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時間)의 문(門)- 이청준
―一 柳宗悅 遺作寫眞展
80년 9월 19일부터 23일까지
신문회관 전시실
퇴근 준비를 끝내고 나서 나는 다시 한번 전시회 날짜와 시간을 확인해 본다.
며칠동안 기다리고 별러온 일이다.
하면서도 벌써 사흘째나 참관을 미뤄온 전시회다. 오늘이 21일이니까 전시회는 이틀 전서부터 시작되고 있을 터. 아니 오늘을 넘기고 나면 종람일을 이틀밖에 남기지 않는다.
―― 오늘쯤은 가 봐야지.
하지만 마음을 작정하고 나서도 나는 얼핏 자리를 일어서지 못한다. 물러앉았던 걸상을 다시 끌어 붙이고는 잠시 뒤 전시장에서 보게 될 유종열 선배의 사진들에 대한 나의 기대를 한번 더 가눠본다.
개장 첫날 참관을 미룬 것은 전시회의 소식이 내겐 그만큼 뜻밖이고 일방적이었기 때문이다. 유선배의 갑작스런 유작전 소식은 이상한 의혹과 배신감 같은 것으로 나를 몹시 긴장시키고 있었다. 개장 첫날은 이런저런 치레객들로 주위가 차분하질 못할 것 같았다. 따로 조용한 날을 잡아서 유선배의 사진을 찾아보고 싶었다. 작품들에 대한 기대를 그만큼 아끼고 있었다고 할 수도 있었다.
―― 유선배에게 과연 어떤 유작들이 남겨져 있었을까. 어떤 방법으로, 어떤 사진들이? 그리고 그 사진들은 그에게 과연 미래로 나가는 시간의 문을 열어줄 수가 있었던 것들일까?
오늘도 내가 얼핏 자리를 일어서지 못한 것은 바로 그런 궁금증과 기대감과 두려움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내가 사귀고 경험해온 유종열이라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자기 기대의 조절작업인 셈이었다.
내겐 그것이 필요했다.
내게는 아직도 그 유종열이라는 인간과 그의 사진 작품들에 대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수께끼 ―― 그래, 수수께끼라면 뭐니뭐니 해도 애당초 그 유선배의 유작전이 열리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일부터가 나에겐 큰 수수께끼였다. 일주일쯤 전이던가. 유선배의 유작전 소식을 알리는 안내장이 회사로 전해져 왔을 때 나는 도무지 그런 전시회가 열리게 된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질 않았었다.
유선배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 「유작전」이 열린다는 것이겠지만, 그가 세상에서 사라진 지는 이미 오 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었다.
오 년여 전 그가 홀연 세상을 등져가고 말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던 무렵, 그는 타이란드라든가 말레이지아, 미얀마 등지의 동남아 쪽 나라들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타일란드로 들어가 캄보디아 접경 근처의 난민촌을 찾아다닌다는 소리도 있었고, 탈출난민들의 비극적인 선상유랑을 좇아 배를 타고 바다를 누빈다는 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인가는 문득 그의 해상실종 사고 소식이 회사로 전해져 왔다. 취재를 끝내고 귀국길에 오른 배위에서였댔다. 그는 리베리아 선적의 한 화물선을 얻어 타고 귀국길에 올랐는데, 남지나해 부근을 항해해올 무렵 하룻밤을 지새고 나니 배 위에서 문득 그의 자취가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그게 유선배의 죽음에 관해 내가 들어 안 경위의 전부였다. 그를 태워준 화물선의 일본인 선장이 당사국 관계기관을 통해 가족에게 알려온 사고의 내역이었다. 이미 오 년 전 초여름께의 일이었다.
자살이었는지, 불의의 실족사였는지, 그것부터가 내겐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의 하나가 되어 온 셈이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의 경위에 관한 수수께끼는 어차피 나의 힘으로는 해답을 얻을 수 없는 것. 그보다도 나를 더욱 궁금하게 하는 것은 그 유작전에 전시될 그의 사진들에 대한 것이었다.
―― 그에게 아직도 그럴만한 사진들이 남아 있었단 말인가.
나는 이를테면 그의 사진 작품의 거의 대부분을 알고 있는 셈이었다. 신문과 잡지들을 통하여, 그의 이름이 끼어 든 전시회의 작품들을 통하여, 혹은 그의 개인 스튜디오의 작업과정을 통하여 적어도 그가 마지막 여행을 떠날 때까지의 사진 작품들은 거의 전부를 알고 있는 셈이었다.
더러는 내가 미처 대해 보지 못한 작품들이 따로 간직되어 있을 수도 있기는 하였다. 설사 그런 작품들이 몇 점쯤 남아 있었다 하더라도 그가 떠나간 지 오 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고 난 지금에 와서 그것들을 다시 꺼내 모아 보인다는 건 별다른 뜻이 있을 수 없었다.
문제는 어떤 요행수로 해서 그가 그 마지막 여행을 떠나갔을 때의 사진들을 구해 보여 주느냐 못하냐에 있었다. 그것은 물론 쉽사리 기대를 걸 수가 없는 일이었다.
유선배는 원래 필름을 그때그때 현상하고 인화해 내는 일이 좀처럼 드물었다. 그게 그의 오랜 버릇이자 일종의 취미였다. 그는 물론 그 마지막 여행에서도 국내로 보내온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필름들과 함께 귀국 길의 배 위에서 유명을 달리해 가버린 것이었다.
실종 소식이 전해올 당시에도 필름의 소식은 따로 알아볼 길이 없었던 걸 보면(그래 주위에서들은 그 점을 더욱 애석해 하기도 하였지만), 그때의 사진들이 남아있긴 어려웠다.
하지만 무슨 예감이랄까, 아니면 유선배에 대한 기대 때문일까, 나는 어쩐지 아직도 그쪽 희망을 버릴 수가 없었다.
―― 새 사진들입니다. 꼭 오셔서 살펴봐 주십시오. 허선생님은 꼭 와 주실 줄 믿습니다.
유선배의 고등학교 후배이자 작업실 조수격이던 오군이 안내장 끝에다 내게만 부러 덧붙여 쓴 말이다. 유선배에게 그런 변고가 생긴 다음에도 오군은 그 유선배의 미망인격인 정여사와 함께 스튜디오를 계속 지켜온 친구였다. 그리고 이번의 유작전이라는 것을 정여사와 함께 주관한 친구였다.
하지만 나는 오군의 그런 덧붙임 뒤에서 정여사의 음성을 듣고 있었다. 그것은 차라리 정여사의 목소리요 그녀의 당부였다. 나는 그런 정여사의 당부가 담긴 말에서조차 어떤 은밀스런 귀띔의 기미를 느끼고 있었다.
소식을 받은 대로 미리 스튜디오로 찾아가 자초지종을 알아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나 스스로의 궁금증과 기대 때문에 오늘까지 날짜를 미뤄온 것이었다. 궁금증과 기대감을 조심스럽게 아끼면서 하루하루 시간을 기다려온 것이다. 유선배의 마지막 사진들에 대한 나의 기대가 그처럼 자신을 두렵게 하였기 때문이다.
―― 유선배는 마지막으로 어떤 사진을 찍었을까. 그리고 그것으로 그는 과연 그의 시간의 문을 열 수가 있었을까. 그가 찍은 미래의 시간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었을까.
���
「허형은 퇴근 안 하실려우?」
한 목소리가 느닷없이 상념을 깨뜨리고 든다. 무슨 할 일이 남았던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던 건너편의 김형이다.
「아, 이제 나가시려고요? 난 어디 전시횔 한곳 가볼 데가 있어서요.」
나는 졸지에 상념 속을 빠져 나오며 부질없이 본심을 털어놓고 만다.
「허형이 전시회를요? 그거 참 어떤 전시횐진 몰라도 대단한 성황을 이루겠군요.」
김형도 무심히 말참견을 계속해온다. 내가 그런 자릴 자주 찾아다니지 않는 걸 두고 하는 소리다. 내 쪽도 그 김형에겐 굳이 숨기거나 고집해야 할 일이 없는 것 같다.
「사진 유작전이에요. 유종열씨라고…… 그 왜 우리 회사에도 몇 년 있었으니까 김형도 아실 걸요. 그 양반의 유작전 안내장이 와서요……」
「 아, 유종열씨요. 알구말구요. 헌데 그 사람 유작전이라면 며칠 전서부터였을 텐데요?」
「그제부터였지요. 김형은 벌써 다녀오신 겁니까?」
「아니에요. 난 안 가봤지만, 아까 갔다온 사람들이 얘길 하던군요. 사진이 참 대단하더라구요……」
「가 보면 알겠지요. 김형도 아직 안 가 봤으면 나하고 오늘 가볼 생각 없소?」
나는 이제 그만 김형의 말길을 가로막아버린다. 대단한 사진이라니…… 과장스런 표현이 어딘지 야유기 같은 것이 느껴지는 소리다. 하지만 그게 야유거나 칭찬이거나 김형에게 평가를 의지하고 싶진 않다. 내가 사진들을 직접 볼 때까진 기대를 좀더 아껴두고 싶다. 김형을 계속 응대해 나가다가 헛김이 미리 새나갈 것 같다.
김형도 물론 애초부터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 하는 소리는 아니다.
「그야 물론 가보면 알겠지요. 하지만 죽은 사람의 사진이 대단하면 어떻고 시시하면 어떻겠소. 허형이나 혼자 가보도록 하시구료. 난 따로 초대를 받은 것도 아니고, 이놈의 원고나 마저 끝내고 나가려오.」
심드렁한 표정으로 담뱃불을 비벼 끄고는 책상 위에 원고지로 다시 눈길을 돌려 가버린다.
나는 다시 시계를 본다.
아직 여섯 시.
전시회 폐장시각은 여덟 시로 되어있다.
나는 어차피 오군과 함께(아마도 그 정여사와 함께) 폐장시각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오군이나 정여사나 양쪽 모두가 오랜만의 대면이다. 사진을 대강 둘러보고 나면 저녁이라도 함께 해야 할 처지다. 그간의 근황도 근황이려니와 유선배와 그의 사진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적잖을 터이다. 그러자면 전 시장이 닫힐 때까지 시간을 함께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나의 출발은 그 여덟 시 폐장시각에 걸맞는게 편하다. 아직은 너무 출발이 이르다.
―― 그는 과연 미래의 시간이라는 걸 찍어놓고 갔을까
나는 다시 턱을 괸 채 상념으로 시간을 지워가기 시작한다.
유종열은 한마디로 미래의 사간을 찍는 사진작가였다. 하지만 그것은 다만 그의 소망이나 주장일 뿐이었고, 그는 오히려 늘 지나간 과거의 시간대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도 그랬다.
나이나 입사년도가 칠팔 년이나 앞서는 유종열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십여년 전, 내가 이 신문사를 들어오고 나서도 이삼년쯤이나 더 지나고 났을 무렵이었다. 강원도의 한 광산촌으로 사고 취재를 함께 떠나게 된 것이 인연이었다. 사건을 쫓는 사회부 기자에겐 사진부 기자가 늘 동행을 해가기 마련이었다. 유종열씨에게선 그래 전에도 몇 번 현장 취재에 도움을 받은 일이 있었지만, 그런 식의 간헐적이고 기계적인 공동작업을 통해서는 사람을 알거나 사귈 수가 없었다.
광산사고 취재는 그러나 하루 이틀로 끝나질 않았다. 오고 가는 거리도 거리려니와 갱속에 파묻힌 탄부들의 구조작업이 몇 날 몇 밤을 계속되고 있었다. 우리는 둘 다 구조작업 현장을 떠날 수가 없었다. 나는 시시각각으로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의 변화를 놓쳐서는 안되었고, 유종열씨는 유종열씨대로 언제가 될지 모르는 매몰광부들의 비밀 구조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되었다. 우리는 아예 갱구 입구에 늘어붙다시피 밤잠을 자는 것도 그렇게 한곳에서 교대 교대로 해나갔다. 그런 작업이 일주일이나 걸렸다.
두 사람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사정이 워낙 엉망진창이라 둘 사이엔 그 동안 그리 주고 받은 말도 많질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일주일을 함께 하고 나니 우리는 그것으로 상대방을 속속들이 알아버린 것 같았다.
그래 우리는 그것으로 곧 하숙까지 한데로 합쳐버린 것이었다. 내가 그때까지의 하숙집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음을 알고 유선배가 그것을 권해 온 것이었다.
「합숙이라곤 하지만 난 알다시피 출장이 잦아서 허형 혼자나 마찬가질 테니까요.」
유선배가 은근히 나를 유인해 온 그런 잇점 외에도, 나는 그 일주일 동안의 경험으로 그가 손윗사람답게 무척도 말수가 적은 것을 마음에 들어하고 있던 참이었다.
나는 곧 유선배에게로 하숙을 합해 들어갔다.
하고 나니 우리는 자연 회사출근을 함께 하는 날이 많았고, 퇴근 때가 되어서도 특별히 따로 볼일이 없을 땐 서로 상대방을 기다리게 되는 일이 잦았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이 늦은 건 언제나 유선배 쪽이었으니까, 퇴근시간이 지나서도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거의 전부가 내 쪽의 일이었다. 사진부 쪽 사람들의 사정이 대개 그렇기도 했지만, 유선배는 유독히도 늘 일이 그렇게 많은 사람이었다. 회사 일은 회사일대로 하면서 그는 또 누구보다 자기 작품 일에 열심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현상실을 따로 마련하지 못한 그로서는 자신의 개인적인 작품 일까지도 회사의 시설을 이용해야 했기 대문이었다.
유선배는 신문사의 일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회사 현상실에 틀어박혀 작품 작업에 열중하고 있기가 예사였다. 그리고 나는 그러는 유선배를 찾아가 그의 사진들을 구경하면서 일이 끝나기를 기다릴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한 몇 달을 지내다 보니 유선배의 그런 사진 작업 가운데에 한가지 기묘한 버릇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유선배는 사진을 찍어온 필름들을 그 즉시 현상하거나 인화해내는 일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흑백필름을 사용하던 시절이긴 하였지만(게다가 유선배는 특히 흑백사진만을 고집하였다), 필름째로 그냥 몇 날 몇 주일씩 내팽개쳐두는 수도 있었고 현상을 끝낸 필름의 경우에는 몇 달이나 인화작업을 미뤄 두는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 필름들에다 사진을 찍은 장소나 날짜를 명시해 두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사진을 찍은 날짜나 시간을 거의 괘념하지 않았다. 그가 필름에 해놓는 일이란 생필름과 현상치를 나누어 보관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의 작품 작업은 자연히 일정한 날짜나 시간배열에 따라서 진행되어 나갈 수가 없었다. 그는 거의 무작위적으로 나무 필름들을 인화해 내었다. 먼저 찍은 사진이 나중에 나오고, 나중에 찍은 사진이 먼저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로 생겼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그의 지나간 어느 날은 그가 사진을 찍은 날이 아니라,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해 내는 날에야 비로소 사진의 화면으로 되살아나는 것이었고, 그렇게 뒤늦게 되살아난 과거의 날들은 그것을 찍은 날과는 상관없이 그가 그것을 현상하고 인화해낸 날짜 위로 새로운 시간대의 배열이 지어지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사진들에 그것을 찍은 날짜 대신 그것을 인화해 보는 작업날짜 쪽을 차근차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묵은 필름들을 인화할 때마다 그가 만든 사진들에 대한 일기 비슷한 메모를 적어가고 있었는데, 그것이 또한 기묘한 것이었다. 그는 어떤 날의 사진을 인화해내고 나면, 그 사진을 근거로 그것을 찍게 된 사정과 장소 그리고 그때의 느낌들을 상당히 자세한 데까지 회상해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일종의 소급일기 형식으로 메모해 나갔다. 기묘한 것은 그러나 유선배는 그 지나간 날의 정황과 느낌들을 사진을 인화한 당일의 그것으로 현재화시켜서 적고 있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유선배는 그의 사진 작업을 통하여 자신의 과거를 현재화시키면서 그것으로 자신의 현재의 시간을 채워가는 격이었다. 혹은 그의 사진 속의 과거 속에 자신의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거꾸로 말하면 그의 시간 가운데엔 자신의 소재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현재는 과거의 재생으로 연속되고 있는 것이었다.
