시키는 대로 북채잡이 노릇까지는 터놓고 거역을 할 수가 없었다. 순종을 하는 체해 보이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내가 소리를 하고 있을 때, 그 하염없고 유장한 노랫가락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녀석은 번번이 그 잊고 있던 살기가 불현듯 되살아 나오곤 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그 사내의 소리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소리를 타고 이글이글 떠오르는 뜨거운 햇덩이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사내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문득문득 기회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거기다가 사내는 또 듣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자기 소리에 취해들기 시작할 때가 종종 있었다. 산길을 지나다가 인적이 끊긴 고갯마루턱 같은 데에 이르면 통곡이라도 하듯 사지를 풀고 앉아 정신없이 자기 소리에 취해들곤 하였다. 사내가 목청을 돋아 올리기 시작하면 무연한 산봉우리가 메아리를 울려오고, 골짜기의 산새들도 울음소리를 잠시 그치는 듯했다. 녀석이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불타고 있는 그의 햇덩이를 보는 것은 그런 때의 일이었다. 그런 때는 유독히도 더 사내에 대해 견딜 수 없는 살의가 치솟곤 했다.
사내의 소리는 또 한 가지 이상스런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녀석에게 살의를 잔뜩 동해 올려놓고는 그에게서 다시 계략을 좇을 육신의 힘을 몽땅 다 뽑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녀석이 정작 그의 부푼 살의를 좇아 나서 볼 엄두라도 낼라치면, 사내의 소리는 마치 무슨 마비의 독물처럼 육신의 힘과 부풀어 오른 살의의 촉수를 이상스럽도록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곤 하였다. 그것은 심신이 온통 나른하게 풀어져 버리는 일종의 몸살기와도 비슷한 증세였다.
한데 더욱더 알 수 없는 것은 그 때마다 녀석을 대하는 사내의 태도였다. 확실한 것은 아니었지만 녀석은 그 때 사내 쪽에서도 어느 만큼은 벌써 그의 마음 속 비밀을 눈치채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머리로 들어오곤 하였다. 그것이 녀석으로 하여금 그를 더욱 두려워하게 한 이유의 하나가 되고 있었다. 사내를 해치려 하고 있는 터에, 그리고 그것을 그토록 오랫동안 망설이고 주저해 온 터에 사내라고 그에게서 전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을 리가 없었다. 한데도 사내는 전혀 수상한 낌새를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그는 그저 아무 것도 모른 체 무심스레 소리에만 열중하고 있기가 예사였다. 아니 어쩌면 그는 이미 모든 것을 다 꿰뚫어 알고 있으면서도(그가 소리를 할 때마다 녀석에게 이상한 살기가 부풀고 있다는 사실까지도!>오히려 녀석을 기다리며 유인이라도 해 대고 있는 듯이 끝없이 깊은 절망과 체념기가 깃들인 모양 새로 더욱더 극성스레 목청을 돋아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오후였다.
녀석은 마침내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소리꾼 일행은 그 날도 어느 낯선 고을의 산길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 날따라 사내는 또 길을 걸으면서까지 그 극성스런 소리를 쉬지 못하고 있었다. 쉬엄쉬엄 소리를 뿌리며 산길을 지나가던 일행이 이윽고 한 산마루의 고갯길을 올라서자, 사내는 이제 거기다 아주 자리를 잡고 주저앉아서 새판잡이로 다시 목청을 놓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가을산은 붉게 불타고 골짜기는 뽀얗게 멀어져 있었다. 사내는 그 산과 골짜기에서도 깊은 한이 솟아오르는 듯 오래오래 소리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자기 소리에 힘이 지쳐난 듯 길가 가랑잎 위로 슬그머니 몸을 눕히더니 그 길로 그만 잠이 드는 듯 기척이 이내 조용해져 버렸다.
그런데 녀석은 또 그 날따라 사내의 길고 오랜 소리로 하여 사지가 더욱 나른하게 힘이 빠져 있었다. 사내의 노랫가락이 너무도 망연하고 절망스러웠다. 몸이 잦아들 듯한 한숨으로 제풀에 공연히 몸이 떨려올 지경이었다.