어디에서 그런 버릇이 연유하게 되었는지 나로선 물론 내력을 알 수가 없엇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버릇에 태연자약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현재가 과거가 아니라 미래 속에 산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 우리는 때로 현실의 무게를 정면으로 감당해 낼 엄두를 낼 수가 없을 때가 있지요. 그 현실의 무게라는 것이 너무 엄청나 보일 때는 말예요.」
어느 날 내가 유선배에게 그런 버릇이 생기게 된 연유를 물었을 때, 그는 그날따라 좀 피곤기가 심해 보인 얼굴로 그렇게 대받을 해온 일이 있었다.
「그래 사람들은 그 현실로부터의 압살을 모면하기 위해 그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잠간 비켜질 여유를 찾거나 소망하게 될 때가 있어요. 어떤 사람에겐 그게 아예 버릇이 되어버린 경우도 있겠구요……」
「유선배님이 바로 그렇게 버릇이 들어버린 경운가요?」
나는 그때 어차피 그렇게 내친걸음이라 싶었다. 현실의 무게니 압살의 위험이니, 이야기가 엉뚱하게 비약을 해가고 있는 느낌이었지만, 어차피 한번은 매듭을 보아두고 싶던 이야기였다. 나는 그때 그렇게 터놓고 추궁해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짐작보다 속이 허심탄회한 일면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 그럴는지도 모르지요.」
그는 여전히 힘없이 웃으면서 자신을 금새 시인해버렸다. 그리고는 뭔가 겸연쩍은 느낌인 듯 내가 한 말까지 자기 쪽에서 변명투로 덧붙이고 있었다.
「그건 사람의 눈에 따라선 용기가 썩 모자라 보일 수도 있겠지요. 그것도 아마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용기가 모자라 겁을 잘 먹는 것이 마지막 죄가 될 수는 없겠지요. 그렇게 해서라도 다른 시간대 안에서 자기 몫의 시간을 감당해 보려한다면 말이오. 그게 당장에서 압살을 당하고마는 것보다야 나은 길 아니겠소?」
나이 먹은 사람답게 솔직한 말이었다.
하지만 내겐 그의 변명이 아직도 그저 궤변으로만 들렸다. 그의 궤변에 승복을 할 수가 없었다.
「현재의 사물, 현실의 상황, 카메라 렌즈는 바로 그런 현재라는 시간대의 것들과 직면하는 순간에서 그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 아니던가요?」
나는 짓궂게 추궁을 계속해 나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카메라의 렌즈를 둘러멘 유선배님이 늘상 그 과거 속으로 도피를 일삼는 게 어떤 기묘한 아이러니라고 느껴지는구먼요.」
그런데 그때였다. 시비가 시작되면서부터 계속 물러서기만 하던 유선배의 입에서 그 순간 엉뚱한 반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니, 지금 보니 허형은 오핼 하고 있군요. 내가 즐겨 비켜서는 시각은 과거의 시간대가 아니지 않아요. 그걸 굳이 도피라 한다면, 나는 허형이 생각하듯 과거의 시간대로 도망을 치는게 아니에요. 미래의 시간대를 몰고 있는 쪽이지요.」
「미래의 시간대를 쫓고 있다구요?」
나는 얼칫 그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 어이없는 표정으로 되묻고 있었다. 한데 유선배의 주장은 즉흥적인 감정의 반발만은 아니었다. 그야 버릇이 그토록 몸으로 배어들기까지는 생각도 없지가 않았을 테니까.
유선배가 다시 차근차근 설득조로 말해오기 시작했다.
「내가 사진 찍는 일을 생각해 보세요. 난 내가 찍는 사진을 당시로선 아무 것도 해석을 하려 하지 않아요. 다만 사진을 찍는 것뿐이지요. 해석은 훨씬 나중의 일이에요. 사진들은 나중에 인화가 될 때 비로소 나의 해석을 얻게 되고 현실의 의미도 지니게 된단 말입니다. 나는 오히려 미래의 시간대를 찍고 있는 거지요. 그리고 그대의 나의 시간은 미래의 이름으로 살아지고 있구요.」
미래를 찍는 사진 작가 ――
그 말은 바로 그래 나온 소리였다.
근거가 없지는 않은 말이었다. 유선배의 주장은, 사진작업의 시간기준을 그 해석 행위 쪽에다 두었을 때 상당한 근거를 지닐 수 있었다. 사진을 찍는 것은 행위 자체였고, 인화를 하는 것은 그 행위의 해석이었다. 사진을 찍은 당시에는 행위가 있을 뿐 해석이 없었다. 해석은 나중에 인화로 행해진다. 그 해석을 얻음으로써 행위는 비로소 현실화하게 된다…….
어느 면엔 치기와 억지기가 느껴지는 주장이기도 하였다. 유선배의 그 이상스런 습벽은 그만큼 유선배의 그 현실대응 방법이라는 것도 그런 부자연스러움을 우겨 눌러야 했었는지 모른다.
어쨌거나 그런 부자연스런 억지를 눈감아 넘긴다면, 그의 사진 일은 일종 시간의 재편집 작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경우 그는 내일의 시간을 찍어내는 미래의 사진사였다.
하지만 그의 현실이 과거로 비켜서든 미래를 쫓아가든 결과는 어차피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겐 어차피 현재라는 것이 없었다. 그에게 있어 시간의 흐름은 과거에서 곧바로 미래로 넘어갔다. 현재의 시간 속에 그의 소재가 없었다. 그에겐 그 현재의 사간과 존재 자체가 실종상태였다.
그것이 나를 계속 석연치 않게 하였다.
하지만 유선배는 그러는 나를 괘념하지 않았다. 내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는 계속 미래의 사진을 쫓으면서 그것 속으로 흘려들고 있었다…….
���
「허형은 그 유종열씨하고 하숙을 함께 하신 일도 있지요?」
일이 어지간히 지겨운 모양이었다.
김형이 그새 또 볼펜을 내던지곤 담배를 피워 물며 참견을 해온다.
「십 년쯤 전이었지요. 한 이삼년 함께 지냈을까요.」
나는 다시 상념을 빠져 나오며 잠시 김형의 휴식을 거든다.
하지만 그 김형이 말하고 싶은 건 나와 유종열씨와의 동숙 사실이 아니다.
「헌데 그 양반, 사진이 원래 좀 이상하지 않았어요?」
김형이 이번에는 다시 그의 사진을 물어본다. 깊은 관심이 있어서 하는 소리는 아니다. 그저 무심히 해보는 소리일 뿐이다. 하지만 그의 말뜻은 알만하다. 바로 그 미래를 찍는다는 사진 때문이다. 유선배는 물론 누구에게나 자신의 사진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일이 없었다. 그의 사진에 대한 소망을 아는 사람은 유선배 자신과 나 그리고 나중에 그와 작업실을 함께 한 오군과 그의 아내 정여사 정도가 고작일 뿐이었다.
그의 사진에 대해선 자연히 편견과 오해를 지닌 사람이 많았다. 사건을 쫓으며 항상 세상의 움직임 속에 함께 움직이고 있는 김형 같은 사람에겐 그의 사진이 더욱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요. 그 양반 사진을 좋게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못했지요. 더욱이 신문 같은 데는 맞지가 않았어요. 하지만 ……」
나는 김형 앞에 유선배를 설명하려다 금새 다시 부질없는 노릇 같은 생각이 들어온다. 게다가 그 유작전 사진들에 대한 의문과 궁금증이 나를 자신 없게 만들어버린다.
한데 김형쪽도 그 보도사진이라는 것에 대해선 문외한이 아니다.
「그가 언젠가 월남엘 갔을 땐가요? 그때 사진들은 꽤 괜찮은 것들이 많았지요?」
김형이 이번에는 나의 말을 대신하고 나선다.
「하지만 아마 그걸로 그만이었을 걸요. 그 뒤론 별로 그 양반 사진을 볼 수가 없었지 않아요?」
「월남을 다녀와선 바로 우리 신문살 그만두었으니까요.」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 나름대로 사진을 계속하긴 했을 거 아닙니까.」
「물론 사진을 계속했지요. 개인 스튜디오까지 가지고 말예요. 다만 우리 신문에서 그 양반 사진을 써 주질 않았을 뿐이지요.」
「그렇다면 회사에선 왜 그를 다시 동남아로 보냈지요? 그가 마지막 취재 여행을 떠난 건 우리 회사사람으로 간 걸로 아는데요.」
「우리 회사에서 보낸 건 아니에요. 여행절차의 편의를 위해서 신문사 명위를 빈 것 뿐이었어요. 그것도 그냥 자유계약 형식으로……」
「어쨋든…… 그때도 신문엔 그 양반 사진이 한 장도 안 실렸었지요?」
「그 양반 원래 보도용 사진엔 적합치가 못했으니까요. 게다가 제때 제때 사진을 뽑아보내는 성미도 아니었구. 그러다 그만 실종사고가 생기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그 양반 그때나 저때나 사진을 계속해서 찍고 있긴 했을 겁니다.」
「그럼 이번 유작전에는 그때 사진들이 나온 겁니까?」
「글쎄……그거야 나도 아직은 참관 전이니까 가 봐야 알겠지요.」
나는 다시 자신이 없어진다.
김형과의 문답이 새삼 부질없는 노릇처럼 느껴진다. 김형이 공연히 귀찮고 괴롭다. 이제 그만 자리를 일어서고 싶다. 시간은 아직도 일곱 시를 조금 넘고 있는 정도. 거리가 그리 멀질 않으니 차를 타지 않고 걷는다 하여도 아직 시간이 너무 이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앉아서 버티기도 뭣하다.
「어때요, 김형도 한번 들러보지 않겠소?」
나는 그만 자리를 일어서며 치렛소리로 한번 더 김형을 권해 본다.
그러나 김형은 까닭 없이 완강하다. 완강하다기보다 단호한 편이다.
「난 역시 그만두겠어요. 허형도 아까 말을 했지만, 난 원래 그 사람 사진을 좋아한 편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허형처럼 그 사람한테 각별한 우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김형의 그런 매몰찬 말투에선 숫제 나에 대한 비난기마저 느껴진다.
―― 이 친구 아마 유선배를 비겁한 몽상가로 몰아붙여 욕을 하고 싶겠지.
나는 더 이상 권하지 않는다.
김형 쪽도 그저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는 다시 볼펜을 집어들고 원고지로 매달린다.
「먼저 갑니다.」
한마디를 던지고 나는 혼자서 신문사를 나선다. 초가을인데도 아직 저녁공기가 몹시 후덥지근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길거리는 언제나처럼 인파가 붐빈다. 가고 오는 사람들로 길거리는 흐름이 엇갈리는 물웅덩이 한가지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이리 뚫고 저리 비키며 힘든 전진을 계속해 나간다. 구름다리를 오르고 지하도를 건너다. 갈수록 사람들의 북적임이 더해간다. 사는 것이 바로 이런 아귀다툼 한가지 아니던가.
나는 나의 걸음걸이를 지치게 만드는 행인들의 무리를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싶어진다. 그러다간 문득 다시 유선배를 생각한다.
―― 유선배도 그런 마음으로 이 길을 걸어본 일이 있었을까. 사람들 사이를 이렇게 몸을 부딪치며 걸어본 일이 있었을까.
나는 사람들의 무리에 끼어 섞인 그의 모습을 쉬 상상할 수가 없다. 그의 사진이 그러했듯이 그에겐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진이 바로 그의 삶이었고 사진에 대한 욕망이나 허물이 바로 그 삶의 욕망이요 허물이었기 때문이다.
「저 거리를 좀 나가 보아요.」
내가 아직 유선배와 하숙을 함께 하고 있던 시절, 그게 내가 유선배를 몰아세우며 자주 지껄여댄 힐난의 소리였다.
「그 사람들과 몸을 부딪치며 함께 길거리를 걸어 보세요. 서로 발들을 밟고 밟히면서 사람들이 들이마시는 공기를 함께 들이마시면서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까 김형이 그의 사진에 대해 지니고 있었던 것과 똑같은 불만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그 무렵은 나도 유선배에 대하여 늘상 불만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그것은 이를테면 자기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그 시대의 사람들에 대한 일종 이웃으로서의 사랑의 이야기였다.
유종열이란 위인의 가슴속엔 그런 사랑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사진들은 사람들이나 사람의 일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 거의 없었다. 사람의 삶이나 그 삶의 자취들 대신 그는 나무와 산을 찍고 강과 바다와 하늘을 찍고 때로는 구름과 바람과 바위를 찍었다. 그의 사진에서는 이 시대의 사람들과 삶의 흔적이 깡그리 사라져가고 있었다. 남은 것은 오직 지극히 추상적인 시간에의 동경과 그것에 대한 예감 같은 것뿐이었다. 그게 말하자면 그가 자신의 흑백 화면에 담아내는 미래의 시간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선배는 그것으로 어떤 미래의 모습을 찍어낸다기보다 그 자신이 어떤 미지의 시간대 속으로 사라져 들어가 버리고 싶은 강렬한 자기 실종의 욕망 같은 것을 드러내 보일 뿐이었다.
유선배는 그런 식으로 현재의 시간대에서 자기의 소재를 지워버리고 싶어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저 사진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신의 미래의 시간대로 사라져 들어가 버리고 싶어한 것이었다.
유선배 자신도 언젠가 그런 나의 지적에 솔직히 시인을 해온 일이 있었다.
그가 어느 날 바다의 사진을 찍어왔을 때였다. 한 주일 이상이나 방을 비운 채 바다를 갔다온 그의 모습은 마치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해 돌아온 난파선의 선원처럼 심신이 모두 지쳐 있었다.
한데 그는 이상하게도 그때만은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그가 바다에서 찍어온 사진들의 필름현상과 인화를 서둘렀다.
하지만 그가 하룻만에 금방 뽑아낸 사진들을 보고 나는 그만 어이가 없어지고 말았다. 화면들은 그저 텅빈 바다뿐이었다. 파도의 바다, 안개의 바다, 섬들이 멀어져간 수평선의 바다…… 그저 그런 바다들뿐이었다. 얼핏보고는 무엇을 찍었는지조차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나무나 구름이나 바위를 찍었을 때보다도 화면의 구성이 훨씬 단순했다. 주제라고 내세울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단조롭고 유치한 화면들 속에 깊이 감춰진 유선배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는 끝없이 바다의 어디론가 사라져 들어가고 싶어하고 있는 것이었다……첩첩이 이어지는 파도들 너머로, 안개 속에 고즈넉한 섬들 사이로, 구름으로 뒤엉킨 하늘과 바다의 수평선 너머로……하지만 그가 넘어가 사라지고 싶어한 것은 파도나 안개나 섬들이 아니었다. 그 시간대의 수평선 너머였다. 그의 앞에 걸려 있는 끝없는 바다와 수평선들은 차라리 그가 뚫어 넘기를 소망한 두껍고 고통스런 시간대의 문이었다.
「전 여태까지 선배님이 찍고 싶어하신 그 미래라는 시간대의 이름이 희망이라고 알고 있었지요. 헌데 이번에 선배님이 찍어오신 건 오히려 허망스런 절망 쪽이군요.」
사진을 보고 나서 내가 씁쓸하게 내뱉은 소리였다. 그런데 그때 유선배가 모처럼 관대한 어조로 이렇게 말해 왔다.
「글쎄요, 난 실제로 배를 달리면서 무서운 절망감을 맛보고 있었으니까요. 섬을 지나면 다시 섬이 나오고 안개를 뚫으면 다시 안개가 나오고…… 나는 그 안개와 섬들이 끝날 때까지 계속 바다를 달려 볼 참이었어요. 그 안개와 섬들 저 쪽의 바다를 찍어오기 위해서요. 하지만 난 끝내 거기까지 나갈 수가 없었어요. 그 안개와 섬들 가운데로. 아니 흐름을 멈춰버린 시간 속에 내가 가두어버린 겁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나는 그만 길을 잃고 만 거예요. 그 안개와 섬들 가운데로. 아니 흐름을 멈춰버린 시간 속에 내가 갇혀버린 거지요. 나는 시간을 잃고 바다 위를 헤맸어요. 시간 속에서 실종을 한 거지요……」
자기실종의 욕망을 자기 입으로 말한 유선배의 첫 번 자기 고백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작 그런 식으로 자기 실종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섬들 사이로 안개 속을 뚫으며 끝없이 바다를 달리고 있을 때 그의 가슴속에선 분명히 그 자기 실종의 황홀한 욕망이 무섭게 부풀어올랐을 터이다. 하지만 그는 그 오랜 소망이 바로 이루어지려는 순간에 무서운 공포를 경험한 게 분명했다. 그리하여 그는 허겁지겁 배를 돌려 시간 속의 실종을 벗어져 나온 것이었다. 그가 난파선의 선원처럼 심신이 지쳐 돌아와 필름의 인화를 서둘러댄 것은 바로 그런 두려움을 씻어내기 위해서였다. 그가 그 바다에서 잃어버린 시간의 흐름을 되찾기 위하여. 그리고 그 정지된 시간 속에 길을 잃고 사라진 자신의 소재를 찾아내기 위하여.
유선배의 그 자기실종 욕망이란 것은 실상 그런 정도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는 실종을 소망하면서도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일 용기는 없었다. 그는 그 대신 그것을 사진으로 성취하려 한 것이었다. 그의 욕망이 현실에서 불가능한만큼 강렬한 열정과 성취욕을 가지고.
그의 사진작업은 그러니까 바로 그의 은밀스런 그의 자기 실종 욕망의 대행행위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어떤 것이었다.
그는 사진은 그의 욕망의 표현일 뿐이었다. 사람들 가운데서 자기의 소재를 지워 없애버리고 싶은 실종 욕망의 결과일 뿐이었다. 그의 사진에서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요, 그 결과의 현상인 것이었다. 아니 다시 말을 바꾸면, 그것은 그의 현실의 시간대 가운데엔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이나 숨결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되었다. 유선배에게 있어 현실의 시간대는 항상 과거의 그것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자신의 소재마저 지워버리고 싶은 그였다. 그런 그에게 하물며 이웃에 대한 관심이나 사랑 같은 것이 있을리 없었다.
그렇다고 물론 그 유선배가 세상 사람들과는 깡그리 등을 돌리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처럼 회사도 나다녔고, 거기서는 거기서대로 필요한 사진을 찍어내기도 하였다. 나와 하숙을 함께 하기도 하였고 나중에 그의 아내가 된 아마튜어 사진작가 정성이나 학교 후배인 오군들과의 관계에서처럼 각별한 사귐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길거리를 나다니지 않았을 리도 없었다.
그도 수없이 이 거리를 오갔을 터였다. 하지만 역시 그에겐 경우가 같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아마 이 거리를 지나가면서도 자신의 깨어 있는 시간대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어 본 일은 없었을 터였다. 밟고 밟히고 부딪고 부딪히면서 미움과 사랑으로 그것을 자신의 깨어 있는 현실로 껴안아 본 일이 없었을 터였다.
앞뒤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나의 상념을 방해한다. 나는 그 사람들 가운데서 지친 사지를 허우적대고 있는 꼴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나는 한사코 상념의 실마리를 놓치지 않는다.
사람이 없는 유선배의 사진은 자연히 그를 만족시킬 수가 없었다. 유선배는 그 사진을 통하여 시간의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사람의 삶이 드리우지 않는 사진은 사람의 시간을 담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바위와 나무와 하늘의 시간은 그저 그것들 자신의 시간일 뿐 사람이 시간은 될 수 없었다. 그런 바위와 나무의 시간들이 유선배에게 문을 열어줄 리 없었다.
하지만 유선배의 집념은 꺾일 줄을 몰랐다. 지치지 않고 계속 비슷한 사진들을 찍어댔다. 삶의 숨결이 사라진 사진․바위․구름․바다․나무들…… 그러나 언제나 화면 위에서 시간의 흐름이 멈춰버린 사진. 유선배 자신이 그것 속으로 사라져 들어가 버리고 싶은 어렴풋한 실종의 꿈이 피곤하게 잠든 사진…… 줄기차게 그런 사진들을 찍어대고 있었다. 사진에서나 생활에서나 사람의 숨결이 드리울 가망은 당분간 기대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유선배의 고집스런 집념 뒤에도 나름대로의 한계는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것을 재촉하는 고민과 절망이 그 동안 그토록 깊어졌던 것일까.
하루는 유선배가 뜻밖의 고백을 해왔다. 그것은 일종 카메라의 절망적인 숙명에 관한 것이었는데. 유선배는 그때도 묘하게 공격적인 방법으로 고백의 전주를 꺼내온 것이었다.
「허형은 이 그림에서 뭔가 흐름이 그치지 않는 시간의 소리 같은 게 들이지 않소?」
그날 유선배는 내게 먼저 한자의 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그렇게 물어왔다. 가파른 해변가의 절벽 아래에 하얗게 파도가 부서지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에선 과연 어떤 소리가 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영원히 멈추지 않는 파도의 소리. 그것은 어쩌면 영원한 시간의 소리 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처럼 서서히 비위가 상해오기 시작했다. 그가 묻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유선배의 얼굴이 어딘지 의기양양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글쎄요. 전 별로 들리는 게 없는데요. 들리는 게 있다면 무슨 몽유병을 앓고 있는 병든 시간의 잠꼬대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나는 부러 뒤틀린 소리로 유선배의 기대를 빗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발단으로 유선배와 나 사이엔 한동안 버릇이 되다시피한 말싸움이 계속됐다.
「또 첫마디부터 비웃으려 드는군. 하기야 허형한테는 사회부 기자의 귀밖엔 없으니까. 그걸 알고도 물은 내가 잘못이지.」
유선배가 곧 반격을 해왔다.
「물고 뜯고 아우성치는 사람의 목소리, 허형은 그런 거나 들을 줄 알았지, 시간의 소리 같은 건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이거든.」
「전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나도 이젠 물러설 수가 없었다.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소리, 거기서 옳고 그른 것을 가려 들을 수만 있다면 그 도깨비 하품소리 같은 시간의 소리 같은 건 듣지 않아도 그만 아니겠어요.」
마음 내키는대로 유선배를 함부로 매도하고 들었다.
「그런데 유선배님은 그 허깨비 같은 소리에 귀가 홀려 사람의 소리를 듣는 귀는 그렇게 못마땅해지고 마신 겁니까.」
「사람의 소리를 듣는 걸 허물하려는 게 아니지요. 살아 움직이는 것들은 그 시간과 함께 죽음으로 지나가 버리기가 쉽다는 것뿐이지요. 그러니 그 순간의 소리에만 너무들 깊이 매달리지 말고 좀더 먼 시간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보라구 말이오.」
유선배도 지지 않고 계속해서 맞서왔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 길게 듣지 않아도 그 속을 알만했다.
「그 미래의 시간이라는 것이 구실이겠군요.」
나는 기다리지 않고 그보다 한발 더 앞질러 나갔다.
「하지만 그 미래라는 것이 유선배의 생각처럼 그렇게 독립적인 시간대로 존재할 수가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과 현실의 집적이나 연장의 형식으로 오는 게 아닙니까.」
「그렇게 봐야 할 일면이 있겠지요. 미래는 어차피 현재의 연장 위에 자리하는 것일 테니까.」
「그렇다면 현실을 외면하고 그 미래만을 지나치게 신봉하는 건 일종의 미망이나 망상이 아니겠어요. 어쩌면 그 미래라는 걸 구실로 현실을 속이는 사기가 될 수도 있는 일이겠구요. 우리에겐 이미 그런 경험이 숱하게 많은 터인데 말입니다.」
「그건 반드시 그렇게만 말할 수가 없는 일이지요. 미래의 시간을 보려는 건 그 미래의 시간을 근거로 현실의 시간을 보고 그 자리를 정하려는 것이니까요. 우리에겐 때로 죽음의 모습이 삶의 양식을 결정지어주듯이 말이오. 미래는 오히려 현실의 담보지요. 미래를 보는 건 바로 현실을 보는 방법의 하나구요.」
유선배는 부득부득 억지를 써대고 있었다. 나는 그럴수록 공격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유선배의 그 미래라는 걸 그렇게 간단히 곧이 들을 수가 없는 걸요. 선배님의 그 사진들의 미래 속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질 않거든요. 우리들의 시간은 현재나 미래나 어차피 사람과 사람의 삶의 시간이 되어야지 않습니까. 그런데 선배님의 사진들처럼 사람의 흔적이 사라진 미래도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것이 우리의 시간이 아닐 수 없지요. 내가 나의 사진들에서 사람의 모습을 기필하는 것은 거기서 사람의 시간을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절망을 지우고 싶어한 때문이었으니까요.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선 미래의 시간의 모습도 절망의 그것밖엔 찍을 수가 없거든요.」
「절망하지 않았다면, 유선배도 사람을 찍을 수가 있었을까요?」
「그렇겠지요. 나도 첨에는 꽤나 그런 노력을 해온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난 끝내 지치고 말았어요. 그래 차라리 사람의 얼굴이 무서워진 겁니다.」
「그게 바로 유선배가 자신의 패배를 드러낸 것이지요. 미래라는 것이 어차피 우리들 사람의 것이어야 하는 이상 사람의 얼굴이 아무리 무섭고 절망스럽더라도 유선배는 그럴수록 그것을 정확하게 찍어내야 했거든요. 그리고 그런 얼굴들에 대한 사실성의 확인 위에서 거꾸로 미래의 구원을 찾았어야 했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그러기엔 난 너무 지쳤어요. 그렇게 일찍 지쳐버린 것이 어쩌면 나의 체질일 수도 있었겠구요. 하지만 난 그래서 나의 방법이 생긴 것이고 이렇게 허형에게 이해를 구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나와 나의 체질엔 가장 알맞은 방법이고 또 그게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허형의 그것과는 다를 수가 없다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시비가 오히려 부질없어진 것일까. 아니면 유선배에겐 처음부터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빗나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유선배의 어조가 웬일인지 거기서 갑자기 풀이 훨씬 꺾이고 있었다. 그의 말투는 이젠 주장이나 설득조가 아닌 이해의 주문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물러설 수가 없었다. 유선배에게 마지막 항복을 받아내고 싶었다. 그의 사진에 대한 자신의 절망을 보게 해주고 싶었다. 나는 마지막 추궁을 가해 들어갔다.
「그래 유선배는 그런 식으로 한번이나마 미래의 시간을 찍을 수가 있었나요? 그래 그 미래의 모습을 보고 그곳으로 나가는 시간의 문을 열어본 일이 있었느냔 말입니다.」
하지만 나의 그런 마지막 추궁도 유선배에겐 이미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내가 추궁을 가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자신의 실패를 시인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잠시 나의 말에는 대꾸를 해오지 않은 채 입가에 희미한 미소만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미소 끝에 조용히 머리를 가로저으며 독백조로 어려운 고백의 소리를 해왔다.
「없었어요…… 실은 여태까지 단 한번도.」
오랫동안 별러오던 비밀을 털어놓는 어조였다. 벼랑 아래의 파도의 사진이나 그간에 수없이 오고간 공격적인 주장들은 공연히 한번 그래 본 것뿐 만이라는 식이었다. 아니, 그는 그 동안 수없이 허물해 온 자기 사진의 허점을 속속들이 모두 알아차리고 있으면서도 그의 마지막 고백을 위하여 자신을 한번 더 시험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였다.
변명을 겸해 그가 다시 덧붙여 온 소리가 그것을 분명히 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마 카메라라는 기계의 비극적인 숙명의 탓이었을 겝니다.」
그가 이번에는 아주 편한 목소리로 말해오고 있었다.
「카메라의 숙명이라니요?」
유선배는 이미 자기 허물이나 약점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 한데도 그는 아직 쓸데없는 구실을 말하고 있었다. 뭔가 아쉬움이 남아있기 때문일 터였다. 이야기의 분명한 마무리를 위해서도 나는 마지막까지 난폭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카메라의 작업은 이를테면 순간을 통하여 영원의 시간을 붙잡으려는 거지요.」
유선배가 다시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순간의 흐름을 파고 들어가 그 대사의 시간을 붙들어 흐르려고 하는 거지요. 그런데 카메라는 그 순간을 정지시킨단 말입니다. 대상의 시간을 포착하는 순간, 그것은 그 순간뿐만 아니라 대사의 시간 전체의 흐름을 화면 위에다 정지시켜버려요. 그게 카메라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지요. 그리고 내게 끝없는 실패를 거듭시키고 있는 비극의 원인인 셈이기도 하구요……」
자신의 허물은 역시 외면을 해버린 소리였다. 하여 나는 다시 한번 그를 깨우쳐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대상의 시간을 정지시켜버리는 게 카메라의 숙명이라면 유선배의 실패는 그런 카메라에다 허물을 물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허물은 오히려 그런 대상을 선택해 시간을 찍으려는 유선배 자신에게 있는 것 아닙니까? 붙잡으려는 대사의 시간은 원래가 사람의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사람의 삶이나 숨결이 드리우지 않은 산이나 나무나 바위의 시간, 그것은 사람의 시간이 아니지요. 사람에겐 그저 화석화되어버린 정지일 뿐이에요…… 그것은 유선배의 카메라 앞에서 흐름을 정지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정지되어 있는 화석의 시간이었어요. 흐름이 문을 열어줄 수가 없는 시간이었어요. 카메라가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그 순간에서조차 말입니다.」
「……」
유선배는 마침내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다문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 어찌 보면 그는 거기까지도 이미 모든 걸 짐작하고 있었던 사람 같았다. 뭘 새삼스럽게 열을 올리느냐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저 이야기를 끝내지 않을 수 없었다.