녀석은 이제 더 이상 견디고 있을 수가 없었다. 까닭 없이 가슴에 받쳐 오르고 있는 그 기이한 서러움이 녀석에게 오히려 이상스런 힘을 주고 있었다.
그는 이윽고 슬그머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잠잠해진 사내의 주위를 조심조심 몇 차례나 맴돌았다.
하지만 사내는 그 때 실상 잠이 들어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녀석이 마침내 계집아이조차 모르게 커다란 돌멩이 하나를 가슴에 안고 가만가만 사내의 뒤쪽으로 다가서 갔을 때였다. 그리고는 제 겁에 제가 질려 어찌할 줄을 모르고 한참 동안이나 그냥 몸을 떨고 서 있을 때였다. 녀석은 그 때 차라리 사내가 잠을 깨고 일어나서 그의 거동을 들켜 버리게라도 되었으면 싶던 참이었는데, 사내가 정말로 천천히 머리를 비틀어 뒤에 선 녀석을 돌아다보았던 것이다.
"왜 그러고 있는 거냐?,”
그리고 그는 무엇인가 기다리다 못한 사람처럼 조금은 짜증이 섞인 듯한 목소리로 녀석을 슬쩍 나무라는 것이었다. 한데도 그는 더 이상 녀석을 나무라지도 않았고 돌멩이의 사연을 물어 오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그 조용한 한 마디뿐 녀석의 심중을 유인하듯 다시 또 고개를 돌려 잠이 든 시늉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정말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작자는 처음부터 녀석의 마음속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어 보였다. 한데도 그는 무슨 생각으로 그토록 아무 것도 모르는 체해 줄 수가 있었는지, 그 점은 이날 이때까지도 해답을 풀어 낼 수 없는 기이한 수수께끼였다.
하니까 녀석이 사내의 곁을 떠난 것은 그런 일이 생겼던 바로 그 날 오후의 일이었다. 사내는 끝내 녀석을 모른 체하고 있었고, 녀석은 더 이상 자신을 견디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마침내 끌어안은 돌멩이를 버리고 나서 용변이라도 보러 가듯 스적스적 산길가 숲 속으로 들어가선 그 길로 영영 두 사람 앞에 모습을 감춰 버리고 만 것이었다. 숲 속을 멀리 빠져 나와 두 사람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을 만큼 되었을 때, 그를 부르며 찾아 헤매는 듯한 사내의 소리가 골짜기를 아득히 메아리쳐 오고 있었지만, 녀석은 점점 소리가 멀어지는 반대쪽으로만 발길을 재촉해 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러나 녀석에겐 아직도 그 골짜기를 길게 메아리쳐 오던 사내의 마지막 소리를 피해 갈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 날 이후로 그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소리를 만나기만 하면 그 때의 그 사내의 소리를 다시 듣곤 했다.
이 날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이 날 밤도 그는 어느 새 안타깝게 그를 찾아 헤매는 사내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버릇처럼 어디론가 그것에서 멀어지려고 숨이 차도록 다급한 발길을 끝없이 재촉해 가고 있었다.
"이제 그만하고 목을 좀 쉬게."
사내가 마침내 제풀에 힘이 파한 얼굴로 여인을 제지하고 나선 것은 그러니까 전혀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었던 셈이다.
사내는 이제 얼굴빛이 참혹할 만큼 힘이 빠져 있었다.
"그래 여자는 그럼 자기의 눈을 멀게 한 비정스런 아비를 어떻게 말하던가?,,
몇 잔째 거푸 술잔을 비우고 난 사내가 이윽고 다시 조용한 목소리로 여인에게 물어 왔다.
"그 여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답니다."
사내 앞에선 이제 더 이상 숨길 일이 없다는 듯 여인의 말투가 한결 고분고분해지고 있었다.