「전 카메라는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유선배의 경우 그 카메라는 처음부터 정지된 시간밖엔 찍어낼 수가 없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걸 어차피 카메라의 숙명이라 하신다면, 그런 숙명을 지닌 카메라에 유선배의 실패의 허물을 물을 수는 없지요. 그보다는 먼저 유선배 자신의 눈의 숙명을 돌아봐야 했어요. 사람의 삶이 아무리 괴롭고 절망스럽더라도 우리는 어차피 그런 삶을 보아야 하고 그런 삶 속으로 함께 섞여 들어가 살아야 하는 것이 또한 숙명이니까요. 미래로든지 과거로든지 우리 인간들의 시간이라는 것은 그런 삶 속을 흐르고 있으니까요.」
���
「와 주셨군요.」
전시장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정성희여사는 전시실 입구에서부터 금방 나를 알아보고 곁으로 다가온다.
「그러지 않아도 오늘쯤은 한번 찾아주시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었어요.」
여사와 함께 전시실을 지키고 있던 오군도 나를 제법 기다려온 눈치다.
「일찍 못와 봐서 죄송합니다. 마음의 준비가 미처 안되어서였다고 할지…… 금방 달려오기가 뭣해서요. 워낙 뜻밖의 소식이 되어놓으니 어쩐지 당황스러워지기도 하구요……」
나는 얼핏 적당한 구실이 떠오르질 않는다. 정여사와 오군 앞에 그저 그런 식으로 늦게 온 변명을 얼버무려 넘긴다.
하지만 이쪽 심중을 미리 헤아리고 있는 정여사 앞엔 그런 변명 따위가 소용될 리 없다.
「허선생님께서 죄송하시긴요. 오늘 이렇게 와주셨으면 되지 않으셨어요.」
그녀가 외려 송구스런 목소리다.
「죄송하기로 말하면 그 동안 허선생님께 의논 한 마디 없이 이런 일을 벌이고 나선 저희 쪽 허물을 죄송해 해야지요. 허선생님은 전에도 늘 겁을 먹고 놀라길 잘 하시던 분이라 이런 일로 괜히 혈압을 올려드리고 싶지가 않았거든요. 호호……」
나의 허물에 대한 이해의 말에 곁들여 남편의 옛 동료에게 짐짓 귀띔 한마디 없이 유작전을 갖게 된 자신의 당돌성을 밉지 않은 농담으로 비켜서 버린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농담기 속에서도 내가 뒤늦게 나타난 일이나 그녀가 내게 귀띔이 없었던 양쪽의 허물은 허물대로 확인된다.
그렇다면 그녀가 전시회의 소식을 부러 아껴 온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물론 남편에 대한 그녀의 믿음과 사랑 때문이었다. 그녀는 옛날부터 유선배에 대한 나의 불만스런 눈길을 알고 있었다. 유선배의 사진에 대한 나의 주문을 누구보다도 깊이 알고 있었다. 정여사는 이를테면 거기에 자신이 있었던 것 같았다. 이번의 전시회로 그에 대한 해답을 알게 할 자신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 마지막까지 소식을 짐짓 아껴두고 있었으리라.
나는 우선 사진부터 좀 돌아보고 싶어진다.
「먼저 한바퀴 돌아오겠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사진에 대한 궁금증으로 마음이 쫓기고 있던 판이라 나는 그쯤 인사치레를 접어두고 사진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간다. 그리고 그것으로 금새 여자의 존재를 까맣게 잊는다. 사진들이 내게 그럴 여유를 빼앗아 가버린다.
첫 번 사진을 대하는 순간부터 그랬다.
예감이나 기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진들은 말 그대로 유작품들인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생전에 발표를 안 했대서가 아니라, 발표할 기회를 못 가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 입수가 된 것인지 경위는 당장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가 유선배의 그 마지막 여행에서 찍어보낸 사진들이 분명해 보인다. 망망대해의 파도 위에 떠있는 망국 난민들의 비참스런 유랑선들. 어떤 것은 마치 부두를 떠나가는 사람들처럼 아쉽고 간절스런 손 흔듦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어떤 것은 또 울부짖음으로 호소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저 저주와 절망 속에 넋없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소름기치는 표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결같이 지치고 헐벗고 야윈 얼굴들. 공포와 절망과 저주에 절여든 인간의 얼굴들. 유선배는 온통 그런 얼굴들로 그의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보도용과 작품치를 따로 구분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바다로 가서 그 바다를 찍지 않고 사람의 얼굴을 찍어보낸 것이었다.
나는 거기서 잠시 발길을 머물고 유선배의 옛날 사진들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특별히 그 유선배가 마지막으로 찍어 보여주고 간 사진들을 생각한다.
유선배가 바다를 찍지 않은 것은 이번에사 처음 알게 된 일은 아니었다. 유선배는 실상 마지막 여행을 떠나기 훨씬 전에 바다의 사진을 단념하고 있었다. 바다도 산도 나무도 바위도 끝내는 단념을 하고 만 그였다. 바다나 산 대신 그의 화면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카메라의 숙명을 구실로 한 그의 실패의 고백이 있고 난 얼마 뒤였다.
카메라의 숙명을 탓하기보다 유선배 자신의 삶의 숙명을 되돌아보라던, 그날의 그 나의 데데한 설교에 그가 생각이 달라진 것이었을까. 아니, 끝끝내 웃음기를 잃지 않고 있던 그 말없는 유선배의 관용 뒤에는 이미 나를 앞선 자기 각성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유선배는 차츰 자신이 달라져 가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 유선배의 변화는 사지에서보다도 생활에서 먼저 드러나고 있었다.
끊임없는 갈등과 배반감 때문이었을까.
유선배의 변화는 맨 먼저 나를 배척하는 자기고립 행위의 형식으로 시작되었다.
다툼이 있고 난 며칠 뒤였다. 그가 느닷없이 방을 옮겨 가버린 것이었다. 나와는 사전에 의논 한마디 해오지 않은 채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나를 떠나간 것이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자 대학 시청각교육과를 다니고 있을 때부터 그의 사진을 좋아하고 따르던 정성희란 아가씨와의 동거생활을 시작한 것이었다. 나에겐 배척이요 자기 고립행위였지만, 그의 입장으로선 새로운 인간에의 해후인 셈이었다. 혼인식도 올리지 않은데다 주변에 아무도 귀띔 한마디 해주지 않았을 정도의 사람이고 보니 신접살림을 시작하고서도 그의 태도에 별다른 변화가 있을 순 없었다.
대범하다고 할까, 무심하다고 할까, 주위의 눈길을 괘념하지도 않았고, 집으로 사람을 청해주는 일 같은 것은 더더구나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회사동료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언제나 혼자 출근을 하고 혼자 일하고 그리고 혼자서 퇴근을 했다.
하니까 그가 결혼을 하게 된 사실만으론 아직도 그의 변화를 말할 수는 없을는지 모른다. 변화는 오히려 그 결혼으로 인한 어떤 적극적인 자기실현의 욕망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월남전 특별취재를 자원해 나선 것이 시발이었다. 전에는 전혀 흥미가 없어하던 일이었다. 그 일을 그가 자청하고 나선 동기는 막연하나마 그의 결혼에서 추리해 볼 수밖에 없었다. 결혼이, 또는 결혼을 생각하게 한 동기가 그의 태도를 변화시킨 것이었다.
사진도 자연히 변하기 시작했다.
전쟁터의 사진들이 으레 그렇듯이, 유선배가 월남에서 찍어온 사진들은 너무도 생생한 비극의 초상들이었다. 포탄에 몸이 찢긴 병사의 신음과 절규, 굶주림 속에 쫓기는 피난민들의 참상, 사신의 모습처럼 검붉게 치솟아 오르는 화염의 위세와 공포……그런 사진들의 주제는 물론 한결같이 인간의 삶과 죽음의 얼굴이었다.
유선배는 거기서 참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만나고 있었다.
유선배의 사진에 사람의 모습이 주제가 되고 있는 것이 그것이 물론 처음은 아니었다. 앞서도 이미 말을 했지만, 보도 자료로 찍은 사진들엔 전에도 자주 사람이 등장했다. 그의 사진에 사람이 없는 것은 그 자신의 작품사진의 경우였다. 그의 사진에 사람의 모습이 취해졌다하여 그것을 반드시 변화의 계기로 말할 수는 없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한 변화요 변화의 신호였다. 그의 다음행동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취재를 끝내고 귀국한 후로 한 달이 못 가서 그는 회사를 그만 두고 물러나 버린 것이었다. 사진을 아예 그만두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작품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된 겁니까. 사진에 대한 유선배의 그 간절하고 오랜 꿈이 단 한번의 전쟁터의 경험으로 그만 박살이 나버린 겁니까.」
퇴직 소식을 듣고 내가 일부러 그를 찾아가 만류 삼아 물었을 때, 그는 어지간히 기가 질려 있는 것 같기는 하였다.
「글쎄, 무서운 델 구경하고 나니, 어디 오그라든 오금이 다시 펴질 것 같아야 말이지요.」
짐작이 가는 말이었다.
충격과 절망을 대신한 소리였다.
하지만 유선배는 그것으로 카메라를 아주 내던져 버린 것은 아니었다. 얼마 뒤에 그는 곧 종로 이가의 뒷골목 한구석에 부부동업의 개인작업실을 마련한 것이었다. 그를 따르던 또다른 후배인 오군까지를 조수로 채용하여.
유선배는 결국 자기 사진을 찍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보면 월남에서의 사진도 보도용이 아닌 자신의 사진을 찍어왔다는 얘기였다.
그의 작품 사진에 비로소 사람의 얼굴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결혼과 월남전 취재가 계기인 셈이었다.
그는 좀처럼 다시 사진을 찍지 못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지 못하고 몇 주일 몇 달을 고심만 하고 있었다.
갈수록 사진이 두려워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의 전쟁터 충격은 회사를 그만두는 것으로도 모두 정리된 것이 아니었다.
「난 도대체 감당할 수가 없어요. 그 무서운 현장들과 맞서기엔 나의 카메라는 너무도 무력하단 말이오. 나의 카메라는 번번이 그 대상의 시간을 정지시킬 뿐이었어요. 그 시간의 벽을 뚫고 대상 안으로 들어가 함께 흐를 수가 없었어요. 감당할 수가 없는 일이었어요. 그 두꺼운 벽을 허물 수가 없었어요.」
어느 날 그의 작업실을 찾아갔을 때 유선배는 거의 탈진한 어조로 털어놓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아직도 전쟁터의 악몽을 벗어져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고심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진 일이 이토록 두려워진 건 내 사진기가 살아있는 현실 앞에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를 느꼈기 때문이 아니에요. 무력감을 느끼면 사진기를 버리면 그만인 게지요.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어요…… 무서운 힘으로 맞서 오거든요. 그 전쟁터의 참상들이, 그 얼굴들이 내게로 말이오. 내가 카메라를 버릴 수 없도록 순간순간 내게 맞서오고 있어요…… 산이나 바다는 맞서오는 게 없지요. 그래 마음에 내키지 않을 땐 자리를 비켜서 버릴 수가 없지요. 하지만 이건 그럴 수가 없어요. 그럴 수 없는 것이 고통인 게지요.」
그의 카메라 앞에 시간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 현상들, 그러면서도 눈을 감고 돌아설 수 없게 만들고 있는 인간사의 모습들, 그건 아닌게 아니라 그의 고통이자 절망이 아닐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유선배는 이제 어쨌거나 사진의 대상을 바꾸고 있었다. 그는 산과 바다와 나무를 좇는 대신 사람의 얼굴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진기를 아주 내던져 버리지도 못했다. 그런 식으로 힘든 탐색을 계속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끝내는 그 나름의 해답을 찾아내고 있었다.
얼마 뒤에 내가 다시 그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유선배는 마침 어린아이를 소재로 한 몇 장의 사진에 마지막 손질을 끝내 가고 있었다.
그가 다시 사진을 찍게 된 일이나 그 소재의 새로운 발견이 내게는 반갑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궁금한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이런저런 사연을 캐물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자기 작품의 생명력을 위하여 미래에 대한 시간의 문을 찾고 있던 사람이 그 미래의 시간의 모습으로 어린아이의 모습을 선택한 것은 어떻게 보면 안이하고 유치한 발상이랄 수도 있었다. 그것은 시간의 문을 열어 그것을 초월하려는 인간정신의 차원이 다시 물리적 시간대로 환원되어버리는 창작의지의 상투성을 드러내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유선배 자신도 그런 건 굳이 말을 하고 싶어하는 기미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그런 건 따지거나 해명을 들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제 그가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는 사실과 어린애의 얼굴에서 그 사진의 소재를 찾아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비록 끊임없이 그에게 맞서오는 전쟁터의 인간의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끝내 감당해 낼 수 있는 가장 손쉽고 편한 출발이었다. 그가 다시 사람의 얼굴로부터 사진을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족했다. 더욱이 그가 지나가는 소리처럼 머지않아 한 아이의 아비가 될 거라고 아내의 임신 사실을 말했을 때 나는 더욱 더 그런 확신이 들어왔다. 그것은 그가 다시 사진기를 들게 된 동기를 그만큼 소박하고 개인적인 것으로 핍하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소박하고 개인적인 만큼 자기의 사진에 대한 유선배의 소망도 그만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선배는 물론 그것으로도 아직 자신의 사진에 대한 모든 숙제가 풀린 것은 아니었다.
그의 화면에 조그맣게 나타난 어린아이의 얼굴이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 나갈 것인가가 그의 우선의 숙제인 셈이었다.
유선배의 사진에는 이후부터 과연 끊임없이 사람의 얼굴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린애로 시작된 사람의 얼굴은 마치 번식력이 좋은 생식세포처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분열을 계속해 나갔다. 유아가 소년으로 소년이 다시 청년과 장년과 노인의 그것으로, 또는 남자와 여자와 부모와 자식들과 배부른 자와 배고픈 자와 병든 자와 건강한 자와 노는 자와 일하는 자와 웃는 자와 우는 자들로…… 그의 화면들이 어느덧 그렇게 삶의 꿈과 희망과 절망들로, 그런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로 채워져 나갔다.
어떻게 보면 이젠 그 자신의 삶도 비로소 그 사람들과 사람들의 삶의 한가운데로 깊이 섞여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도깨비 같은 시간의 꿈으로부터 그 살아있는 사람들의 한가운데로 돌아와 발을 서로 밟고 밟히면서, 몸을 서로 부딪고 부딪히면서 사람의 거리를 걷게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유선배는 실상 아직도 거기까진 이를 수가 없었던 것 같았다. 그의 꿈은 끝내 그의 사진으로 시간의 문을 찾아 여는 것이었다. 그의 사진은 아직도 거기엔 어림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찍어도 역시 마찬가지더군. 사진의 사람들은 언제나 저쪽이고 나는 이쪽이거든. 공간이 지워지질 않는단 말야요.」
어쩌다 한번씩 그의 작업실을 찾아가 볼라치면 그는 여전히 실망과 불만에 젖어 있곤 하였다.
「찍히는 사람과 찍는 사람, 대상과 나, 언제나 둘은 그런 관계지. 둘 사이엔 엄청난 거리의 벽이 있거든. 그래, 바로 그 거리의 벽이에요. 그 두꺼운 거리의 벽을 뚫고 들어갈 수가 없어요. 참으로 엄청난 카메라의 숙명이지. 그 거리가 사라져주지 않는 한 우린 서로 다른 차원의 세계에 따로따로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어요. 벽을 뚫고 넘어가 함께 있거나 같은 시간의 흐름을 탈 수는 없어요. 그런 때 대상의 시간을 찍는다는 것은 그저 그 시간을 정지시키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에요. 문제는 결국 이놈의 지워지지 않는 거리와 공간인데……」
사람을 찍는다 해도 역시 그 대상과 렌즈 사이의 공간의 방해로 사진의 시간이 죽어버린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찍거나 무엇을 찍거나 그가 거기서 찍어내는 것은 죽어 굳어진 시간뿐이라 하였다. 살아 흐르는 시간을 찍기 위해선 거리와 공간을 제거해야 하는데, 그 방법이 찾아지질 않는다 하였다……
유선배는 그런 식으로 끝없이 고심을 계속하고 있었다.
한데 그 유선배에게 끝내는 어떤 방법이 찾아진 것이었을까. 아니면 적어도 거기에 어떤 방법에 대한 희망을 걸어볼 수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 그로서는 그때까지도 그 월남전의 경험이 어떤 피할 수 없는 숙제거리로 끊임없이 맞서 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유선배는 마침내 한번 더 그것들과 맞서보기로 마음의 작정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그 해 초여름께 어느 날 유선배는 문득 다시 한번 그 동남아 취재 여행을 떠나간 것이었다. 희망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제법 자신을 가진 듯 옛 회사의 후원까지 얻어서. 그때는 이미 전쟁이 끝나 직접 전쟁터를 갈 수는 없었지만, 전쟁이 끝났어도 아직 그 동남아 일대의 해상엔 월남난민의 피난민들이 죽음의 항로를 헤매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옛 우방국들의 배마저 그런 난민선의 구조를 외면해버린다는 비정스런 뉴스가 잇따를 때였다.
―― 여기서 우리는 먼저 죽어간 사람의 고기를 먹는다. 그리고 동료의 고기를 먹던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다시 그의 고기를 먹는다. 그리하여 나는 이 섬에 도착한 여덟 명의 난민 중에 마지막 살아남은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제 먼저 죽어간 인간들의 옷 위에 나의 피를 흘려 마지막 당부로 이 글을 적는다. 내가 그 일곱 인간의 고기를 먹고 살아온 것을 갚기 위하여. 그 위에 이젠 내가 죽더라도 다시 나의 고기를 먹어줄 사람이 없으므로. 이 이야기를, 이 섬에서 일어난 참극의 이야기를, 누가 이 섬을 찾아와 이것을 발견한 사람이 있거든, 눈감지 말고 전해 주기 바란다. 우리를 위해 피흘려 싸워준 우방국들에게, 우리를 외면하고 지나간 그 우방국의 선원들과 국민들에게, 세상의 모든 평화주의와 인도주의자들에게, 그리고 누구보다도 먼저 우방국의 배와 비행기 편으로 재산과 함께 우방국으로 날아가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을 우리의 옛 위정자들에게. 그 천추의 애국자들에게.
1975년 5월 ×일
이것은 그 무렵 국내 신문에도 보도가 된 한 난민선의 참극의 진상이었다.
동남아 해상의 어떤 무인도에서 있었던 참극의 내력이 소개된 글이었다.
유선배가 마지막 여행을 떠난 것은 바로 그 기사가 소개된 무렵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같은 섬을 다시 찾아갔다고 할 수는 물론 없었다. 패망한 월남 땅으로 전쟁터를 찾아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찾아 떠나간 것은 결국 땅에서든 바다에서든 그를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괴롭혀온 그 전쟁터의 참극의 얼굴들과 다시 한 번 맞서기 위해서였음이 분명했다. 그리하여 비로소 그 대상과 카메라 사이의 두꺼운 벽을 허물고 대상의 시간을 함께 할 희망을 좇아갔음이 분명하였다.
그가 거기서 찍을 사진들은 결국 그가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간 사람의 모습에 다름 아닐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은 어김없는 사실로 눈앞에 증명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그는 바다로 갔으되 바다의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전쟁터의 사진이 아니되 전쟁터보다 더한 인간의 참극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유선배는 이제 그가 찍은 사진들에 장소와 날짜를 한 장 한 장 모두 순서정연하게 밝혀 놓고 있었다.
1975년 6월 4일 아침 6시 30분
말레이지아 동부해상 북위 4도 8분, 동경 105도 20분 지점 한국 화물선 태백호 선상에서.
1975년 6월 12일 오후 4시 27분
남지나해상의 북위 14도 26분, 동경 113도 30분 지점을 지나면서 미국 화물선 버지니아 호 선상에서…….
사진들 아래에는 한 장 한 장마다 모두 촬영 장소와 날짜․시각들이 밝혀져 있었다. 그리고 그 날짜와 시간대를 따라 사진들이 차례로 전시되고 있었다.
앞뒤가 뒤죽박죽으로 뒤섞여 혼란스럽던 유선배의 시간대가 그 끝없는 바다 위에선 신기할 만큼 정확한 질서를 되찾고 있었다. 그것은 이를테면 추상 속을 헤매던 그의 시간대가 현실의 그것으로 되돌아온 증거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궁금했다. 유선배의 이런저런 변화의 성과로는 그간의 궁금증들에 대한 마지막 해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 유선배는 그럼 그것으로 마침내 공간의 벽을 허물 수가 있었을까. 그리고 죽어 화석이 되어버린 시간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시간을 찍을 수가 있었을까…… 그 시간의 문을 열고 들어가 미래의 모습을 찍을 수가 있었을까…… 이것들이 그가 찍은 그 미래의 모습들일까…….
유선배로서는 그렇게 믿어졌을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에게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을는지도 모른다. 사진들이 주는 끔찍스런 감동이 그런 유선배의 성과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도 시간의 흐름을 볼수가 없었다. 그 시간이 문 열어 보여주는 미래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보이는 것은 그저 암울스런 절망감과 부끄러운 인간의 자기배신감뿐이었다. 미래라는 것이 아무리 무섭고 절망스럽더라도 당신은 그럴수록 그것을 자세하게 찍어내어 그 사실성의 확인 위에서 미래의 구원을 찾아야 했어요. 그것은 언젠가 내가 유선배에게 지껄인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와서 미래의 참모습이 정말로 그런 것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유선배가 비록 그것을 인간의 미래로 보여주려 했다 해도 나는 이제 막상 승복하기가 어려웠다. 거기엔 구원의 빛이 안 보였다.
―― 그런데 유선배는 과연 그런 것들을 미래의 얼굴로 선택할 수가 있었을까. 그리고 그런 절망의 시간을 자신의 미래로 흐르게 할 수가 있었을까.
나는 궁금증을 씻어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저 부인만 할 수는 없었다. 선택과 해답은 역시 유선배에게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보다 당사자인 유선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최종적인 해답은 역시 유선배 자신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쨌거나 다만 그것을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그를 위해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일 수도 있었다.
1975년 6월 20일 사이공 동남방 보르네오해상 북위…… 1975년 6월 21일…….
나는 천천히 다시 남은 사진들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날짜별로 배열된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훑어나가면서, 유선배와 유선배의 사진에 대한 믿음과 감동을 구하고 있었다. 그것으로 마치 유선배의 죽음 앞에 추궁과 힐난으로 그의 사진에 깊이 관심해 온 동료로서의 마음의 빚을 갚으려하듯이.
한데 그런 식으로 내가 전시장을 모두 한바퀴 돌고 나서 다시 한 번 느낌을 정리해 보고자 마지막 사진 앞을 서성거리고 있을 때였다.
「어떻습니까, 볼만한 사진이 좀 있었습니까.」
어느 새 기미를 알아차리고 다가와 있었던지 등뒤에서 갑자기 여자가 물어온다.
나는 비로소 사진에서 눈을 떼어내며 그녀 쪽으로 몸을 돌이켜 세운다. 하지만 나는 금새 뭐라고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글쎄요, 정신이 얼떨떨한 게 왠지 머리를 되게 얻어맞은 것 같군요……」
나는 우선 어름어름 웃음으로 대답을 피해 선다. 여자도 굳이 대답을 원해 물어온 서리가 아닌 줄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저 그런 식으로 여자를 피해 달아날 수는 없다.
「그런데 그보다도 도대체 이 사진들은 어떻게 된 겁니까.」
이번에는 내가 여자 쪽에 거꾸로 물음을 잇는다. 사진에 대한 감상담에 앞서 아까부터 줄곧 머릿속에서 혼자 궁금해 오던 일이었다. 사진들을 어디서 어떤 경로로 입수하게 되었느냐는 물음이었다. 생각 같아선 유선배의 생사부터 한번 확인을 해보고 싶기도 하였다. 그것은 나의 희망 때문이기도 하였고, 그가 아직 살아있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좀더 앞뒤를 재보면 그건 공연한 물음일 뿐이었다. 유선배가 아직 살아있긴 어려웠다. 공연한 소리로 여자의 상처를 건드리게 되어서는 안되었다. 그보다도 사진의 입수 경위가 밝혀지고 나면 그쪽 궁금증도 함께 풀려나게 될 것이었다. 그래 그냥 사진의 내력을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데 여자는 역시 눈치가 빠르다. 아니, 미리부터 예정이 그렇게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어디 가서 저녁이나 하실까요. 허선생님도 아직 저녁 전이시죠?」
여자가 대답 대신 저녁 제안을 해 온다. 이야기가 간단치 않다는 표시다. 자리부터 우선 옮기고 싶은 것이다.
그게 어쩌면 당연할는지도 모른다. 안내장에 부기한 말투에서나 전시장을 들어설 때의 인사에서나 그녀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사연이 그리 간단할 리 없었다.
그것은 내 쪽도 마찬가지 사정이다. 그녀가 일을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것이나, 내가 일부러 날짜를 늦춰가며 전시장을 찾은 것이고 따지고 보면 양쪽 다 그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증거였다. 저녁이라면 내 쪽도 어차피 예정을 하고 온 일이었다.
「그러지요. 바로 이 아래 지하실에 경양식집이 있지요?」
나는 간단히 동의를 보낸다. 하고 보니 여자는 이미 손가방까지 미리 챙겨들고 와 있다.
「그럼 가세요. 미스터 오도 이따 시간이 나면 내려오도록 하구요.」
오군에게 한마딜 이르고 나서는 그 길로 앞장서 전시실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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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저녁은 핑계에 불과했다.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은데, 여자가 굳이 조용한 식탁을 찾는 데서부터 그렇다. 식탁을 정해 앉고 나서도 막상 저녁을 시키려니까 그녀는 전혀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저녁은 그만 두고 술이나 몇 잔 하는게 어떻겠느냐니까 그녀도 그게 좋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곧 안주 한 접시에 잔술을 시켰다. 그리고 그 잔술이 오기까지 이런저런 헛소리들로 잔뜩 뜸들을 들이고 앉았다가, 술이 오고 나서 그 첫잔을 조금씩 비우고 나서야 내 쪽에서 먼저 본론을 꺼냈다.
「그래, 그 사진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전시장에서와 같은 물음의 반복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여자도 그 동안 다른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제 쪽에서 먼저 여쭙고 싶은 게 있어요.」
여자가 대뜸 나의 물음을 묵살하고 나섰다. 그리고는 먼저 그녀 쪽에서 물어오기 시작한다.
「허선생님은 아까 그 유종열씨의 사진들을 어떻게 보셨어요. 선생님의 소감부터 좀 들어보고 싶어요.」
그 역시 아깟번에 여자가 전시실에서 물어온 말이다. 어물어물 말을 얼버무려 넘긴 걸 본심의 대답으론 안 들은 모양이다.
그녀로선 물론 당연한 노릇일 터. 하지만 나는 갑자기 다시 같은 질문을 받고 보니 이번에도 얼핏 적당한 대꾸가 떠오르질 않는다. 여자는 물론 누구보다 유선배의 사진에 가까이 있던 사람이다. 가까이 있었던 만큼 이해나 애정도 깊은 사람이다. 섣불리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자신 없이 하는 대답도 용납받기가 어렵다. 그녀가 내게 묻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아직은 그리 확연치가 않다.
「사진을 어떻게 보다니요. 제가 무얼 볼 줄을 알아야지요. 아까도 말씀을 드렸지만, 그저 정신이 얼떨떨할 뿐입니다. 놀랐다고 할지 당황했다고 할지…… 어쨌든 무척 감동스러웠어요.」
여유를 좀 얻으려 주워대 보았지만, 그것은 헛수고일 뿐이다.
「놀라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셨다면 무엇이 어째서 그러셨는지 그럴 이유가 있으셨을 거 아니예요.」
술잔을 손에 든 채 나를 똑바로 건너다보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신문관의 추궁처럼 매섭고 준열하다.
「전 허선생님이 종열씨의 사진에 대해선 흔치 않은 관심을 가져오신 분으로 알아요. 그런 분이시라면 그이의 사진에 대한 고민을 모르고 계셨을 리가 없으실 거예요. 종열씨의 그런 고민은 어쩌면 허선생님과도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구요. 제가 알기론 종열씨는 끝끝내 자기 사진에 자신을 못 가진 사람이었어요.」
여자의 어조는 숫제 이제 추궁을 넘어선 단정에 가깝다.
나는 더 이상 회피할 수가 없어진다.
「유선배는 늘 어떤 미래의 시간이라는 걸 찍으려 하였지요……」
나는 마치 막바지에 몰린 피의자처럼 고분고분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렇담 이번 사진들에서 허선생님은 그 미래의 시간이라는 걸 보실 수 있으셨나요? 그 시간이 흐름을 느끼실 수가 있으셨느냔 말입니다.」
여자는 계속 추궁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종열씨, 종열씨 하고 무관스러운 듯 이름을 불러대고 있었지만 나는 여자가 사진을 찍은 사람의 미망인임을 염두에 두면서 되도록 듣기 좋게 응대해 나간다.