"여자가 말한 일이 없더라도 평소에 아비를 대하는 거동 같은 것을 보아 그 여자가 제 아비를 용서하고 있는지 못 하고 있는지는 맘으로 짐작해 볼 수가 있었을 것 아닌가 말이네." 빈틈없이 파고드는 사내의 추궁에 여인은 거의 억지 짐작을 꾸며 대고 있는 식이었다.
"행동거지로만 본다면야 말도 없고 원망도 없었으니 용서를 한 것 같아 보였지요. 더구나 소리를 좀 안다 하는 사람들까지도 그걸 외려 당연하고 장한 일처럼 여기고들 있었으니께요."
"그 목청을 다스리기 위해 눈을 멀게 했을 거라는 얘기 말인가?,,
"목청도 목청이지만, 좋은 소리를 가지자면 소리를 지니는 사람 가슴에다 말못할 한을 심어 줘야 한다던가요?,,
"그래서 그 한을 심어 주려고 아비가 자식 눈을 빼앗았단 말인가?"
"사람들 얘기들이 그랬었다오."
"아니지,,,,,, 아닐 걸세."
사내가 다시 고개를 천천히 가로젓고 있었다.
"사람의 한이라는 것이 그렇게 심어 주려 해서 심어 줄 수 있는 것은 아닌걸세. 사람의 한이라는 건 그런 식으로 누구한테 받아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살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긴긴 세월 동안 먼지처럼 쌓여 생기는 것이라네. 어떤 사람들한테 외려 사는 것이 바로 한을 쌓는 일이고 한을 쌓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 되듯이 말이네,,,,,,.
그보다도 고인한테 좀 미안한 말이지만, 노인은 아마 그 여자의 소리보다 자식년이 당신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해 두고 싶은 생각이 앞섰을지도 모르는 일일 거네."
여인은 드디어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사내는 이제 그 여인이 알아듣거나 말거나 아직도 한참이나 깊은 상념 속을 헤매듯이 아득하고 몽롱한 목소리로 흔자말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 여자가 제 아비를 용서한 것은 다행한 일이었을지 모르는 노릇이지. 아비를 위해서도 그렇고 그 여자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여자가 제 아비를 용서하지 못했다면 그건 바로 원한 이지 소리를 위한 한은 될 수가 없었을 거 아닌가. 아이를 용서했길래 그 여자에겐 비로소 한이 더욱 깊었을 것이고,,,,,,."
여인이 문득 다시 사내를 건너다보았다.
"손님께서는 아마 그렇게 믿어야 마음이 편해지시는가 보군요."
그리고 여인은 그제서야 사내가 안심이 된다는 듯 모처럼만에 웃음을 한 차례 보이고 나더니 이번에는 별로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스스럼없이 물어 왔다.
"그래, 손님께서 이제 그 여자가 장님이 되어 버린 것을 아시고도 여전히 그 누이를 찾아 헤매다니실 참인가요?”
여인의 그 갑작스런 발설에도 사내는 무얼 좀 새삼스럽게 놀라워하는 기색 같은 것이 전혀 안 보였다.
"그저 여망이 있다면 멀리서나마 그 여자 소리라도 한 번 만나게 되었으면 싶네만, 글쎄 언제 그런 날이 있을는지,,,,,,."
지나가는 소리처럼 힘들이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고 나서는, 그녀가 불쑥 자신의 맘 속을 짚어 낸 것이 새삼스럽게 크게 궁금해지기라도 한 듯 비로소 조금 생기가 돋아 오른 눈길로 여인 쪽을 그윽이 건너다보았다.
하니까 이제 여인 쪽에서도 벌써 사내의 그런 눈치를 알아차린 듯, 그러나 어딘가 지레 시치미를 떼고 있는 목소리로 엉뚱스레 의뭉을 떨어대고 있었다.
"아마 그 여자 어렸을 때 소리 장단을 부축해 준 북채잡이 어린 오라비가 한 분 계셨더라는데, 제가 여태 그걸 말씀드리지 않고 있었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