「전 유선배가 늘 구름이나 바람, 나무나 바위 같은 데서 그 시간을 찍으려는 걸 못마땅해 했었지요.」
「하지만 종열씨가 항상 그런 것들만 찍은 거 아니었지요,」
「물론입니다. 언제부턴가 유선배의 사진엔 사람의 얼굴이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이번 사진들도 물론 한결같이 모두 사람의 모습으로만 채워지고 있구요.」
「화면이 사람들로 채워진다는 것이 그 미래의 시간이라는 것과 어떤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가 결국 그 미래를 향한 시간의 문을 허망한 추상과 꿈으로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의 삶 가운데서 찾아내려 했었다는 말이 되겠지요. 그가 오랫동안 꿈꾸어온 그 미래의 시간이라는 것은 어차피 나무나 바다나 바위의 그것들은 아니었을테니까요. 게다가……」
말을 하다 보니 나는 공연히 부질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온다. 여자도 어차피 그쯤은 모두 이해를 하고 있을 일이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다시 내게 묻고 있는 여자의 속셈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여자는 여자대로 그럴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유종열씨가 꿈꾸어온 그 미래의 시간이라는 것은 희망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그 사진들…… 그 비참하고 절망스런 사람들의 얼굴이 종열씨가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었다면 그가 그것들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보여주려고 한 그 미래의 모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여자는 아랑곳없이 계속해서 물어온다. 바로 정곡을 찔러오는 소리다.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앉아있을 수가 없다.
「글쎄요. 저도 물론 그런 사진을 희망의 모습으로 읽을 수는 없었지요. 뭐라고 할까요. 그건 어쩌면 우리 인간들이 앞으로 살아내야 할 시간의 무게나 책임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전 그런 식으로 읽어보려 했어요. 사진에 찍힌 것이 절망과 비극이라면, 그 사진을 찍는 사람쪽엔 자기배반이 차지하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뿐더러 그 절망과 비극의 모습은 그 자체의 시간대로서가 아니라, 그것을 찍은 사람들쪽의 미래의 시간대에 속해야 하거든요……」
여자는 그제서야 나의 대답에 수긍이 가는 모양이다. 그녀가 이제는 입을 다물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오고 있었다.
표정까지 상당히 누구러든 얼굴이다.
「여기 좀 봐요!」
그녀가 이윽고 손에 든 술잔을 바다까지 비워냈다. 그리고 내겐 의논도 없이 이번에는 병째로 술을 시켜버린다.
「이거 아예 병으로 가져와요. 얼음도 함께요.」
이야기에 술기가 젖어든 모양이다.
나도 그녀를 말리지 않는다. 그냥 그녀를 내버려 놔둔 채 그녀가 내게 다시 추궁해 올 말을 기다린다. 짐짓 말고삐를 늦추고 있는 그녀의 여유가 오히려 그것을 기다리게 만든다.
이내 술병이 오고, 이번에는 그녀가 두 사람의 술잔에 손수 얼음과 술을 채운다. 그리고는 먼저 자기의 잔을 들어올리면서 내게도 함께 들기를 권해 온다.
「허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종열씨는 어쨌거나 결국 그 미래를 찍는 데엔 성공한 것 같군요. 자, 그러니 유종열씨의 소원 성취를 위해서.」
과장기가 섞인 여자의 말투에 나는 비로소 조금 마음이 놓인다. 그래 모처럼 허물없는 웃음으로 그녀의 술잔에 나의 것을 부딪힌다.
하지만 그것도 아직은 속단이었다.
「그런데요…… 허선생님은 아직도 한 가지 빠뜨리고 계신 게 있으실 거예요.」
잔을 조금 비우고 난 여자가 불시에 다시 추궁해 오기 시작한다.
「그 시간이 흐름이라는 거 말씀이에요. 유종열씨는 언제나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그 대상의 시간이 흐름을 정지해버린다고 낭패스러워했지요.」
결국은 나올 소리가 모두 나오고 만 셈이다.
「그렇지요. 그걸 방해하는 것은 사진을 찍는 사람과 대상사이의 거리, 그 공간의 벽이라고 했구요. 그 공간의 두꺼운 벽 때문에 대상의 시간은 렌즈가 열리고 닫히는 순간에 늘 순간으로 정지해 버린다. 그게 어쩔 수 없는 사진의 숙명이다…… 그래 유선배는 늘 그 공간이 벽을 뛰어넘어가 대상의 시간과 함께 미래를 향해 오를 방도에 고심하고 있었지요……」
나는 까닭없이 다시 그녀의 추궁을 감수해 나간다.
「그래요. 맞았어요.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 여자는 계속해서 질문의 꼬리를 이어온다.
「그렇다면 허선생님은 어떻게 보셨어요. 종열씨 자신은 과연 그 공간의 벽을 뛰어넘을 수가 있었을까요? 그래서 자신도 그 대상과 함께 미래의 시간을 흐를 수가 있었을까요? 허선생님은 아까 유종열씨의 카메라가 그 시간의 문을 찾은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말씀예요. 허선생님은 정말로 그이의 사진에서 그이가 그 미래의 시간을 함께 흐르고 있는 것을 아실 수 있었나요?」
추궁이 다시 시작됐을 때부터 이미 짐작을 하고 있었던 물음이다. 한 여자의 그 지아비에 대한 이해나 사랑이 그토록 깊고 뜨겁게 느껴질 수가 없다. 그리고 나에 대한 설득조의 추궁도 그처럼 집요하고 철저할 수가 없다. 지아비를 증거하고 싶은 그녀의 그 뜨거운 소망을 나는 절대로 허물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답이 궁색하다. 나는 실제로 그런 시간의 흐름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그 사진들의 시간 역시도 유선배 앞에선 흐름을 멈추어버린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유선배는 다시 절망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진짜 유선배의 경우를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믿을 수가 없다. 사진들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의 사진들에서조차 그것을 함께 느낄 수가 없었다. 내겐 역시 사진들의 시간이 정지해 있었다. 그 시간의 흐름 대신에 찍는 자와 찍히는 자의 자리가 차갑고 견고한 공간의 벽으로 절망스럽게 가로막히고 있었다. 거기엔 아무런 구원의 빛도 없었다. 내가 거기서 어떤 흐름을 느꼈다면 그것은 다만 그것을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과 노력의 결과에서였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자의 열망 앞에 곧이곧대로 본심을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유선배의 시간을 볼 수 있고 없고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유선배가 그것을 찾아서 함께 흐를 수만 있었다면, 그리고 유선배 자신이 그것을 그렇게 믿을 수 있었다면, 그걸로 그만인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가 스스로 그걸 믿고 싶어했다면, 우리도 역시 그를 위해 그것을 믿어주어야 하는 게 우리의 도리일 테니까요.」 나는 완곡하게 대답을 우회한다. 하지만 그걸로 여자의 추궁을 피해낼 수는 없다. 여자는 쉽사리 나의 본심을 읽어내 버린다.
「아니지요. 이건 도리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도리상의 문제로 말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를 믿어 주기 위해서는 그 믿음을 뒷받침해 줄 최소한의 근거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만약 종열씨에게 그 미래의 시간이 열리고 있었다면, 아까 허선생님도 말씀을 하셨듯이, 그 미래의 시간이라는 것은 다만 유종열씨 한사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내야 할 만인 공유의 것이 되어야 하니까 말씀이에요. 그러자면 우리가 그 시간의 흐름을 보느냐 못보느냐는 종열씨가 그것을 보고 못보고 보다도 오히려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는 거지요.」
여자는 절대로 나의 뒷걸음질을 용납하지 않을 기세다.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쯤 했으면 여자가 나의 마지막 대답을 모를 리는 없다. 한데도 여자는 굳이 내게서 마지막 대답을 듣고 싶어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어물거려 넘길 수가 없다. 사실은 여자의 말이 옳기도 한 것이다.
「제게는 아직 그토록 밝고 깊은 눈이 없는가 봅니다. 아직은 잘 보이지가 않더군요……」
나는 마치 양해라도 구하듯 면구스런 어조로 실토를 하고 만다.
한데 아닌게아니라 여자는 부러 나를 그렇게 만들고 싶을 뿐이었던 것 같았다. 대답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무슨 이유에선가 그것을 내게서 확인해 봐야 할 어떤 필요가 있었던 것 같았다. 아니, 그녀는 이미 그 모든 질문들에 대한 자신의 해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해답을 보여주기 위해 그런 절차가 필요했던 것 같았다.
여자의 얼굴에 왠지 다시 까닭 모를 웃음기가 번지고 있었다. 짓궂어 보이면서도 어딘가 만족스럽고 자신이 만만해 보이는 그런 미소다.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어쩌면 그편이 정직한 말씀인지도 모를 일이지요.」
기다리고 있던 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여자는 웃으면서 빈 술잔들에 다시 술과 얼음을 채워넣는다. 그리고 비로소 생각이 미친 듯 화제를 훌쩍 건너뛰어 버린다.
「그런데 참, 아까 허선생님께선 그 사진들이 모두 어떻게 된 거냐고 뒷 사연을 궁금해 하셨지요?」
여기 그 해답이 있노라는 듯 옆에 놓아둔 손가방을 집어다간 새삼스레 웬 사진 한 장을 꺼내주며 말을 잇는다.
「여기 허선생님께 보여드릴 다른 사진이 한 장 있었어요. 자, 보세요. 이 사진을 보시면 사연을 대략 짐작하실 수 있을 거예요. 종열씨의 사진들…… 아마 그 사진들의 성패를 엿보는 데도 도움이 조금은 되실 수 있을 테구요……」
실상은 그게 바로 내가 궁금해하던 점이었다. 처음부터 그걸 물어놓고도 여자의 기세에 밀려 뒷전으로 밀어둔 사진의 경위였다. 여자는 그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아니 부러 이야기의 순서를 그렇게 정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쨌거나 나는 마음이 다시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이내 사진을 밝은 등불 아래로 가져간다. 그리고 한 동안 그 명얌이 희미한 화면을 읽는 데데 애를 먹는다.
하지만 마침내 그 화면의 윤곽이 희미한 불빛 속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놀라고 당황한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노릇인가.
사진 속엔 분명히 유선배로 보이는 사람의 모습이 하나 담겨져 있었다. 그것도 물론 옛날에 미리 찍어 둔 것이 아니었다. 해상 유랑선을 찾아 헤매던 마지막 취재길에서 찍혀진 모습이었다. 모습이 그리 분명한 것은 아니었다. 사진의 화면은 사방이 바다였다. 해무로 어슴푸레해진 바다 저편엔 난민선으로 보이는 배가 한 척 떠있고, 화면의 중간쯤엔 한 사내가 그 난민선을 향해 방금 작은 보트를 저어가고 있었다.
카메라의 초점은 바로 그 난민선을 향해 해무 속으로 노를 저어가고 있는 사내에게 맞춰지고 있었는데, 마치 그 바다의 안개 속으로 배를 숨겨 올라가고 있는 듯한 사내의 모습은 유선배의 그것으로밖엔 읽어질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내게 느껴져 온 예감이 그러했고, 여자가 부러 그것을 지니고 와서 내게 보여준 연유가 그러했다.
나는 도시 사연을 알 수가 없다. 여자는 그게 사정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고 했지만, 그 사진은 내게 또 하나의 수수께끼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이건 혹시 유선배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것도 그 난민선을 찾아다니는 바다 위에서의……」
나는 차라리 한번 더 여자의 도움을 구하는 게 빠를 것 같았다. 그래 눈길을 여자 쪽으로 옮기면서 자신 없는 목소리로 확인을 구한다.
「맞아요. 그건 유종열씨예요……」
여자도 이젠 대답을 굳이 아끼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유선배님은 아직……?」
「아니 아직 살아있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렇다고 그냥 죽었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구요.」
「……?」
「그는 그냥 그렇게 사라져간 거예요. 이게 그의 마지막 모습이니까요.」
나는 이제 차라리 입을 다물어버린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을 물어나가야 할지 물음의 순서가 떠오르질 않는다.
여자는 그러나 이미 나의 혼란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나의 혼란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듯 한동안 말이 없이 술잔만 조용히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하다가 이윽고 그녀가 마지막 수수께끼의 열쇠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편지를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제가 설명을 드리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빠르실 거예요.」
여자가 다시 손가방 속에서 웬 편지 봉투 하나를 꺼내 건네준다. 속 부피가 제법 두툼한 봉투다.
「여기 이런 저런 내력들이 모두 설명되어 있어요. 몇 달 전에 뜻밖의 작업실로 온 건데요, 종열씨가 마지막으로 얻어 탔던 배의 일본인 선장이 아까 보신 그 사진의 필름들과 함께 보내온 것이에요.」
봉투를 불빛에 비춰보니, 그것은 과연 다나까라는 일본인의 이름과 일본인 주소가 적힌 외국 우편물이다.
나는 망설이고 있을 수가 없다. 미리 여자의 양해가 있었던 터이므로 곧장 알맹이를 등불 쪽으로 가져간다. 사연은 원래 다나까 선장이 일본말로 쓴 것 뒤에 한글로 번역한 것을 다시 덧붙이고 있었다.
「제가 일본말을 몰라서요……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번역을 시켰어요. 허선생님도 불편하시면 번역을 읽으세요.」
여자가 곁에서 덧붙여오는 소리가 아니더라도 나 역시 그쪽을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나는 곧 사연을 읽기 시작한다.
柳宗悅 先生의 부인 되신 분께.
안녕하십니까?
뜻밖의 글월 받으시고 먼저 어리둥절해 하시리라 믿습니다.
우선 이 글월을 쓰게 된 내력을 겸하여 저 자신에 관한 소개의 말씀부터 올려야 하겠습니다.
저는 오 년 전, 부인의 부군되시는 유종열 선생께서 그 불행한 사고(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점 저로서는 무엇보다 유감입니다마는)를 만나시기까지의 마지막 항해를 함께하면서, 그 배(南洋)의 선장으로 일했던 사람입니다…….
편지의 서두는 그런 식으로 먼저 글을 쓰게 된 동기와 글을 쓴 사람의 신분을 밝히고, 거기에 곁들여 사고를 초래케 한 배의 선장으로서의 유족에 대한 사과와 위로의 말을 덧붙이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어 유종열씨를 만나 뱃길을 함께 하게 된 사연과 사고의 경위를 적어나가기 시작한다.
부인께서도 이미 알고 계실 일이겠습니다만, 저희 배는 당시 리베리아국 선적의 화물선이었습니다. 그러나 외항선들이 흔히 그러하듯 배의 선적이 리베리아로 되어 있는 것은 세제상의 편의를 위한 형식이 그러할 뿐 사실상의 선적국은 일본이었습니다. 배의 소유주나 선장인 저를 포함한 선원들도 모두가 일본인들이었구요. 그런데 바로 그 점에 유선생과 저희 배 사이의 불행한 인연의 시초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고가 있은 지 오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이렇게 사실을 밝히게 되는 허물도 그 때문이었겠구요. 그 배가 형식적인 선진국에 관계없이 사실상의 일본 배였다는 바로 그 점이 말씀입니다.
75년 6월 중순 무렵 저희 배는 당시 타일란드의 방콕으로부터 일본 고오베까지의 항로 중 싱가포르항을 경유하여 타이페이로 가서 거기서 다시 화물을 바꿔 싣고 본국 귀환항로에 오를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배가 바로 그 싱가포르항을 입항했을 때였습니다. 우리는 전혀 예정이 없던 한 한국인의 승선 요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사람이 바로 유선생이었는데, 유선생은 그때 미리 한국 대사관 발행의 승선협조요청서를 마련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처음 유선생의 승선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배의 선적국이 선장인 저의 국적국인 일본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승선허가 절차가 까다롭다는 구실을 내세워서였지요. 유선생이 지닌 승선협조 요청서에는 선명과 항로가 지정되어 있질 않았을 뿐 아니라, 설령 그게 저희 배로 지정이 되어 있다 하더라도 저희들로선 그 요청서에 응해야 할 의무는 없었으니가요.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제가 그때 유선생의 승선을 거부한 진짜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유선생의 신분과 승선 목적이 문제였습니다.
유선생은 그때 우리 배의 승선 목적이 동남아 지역 해상을 떠도는 난민선의 사진을 찍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상 그 무렵에 우리는 그 지역 일대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유선생이 만나고 싶어하신 그런 배들을 자주 만나고 있었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 배들을 그냥 지나칠 뿐 섣불리 구조의 손을 내밀 수는 없었습니다. 난민을 받아주는 나라가 없었으니까요. 난민을 실은 배는 입항이 금지된 항구도 많았습니다.
인도적인 처사가 아닌 줄은 알지만, 우리는 그래 난민선을 구하는 걸 금기로 여기며 항해를 해 왔지요. 제 삼국선들의 그런 비정적인 처사가 때로는 인간의 양심과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줄도 알았지만, 우리는 차라리 그런 비난을 감수하는 쪽을 택하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유선생을 배에 싣는 일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가끔 한국 배들이 예외적으로 난민선을 구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실적을 근거로 하여 한국인과 한국신문들이 누구보다도 제 삼국선들의 비인도적 처사를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유선생의 승선을 허락하는 것은 바로 그런 비난과 괴로운 말썽을 자초하는 것에 다름아니었습니다.
저는 유선생의 승선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선생은 단념하지 않았습니다. 선적국과 선장의 국적이 다름을 내세워 이해를 구해보기도 하였지만, 유선생에겐 애초 그런 구실이 통하질 않았습니다. 사실상의 선적국이 일본인 데다 선장까지 일본이이면 그걸로 그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앞서 제가 불행한 인연의 시초라는 말씀을 드린 일이 있습니다만 그건 바로 유선생께서 어쩌면 애초부터 그런 식으로 일본인 선장인 저의 배를 점찍고 나선 것 같아 보이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같은 동양인끼리 이해가 가능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유선생이셨으니, 우리 배의 항로가 다시 타이페이를 경유하게 되어 있는 사실 따위는 애초에 거절의 구실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유선생은 이미 이곳 저곳의 바다를 찾아 본 다음이었습니다. 항로가 길고 복잡할수록 자기는 오히려 그편이 새로워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유선생은 이미 제가 승선을 거부한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읍니다. 거기에 덧붙여 유선생은 말씀하시기를, 자신은 다만 사진을 찍고 싶은 것뿐이라 하였습니다. 그것도 그냥 보도용이 아닌 작품사진이 목적이라 하였습니다. 작품사진을 찍을 일 외에는 다른 목적이나 관심이 없다고 맹세를 하듯 다짐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유선생은 기어코 그 배위의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고, 그 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자신이 사진을 완성하고 싶다고 절벽처럼 버티고 나서시는 것이었습니다.
결과부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결국 유선생의 그 사진에 대한 열망에 항복을 하고 만 것입니다.(유선생의 고귀한 정신과 희생을 사진을 빌어 말씀드리고 있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뒤늦은 고백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왜냐하면 저도 오랜 뱃사람의 생활에서 사진 취미가 상당한 정도로 깊어 있던 참이었으니까요. 유선생의 사진에 대한 사랑과 이해를 따를 수는 없었지만, 작품 사진이나 사진을 찍는 사람에 대해선 저도 나름대로의 이해를 보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실은 그래서 제가 끝내 유선생의 승선을 승낙한 것 역시 그런 스스로의 이유에서였을 것입니다. 사진에 대한 저 자신의 오랜 소망과 꿈 대문에 말씀입니다.
어쨌거나 전 그렇게 되어 몇 가지 조건을 다짐받은 끝에 유선생의 승선을 허락하였습니다. 이미 짐작을 하고 계시겠습니다만, 제가 유선생께 미리 다짐을 드린 승선 조건이란 물론 별다른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난민선을 만나더라도 그 난민선에의 지나친 접근이나 구조 요구를 해오지 않을 것, 사진은 반드시 선상에서만(이 경우 물론 망원렌즈를 사용해야겠지만) 찍을 것, 촬영한 사진은 절대로 보도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프리랜서 신분을 설명 듣고 나서 그 점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항해가 끝나고 하선한 이후에도 사진들과 관련하여 우리 배의 승선 사실을 밝히지 않을 것 등등이 제가 승선 전에 유선생께 미리 다짐을 드린 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엔 부질없는 일 같았습니다. 유선생은 애초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이해와 자제력이 깊은 분 같았으니까요. 우리는 함께 싱가포르를 떠났는데, 항해가 시작되고 처음 한동안은 아무런 말썽이 없었습니다. 말레이지아 해역을 지나올 때부터도 우리는 벌써 몇 차례나 난민선들을 가까이 지나치고 있었지만, 유선생은 그저 적당한 거리에서 사진을 찍어댈 뿐 별다른 요구를 해 오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래서 차츰 안심을 하게 되었지요. 아무쪼록 유선생이 좋은 작품을 얻게 되기만을 바라고 있었어요.
그런데 항해가 차츰 길어지면서부터는 사정이 조금씩 달라져 갔습니다.
배가 보르네오 해역을 북상하여 남지나해 쪽의 대양으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난민선을 만나는 기회가 훨씬 뜸해졌습니다. 난민선들의 사정도 그만큼 절망적인 만큼 구조 요청도 결사적이었습니다.
유선생의 눈길이 차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난민선을 쫓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 눈에 심상치 않은 독기 같은 것이 어려들곤 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유선생은 마침내 제게 한 난민선에의 접근을 요구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배와 사람들의 형편을 살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비정스러운 절망과 절규의 소리를 사진기가 아닌 자신의 눈과 귀로 직접 보고 들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 요구를 들어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가슴 아픈 인간성의 배반을 맛보는 건 유선생만이 아니었습니다. 저와 저의 배의 선원들 모두의 심정도 유선생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사정을 살피고, 남은 식량과 식수를 묻고, 그리고 가능하면 그 중의 몇 사람이라도 구조해 오고 싶은 것―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런 소망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이미 말씀을 드렸듯이(굳이 이유를 다시 설명드려야 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건 우리들의 금기였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항해를 해 왔고, 그렇게 버릇 들여 온 뱃사람들이였습니다. 유선생의 요구는 묵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유선생의 온갖 불만과 비난의 말을 감수하면서도 항해는 그런대로 큰 말썽이 없이 계속되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배가 대양 한가운데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난민선도 전혀 만나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행스러운 사고는 바로 그 남지나해의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예상치도 않게 우리는 다시 난민선 한 척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토록 먼 바다까지 나올 수 있었던 배이고 보니, 규모도 크고 사람도 많았습니다. 미구에 닥쳐올 참극의 규모도 그만큼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배였습니다.
유선생은 제게 다시 요구를 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사진 같은 건 찍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배의 운명이 너무도 분명하므로 이번만은 그냥 지나쳐 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배를 난민선까지 접근시켜 가서 가능한 구조를 베풀고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사전 다짐 같은 건 염두에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물론 단호하게 거절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선생은 제게 마지막 요구를 해왔습니다. 배를 가까이 접근시킬 수 없다면, 자신이 난민선을 다녀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제게 보트를 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물론 이번에도 허락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유선생의 신변이 염려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신변의 위험이 아니더라도 유선생의 행동을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감이 좋을 리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저는 극력 유선생님을 말렸지요. 그러나 유선생의 결심은 이미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더 긴 설명 드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결국 보트를 내렸고, 유선생은 혼자 보트를 저어 난민선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아는 한의 유선생의 마지막이었습니다.
불행히도 저의 예감이 적중한 것입니다. 배를 떠나보낸지 한시간이 지나도 유선생의 보트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새삼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보트를 띄워 사람을 보내볼까 생각도 했습니다만 그것도 부질없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기어코 혼자 배를 저어 가신 유선생이었습니다. 그때도 혹시나 의심이 들기는 했었지만, 이제 그 유선생님의 의도는 분명해진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난민선의 구조를 결심하지 않는 한 유선생을 다시 돌아오시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말의 설득은 무용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쪽에서 난민선을 구조하러 갈 수는 물론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저는 그러나 기다렸습니다. 제가 유선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기다리는 일 뿐이었으니까요. 꼬박 스물 네 시간 동안 본 항로를 벗어난 저속항해로 난민선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유선생의 귀환을 기다렸습니다. 그것은 물론 유선생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호의 때문이기도 하였고, 제 삼국인을 승선시킨 선장으로서의 의무와 책임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기다림은 무한정 계속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꼬박 하루 밤낮을 지내고 나자 저는 다시 본 항로 귀환을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여기서 굳이 유선생의 실종에 대한 저의 허물과 최선을 다하지 못한 무성의를 변명하려 하지는 않겠습니다. 뱃머리를 돌리면서 그때 제가 혼자서 자위를 할 수밖에 없었던 구실은, 난민선에 아직 얼마간의 항해 능력이 남아 있으리라는 사실과, 유선생은 자신의 인생과 삶의 매듭을 자신의 결의로 맺어 간 분이므로 그것을 끊어 풀어내는 일 역시 그 자신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는 그 지극히도 범죄적인 방관자의 이기심에 눈을 감고 기댈 수밖에 없었던 형편이니까요…….
하지만 어쨌거나 유선생은 그렇게 하여, 불의의 사고를 만나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결단에 의하여 난민선에로의 양심과 행동의 결사적인 항해를 떠나가신 것입니다.
1975년 6월 23일. 15시 3분.
북위 17도 42분 동경 113도 50분 홍콩 서남방 ×50킬로부근의 해상에서였습니다…….
편지를 읽는 동안 여자는 나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일체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혼자 술잔의 술을 비우고, 그것을 다시 채워 붓곤 하면서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나도 거기서 잠시 눈길을 돌리고 잔을 한차례 비워냈다. 여자가 말없이 그 잔에 다시 술을 채워놓는다. 그리고는 마저 나머지를 읽으라는 듯 은근한 재촉의 눈길을 보내온다. 나는 다시 읽기를 계속한다.
―― 그럼 이제부터는 저의 글월이 이토록 늦어지게 된 경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릴 것도 없이 부인께서는 여태 유선생의 실종을 보다 절망적인 종말로 알고 계실 터이고, 저는 바로 그런 의곡을 유발한 최초의 장본인이었던 관계로, 불상사에 대한 진실을 일찍 알려드리는 것은 저의 불가피한 의무이자 책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오 년 동안이 짧지 않은 세월을 침묵 속에서 혼자 흘려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럴 이유가 한두 가지 있었습니다.
아니, 그 이유를 말씀드리기 전에, 여기 함께 보내드린 필름의 내력부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인화를 해보면 곧 아시겠지만, 이 필름들은 물론 유선생의 것입니다. 저의 배에서 찍은 것도 있지만, 저의 배를 오르기 전에 다른 배를 타고 찍은 것들도 함께 섞였습니다. 미처 현상이 되지 않은 것들은 입항 즉시 제가 현상을 하여 보관해 온 것입니다.
앞서도 이미 말씀을 드렸듯이 유선생은 그렇게 필름들을 모두 저의 배에다 두고 가신 것입니다. 필름뿐 아니라 카메라가지도 버리고 가셨으니까요(카메라는 다음 기회에 보내드리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유선생은 그 마지막 배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그런 식으로 저희 배를 떠나갈 채비를 하고 계셨던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이렇게 부인께 유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알려드리고, 필름들을 고스란히 전해드릴 수 있게 된 것도 어떻게 보면 유선생께서 미리 그런 단속을 해놓은 덕분이랄 수가 있는 일이니까요. 우연일 수도 있는 일이긴 하지만, 유선생이 두고 가신 필름들에는 그렇게 모두 촬영 시기와 장소별 분류가 차곡차곡 모두 행해져 있었습니다. 거기에 그 필름들이 전해져야 할 서울 작업실과 부인의 주소까지 덧붙여져 있었습니다.
미리 마음을 작정하고 계셨던 흔적으로 읽어질 수가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바로 유선생의 그런 점이 제게 엉뚱한 용기를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그 유선생의 일에 감히 엉뚱한 의곡을 감행하게 되는 지극히 이기적인 구실을 말씀입니다. 저는 사실 유선생의 일로 무척 난처한 입장에 빠져 있었습니다. 유선생의 일은 물론 관계국 당국에 즉시 통보를 내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인께서도 짐작하시다시피 저는 사실을 사실대로 보고하기가 여간 난처하지 않은 입장이었습니다. 유선생의 경우는 저의 배에 대한 승선 절차에도 문제가 있었고, 하선 경위에는 더욱 미묘한 말썽의 소지가 있었으니까요. 선장으로서의 저의 의무나 책임도 문제였지만, 관계 당사국간에도 예상 밖의 말썽을 빚게 할 염려가 있었습니다.
이럴까 저럴까 고심을 하던 판에 유선생의 심중이 헤아려진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지 않으 수 없는 저의 입장을 이해하여 주십시오. 저는 그때 저의 난처한 입장을 모면하기 위하여 유선생과의 그 승선시의 약속을 상기해 낸 것입니다. 유선생이 그렇게 난민선으로 가신 것이, 남겨진 필름들에서 읽어질 수 있는 것처럼 일시적인 감정의 충동에서가 아니라 미리 계획된 행동이었음이 분명하다면, 유선생은 그것으로 저와의 약속도 의식적으로 무시해버린 셈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선생은 그만큼 자신의 주장이나 행동엔 양보가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유선생의 행동엔 그만한 책임도 따라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믿어야 했습니다. 유선생의 운명의 실을 맺은 것은 유선생 자신의 의지와 선택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매듭을 풀어내는 일 또한 유선생 자신의 책임이어야 했습니다…….
저는 두 번 실수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사건을 될수록 간결하게 마무리 짓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인, 이 점만은 오해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비록 그러저러한 구실로 유선생의 마지막을 죽음으로 왜곡하려 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제가 유선생의 죽음을 믿으려 했다거나 바라고 있었던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는 점을 말씀입니다. 앞에서도 누차 말씀을 드렸듯이, 저의 왜곡은 유선생의 생사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유선생께서 다시 살아 돌아오시거나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되었을 때의 저의 입장을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했던 것뿐이었습니다. 유선생이 만약 다시 살아 돌아오시거나 소식을 전해 오실 경우에 그것으로 저절로 모든 매듭이 풀려질 것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식으로 유선생께서 자신의 삶의 매듭을 풀어내는 일에 저를 난처하게 해야 할 일은 없으리라 믿고 싶었으니까요.
하여 저는 저의 선원들의 입을 그쪽으로 모두 단속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홍콩항을 경유하게 되었을 때 그곳의 관계국(물론 한국과 저희 일본의) 영사관을 찾아가 사고 경위를 보고하였습니다.
보고과정에서도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저희 일본영사관 쪽에서는 선장의 의무와 책임에 대한 다소간의 추궁이 있었습니다마는, 한국영사관에 대한 우리의 보고는 그저 일방적인 통보의 형식을 취했었으니까요. 아니, 한국이나 일본이나 영사관 사람들은 어쩌면 그 이상 자세한 사실을 알고 싶지가 않았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후 저의 일본국 고오베항을 귀항하고 나서도 다시 비슷한 보고를 냈는데, 홍콩에서나 본국에서나 사고의 내용을 접수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귀찮은 인상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어쨌거나 그런 식으로 사고의 뒷처리가 무사히 끝난 것이 우선 다행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숙제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필름의 처리가 아직도 문제였습니다. 필름에 대한 일은 애초 보고과정에서도 제외되어 있었지만(부인께서도 아시다시피 의혹과 말썽을 줄이기 위하여 저희는 다시 필름뿐만 아니라 카메라를 비롯한 유선생의 유류품들엔 일체를 부인하거나 함구하고 말았습니다) 부인께서도 유선생의 일은 제가 의곡해낸 실종 소식 이외에 다른 사실을 통보 받은 바가 없으실 터이므로, 그런 부인께 필름을 불쑥 보내드릴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필름을 보내드리는 건 필시 새로운 의혹과 말썽의 소지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유선생의 주위에서 어느 정도 그분의 일을 잊게 될 때까지. 그때 가서 자세한 사연도 알려드리고, 부인께서도 그것을 침착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시기를 바라면서.
혹은 아예 필름을 없애서 이런저런 말썽의 소지를 없애버릴 수도 있기는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막연하게나마 사진에 대한 유선생의 꿈을 헤아려 볼 수가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뿐더러 저 자신이 구조의 손길을 뻗칠 수는 없더라도, 그 난민선을 향한 유선생의 영혼과 육신의 기구를 끝내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진이나마 무사히 간직하여 그분의 이름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 그 분의 절망과 분노에 대한 저의 마지막 도리인 듯싶었습니다.
하여 저는 이날까지 기다려 왔습니다.
하지만 부인, 그렇다고 제가 이 오 년 동안에 오직 그것만을 위하여 시간을 기다려 온 것이 아니었음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그것은 오직 유선생의 실종이 죽음으로 확정되고, 부인을 비롯한 유선생의 주윗분들이 그것을 다만 지나간 한 토막 슬픔으로 받다들이게 될 수 있기만을 기다린 세월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유선생의 생환을 저 나름대로 기원하고 기다려 온 세월이기도 하였습니다.
대개의 세월을 바다 위에서 보내야 하는 저의 처지로선 육지의 시간을 옳게 가늠하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무작정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만큼은 필요한 세월이 흘렀다는 생각도 들어왔습니다. 하여 저는 마침내 유선생의 실종에 관한 사실을 알려드리고, 이 필름들을 되돌려드림으로써 얼마간이나마 우선 저의 무책임과 이기심이 빚은 허물을 덮어볼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편지의 사연은 이제 거기서 마무리 인사로 이어지고 있었다. 사실의 의곡과 그 의곡에 대한 해명의 글이 늦어진 것을 한번 더 사과하고, 그리고 그 부인에 대한 위로에 덧붙여 이번에 미처 적지 못한 일들은 재신(再信) 가운데서 다시 적겠다는 다짐으로 사연을 일단 마무리 짓고 나서야 뒤미처 생각이 떠올라온 듯이 다시 추신을 덧붙이고 있었다.
추신: 참 여기 유선생을 찍은 저의 사진도 한 장 보내드립니다. 유선생께서 저의 배를 떠나 난민선을 향해 보트를 저어 가실 때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전 그때 유선생께서 저의 배를 떠나시는 걸 보고 불현듯 그 모습을 찍어두고 싶었습니다. 그만큼 예감이 확실했던가 봅니다. 그래 전 부리나케 저의 카메라를 꺼내왔지만, 그때는 이미 유선생의 배가 상당한 거리로 멀어지고 있어서 결국은 이런 사진이 되고 말았습니다. 망원렌즈를 준비하지 못한데다 해무까지 일고 있는 바다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그런 대로 작은 위로거리가 되시길 바랍니다.
여자가 내게 보여준 사진의 설명이었다.
���
나는 비로소 편지를 놓고 여자를 보았다.
하지만 새삼스레 여자에게 할말은 없는 것 같았다.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수도 없었다. 편지의 사연이 모든 사실을 밝혀주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군데군데 다나까라는 그 일본인 선장이 자기 변명을 앞세우고 있는 곳이 많았다. 그래 다소간은 경위에 모호한 대목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쯤은 그리 문제가 아니었다. 유선배가 취한 행동의 동기를 굳이 그에게 물으려 하거나 설명들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에게선 그저 드러난 사실들만 확인하면 그만이었다. 그의 지루하도록 긴 편지는 그런 몫을 충분히 감당해낸 셈이었다. 유선배의 모습이 찍혀진 사진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았다.
아니, 그보다도 나는 이제 그 편지와 사진의 내력들로 하여 유선배가 그토록 갈망해 오던 미래의 시간을 분명하게 보게 된 것 같았다. 유선배는 몸소 그 두꺼운 공간의 벽을 뚫고 넘어가 시간의 문을 붙잡은 것이었다. 그 미래의 시간과 함께 그가 흐르고 있음을 눈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 그에게 만약 미래의 시간이 열리고 있었다면, 그 시간이라는 것은 다만 유종열씨 혼자만의 그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내야 할 만인 공유의 시간이어야지요. 그러자면 우리가 그 시간의 흐름의 보느냐 못 보느냐가 중요한 일이지요.
여자가 그 편지를 꺼내 보여주면서 내게 다짐조로 물어온 말이었다. 나는 이제 바로 그 미래의 시간을 보게 된 셈이었다. 그리고 유선배가 그것과 함께 흐르고 있음을 믿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나는 여자에게 대답을 할 수가 있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것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여자도 이미 그것을 짐작하고 있을 터이기 때문이었다.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다만, 그 유선배의 불확실한 생사에 대한 것뿐이었다. 유선배의 마지막이 죽음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내게 아직도 그에 대한 희망을 남기고 있었고, 나는 그것으로 여자를 얼마간 위로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그것도 섣불리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선장이 뭐라고 구실을 붙였든, 그가 이제 사실을 밝혀온 것은 유선배의 생환을 위한 그의 기다림이 끝났다는 뜻이 될 수도 있었다. 생환의 희망을 남길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여자가 그것을 못 읽었을 리 없었다. 섣불리 입에 담고 나설 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한동안 여자를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것은 여자쪽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소중한 성과를 다치지 않으려는 듯 여자도 굳이 쓸데없는 소리를 원해 오지 않았다. 하지만 감정의 억제가 쉽지 않은 것은 역시 지아비를 잃은 여자 쪽인 것 같았다.
여자가 이윽고 자기의 술잔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내게로 술잔을 집으라는 눈짓을 건네며 자신의 그것을 입으로 가져간다. 유선배의 성취를 그것으로 한번 더 다짐해 보이고 싶기라도 하듯이. 하더니 그녀는 뭔가 아직도 집혀오는 것이 있는 듯 치켜든 술잔만 곰곰이 만지작거리다 드디어는 먼저 입을 열기 시작한다.
「생각해 보면 참 엄청난 배반이었겠지요……」
뭔가 우스운 것을 연상하고 있기라도 하듯 술기 섞인 웃음을 헤프게 흘리며 독백처럼 혼자 지껄여 오고 있었다.
「사진을 찍겠다고 거기까지 간 사람이 끝내는 자기 사진기를 버리고 되려 자신의 모습을 찍히게 되었으니…… 유종열씨가 만약 그것을 알았으면 그 절망이 어쨌을까요.」
말을 해놓고 여자는 그 유선배의 마지막 모습이 찍힌 사진을 들여다보며 넋이 나간 사람처럼 힝힝거리고 있었다. 나도 이제는 그냥 계속해서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유선배는 그런 배반과 절망을 통하여 비로소 그 미래에로의 시간의 항해를 시작할 수가 있었겠지요.」
나는 비록 자신은 없었지만, 나의 그런 이해를 통하여 여자가 위로를 얻기를 바라면서 간절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간다.
「그 배반과 절망의 자각을 통하여 유선배는 비로소 그 시간의 문을 찾아내었고, 그 시간을 함께 미래로 흐를 수가 있었지 않았겠어요…… 그런 뜻에서 전 그 일본인 선장이 찍었다는 유선배의 사진조차도 유선배 자신의 사진이란 느낌이 듭니다. 사진의 화면은 유선배 자신이 몸소 연출을 하고 있으니까요. 자신의 몸으로 화면을 직접 연출해 찍은 사진, 그래서 자신이 그 미래의 모습이 되고 있는 사진…… 유선배도 아마 자신의 사진기만으로는 그토록 분명한 시간의 모습을 얻을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래서 유선배는 그런 절망을 사양하려 하지 않았을 겁니다.」
나는 그쯤 사설을 끝내고 다시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여자는 실상 그 유선배의 절망을 말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던 것 같았다. 여자는 이제 유선배를 빌어 자신의 절망을 말하고 있었다.
「맞아요. 유종열씨는 이제 그 자신이 미래의 모습이 되어간 셈이지요.」
여자는 이제 다시 침착을 되찾은 목소리로 간단히 내게 동의를 해온다. 자신도 그쯤은 이미 읽고 있었던 일이라는 투였다.
하지만 여자는 동의에 이어 다시 한동안 말을 이어나간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에요. 그이의 마지막 성취 앞에서 전 왠지 이렇게 외롭고 허전해질 수가 없군요. 알고 보면 이 오 년 동안 유종열씨의 소식을 기다려온 것은 그 일본인 선장만이 아니었어요. 저도 내내 이 오 년 동안을 기다려왔어요. 미스터 오의 도움이 크긴 했지만 여태 그이의 작업실을 지켜온 것도 그 때문이었구요. 그런데……그런데 막상 그이의 분명한 성취를 보게 되니 전 왠지 이번에야말로 정말 유종열씨가 영영 떠나간 느낌이예요. 그가 떠나가고 저만 혼자 뒤에 남아있는 느낌…… 이건 차라리 절망이군요. 그 동안엔 그리도 그것을 혼자서 감당해 보려고 무척이나 애를 써 왔지만 말씀예요……」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낮게 젖어들기 시작한다.
문득 눈을 들어 여자를 보니, 그녀의 눈가엔 어느새 작은 눈물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여자는 이제 그것을 감추려는 생각도 없이 정면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뭔가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눈치다.
하지만 나는 이제 여자를 위해 별로 할말이 없다. 여자의 절망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유종열 선배가 그 화면 속의 미래를 흐르고 있는 시간, 그것은 바로 그의 여자의 미래의 시간이 될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자도 그것을 함께 흐를 수가 있어야 하였다. 하지만 여자에겐 그것이 아마도 불가능한 것 같았다. 유선배의 성취가 너무도 완벽해 보이고 있었다. 그의 시간도 그만큼 깊고 무거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을 여자가 감당해 흐르기는 어려웠다.
나는 차츰 여자의 절망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아진다. 유선배의 지나치게 완벽한 성취가 여자를 거꾸로 절망시킨 것이었다. 여자에겐 차라리 그 간절한 기다림의 세월이 함께 흐르는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유선배의 성취는 여자에겐 차라리 흐름의 정지요 떠남이었을지 모른다. 여자는 결국 그렇게 혼자가 되어버린 절망감을 감당해 보고자 내게 마저 연락을 미뤄온 것이었다. 유선배를 위한 효과적인 설득의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절망을 혼자서 이겨내기 위하여.
――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에요…….
그녀가 이상해하고 있는 일의 해답도 그녀 자신이 가지고 있었다. 내게 따로 할말이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그저 입을 다물고만 있을 수도 없는 처지다. 그녀는 특별히 나를 기다려 유선배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준 터이고, 나는 그것으로 유선배의 성취를 확인한 사람이다. 여자의 심중을 계속 모른 척 해버릴 수가 없다.
「하지만 정선생은 아직도 계속 기다리시게 되겠지요.」
나는 마침내 침묵을 깨고 한 마디를 건넨다.
「이젠 훨씬 더 희망적인 근거도 얻은 터에 말입니다.」
딴은 별로 위로가 될만한 소리도 아니다. 어쩌면 오히려 여자의 심사를 거슬러 다치게 할 소리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이제 굳이 그러는 나를 허물하지 않는다.
「아니, 이젠 기다리지 않아요……」
여자는 웃으면서 가만가만 고개를 가로 저어 보인다. 말뜻은 역시 나의 예상을 부인하는 것이었지만, 목소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전 허선생님처럼, 그이에게 그 시간의 문이 열리고 나면 우리도 함께 그것을 흐르게 될 거라고 말했었지요. 우리도 함께 그것을 흐르게 될 거라고 말했었지요. 우리도 함께 그것을 흘러야 하는 우리의 미래의 시간이어야 한다구요…… 하지만 그것은 실상 저의 부질없는 허풍이었어요. 그저 한번 그렇게 꿈을 꾸어본 것뿐이에요…… 유종열씨는 그 시간을 건너면서 제겐 문을 닫아버리고 갔거든요…… 그의 시간이 어차피 함께 흐를 수가 없는 것이라면, 저도 이젠 자신의 시간을 흐르도록 해봐야지요. 그래 말하자면 이번 전시회도 유작전으로 이름한 것이에요. 종열씨를 위한 마지막 잔치의 마당으로 말예요……」
「……」
「이번 전시회가 끝나고 나면 작업실도 그만 오군과 의논하여 정리할 참이구요.」
나는 다시 할말이 없어진다. 그것은 바로 유선배의 실종에 대한 그의 여자의 마지막 선언이다. 마지막 잔치는 바로 그의 장례행사 한 가지다. 유선배가 다시 한번 우리의 곁을 떠나가고 있는 것 같아진다. 그의 실종이 내게서 한번 더 되풀이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윽고 나는 여자로부터 다시 사진을 끌어당겨 유선배의 마지막 모습을 찾는다.
뽀얗게 멀어져 가는 해무의 바다.
그것은 하나의 시간의 소용돌이, 소멸과 탄생이 함께 물결치는 광대 무변한 시간의 용광로다. 그 시간의 소용돌이 속으로 방금 한 작은 인간이 까마득하게 자신을 저어간다.
그런데 그 사이에 내게도 어느새 여자의 심사가 전염돼온 것인가 아니면 그 유선배의 성취가 내게도 그처럼 못 견딜 절망이었을까, 사진의 화면 위에 문득 커다란 맹점(盲點)의 투영이 생기고 있었다. 그리고 홀연 그것 속으로 유선배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었다.
내게서도 마침내 유선배의 실종이 완전무결하게 이루어진 셈이었다. 여자가 바라온 나의 구실을 자신 속에서 감당해낸 것이었다. 하지만 그 맹점의 동공(洞空)은 사진의 화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군은 아마 그냥 혼자서 가버린 모양이에요.」
문득 어디선가 여자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소리를 귀를 통하여 듣고 있지 않았다. 가슴속 깊이 어느 곳엔가로 맹점의 동공이 옮겨와 있었다. 나는 그 맹점의 동공으로 여자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럼, 이제 우리도 그만 일어나 볼까요, 전 집에 아이가 기다리고 있어서요.」
여자의 소리는 그곳을 지나가는 창구멍 바람소리 비슷하였다.
(《文學思想》 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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